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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산별노조건설의 의의와 방향

현장에서 미래를  제51호
이은숙



총론: 현시기 산별노조건설의 의의와 방향*



이 은 숙/ 연구기획1실장







1. 문제 제기


1980년대 중반 이래 민주노조운동이 조직적 과제로 부단히 제기해 왔던 ‘산별노조 건설’ 사업이 1995년 11월 민주노총 창립 이후부터는 연맹별로 구체적인 일정에 오르게 되었다.1)

최근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조직적 강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체감하면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세적 규정을 크게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하여 전국적․전산업적으로 가해진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로 인하여, 그리고 주체적으로는 그 동안 기업별 노조체계를 기반으로 형성하여 온 연대와 투쟁의 원리와 운동양식이 대정부 및 대자본 대항력 유지에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별노조운동이 모색된 것이다.

기업별노조는 기업단위의 개별자본의 존재 여하에 의하여 노조의 존립 여부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지난 3년 동안의 투쟁 과정에서는 그 점이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산별노조는 어떠한 조직형식보다도 노동자계급이 폭넓게 조직될 수 있는 형태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지향 그 자체에 대하여 가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산별노조는 우선, 현시기에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용불안정 사태와 항상적인 실업위협에 대응하여 노동자의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단결의 틀을 부여하여 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운동이 사업장 단위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기업별 노조에 기반함으로써 미조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한계를 가져왔다면, 산별노조는 미조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가능성을 한층 높여 줄 것이며, 이는 현시기와 같은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의 만성화․항상화 상황에서 벌어지는 노동조건의 저하와 노조운동의 위축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조직력 확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은 개별자본의 지불능력이나 개별자본의 시장지배력 여하에 불문하고 자본에 의한 노동조건의 저하 기도를 조직적 힘으로 방어할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이러한 가능성은 확보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할 때, 산별노조의 조직원리와 운영원리 속에 내재하여 있는 그러한 특징들이 발휘될 수 있고, 현재의 노동자계급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그러한 내용성을 가진 산별노조를 건설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조직의 형식을 산별노조로 바꾸어 놓기만 하면 그 잠재적 가능성이 자연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때,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현재의 노조운동의 혁신과정으로서 자리 매김 될 수 있다.

이처럼 산별노조가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고자 하는 운동이라는 성격을 객관적으로 부여받고 있고, 그 만큼 전국적이고 전산업적인 노동자계급의 대응전선 형성이라는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운동에 부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산별노조 시대를 열어 가고자 하는 현 시기의 노동조합운동이 실질적으로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포함한 난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산별노조건설운동이 필요한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산별노조건설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지점들을 먼저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1997년말 폭발한 경제위기와 그에 대한 총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대응2)은 노동조합운동으로 하여금 산별노조체계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증폭시켰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투쟁을 강화할 필요성과 교섭력을 강화할 필요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운동, 특히 노동조합운동에서는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3) 현 정세 하에서는 이 둘이 마치 대립되어 있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 교섭은 평화, 투쟁은 비평화의 단순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한창 전개할 때 정부쪽에서는 ‘모든 것은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와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한 것은 투쟁과 교섭을 괴리시키고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최근 3년 동안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의 과정에서 노조운동 내부에서 산별노조건설의 필요성이 크게 강조되게 되었다. 그 근거로는 주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와 ‘조직률 하락’ 등이 강조되고 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라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엄존하고 있다.

현재 노조체계와 조직률이 문제되는 것은 노조운동의 당면 과제, 그리고 노조운동이 대표하고 있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 실현을 위한 투쟁 과제를 구체적인 힘으로써 발휘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통하여 현재의 노조운동 상황을 돌파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투쟁력과 교섭력을 담보할 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 문제가 부각되게 된 것이다.

조직형태상으로 기업별노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이 기업별 노조체계 하에서 형성하여 온 노동운동의 동력까지 기업별노조의 한계로 일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의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우선, 현재의 조직 형태상의 문제(‘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총자본에의 대응력에서의 한계와 조직률 하락 등의 노조운동이 당면한 문제들의 ‘주범’으로 보면서 이 때문에 시급히 산별노조체계로 전환해야만 한다는 논의가 그 하나이고, 기업별노조체계를 산별노조체계로 바꾼다고 해서 노조운동이 당면한 문제들을, 더욱이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돌파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논의가 다른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 산별노조체계로 시급히 전환하고 그 조직을 가지고 투쟁을 힘있게 수행하자는 논의로 이어지고, 후자의 경우 당면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면서 기업별노조체계를 내용적으로 극복해 나가자는 논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논의가 마치 전자는 산별노조를 건설하자는 논의이고 후자는 건설하지 말자는 논의라고 재단하는 것은 논의의 본질이 곡해된 것이다. 지금 기업별노조체계를 유지․고수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투쟁과 조직의 관계 설정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산별노조 건설이 구체적인 일정에 오르면서 투쟁과 조직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하여 산별조직을 건설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이 견지하고자 해 온 ‘투쟁을 통한 조직화’라고 하는 것이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 점이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현 시기에, 산별노조건설운동의 맥락에서 ‘투쟁을 통한 조직화’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별도의 투쟁이 계획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산별노조를 ‘투쟁을 통하여 건설’한다는 것은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가?

동시에, 산별조직 건설을 통하여 힘있는 투쟁을 벌여 나갈 수 있다는 논의가 기업별노조체계를 산별노조체계로 명의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면, 또 그것이 현재의 투쟁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을 보다 힘있게 벌여 나가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면, 그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가는 경로와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이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또 다른 한 측면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제도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에 대한 구조적인 분할전략이기도 하다. ‘노사정위원회’는 그런 측면에서 정권의 통제기구로서의 자기위상을 담보하고 있다. 일찍이 노사정 3자의 ‘사회적 합의’ 방식이 구조화되어 있는 서구, 특히 독일에서는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 자본관계를 승인하고 그 아래에서 계급타협적인 정치를 구사해 온 사민당-산별노조, 그리고 개별자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본가단체가 3축이 되어 자본의 위기시에 코포라티즘4)을 체제유지의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삼고 있는 것5)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노사정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독일과 같은 식의 코포라티즘 외양을 가지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계급타협의 제도적/물질적 토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서구 수준에서의 노동자 참가라는 것이 애초 불가능한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봉쇄하는 차원에서 급조되었다.

노사정위원회가 자본측의 이해관철을 위한 들러리구실 이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드러나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미 형해화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에 의한 노동조합운동의 제도적 통제 가능성을 높여 내려는 시도를 취소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건설될 산별노조는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

산별노조는 중앙 집중성이 요구되는 조직이다. 만일,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한 노조운동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는 방향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현재 노조운동이 산별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표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자본측의 공세라면 앞으로 항상화 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위협을 방어하는 것 등과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산별노조가 아무리 계급적인 단결의 폭과 깊이를 다른 조직형식보다도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정세조건에서 산별노조로 조직체계가 바뀐다고 하여 곧바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 등 노조운동의 주체적 조건의 한계들이 돌파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러한 주체적 조건의 한계들을 돌파하기 위해 산별노조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므로, 그러한 목표에 걸맞는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제반의 사안들에 대하여 검토하고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에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일회성 혹은 단기간의 정책이라기보다는 현단계의 자본축적구조가 갖는 근본적인 위기로 인한 중장기적이고 항상적인 자본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필요성은 더하다.

산별노조는 그것이 어떻게 건설되느냐에 따라 노동자계급에게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산별노조운동은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역사와 노자관계에서의 특징에 철저히 기반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타국에서의 경험을 우리나라에서 적용할 때는 지금보다 더 훨씬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현재의 정세(<보론>으로 첨부)에 기반하여 먼저 산별노조건설운동의 내적 조건을 간략히 검토하고 산별노조운동이 갖는 의의와 건설 경로 및 방향을 총론적 차원에서 정리해 내는 것을 과제로 하였다.



2.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배경과 내적 조건


현재의 정세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구체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경제위기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그 동안 조직노동자를 구성하고 있던 정규직 노동자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대신에 급속하게 진행된 대량실업과 만성적인 고실업 상태가 지속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둘째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이 저하되는 한편으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의 구조적 격차와 분할이 가속화되고 있다.

셋째로,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초국적자본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노조운동을 자본운동에 부속시키려는 포섭전략이 집요하게 계속됨과 동시에 노동운동은 국내 독점자본뿐만 아니라 해외 초국적자본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넷째로, 1996년말~97년초 총파업투쟁을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 노조운동은 정권과 자본측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그 나름대로 투쟁을 조직하여 왔지만, ‘경제위기’와 함께 그전과는 달리 초강력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국가경쟁력 강화’ 논리와 이데올로기 공세의 벽을 넘지 못하였으며,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현 시기에 전국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런데, 핵심적으로 당면의 투쟁들 속에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힘을 받지 못해온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외적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로, 정치권력과 자본은 경제위기의 전개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고 있던 대량 실업사태와 극도의 고용불안정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노사정위원회’라는 제도적 틀 속에 가두어두고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자본측의 요구를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에서의 교섭을 통하면 뭔가 경제위기로 인한 광풍 같은 실직사태가 조정될 것 같은 환경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에 대해서는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탄압함으로써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투쟁과 교섭, 투쟁과 조직을 별개의 문제로 사고하도록 부단히 충동질하고 있다.

둘째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이다. 즉,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이 크게 훼손되고 노조활동을 비롯한 민주적 권리의 침해가 심각하여 그에 대한 저항이 매우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저항은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철저히 배제의 대상으로 가름되었는데, 그것은 경제위기가 본질적으로 자본(축적)의 위기이고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은폐하고 노동자․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총자본 차원의 전략이라고 하겠다. 주로 ‘국가경쟁력 회복’ 혹은 ‘고통의 분담’ 등의 외피를 쓰고 그와 같은 논리가 온갖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유포되었다.

셋째, 조직노동자를 포함하여 노동자대중은 눈앞에 닥친 실직사태와 실직위협 속에서 각 노동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를 위시한 노동조건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내 할 것을 강요받고 실직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의 구축을 통한 구조조정에의 전면 대항 성격을 갖는 전국총력투쟁을 한편으로 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의 교섭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부단히 동요하였다.6)

이 속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사업장에서부터 끊임없이 대응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나7) 전국적 차원에서의 투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투쟁들이 산별노조운동의 동력으로 조직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편 지난 11월23일 민주노총이 설립신고 필증을 수령함으로써 법률성 합법성을 획득하였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된 것은 그 동안 실질적으로 획득한 합법성을 뒤늦게 총자본이 형식적으로 인정한 결과이다. 이로써 두개의 내셔널센터, 즉 양대 노총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이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국면에 서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벗어 냄과 동시에, 그 동안 지녀 온 한국노총과의 결정적인 구별점인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하여야 하는 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동시에 국가와 자본이 그 동안 실질적으로는 민주노총을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결격사유’를 내세워 지연시키다가 그 ‘결격사유’에 관계없이 지금 시점에서 민주노총을 합법화시킨 것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정치적 의도, 핵심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민주노총을 옭죄는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통제전략을 변경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을 기본적으로 배제하면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실체를 인정해 오던 모순된 행태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정권은 우선, 합법화된 민주노총을 각종의 정책단위에 참가시켜야 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을 그 동안 각종 노동관련 정책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과 같은 수준에서 순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동시에 올 중반기부터 정권이 내세워온 ‘신노사문화’를 앞세워 민주노총의 ‘자주성, 투쟁성, 민주성’이 ‘구노사문화’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훼손시키려 할 것이다.

자본측도 민주노총에 대한 공식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측은 정치권력에 의한 ‘신노사문화’ 정책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1990년대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해 온 ‘신경영전략’을 본격화시킬 것이다. 기업별 단위노조의 운동을 근거로 한 민주노총의 운동은 그 한계를 점점 더 드러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건설을 통하여 위와 같은 조건과 한계들을 돌파하여 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 조건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최근의 산별노조 건설운동8)이 보이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산별조직 건설문제가 투쟁의 과제와 직접적인 연계속에서 제기되고 있지 못하다. 객관적으로는 투쟁과제 속에 조직건설의 문제가 연관되어 있지만 주체적으로는 투쟁과 조직건설 문제가 괴리되어 있다.

예컨대, 현시기에 노동자계급의 전국적인 공통의 요구로서 제기되어 있는 고용안정 쟁취 및 정리해고 반대를 둘러싼 투쟁은 1998년 5월 총력투쟁 이후에는 사업장 수준에서의 개별적 투쟁으로 밀려나 있었다. 해당 업종 수준에서의 공동연대투쟁이 조직되기도 하지만 그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99년 4월의 지하철노조 투쟁 때도 그러하고, 98년 7월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해고 사태가 빚어졌을 때도 그러하였다. 1998년도의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투쟁, 99년도의 한라중공업 투쟁 당시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가운데서, 산별노조 건설 요구 역시 현시기의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사안이지만 현장으로부터의 힘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공세는 시차가 없는 현실로서 전개되고 있는 반면 현장에서는 거기에 대응하는 즉각적인 투쟁의 조직 없는 산별노조 조직건설 자체가 다급한 현실로서 간주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 가운데서, 산별노조를 건설하면 노조운동이 현재의 자본의 공세로부터 노동자계급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인지 어떤지에 대한 상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의 주된 동력이 되어야 할 조직된 노동자들, 특히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운동으로서 산별노조운동이 전개되고 있지 못하다.

산별노조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금속산업연맹의 경우, 중앙교섭쟁취투쟁, 상경집중투쟁 등이 산별노조건설을 위한 투쟁으로서 별도로 설치되기도 하였고, 교육과 선전, 정책연구 등 중앙의 조직력을 최대한 투여하면서 산별노조운동을 추진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대규모 사업장들뿐만 아니라 중소영세사업장들까지도 산별노조운동을 소극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 이점을 잘 말해 준다.

셋째, 투쟁과제와 조직과제가 양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화경로가 조직형식의 변경을 위한 준비작업, 특히 각 연맹 상층 차원에서의 통합과 조직형태 전환에 집중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서의 경로는, 연맹간 통합 이후 단일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것과 함께, ‘소산업별(혹은 업종별)’ 단일노조 건설을 통한 대산별노조 건설 지향으로 대별된다. 2000년 10월 단일 산별노조 건설을 예고하고 있는 금속산업연맹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전자에 속하며 1998년 창립한 의료산업노조를 포함하여 94년 창립한 과학기술노조와 1998년~99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사무전문직 업종연맹들 내의 ‘소산별노조’ 건설운동들은 후자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대학노련에서의 국립대학노조, 사무금융노련에서의 증권산업노조, 공익노련에서의 정부출연연구기관노조 등이 후자에 속한다.9)

넷째, 기업별 노조운동이 체화되어 있는 현재의 노조운동의 내용과 틀이 그대로 산별노조운동으로 이관되고 있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찍이 소산별 단일노조 형태로 전환하였던 과학기술노조의 경우, 여전히 사업장 단위의 지도부가 온존하고 있고,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통합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연맹에서 단일노조로 이행한 대학노조의 경우 현재 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 의료산업노조의 경우 아직은 평가하기에 이른 측면이 있지만, 현재는 산별노조라기 보다는 업종별 노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병원노련과 병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당분간은 기업별노조체계가 조직형식상으로도 병존할 것으로 생각된다. 금속산업연맹의 경우도 산별노조(시안)에서 대규모사업장을 그대로 지부로 하는 안이 채택되어 있다.

요컨대 산별노조를 건설한다고 하여도 현재의 노조운동 관행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산별노조운동이 전개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별 체계’의 극복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 하나를 새로이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거기에 핵심적으로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투쟁과 조직의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어 있는 것이다.

다섯째, 현재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는 법제도적으로는 걸림이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하여 허용되고 있지 않다. 요컨대 저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산별 교섭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현재 산별노조건설운동에서 산별노조 쟁취를 위하여 산별 중앙교섭 쟁취를 먼저 설정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돌을 놓는 순서가 엇바뀐 것이다. 이것은 계급적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것을 원치 않고 따라서 교섭에 나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권력과 자본을 더욱 오만하게 만드는 반면 노동조합을 매우 궁색하게 만든다. 노동조합을 궁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를 또한 궁색하게 만든다.

최근 3년 동안의 노조운동 과정은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에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현장에서 고용안정투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 투쟁을 전국적인 쟁점으로 일구어 냄으로써 산별노조 건설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투쟁들이 산별노조건설운동과 분리되는 그 순간 동력은 기업 울타리에 갇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 순간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제기된 산별노조 전환문제가 단사노조를 오히려 기업별노조의 한계에 가두고 그로 인하여 거꾸로 다시 산별노조건설에 힘이 실리지 않고 그래서 또 ‘기업 이기주의’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처럼, 이를테면 단위 사업장에서 구조조정 반대 혹은 고용보장 투쟁이 촉발되고 있을 때, 그것이 단위 사업장 투쟁이라는 점 때문에 ‘기업별노조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그 투쟁과는 별도로 산별노조건설 투쟁을 새로이 설치하거나 하는 것은 산별노조건설의 대중적 동력을 이끌어 내어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별노조를 건설하려 하는 목표와 멀어지는 길이었다.

이 점에서 볼 때 ‘기업별 노조의 한계 때문에 산별노조가 필요하다’거나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가 산별노조건설에 장애이다’ 라고 현단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장애요인들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 그 동안 연대투쟁을 조직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노조운동 역사에서 볼 때 그 자체가 장애 요인이라기보다, 이미 있는 그러한 한계들이 산별노조 건설의 경로로서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이라는 것의 핵심적 맥락의 간과와 산별노조 건설의 중심 동력이 현시기의 노동자계급의 전국적인 요구 속에 있다는 점의 간과에 의하여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일례로 부도사업장 한라중공업 노조의 70여일 이상에 걸친 전면파업투쟁은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도 현시기의 극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서, 기업별노조의 한계 혹은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 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운동들이 지금 현재에도 의연하게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바로 그 점에서, 그러한 투쟁의 동력들이 산별노조운동의 핵심 동력으로서 서게 되는 것이 산별노조운동의 시대를 열어 가는 열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민주노총은 산하 연맹들의 산별노조건설운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의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조운동을 정치적으로 강화하고 지금까지 연맹별로 힘겹게 추진하여 온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과제이다.


3. 현시기 산별노조건설운동의 의의


1) 산별노조의 조직원리와 운영방식


산별노조는 다음과 같은 조직원리와 운영방식으로 인하여 객관적으로 우리가 현 시기에 원하는 조직체가 될 가능성을 어떤 조직형태보다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첫째로, 산별노조는 개인가입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냐 아니냐, 사업장이 작으냐 크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등등에 관계없이 전체 노동자가 조합원으로서 가입대상이 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자본측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에 대하여 전국적이고 전산업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가 있게 된다.

둘째로, 첫번째와 연결되지만, 산별노조는 비고용노동자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기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사업장에서 해고되면 노조원 자격이 자동으로 소멸되지만 산별노조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노동악법조항으로서 노동운동의 연속성과 발전을 가로막아 왔던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유무’의 문제 같은 것은 당초 발생되지 않는다. 지금도 단서조항을 붙여 유지되고 있는 ‘3자 개입 금지’도 전면적으로 무력화시켜낼 수가 있다.

셋째로, 산별노조는 조직운영에서 고도의 중앙집중성을 요구한다. 재정을 포함하여 조직 전반의 중앙집중성은 개인가입원리 및 비고용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조직의 운영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이 관료화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므로 현장으로부터의 의사소통구조의 민주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의사소통구조의 민주성은 처음부터 어떤 제도를 도입하여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현장에서 일반 조합원의 적극적인 활동이 그것을 보장할 것이다.

넷째로, 산별노조에서는 ‘노조활동가’의 개념이 도입된다. 지금의 노동조합 구조에서는 각 사업장마다 간부들이 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조직활동가가 필요해진다. 즉 산별노조는 전국적인 조직이므로, 전국을 범위로 활동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또한 산별노조는 기업 혹은 사업장 단위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테면 거제도의 어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조합원을 조직하러 전국을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다섯째로, 산별노조는 위와 같은 점들로 인하여 다른 어떠한 조직형태보다도 처음부터 사회적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진다. 산별노조는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조직으로서, 대중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을 열어 준다. 산별노조가 갖는 ‘정치성’은 산별노조의 ‘제도개선투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산별노조의 정치적 활동 범위는 대중적인 정치파업에까지 확장된다.


대개 이렇게 조직되고 운영되는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 전국적인 집중적 투쟁과 사업의 가능성, 노동자간 다양한 분할과 격차를 극복할 가능성, 결정적으로 정치권력과 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 전선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가능성, 대중적 정치활동의 활성화 가능성 등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단지 가능성이라는 점을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능성들이 현실화되는 것은 지금의 조건에서 이와 같은 조직원리를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산별노조운동을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사업장별로 조직되어 있는 조직노동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이들의 동력을 조직하는 것, 이들이 산별노조 건설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노조 집행간부까지도 ‘개인가입’의 조직원리가 갖는 산별노조로서의 질적 차원이 어딘가 낯설고 선뜻 어떻게 달성될 수 있을지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본격적인 운동으로서 노동자계급 전체를 단일 전선으로 포괄할 수 있는 그러한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가야만 할 시점이다.



2) 노동자계급의 총노동전선 강화


최근 수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정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전략은 노동자계급 전체와 그 가족까지 포함한 전체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의 내용들이 매우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은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총자본측의 그러한 공격은 전국․전산업에 고루 미치고 있고 경제위기를 매개로 하여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를 들이대며 자본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 이 점은 작건 크건 규모에 관계없이 이 과정에서 벌어진 현단계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모두 총노동의 계급투쟁적․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과 자본의 그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일회성으로 지나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본측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구조조정의 일상적 전개’를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가만 놓아두었다가 한 차례씩 ‘구조조정’을 하려니까 노동자계급이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이를 실행하는 등 ‘여러 가지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동시에 외국자본의 국내경제 지배력 강화에 따라 이제는 국내독점자본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써먹어 보면서 획득한 노동통제의 ‘선진기법’을 직접 적용하려 드는 해외 자본들이 당초부터 ‘투자의 자유 보장’을 조건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정세는 노동자계급에 대하여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수준의 총노동 전선을 시급히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노동자계급의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대응이 일상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조직체를 건설할 필요성이 나날이 증대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을 통하여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노동조합운동의 단일전선을 형성해 내는 것, 전국적인 내셔널센터를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총노동전선을 공고히 하는 것, 거기에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가 있다.



3)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강화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민주노총 합법화 등 노조운동 내부 조건은 민주노조운동이 전국적이고 계급적으로 강화되어야만 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특히 주체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조직적 한계를 민주노총은 산별노조건설운동을 적극적으로 추동함으로써 뚫어 나가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이 그간 지녀 온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강화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대중적인 정치활동의 활성화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할 때, 산별노조건설운동은 그 조직원리로 보아 노조운동이 처한 현 지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을 정치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점에서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실질적인 내셔널센터로서의 자기 역할을 발휘하여 민주노조운동이 정치적으로 강화될 수 있도록 산별노조운동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산별노조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노동자 정치운동의 방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별노조운동은 전국적인 내셔널센터의 역할 강화를 통하여 각각의 산별노조로 노동자계급이 분산되는 사태에 대비하고,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조직으로서의 자기자신의 강점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역량 강화로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



4) 노조운동 주체의 조직혁신과정


현시기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질적 차원에서 보면 그 동안의 민주노조운동이 지녀 온 총노동전선 형성과 일상적 대응에서의 한계들을 돌파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 투쟁이다.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 혹은 직종별 노조 등과 조직의 구성원리 및 운영을 완전히 달리한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은 나면서부터 기업별노조의 형태를 취하여 왔고 따라서 산별노조의 질적 내용이 체득되어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운동과정은 기업별 노조의 형태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하나 하나의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 자체가 조직을 쟁취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기업별노조를 하나하나 쟁취하면서 지역과 업종을 넘어 전국적․계급적 단결을 이룩하고 그 동력을 무기로 하여 전국적으로 투쟁을 조직하여 왔다. 이제는 산별노조건설운동을 통하여 노동조합운동의 질적 수준을 한단계 높여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가 건설할 산별노조의 모든 내용을 우리의 정세조건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방향에서 설정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다른 나라들에서 산별노조운동의 사례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범례에 불과하다. 노자간의 힘관계는, 동일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노동운동의 역사와 투쟁 과정, 정치권력의 성격과 자본축적 구조에 의하여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산별노조가 필요한 이유는 현재의 정세조건에서 명확히 지시되고 있다. 그것은 현재 민주노조운동에는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단결의 무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를 그 동안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현재 속에서 어떻게 건설해 낼 것인가의 문제는 철저하게 우리의 운동 조건 속에서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4. 산별노조건설의 방향


1) 산별노조 건설의 경로와 동력


자본축적구조가 지구적 차원의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운동에 의하여 재편일로에 있는 현시기에 주어지고 있는 객관적인 정세조건과 민주노조운동의 주체적 현실은 노동자의 투쟁과 조직에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가 어떠한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남아 있다. 몇 가지 점을 먼저 검토하면서 이하에서 산별노조 건설의 기본 방향을 제출하려고 한다.


(1) 현단계 산별노조운동에서 ‘투쟁을 통한 조직건설’이라는 대의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명제이다.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투쟁과 조직의 관계는 언제나 서로 맞물려 있었으며, 상호 규정력을 가져왔다. 우리의 노조운동사에서 ‘투쟁을 통한 조직건설’의 전형은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일 것이다. 그 당시의 노동조합 결성은 그 자체가 노동자계급의 요구와 조직건설투쟁이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의 요구는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상태를 거부하는 요구, 그리고 자주적인 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 확보가 그것이었으며, 바로 그 점이 한국노총과 구별하여 민주노조운동진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가 지금 시기의 산별노조 건설에서는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가? 앞의 정세분석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현재 노동자계급이 전국/전산업/전계급에 걸쳐 공동으로 당면해 있는 것은 심각한 고용문제와 그 동안 쟁취해 온 민주적 권리의 박탈이며, 전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자본의 경쟁력 논리이다. 이에 대한 공동의 요구, 그것은 일차적으로 ‘고용안정 쟁취’, 나아가서는 노동시간의 단축, 재벌체제의 명실상부한 해체와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의 자유 쟁취 등일 것이다. 이러한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공동의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바로 산별노조운동의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현재의 조건에서 대규모 사업장의 조직 노동자들은 산별노조건설을 적극적으로 추동해 나가야 하는 주체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위하여 동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추동하는 주체인 것이다. 이들이 단위 사업장 하나만으로도 ‘막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별노조 건설에 미온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바로 산별노조 건설의 주체라는 것이 투쟁과정 속에서 체득되지 못하는 데 따른 것이다. 그 답은 바로 1997~1999년의 과정 속에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금융노동자들의 투쟁, 현대자동차 투쟁, 만도기계 투쟁, 기아자동차 투쟁, 조폐공사 투쟁, 한라중공업 투쟁 등이 산별노조건설운동 속에 자리매김되고 있는지, 투쟁한 노동자들이 절실하게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체득하도록 그 투쟁들이 조직되었는지가 ‘대기업노조 이기주의’ 등을 말하기 전에 검토되어야만 한다.

산별노조 건설은 단위 사업장 집행부의 결단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산별노조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운동이 뒤따를 때 조합비의 문제라든지 기타 등등의 문제들이 해소될 것이다.


(3) 한편, 노조의 조직률 하락 문제가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으로 크게 제기되고 있는데, 정리해고의 여파도 있지만 사업(장) 폐쇄 등에 따른, 특히 중소영세사업장들의 부침에 따른 기존 조직 노동자의 감소로 인한 것이 크다. 그런데 조직현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인 이상 사업장은 거의 대부분 조직되어 있고 일정한 대응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절대다수의 중소영세사업장들, 투쟁하려 해도 조직이 없는 곳들의 노동자가 조직되는 것에 있다. 앞에서 검토하였지만, 산별노조는 객관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부문의 노동자를 광범위하게 조직할 수 있는 조직형태이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건설되었다고 하여 곧바로 미조직 노동자가 산별노조 조합원으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10)

산별노조가 미조직노동자를 대대적으로 조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4) 마지막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각 산별(업종별) 연맹들의 조직통합운동들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내부적인 정비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이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의 과정으로 조직될 때 산별노조운동은 대중적인 힘을 받으면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2) 산별노조 건설의 방향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산별노조 건설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산별노조 건설을 눈앞에 둔 현단계에서 그간의 민주노조운동이 확보해 온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주성, 노조와 노동자계급 내부와 민중 전체에 대한 민주성, 그리고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에 터한 계급성과 투쟁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역과 업종을 뛰어넘어 형성해 온 전국성과 계급성이 산별노조 건설을 통하여 질적으로 한 단계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역조직을 설정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산별노조운동에서는 그 조직원리에서도 이미 예견되는 바이지만, 지역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역은 실질적인 투쟁의 장소이며, 미조직노동자의 실질적인 조직 주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조직은 산별노조의 중간 허리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산별 중앙조직이 하향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사업장의 현장 조직은 조합원의 의사를 아래로부터 조직할 수 있는 상향식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연계지우는 수평적 조직으로서 지역조직이 설정될 수 있다. 또한 지역조직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상향식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의 노조운동 여건으로 볼 때 각 연맹에 따라 지역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지역에 조합원이 없는 곳은 없다. 지역조직을 단기간내에 건설하기 어려운 연맹들의 경우 민주노총 차원에서 연합적으로 지역조직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앞으로 건설될 산별노조는 노동자계급의 전국적/전산업적 투쟁역량을 각각의 산업별 차원으로 가두는 방향이 아니라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방향,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강화를 가져오는 방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산별노조건설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내셔널센터로서의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산별 중앙조직의 운영원리 속에서 배워 올 점이 있다.

산별노조는 (정답이 어디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조직원리로 보아, 조합비에 대한 권한이 산별 중앙에 있는 조직이다. 조합비를 중앙으로 올려서 중앙이 다시 아래로 내려보내는 구조의 조직이다. 또한 산별노조는 교섭권과 체결권 뿐 아니라 쟁의권도 중앙이 결정하는 조직이다.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은 그 점들을 의미하고 있다.

산별노조가 이러한 조직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나갈 때 각각의 산별노조는 총연맹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가?

독일 등 서구 산별노조의 특징은 산별노조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서구에서의 산별노조운동(특히 독일의 경우)은 노동자계급의 전국성과 계급성을 각각의 산업별 조직 울타리 안에 가두어둠으로써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별 경제주의11)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산별 ‘부문주의’라고나 해야 할 서구의 산별노조운동의 역사는 경제주의 그 자체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경계되어야 할 대상이다. 물론 그들의 오랜 노조운동의 경험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로서의 내용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의 운영방식과 사업내용들 중에는 우리가 배워와야 할 기술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조운동’을 양적으로 확대해 온, 근 10여년 간의 노동조합운동은 지금 그것을 질적으로 한 단계 높여 내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것은 바로 산별노조 건설이 서구에서처럼 산별‘부문’주의에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산별로 조직된 계급성이 전국성과 정치성을 활발하게 담보해 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내실을 확보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총연맹을 강화하는 산별노조운동은 총연맹과 산별 중앙간에 권한의 적절한 분산을 기본 방향으로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산별노조의 강점을 최대화하는 것은 현시기 노동운동에서 핵심적 과제인 만큼 가능하면 크게 조직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이다.

현시기에 자본의 운동은 매우 급속하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산업 및 업종간 자본이동과 철수/투자의 속도가 점차로 빨라지고 있다. 자본간 경쟁의 격화가 그것을 더욱 부추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은 범위로 조직할 경우 자본의 이동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조직체가 되기 쉽다.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서 조직할 때 자본의 이동에 좌우되거나 자본측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노조운동이 왜곡되는 사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업종별, 직종별, 등등의 차이문제인데, 그 점은 부문별 교섭카르텔 등 교섭체계를 달리 모색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제부터의 산별노조건설운동은 양대노총시대에 전개되게 되었다. 합법화 시대에 돌입한 민주노총의 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집중적인 순화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은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그렇다면 양대 노총 시대에 산별노조운동이 취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핵심적으로는 민주노총을 내셔널센터로 강화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을 정치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국의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조직의 주체로서 서 나가는 방향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조직세의 문제에 집착하거나 상층 차원에서 형식적인 통합논의를 제기하는 것은 조직편의적인 사고로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내용적 확장, 그 과정을 통한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과정을 통하여 민주노총 산별노조운동이 한국노동조합운동의 실질적인 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여 갈 때 전국적인 민주노조운동의 내용과 조직세의 전망도 제대로 열릴 것이다.


(5) 결론적으로, 현시기에 어떤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지, 그리고 지향하는 산별노조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경로를 통하여 핵심적인 동력을 만들어내고 대중적으로 힘있는 조직건설운동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더 많은 고려들이 필요하다. 산별노조가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고 전국적․계급적 단결의 틀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그 내용을 채워 나가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운동 주체의 활동인 것이며, 지금이 바로 그러한 내용들을 채워 나가는 활동들이 필요할 때이다.



<보론> 현 정세와 산별노조운동의 조건



1.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의 경제위기


70년대 말과 80년대 말에 각각 경제위기를 경험한 한국경제의 97년의 위기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경제 전체를 뒤흔들었는데, 이는 80년대 중반기를 지나면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팽창한 한국경제의 규모 확대와 함께 90년대 중반기의 시점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요구에 의하여 구조재편 압박을 심대하게 받게 된 점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1995년 12월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은 70년대 중반부터 만성적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경 바깥에 있는) 내부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12) 따라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전개되었다.

오늘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있는 세계자본주의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노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과잉축적모순의 심화와 함께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하여 가속화되고 있다.13) 동시에, 각국간의 불균등 발전의 골은 더욱 심해진 와중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초국적자본에 의하여 갈수록 세계시장 통합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초국적자본의 운동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는데,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은 가장 ‘경쟁력 있는’ 자본으로서 가장 지배력이 큰 초국적자본의 이윤추구논리에 입각하여, 그간의 축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거대한 자본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는 시장개방과 탈 규제를 대내적으로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수탈구조의 강화 맥락에서 조직적 저항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제하고 무력화시키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개방요구는 후발 자본주의국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선발자본주의 국가간에도 격렬하게 나타나는데, 타국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으로 개방을 요구하고 자국 시장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면서, 국가간 시장개방과 보호주의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국경 없는 경쟁’ 혹은 ‘무한경쟁’이라는 것의 근원은 이렇게 격화일로를 걷고 있는 자본(특히 초국적자본)간 경쟁의 한 표현이다. 전세계적으로 자본간 및 총자본으로서의 국가간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 한편, 국가간 자본 및 상품 거래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한 나라의 경제가 파산상태에 이르면 타국의 경제도 타격을 입게 되는 위기의 연쇄고리가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전개는, 한국과 같은 후발(혹은 후후발) 자본주의 국가에게는 무조건적인 대외개방 압력, 덤핑판정 공세 등으로 밀려오게 되었지만,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 시장에 대한 보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14)

한국경제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냉전논리에 입각하여 급속한 성장을 구가하여 온 독점자본(재벌) 중심의 한국자본주의가 그 성장을 담보해 주었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 상황에 따라 재편요구를 받게 된 것의 가장 폭력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그동안 외부로부터는 ‘개방’요구, 내부로부터는 ‘세계화’로 강조되었던 대외개방문제15)를 통해 살펴보자면, 요컨대 세계자본주의의 금융투기장화 과정 속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문제가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의 ‘써비스 시장 개방’ 항목에 포괄됨으로써 경제 전체가 초국적자본의 투기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내부적으로는 그 시기에 이미 고정화되어 있던 재벌형 독점자본 지배의 축적구조가 그 대외의존성으로 인하여 초국적자본의 개방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던 점에서 경제위기의 가능성은 고조되고 있었다. 게다가 주요 수출산업에서의 과잉축적과 독점자본의 투기적 운동이 결합되어 재무구조는 급격히 악화되어 있었고, ‘재벌’의 특혜․비리를 통한 사업방식이 교란되면서 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독점재벌이 잇달아 부도사태에 휩싸이게 되면서 위기가 심화되었다.



2. 국내 총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구조조정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정권이 내걸었던 ‘세계화’와 ‘신노사관계 구상’은 앞에서 말한 조건 속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에 의하여 기도된 한국자본주의의 재편요구를 압축하여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국적자본의 압력을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이 피해 갈 수 없는 조건에 있다는 점은 경제의 대외의존구조에 의하여 이미 주어진 조건이었기 때문에 국내 독점자본은 경제개방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국내 독점자본도 해외진출을 적극화16)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개방 논리 그 자체가 독점자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의 텃밭에서 해외자본과 경쟁하여 시장을 내주어야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국내 독점자본은 김영삼정권의 ‘세계화’ 구상을 “준비부족”이라고 공격하는 한편, 개방은 그들에게 대세였기 때문에 초국적자본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밀릴 것은 뻔하였으므로 노동자를 쥐어짜서 그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데로 집중하게 되었다. 정치권력도 그 점에서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들을 핵심점으로 노사관계‘개혁’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소위 ‘신노사관계 구상’은 독점자본의 지지 속에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가 만들어지고 초국적자본의 개방 압력에 대한 일종의 ‘최선의 준비’로서 노동시장‘유연화’를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김영삼정권은 ‘날치기 통과’까지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수월하게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를 지켜주면서 초국적자본의 무차별적인 진입을 일정하게 막아내고 노동자와 민중을 국내외독점자본의 착취와 수탈에 순응하도록 만들려던 노동관련 법 날치기 통과는 결국, 노동자계급의 밑으로부터의 완강한 저항에 의하여 96년말~97년초 총파업투쟁에 의하여 저지당하게 되었다.

이 때 노동자계급의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는 세계에서 유래 없는 가장 정당한 노동자의 투쟁으로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총파업투쟁은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의 교활한 공작에 의하여 결국에는 정치권력의 명줄을 이어주고 독점자본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게 된다. 노동자계급 대중이 핵심적으로 거부하고 투쟁으로 맞선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되고 변형시간제도 부활되었다. 정리해고제 2년 유예 대신에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은 3자개입 금지 조항 및 정치활동 금지 등을 일부 개정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3년째인 오늘날 명백히 증명되었듯이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조합의 활동기반 자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동력을 사그러 들게 하고 전 사회의 이목을 노동자의 투쟁으로부터 떼어놓은 한보그룹 부도사태가 터졌다. 국내 독점자본의 재무구조는 잘 알다시피 형편없이 부실하다. 정치권력은 이를 기화로 반전을 노렸을 법 하지만 (그리고 한보그룹 노동조합이 ‘노사화합 무쟁의 회사 살리기’ 선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보그룹은 대전충남지역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결국 부도처리 되었고(그리고 최근에 해외매각 되었다) 연이어 삼미특수강, 기아자동차 등으로 연쇄부도 고리를 형성하면서 정치권력이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노태우정권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금융시장 개방은 김영삼정권에 이르러 본격적인 일정에 오르게 되어 97년이 되면 이미 단기자본시장까지 외국자본의 투기대상이 되기에 이르는 등 해외 자본의 국내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동시에 국내 독점자본은 연쇄부도사태를 내고 있었다. 정치권력에 기대어 육성되고, 권력의 힘으로 유지하면서 거대한 공룡이 되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독점자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해외직접투자액을 늘리면서 ‘세계는 넓다’고 외치는 한편으로 OECD에 가입하면서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외쳐대던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허둥대기 시작하였다.

9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11월까지 이와 같은 사태가 계속되었으며, 결국에는 초국적자본의 이해대변체인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함으로써 IMF 관리체제를 자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에게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경쟁력’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지만 앞에서 살펴본 신자유주의의 성격이 분명하게 알려주듯이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하등의 정당성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김영삼정권의 ‘신경제정책’(1993)과 ‘세계화 구상’(1994)은 80년대 후반기의 경제위기에 대한 총자본 차원의 대응이며, 핵심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독점자본의 입장에 기반하여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 강요에 집중하다가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저항 속에서 자멸의 길을 걸었고, 독점자본은 정치권력의 ‘무능’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권력의 우산에 기대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초국적자본의 개방요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된 상황에서 무너져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97년 대선을 통하여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게 되었는데,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정권이 벌여 놓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IMF에 기대어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으로 경제위기에 대응하면서 경제구조의 재편(‘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김대중정권은 먼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선행조치를 취하였다.

첫째로, 노동자계급이 지난 96말~97초 총파업투쟁과 같은 전국적인 투쟁의 조직화를 봉쇄하고자 조합주의(코포라티즘)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둘째로, ‘노사정위원회’에서 지난 총파업투쟁 때 2년 유예시켰던 정리해고제를 즉각 실시하도록 하는 한편 그 당시에는 법제화 명부에만 올랐을 뿐 실행하지 못하였던 노동자 파견제 법을 제정하도록 만들었다. 셋째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독점자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체‘개혁’을 하도록 ‘재벌개혁 5대 원칙’을 승인하게 만들었다. 넷째로, 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외환고갈로 인한 단기외채 상환능력의 부재에 대응하기 위한 ‘외자유치’ 정책을 포함하여 위의 모든 사항들이 초국적자본의 이해관계와 하등의 갈등소지가 없었다. 다만 국내 독점자본(재벌)은 위 세번째로 인하여 불만의 소지가 있었지만, 김영삼정권기에 이미 난장판이 되어 어떤 재벌이 보아도 명백한 ‘경제위기’가 그 불만을 봉쇄하였다. 그리고 IMF의 요구에 맞추어 초긴축의 금융 및 재정 정책을 통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대량의 부도사태와 대량실직사태를 오히려 증폭시켰다.

98년 4월~6월까지 이와 같은 사전정지작업이 진행되었고 동시에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잡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노동자계급의 저항봉쇄와 재벌구조 개편에 있었다.17)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산업) 구조조정이란, 지배적 규정성을 발휘하는 자본분파의 이익이 현저히 위협에 처하게 되는 위기의 시기에 그들 지배적 분파의 위기가 총자본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총자본의 국가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흔히 ‘경제구조조정’ ‘산업구조조정’ ‘기업구조조정’ 등으로 구조조정 앞에 어떤 형용어가 붙음으로써 그 의미가 축소 혹은 왜곡되는데, 어떠한 형용어가 붙든지 자본주의 경제에서 구조조정의 본질은 자본운동의 근본적인 모순에서부터 배태되고 발생되는 자본운동에 대한 장애요인들을 자본의 입장에서 무마하고 해소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 점에서 처음부터 노동자계급과의 타협이나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었고, 바로 그 점에서 ‘노사정위원회’가 허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은 경제구조(=자본축적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80년대부터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산업화와 함께 독점자본의 경제지배력이 더욱 증대되는 한편으로 중소영세자본의 재하청계열화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국내진출 본격화로 인하여 외자의 경제 지배력이 크게 증대하고 있으며, 국내 소득격차는 갈수록 심화되면서 고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노동운동의 객관적 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점을 이하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3. 산업구조의 변화와 경제의 서비스화


노동자계급의 분포와 존재 양태는 다분히 경제 및 산업의 구조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산업구조는 정치권력이 육성하고자 한 산업을 중심으로 기형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동시에 독점자본도 애초 산업별 영역을 가지고 구획되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을 중심으로 육성되었다.18)

산업구조의 변화를 먼저 살펴보자.

우선, 산업연관표 상의 생산비중(경상가격 기준)을 중심으로 85년부터 95년까지 산업구조의 변화를 볼 때, 제조업의 생산비중은 1985년에 49.8%에서 1995년에는 47.6%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같은 기간 서비스업은 29.6%에서 34.1%로 늘어나고 있다(<표1> 참조).


<표1> 산업구조 변화 추이I - 생산 비중                (단위: %)

 

농림어업

광업

제조업

전력?가스?수도 및 건설업

서비스업

전 산업

1985

7.5

0.7

49.8

10.4

29.6

100

1990

5.1

0.5

49.4

12.2

30.5

100

1995

3.8

0.4

47.6

11.6

34.1

100

주: 경상가격 기준 생산액 비중.

자료: 한국은행, 「'85-'90-'95년 접속불변산업연관표 개표」, 1998.12.


경상GDP의 산업별 비중을 통한 산업구조 변화의 추이는 <표2>와 같다. 1970년 10.6%를 점하였던 제조업은 1988년 32.5%로 정점을 이루기까지 급속하게 성장하다가 그 이후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97년에는 28.9%까지 하락하였고, 98년에는 경제위기하에서 30.7%를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서비스업의 경우 1970년 59.3%에서 1998년 64.1%로 증대하였다.


<표2> 산업구조 변화 추이II - 대GDP 비중             (단위: %)

 

1970

1980

1990

1998

농림어업

     28.4

      15.1

8.5

4.9

광업

1.8

1.5

0.8

31.0

제조업

     10.6

22.1

     28.8

30.7

서비스업

     59.3

61.3

     61.9

64.1

주: 1) 경상GDP 대비 점유율. 2) 서비스업에 S.O.C포함  /자료: 통계청, 한국통계월보.

<표3> 공업구조(제조업)의 변동                          (단위: %)

 

1960

1970

1980

1990

1997

경공업

    72.4

   60.8

    46.4

    34.1

    22.8

중화학공업

    26.9

   39.2

    53.6

    65.9

    77.2

     화학, 석유

     9.0

    7.4

    11.6

     6.4

    14.1

     철강

     4.9

    1.2

     5.9

     7.5

     7.0

     전기, 전자

     -

    3.8

     9.0

    14.3

    16.7

     자동차

     3.6

    8.3

     6.1

    12.9

    18.1

  자료: 통계청, 주요경제지표.; 산업자원부, 1998.7.


제조업 내부 구성은 80년부터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비중이 역전되어 1997년 현재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77.2%에 달하고 있는 반면, 경공업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표3>).

취업자 비중을 통하여 산업구조 변화 추이를 보면 <표4>와 같다. 1998년 현재 취업자 전체는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 68.2%, 광공업 19.6%, 농림어업 12.2%로 분포되어 있다.


<표4> 산업구조 변화 추이III  - 취업자 비중            (단위: %)

 

1970

1980

1990

1998

농림어업

     50.5

     24.0

     17.9

     12.2

광업

      1.1

      4.9

      0.4

      0.1

제조업

     13.2

     21.7

     27.2

     19.5

서비스업

     35.1

     43.4

     54.5

     68.2

    자료: <표2>와 동일.


다음으로, 경제의 서비스화 현황을 살펴보자. 경제의 서비스화란 생산․소비․고용 등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19)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본집약적 산업으로의 이동, 요컨대 자본의 고도축적이 낳는 현상이다.20)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수도 및 건설업을 제외한 서비스산업21)이 1998년 현재 명목GDP대비 52.7%, 취업자의 59.8%를 차지하고 있다.22)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경제의 서비스화는 정보통신 서비스(우편, 전신전화, 부가통신, 방송)와 금융․보험 서비스(금융기관, 금융 및 보험관련), 정보처리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건축․토목공학, 기타 공학 관련, 컴퓨터 관련, 광고, 여론조사 및 뉴스공급), 교육․연구․의료 서비스(교육기관, 연구기관, 기업내 연구개발, 의료 및 보건) 등 이른바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급신장과 제조업 내 서비스업의 외주화(아웃소싱)의 진전에 따라 제조업 생산에서 서비스산업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기 때문에 급진전되고 있다. 요컨대 경제구조가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옮아가고 있고 그것은 주도하고 있는 것은 첨단산업 연관 서비스업이라고 보는 것이다.

서비스산업은 1980년에 명목 GDP의 43.9%에서 1990년에 48%, 1993년에 50%를 넘어섬으로써 90년대 들어 급속히 팽창하였다. 서비스산업 취업자 증가폭은 더욱 급격하다. 1980년에 39.5%에서 1990년 46.1%까지는 대GDP 비중의 아랫선에 위치했으나 1993년부터는 역전되어 매우 급속하게 증대하기 시작해 1998년에는 59.8%를 기록하였다(<표5> 참조).

<표5> 서비스산업의 비중 추이                            (단위: %)

 

1980

1985

1990

1993

1995

1998P

대 명목GDP

43.9

45.3

48.0

50.5

51.3

52.7

대 취업자

39.5

44.5

46.1

52.0

53.0

59.8

주: 각주 16)의 업종을 포괄한 서비스 산업의 비중임.

자료: 한국은행, 산업연관표 및 국민계정 각 년호.;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연보.; 한국은행(1999)


과거에도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50년대부터도 40%대) 예컨대 도소매업 및 운수통신 등 전통적인 서비스산업 위주였다가 서비스산업 내에서 그 부문들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그 자리를 ‘첨단’쪽이 치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노동집약적’ 서비스부문에서 ‘자본집약적’ 혹은 ‘지식집약적’ 서비스부문으로의 이동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서비스산업 증대는 80년대 후반기부터의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독점자본의 금융 및 언론계 진출 붐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정보통신 및 컴퓨터를 중심으로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정보통신, 정보처리․컴퓨터, 금융․보험의 경우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는 도소매, 운수․보관 등의 생산비중은 감소추세로 나타나고 있다(<표6> 참조).


<표6> 서비스산업 주요업종들의 총산출액(비중) 추이 (단위: 10억원, %)

 

1980

1985

1990

1995

정보통신

782

2,429

5,072

11,869

정보처리?컴퓨터

635 (2.4)

1,815 (3.1)

5,191 (4.1)

14,833 (5.2)

교육?연구?의료

  2,489 (9.5)

6,711 (11.3)

13,832 (11.0)

37,035 (12.9)

금융?보험

  2,100 (8.0)

4,136 (7.0)

13,166 (10.5)

32,283 (11.3)

도소매

(25.4)

(22.4)

(22.0)

(17.3)

운수?보관

(18.8)

(16.4)

(12.6)

(11.6)

주: 1) ( )안은 서비스산업내 점유율 /자료: 한국은행, 산업연관표 각년도.

이러한 산업 및 경제구조의 변화는 경제규모의 확대와 함께 진행되는 것이므로 어떤 산업의 비중 감소가 그 산업의 절대적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에 있던 산업부문들이 지금도 있고 거기에 많은 취업자들이 존재하지만 전체 경제구조에서의 비중이 낮아질 뿐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취업형태와 생활형태의 괴리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전통부문의 축소와 첨단부문의 확대란 노동집약에서 지식(혹은 자본)집약으로의 이동이기 때문에 경향적으로 전통부문 취업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첨단산업쪽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첨단부문 확대는 자본집약부문의 확대이므로 전통부문에 취업하고 있던 인구를 일부밖에 흡수하지 못하고, 전통부문 취업자의 인구밀도가 높아지거나 거기에서 방출된 노동력은 실업 및 반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산업예비군(실업․반실업자)의 규모가 전 사회적으로 누적적으로 증대되어 간다.

다음으로, 자본집약산업으로의 이동과 함께 사회의 생산물을 더 적은 사람들이 생산하게 되고 그것을 가공하고 유통시키는 부문의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되고, 따라서 상품의 직접적 생산영역에 취업하는 인구의 비중이 줄고 상품의 유통과 소비영역에 취업하는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동시에 상품들의 ‘부가가치’가 계속 높아지게 된다. 유통과 소비영역의 특징상 취업인구의 유동성은 빨라지며 동시에 소비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형성과 소비패턴 및 소비수준의 변동이 뒤따른다.

가계지출을 통하여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면,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서비스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27.1%에서 1998년에는 58.9%를 기록하였으며, 같은 기간 무역(상품)에서 서비스교역의 비중도 15.0%에서 21.9%로, 금융기관 총 대출에서 서비스산업 대출은 15.5%에서 23.1%로 늘어났다.23)

요컨대 가계소득의 평균적인 수치는 증대하지만 평균 이하의 소득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증대하고, 소득의 상하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게 되는24) 와중에서 사회의 소비수준은 높아지고 그와 동시에 소비지출에서 ‘서비스 지출’이 많아지는 것은 절대다수의 평균 이하 소득자들의 실제 삶과는 상관 없이 진행되는 현상이다.

경제의 ‘서비스화’는 소득격차의 확대와 불평등의 심화를 다른 말로 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하방이전과 상대적 과잉인구(산업예비군)의 누진적 증대, 임금노동자에서 정규직군의 감소를 의미한다.



4. 외국자본의 지배력 증대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산업부문을 막론하고 현저히 증대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국내경제 지배력 증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첫째, 일차적으로 내국 노동자․민중의 고혈이 초국적 외자를 경유하여 그들의 권력 모반(母盤)인 국가로 철저히 유출되는 구조의 심화, 둘째, 국내 노동자․민중의 이중적 수탈,25) 셋째,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상대가 전세계의 지배적 자본분파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점 등이다.26)

경제위기 이후 외국자본은 국내산업에서 급속하게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위기가 시작된 97년에 급격히 늘어났고, 98년 중 연간 사상 최대 규모인 88.5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나 97년 대비 27% 증가에 머무른 반면, 99년 1월~10월 동안에는 98년간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128.6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표7>).


<표> 외국인 투자 추이                        (단위: 억달러, %)

 

95

96

97

98

99.1-10

직접투자

19.4

32.0

69.7

88.5

128.6

증가율

-

64.9

117.8

27

-

   주: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자료: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외자의 지배력을 보면, 전산업의 외국인 주식지분율을 주가총액으로 환산하여 뽑은 지배력은 99년 6월말 현재 20.1%이다.27) 제조업에 대한 외자 지배력은 22.7%로서 서비스업의 20.1%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가운데 가장 외자 지배력이 높은 업종은 전기․전자업종으로서 30.4%에 달한다. 다음으로는 금속 24.2%, 화합물․화학제품 23.5%, 기계 21.4%, 비금속광물 20.8% 등의 순이다. 서비스업 중에서는 보험업이 28.6%로 가장 높고, 전기 및 가스 23.9%, 금융 20.8%, 숙박 17.5% 등이다.

산업/업종별 외국인 직접투자 추세를 보면, 97년의 경우 중화학공업에 13.6%, 경공업에 20.1%, 그리고 비제조업에 66.3%에서 98년에는 각각 56.1%, 8.7%, 35.2% 등이었고, 99년도에는 4월까지 각각 31.4%, 1.2%, 67.4%28)로 나타나, 97년에는 비제조업에의 직접투자가 압도적인 반면 98년에는 집중적으로 중화학공업에 들어왔고, 99년 들어서는 다시 비제조업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외자 지배력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업종들은 대개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치하고 있는 업종들로서, 현 시기에 외자는 직접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을 포함하여 인수․합병(M&A) 방식을 통하여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9.12.20)

한/노/정/연


* 이 자료는 민주노총이 지난 1999년 12월 20일 숭실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 ꡔ민주노총 산별노조 건설전략ꡕ에서의 발표문이다.

* 이 자료는 민주노총이 지난 1999년 12월 20일 숭실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 ꡔ민주노총 산별노조 건설전략ꡕ에서의 발표문이다.

1) 98년부터는 연맹에 따라서 산별노조를 건설하기도 하고(병원노련->보건의료산업노조), 업종간 통합을 통하여 산별노조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금속산업노련). 이러한 조직전환운동들과 나란히 연맹간 조직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병원노련과 금속산업노련 이외에는 아직 산별노조건설이 일정으로서 추진되고 있지는 않지만, 각 연맹별로 산별노조 건설의 지향을 부정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연맹간 통합운동까지를 포괄하여 ‘산별노조건설운동’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2) 신자유주의란 국가독점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자․민중 배제적인 정치전략으로서, 자본의 지구화(globalization of capital)에 따라 1980년대 이래 전세계를 무대로 하여 강요되고 있는 (자본운동에 대한, 자본운동을 위한) ‘탈규제, 개방, 자유화’와 ‘노동유연화’, 시장경쟁만능주의 등을 총칭한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첫째, 국내자본이든 국외자본이든 ‘경쟁력 있는 자본’의 국내에서의 최대한의 이윤추구활동을 보장, 둘째, 노동시장의 완전 유연화를 통하여 노동운동의 조직 기반을 최소화시키고 노동자를 최대한 개별화시켜서 노동조건에 대한 자본측의 전일적인 권한을 보장, 셋째, 공공부문을 최대한 민영화=사유화시켜서 사회의 모든 부문이 자본의 이윤생산과 이윤실현을 위한 조건을 뒷받침하도록 보장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3) 실상 교섭력이란 투쟁력이 밑받침되고 그것에 의하여 형성되고 강화되는 것으로서 본디 노동조합 조직에서 투쟁력과 교섭력은 불가분한 관계이지만, 그것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그 사회의 노자간 계급 역관계에 의하여 통일되는 정도가 언제나 불균등하게 나타난다. 더욱이 노동자계급의 교섭력을 교섭테이블과 제도적 울안에 국한시키려는 자본측의 입장으로 인하여 교섭력과 투쟁력은 때때로 대립적인 것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4) 코포라티즘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조합주의’로 번역되고 있지만 국가적 수준에서의 계급타협적 기구-운영양식-작동방식을 고려하여 원어 그대로 코포라티즘이라고 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5) 참고로, 독일에서는 나찌 지배하에서 구속된 사람의 90%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었는데, 나찌 패망 후에 그들은 “나찌의 지배를 당한 것은 노동운동의 분열 때문”이라고 보고 동서독 통일노조(단일노조) 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1945년 미 점령군은 ‘대쏘 전략’에 따라 미 점령구역(서독)에서 통일(단일)노조운동을 불법화시켰다. 그리고 나서 16개 산별노조 건설을 지원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1948년 가을 DGB가 창립되었으며, 이로써 오늘날의 독일산별노조체계가 탄생하였다.


6) 1998년 2월의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의 ‘합의안 부결 및 총파업 결의’, 민주노총 비대위의 총파업철회, 1998년 5월 총파업투쟁, 1998년 6월10일 총파업 철회, 노사정위원회 복귀, 1998년 12월 노사정위원회 탈퇴선언, 1999년 4월 총력투쟁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들에서 그점을 알 수 있다.


7) 대표적으로 1998년에는 금융권노동자들, 서울지하철,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1999년에는 조폐공사, 서울지하철, 한라중공업 등.


8) 민주노조운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형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왔다. 조직건설과 투쟁은 상호견인과 보완의 관계이다. 민주노조운동은 그 동안 부단히 ‘투쟁을 통한 조직건설’이라는 대원칙을 고수하여 왔고 민주노총의 건설 역시 1987년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의 소산이다. 하지만 1996년말~1997년초 총파업투쟁 이후 1998년부터는 후자에 더욱 집중하는 양상이 보여졌는데, 그것은 우선 1997년말 경제위기 폭발을 계기로 정치권력과 자본측의 대노동 공세가 그 이전과는 달리 ‘국가적 수준’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자본의 논리를 수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초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유연화’ 관련 법제도 수용 강요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노동법 개악과정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민주노조운동은 1998년과 1999년 동안 ‘투쟁과 조직’의 우선성 문제를 하나의 쟁점으로 제기해 놓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은 모두 산별노조 건설을 하나의 당위로서 수용하고 있지만, 각 연맹의 사정들에 의하여 구체적인 추진과정은 대단히 불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의 한 축으로서 병원노련과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하여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선도되고 있다.


9) 이 후자의 경우 흔히 ‘소산별노조’로 불리는데, 다른 이름이 아닌 ‘소산별노조’라고 쓰는 경우에는 ‘축소판 산별노조’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소산별노조’는 대개 업종별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체로서 본질적으로 업종별 이해관계를 넘어 계급적 단결체인 산별노조와 질적으로 다른 조직이다. 산별노조는 기업 및 사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직종과 업종을 초월하여 계급적 단결을 목표하는 전국적 조직체이다. 따라서 ‘소산별노조’가 산별노조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은 기업 및 사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조직이라는 점에 국한된다.


10) 현실적인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어쩌면 산별노조가 건설되어도 미조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산별노조 건설을 통하여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은, 막바로 수치로서의 ‘조직률’이 높아지는 것 혹은 조합원수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조직노동자들이 산별노조로 결집될 수 있는 주체적인 토양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11) 경제주의라는 것은 경제투쟁과는 당연히 구분된다. 경제투쟁‘만’ 고집하는 것만 경제주의가 아니라 경제주의는 ‘정치’도 무척 강조한다. 노동자계급운동의 역사에서 경제주의는 ‘노동조합은 경제투쟁, 정당은 정치투쟁’ 식으로 일도양단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노동자 계급운동의 태생적인 정치성을 박제화시켜온 다양한 유형의 활동에 대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산별노조의 ‘정치성’의 최대치를 제도개선투쟁으로 한정짓고 대중적인 정치파업을 봉쇄하는 운동방식도 전형적으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분리시키는 경제주의적인 사고의 소산이다.


12) 그점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반증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 경제구조의 대외의존성과 후발 자본주의국으로서의 기술적 열위, 선발 자본주의국가들 주도에 의한 국제분업체계의 형성과 그에 따른 종속적․대외의존적 성장전략, 정치권력에 의한 독점자본의 육성과 그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의 형성과 그들에의 부의 집중, 국부의 항상적인 대외 유출구조, 국내 부의 불평등 분배구조의 고정화 등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성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예비되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3) 세계자본주의는 2차대전 이후 60년대말까지 이어진 긴 호황기의 엄청난 자본축적과 생산팽창이 불러온 이윤율저하와 그로 말미암아 자본이 자기자신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이윤율을 달성하지 못하는 ‘과잉축적’의 심화로 인하여 생산에서 떨어져 나와 떠돌아다니게 된 투기자본이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전자․통신망의 발전과 함께 생산자본과 투기자본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었고, 초국적자본의 무차별적인 이윤 확보 경쟁에 촉발되어 국제적인 자본이동성이 크게 높아짐으로써 1987년에 하루 6천억 달러였던 통화거래량이 1993년에는 1조 달러를 넘어섰고 1998년에는 1조 4천억 달러(1998년 2월 현재 달러를 사용한 전세계의 하루 전산․통신 거래량)에 달하였다. 이는 약 1,680조원에 달하는 규모로서 한국의 98년 국내총생산 449조5,088억 원의 약 3.7배를 넘는 금액이 하루만에, 미국의 1년 국내총생산에 맞먹는 금액이 일주일만에, 세계 전체 생산에 해당하는 주식이 한 달만에 왔다갔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자본주의는 바야흐로 하루하루 주식시장의 등락을 좌우하는 거대한 금융자본의 투기장이 되었다.


14) 이를테면 미국은 99년 1월에 슈퍼 301조를 3년간 부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무역상대국의 시장개방 확대와 자국시장에의 수입 제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과의 철강분쟁, 유럽과 미국과의 바나나분쟁(유럽이 전식민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바나나를 수입하기 위해 미국업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중남미 바나나 수입을 규제), 호르몬처리쇠고기 분쟁(성장촉진호르몬 처리 사료로 사육한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유럽에서 금지시킴) 등은 모두 위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다.


15) 한국경제에서 대외개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6,70년대부터의 ‘수출입국’ 성장전략과 수입유발형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이미 한국경제의 체질로서 구조적으로 굳어져온 측면이 있지만, 80년대 중반의 우르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부터는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포괄하게 되었다.


16) 94년부터 급속히 확대되어 전년대비 94년에는 82.1% 증가, 95년에는 33.4% 증가, 96년에는 34.8% 증가 등으로 96년말 현재 해외직접투자 실행 잔액이 137억달러로 전체 대외자산의 약 13%에 달하였다(한국은행, 「최근 해외직접투자 동향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1997).


17) 김대중 정권이 금융, 기업, 공공, 노동시장 등을 ‘4대 구조개혁’부문으로 설정하고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은 4월에 금융감독위원회를 설치하고 98년 5월부터 일반기업과 시중은행에 대한 ‘퇴출명령’이 발효되면서라고 볼 수 있다.


18) 50년대에는 소비재산업, 특히 원조물자를 중심으로 한 삼백산업(제당, 섬유, 제분)을 중심으로 그리고 60년대부터는 수출입국전략에 따라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독점자본이 육성되었는데, 60년대에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70년대부터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독점자본과 관권의 독특한 유착과 ‘이쑤시게에서 항공기까지의 문어발식 재벌’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19) 한국은행, 「우리 경제의 서비스화 현황과 특징」, 1999.9.


20) 그것은 두 가지 측면을 의미하는데, 하나는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측면, 또 하나는 과잉축적의 가속화 측면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정보화사회론’ ‘지식사회론’ ‘노동자계급소멸론’ 같은 논의들이고, 후자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따른 붕괴론’ 같은 논의들이다. 한국은행 분석을 비롯하여 정부 및 관변, 그리고 자본측이 주로 입각하고 있는 논리는 전자에 있다.


21) 도소매, 음식․숙박, 운수․보관, 통신․방송, 금융․보험, 부동산․사업 서비스, 공공행정․국방, 교육․보건, 사회 및 기타 서비스 등의 업종.


22) 한국은행, 상동.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업’에는 전기․가스․수도와 건설업이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이하에서 ‘서비스업’의 비중 관련 통계들은 <표4>까지보다 낮게 나타난다. 전기․가스․수도, 건설업은 ‘서비스화’와는 무관하게 사회의 기초조건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그것들의 중요성과 비중이 증대하여 왔기 때문에 실은 그것들이 ‘서비스화’에 미친 영향 역시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비스화’를 측정하는 모형 자체가 그와 같은 이를테면 간접변수를 고정상수로 간주하는 등의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제한된 것이다. 만일 이들을 포함시켜 ‘서비스화’를 측정한다면 한국은행이 제시하고 있는 서비스화율보다 높게 나타날 것이다.


23) 한국은행, 1999. 9., 상동.


24) 이탈리아 경제학자 펜(Jan Pen)의 다음과 같은 소득불평등 묘사는 아주 재미있고 실재적이다(Income distribution, 1971). 소득을 가진 모든 개인들이 1시간 동안 가장행렬에 나오고 그들이 소득이 그들의 키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평균소득을 가진 사람은 평균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맨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머리를 땅속에 파묻고 거꾸로 나타나는데, 이 사람은 파산한 사업가로서 소득이 마이너스인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파트타임으로 몇 시간 일한 주부, 신문배달원 등 소인국 사람들이 5분 정도 지나가고 그다음으로 키가 1미터 이하의 난장이들(연금생활자, 실업자, 영세상인, 사람들이 재주를 알아주지 않는 천재화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 그 뒤를 이어 1미터가 조금 넘는 청소부 등의 저임금노동자들이 여기서도 ‘여성이 먼저’ 원칙이 지켜지면서 나타나고 그 행렬이 매우 완만히 키가 커지면서 계속 지나간다. 정상적인 키를 가진 사람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키는 아주 조금씩 완만히 커지면서 기술을 가진 생산직도 나오고 사무직 노동자들도 지나간다. 45분이 지나가도 평균신장을 가진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행렬이 끝나기 12분전에 비로소 성인의 표준신장을 가진 평균소득자가 나타난다. 평균소득이 지나가고 나면 키의 변화는 급속해진다. 마지막 6분을 남겨놓고 소득순위 최고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2미터 가까운 키를 가진 교장, 대졸사원 등이고 그 뒤로 키가 빠르게 상승하여 성공하지 못한 변호사, 대령, 국영기업 기술자들이 5미터 정도의 키를 가지고 나타난다. 마지막 1분을 남기고 8미터의 대학교수, 9미터의 대기업 중역, 12미터의 고등법원 판사가 지나간다. 수입이 좋은 회계사, 의사, 변호사들이 거의 20미터의 키를 가지고 등장한다. 마지막 몇십초는 굉장한 거인들이 출현한다. 왕족 필립공의 키는 60미터, 석유초국적기업 쉘의 전무 키는 110미터이다. 이들의 키는 미터로 잴 수 있다. 여기까지는 고소득이지만 아직은 ‘봉급생활자’이다(그러므로 ‘평균소득’ 및 소위 ‘노동소득분배율’ 개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행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구름 위에 떠 있어서 마일로 측정해야 한다. 대부분 재산을 물려받은 부자들이고, 영국의 가수 톰존스도 1마일(1.6킬로미터)의 키를 자랑하며 나타나고, 드디어 행렬의 마지막 인물은 구름 위에 있는 석유왕 폴 겟티이다. 아무도 그의 키를 모르지만 적어도 10마일, 어쩌면 20마일이 될지도 모른다.(이정우, ꡔ소득분배론ꡕ, 비봉출판사, 1991, 23-24쪽.)


25)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삶과 권리를 좌우하는 지배세력이 <국내의 지배적 정치권력(국가) + 국내의 자본>에서, <국내 정치권력 + 국내 자본 + 외국자본 + 외국 국가권력>으로 중첩됨으로써 가중될 것이다.


26)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구조조정의 새로운(?) 국면과 국가-자본의 전략」, ꡔ구조조정의 새로운(?) 국면과 노동운동의 과제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4주년기념 심포지움자료집, 22-25쪽.


27) 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을 대상으로 하여 산업별로 외국인 보유 주가총액을 전체 주가총액으로 나누어 외국인 지분율을 산출. 단, 대부분의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무의결권 우선주이기 때문에 분석에서 제외. 대상법인은 제조업 517개 법인, 서비스업 211개 법인 등 총 728개 법인.(이진호, 「IMF 1년반, 외국인 투자흐름 진단」, ꡔ주간경제ꡕ529호, LG경제연구원, 1999.7.28.)


28) 이진호, 상동.


2000-01-0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