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2000년을 앞두고 나오는 여러 움직임으로 여기저기 소란스럽기가 그지없다. ‘밀레니엄 베이비’를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 지구종말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영화들, 그리고 21세기를 겨냥한 ‘신당’을 만든다는 일련의 소동들… 그러나 한 세기가 바뀌고, 새 천년이 온다고 하는데 무엇이 새롭고 또 어떤 것이 달라지는지 도무지 와 닿는게 없다. 오히려 우리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으며, 점점 가진자들에게만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소주 값은 오르고, 양주 값은 내리는가 하면, 웬만한 소규모의 자본도 이제 더 이상 자본으로서의 제기능을 못해 증권투기시장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메워지고 있다. 게다가 실업자의 수도 늘어만 가는 양상이다. 구조조정, 재벌개혁, 법과 제도의 개선 등 이른바 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자본의 축적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들이고, 지배세력간의 이전투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추잡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우리 노동자계급에게 희망은 있는가?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지난 1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이는 단지 옛 일에 대한 기억이 아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자신의 모습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자 함이다. 그러할 때만 우리는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정과 현재의 모습속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즉,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짚어보고자 함이 주된 목적인 것이다. 다음 뒤에서는 민주노조운동의 과제에 대해 필자 나름의 준거점을 가지고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현재 민주노조운동을 둘러싼 쟁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글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갖는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의 행복 앞에서 오만하지 않다. 자신의 자랑스러웠던 과거를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의 시련 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 현실 앞에서 결단이 필요할 때 지난날 겪은 시련은 용기가 되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지나온 길은 나침반이 된다. 자기가 지나온 길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과거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는, 그것이 개인이든 조직이든 역사의 시간위에서 언젠가는 실종되고야 만다.”1)
2. ‘민주노조운동’의 현재: 성과와 한계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따라 합법칙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는 한국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1920~30년대 노동자들은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에 맞서서 노동자 민중의 권익과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하였다. 비록 1936년 이후 전쟁말기가에 일제의 지배가 극단화되어 모든 활동이 금지되고 또 자체의 노선적 오류속에서 부분적으로 침잠하였으나, 1945년 해방공간에서 노동운동은 다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결성으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분단정권의 수립으로 노동운동의 입지는 계속 좁혀졌으며, 특히 이승만 정권의 몰락 이후 등장한 군부독재정권은 모든 자주적인 노동운동의 싹을 제거하고 강압적인 노동통제 정책으로 일관하며 ‘어용노총’ 즉 한국노총 체제를 오랫동안 강요하였다. 때문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지 않으면 노조설립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성장,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결성과 그 조직적인 발전은 자본주의의 발달정도에 따라 합법칙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이제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이미 보편화되었다.
1) 노동조합의 일반화와 기업별노조의 극복을 위한 투쟁
노동조합운동의 일반화는 주체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60~70년대까지의 한국자본주의는 저곡가 정책으로 농민을 하층분해시켜서 노동자로 만들고, 이들에 대한 저임금 장시간노동이라는 강도 높은 착취로 자본의 원시적 축적단계를 밟아 나갔다. 바로 이 시기의 노동운동의 주역은 경공업부문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의 발달은 중공업부문 대기업의 남성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역으로 내몰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1985년 대우자동차 투쟁을 기점으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가서는 완전히 일반화되고 있다.2) 주지하다시피 1987년 이후 격렬한 파업을 동반한 대규모의 투쟁은 대부분 제조업 분야의 생산직 노동자가 주도했고, 그 중에서도 중화학공업 분야의 생산직 남성노동자층의 동원화 수준이 가장 높았다. 또한 지역 분포로 볼 때 이전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서울과 수도권 지역보다는 주로 울산 등의 대공업단지들이 대투쟁의 진원지이자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의 진출과 함께 또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성장이다. 이미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사회 공적인 부문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의 중요성이 예고되었고, 1990년 중반을 전후로 하면서 공공부문노동자들의 투쟁은 커다란 파급력을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노동조합의 투쟁과 한국통신노동조합의 민주노총의 가입이었다. 즉, 국가 기간사업이라는 영역에서의 파업은 정권으로 하여금 ‘국가전복의 음모’라고 규정될 정도로 자본에게 강력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지금은 전교조는 물론 민주노총도 합법화되었고, 공무원노동조합의 결성을 위한 준비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제 노동조합은 어떤 노동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또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열망하여 만든 조직을 이른바 ‘민주노조’라 선언하고 그간의 비자주적 노동조합운동과 스스로를 분명히 구별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의 성장 과정속에서 노동조합이 일반화되었음에도 중대한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민주노조가 바로 조직형식상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에 근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은 그 출발에서부터 기업별노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을 전개해 왔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과 그 조직, 그리고 산업별노동조합(산별노조)의 건설로 압축될 수 있다.
특히 산별노조건설운동의 추이를 살펴보면, 우선 금속과 같이 다수의 지역노조와 주요 대공장을 근간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산별노조를 제시하고 조직하는 방식, 다음 공공부문의 경우처럼 두 개이상의 연맹들이 통합하면서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경우, 그리고 전교조처럼 업종별 단일노조를 건설하는 흐름, 혹은 지역노조 건설을 강화하여 기존의 업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화하려는 시도 등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편 1994년 3월 30일 결성된 전문노련을 시발로 하여, 1998년 2월에는 금속연맹, 병원노련이 1999년 3월에는 공공연맹 등이 결성되었으며,1999년 현재 산업별조직 소속 노동조합은 19개 연맹에 1,390개 노동조합, 573,490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3)
이는 서유럽의 경우 숙련노동자 중심의 직능별 노동조합에서 점차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발전해 왔듯이, 한국의 경우에는 정권과 자본이 강제한 한국노총 체계와 기업별 노동조합이라는 틀4)을 노동자 스스로 극복하고 동일산업의 하나의 노동조합 건설 즉, 노동자 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위해 스스로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고 있다.
2)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의 형성
이렇게 한국의 노동자들은 민주노조운동을 통해서 반어용노총이라는 전선을 만들고 스스로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였다. 동시에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는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는 산별노조건설운동과 함께 전국적인 조직의 건설,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인 구심체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즉, 1985년의 구로동맹파업, 그리고 1987년 이후 지역노조협의회, 업종별 협의회 건설과정에서 드러나듯이 노동자들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기 위하여 스스로 단결하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1990년에는 전노협의 건설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이 형성되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이하 업종회의), 노동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ILO 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이하 ILO공대)위가 결성되고,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 시기를 거쳐 1994년 민주노총 준비위가 구성 마침내 1995년에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총단결체인 민주노총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노동자 계급은 단결이라는 동일한 사상으로 결집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선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단지 임금인상 등의 경제적 이해를 넘어서 자신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을 지키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이다. 이는 전노협 사수투쟁과 민주노총의 건설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된다.
다음 민주노총의 위상과 성격이다. 민주노총은 첫째, 반어용노조 전선이라는 동질성 속에서 1987년 이후 형성된 신규노조와 어용노총을 탈퇴한 노동조합들의 역사적인 결집형태라는 것이다. 둘째, 때문에 그 안에는 다양한 편차가 존재할 수 있으며, 특히 노동조합의 발전전략에 대한 견해 차이를 배제할 수 없다. 셋째, 민주노총은 그 자체로 완결된 조직은 아니며, 아직까지도 기업별노조의 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하기에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로 전화하기 위한 과도체로서의 자기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민주노총과 연맹과의 관계, 즉, 산업별노조가 건설되면 전국적 구심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이 현시기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3)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전술로서 파업의 정착과 발전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스스로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결하고 연대하면서 전국적인 구심을 형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또 강력한 국가권력과 맞서 싸우면서 때로는 부분적으로 후퇴하거나 침체되면서도 지속적으로 투쟁을 전개한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되며,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임노동과 자본의 관계 즉, 노동자의 존재조건 그 자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운동의 역사속에서 초기의 투쟁은 일면 매우 자연발생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경우도 조직적으로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급속한 성장과정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갖는다. 특히 한국의 노동운동은 국가의 억압적인 노동배제전략속에서 오랫동안 그 발전이 가로막히거나 역사적인 단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 내재하는 특별한 그 무엇을 설명하여야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강위력한 무기이자 학교인 파업과 이 파업투쟁전술이 민주노조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점차 일반화되고 정착되어 발전한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경우 94.1%가 비합법 파업이었다. 그리고 당시 노동자들의 44%, 노조간부들의 56%는 “노동관계법이 사실상 합법투쟁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쟁의가 발생했다고 대답했다.5) 그리고 이후에 노동관계법에 부분적인 손질이 가해지고, 쟁의신고를 거쳐서 임단투가 진행된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합법적인 영역안에 갇히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조업 부문의 경우 주요 파업들이 공장점거투쟁의 양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공장점거투쟁은 자본으로서는 매우 치명적이며 위험한 투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기는 하나 공장이라는 생산수단이 노동자의 통제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하며, 서구유럽에서도 정치적인 위기 때마다 이러한 전술이 사용되었다.6) 때문에 정권과 자본은 공장점거투쟁이 갖는 파괴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파업투쟁이 이러한 방향으로 급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왔고, 이미 1996년 노동법 개악만 하더라도 파업을 ‘폴리스라인’ 안으로 제한하려는 법개정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한라중공업파업에서 드러나듯이 공장점거투쟁이 가지는 힘은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한편 단위사업장의 파업은, 지역연대 파업으로 그리고 정치적 총파업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 학교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1987년의 경우 파업투쟁은 1,300여개의 신규노조 건설이라는 조직적 성과와 상반기 임금인상에 이어 하반기 투쟁으로 최초의 두자리 수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이러한 파업을 통해 ‘선파업 후교섭’이라는 투쟁방식을 경험하면서 노동자들은 노사간에 존재하는 힘의 논리를 체득하게 된다. 이후 1988~89년 현대중공업의 128일 파업투쟁, 1991년 총파업, 1994년 전지협 파업투쟁, 1996~97년 노개투총파업 그리고 1998년 5월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경제적이고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 경우는 있어도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계급적으로 훈련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128일의 경우 강고한 공장점거투쟁이 갖는 파괴력을 바탕으로 공장의 담을 넘어 가두로 나가서 타계급에게 자신의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권력과 자본에 맞서 연대투쟁을 형성했는가 하면, 1991년 총파업의 경우 강경대 투쟁 등과 맞물리면서 노동자 계급이 결합하는 전국적인 민중연대 투쟁의 의미를 가졌다. 또 1994년 전지협 파업의 경우 그것이 비록 패배로 끝났을 지라도 이후 공공부문노동운동의 강화에 이바지하였고, 1996~97년 총파업은 이 사회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즉 파업은 노동자의 무기이며 동시에 그들을 단련시키는 학교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파업이 정치파업이 보다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파업의 성격에서 출발하였다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국가권력과 충돌하게 되고 이로서 정치적 성격을 분명하게 갖는 양상을 가졌다. 그러나 1996~97년 노개투 총파업과 1998년 총파업에 이르면 거꾸로 강력한 정치총파업이 선행함으로써 단위사업장에서의 투쟁을 촉발시키거나 자본의 공세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즉,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선진적인 부분의 정치적 파업투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의 급속한 하락을 어느 정도 저지해 낼 수 있었다는 점은, 이후 정치적 파업투쟁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조직적 강도여하에 따라 다시 현장투쟁력과 조직력을 복원시킬 수 잇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7) 이렇게 한국의 노동자들은 단지 어용노총에 반대하는 혹은 그것을 민주화하는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으로서만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파업투쟁이라는 노동자의 무기이자 학교를 통해서 일하는 기계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주체로 스스로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4)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의 변화
다음은 전체운동속에서 노동운동의 위상변화이다. 1970~80년대의 운동이 학생운동과, 재야로 대표되었다면 1987년 그리고 1990년 중반을 경과하면서 전선운동의 주도권 자체가 노동운동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 출발점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흔히들 노동자 대투쟁을 6월 항쟁의 성과인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6월 항쟁의 한계8)와 노동자대투쟁의 정치적 의의를 간과하는 것이다. 6월 항쟁을 중간계급과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승리하고 표현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비록 부분적으로 제조업 노동자들이 결합하면서 투쟁의 성격이 민중항쟁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화이트칼러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여기지 않았고, 뚜렷한 계급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6월 항쟁의 한계를 돌파해 나간 것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었던 것이다. 즉, 소부르조아가 주도하는 ‘국본’의 지도부는 직선제를 환영하며 투쟁을 접을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생존권확보와 현장의 민주화라는 투쟁을 벌여 민주주의 투쟁을 진전시켜 냈던 것이다.
전노협이 결성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전선운동에 대한 참여는 보다 두드러졌다. 1991년 총파업을 계기로 전노협은 ‘국민연합’의 결성에 참여하여 다른 민중조직들과 반 민자당 전선을 구축하고, 그 산하에 ‘민중연대회의’를 구성 민중운동의 활성화와 민중단체간의 상호지원을 확대하고자 하였다.9)이는 노동자계급이 제 민중의 이해와 함께 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1993년 이른바 ‘문민정부’의 등장에 소부르조아 세력과 운동권의 일부가 정권의 개혁정책에 손을 들어 줄것 인가, 말것 인가 소란을 피우며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정권의 계급적인 본질을 폭로하고 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불을 부친 것은 원진레이온 투쟁과 현총련 공동임투 등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또한 94년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공동파업은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전근대적 노동통제와 변형근로제와 같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착취 그리고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만천하에 폭로하였고, 노학연대투쟁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96~97년 노개투 총파업만 하더라도 정권의 안기부법, 노동법 개악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었으며, 1998년 5월 총파업의 경우에도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갖는 ‘반노동자적․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하고, 대부분의 소부르조아 시민세력이 투항하거나 동요할 때, 노동자계급만이 유일하게 계급적이며 정치적인 대중전선을 형성해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5월 1일에는 노학연대를 복원해 냈고, 11월 8일에는 민중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민중연대투쟁을 현실화시키기도 했다.10) 올해에도 민주노총은 ‘민중대회’의 중요한 동력이자 주체로 나섰다.
총파업을 비롯한 강위력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의 계급대립의 두축을 극명히 드러내 주었다. 이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선을 급진화시키기도 하고, 또 냉각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운동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학생운동 등의 제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음에 반해, 노동운동은 그 사회적 발언력을 높여 갔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996~97년 총파업이었다.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힘에 그 동안 상대적으로 과잉포장되어 왔던 시민운동세력은 그 속성을 드러내며 뒤를 따라올 수밖에 없었고, 보수언론과 야당도 슬슬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는 현재의 ‘IMF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범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의 상황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국본은 기존의 운동세력을 총망라하다시피 하였음에도 민주노총의 힘이 실리지 않고는 전선운동체로서의 자기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의 주도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 된 것이며, 노동자계급이 어떤 계급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민주주의에 투철할 수 있음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민주노조운동의 과제
그런데 이렇게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뚜렷한 성과를 가지고 있음에도 노동운동의 위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위기가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조운동의 전개과정속에서 노동운동의 위기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992년을 전후로 한 시점이었다. ‘계급타협론’에서 ‘진보적 노자관계론’, ‘사회발전적 노동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제기된 이른바 ‘노동운동 위기론’은 대체로 1989년을 기점으로 한 노조 조직률, 쟁의 수의 감소와 이것의 원인을 전노협과 노동운동의 전투성에 대한 비판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가 현장으로부터 출발된 것은 아니었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이 논쟁은 당시 노동운동내의 정황에 근거한다면 전노협 중심성의 부정, 전노협 노선의 폐기 내지는 민주노조 운동에서의 전노협 중심성을 해체하고자 하는 내부정치적인 목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즉 ILO공대위에서 전노대로 전화해 가는 과정에서 노조운동의 총노선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참여의 폭을 확대하되 노조운동의 주도권을 상대적으로 온건한 비생산직 노조쪽으로 이전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그 배경에 있었다.11)
이에 비해 최근에 제기되었던 민주노조 운동의 정체성의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1998년 2월 6일의 ‘노사정위’합의 그리고 2월 9일 대의의원대회에서의 합의안 부결과 상근 임원진 사퇴, 그리고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현장으로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그것은 크게 민주성과 자주성의 위기로 명명되어 질 수 있는데, 이는 지도부 몇몇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이자, 사회개혁적 발전전략의 위기12)라 할 수 있다. 즉,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여져 있다. 우선 ‘IMF정세’로 지칭되어지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봉착해 있다. 자본은 자본축적의 위기를 노동유연화 즉,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으로 극복하고자 하며 이는 노동자계급에게는 생존권의 위기와 노동운동의 체제내화 전략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리해고와 ‘노사정합의’ 등이었다. 다음 노동조합의 발전 그 자체로부터 오는 어려움이다. 즉, 노동조합이 가지는 한계13)와 더불어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논의, 운영구조와 여기서 발생될 수 있는 관료주의의 문제, 그리고 합법화 등에 따르는 제도화의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조직)의 부재로 말미암아 노동조합(대중조직)운동에 모든 과제가 부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역편향으로 노동조합과 정당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분리하고, “노동조합의 투쟁만으로 안되니까 의회에 진출하자”는 식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을 협소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1)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이루어내야 한다.
앞서 민주노조운동은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고 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산별노조의 건설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전노협 창립때부터 강조되던 것이었다.14) 그렇다면 왜 산별노조가 필요한가?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현재 노동자에게는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단결의 무기가 아주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의 전국조직인 민주노총을 건설하였지만 우리는 아직도 조직노동자의 절반도 결집시키고 있지 못하며, 전체노동자의 수에 비하면 노동자의 조직화 정도는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이는 자본의 분할전략과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 성립이후 자본은 노동자들을 숙련과 비숙련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제조업과 비제조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 대립시키고 실업자와 분리시키면서15) 분할통치해 왔다. 노동운동은 바로 이 분할전략에 대해 투쟁하면서 스스로를 단결하고 통일하려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16) 때문에 산별노조는 자본의 노동분할전략을 분쇄하고 노동자의 계급적인 단결을 위한 무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산별노조는 투쟁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
산별노조가 투쟁을 통해서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단지 ‘선언’ 정도로 이해하려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는 산별 중앙교섭 쟁취를 우선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즉 산별노조의 주된 과제를 중앙교섭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은 그 속성상 교섭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사업장별로 임금격차가 크고,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며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취약한 우리사회에서 산별이 건설되어 산업별 통일교섭을 이루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정권과 자본의 태도이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고, 법적으로는 산별건설에 제동을 걸 만한 장치는 사라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별교섭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동력으로 하지 않고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금속 등의 몇몇 연맹이 산별 중앙 교섭의 중요성을 사업계획 등을 통해 강조하고 또 시도했음에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고용안정투쟁을 전국적인 쟁점으로 형성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음으로,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고 있지 못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즉, 교섭력은 투쟁을 바탕으로 할 때만 형성되며, 교섭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투쟁과 그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를 혼돈하면 투쟁은 단위사업장에서 교섭은 연맹에서 민주노총은 정책수립이나 기타 교섭의 원할 한 진행을 위한 정치적 제스추어를 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산별노조 건설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크고 작은 투쟁을 전국화, 전계급적인 쟁점으로 만들면서, 공동의 요구, 공동의 투쟁을 전개함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둘째, 아래로부터의 형성되는 요구와 논의를 기반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산별건설의 근거로 기업별노조의 한계와 노조조직률의 하락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별 노조가 가진 한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역으로 강점도 존재한다. 특히 다양한 현장조직의 형태와 ‘선진노동자’로 불리워지는 역동적인 힘과 투쟁의 경험이 이후 산별노조 건설에서 어떻게 계승 발전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때문에 종업원의식과 대기업이기주의 등이 문제가 되고 산업별 공동투쟁을 하기에는 기업별 노조가 한계를 갖음에도, 이를 산별이 건설되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노조 조직률의 하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198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노동조합 수가 1990년 중반이후로 정체 혹은 부분적인 감소를 보이는 것은 기업별노조 형태로 조직될 만한 곳은 대부분 조직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결성이 매우 어려운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등의 미조직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또 임노동자의 또 다른 형태인 실업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건설되면 이들이 곧바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건설과정에서 이들을 조직할 수 있는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즉, 조직노동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전계급적인 단결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투쟁과 사업을 배치할 것인가로 모든 고민과 실천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점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되는 산별건설 논의와 실천들은 다분히 기존 조직들의 단순합, 혹은 합종연횡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각 연맹의 사업안에는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 방안 등 여러 사업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에 입각한 실천을 하고 있는 단위는 많지 않은 형편이다. 산별은 기존 연맹들을 합쳐(숫자를 늘려서) 교섭력을 극대화 한다던지, 이름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전계급적인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개별적인고 분산된 투쟁을 집중시켜 내면서 지도력을 구축하고, 미조직 노동자를 이 과정에서 조직해 내는 그러한 실천과정 이어야 한다. 때문에 상층 지도부 중심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여 ‘산별이 되면 이런 것이 좋으니 합치자’는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힘있는 산별이 될 수 없으며, 더욱이 ‘계급적인 산별노조’와도 더욱 거리가 멀게 될 것이다.
셋째, 자주성, 민주성의 복원과 확대과정이어야 한다.
전노협 건설이후 지난 10여년은 민주노총의 건설 등 양적인 측면에서는 발전을 했는지 모르나, 자주성과 민주성의 문제 그리고 특히 변혁지향적인 내용은 일정정도 훼손된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볼 시점이다.
우선 자주성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합법화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전노협이 결성과 함께 정권과 자본의 파상적인 탄압을 받으며 힘겹게 조직을 사수해 온 것17)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건설과정은 상대적으로 순탄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 동안 민주노총은 합법화를 꾸준히 정부에 요구하였고, 드디어 합법화가 되었다. 이에 대해 이제 민주노총도 한국노총처럼 정부 지원금도 받고, 합법화가 되었으니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적인 전망을 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노동조합의 제도화가 가져오는 위험성에 근거하여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핵심인 자주성, 즉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가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점과 관련하여 산별노조의 위상을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력을 극대화하여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꾀하겠다는 혹은 노동력의 가격형성에 대한 우위권을 확보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의 문제를 매우 협소하게 만들게 될 것이고, ‘투쟁은 노동조합이 정치는 (진보)정당이 수행한다’는 사고의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음 민주성의 문제 또한 많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단위사업장에서 위원장의 직권조인뿐만 아니라, 노사정위합의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지도부의 독단적인 결정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관료화의 경향을 제어할 계획도 산별노조 건설 논의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료주의와 관료제는 다르며, 아직 건설되지도 않은 산별노조의 관료화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없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기간 운동과정에서 아래로부터 제기되었던 노동자 민주주의의를 매우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대의제가 요구되는 현실성을 앞세워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확보해야 하는 산별노조가 민주성을 어떻게 담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논의와 고민을 원천적으로 막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대공장 남성 조직 노동자중심의 노동운동이 갖는 편향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작년 현대자동차투쟁에서 나타났듯이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식당의 여성노동자들을 해고하는데 합의한 노조지도부의 태도에서 이는 아주 극명히 드러난다.18) 노동운동이 자본의 노동분할전략에 포섭되고, 노동조합의 민주성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노동운동이 아니다. 이점에서 건설되는 산별노조와 함께 민주노조운동은 자주성과 민주성을 복원 확대하기 위한 자신의 계획을 제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2) 계급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매우 진부한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노동조합을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조직으로 사고하는가 아니면 착취의 폐절을 위한 노동자의 조직된 힘으로 사고하는가에 따라서 노동조합의 이념과 노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총의 강령에 대한 논의로만 제약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구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총결집체로서 민주노총이 현실속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이다. 이점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과 ‘사회개혁투쟁’이 가지는 문제점, 그리고 ‘산별만능주의적 편향’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노선과 이를 옹호하는 ‘사회적 조합주의론’은 92년을 전후했던 ‘노동운동위기론’과 몇 가지 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조직률의 정체현상이나 현장의 약화를 ‘임단투 중심의 전투적인 투쟁’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호응을 얻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시민운동 등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골적으로 생산성을 위한 노사협조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에 긴박 당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견해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의 신자유주적인 공세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와 노동운동의 무력화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은 필연적인 것이며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은 더욱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정체되고, 현장이 약화되는 것을 ‘임단투 중심의 전투적인 투쟁’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완전한 오류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보여주듯이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만 엄청난 수의 노동조합이 신규로 설립되고, 어용노총이 민주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장의 약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문제가 되어 온 것은 전투적인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그 투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끊임없이 발생하는 단위 사업장의 투쟁을 연맹과 민주노총이 전국적 전계급적인 투쟁으로 조직하였는가의 여부이다. 말로는 총자본과 총노동의 격돌지점이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별 체계에서는 결정권이 단위사업장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하거나, ‘기층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무리한 총파업(총력전)은 불가능 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가 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 동안 아래로부터 문제제기19)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현장의 강화 혹은 약화는 신경영전략 등의 자본의 현장통제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개별 단사차원만이 아니라 전국적, 전계급적으로 얼마나 힘있게 전개하는 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 동안 과도한 투쟁을 해서 패배했고 이 때문에 현장이 약화된다는 식의 논리는 그간 투쟁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둘째, 민중연대 전선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신만의 협소한 이해를 극복하고 모든 억압받는 대중과 함께 연대하고 그들을 조직해야 함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국적인 시각을 벗어나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연대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면서 정권과 자본의 하위파트너에 불과한 시민운동세력과의 연대를 중심에 놓는다거나, 민중의 투쟁을 방기하고, 선거와 의회로의 진출을 정치세력화로 사고하는 경향은 반드시 극복 지양되어야 한다. 즉,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민중적인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과, 국민적인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국민적 지지’ 운운하는 이면에는 소위 ‘국민여론’에 대한 과도한 강박관념이 내재해 있는 듯하다. 그런데 ‘국민여론’이라는 것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 중 일부인 제도언론과 소부르조아 시민단체가 만들어내는 허구적인 담론에 불과하다. 이는 1996~97년 노개투 총파업 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중의 분노와 절박한 요구, 그리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보지 못하고, ‘국민여론’이라는 실체없는 대상을 향해 소위 언론 플레이를 하러 다니고, 정권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한 일부 시민운동단체에 기대는 동안 정작 조직하고, 연대하며 함께 투쟁할 다수의 근로대중은 그야말로 ‘시민’이 되고 ‘국민’이 되어 개별화 될 수밖에 없다. 또 ‘사회개혁투쟁’의 주체가 노동자 자신이 아닌 시민운동과의 연대라고 설정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임단투를 극복하는 그 무엇으로 설정되는 한, 정치와 경제는 분리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민중들과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그럼으로써 전사회적인 변혁이라는 과제를 책임있게 수행해 나감을 의미하는 것이지 ‘국민여론’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제 민주노동운동은 노동자의 해방이 곧 억압받는 모든 자의 해방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논할 때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합주의적 의식’에 대한 지적을 해 왔다. 즉, 노동자계급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데올로기 투쟁이라고 표현될 수 있겠다. 실제로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바로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제위기 노동자 책임론, 생산성 협조론 등의 논리를 대중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순간 그 투쟁은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경제위기와 함께 정권과 자본은 ‘국가경쟁력강화’ 라는 슬로건 아래 애국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등을 주되게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포섭된 경우가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사정합의’20)이다. 비록 아래로부터의 거센 반발로 현재는 노사정위에서 참여하고 있지 않으나, ‘노동조합은 투쟁과 교섭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하에서 다른 형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주의’가 언제 재등장할 런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향은 노골적으로 생산성협조나, 노사합의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대중의 의식속에서 오랫동안 강요되었던 체제수호적 이데올로기 가운데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호소하면서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기업, 국가와 명운을 같이하는 존재로 이해되고, 때문에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한다거나, 지금의 경제위기만 넘어서면 다시 고용이 보장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에 포섭되는 한 노동운동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 사회내 이익집단의 하나로 전락할 것이다. 게다가 더 싼 노동시장, 상품시장을 찾는 자본의 논리속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유입은 지속될 것이고, 현대의 금강산 개발 등에서 나타나듯 자본의 대북한 진출은 점차 가속화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노동운동이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국수주의, 인종주의에 경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렇게 된다면 노동자의 단결과 통일성은 무참히 깨어질 것이다.
넷째, 노동자대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세력화여야 한다.
1997년 대선, 그리고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결성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인 결의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노동조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흐름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노동대중의 참여와 지지속에서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은 대선에 독자후보를 내는 근거로 1996~97년 총파업이 정치적인 교섭력과, 의회 내의 지지세력이 부재하여 실패했다는 것을 들면서 노동자의 정체세력화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는 총파업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며, 정치세력화의 근거로도 불충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더욱이 이러한 판단이 대중적인 토론에 근거한 것도 아니었으며, 현실의 투쟁과 결합되지 못하는 선거에의 참여와 창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의 건설방식은 아니다. 이는 상층부의 결합정도와는 달리 아래로 내려갈수록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해정도 등에 편차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음 의회주의적 편향이다.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건설은 현시기에 제기되는 투쟁과 결합되어 있지 못하며, 정당 관계법에 근거하여 합법정당으로 등록하는 것을 주된 일정으로 제출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르조아 정치의 룰을 넘어서고 대중 정치 투쟁을 펼쳐 나가면서, 전체 계급 투쟁 전성의 확대와 강화를 도모 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노동자의 정치를 선거와 의회 및 국가기구에 일부 진출하는 것으로 제한시키게 됨으로서 결국 노동자는 다시 투표를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체제내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분할지배전략, 노동자 정치를 의회정치로 가두려는 음모를 분쇄하지 못한다면, 서구의 경우처럼 산별노조와 사민주의정당이라는 형태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분리 고착되어 노동운동이 체제내화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투쟁은 교섭을 위한 도구가 되며, 노동자들은 의회에서의 다수를 점하기 위한 동원의 대상이 된다. 이미 자본과 정권은 노동운동의 상층부를 포섭하고, 급진적인 부분을 대중으로부터 분리시켜 내려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였으며, 합법화 등은 투쟁의 성과인 동시에 노동운동을 제도화하려는 저들의 의도이기도 하다. 때문에 투쟁은 노동조합이 정치(정확히 말하면, 국가정책에 청원․개입)는 진보정당이 하는 식으로 노동자의 정치가 제도화되는 순간 노동조합은 착취의 폐절을 위한 조직된 힘이 아니라, 노동조건과 임금의 개선을 위한 이익집단으로, 노동자는 영원한 임금노예가 될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의 대표가 의회에 진출하는 것도, 노동자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전 사회적인 통제권을 스스로 확보하는 것,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극복하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리주의가 아니라 노동자대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의와 진보정당 건설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나오는 글
이상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이후 과제를 아주 거친 방식으로 점검해 보았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반어용노조라는 수준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운동의 미래는 정권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 민주적인 운영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전형 창출. 교섭에 매몰되지 않는 전투적이고 대안적인 투쟁들을 어떻게 발전 시켜 나가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편 대중적인 투쟁을 통해 건설되는 산별노조와 대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세력화의 상과 경로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을 둘러싼 제반의 논쟁과 노선적인 분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체제내적인 노동운동으로 변질될 것인가, 아니면 변혁적인 노동운동으로 발전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즉,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이고 민주적인 강화와 이를 통해 노동운동이 사회적 대안세력으로 형성될 때 만,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방현석 『아름다운 저항』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1999
2)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응축되었던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여기저기서 분출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학생운동 출신의 노동현장 진출과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투쟁은 1985년에 이르러 ‘구로동맹파업’이라는 연대투쟁을 만들어내고, 6월 항쟁을 거쳐 마침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1987년 노동자 투쟁동안 발생한 노동쟁의는 약 3,500여건으로 지난 30년간의 쟁의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것이었고, 3개월간 결성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수는 지난 십 년간의 신규조직 증가수 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보도자료 참조
4) 주지하다시피 1961년 5월 16일 군사쿠테타 이후 정권은 한국노총을 만들고 산별노조체계를 강제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다시 노동관계법을 개악하여 기업별노조를 강제한다. 이때 제 3자 개입금지조항이 신설되는 등 더욱 개악된다. 이원보 「1960~70년대 한국의 산별노조」『산별노조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한국노동사회연구소 1996 321~330 쪽.
5) 김동춘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역사비평사 1995. 107쪽
6) 러시아의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와 독일에서의 레테,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그람시의 공장평의회 운동의 등장한 1917년~21년의 시기는 1차세계대전과 그 여파가 여러나라들의 정치적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든 때와 일치한다. 또 프랑스에서 인민전선 정부하에서 1936년 3천 건의 파업과 9천 건의 점거가 발행한 것, 미국에서 연좌파업이 일어난 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과 파시즘의 위협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1968년~72년 사이의 점거는 생산노동자외에도 여타의 ‘종업원’들이 점거에 참여했고, 산업외에 영역에서도 수행되었다. 대학은 대학생들에 의해, 주택은 무단입주자에게, 협회의 사무실은 회원들에게, 그리고 대사관은 소수 민족들 및 동조 저항그룹들에게 점거되었다. 주프 비서 「공장점거와 산업민주주의」
7) 박성인 「1998년 노동자투쟁 평가」『현장에서 미래를』1998년 12월호
8) 실상 6.29 선언은 지배계급의 전술적인 양보, 그것도 그들로서는 권력유지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수백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독재타도를 외치고, 두 명의 젊은이가 죽어 갔지만 가두에서의 부분적으로 대치중인 경찰력을 무장해제한 것 외에는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인, 군대, 경찰력, 행정력은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두 번째, 직선제 개헌 이후 결국 권력은 전두환의 친구이자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에게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6월 항쟁을 이끈 주도세력 특히 ‘국본’은 다수가 중간계급의 성원이었으며, 투쟁에 참여한 대중들도 스스로를 노동자라도 생각지 않았다.
9) 김진균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와 특징」『산업노동연구』1권 2호 1995년 228 쪽
10) 박성인 앞의 글
11) 임영일 『한국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1981-1995)』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183쪽
12) 박성인 「직권조인, 총파업투쟁 철회 그리고 민주노총 정체성의 위기」『현장에서 미래를』1998년 3월호
13) 노동조합은 첫째, 자본주의의 착취에 반대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즉,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노동력의 판매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둘째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공장조직을 수동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때문에 노동자들은 수많은 직업별 조직으로 분산되거나 작업장에 관련된 협소한 이익에 매몰되는 경향을 갖는다. 셋째 자본과 노동자사이에 공정한 거래가 이루질 수 없듯이, 노동조합만으로는 자본의 강대한 힘을 극복할 수 없다. 넷째 파업은 노동조합의 중요한 무기이나 그것은 방어적인 무기이고, 정치적인 총파업조차도 결정적인 것은 못된다. 때문에 일찍이 레닌은 노동조합 혹은 조합주의의 한계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노동자정당의 관계를 빗대어 ‘독수리는 병아리 보다 낮게 날 수 있으나, 병아리는 결코 독수리만큼 높게 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堀江正規 외 / 이태준 엮음『노동운동론 연구』백산서당 1986
14) “ …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역량을 확대, 강화하는 한편 업종별, 산업별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을 발전시키는 속에서, 기업별 노조체제를 타파하고 자주적인 산별노조의 전국중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총 매진할 것이다” 전노협 창립선언문 1990.1.22.
15) 이미 1848년 프랑스의 부르조아지는 실업자와 노동자를 분리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실업자들을 긴급구제사업과 보조금을 주는 국민작업장에 내보내어 노동자, 사회주의자와의 접촉을 차단하였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아르투어 로젠베르크/박호성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유럽정치사』역사비평사 1990 참조
16) 맑스와 엥겔스가 직업별 숙련공 조합이 미숙련공들의 노조가입을 규제하자 숙련공 노동조합의 배타성을 비판하면서, 미숙련노동조합들이 가입한 신조합운동을 지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7) 당시 정부는 전노협이 87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민주노조운동을 억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노협을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더욱이 86~88년의 3저 호황 국면이 끝나고 90년을 전후로 하여 경제가 불황국면으로 치닫자 정부와 자본은 산업구조조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배제전략이 요구되었다. 1988년이래 1995년까지 구속노동자수는 무려 1,877명에 달하고 있으며, 주요 노조간부에 대한 수배조치는 노동조합의 일상활동과 임금인상투쟁을 무력화시키는데 사용되었다. 전노협 가입 노동조합에 대한 업무조사, 무노동 무임금의 고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전노협의 주요 지도자 구속, 각 지노협의 핵심 사업장 위원장 및 간부 구속, 그리고 전노협의 중앙위원이자 한진중공업의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열사 옥중 의문사 등등 탄압이 그치질 않았다. 때문에 전노협은 결성과 동시에 조직사수와 노동운동탄압 분쇄라는 두 개의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정부의 탄압을 조직사활의 문제로 인식하여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노협은 최초로 90년과 91년 전국적 총파업 투쟁을 단행하여 국가권력에 직접 대항하는 강력한 전투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지킨 것이다. 최경희 『한국노동운동의 주체형성에 관한 연구』한국외국어대 석사논문 1996
18) 신병현 「여성 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운동」『진보평론』1999년 가을 창간호
19) 대표적인 것으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98 투쟁평가 및 과제]를 참조
20) “ … 그러나 IMF 등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보니까 노사정 대타협이 국제 신인도 회복과 나라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부당노동행위 근절문제는 국민회의측과 노동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1997.2.9 민주노총중앙위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