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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총련 금마들 와 그러지'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권용목

시 ◦◦ 평


‘현총련 금마들 와 그러지?’


권 용 목 (전국민주노조총연맹(준) 공동대표)


민주노총 조직체계가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현총련 동지들은 마치 죄인이 된듯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전국단위의 수련회와 교육 등 각종 행사에서 들려오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위원장님, 도대체 밖으로 다니시면서 무슨 일을 저지르기에 그렇게 욕을 먹어야 됩니까’ 라는 간부들의 항의도 있을 정도였다. 밖으로 뿐만 아니라, 현총련 내부 특히 울산지역의 활동가들 속에서도 현총련 해체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아주 드세게 튀어나오고 현대중공업 하나만이라도 금속연맹으로 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어쨌든, 현총련에 대한 비난과 불만, 우려의 목소리들을 남기며, 민주노총 규약속에서 부칙조항에 그룹의 가맹을 인정하고 산업별 노동조합 조직으로 재편될 때까지 가맹단위로 인정되게 되었고, 창립대의원대회의 최종결정만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총련 동지들은 왜 그렇게 발버둥치며 가맹단위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가?
민주노총의 기본조직이 산업별 노동조합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는, 민주노총 시대의 산업별 조직 재편의 문제 뿐 아니라 현재 조합운동에 나서는 조직과제와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이 글에서, 주로 현총련의 입장만을 이야기 하겠다. 그 동안, 현총련의 입장은 거의 밝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준비위원회 운영위, 대표자회의에서 몇 차례 발언한 것 뿐이다. 한 가지 더 첨부한다면 주로 금속내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고, 이 글의 주요골격은 현총련 지도부내에서 확인된 것이지만, 대체로 나의 이야기이다.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과제

1) 산별노조 건설투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혹독한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운동을 대세로 자리잡게 했다.
전교조를 포함한 7천여명이 넘는 해고자가 발생했고, 천명이 넘는 구속자, 수십명의 열사가 투쟁현장에서 산화해 갔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구사대 폭력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7년째 반신불구가 되어 병상에 누워 계신 분도 있고, 조합운동 탄압과 위장폐업으로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를 헤메고 있다. 거대한 용광로 같은 노동자들의 분노의 함성은 이땅을 휩쓸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저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이 투쟁이 되풀이 될수록, 그리고 깊어갈수록, 조합내부에 많은 문제점을 남겨놓았다. 연대의 사슬이 끊어지고 기업별노조의 벽에 막혀 그 체계속에 갇혀버렸다.
특히, 전노협소속 노조와 대기업노조들의 경우에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토록 결사적이었던 현장활동가들의 조직이 부서져가고, 대의원 출마는 물론이고 상집간부 채우기에도 힘들어졌다.
활동가 내부의 분열, 조합원들의 현실안주, 노조운동탄압에 대한 부담감이 알게 모르게 깊게 깔려있다. 이러한 현실은 노동조합운동이 기업별노조체계에 갇힌 채, 정체에 빠져 발전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지 못한데서 연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내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에도 넓어진 조합운동의 지평에는 그 동안 누적되어 왔던 단위노조의 문제와 사회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야 되는 의무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렇듯 내부의 정체와 사업의 다변화로 인해 대중운동에서 사무실 중심의 조합활동으로 변화될 수도 있는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2)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가?
기업별노조의 벽을 깨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산업별 노조 건설투쟁이 그것이다. 민주노총은 그 출범과 함께 조합사업 방식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고, 기존 조직의 한계를 산업별 연맹으로의 분화와 함께 산별노조의 투쟁을 지도․지원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제일 먼저 정리되어야 할 것은 기업별 노조의 벽을 깨는 모든 노력은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으로는 개별단위 산업내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공동사업과 함께 노동통제, 탄압정책이 집중되는 임단투에서의 공동투쟁, 공동교섭의 노력이겠다. 이러한 것들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연맹과 단사차원의 집중적인 교육, 선전 등이 필요하겠지만, 먼저 조합원 대중들로 하여금 실천의 경험을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체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치밀한 준비와 정책을 추진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조합운동은, 이 문제를 올해는 교육선전에 치중하고 내년에는 실천을 한단계 높이고 그 다음에도 단계적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진 않는 것 같다. 특히 금속내부의 자동차 업종이 11/4 연맹으로 출범하게 되고 뒤따라 금속연맹의 출범이 눈앞에 다가 온 상태에서 연맹시대의 조합사업방식은 특히 임단투에서 기존의 시기집중 공동투쟁이 되풀이 되는 사업을 뛰어넘어 산별노조건설 노력에 걸맞는 투쟁전술을 구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산별건설운동에 큰 어려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또한 산별건설운동에서 풀어야 할 과제중 다른 하나는 막연하다는 점이다.
마치 안개속에 가려져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교섭대상, 즉 산업재편의 문제와 기업별노조체계 내에서 발생한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이 등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복잡하게 보면 한없이 복잡하게 보일 듯 하지만, 단순화해서 전술적으로 살펴보면 길이 보일 듯 싶다.
무대포로 지역이든 업종이든 그룹이든 기업별 체계를 뛰어넘는 교섭장소로 자본가들을 끌어내자. 그러고 나서 이것을 정례화 시키면서 그 다음 단계에서 기업별 노조내에서 만들어졌던 차이의 해결방법에 대해 차분히 연구하고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될 것이다.

3) 산별노조 쉽게 될까?
무지하게 힘들 것 같다. 이것은 멀리 일본의 사례를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우리 곁에 있는 대학노련, 국립대 6개 노조의 95년 공동임투를 보면 확실해 보인다. 국립대 총장의 상당수가 민주인사들로 채워졌음에도, 총자본의 강력한 압력에 의해 140일이 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공동교섭에서 개별노조 교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94년과 95년 합법연맹의 공동교섭을 보더라도 공동교섭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나타나고 이것은 총자본 노동정책의 핵심이 기업별 노조의 벽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는 징후로 생각된다. 하물며 최후의 보루인 제조업에서는?

4) 금속내부의 분열은 일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금속은 자동차업종의 연맹과 나머지 노조의 금속연맹으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금속내부의 분열에 대해 상층지도부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활동방식과 확연한 산업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금속연맹 사업장들은 주로 전노협의 후신으로 노운탄에 대한 지역차원의 공동투쟁 경험을 갖고 있고 그것을 토대로 지역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금속연맹으로 모였다.
반대로 자총련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업장들은 전노협소속 사업장들에 비해 지역 공동투쟁의 경험이 낮으며, 자연히 업종고유의 동질성에 근거한 연대사업이 그 내부에는 맞게 될 것이다. 지역과 업종사업은 동일한 지역에서조차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되고 있다.
이 두 기구를 산별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놓고 살펴보면, 금속연맹은 산별건설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저들과의 대립에서 지역을 근거로 하는 공동투쟁의 단위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공동교섭의 과제 해결에는 자총련보다 다소 효과가 떨어질 것 같다. 95년 임투에서 마창공투본소속 몇개의 사업장이 공동교섭을 추진했었다. 자본가들의 의도에 의해 실패했지만 투쟁의 동력인 조합원대중의 공감대형성이 아주 작았던 것 같다. 이것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자총련은 공동교섭에서 자본가들을 생각지 않더라도 업종의 동질성이라는 명분 아래 조합원들의 공감대 형성은 금속연맹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중심사업장들이 분산되어 있는 관계로 탄압에 대한 공동투쟁의 단위로는 금속연맹보다 현저히 떨어질 것 같다.
나는 울산에서도 매번 느낀 것이지만, 담벼락이 붙어있는 현총련 사업장이 공동임투를 할 때 저들의 공세가 강도를 더해갈수록 ‘엎어지면 코닿을 것 같은’ 그런 가까운 거리의 노조와 노조사이가 멀어져만 보이고 이것이 연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금속연맹과 자총련은 자신들이 부딪혀 있는 문제해결에 주력하면서 제 갈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두 기구의 통합은 금속노동자 뿐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숙제이지만 사업방식이 해결되지 않고는 통합은 요원하다. 업종이든 지역이든 공동교섭단위의 설정과 연맹내의 모든 노동조합이 집중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면(그래도 힘든 것이겠지만), 그래도 보다 더 적은 위험성으로 산별노조건설 노력을 실천해 볼 수 있을텐데 이것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5)노운탄에 대한 공동투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93년, 94년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민주노총 인정, 법개정 문제가 쉽게 이뤄질 것 같이 말했었지만, 지금은 민주노총 출범이 되었다고 해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탄압이 멈출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저들의 탄압은, 우리 내부의 결의를 바탕으로 벌어진 투쟁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주요하게는 노동조합운동의 예봉을 꺾고 무력화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특정노조를 지명해서 탄압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이제 민주노총 출범은 전노협 출범때 보다 더 혹독한 탄압이 예상되고, 이는 제조업, 주로 금속노동자의 새기운이 싹트는 지역의 연대에 대해서나 기존 업종회의내의 산별적 노력에 대해서 탄압이 모아질 것 같다.
이 탄압은 산별노조 건설운동 안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탄압도 있겠지만, 지난 8년동안 지속되어 온 민주노조 말살정책, 민주노조 사수투쟁의 내용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러한 현황과 과제속에서 현총련은 왜 발버둥쳤는가?

1) 우선 금속내부의 분열은 여타 지역과는 달리 울산지역에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왔다.
현총련은 금속사업장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자동차업종 사업장은 5만명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자총련 조직대상의 3/5을 차지하고 있다. 금속연맹에는 1/2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현대미포조선, 한국프랜지 노조 등은 각기 연맹조직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업장들이다.
자동차 연맹과 금속연맹으로 분화된다면 아무리 지역차원에서 지역 금속연맹 협의회를 꾸려 공동투쟁을 계획한다 하더라도, 각기 연맹의 사업이 산별노조 건설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이의 실천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시기집중도 되지 못한 채 헤매이게 될 것이 자명하다. 더욱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노조들도 자본의 의도에 의해 시기집중이 흐트러지는 마당에 언제라도 아무 내용이나 갖다 붙여 쳐들어 오면 어떻게 공동투쟁의 단위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제는 공동투쟁도 예전같이 할 수가 없다. 한쪽이 저들에 선택되어 공권력투입의 공격을 받고 있더라도 다른 노조들은 그 즉시 파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기껏해야 지도부 몇몇이 달려가서 그 사업장앞에서 집회하고 가두투쟁이나 거들다 물러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른 노조는 파업하거나 공권력투입이 예상되고 있는데, 총파업결의를 하기보다는 교섭차수를 늘려 명분을 채워가기에 급급한 실정 아닌가. 이것은 현총련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노조들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더욱 더 악화되면 되었지 현재 상태로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2) ‘산별과제 실천 단위로서, 현총련’
현총련은 87년 이후 민주노조 사수투쟁의 선봉에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고 자부한다. 일부에서는 ‘현총련이 전국노동자에게 한 것이 무엇인가’, ‘자기들 투쟁할 때 도와줬더니만 우리할 땐 쳐다보지도 않는다’라는 비난의 화살이 조직체계를 논의하면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해마다 투쟁해 왔다는 것은 해마다 구속, 수배, 해고자가 양산되었음을 의미한다. 상반기에 공격받고 하반기에 추스리기 바쁜데 어떻게 남을 신경쓸 수가 있었던가. 물론 이것이 관성이 되다시피 하다보니, 아예 다른 지역을 안 보는 습관이 생겼음을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의 지적은 달게 받겠다.
그리고 우리 머리속에 피라미드를 그려보자.
삼각뿔 꼭대기에는 현총련을 비롯한 다른 많은 노조들도 있었지만 현총련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탄압이 집중되며 강타해 들어오는 최전선에 있는 현총련이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총련,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나는 다른 노동조합들이 현총련과 같이 ‘선택받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뿐이지 현총련보다 더높은 투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현총련에게 그 행운을 누리게 만들었다.
이제 현총련은 민주노총 건설과 산별로 재편해 가는 과정에서 지난 8년간은 민주노조 사수투쟁의 과제를 수행하며 그 성과가 현총련으로 모아지기 바랬지만, 이제는 공동투쟁과 공동교섭의 과제를 안고 그 성과가 금속노동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투쟁으로 모아지기를 바랬다.

산별노조로 가는 길에서 나는 현총련만큼의 큰 장점을 가진 조직을 보지 못했다. 대우와 현중 꼭 이렇게 다른 자본과 대응하는 노조만의 공동교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단위, 기업별노조의 벽을 깨려는 단위노조들 끼리의 공동교섭도 산별과제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밀고 나가지만…….
공동교섭 단위만 보더라도 교섭대상은 물론 조합원들의 동질성에 근거한 공감대형성이 금속내 다른 지역, 업종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서 있다. 특히 산별이행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저항의 단위로 대기업 노동조합이 밀집되어 있는 울산지역만한 투쟁단위를 찾기 힘들다. 거기에 조합원들의 1차적인 지지의 강도는 또 어떠한가? 이 투쟁의 과제로는 금속노동자들의 관계형성을 어떻게 하며 그 성과를 어떻게 금속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만 고민하고 실천한다면 ‘현총련 또 제놈들끼리만’ 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산별투쟁이 현총련것이 아니라 금속노동자의 것이 되게 하는 것!

3) 애초의 생각이 공상에 머무르는 것 같다.
이런 의도에서 현총련 가맹을 주장하고 부칙에라도 들여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지만 정작 문제는 그 과정에서부터 현총련에는 타격을 주고 있다.(최소한 앞의 의도대로 공동교섭을 실천하기에는 ……. )
며칠전 울산지역 활동가들과 토론회를 하면서 참석했던 동지들이 현총련을 기업별 노조의 확대정도로만 인식하고 해체,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현총련내 핵심사업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장들은 눈치보기만 하는 사업장 정도로 인식하는 것을 듣고는 93년 투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현총련은 공동교섭 요구를 제기하고 7월 7일 총파업을 전개한 바 있다. 그때의 투쟁을 현총련 의장 사업장에서의 직권조인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만 낮추어 보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93년도의 상황은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지배세력에 대한 채찍이 태풍처럼 몰아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한 노동관련 주관부서가 5.6공과는 달리 애매하게 되어 노동부, 경제부처, 안기부, 경찰 그 어느 곳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며, 현대재벌 또한 국민당의 대선 참패이후 정부의 눈치만 보던 시기였다. 그런 관계로 정부에서 내놓은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대한 통제, 강제, 정치적 고려 등을 할 수 없는 힘의 공백이 생겼고 직접 대치자인 노조와 자본은 (저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극점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핵심 사업장 외에 상대적으로 작은 노동조합들까지 합세했던 총파업투쟁은 참가노조 수와 함께 사회, 정치적 파장을 크게 일으켰고 우리 내부에는 더 큰 용기와 힘으로 작용했다.
작은 노동조합들의 눈치보기라는 것은 ‘그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방식 모색의 문제’이지 그들 자신의 본질적 문제는 결코 아니다.
93년 공동교섭투쟁은 상황이 조성되고 (임금교섭이 교착상태), 의장단의 결단에 의해 일궈진 투쟁이었다. 그 투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나 버리고 말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번째로는 의장단의 결의로 이뤄진 싸움인 만큼, 그들의 결의가 흔들려서 싸움도 끝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내 자신도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두번째로는 현장활동가들이 단위사업장내의 투쟁에만 집중되어 그 힘이 현총련으로 모아지지 못한데 있다. 현총련 주도의 공동교섭투쟁에 현총련 위원장들만의 힘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힘이 모아졌다면, 죄어오는 총자본의 탄압앞에서도 ‘코앞이 천리로 느껴지는 고립감, 연대의 상실’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93년 공동교섭투쟁이나 그 이전, 이후의 투쟁이 사실상 저들의 선택에 의한 선제공격에 수세로 대응하는 수동적 투쟁이었다면, 산별건설 노력은 ‘수세에서 공세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더욱이 저들은 93년과는 달리 노동관련 주무부서가 안정되어 있고 노동관계에서 만큼은 정치력이 안정된 상태에서 총자본의 집중적인 공격이 예상되는 공동교섭에서는 의장단의 결단만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도 없으며, 상황조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자칫 산별건설운동 전반에 결정적인 타격이 될 위험성마저 존재한다.
이 투쟁의 성패는 의장단의 결의와 함께 현장활동가와 조합원의 절대적인 지지, 동참이 단사를 넘어 현총련으로 모아져야 하고 다른 산업 특히 금속내 두 기구나 지역 등 모든 단위의 집중적인 지지 지원이 있어야 그 나마도 해볼 만 할텐데, 그중 가장 중요한 핵심세력인 현장활동가들로부터 현총련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 가지고는 공동교섭 투쟁을 모아낼 수 없다. 거기다 산업, 지역, 단체 모든 지원세력으로부터 사실상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힘을 바짝 올려 맛만 보고 물러서든 끈질기게 끝까지 해보든 그 무엇도 해낼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시각은 전략과 전술, 시기집중 등 현총련 사업방식에 상당수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룹노조를 기업별노조의 확대’, ‘대기업이기주의’ 등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벽이 너무 두텁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현총련소속 사업장 대부분이 사업방식의 변화를 요청받고 있는 심각한 내부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현총련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길일지는 몰라도 망상을 버리고 진지한 자기모색의 길로 다시금 들어서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5-10-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