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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전망하면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51호
홍근수


2000년을 전망하면서

홍 근 수/ 이사장




20세기에 의해 규정될 21세기

우리는 2000년을 맞이하였다. 우리가 지금 맞이한 이 해는 단순히 1999년이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 맞은 해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새 2000년은 세기의 첫해요 새 천년의 첫해라는 3중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새해는 단순히 달력을 바꿔다는 것만으로 새해, 새 백년, 새 천년이 오지 않는다. 어차피 시간이란 것은 우리 인간이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때를 매긴 것뿐이다. 적어도 새해냐 아니냐는 것은 우리 마음과 결단과 행동에 달렸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맞이한 새해를 성격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법칙이다. 물론 흘러가던 강물이 예상치 않은 언덕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강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어 흐르거나 그 언덕을 돌아서 흐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라는 강도 돌출적인 역사의 ‘언덕’을 만나면 땅 속으로 스며들어 흐르거나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돌출적인 사태를 예상할 수 없기에 미래에 대한 예언도 틀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미지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필요하고 또 이 예견에 근거한 대응책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맞이하기 시작한 2000년에 대한 전망이나 예견, 또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책 모색은 필요하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 2000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만일 위에서 말한 대로 현재가 미래를 규정한다는 말이 맞다면 우리가 막 뒤로 보낸 1999년, 1900년대, 그리고 두 번째 천년이 어떤 해, 어떤 세기, 어떤 천년이었는가를 물어야 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선행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무리한 일이지만, 지난 100년의 특징 몇 가지에 관하여 간략히 지적해 보고자 한다.


20세기는 어떤 세기였는가

우선 1900년대는 폭력과 전쟁으로 뒤범벅 된 세기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아마도 20세기에 관해서 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온 이래로 지난 1세기동안 인류는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전쟁의 회수나 엄청난 대량 희생자의 속출이나 파괴의 규모나 전쟁 비용이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을 했다. 금세기 들어와서 치렀던 전쟁과 무력갈등의 회수는 거의 200여 회에 가깝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1억 5천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탈냉전 시대 이후에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소위 신세계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1990년대 동안만 하더라도 100여 회의 전쟁으로 600여만 명이 넘게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다. ‘20세기는 전쟁과 야만의 시대’였고 ‘이 세기(20세기)는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렸고 가장 폭력적이며 전쟁으로 가득찬 세기였다.’는 것을 부인할 도리가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구화가 가속화되면서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기 시작한 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정보, 통신, 교통 등의 폭발적인 발달과 자본의 세계적 지배가 지구화란 미명하에 점차 더 노골화되기 시작했던 20세기 후반기부터였다. 그러나 가진 북반구 나라 사람들과 못 가진 남반구 나라 사람들 간에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더욱 심각하게 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 간에 긴장이 증폭되고 있다. 평등 없이 평화가 있을 수 없고 불평등은 전쟁의 씨앗일 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 남․북간 빈부의 극심한 격차 문제는 지구화가 급속히 추진되던 20세기 후반기부터 두드러진 세계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나온 20세기는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막을 내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이전 보다 더 나쁜 점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소간의 세계 헤게모니 쟁탈전의 양상은 동․서 냉전의 형태로 20세기 중반기부터 개시되었으나 20세기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때 소연방의 와해에 이어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가 연이어졌고 이들은 소위 개방이란 이름으로 미국식의 시장경제체제적 자본주의를 도입하게 되었다. 지금 이 지상에서 남아 있는 공산주의적 정권이란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 소수의 국가들만 남았다. 이로써 미국이란 나라의 단극 지배체제가 더욱 강고하게 유지되었다.
세계 헤게모니를 독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란 최고 강대국은 이제 ‘지구화’니 ‘하나의 세계’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다른 작은 나라들을 미국에 예속되는 소위 신식민지로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이미 분단된지 반세기를 넘기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한국이 북한과 더불어 어떻게 통일을 이루고 어떻게 민족자주를 견지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없이 절실히 인식되고 있다.


21세기에 대한 전망

위에서 20세기에 대한 일별에서 우리는 21세기의 세계란 결국 지나간 20세의 연장일 뿐이라는 것을 보았다. 피투성이의 전쟁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또 21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 부정의와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 전망된다. 동․서 간의 냉전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남․북 간의 ‘냉전’아닌 ‘열전’이 예상된다.
또한 앞으로의 세계는 남북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그 결과는 20대 80의 세계가 될 것이 전망된다. 독일의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은 그들의 공저인 ꡔ세계화의 덫ꡕ에서 이미 이 문제를 지적하기를 가진 20%의 사람들과 못 가진 80%의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활동하는 인구 엘리뜨 20%만이 필요하고 나머지 80%에 달하는 잉여인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미국은 소위 지구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그 뒤에 숨기고 있는 이념인 신자유주의로 전 세계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지구화는 우리에게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풍요로 특징되는 지상낙원을 약속하고 있으나 현실은 오히려 전 지구를 국경 없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고 생명의 역사가 아닌 죽음의 역사를 낳을 위험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실현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고 있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이고 세계관이다. 신자유주의는 상호의존과 호혜평등이란 구실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경고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상호의존은 호혜평등이라기보다 수직적 위계를 갖는 불균등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세계화의 와중에서 다시금 중심과 주변 사이에 등장하고 있는 ‘신종속’(New dependency)의 문제를 차분하게 반추할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세기가 오게 하라

우리는 위에서 우리 인류가 살아 온 20세기가 어떤 특징이 있는 세기였는가를 보았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지금까지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21세기란 관문을 우리는 넘어섰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역사법칙의 빛에서 볼 때 2000년이 새로울 것이 전혀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떠들썩하게 폭죽과 샴페인을 터트리면서 맞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디를 보던지 간에 21세기는 20세기의 연장일 뿐 새로운 것이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가 우리 한반도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반세기 이상 분단되어 왔던 우리 민족은 21세기에 가도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국가보안법이란 악법도 여전히 계속 존치하는 등 온갖 부조리가 그대로 계속될 뿐 새로운 변화란 없다.

우리는 21세기니 새 천년이니 하며 온갖 장미빛 비전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 아니고 냉철한 눈빛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2000년이 참으로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의 첫해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를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1.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을 폐지하고 새 세기는 국가보안법 없는 세기가 되게 하는 것;
2.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이기도 한 모든 양심수들, 노동자-농민-학생들을 석방, 사면하여 양심수 없는 세기가 되게 하는 것;
3. 소위 비전향 장기수들을 모두 그들이 원하는 땅인 북한에 돌아가게 하는 것;
4. 정계는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법안 제정으로 민중 생존권을 보장하고 개혁정치를 펴서 법적 정의, 경제적 정의, 정치적 정의가 실현되어 새 세기는 이 땅의 주인인 민중들이 안심하고 인간다운 생을 살 수 있는 새 세기가 되도록 하는 것;

5. 여의도의 황량한 시멘트 바닥에 천막을 치고 있는 노동자들-농민들의 천막을 강제․철거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농성투쟁을 하게 한 호소를 들어주어 스스로 천막을 걷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명동성당 앞에서나 여의도 집회 같은 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구호같은 것들이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에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21세기 초부터 일전하여 이 땅의 민중의 호소를 들어주어 새 천년은 모두가 웃음으로, 의욕을 가지고, 그리고 희망에 찬 마음으로 함께 맞이할 수 있게 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이것이 민족통일의 기반, 또 준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염원하고만 있어서는 새로운 세기나 새로운 세계가 오지 않는다. 우리가 오게 해야 한다.한/노/정/연

2000-01-0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