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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운동가들의 강제추방과 노동운동의 국제적 고립

현장에서 미래를  제50호
홍석만


외국운동가들의 강제추방과 노동운동의 국제적 고립
홍 석 만
사회진보연대








조지 소로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퀀텀펀드의 회장으로서 영국의 중앙은행까지도 굴복시켰던 국제적 투기자본가의 대명사가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지난해 초 한국을 방문하여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한국의 산업전반과 금융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도 아닌 조롱을 하고 갔다. 이 말이 왜 진실이 아닌가 하면 바로 그가 한국경제 파탄의 장본인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장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기 2개월 전에 조지 소로스가 “다음 타깃은 한국”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음모론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까지의 과정에서 조지 소로스의 개입문제가 거론되어 왔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의 말로 조지 소로스야가 말로 한국경제를 파탄 나게 한 장본인 중에 한 사람임이 증명된 것이 아닌가!
우리가 기억하는 또 한명의 외국인이 있다. 바로 IMF의 캉드쉬 총재다. 캉드쉬는 IMF 구제금융을 이유로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정부와 금융자본자, 재벌들을 설득시켜, 구조조정을 단행하라, 노동운동을 유연화시키고 노동운동을 잠재우라는 반노동자적인 압력을 노골적으로 일삼을 장본인이다. 빌려준 돈을 받아 내는 데에만 혈안이 된 IMF와 캉드쉬의 이러한 정책은 실효를 거의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본주의 옹호자들로부터도 푸대접을 받아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물론 조지 슐츠 전 미국 재무장관까지 ‘(IMF를) 폐쇄하라’는 극언까지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그는 내년 2월, 12년간의 독재끝에 잔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위의 두 사람은 한국경제 파탄의 주범급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노동자의 삶과 생존권을 위협한 잔인무도한 범죄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잡아다가 감옥에 넣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도 이들은 아무 때고 우리나라에 버젓이 들어와 연설회를 열어 참주선동 해대고, 정치권과 자본가들을 수시로 접촉하여 그 악날하고도 잔인한 정책을 집행하도록 독려해 왔다. 정권과 자본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고, 심지어 이 범죄자들을 국빈으로 대우하였다. 설혹, 외교적인 문제로 이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어렵다면 한국에 들어올 때 강제추방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정부가 그랬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김대중 정부가 최근 한두 달 사이에 3명의 외국인들을 줄줄이 강제 추방시켰다. 드디어 김대중 정부가 정신차리고 노동자 민중을 위해 독립적인 외교노선을 걷는가 싶었더니만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가 강제 추방시킨 외국인들은 독일의 좌파 지성인 홀거하이데 교수와 프랑스 실업노동자운동의 선구자인 크리스토퍼 아귀통씨 그리고 미국의 노동운동가 스티브젤쩌씨였기 때문이다.
홀거 하이데 교수는 한국의 진보적인 교수들과 함께 한국 사회운동에 대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그 동안 몇 차례 입국하려고 했으나 번번히 추방당하고 말았다. 또, 크리스토퍼 아귀통씨는 유로마치(Euro March)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으로서 프랑스 실업운동 단체 AC!의 핵심맴버였다. 지난 1998년 서울 국제민중회의 참석 이후 한국의 실업노동자운동과 노동운동에 큰 관심을 보여 왔으나 올 10월 입국과정에서 강제추방 되었다. 스티브 젤쩌 씨는 미국의 저명한 노동조합 운동가로 지난 1997년 제 1회 서울 국제노동미디어와 1998년 서울 국제민중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한국 노동운동과의 연대에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 왔다. 그 역시 11월 ‘제2회 서울국제 노동미디어’ 대회 참석차 입국하려 하였으나 강제 추방되었다.

정부는 이들이 과거에 관광목적으로 들어와서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을 강제추방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이유는 진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조지 소로스의 연설도 명백히 정치적인 연설이며, 캉드쉬의 한국에서의 활동은 더 말한 나위 없이 정치행위 그 자체였다. 더구나 이들은 진실로 국익에 반하는 정치활동을 해 왔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이들 역시 강제추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추방시킨 사람들은 한국의 민중과 노동자들과 연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찾아 온 사람들뿐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밝힌 대로 이 사람들이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이 추방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주요한 잣대는 어떠한 정치활동을 했는가에 그 기준을 두고 있다. 조지 소로스와 캉드쉬와 같이 자본을 위한 정치활동은 적극 고무되어야겠지만 노동자와 민중과 연대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권은 스스로 인권대통령임을 자처하면서도 이처럼 반인권적이고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자처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최근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제연대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을 막자는데에 있다. 실제로 자본이 세계화, 국제화되어 가면서 초국적 자본은 더욱 맹위를 떨치며, 자본의 세계적인 통합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 조응하여 노동자 민중운동 역시 지난 시기 어느 때 보다도 국제적인 연대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의 의도는 자본의 세계화 경향에는 적극 조응하면서도 노동진영의 국제적인 연대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강제추방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은 외국의 활동가들을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통제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따라서 일련의 외국 활동가들에 대한 강제추방은 이러한 맥락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꼴보기 싫은 외국 활동가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를 막고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하는, 명백한 한국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의도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진영의 미진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젤쩌 씨나 아귀통 씨 사건에 대해서 항의 성명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 국민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민주노총 위원장이 미국에서 반미주의자라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되었다면 민주노총은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 것인가. 사실상 몇몇 관련단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반응이 이러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상태를 계속해서 묵인하게 된다면 자본과 정권의 구미에 맞는 사람들의 입국만 허용될 것이고, 진정으로 노동자 민중이 원하는 국제적인 연대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 결과는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민중운동의 국제적인 고립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제연대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운동은 받을 줄만 알았지 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전 미국의 한 노동자가 보여주었던 사진에서 새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사진은 올해 5월 지하철 노동조합과 공공연맹의 투쟁 이후에 노동조합 간부들의 대량구속에 항의하여 미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을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연대시위를 하는 사진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동지라고 생각하고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를 굳건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배워야 할 미덕은 ‘그들도 우리처럼’이라기 보다는 ‘우리도 그들처럼’이 아닐까 한다.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한/노/정/연

1999-12-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