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민중의 역사는 투쟁으로 전진한다 |
현장에서 미래를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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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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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노동자․민중의 역사는 투쟁으로 전진한다
단절없는 새로움은 없다
새 천년,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뭔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 천년과
밀레니엄이라는 말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한 장미빛 환상은 다가오는 21세기를 근거없는
희망으로 포장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다가오는 새 천년에는
1999년 현재의 모든 문제들이 갑자기 해소된 채 전혀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는 것처럼 광고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는 1999년 현재의 모순들과 단절하지 않는 한
한치의 새로움도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노동현장에서는 고용자체를 불안하게 함으로써 노동강도와
노동통제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으며 대량실업으로 거리마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수가 정규직 노동자수를
넘어섰다. 노점상과 철거민은 경찰의 비호아래 단속반과
철거전문 용역깡패의 무자비한 폭력앞에 노출된 채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거꾸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농가부채는 농민들을 절망하게 하고 있다. 이미 대학은
경쟁에 순응하는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한 취업양성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학생들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값나가는 상품으로
포장하기 위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의 ‘환상’은 깨졌다. 이 모든 것이 ‘50년만의
정권교체’, ‘국민의 정부’, ‘생산적 복지’,
‘신노사문화’, ‘신지식인 사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불타버린 인천 호프집의 어린 학생들의 시신과 교육이 무너져
버리는 교실에서 21세기 새천년, 밀레니엄, 정보화 사회의
장미빛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은 기만이다. 1999년의 모순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새로운 사회를 희망하는 것은 기만이다.
1999년 구조조정과 노동자, 민중의 삶
올해 들어오면서 자본은 노동 통제의 방식을 일정정도
달리하면서 현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자본이 1998년 대량
정리해고를 통해 자신의 축적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면 올해는
고용자체를 불완전하게 만듦으로 해서 현장 지배력을 관철시키고
있다.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등의 불완전 고용이 늘어나면서
급기야는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정규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를 넘어서고 있다. 현장에서의 노동통제의 강화는
노동강도의 강화와 효율적 착취의 강화를 전면화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대우와 같은 대기업 구조조정과 전력산업, 의료산업 등
공공영역에 대한 민영화 정책으로 인원감축을 통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건설자본의 이해에 맞추어 도시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재개발
지역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철거는 도시빈민들의 삶의 공간
자체를 파괴하면서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철거지역을
에워싼 전투경찰의 비호아래 도심의 한복판에서 자행되는
조직적인 폭력은 심각한 인권유린의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생존권을 위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던 수원시
권선4지구의 철거민들은 제도언론에 의해 무장폭도로 매도
당였다.주민은 구속되었고 전철연 의장단은 지명수배와 구속까지
겪어야 했다. 2월초 안양시 유진상가에서는 철거깡패들이
주민들을 포박하고 입을 테이프로 틀어막고 머리를 바닥에
처박는 등 인권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전근대적인
인권유린이 횡행하였다. 안양시 귀인마을, 구리시 최촌마을,
마포구 상암동, 의왕시 오전동과 내손동, 봉천동 등 민중의
주거권 박탈과 인권유린은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농민들은 어떠한가? 협동조합은 더 이상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이
아니라 사채업자로 전락한지 오래다. 또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농민들을 기만하는 것일 뿐이다.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에 쫓겨 농약을 마셔야하는 것이 1999년 농민의 현실인
것이다.
교육을 보자. 지금의 교육개혁은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현
교육개혁의 허구성은 중, 고생 자살자수의 급속한 증가,
무너지는 사제관계, 학원폭력 및 집단 이지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의 고등학생 참상은
현재의 교육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부는 경쟁력
없는 교육구조를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교육개혁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교육구조에 자본주의적인
경쟁을 도입하고, 저비용 고효율(효과적인 이윤창출 교육)
구조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의 주요내용은 1)교사 및
교수의 계약임용제, 연봉제, 성과급제 도입 2)학사행정 통제강화
3)고등인력 양성사업(BK21) - 연구중심대학 양성을 위한
집중지원 4)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노동력 양성이다.
고도로 산업이 분업화됨에 따라 전자, 반도체, 정밀기계, 컴퓨터
등의 산업에 필요한 양질의 노동력을 저렴한 임금으로 공급해야
하고, 대학의 연구활동도 이윤창출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사회통제와 관리의 기능은 소수의 엘리트집단(자본의 관리하에
있는)에게 독점되고 있다. 이는 대다수 대학과 대학생들에게서
사회, 철학, 인문적 교양을 빼앗고 대학을 졸업한 노동력으로
하여금 사회적 비판과 실천의 능력을 약화시켜 지배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에 기인하고 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산업을 민영화시키는 가운데 일부 국립대
민영화 계획도 발표했다. BK21을 시행하여 대학에서의 자본주의
경쟁을 강화시키고 학문연구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 및
학문공동체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몇 개의 연구중심대학과
이윤을 낳는 연구과제만을 집중 지원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나머지 대학생들에게는 교육비의 사교육화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들에게는 교수 계약임용제 및 연봉제로
고용불안을 강요하며 통제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이런 문제에
반대하고 나서면 정부는 개혁의 반대세력은 다친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로서 자본은 대학으로부터 사회의 비판적 의식을
거세시키고 경쟁체제에 순응하는 노동자를 길러내는 곳으로
재편하고 있다.
각종 개혁입법의 후퇴와 개악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 국민의 정부를 외치며 들어선
김대중 정부의 각종 개혁정책들의 허구성이 이미 다 드러 날대로
드러나 버렸다. 의료, 복지, 교육 등 사회의 각 영역에 걸쳐
주창되었던 각종 개혁 입법들은 아예 사라져 버리거나 오히려
개악되었다. 교육 개혁법안은 사립학교 재단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모두 개악됨으로써 교육 주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세웠던
복지정책들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렸는가? 생산적 복지라는 말
하나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부는
고용보험 확대실시를 마치 대단한 사회복지 정책의 진전인양
선전하고 있지만 고용보험의 확대실시 조차도 노동시장이 유연화
될대로 유연화되어 이미 비정규직 종사자가 정규직 종사자를
능가하고 있는 현재의 노동시장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 입법들의 후퇴와 개악은 애초에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개혁의 성격이 노동자, 민중에게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사회개혁과 사회안전망이라는 애매한 요구로 노동자의 요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준비되어야 한다. 더 이상 기성의 정치권에
청원하는 투쟁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
만들어져야 한다.
1999 민중대회의 의미 - 투쟁하는 민중대회
지난 2년간 ‘외환․금융위기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재벌개혁’, ‘교육개혁’, ‘정치개혁’,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화려한
국정지표 아래 추진되어왔던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결말은 무엇인가? 현장에서는 노동강도와 노동통제가
강화, 대량실업, 노점상과 철거민의 삶의 파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농가부채로 인한 농촌의 파괴, 교실이 무너지고,
학생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개혁의 ‘환상’은 깨진지
오래다. 근거없는 장미빛 새 천년과 밀레니엄의 환상을 깨고
현실의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투쟁하는 민중대회로
민중대회는 자리매김되어야 했다.
민중대회라 함은 당연히도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현장에서의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서로 공유하고 총화하는
과정을 통해 각 단위 현장에서의 투쟁들이 서로 개별적인 문제로
고립적인 대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중심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민중
스스로가 남한사회의 현실에서 사회변혁의 주체적 계급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더욱 힘찬 투쟁을 결의해 낼 수 있는
자리이어야 했다.
그러나 민중대회의 본대회는 이런 현시기 투쟁들을 내용적으로
묶어내고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 적절하였는지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중대회는 현실에서의 고통과 이에 맞서는
현장에서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총화하고 조직해 내지 못한 채 그
진행에서도 형식적인 자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요구안과 구호의 나열, 각 단위 대표들이 순서대로 입장하여
발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민중대회 본대회는 과연
민중대회를 통해 노동자․민중들이 서로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공유될 수 없었던 형식적인 자리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민중대회! 그것은 매년 치루는 한 번의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반노동자적․반민중적 개혁에 대한 전민중적 저항의
출발이다. 시장의 무한경쟁논리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인간선언이다. ‘자본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의 첫걸음이다. 노동자와 민중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진정한 주체임을 투쟁으로
선언하는 장이다.
민주노총 합법화! 합법주의가 아닌 더욱 광범위한
민중연대투쟁의 무기로!
민주노총은 지난 11월 23일 노동부로부터 민주노총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게 됨에 따라 법외단체가 아닌 국가가
인정하고 법적인 보장을 받는 합법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미
노사정위원회 참여유도를 통하여 민주노총의 실체는 국가가
인정하였지만 그것이 법적인 보장을 획득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실체만 인정한 채 각종 법,
제도적인 무기를 이용하여 민주노총을 억압하고
국가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이제는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되면서 형식까지 보장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1990년
전노협을 건설하게 되고 1995년에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일련의
과정은 노동운동의 역사적 성장이었다. 끊임없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속에서 굴하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남한 노동자들의
조직적 구심을 노동자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획득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민주노총의 합법화라는 성과는 민주노총의 교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자본과
정권에 대한 투쟁의 성과물이인 것이다.
그러나 합법화는 단지 법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지 체제내로
편입되어 합법주의적 노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투쟁의 성과물로서 법적지위를 획득한 것일 뿐인데 자본과
정권의 잣대로 만들어 놓은 제도권 안에 안주하거나 법과 제도만
바꾸면 사회개혁이 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 역으로 합법화는 합법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비합법투쟁만이 올바르게 노동자계급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합법화자체를 폄하하는 것 또한 명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점은 법외단체로 있을 때에 겪었던 적들의 공세에
대하여 합법성을 획득함으로서 이전보다 좀더 자유로운 투쟁을
진행할 수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합법화는 대중적 노동운동의 성과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이것을 계기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적 과제로
받아안음으로써 자본의 노동분할 정책을 분쇄하기 위한
무기로서, 그리고 당면한 전력산업매각과 공기업의 민영화에
맞서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실물화시키는 무기로서, 그리고 각 영역에서 투쟁하고 있는
민중들과 연대하는 노동운동으로 자신의 역할을 확장, 강화하는
무기로서 합법화를 활용할 때만이 노동자, 민중의 실물적인
연대투쟁을 확장시키는 중심에 민주노총이 우뚝서게 될 것이며
다가오는 2000년을 노동의 새로운 세기로 힘차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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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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