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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노선과 실천대안의 활발한 제시가 요구되고 있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51호
김태연


정세초점


운동노선과 실천대안의 활발한 제시가 요구되고 있다


김 태 연
민주노총 기획국장










동투(冬鬪)의 대차대조표

12월 31일밤 11시, 국회 앞에서는 2~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1999년의 투쟁을 마감하고 새 천년의 투쟁결의를 다지는 집회가 시작되었다. 밤 12시를 넘기고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단병호 위원장이 2000년 정치총파업을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민주노총의 25일간의 국회 앞 농성투쟁이 마무리되었다.
민주노총의 국회 앞 농성투쟁은 10대 개혁입법쟁취, 구속노동자석방․수배해제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18일까지 전개할 예정이었다. 이 투쟁은 ‘99년 정기국회를 겨냥한 투쟁이기는 하지만 투쟁요구를 반드시 쟁취한다는 목표로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상반기 투쟁까지 내다보면서 지금부터 상층간부 차원의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 개혁요구를 사회쟁점화하고 조직내부적으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12월 7일, 300여명의 경찰병력이 민주노총 국회 앞 농성장에 투입되어 컨테이너를 강제철거하고, 16명의 노동자들이 연행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투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농성장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다음날 국회 앞에는 10여 동의 연맹농성텐트가 설치되었다. 12월 10일부터는 각 지역의 역전광장 등에 농성텐트가 설치되었다. 농성투쟁돌입 당시는 배치하지 못했던 매일 12시집회와 저녁집회가 가능할 정도로 농성투쟁에 뜻밖의 힘이 붙었다.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경찰도발을 노동계 요구에 반발하는 전경련 등 자본측 달래기를 위한 청와대 차원의 결정으로 규정짓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사과 등을 요구로 내걸고, 연맹과 지역본부 텐트농성 돌입, 단위노조 간부철농돌입, 11까지 매일 국회 앞 집회, 토요일 전국동시다발집회 등 투쟁방침을 결정했다. 8일부터 10일 민중대회까지의 가두집회에서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는 등 투쟁이 격화되었다.
민중대회 이후 18일까지는 농성장침탈에 대한 분노를 앞세워 투쟁을 전개해 나갔으나, 18일 이후 국회 회기가 연장됨에 따라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방향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 회기가 연장되더라도 22일 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를 기점으로 농성투쟁을 종료하자는 의견과 연말까지 투쟁을 계속하자는 의견으로 나누어졌다. 논의결과 2000년 1월 1일까지 농성투쟁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22일 이후 투쟁은 다분히 형식적으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특별검사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이슈가 될 수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부위원장의 폭언 파문으로 위축되어 효과적인 공세를 펴지 못했다. 노동시간단축 등 10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선도투쟁답게 민주노총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펴지 못하고 ‘40m짜리 플랭카드’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성 이벤트에 의존하는 투쟁에 급급했다. 민주노총 임원과 산별연맹 대표자들의 국회 앞 연좌농성투쟁 등 요구를 사회쟁점화하기 위한 보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반기 국회 앞 농성투쟁을 통해 2000년 투쟁결의를 이끌어 낸다는 조직 내부적 목표에 있어서도 많은 아쉬움이 있다. 집회 현장에서는 2000년 정치총파업이 외쳐지기는 했지만, 산별연맹 대표자 차원에서라도 2000년 정치총파업이 내실 있게 결의되는 과정이었는가? 그렇지 못했다. 경찰병력이 투입되던 12월 7일, 중집위원들은 2000년 투쟁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수련회를 하고 있었으나, 농성장침탈로 논의가 중단되었다. 그후 산별연맹 위원장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있는 농성텐트에서 2000년 투쟁에 대한 논의는 전개되지 못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문제 등을 내걸고 전경련 농성투쟁, 국민회의 당사 농성투쟁 등 한국노총 상층부의 선도부와 총파업투쟁을 동시에 전개했다. 총파업투쟁의 파고는 높지 않았지만 12월 18일과 12월 23일 1만 5천명 내외의 대중집회를 지도부의 선도투쟁과 결합했다.
경총과 전경련 등 사용자 단체가 전임자임금 지급불가로 맞불을 놓으면서 한국노총의 투쟁은 급격하게 사회쟁점화되었고, 모든 언론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투쟁은 물론이고 농민대회마저도 전임자임금 쟁취투쟁으로 부각시켰다. 이어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전임자임금문제에 대한 중재안을 내놓았고,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통과됨으로써 국회에서의 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결과 한국노총 상층부는 ‘하반기 투쟁의 승리, 한국노총 지도부의 정치력 확인’이라는 전리품을 노획했다. 실제로 한국노총 상층부는 하반기 투쟁의 ‘부분적 승리’를 2000년 ‘정치투쟁’으로 연결시켜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결국 양 노총의 하반기투쟁을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에 비해 투쟁의 성과를 알차게(?) 챙겨 냈다


몇가지 불길한 조짐들

이상과 같은 99년 하반기 투쟁과 함께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 내에는 불길한 조짐이 있다. 서울지하철노조선거에서 민주파가 패배한 후, 집행부는 직권조인을 단행했고, 한국통신노조 선거에서 민주파를 누르고 당선된 집행부는 당분간 민주노총에 참가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다. 이로써 민주노총 주요 연맹 중 하나인 공공연맹은 사실상 조합원의 과반수가 조직활동에 불참함으로써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가맹조직 중 세 번째로 조합원수가 많은 사무금융노련은 위원장 직선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재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안정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선거결과에 따라서는 이미 선거과정에서 공언된 바 있는 제3노총론이 공론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른바 제3노총론은 그 자체가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서울지하철의 경우 집행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조합원 대중과 중간간부 역량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통신노조의 경우는 민주노조로서의 투쟁경험이 짧아 사측의 영향력이 먹혀들어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으나 민주노총 탈퇴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즉 2002년 복수노조 이전에는 제3노총론이 성사될 가능성 자체는 높지 않다. 문제는 민주노총으로서는 내부의 주요한 조직에서 제3노총 논의가 공론화된다는 자체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강화․발전되고 있는 민주노총’, ‘약화․퇴보하고 있는 한국노총’이라는 노동계 판도에 쐐기를 박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민주노총은 재정위원회 주식투자 사건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는 지경에 빠졌다. 몇몇 조직에서의 제3노총론 공론화를 전후하여 민주노총 재정위원회 사건을 공작적으로 악용한다면 그것은 장작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반기 투쟁에서 한국노총 투쟁의 부각, 민주노총 내 주요 조직에서의 선거패배, 제3노총론 제기, 재정위원회 주시투자 사건. 이 일련의 사건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이 맞아떨어지는 조건을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조건은 노동운동 내에서 노동운동발전방향의 하나로 제기되어 온 주장과 결합될 수도 있다. 최근 모교수는 민주노총은 약간 우경화되고, 한국노총은 약간 좌경화되어 평준화되고 이후에 양 노총을 통합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하반기투쟁에서 한국노총은 약간 좌경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민주노총 2기 집행부가 그렇게도 받아들이지 않던 셉템버위원회식 사회적 조합주의가 한국노총 21세기위원회를 통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민주노총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로 하여금 셉템버위원회식 사회적 조합주의를 받아들이게 한다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통합, 사회적 조합주의 등은 21세기 노동운동의 주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상은 민주노총 하반기 투쟁을 마치면서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노총 단병호 집행부는 2000년 정치총파업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분쇄하고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통해 노동운동의 중장기 전망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을 대중적으로 천명했다. 이 지점에서 각 운동세력은 2000년 정치총파업의 성사와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노총 2000년 투쟁의 실패는 민주노조운동진영, 계급적 노조운동진영 전체의 패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노동운동발전략위원회에 대한 제3자적인 태도, 구경꾼과 같은 태도는 운동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 대중적으로, 공식적으로 견해를 표명하고 대중의 동의를 모아 나가야 한다. 어차피 1년 임기의 단병호 집행부가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드러난 운동방향의 혼란과 사이비 운동노선의 득세는 앞으로 몇 년간의 운동 내의 논의와 실천적 검증을 통해 정리될 것이다. 그 출발점에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각 세력은 대중운동의 원리에 입각하여 책임 있게 자신의 운동노선과 실천대안을 제시하고 논의의 주체로 뛰어들어야 한다.(2000,1,3) 한/노/정/연

2000-01-0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