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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노총(DGB)은 금속노조와 함께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갈 것인가(上)

현장에서 미래를  제1호
하인쯔 쉐퍼


독일노총(DGB)은 금속노조와 함께

새로운 동반자관계로 갈 것인가? (上)


하인쯔 쉐퍼(Heinz Schafer, 경제학박사)

* 출처: Z. 제 20호, 1994년 12월호.



I.


독일노총은 오는 1996년 11월에 드레스덴에서 특별총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강령을 의결할 예정이다. 독일노총으로서는 1949년의 “경제적 원칙”이라는 강령과, 1963년 및 1981년의 새로운 기본강령에 이어 이번에 네번째의 새 강령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우선 1949년에 뮌헨에서 독일노총이 건설될 당시의 “경제적 원칙” 강령에서는 기본적으로 경제정책이라는 것도 하나의 투쟁의 장(Kampfplatz)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이 경제정책이라는 공간에서 “각 개별적인 이해관계자 집단이 전체 사회를 위하여 얼마나 노동과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지가 결정되며, 또한 각 집단이 어느 정도 국민경제적 결실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강령에서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요구가 제시되었다.


① 자유로운 인간들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기본 원칙 아래 모든 노동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모든 국민경제적인 생산력들을 낭비없이 합목적적으로 투입하며, 국민경제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 주는 경제체제를 구축할 것.

② 경제의 운용과 제 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인사문제, 수익성문제, 복리후생문제 등 모든 문제와 관련, 조직된 노동자들의 공동결정권을 보장할 것.

③ 기간산업을 공동체소유(Gemeineigentum)로 전환할 것, 특히 광산업, 철강산업, 거대 화학산업, 에너지산업, 중요한 교통부문과 금융기관들을 공동체소유로 전환시킬 것.

④ 모든 노동자들을 국민경제적 총성과물의 분배에 적절하게 참여시키고, 나이가 들거나 병들어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이룩할 것.


그런데 위 강령에 따르면, 이러한 경제정책적 의지형성의 과정이나 경제의 실제 운용과정은 “하나의 중앙집중적인 국민경제상의 계획”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경제의 이윤추구 동기가 전체 경제의 사회적 요구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1)


이러한 강령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독일 노조들은 1951년 4월 10일에 의결된 ‘석탄/철강공동결정법’(Montanmitbestimmung) 정도 이상은 쟁취할 수 없었다.2) 그런데 이 법마저도 나중에 갈수록 보수화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1963년과 1981년에 독일노총은 이에 대해 개탄하고 그 강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나섰다. 아래 강령 부분은 원래 1963년의 것이었는데 1981년 강령에서도 같은 구절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서독에서는 2차대전 후 지금까지 대체로 예전의 소유관계와 권력관계가 서서히 다시 복귀되었다. 자본의 집중화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대기업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1981년 강령에서는: 더욱 더 심하게) 생산수단의 통제권으로부터 배제당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가진 노동력이란 (1963년의 강령에서는: 역시 오늘날에도) 그들의 유일한 수입원이다.”3)


그 뒤 1963년의 독일노총 특별총회를 계기로 독일노총 내부에서는 장래의 행로와 관련하여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편 강령상 독일노총과 상당한 의견일치를 보고 있던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1959년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계기로 하여 독일 노총의 강령상 중요한 여러 문제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하기 시작한다. 일례로 당시 건설노조(IG Bau-Steine- Erden) 의장이던 게오르그 레버를 통해 독일노총의 강령을 사민당의 강령과 비슷하게 만들어 가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독일노총의 강령을 지배적인 경제-사회질서(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옮긴이)와 조화를 이루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4)


1963년 11월 독일노총 특별총회가 열리기 몇 달 전에 베를린에서는 독일 건설노조의 제 6차 정기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우리의 길”이라는 기조발제를 한 게오르그 레버는 몇몇 중요한 사안에서 독일노총의 강령안과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특히 독일 사회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노조의 과제와 관련하여 그는 색다른 주장을 폈다. 레버의 주장과 상반되는 독일 노총의 1963년 강령부분을 꼬집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화 초기부터 이 산업화를 규정짓는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노동자들을 사회적 기회균등의 장으로부터 배제시켜 왔고, 그 개별적 인격체를 기업의 의지에 종속시켜 왔다. 또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시장법칙에 따라 매매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생활보장을 기업의 이윤추구 동기에 종속시켜왔다. 결국 그것은 여러 사회적인 폐해와 위기를 초래하였다.”(독일노총 63년 강령)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석 아래에서는 레버가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동반자관계’(Sozialpartnerschaft)가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레버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거의 무권리 상태였지만, 오늘날 우리사회의 법치국가적이고 민주적인 헌정 아래에서는 노동자와 다른 사회구성원인 시민들 사이에 어떠한 구분도 없다. ... 그 당시에는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오늘날에는 노동자들도 다른 계층의 성원과 구분되지 않는다. ... 우리는 이제 거의 완전고용을 달성했다. 따라서 질병이나 사고, 노후화, 고령 등의 요소는 이제 거의 완벽한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사회생활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원래 노동자들이 기업에 종속되었던 정도도 미미한 수준으로 축소되어졌다.”5)


그러나 레버는 그 당시 자신의 견해를 독일노총 안에서 관철시킬 수 없었다. 레버의 입장에 한사코 반대를 하였던 독일노총 산하 노조들은 오토 브렌너가 의장이던 금속노조, 빌헬름 게펠러가 의장이던 화학노조, 아돌프 쿰머누쓰가 의장이던 공공부문노조(OTV) 등이었다.


그 이후 1981년의 강령에서는 하나의 타협안으로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산업화이래 노동과 자본 사이의 이해대립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기업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에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자 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을, 그리고 충분한 소득을 얻고자 한다.”6)


1981년 당시 베르너 페츀과 클라우스 핔하우스는, ‘사회적 동반자론’을 주장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그토록 강력히 부르짖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들의 기대가 별로 충족되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81년 강령은 자율적인 노조정책의 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강령은 통일노조(Einheitsgewerkschaft: 이념별로 다른 노조들이 여러 조직으로 난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는 것 - 실제로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입장으로 통일시킴: 옮긴이) 속에서 모든 정치적 입장을 가진 세력들이 협력과 연대를 하는 플랫폼의 성격을 띤다. 위 저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81년 강령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강령적 요구들의 실현영역, 아직도 강령에 대한 내부논의가 활발히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강령을 관철시킬 전략을 충분히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 노총 산하 노조들의 통일된 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7)

II.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 사회동반자적 시각에 서 있는 독일노총 내 일부 세력들은 이제 1996년에 자신들의 입장에 걸맞는 새로운 기본강령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1989년 12월에 교원노조(GEW) 의장인 디터 분더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계기로 노동조합은 “자신의 위상과 고유임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제 노조가 “하나의 대안적인 사회질서를 자신의 강령적 결의에 넣어야 할” 이유가 더 이상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본주의적 사회만 있을 뿐이고, 따라서 이제는 이 유일한 자본주의가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 가야 할 지에 대하여 “몇몇 지도사상”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대안”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면 그 다음 남는 것은 (금속노조를 겨냥해서, 기존의 전투적인) 금속노조도 역시 화학노조와 같은 타협적 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대안적인 사회질서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질서 내에서 여러 사회-정치적인 목표들을 추구해야”8)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한 달 뒤(1990년 1월) 당시 금속노조 수뇌부의 칼하인쯔 블레씽이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디터 분더(교원노조)가 총경제적 계획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만일 노조가 자본주의라는 전선 뒤에서 일하고 있는 적십자병원 역할 정도에 국한되기를 거부한다면, 이미 사회에서 투자결정이 이뤄질 때부터 그 과정에 개입, 참여해야 한다. 공동결정이라는 개념과 경제민주화라는 구상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개념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그 경영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국가는 단지 자본주의적 경쟁을 유지시키기 위해 여러 여건을 조성해주는 질서유지 기능 정도만 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단지 교섭력만 행사하는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게 되며, 단지 사후적으로 사회정책적인 보상기능만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 따라서 노동조합의 강령과 전략을 시급히 고쳐야만 할 시점에 와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동구 사회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하루 빨리 진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블레씽은 80년대말에 있었던 금속노조 내부의 미래전략논쟁에 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도 “대안적 사회질서에 대한 포기를 선전하고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와 타협하기를 촉구하는” 것은 전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으므로 현대 복지국가적 사회의 기본구조를 분석해 내는 것은 여전히 의미있는 일”이라 하였던 것이다.9)


그 뒤 1년이 지나서(1991년) 화학노조의 제 14차 정기 노조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서 헤르만 라페는 기조연설에서 “노동조합 강령에 나타난 원칙적인 목표들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회적 진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이념적으로 유일한 대안으로 삼고 실천해나가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란 “반드시 합의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만 지탱이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노조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기업과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이것은 기업가들 자신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그의 기조연설에서는 이러한 ‘기업과의 타협과 합의(Konsensus)’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10)


또 1993년 6월 초에 밧 뮌더에서 탄광노조, 화학노조 및 피혁노조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에서 노조의 새로운 기본강령은 “사회-생태적 시장경제”라는 명제를 명백하게 받아들이고 있다.11)


화학노조의 이사이면서 독일노총 개혁문제 전문가인 제펠 크라우스는 독일노총의 1981년 강령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그는 81년 강령 중에서도 기간산업 및 다른 시장지배적/경제지배적 기업들을 공동소유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국민경제적 입장에서의 거시계획 요구 및 투자조정 요구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우리가 이러한 전망들이나 언어들로부터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12) 따라서 시장경제를 누군가가 근본적으로 비판한다면 “우리는 아주 단호하게 이에 맞서야”13) 할 것이라 그는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노조가 독일노총의 다른 강령부분에 대해서는 합의를 도출하고자 한다는 점을 밝히기 위하여 헤르만 라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독일노총의 기본강령 논쟁은 앞으로 이 여행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잘 보여줄 것이다. 화학노조가 지녀온 전통적인 원칙적 입장들은 이 논쟁의 와중에서도 별로 변함이 없을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토론회나 그 어떤 곳에서도 우리 입장이 ‘철회되거나’ 또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14)



III.


위와 같은 헤르만 라페와 그와 유사한 정치적 그룹의 사회동반자적 방향전환에 대해 강한 저항을 보이는 것은 독일노총 산하의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산별노조들이다.


목재노조(GHK)의 페터 리이머는 1993년 여름에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화학노조 의장인 헤르만 라페같은 사람에게는 우선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정치적 입장이 깔려 있다. 그의 요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이해관철을 위하여 사용자측에 대하여 더 이상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사용자와 함께 그 산업부문의 발전을 위하여 정치가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한다. 라페와 그 부류의 사람들은 노조운동의 미래를 차라리 고자질의 노동력이나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상위노동자들을 위해 일종의 ‘이해연합체’ (Interessenverband)를 형성하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목재노조에서는 이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즉 오늘날이야말로 그간 우리가 수십년 간에 걸쳐 이뤄놓은 성과들을 자본이 도로 뺏아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본측과 그의 정치적 동맹세력에 대항해서 더욱 치열하게 맞서 싸울 노선(ein konfliktfreundigerer Kurs)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대변해야 할 목표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해를 공동으로 관철시켜야만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

상황은 대단히 심각하다. 절대로 독일노총이 이빨없는 ‘종이호랑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노조가 국민경제적 문제나 기업의 경영사정을 이해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조가 도대체 왜 존재하고 누구에 의해 지탱되고 누구에 의해 지지를 받는가를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독일노총을 원한다:

- 만일 가진 자들을 위하여 가난뱅이들이나 병약자, 실업자, 공장노동자들의 허리를 죄게 만드는 정책이 취해질 때면 언제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노조.

-  노동자들이 독일의 국민경제적 부의 창출에 공헌한 만큼 그 정당한 몫도 제대로 확보하고 찾을 수 있게 혼신을 다해 노력해 주는 노조.”15)


아르노 클뢰네는 ‘노조개혁에 관한 논평’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엄청나게 발전한 기술체계와 사실상 국제화된 경제질서 속에서도, 오히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상당한 정도로 ‘초기자본주의적인’ 상황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분적으로는 노조에 의해 최초로 관철되기도 했고 또 부분적으로는 노조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외부 도움’이기도 했던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질서’조차도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 이른바 복지국가적 합의체제가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결국 클뢰네의 결론은 “만일 노조가 ‘새로운 초기자본주의’ 경향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구조에 제대로 개입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사회적 야당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고, 비판과 교정, 거부와 저항을 위한 ‘조직된 네트워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사회 체제와 생활세계 속에서 사회적 다윈주의16)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그에 대해 하나의 대안적인 실천을 해 내야만 할 것이다.”17)

(번역 : 편집위원회)


군살빼기 생산방식과 신자유주의 국가 :

사회의 내부분열과 정치적 저항의 형태에 관하여



   여기에 번역해서 실은 논문은 1995년 3월 23일 ~ 3월 28일, 독일 게제케-에링거펠트에서 개최되었던 국제토론회의 기조발제문이다.

   이 토론회는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과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미주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가 및 노동운동가 등 각국의 150여 선진노동자 대표들이 참여한 ?세계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국제토론회였다.



1.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2차대전 이후로 구미 각국에서는 최소한 전국적 차원에서나마 포괄적인 단체협약이 임금이나 복리후생, 노동조건 등을 지켜주었다. 이 단체협약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이 협약들이 노동자를 경제적으로 보호해줄 뿐 아니라, 장차 ‘모든’ 임금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산별 단체협약에 관한 ‘개방조항’의 도입이나(이것은 산별협약이 갖는 포괄적 구속력을 약화시키고 개별기업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노동조건을 하향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다), 경쟁력 강화와 생산입지 유지를 위한 개별 ‘공장협약’의 무수한 등장, 또한 임금이나 노동시간, 기타 노동조건과 관련한 여러 ‘양보’조치들 등등이 위와 같은 기본 원칙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예컨대 실질임금 감축이나 임금의 개별화(개인별 성과급제), 노동시간 및 근로조건의 유연화 방책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얼핏 보기에 뛰어넘을 수 없는 울타리로 작용하는 ‘경쟁(력)’이라는 것이 갈수록 ‘연대’의 원칙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생산입지 보호라는 논리, 즉 개별기업의 노동자들이 그 경영측과 함께 하나의 동맹을 이루어 다른 기업 노동자들에 맞선다는 것은 결국 모든 노동자 집단들 사이의 무자비한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쟁의 전선은 지속적으로 변화, 확장되고 있다. 즉 정규 핵심노동자들은 여러 주변부노동자들 집단에 대항하여 경쟁하고, ‘아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은 실업자들과 경쟁하고 … . 이러한 경쟁은 적응력이 부족하거나 경영측의 요구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생산입지의 보호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협정들이 맺어지면서 기존의 노조 고유의 노동보호기능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노조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들도 발생한다. 그것은 여태껏 노동조합 본연의 고유 임무를 이루던 것인데,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이 하나의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이해대립 또는 계급대립에 있어 노동자 입장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노조로 하여금 하나의 사회적 프로젝트, 즉 ‘모든’ 임금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을 개선시킨다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주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생산입지 논리” 즉 “경쟁의 논리”를 돌파할 수 있는 경험이나 가능성은 없는가? ‘연대의 원칙’은 개별기업에서밖에 실천할 수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공장이나 작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험과 정보를 교류해야 할 것이다.



2. 공장내부의 연대문제


새로운 노동시간제, 소집단노동(팀작업), 하청화 등등으로 인해 다양한 노동자집단이 등장하고 있다. 즉 사회적 분열이 한 사업장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복리후생 등이 완벽히 보장되며 노조에 의해 권익을 대변받을 수 있는 중심부노동자가 있고, 다른 편에는 일용직 또는 시간제 근로를 수행하며 노조에 의해 권익대변도 되지 않는,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무시받기 일쑤인 주변부노동자들이 있다. 새로운 노동시간제도나 이와 관련된 근로관계의 유연화 방책들이 이러한 현상을 재촉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공통분모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자리 보존의 문제 이외에는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도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임금이나 자유시간(휴가 등)과 같은 보상의 문제에 있어서조차 이미 기업 내부의 노동자집단 사이에 파워격차(이해갈등)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개별기업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공통된 이해를 추구하고자 하거나 모든 임금노동자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 관철시키고자 할 때에 하나의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명하고 풀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개별 기업 내부에서 어떠한 내부분열이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가? 개별 노동자집단의 원자화에 맞설 수 있는 방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특히 새로운 노동시간제도나 새로운 임금체계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3. 산별노조로부터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현재 산별노조가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별로 맥을 못추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바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조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즉 개별 경험들과 개별적 이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또 상반된 이해가 아니라 공통의 이해를 제대로 엮어 줄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현재의 노조조직에 대해서 분노, 실망, 좌절감을 많이 가진다 하더라도, 바로 이것이 곧장 사회의 근본적 변화 문제를 제기한다든가 또는 노조 기구가 사회변혁에서 갖는 역할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최근들어 상당히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캐나다의 CAW(캐나다 자동차노련)과 같이 노조 기구를 정치적으로 개혁하는 경우도 있고, 미국의 NEW DIRECTION(새로운 지향성)과 같이 하나의 노조반대파를 공식적으로 건설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SUD PTT와 같이 아예 독자적인 노조조직을 새로이 건설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는가? 공식 노조의 반대파(노조운동 내 재야세력)에 의한 여러 색다른 경험과 실천들은 어떤 전망과 구상을 던져 주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제도화형태가 가능하며 또는 어떠한 특수한 학습과정이 이루어졌는가?



4. 노조의 위상 :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프로젝트’로서의 노동조합


우리가 이 사회 속에 근원적으로 이해대립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한다면, 노조의 활동무대를 개별기업 속에 국한시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조의 행위무대와 활동내용을 ‘모든’ 임금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을 개선시키고 ‘사회적 관계’를 전반적으로 변화시켜 내는 것으로, 그리하여 이 변화를 위한 투쟁의 장으로 노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날 갈수록 많은 사람들, 즉 실업자나 빈민, 주변부노동자 등등은 갈수록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많은 수의 노동조합조직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특정 정규노동자 집단의 지위 유지와 기득권 보호를 위한 대변인 정도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것 같다. 노동조합이 하나의 사회적인 프로젝트로서 기업의 벽을 넘어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또한 어떻게 오늘날의 노조가 그러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가? 내용적으로 어떤 분야와 영역을 채워나가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동맹세력이 필요로 되는가?


나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수행하는 데 있어 어떠한 가능성이 있고 어떤 한계가 존재하는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노동조합들은 어떠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가?

(번역 : 편집위원회)


1) A. Klonne, Demokratischer und sozialer Rechtsstaat, Dokumente zur Gewerkschaftspolitik, Bochum 1964, 141쪽.


2) 위 책, 10쪽. “그 법안의 의결은 광산업과 금속산업에서 파업의결투표가 행해진 와중에 일어난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이 파업의결투표에서 투표권이 있는 노동자들의 90%이상이 석탄철강업에서의 노동자 공동결정권을 관철시키기 위한 파업돌입에 찬성하였던 것이다.”


3) 출처: IMSF(Hg.), DGB wohin? Dokumente zur Programmdiskussion, Fft/M. 1980, 87쪽. 또한 Arndt et al.(Hg.), DGB Programm '81 untersucht fur die Praxis, Fft/M., 1981, 212쪽.


4) 위 책(IMSF) 12쪽 참고.


5) 인용문 출처: Heinrich Bramkamp, noch'n vermogensplan und alles im lot? Georg Leber und das DGB-Grundsatzprogramm, Duisburg-Ruhrort, o.J.


6) 인용문 출처: Arndt 외, 위책, 208쪽.


7) 인용문 출처: 같은 책, 32쪽.


8) Gewerkschaftliche Monatshefte (이하 GeMo) Nr.12, Dez. 1989, 714쪽 이하.


9) GeMo, Nr.1, Jan. 1990, 2쪽 이하.


10) 금속노조 속보, 1991년 6월 26일치.


11) Gewerkschaftliche Umschau, Nr.4/1993.


12) 위 잡지, Nr.5/1993, 31쪽.


13) Seppel Kraus, Bausteine fur eine DGB-Reform, GeMo, Nr.5, Mai 1993, 289쪽.


14) Die Quelle, Nov. 1993, 3쪽.


15) Tatsachen fur GHK Vertrauensleute, Vertrauensleutebrief, Juli/August 1993.


16) (옮긴이 주) 다윈의 진화론에 의거한 적자생존의 원칙을 사회발전을 설명하는데 적용하는 것.   따라서 가능하면 국가개입을 반대하고 시장과 경쟁의 원리가 자유로이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적, 구조기능주의적 입장


17) IG Medien Forum 6-7/1994, 9쪽과 11쪽.


1995-07-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