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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여성도, '더러운' 여성도 없다. 그저 '여성'이 있을 뿐
 기획: 여성/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자 선언1

현장에서 미래를  제111호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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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여성/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자 선언 1

‘깨끗한’여성도,‘더러운’여성도 없다.
그저‘여성’이 있을 뿐.


김영선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노동자의 힘 회원




1. 두 개의 여성행진과 논쟁

1) 두 개의 여성행진
지난 7월3일 서울에서‘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열렸다.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 현재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의 주도로 전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여성행진이 진행 중이다. ‘2005여성행진’은 2004년 12월에 열린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토론하며, 각 국 여성들의 요구를 담은 퀼트를 이어 거대한 패치워크를 완성하는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행진은 3월 8일 시작, 7월 3일 한국을 거쳐 세계빈곤퇴치의 날인 10월 17일, 최빈국인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한다. 세계여성행진은 행진을 진행할 나라별 코디네이터를 두었는데 한국의 코디네이터는 여성단체연합(여연)이다. ‘세계여성행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가『진보평론』17호에 기고한 「빈곤과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여성운동」을 보시오.
한국 행사로 열린 이 날 행진에는 광주민중행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문화연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인천사회진보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참가 단체를 비롯하여 경찰청고용직노동조합, 서울경인지역이주노동조합, 여성연맹, 다함께, 2005빈민활동실천단 등 30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6월29일 공식 출범한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전성노련)도 함께 했는데, 한 성매매 여성은 “‘성노동자도 노동자’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놓고 여러분들처럼 이해하려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생기면서 큰 힘이 되었다”는 솔직한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을 시작으로 생존권, 노동권, 건강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겠다며 인사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 날 행사는 세계여성행진의 “공식적인” 한국 행사는 아니었다. 세계여성행진의 한국 측 코디네이터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성매매와 관련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여성인권 쟁취라는 여성운동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의 권리헌장과 위배된다는 점을 근거로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 측이 퀼트를 사용할 수 없다” 이꽃맘, 「두 개의 여성행진, 두 개의 퀼트」, 『민중언론 참세상』, 2005.7.4.
며 공동퀼트를 쓸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 따라서 여연이 ‘여성폭력과 빈곤 추방, 그리고 일상에서의 평화실현’이라는 주제로 7월4일 개최한 행사가 “공식적인” 한국 행사로 기록됐다.

2) 두 개의 논쟁
지금 좌파운동 일각에서는 7월 3, 4일 양일 간 열린 행사의 연장선상에 놓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스꽝스럽지만 굳이 그 논쟁을 구별하자면 일단 기관지『노동자의 힘』,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등이 7월3일 행사의 취지에 동의하면서 전성노련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사회당, 사회당 대변인 이영기, 「논평: 성매매 합법화 운동을 우려한다」, 2005.7.19.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성노동자 운동’이라는 현실주의」, 『정세와 노동』4호, 2005.8.
등은 현재 ‘성노동자 운동’이 성매매 합법화의 취지일 뿐만 아니라 포주들의 이해에 영합할 수 있다는 우려 하에 심각한 걱정을 표하고 있다. 여연을 비롯한 여성운동계는 초기 ‘강력 대응’ 태도에서 더 나아가거나 후퇴하거나 등의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다만 ‘성노동자 운동’이나 이에 연대하는 흐름을 성매매 합법화 추진 세력으로 판단하고 경계하는 것을 볼 때 앞의 이꽃맘 기사 참고.
여연을 비롯한 여성운동계와 사회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입장이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중언론 참세상 http://www.newscham.net/
에서는 연일 누리꾼(네티즌)들의 토론이 열리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 측이 별도의 토론게시판을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참세상 기사, 자유게시판 성격을 지닌 ‘전선위의 참새’ 기사에 덧글을 다는 방식으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을 제외한 여타 보도성 매체는 7월 3, 4일 행사를 일회성 기사로 다뤘지만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추가 기사는 발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내가 보기엔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거나 다루기 불편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싶거나 중에 하나일 텐데 어떤 판단이던 간에 그 ‘까닭’이 못내 궁금할 따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작금의 ‘성노동자 운동’ 논쟁에 대해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두 개 중 하나’ 따위로는 안 돼
앞에서 크게 두 개로 분리한 논쟁 지형은 ‘성노동자다, 아니다’ 혹은 ‘합법화다, 금지주의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이 요약 또한 우습긴 매 한가지다. 언제부터 좌파 운동진영도 부르주아적 이분법 논리로 판단하고 논쟁했나? 기다, 아니다 식의 논쟁은 운동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나는 적어도 이 논쟁에 “검은 소와 흰 소가 함께 묶여 있는 것을 보고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였다’거나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였다’라고 하지 않고 검은 소와 흰 소가 ‘끈’에 의해 서로 묶여 있다” ‘송두율과 그의 벗들을 주제로 한 변주-경계에 피는 꽃’ 행사에서, 2004.2.12.

고 말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노동자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것 이상으로 성매매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을 노동자민중들. 특히 저임금, 장시간 노동, 생계부양 등 빈곤에 노출된 여성들)이 놓인 열악한 삶, 일(노동)의 조건을 반전시키고 성매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요구를 맘 편히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좌파 운동진영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때에 찌들지 않은, 아니 상대적으로 덜 찌든 좌파만이 이 투쟁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 성매매에 근거한 성산업과 성매매특별법

1) 성매매에 근거한 성산업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에 근거한 성산업의 규모는 연간 2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한국 GDP(국내 총생산)의 4%를 넘는 것으로 농업 GDP가 4.7% 농림부, 「농림업주요통계」, 2003
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산업화하는 엔터테인먼트, 연예산업 등은 누락됐다. 가령 최초로 이북출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것으로 알려진 조명애와 이효리의 모 휴대폰 광고 따위 말이다.

또한 인구의 10%에 달하는 400만 명 이상이 성매매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조사기관마다 널뛰듯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이 중 직접적으로 성적(性的) 서비스를 판매 성매매에서 판매자 행위에 대한 표현으로 ‘성을 판다’ ‘성매매 여성’ 심지어 ‘몸을 판다’ ‘성노예’라는 말까지 있다. ‘몸을 판다’ ‘성노예’라는 표현은 성매매 여성 당사자의 자발성 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몸을 ‘그녀의 것’으로 사고하지 않는 남성중심적 용어이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성매매를 하던 공장에서 일을 하던 서비스직에 종사하던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다소 수식이 많고 형식적으로 보이더라도 되도록이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혹은 판매하는)’으로 표현하려 한다.
하는 여성은 약 33만 명에서 150만 명까지 집계되며, 15세 이상 남성 1,800만여 명 중 연간 1회 이상 성을 구매하는 남성은 약 320만 명, 다시 말해 한국 남성 10명에 2명 꼴로 1년에 한 번씩 성을 구매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5세 이상 여성 인구는 18,365,977명, 15세 이상 남성 인구는 17,980,556명이다. (통계청, 2000년 인구 총조사)
또한 성을 구매하는 남성들의 구매 횟수는 월 평균 4.5회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성매매 산업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 전쟁에 기원을 둔 기지촌은 미군 주둔을 영속시키려는 국가·지배계급의 이해와 맞물리면서 음성적으로 더욱 확장, 보장됐고 ‘기생관광’ 산업은 외화벌이라는 이름으로 적극 장려되면서 성매매 종사자들을 ‘애국자’로 칭송하는 비극까지 낳았다. 미군이 아닌 일반 남성이 판매자를 찾아 나서자 성매매 집결지도 함께 번창 했다. 성매매를 싹 쓸어버리려는 현 지배 계급의 기세등등함과 성산업을 음성적으로 적극 권장·육성했던 역대 정부와 지배계급의 이중성은 포주와 성매매 앞잡이를 해치워야 한다는 정부·여성가족부·여성운동계의 주장과 달리 ‘진정한 포주’와 ‘성매매 앞잡이’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해준다.
또한 1961년에 박정희 정권이 ‘사회악을 근절한다’는 취지에서 제정한 윤락행위등방지법(윤방법, 전문개정 1995. 1)은, 정부와 지배계급이 오른손으로는 성매매를 권장하고 왼손으로는 성매매를 근절하려 한 이중적 작태라 할 수 있다. 애국자로 치켜세우며 성매매를 권장하던 손으로 성매매 여성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라며 처벌한 것이 바로 윤방법 아니던가.
바로 이러한 이율배반적 정책 탓에 400만 명 이상의 성매매에 근거한 성산업 종사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할 방안이 부재했다. 특히 성적 서비스를 판매하는 여성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이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2) 이중적 성규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
윤방법 제정 당시 정권이 내건 ‘사회악의 근절’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사회악’의 내용이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남성 중심(혹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를 온존시키는 것을 저해하는 요소를 말한다. 즉, 자본주의 체제(노동력 재생산)의 근간인 가족제도, 가족제도의 또 다른 화신인 가부장제에 흠집을 내는 요소들을 ‘사회악’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회악’의 대표주자로 이른바 ‘윤락행위’를 지칭했고 성매매 종사 여성을 ‘윤락여성’으로 놓아, 언제나 여성들만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설정과 통념이 가능했던 데에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이중적 성규범

(각주) 표: <현대의 지배적인 각본: 이중적인 성규범의 적용>
자료:김혜란,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배제된 여성 복귀하기(1)」, 『노동자의 힘』35호, 2003.7.21

과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섹슈얼리티의 위계적 구분)에 원인이 있다.
우선 이중적 성규범은 여성의 성을 남성에 복속시키고 인간의 성적 욕망과 본능을 남성들만의 것으로 특권화하는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과 자궁을 오로지 남성 중심의 혈통 유지와 유산 상속을 위한 생산 수단으로 전락시켰다.(이성숙,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p33, 책세상, 2002)
결혼 제도로 따지면 과거에는 일부 다처제였던 것이 더욱 효과적인 (남성)노동력의 통제를 위해 일부일처제로 진화(?)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의 엄격한 적용 또한 여성에게만 해당됐다. 이중적 성규범이 배태한 여성의 성적 자율권 박탈이 더욱 강고해진 것이다.
이중적 성규범은 성에 관한 한‘적극적인 일방의 성’이‘수동적인 일방의 성’을 착취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이데올로기이자 정치다.
섹슈얼리티의 위계적 구분은 전통적인 ‘성녀(아내, 정숙한 여성)-창녀(매춘부, ‘헤픈’ 여성)’의 구별을 낳았다. 이중적 성규범이 여성-남성을 구별하는 데 기여했다면 섹슈얼리티의 위계적 구분은 여성을 갈라놓고 여성 전체를 통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회 일반의 통념은 성을 구매하는 (기혼) 남성들에게 ‘헤프다’거나, ‘더럽다’는 식의 낙인과 누명을 씌우지 않는다. 반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되거나 ‘헤프고’, ‘더러운’ 등의 사회적 낙인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이 사회적 낙인을 공고히 하는 데 남성 집단은 물론 대부분의 여성도 ‘감히’ 공모자가 되었고 정부의 처벌 정책(윤방법)은 이를 합리화시켰다.
이중적 성규범에 따르면 지배 계급이 말하는 ‘사회악’은 동시에 ‘필요악’이다. 또한 여성 집단의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성녀, 아내, 정숙한 여성들은 ‘주체할 수 없이 왕성한 성욕 집단’인 남성 집단과 함께 창녀, 매춘부, ‘헤픈’ 여성을 대상화한다. 가부장적 성도덕을 지키기 위한 성전(聖戰)에 남성과 ‘정숙한 여성’들이 선봉에 섰다면 ‘부도덕, 윤리적 타락’이라는 십자포화 앞에 성매매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성매매 여성들 또한 이중적 성규범, 이중적 잣대 하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춘여성들은 가부장 사회에 깊숙이 베어 있는 규범은 순결·정절 이데올로기를 수용함으로써 모순적인 자아 정체감을 지니고 있다. 즉 한편으로 자신들을 버린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의 성욕을 위해 매춘여성은 있어야 한다는 성의 이중규범을 내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지촌 여성들은 자신들이 한국의 여성들을 강간과 미군의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민경자, 「한국 매춘여성의 연대와 집단화」, 『진보평론』13호, 2002년 가을)


3) 성매매특별법
지배 계급이 윤방법을 ‘사회악 근절 취지’라는 그럴싸한 의도로 제정했다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성매매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써 2004년 3월 22일에 제정, 같은 해 9월 23일부터 시행됐다. ‘성매매’가 들어간 명칭만 국한해서 보면 ‘성을 사고, 판다’는 말조차 입에 올릴 수 없던 시기에 ‘윤락행위’로 뭉뚱그려 가부장적 성도덕을 우선했던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의 성을 둘러싼 담론이 다소 열린 듯한 이미지를 주고는 있다. 하지만 본질은 ‘행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있으며 바로 이것이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은 국가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제정된 성격이 크다. 직접적으로는 두 차례 발생한 군산의 성매매 집결지 화재 사건(2001. 2002) 뒤 여성계가 박차를 가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의 논의는 여성학계나 여성단체가 주도해 당사자인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는 잘(전혀?) 수렴되지 않았다. 성매매 여성을 보호해야 할 피해자로, 구제와 자활의 대상으로 설정한 성매매특별법은 법안마련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을 대상화’한 결과 2004년 9월 시행과 한 달 여의 집중단속 직후 3,4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 시위와 단식, 삭발, 소복 시위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불사하게 됐다.

또한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도 노무현 정권으로 하여금 성매매특별법을 강행하게 한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2001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는 한국을 인신매매 송출지 내지 경유지로 지적하고 인신매매 법규 준수 노력이 불량한 최하위 3등급 국가(미얀마, 수단, 알바니아, 콩고 등)로 분류했다. 화재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여성단체의 분노와 국제적, 외교적 망신이 성매매특별법제정의 계기가 된 것이다. 박명선,「성노동자에 대한 연대는 전체 여성억압에 대한 저항이다!」,『노동자의 힘』83호, 2005.7.22.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신자유주의 합리화를 추진, 관철하는 노무현 정권에게 미국 국무부 보고서의 내용은 얼굴 화끈거리는 내용이기도 했거니와 기왕의 신자유주의적 여성(노동력 활용) 정책을 완성하려던 찰나에 터진 화재 사건은 지나칠 수 없는 문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1997년 대만의 천수이벤 타이뻬이 시장이 중산층 도덕주의자들의 지지기반을 다지고 정책의 올바름을 입증할 요량으로 48시간 내 공창제 폐지를 공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쨌든 용어에서만 보면 보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성노동자들은 말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한 전성노련의 이선희 씨는 “그러나 우리 성노동자들에게는 진실이 필요할 뿐 언어만의 성찬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매매피해여성이라는 말은 이를 수용하고 싶은 여성들에게만 적용하면 됩니다. 사회경제적 제반 조건에서 스스로 ‘성적 서비스업’을 선택한 절대다수 여성들에게는 국제사회에서 무리없이 통용되는 ‘성노동’ ‘성노동자’라는 말이 적합합니다. 성매매피해여성이라는 말은 우리들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로서 권리선언을 하고 조직화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라며 윤방법에서 성매매특별법으로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맞다. 조삼모사다. ‘윤락행위’만 ‘성매매’로 바꿨을 뿐이다.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도덕적 비난과 사회적 낙인인데 말이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직후 성매매 여성(성노동자)들의 반대 시위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220억 예산과 경찰력 동원, 성매매 집결지와 주택가 곳곳을 이 잡듯 뒤져 성매매를 근절하고 피해여성을 ‘해방’하려던 정부와 여성운동계의 의도와 달리 왜 성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을 아스팔트 바닥에서 지내야만 했을까? 혹시 그녀들은 여성계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업주와 포주의 사주를 받은 것은 아닐까? 여성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떡대 좋고 힘 센 기도들, 기둥서방들의 협박을 받기라도 한 것일까? 정말일까?


3. ‘성노동자’, 부정의 역사를 넘어

1) 성노동자, 사회‘밖’으로 나오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후 11월부터 3천여 명이 넘는 성매매 여성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농성장을 차린 국회 앞은 마침 회기 중이었던 탓도 있지만 전교조, 장애인이동권연대, 민주노동당 시국농성장, 국가보안법철폐연대, 언론개혁시민행동, 전국연합, 비정규노동법개악저지 공대위 천막, 올바른 과거사 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등이 농성장을 차려 그야말로 ‘텐트촌’을 방불케 했다. 이 중에 ‘한터여성종사자’들의 농성장도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40일이 넘도록 단식농성을 했으며 70여 일이 넘는 긴긴 농성을 계속했다. “여성부나 단체에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는 것이다. 여성부 관계부서 국장과 지금까지 3차례 면담을 했는데, 우리를 만나는 이유를 묻자 자활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상담전화와 관련된 정보를 주려고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얘기는 애초부터 들을 생각도 안했다는 것 아니냐. 우리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고 따지자 관계부서 국장이 화를 내고 면담장을 나가기도 했다.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그나마 11월 29일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다. 정부에선 저러다 쟤네들이 지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시간싸움이나 줄다리기가 아니다. 우린 목숨을 담보로 단식을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해 달라,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 전홍기혜, 「여성부 앞 시위 중단 안하면 안 만나 주겠다?」, 『프레시안』, 2004.12.14.
당시 농성장에는 ‘여성단체는 자폭하라’는 험악한(?) 구호도 ‘여성부와 대화하고 싶다’는 애절한 구호도 있었다. 12월6일부터는 여성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소복 시위도 했다. 하지만 여성부에서는 ‘시위를 할 것인지, 대화를 할 것인지 태도를 명확히 해 달라’며 소극적으로 응했다. 해가 바뀐 1월12일에는 ‘한터여성종사자연합’ 회원 10여 명이 청와대를 방문해 ‘성매매특별법 시행 3년 유예’ 청원서도 제출했다. 천수이벤이 48시간 내 공창제 폐지를 공표했을 때 ‘2년만이라도 유예해 달라’며 시위에 나선 대만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과 꼭 같이 말이다. 3월8일 여성의 날에는 “성매매 여성도 여성 노동자”라며 국회 앞 집회를 열고 “성매매 특별법의 대폭 개정 혹은 폐지를 위해 성매매 여성들로 ‘전국 성노동자 준비위’를 구성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6월29일 잠실체육관 대관 취소 사태까지 겪었던 성노동자들은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의 출범을 선언하고 이 날을 ‘성 노동자의 날’로 선포했다.

2) 정체성 부정의 역사를 넘어
지금까지의 성매매 여성들의 운동은 ‘정체성’의 부정이 전제되어왔다. 그동안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자치모임을 비롯하여 전성노련의 움직임까지 성매매 여성들의 자기조직화가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전성노련의 발족 이전까지 운동의 양태를 보면 하나는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 고객, 포주, 경찰 등에 대한 저항과 집단행동 대표적 사례로 2001년 12월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여성 17명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체사진을 찍히고 폭행을 당하는 등 인권이 유린됐다며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던 일이 있다. 동료 80여명은 이들의 진정 접수처리가 늦어지자 이듬해 1월 인권위원회 항의 방문 및 추가 진정을 접수했다. 당시 이들의 저항을 다룬 언론은 「윤락녀들 “경찰을 고발합니다”」, 「홍등가 여자들이 ‘인권’을 외쳐」식으로 폄훼하거나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의 사례를 대비시켜 보도했다.
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후자는 이른바 탈성매매로 성매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는 것이고, 전자는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화하고 이들의 인권을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이며, 기본적으로는 ‘성매매 여성(성노동자)의 정체성’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성매매 여성을 ‘윤락녀’라고 낙인찍도록 한 우리 사회 특유의 사회적 맥락이 주체적인 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고, 그녀들의 집단적 힘 또한 사회적 발언력조차 얻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을 둘러싼 사고의 주류흐름은 완강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조직체로서의 성매매 여성의 소수자운동은 그만큼 미미했다. 민경자, 「한국 매춘여성의 연대와 집단화」, 『진보평론』13호, 2002

전성노련의 자기 선언은 정체성을 부정하고 주체를 인정하지 않던 역사를 정면으로 깬 것으로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서두에 거론했다시피 ‘성노동자다, 아니다’ 혹은 ‘(성매매)합법화다, 금지주의다’라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성노동자다, 아니다’ 혹은 ‘합법화다, 금지주의다’라는 논쟁의 한 편을 들거나 한 편에 설 것을 종용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주체가 자기 선언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는 마당에야 굳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생각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왜 성적 서비스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지 등 ‘자기 말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왕 말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바에야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더욱 활발하게 말할 수 있는 통로와 공간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옳은 모습이라 생각한다. 배경에 어떤 심리 기제가 작용되었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제발 이제는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들이 존재한다. 물론 각자의 바램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으나, 성을 파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성매매 현장에서 느끼는 부당한 여러 가지 것들이 바뀌며, 더러는 성매매가 아닌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등의 변화를 염두에 둔다. 하지만 세상은 가전 기구의 새로운 모델이 개발되듯 그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인생을 걸고 하는 증언의 대가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 개인적인 바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욕구와 바람은 또한 지극히 사회적인 것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증언이 아니라 자유로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수 있는 통로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그들 스스로의 욕구이며,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자세인 것이다.
- 막달레나의 집 엮음, 「‘갈보’ 혹은 ‘성노동자’의 인권론」,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 p98~99, 삼인, 2002

포주들의 사주, 나는 성매매 여성들의 업주 혹은 포주들과의 다소 ‘불편한 동거’는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막 조직되기 시작한 성노동자들의 활동은 오래지 않아 그 ‘불편함’을 스스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천하태평인 필자를 ‘포주들의 앞잡이’라고 한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여성가족부(혹은 노무현)의 홍위병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감축 드리는 수밖에.
조폭들의 협박을 운운하기에 앞서 성매매 특별법이 ‘그녀들의 현장’을 어떻게 바꿔 놓았길래 찬 바닥에서 겨울을 났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 어떤 사주와 협박에 40일이 넘도록 식음을 전폐하고 농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인간으로서 예의가 아니겠는가! 텐트촌으로 변한 2004년 겨울의 국회 앞 여의도. 그곳을 찾은 수많은 정치인과 여성운동계 인사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천막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는 성노동자들의 자조 섞인 회상을 들으며 나조차 그 흉측한 이중규범과 성도덕으로 스스로를 사전 검증하진 않았는지 돌아본다.
최소한 그녀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몇 년간 혹은 십 몇 년간 기거하고 일한 공간에서 쫓겨나거나, 쫓겨나기를 거부하면 범법자가 되는 ‘사회적 범죄’ 만큼은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성매매 집결지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삶의 애환과 일상이 있는 곳이다.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없앤다는 것은 파시스트가 아닌 이상에야 할 수 없는 발상이다. 누구 말마따나 불 한 번 나면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살 곳이 못 되는 그곳엔 대책 없는 철거와 강제 이주보다 소화기를 가져다 놓는 게 급하다. 소방법과 각종 건축법, 불편하지 않은 건강검진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제대로 지키기만 한다면 그녀들의 노동 조건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4. 어떻게 함께 할까?

1) 논쟁의 함의
‘성노동자다, 아니다’ 혹은 ‘합법화다, 금지주의다’라는 논쟁의 지형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단, 전자의 경우 ‘노동자 되기’를 선언한 주체가 등장했다는 면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전통적인 ‘노동(자)’ 개념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노동함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등등.
을 둘러싼 논쟁과 토론으로 확장될 것이다. 또한 최근까지의 가사노동을 둘러싼 운동진영과 사회의 논란은 이 논쟁의 준거가 될 것이다.
문제는 ‘합법화’를 둘러싼 데에 있다. 지금 논의 지형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 운동’을 한마디만 거들어도 ‘합법화주의자’로 매도당한다. 그만큼 과잉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 논쟁의 저변에는 가부장적 성도덕과 이중규범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성스러운 성을 돈 주고 사고 팔순 없다’며 지고지순하지만 따분한 성 담론을 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른 이들이 꼭 나와 같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또 한편에는 ‘늘 피해당하는 여성’으로 이미지화된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여성주의에서 ‘피해담론’을 주류화한 까닭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사회적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 기인하기도 한다. 성매매를 둘러싼 대부분의 연구는 탈성매매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데 특히 이들은 극적인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이 주 대상이다. 사회적으로는 ‘고통받는 여성’이란 ‘매 맞는 아내’, ‘강간당한 부녀자(성폭력 피해자)’,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가장’등으로 등치되는 이미지가 고정적이다. 비약하면 ‘연약한 여성’을 때리는, ‘아리따운 누이’의 ‘소중한 순결을 짓밟는’, ‘나무 등걸처럼 변한 고운 흰 손’ 식의 표현이 가미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극단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즉, 피해당하는 여성=섹슈얼리티의 과대미사(혹은 무성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여성이란 늘상 보호받아야할 존재라는 인식(물론 보호의 주체는 남성)을 강화한다.

물론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강화한다는 것은 일부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그 안에서의 폭력과 착취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듯이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성매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연속성 역시 다양하다. 모든 형태의 성매매가 그 자체로 착취와 폭력의 등가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가 사회적으로 지향될 수 있는 바람직한 성은 아닐지라도 성 판매자들에게 그것은 ‘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막달레나의 집 엮음,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자들과 함께」,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 p62~63, 삼인, 2002

성매매가 “한국의 ‘주류’ 여성주의 진영(이성애자이고, 서울과 인근 신도시에 사는, 비장애인이며, 중간층에, 대학을 나온)의 여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감수성 - 정확히 말하면, 이는 인권 감수성, 정치의식이다 - 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고 생각한다.”는 한 여성학자의 고백 정희진, 「성 판매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주의 방법 메모」, 『여/성이론』12호, p53~54쪽,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을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근절해야 하는데 웬 합법화?’라고 묻기에 앞서 성매매 여성들이 놓인 조건에서, 남성 열 명 중 두 명이 일 년에 한 번은 꼭 성을 구매하는 현실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문제일까”를 먼저 물어야 한다.

2) 어떻게 함께 할까
어떠한 금지주의도 성매매를 완전히 폐절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합법주의도 성적 서비스를 판매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바꿔주고 그녀들에게 새겨진 ‘주홍 글씨’를 떼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우리는 성매매 비범죄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노동자의 82%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데다가 한터여성종사자연맹 백서
성노동자 25%가 평균 1,419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일을 범죄시하여 처벌한다는 것은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을 ‘일하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하루 8시간을 꼬박 일해 봐야 법정 최저임금을 겨우 받을 수 있고, 실제로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이 절대 다수이며, 일상적으로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한’, 그런 사회로 ‘복귀’ 문은미, 「일단,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부터 시작합시다」, 『여/성이론』12호, p39쪽,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가?
성적 서비스를 판매하는 여성을 비범죄화하는 것은 그녀들의 탈성매매를 막거나 성매매를 권장하겠다는 취지가 결코 아니다. 탈성매매 또한 그녀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 일을 하게 된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무턱대고 탈성매매만 부르짖어서는 안된다. 빚 좋은 전시행정용 자활대책이 탈성매매한 여성을 다시 성매매 집결지로 돌려세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성 구매 남성에 대한 처벌도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5세 이상 남성 인구 17,980,556명을 잠정적(예비) 범죄자로 만들면 성매매가 근절될까? 혹시 정부와 여성부는 ‘1년 이하의 징역, 3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입건 수사 원칙’이면 그 많던 구매자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리라 생각한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근절은커녕 성매매 여성에 대한 폭력 “일부 성구매자로부터 언어폭력이나 신체폭행 그리고 금품을 빼앗기는 등 인권을 유린당해도 관계 당국에 신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노동자들이 인권을 보장받고 고객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매매에 관해 우리 사회가 금지주의를 포기하고 전향적으로 ‘비범죄주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선희,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하며-‘한국의 성매매 특별법이 성노동자들에게 끼친 영향’」.
과 가학, 남성성의 연대가 현저하게 강화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부장적 성도덕과 이중규범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녀-창녀’의 구분법으로 여성을 이분화하고 위계화 하는 이중 잣대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세상에는 ‘깨끗한’ 여성도 ‘더러운’ 여성도 없다. 그저 ‘여성’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여성은 없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도덕적 오명이 결국 누구를, 어떤 계급을 즐겁게 했는가! 당장 이 낙인과 오명을 걷어내는 투쟁을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 전성노련을 지지하며, 전성노련이 말한 것과 같이 스스로의 생존권, 노동권, 건강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에 더해 이 땅의 억압받고 착취 받는 노동자민중과 늘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 않고,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힘 다하지 않고 꺾이는 것은 거부한다!”

2005-08-26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