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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노동자 교양 경제학

현장에서 미래를  제53호
채만수

지 상 강 좌



강의 채만수부소장




  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오늘이 첫 강의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잘 진행되도록 고사지내는 의미에서 향내 나는 얘기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누구나 먹고 누고 그러면서 살지요? 그런데, 어때요? 그전에는 누구나 쪼그리고 앉아서 힘을 줬는데 요즘 도시에서는 어지간히만 살면 대개 점잖게 걸터앉아서 볼일을 보지요? 또 그곳이 이제 부엌 식당 가까이 실내로 들어와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점잖게 걸터앉는 변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양변기라고 하죠? 양변기라면 서양변기라는 뜻인데, 그것이 정말로 서양 변기인지 생각해 봤나요?

그것은 절대로 서양 변기는 아니죠? 예를 들면, 그 화려하다는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지 않아요? 그러니 서양사람들이 본래 그런 훌륭한 변기를 가졌을 리 만무하지요.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서양변기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변기지요.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발전한 결과로 생긴 거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냄새나는 얘기를 하는 것은 두 가지를 지적하기 위해섭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는 말하자면 후발 자본주의, 즉 서유럽이나 미국 등보다 훨씬 늦게 자본주의화된 사회로서 자본주의적인 것은 대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서양에서 오고 있으니까 자본주의적인 것을 무심결에 서양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미국의 절대적 영향 하에 있다는 사실도 작용하고 있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십만 년 동안 쭈그려 앉아 보던 일을 점잖게 걸터앉아 볼 수 있게 바꾸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세상 자체, 인간의 생활 습관, 사고까지도 통째로 바꿔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 1968년 프랑스에서의 5월혁명 이후 신좌파가 유행됐죠. 신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인간 사회에는 숱한 모순이 있는데 구좌파들은 왜 계급 문제만 가지고 난리치냐고 주장하지요? 맞아요. 인간사회에는 숱한 모순이 있지요. 그렇지만 신좌파의 그런 주장은 맞지 않아요.

그 주장이 왜 틀리냐 하는 것은 성경에 있어요. 신약성서에 보면 5병2어(五餠二魚)라는 것이 있죠? 떡 다섯 개, 그러니까 빵 다섯 개겠지요. 아무튼 떡 다섯 개하고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이렇게 두 손을 하늘로 올리고 기도를 한 후 수 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몇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는 얘기지요. 성경의 저자는 예수의 무한한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 얘기를 썼겠지만, 저 같은 무신론자가 보면 그 얘기는 하나님과 일체라는 예수 앞에서 은혜를 받더라도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고고한 사람이든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이든 인간이면 누구나 다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또 하늘 가릴 거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야 고고한 정신 활동도 있는 것 아닙니까? 동양에서는 그것을 유항산(有恒産)이어야 유항심(有恒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먹어야 제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것들은 그냥 생깁니까? 아니지요? 그것들은 인간이 토지와 같은 자연에 어떤 작용을 가해서, 즉 노동을 해서 획득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생산이라고 하고, 노동을 통한 이 생산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즉, 물질적 생활자료를 생산하는 것이 인간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정치적인 동물이라고도 하고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도 하지요? 인간사회에 정치야 한참 나중에 등장한 것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를 이루면서 살고 있지요. 그래서 인간은 혼자 고립적으로 자연과 대면하면서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산을 하지요. 인간사회에는 물론 수많은 관계가 있지만,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 즉 물질적인 생활자료를 생산하고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핵심 혹은 기초에 있고, 그 생산 활동이 일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생산관계, 다른 말로 계급관계입니다.

이렇게 물질적 생활자료를 생산하는 문제, 그러한 생산과정에서의 사회적 관계야말로 모든 기타의 사회적 관계에 우선하는 것이고, 또 기타 모든 사회적 관계의 기초에 위치하면서 그것들의 성격을 규정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중심에 놓고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고, 그것을 중심에 놓지 않고 마치 다른 관계들과 대등한 중요성밖에 안 갖는 것처럼 대하는 이른바 신좌파의 방법은 크게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그러한 관계입니다.



1) 자본주의란 ‘시장경제’와 동의어인가?


그러면, 자본주의란 무엇입니까? 가장 일반적으로 나오는 대답, 가장 광범한 사고방식은 자본주의 즉 시장경제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80년대 말 90년대 초 동유럽과 소련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질 때 부르주아 신문들은 주먹만한 활자로 예컨대 “동유럽이 시장경제화한다” 라고 기사 제목을 뽑았습니다. 그 뜻은 물론 ‘동유럽이 자본주의화한다’는 뜻입니다. 객관적인 보도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시장경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면 맞으면서도, 일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얘기해 봅시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가 아닌 중세봉건시대에도 존재합니다. 조선으로 보면, 한양 즉 서울에는 관의 허가를 받은 육의전(六矣廛)이 있었고 무허가 상인인 난전(亂廛)들이 있어서 서로 상권을 둘러싸고 때로는 폭력 충돌도 벌어졌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전국엔 고을마다 5일장(場)이 섰고, 또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물건을 팔러 다니던 보부상(褓負商)이 있지 않았습니까? 말하자면, 가장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그래서 ‘자연경제’라고도 불리는 중세봉건시대에조차 시장경제는 존재했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특히 그 말엽에 시장경제가 무척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고대 자본주의라고까지 부르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시장이란 것은 인류가 계급사회로 분해되기 이전인 원시공동체사회 말기에도 이미 나타납니다. 공동체마다 어떤 물건은 많이 남고 어떤 물건은 모자라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그러한 물건들이 공동체의 경계에서 서로 교환된 것입니다. 즉 공동체의 경계에서 시장이, 시장경제가 발생한 거지요.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는 물론 시장경제지만, 시장경제는 범주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포괄하면서 그것을 넘는 넓은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분명 논리적인 오류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자본주의는 어떤 시장경제냐? 우선, 가장 발달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노동생산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까지도 상품으로 되어 사고 파는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그러면 왜 노동력이 상품으로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자본주의란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경제체제

  ­노동력의 상품화: 직접생산자가 노동의 물질적 조건인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결과 발생

  ­자본주의란 사회적 생산이 ‘자본 + 무산의 임금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회

이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인간 생존의 절대적인 조건인 노동과 생산의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 생존에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문제가 물질적 생활자료의 생산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노동은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겁니까? 허공에 아무리 주먹을 휘둘러대고 발길질을 해대도 그건 노동이 아니지요?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 겁니다. 노동은 우선 자연에 대해서, 즉 토지에 대해 무언가 작용을 가해서 거기서 뭔가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하려면 우선 토지가 있어야 되겠지요? 이 토지야말로 인간이 노동을 해서 무언가 생활자료를 생산하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조건, 혹은 수단이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그것을 ‘본원적 생산수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토지만 있으면 노동을 해서 생산을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필시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인류사의 시작 시기, 초기 미개시대에는 아마 그랬겠지요. 그러나 미국의 프랭클린이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했듯이,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면서 노동생산력을 고도로 높이고, 또 사실은 신체 구조를 포함해서 자기 자신을 개조시키면서 오늘에 이른 것 아닙니까? 즉, 인간의 노동은 예컨대 개미나 꿀벌과 같은 동물들의 노동과 달리 고도로 발달한 노동이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하다 못해 간단한 호미나 낫 같은 도구로부터 거기 대우자동차 동지들이 일하는 공장처럼 거대한 기계 장치가 매개되어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자연과 인간 사이에 크고 작은 노동수단이 있는 거지요.

단적으로, 자연으로서의 토지와 그것을 매개하는 노동수단을 합해서 우리는 생산수단이라고 하는데, 이 생산수단이 있어야 인간은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노동을 해서 생활자료를 생산할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지도 않겠지요. 노동자란 단순히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임금노동자를 가리킵니다.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든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농민도, 그리고 예컨대 청계천 뒷골목이나 영등포 문래동에서 자기 선반(旋盤)이나 밀링 등을 가지고 마찌꼬바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을 가리켜서 노동자라고 하지 않잖아요? 노동자를 포함해서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 일반을 가리킬 때는, 물론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노동자란 말 대신에 근로자라는 말을 쓰지요.

얘기가 샛길로 샜는데, 아무튼 자본주의에서는 직접 노동을 하는 직접생산자들은 대부분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노동을 해야만 생활자료를 생산할 수 있고, 노동을 하려면 생산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직접생산자의 대부분은 그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거지요. 주요한 생산수단은 대부분 자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하튼 먹고살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되고, 노동을 하려면 생산수단과 관련을 맺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이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것이 곧 고용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고용이란 말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본가의 입장에서 본 말이지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취직 혹은 취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말하고, 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것이 고용이든 취직이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는 무언가 거래를 하지요? 노동자가 무언가를 자본가에게 팔기 때문에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그것을 월급이라고 부르든 임금이라고 부르든, 아무튼 돈을 주는 거지요.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무엇을 파나요?

잘못 생각하면 ‘노동’을 파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노동하는 능력, 즉 노동력을 파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노동력을 산 자본가는 예컨대 하루 7시간을 노동시킬 수도 있고, 8시간을 노동시킬 수는 있는 거지요. 노동자들의 저항과 그 때문에 확립된 법정 노동시간 규정만 없다면, 자본가들은 같은 돈을 지불하고도 하루에 12시간, 15시간, 혹은 그 이상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거지요. 실제로 19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렇게 노동을 시켰어요.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어떻습니까? 노동력이 상품화되고 고용이 발생하고 하는 것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고용이 발생하는 것이고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임금노동자들을 다른 말로 뭐라고 부릅니까? 무산자(無産者)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왜 무산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천박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인데, 예컨대 이런 게 있습니다. 제가 60년대 말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가 쓴 것으로 돼 있는 ꡔ공산주의 비판ꡕ인가 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확한 책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아주 두껍고 호화롭게 장정(裝幀)된 책이었습니다. 실제로 김형욱이가 쓴 것인지 아니면 정보부의 부하들이나 권력에 기웃거리는 지천에 널린 교수들을 시켜 쓰고 자기 이름만 붙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책에서도 ‘노동자들이 왜 무산자냐’고 언성을 높입니다.

어떤 노동자들이건 하다 못해 숟가락 한 벌, 양은 냄비라도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은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거리의 노숙자라도 하다 못해 몸에 걸친 옷가지라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또 그렇게 비꼬지 않더라도, 예컨대 요즘 같으면 많은 노동자가 집도 가지고 있고, 자가용 자동차를 가진 노동자들도 많지 않아요? 그렇게 크고 작은 재산을 가진 노동자들을 ‘왜! 무산자라고 선동하느냐!’는 거죠.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산자라는 말을 사회적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글자에만 기대어 억지로 해석해서 왜곡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인간이란 말은 ‘사람(人) 사이(間)’란 말이지 사람이란 말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무산자라는 말은 ‘재산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것은 그 생산수단이 노동을 하기 위한, 결국 먹고살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최근 경제위기를 전후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위 ‘명예퇴직’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요? 그 중에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거액의 퇴직금을 받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그러한 퇴직금을 받으면서도 직장을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잖아요? 왜 그렇겠어요? 물론 그 돈을 가지고 증권투자를 해서 떼돈을 벌 수도 있고, 고리대 놀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투기이고 언제 떼일지 모르지 않아요? 그래서 가만히 가지고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한데, 그 재산이라는 것이 계속 노동을 해서 불려나가거나 지켜내지 않으면 언제 증발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죠. 안 그래요? 그래서 소비재로서의 재산과 생산수단은 그 의의와 기능이 천양지차지요.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사회를 다시 정의하면 그것은 ‘노동력까지 상품화되는 시장경제’ 혹은 그러한 시장경제 사회인데, 다시 말하면,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와 무산자인 임금노동자가 결합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것을 생산이 자본주의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그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 즉 주를 이루는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입니다.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얘기하기로 합시다.



2. 자본주의 사회의 제 계급과 소득

   ­임금, 이윤, 지대, 이자 등등


1) 생산관계가 분배, 즉 소득을 규정한다

­생산관계로부터 자립한 ‘분배’, ‘분배 정의’, ‘분배 민주화’, ‘경제 민주화’ 등의 논의는 관념적․형이상학적이며, 소부르주아적 혼란을 반영하는 것, 혹은 범죄행위


자, 그러면,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는 여러 계급이 존재하는데, 그들 각각의 소득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이 문제는 노동자 계급에게는 특히 중요합니다. 노동자 계급의 소득은 임금인데, 그것이 결국 노동자 가족이 먹고사는 자금이고, 그것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어떻습니까, 생활이 아주 고달프냐 조금은 낫냐 하지 않습니까? 또 자본가들은 소득이 커서 먹고 남으면 어떻게 해요? 소득 중에서 그 남는 돈을 다시 자본으로 돌려서 키우지요? 명동이나 강남 신사동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고리대금업자나 지주는 어때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기어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존재하고 그들 중에 어떤 단체들은 자신들이 사회정의의 사도(使徒)라도 되는 듯이 소위 ‘분배 정의’니 ‘분배 민주화’니 혹은 ‘경제 민주화’니 하는 말들을 잎에 붙이고 살아요.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그 중에 대표격이지요.

어때요, 여러분? ‘경제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분배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경제를, 분배를 민주화해야 한다!’ ꠏꠏ 정말 달콤한 말이지요?

‘분배 정의’, ‘경제 정의’, ‘분배 민주화’, ‘경제 민주화’ 등등. 이런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그럴듯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그것들은 모두 다 전혀 아무 의미 없는 헛소리예요. 그리고 사실 그러한 논의․주장은, 잘 봐줘야 관념적․형이상학적인 사고에 젖은 소부르주아들의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고, 엄격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분배를 둘러싼 비밀을 쉽게 알 수 없도록 연막을 치는, 말하자면 일종의 범죄행위지요. 왜냐하면, 분배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해서 그것을 어떻게 민주화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분배 이전의 생산에 의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생산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거든요.

생산관계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다르게 의미 규정을 하는데, 결국은 어떤 사람이 생산수단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의 3대 계급은 자본가 지주 노동자인데, 자본가의 소득은 이윤인데 그것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나오고, 기본적으로 그 크기는 그 자본의 크기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자본가 가운데에는 상업이윤을 취하는 상인이나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자 같은 소위 금융자본가도 있는데, 이들의 소득 역시 그들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데에 오는 것이고, 따라서 그 크기도 기본적으로 그 자본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지 않겠어요? 지주는 땅을 가지고 있는데서 나오는 지대, 즉 소작료나 임대료 같은 것이 그 소득입니다. 당연히 그 지대 크기는 기본적으로 토지의 크기나 위치에 따라 결정되지요. 노동자는 어떻습니까?  노동자는 임금이 그 소득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력을 판 댓가지요. 나중에 임금 문제를 공부할 때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입니다. 그리고, 역시 임금을 얘기할 때 자세히 밝히겠지만, 이윤이나 이자, 지대는 모두 사실은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한 것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제 계급의 소득은 생산관계 그것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지, 생산관계 그것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분배를 바꾸려면 생산관계 자체를 바꿔야지, 그것은 그냥 놔둔 채 어떤 법률적 조치, 같은 말이지만 제도적 조치를 통해서 그것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분배 정의’ 등을 외치는 소부르주아들을 포함해서 부르주아적 관념에서는, ‘분배 정의’란 사실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러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따라서 분배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그렇게 ‘분배 정의’를 떠드는 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해보세요. “분배 정의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방금까지 ‘분배 정의’를 떠들던 자들이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사천왕이 돼서 살기를 띠고 달려들지요.

사실, 이렇게 법률적 혹은 제도적 조치를 통해서 분배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듯이 떠드는 사람들에 대한 맑스의 일침(一針)이 있습니다. 즉, 맑스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경제관계가 법률적 개념에 의해서 규제되는가? 그렇지 아니면, 반대로 법률적 관계가 경제관계로부터 발생하는가?”

                            (「고타강령 비판」)



2) 사회보장제도 등에 의한 소득의 재분배

­노동자 계급의 도전에 대한 총자본으로서의 국가의 대응,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획득물

­‘자본-임금노동’의 착취관계를 영속화시키는 것


다시 얘기합시다. 자본 혹은 자본가에는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소득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산업자본의 이윤이 있고, 자본은 계속 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팔아야 하기 때문에 상업자본의 상업이윤이 있고, 돈놀이하는 사람들의 이자가 있고 ꠏꠏꠏ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사상(捨象)해버리고, 그러니까 이러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머리 속에서 내팽개쳐버리고 분배를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재정학자들이 세금을 소득재분배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금은 소득재분배의 수단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유지비용입니다. 그 중 일부가 소득의 극히 부분적인 재분배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전혀 생계유지를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보장 같은 거죠.

이것이 생산관계와 어떤 관계냐 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첨예한 계급모순의 폭발, 즉 노동자들에 의한 체제전복을 예방하고 그들의 분노를 다소 무마하기 위해서, 자본의 수호자로서의 자본주의 국가가 마련한 장치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볼 때 소득의 이러한 부분적인 재분배, 사회보장이 시작되고 그것이 활발했던 시기는 노동자의 저항이 강화될 때였습니다.

먼저 187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 정권 때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부르주아지를 구제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탄압법’으로 피의 억압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화책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거죠. 또 미국의 경우 1930년대 대공황기에 노동자 계급이 전투적․혁명적으로 되어 가자 이를 무마하고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서 루즈벨트 정권 하에 사회보장제도가 도입․강화되죠. 오늘날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그 당시에 윤곽이 잡힌 것입니다. 영국이나 기타 서유럽의 경우는 나치즘 및 파시즘에 항거하면서 그리고 특히 2차 대전을 경과하면서 노동자들이 불온해지고 그 저항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때에 사회보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회보장제도는 한편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성과물이자,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임금노동’이라는 착취관계를 안정화․영속화시키려는 자본의 대응이라는 이중의 모순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의 확대를 위해 투쟁할 때에도 언제나 그 의의와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 그것을 총전략노선상의 제한적 전술로 위치 지우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다시 세금 등을 통한 사회보장, 즉 국가에 의한 소득의 일정한 재분배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사실은 한 나라의 노동자들에 의한 연간 총 가치생산물 가운데 총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배분의 한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보장의 기금은 대부분은 자본가 계급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노동자 계층의 소득 일부를 국가가 세금 등으로 흡수해서 최하위 계층의 노동자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배관계도 기본적으로 생산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다음에는 자본주의와 여타 생산양식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봅시다.



3. 자본주의와 여타 생산양식은 어떻게 다른가?


1)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소생산 등


경제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대개 인류사회는 원시공산제, 고대 노예제, 봉건제를 차례로 거쳐서 자본주의 사회로 와 있다고 배웠을 겁니다. 대략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도 오래 돼봤자 겨우 300~400년 전에 시작된 것입니다. 짧게 잡아도 분명히 수십만 년에 이를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자본주의의 역사란 그 시간적 길이만으로 보자면 정말 보잘것없는 순간에 불과하지요. 사실은 자본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계급사회 그 자체의 역사도 시간상의 길이로는 인류사 전체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인류사 수십만 년에 계급사회는 길어 봤자 불과 5, 6천 년이니까 말입니다. 결국 인류사 대부분은 원시공산제 사회, 아무튼 공산제 사회였던 거지요.

다시 인류사회의 발전단계에 대해서 얘기해봅시다.

일반적으로 ‘원시공산제ꠏꠏꋼ노예제ꠏꠏꋼ봉건제ꠏꠏꋼ자본제’의 순서를 밟아왔다고 말하고, 또 대략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실은 어떤 단계를 밟아왔냐 하면, 순차적으로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로, 거기서 봉건제로, 그리고 거기서 자본제로 간 것이 아니라 원시공산제에서 어느 지역․사회는 노예제로 이행하고, 어느 지역․사회는 봉건제로 이행했습니다. 예컨대, 그리스와 로마 지역은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로 발전하고, 게르만의 중앙유럽은 봉건제로 발전한 거죠. 그런데 노예제는 모두, 여러분이 모두 아시는 것처럼, 다시 봉건제로 이행했습니다. 그래서 ‘원시공산제ꠏꠏꋼ노예제ꠏꠏꋼ봉건제ꠏꠏꋼ자본제’의 순서를 밟아왔다고 얘기됩니다. 그런데 이는 방금 본 것처럼 반드시 모든 지역이 노예제를 거쳐 봉건제로 이행하는 순서를 밟아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말하자면 논리적인 순차(順次)인 셈이지요. 그 실제의 발전경로를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게 됩니다.


논리적 순차 : ‘원공ꠏꠏꋼ노예제ꠏꠏꋼ봉건제ꠏꠏꋼ자본제’

실제의 이행 :

원시공산제

노예제

 

자본주의

 

봉건제


원시공산제 사회는 말 그대로 원시적인 공산사회입니다. 인간은 씨족 또는 부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따라서 생산수단인 토지를 포함한 생산수단은 그 공동체 성원의 공동소유였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공동으로 노동해서 균등하게 분배하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 생산양식이 이렇게 공산제였던 것은 당시의 노동생산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는 생산력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노동하고 공동으로 분배하지 않으면 모두의 생존이 불가능했던 거죠.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컨대 보다 비옥한 토지를 위해서 혹은 기타 이유로 공동체간에 전쟁이 벌어졌다고 합시다. 그리고 어느 쪽인가 한쪽이 이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이긴 쪽은 진 쪽의 사람들을 어떻게 했을 것 갔습니까? 포로로 붙잡아서 전쟁노예로 삼는다?

언뜻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을 포로로 붙잡아서 노예로 삼으려면 그들이 노동하여 생산하는 생산물이 그들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그러니까 포로로서 노동하는 그들이 노동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살고, 그리고 나서 무언가 생산물이 남아야 하는데, 즉 잉여생산물이 발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시의 생산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전쟁에서 이겨서 상대방을 노예로서 부려 봤자 생산력이 낮아서 아무런 잉여노동을 착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부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당시는 전쟁에서 이기면 아마 두 길 중에 하나를 택했을 것입니다. 아예 다 죽여 버리든지, 아니면 같이 공동체를 이루든지 말입니다.

그러면 원시공산사회와 계급사회를 가르게 되는 것, 그 이행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노동생산력의 증대였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생산력이 너무나 낮아서 예컨대 포로를 노예로 삼아 본들 그가 일하는 성과가 자기 목숨을 부지할 정도였을 때에는 그 포로를 노예로 부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시사회에서도 생산력은, 극히 더디겠지만, 그리고 때로는 여러 사정으로 후퇴도 거듭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꾸준히 발전하지 않았겠어요? 그리하여 그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어느 수준에 달해서 인간이 노동했을 때 그 목숨을 부지하고 남는 것이 생기게 되었고, 그 때부터 노예로 삼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잉여노동이 발생할 만큼의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원시공동체로부터 노예제 같은 계급사회로의 이행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사회가 계급사회로 분열하게 되는데, 노예제에서 노예는 말하는 소나 말하고 같은 것입니다. 노예가 곧 생산수단 자체이고 인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봉건제는 그에 비해서 직접생산자인 농노, 나중에는 덜 예속적인 예농들은 신분적으로 부자유스럽고 토지에 결박되어 있기는 하지만 반쯤은 인간으로 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노예의 경우는 생산수단 그 자체였기 때문에 매매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예주인은 노예에 대한 생사 여탈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봉건 농민의 경우에는 그 예속이 가장 강했던 농노제 시대, 즉 강제부역이 부과되던 노동지대의 시대에조차 자신들이 경작하는 토지 및 기타의 생산수단에 대해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일정한 권리, 점유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봉건영주의 보다 우월한 소유권과 비교해서 하위의 소유권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이 권리는 봉건영주조차도 임의로 탈취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노예제나 봉건제와 자본제의 기본적 차이는, 직접생산자들이 노예제의 경우 생산수단 그 자체거나 봉건제에서처럼 본원적인 생산수단인 토지에 묶인 예속민였음에 비해서, 자본제사회의 노동자들은 자유민이라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는 더 이상 신분적인 예속민이 아니고 ‘자유로운’ 노동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직접생산자는 ‘자유로운’ 노동자라고 말할 때 이 ‘자유롭다’는 말은 사실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물론 신분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지만, 다른 의미는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즉, 무산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신분적인 자유도 이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에 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이 노동력을 자유롭게 구매하기 위해서는 그 노동력의 소지자인 노동자가 신분적으로 자유롭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위대성에 대해서 배웁니다. 노예의 해방자로서의 위대성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노예의 해방자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위대합니다. 그러나 혹시 그가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노예의 해방자로 나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당시 한창 자본주의 생산이 확대되고 있던 북부의 노동력 부족이 남북전쟁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아닙니까? 즉, 노예를 해방하고 나서야만 북부의 자본가들은 그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잉여노동을 착출하여 자본을 축적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이른바 ‘반봉건제’에서의 지대와 경제외적 강제


(1) 지주-소작제의 성격 논쟁 (혁명의 성격과 주체 논쟁)


이제 한국에서의 사회과학의 르네쌍스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80년대에 벌어졌던 ‘사회구성체 논쟁’ 혹은 ‘사회성격 논쟁’에서의 ‘반봉건 논쟁’에 대해서 봅시다. 바로 이른바 ‘지주-소작제’의 성격 논쟁입니다. 이제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에 비해서 아주 소수이고 그 노동력조차 대부분 노령화되어서 새로운 노동력이 내부에서 재생산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다가 생산방식 면에서도 전통적인 지주-소작관계가 많이 해체되고 새로운 상업적 영농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이러한 조건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주-소작제’ 문제가 사회적 논쟁의 표면에 떠오르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 아시는 것처럼, 80년대에는 이것이 인기있는 논쟁의 하나였는데,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재생소작제가 상당히 광범하게 퍼져 있어서 현실적인 사회적 문제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주-소작제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논쟁은 80년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20년대 말엽 이래 한․중․일 좌파의 꾸준한 논쟁거리였습니다. 예컨대, 당시 조선에서는 전 인구의 80% 정도가 농민이고, 그중 80% 정도가 순소작농 혹은 소자작농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중은 적었지만 소작농 비율이 높았습니다. 중국에서도 역시 그랬고요. 그 때문에 그들의 성격은 사회혁명을 추진하는 데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사회혁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는 그 사회의 성격과 직접생산자의 성격이 중요합니다. 그 성격의 여하에 따라 당면한 혁명의 성격이 부르주아 혁명이냐 사회주의 혁명이냐가 나오는 것이죠. 소작농이 직접생산자의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던 조선이나 중국 사회 같은 곳에서는 당연히 그들 지주-소작관계의 성격 자체가 그 사회의 성격도 규정하면서, 또 그들이 혁명의 주력군이 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만일 그들의 성격이 자본주의적 노동자라면, 그 사회는 자본주의적 사회로서 당면한 혁명의 성격은 사회주의 혁명이고, 소작농은 당연히 그 혁명의 주력군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성격이 반봉건 농민이라면, 그 사회는 아직 반봉건사회여서 당면한 혁명의 성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소작농민은 혁명의 주력군을 형성하되 선진적인 노동자 계급에 의해서 선도되는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 눈에도 자본제적인 생산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지주-소작관계는 부차적인 의의를 가졌지만, 그 성격 역시 중요했습니다. 만일 그 소작농민이 자본주의적 노동자일 경우 그들은 당면한 사회주의 혁명의 주력군의 일부를 이룰 것이고, 반봉건 농민이라면 노동자 계급과 더불어 인민전선을 형성하는 혁명의 보조역량에 위치지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80년대에 농지개혁 후에 다시 등장한 재생소작제로서의 지주-소작제가 ‘현실적인 사회적 문제로 되어 있었다’고 했을 때, 그리하여 그것이 주요 논쟁의 대상으로 되었을 때, 그 논쟁 역시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이 문제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 특히 그 발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지주-소작관계의 성격에 대해서는 그것을 자본제적 생산관계로 보는 견해와 봉건적 생산관계로 보는 견해가 대립해 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자의 견해를 노농파, 후자의 견해를 강단파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각각 자본파, 봉건파라고 부릅니다.

이외에 그것을 이른바 ‘소농형 차지농’으로 규정하는 견해가 주로 70년대 이래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는 그 논자들이 아무리 그것이 생산관계의 성격을 밝힌 것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사실은 ‘소작농’이라는 말 자체의 동의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에 길게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노농파․자본파의 주장은, 사실 소작농의 실태는 임금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소작농은 ‘사실상의 임금노동자’이고 따라서 지주-소작관계는 자본제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에 속하는 국내의 아마 가장 대표적인 논자는 김준보 전 고려대 교수일 것입니다. 김 교수는 60년대에 썼던 ꡔ농업경제학서설ꡕ이던가 하는(미안합니다. 오래 전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못해서), 당시 보기 드물게 진지한 책에서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임금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했을 때 ‘사실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말로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상’이라는 말은 많은 공통점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엄밀하게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임금노동의 가혹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본제를 가리켜서 ‘사실상 노예제나 같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이 ‘자본제=노예제’라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주-소작관계를 자본제로 보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것을 ‘반(半)자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ꡔ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ꡕ의 이진경이나 ꡔ한국자본주의와 농업문제ꡕ(1987, 아침)의 필자들이 그들입니다. 필자 간 그 주장에 물론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말하자면, 우선 그 발상이 대단히 ‘천재적’입니다.

레닌의 ꡔ러시아 자본주의 발달사ꡕ나 ꡔ자본론ꡕ 제1권의 본원적 축적 논의를 보면 반(半)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천재적 머리 속에서 소작인들은 반프롤레타리아트이고 그 생산관계는 반자본제인 것입니다. ‘반봉건제’라는 생산관계가 있는데 ‘반자본제’라는 생산관계가 없을 수 없다는 생각도 깔려 있겠죠.

그러나 반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반프롤레타리아트란 토지가 없어서 소작으로 농사를 짓던, 자기 땅에서 자작을 하던, 자기가 경작하는 땅이 너무 좁아서 거기에서의 노동만으로는 생계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일주일의 몇 일은 공장에서 품팔이를 하거나 가까운 대농장에서 품팔이를 하는 사람들, 혹은 1년 중 농번기에는 자신이 경작하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대도시의 공장으로 가서 임금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반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하는 생산관계는 자신이 경작하는 땅과 관련해서는 소생산으로서의 자작농이나 소작농이 되는 것이고, 농장이나 공장에 나갈 때는 자본-임노동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하는 생산관계는 농민적 토지소유 혹은 지주-소작관계와 자본-임노동관계의 양자로 분열되는 것이지 반자본제가 아닙니다. 반프롤레타리아트에서 반자본제를 끌어내는 것은 천재적인 개념반사이긴 하지만, 전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이들 ‘반자본제론자들’은 지주-소작관계가 본질적으로 자본제적 관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지대 문제 및 ‘경제외적 강제’의 문제 등을 거론하는데, 차츰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우선, 지주-소작관계의 성격을 밝혀두자면, 그것은 봉건제적 관계입니다. 소작농과 임금노동자는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 논쟁에서 자본파나 노농파가 소작농을 임금노동자로 규정하면서 당면 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한 것은 오류이죠.

지주-소작관계에서는 직접생산자인 소작농민에게 생산수단이 대여됩니다. 맑스는 ꡔ자본론ꡕ 제3권에서 아일랜드의 소작농을 논하면서 (ꡔ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ꡕ에서의 이진경의 허위 주장과는 반대로), 생산수단이 직접생산자에게 대여되는 관계는 ‘비자본주의적 관계’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맑스가 이렇다고 얘기했다’고 해서 바로 그저 ‘이렇다’고 믿을 여러분이 아니지요?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고요. 당연히 ‘왜?’라는 문제를 추구해야겠지요.

사실 지주-소작관계가 자본제냐 봉건제냐를 가름하기 위해서는, 지주-소작관계에서 착출되는 잉여노동․잉여가치로서의 소작료, 즉 지대의 성격을 고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소작료는 토지 소유자의 입장에서 보면 토지소유의 실현이기 때문에,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지대입니다. 그런데 이 지대는 자본주의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자본제적 지대와 봉건제적 지대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로 귀착합니다.



(2) 자본제적 지대와 봉건적 지대, 그리고 건물 임대료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와중에서 이 문제를 가장 요란하게 제기하고 또 그 때문에 가장 화려한 각광을 받은 것이 이진경의 ꡔ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ꡕ이니, 거기서부터 얘기를 해 봅시다.

거기서 이진경은 봉건적 지대와 자본제적 지대의 차이는 ‘지대율’의 차이에서 찾아야지 그 ‘지대 형태’에서 찾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만일 지대 형태에서 그 차이를 찾는다면, “1986년의 서울의 건물주는 봉건지주다!”라는 반어를 고딕체로 강조합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과 관련하여 여기서 잠깐 지대와 건물 임대료 문제를 살펴봅시다. “1986년의 서울의 건물주는 봉건지주다!”라는 반어에는 ‘건물의 임대료=지대’라는 강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건물의 임대료는 지대입니까? 건물은 당연히 토지 위에 지어지니까 그 임대료에는 토지에 대한 지대도 포함하겠지요. 그런데 그렇더라도 ‘건물’ 임대료라고 하면 개념적으로는 건물 자체의 임대료를 표상합니다. 이는 명백히 토지소유의 실현으로서의 지대, 즉 토지 임대료로서의 지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건물의 임대료=지대’라는 주장은 사실은 ‘지대=부동산 임대료’라는, 전적으로 잘못된 사고의 표현입니다. 건물 임대료는 개념적으로는 그 건물의 건축에 투자된 고정자본의 이자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고정자본의 이자뿐만 아니라 그 건물이 서 있는 토지의 지대가 포함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자본가적 부기 개념의 ‘건물의 감가상각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개념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건물 임대료와 지대는 명백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봉건지대와 자본제적 지대를 가르는 것은 잉여노동의 본원적인 형태, 제1차적 형태가 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봉건적 관계에서는 봉건영주 혹은 지주가 농노 혹은 예속농민, 소작농으로부터 잉여노동을 지대로서 착출합니다. 그리고 봉건사회에 존재하는 사업이윤이나 고리대이자 등등은 이 지대의 파생형태, 혹은 분지형태(分肢形態)입니다. 말하자면, 봉건적 관계에서는 잉여가치가 본원적으로, 제1차적으로 지대의 형태를 취해서 나타납니다.

이에 비해서 자본주의에서는 잉여노동의 일차적 형태는 이윤으로서 나타나고 지대는 이윤의 파생형태로서 나타납니다. 실제로 차지농업자본가에 의해서 농업이 자본제적으로 경영되는 경우 그 자본가는 농업노동자의 잉여가치를 먼저 이윤으로서 착취하고, 그 가운데 평균이윤율을 넘는 부분을 지대로서 지주에게 지불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지대는 잉여노동의 일차적 형태가 아니라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핵심적인 경계선입니다.

그런데 지주-소작관계에서 소작료, 즉 지대는 잉여가치의 일차적 형태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자본가에 의해서 이윤으로 착취된 후에 그 일부가 파생된 형태이니까? 분명히 ‘잉여가치의 일차적․본원적 형태’지요? 그렇습니다. 소작료는 잉여가치의 본원적 형태입니다. 이는 곧 지주-소작관계가 봉건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봉건지대=고율’론과 봉건지대의 경향적 저하법칙


그런데 이진경은 그런 구분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것을 가르는 것은 지대율이라고 말합니다. 봉건지대는 고율이고 자본제적 지대는 저율이라는 거지요. 근대사에서 우리가 경험한 ‘봉건’지대가 고율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봉건지대는 고율이고, 자본제적 지대는 저율’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립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어떤 지주가 땅을 빌려줄 때 그 토지의 생산력, 즉 그 소출은 누가 경작하던 당시의 특히 기술적 수준에 규정되어서 대략은 일정하다고 전제되겠지요? 그런데 그때 두 사람이 서로 자기에게 토지를 빌려줄 것을 청해요. 소농민과 자본가가 말입니다. 그 지주는 누구에게 토지를 빌려주겠어요? 물론 지대를 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람에게 빌려주겠죠. 역사는 봉건적 토지 임대에서 자본제적인 것으로 발전해 왔는데, 이는 자본제적 토지를 이용하는 자본가 쪽이 같은 시점에서 더 많은 지대를 주기 때문에 그쪽으로 발전한 것 아니겠어요?

따라서 봉건적 지대가 고율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죠. 봉건지대는 저율입니다.

그런데 봉건사회에서는 많은 것이 관습화됩니다. 그 때문에 지대 크기도 관습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기대 크기가 관습화되어 예컨대 서기 1300년에 쌀 50가마하던 지대는 대개 1700년에도 50가마인 채라는 거지요. 노동생산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높아지는데 지대 크기는 여전히 50가마일 때, 그 지대율에는 어떤 변화가 있겠어요? 당연히 그 생산력의 증대 비율에 비례하여 낮아지지요. 일본의 다까하시(高橋行二郞) 교수는 봉건지대율에는 그러한 경향이 있다면서, 그것을 ‘봉건지대의 경향적 저하법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농민경제 내부에 잉여노동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거기서 자본제적 생산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봉건지대는 고율’이라는 일부의 억지를 폭로하기에 충분한 연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하에서나 70~80년대의 지주-소작관계에서 소작료는 가혹한 고율 소작료였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4) 반봉건제와 고율 소작료


여기서 반봉건제 문제가 나옵니다.

반봉건제란 자본주의적 시장에 의해서 포위된 봉건적 생산관계를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시장에 의해서 포위되는 봉건제, 즉 반봉건제에서는 착취가 고도로 강화되고, 따라서 그러한 반봉건제적 관계인 지주-소작관계에서는 고율 소작료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되지요. 왜냐고요?

상품은 두 가지 요소의 통일 즉, 가치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통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조건의 사회에서는 사회성원의 주요 관심이 사용가치에 모아지고, 어떤 사회에서는 교환가치에 모아지게 됩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자연경제 사회라고도 불리는 봉건적 중세사회처럼 시장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 따라서 착취자들의 주요한 관심은 사용가치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착취자의 착취는 크건 작건 어떤 범위에 제한되게 되고, 잉여노동에 대한 무제한한 욕망은 생기지 않습니다. 즉, 본래의 봉건제 사회에서는 착취가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이죠. 이것은 그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해 봅시다. 어떤 봉건영주가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가신의 최대한의 소비한도를 훨씬 넘어서 농민으로부터 그것이 쌀이든 밀이든 아무튼 엄청난 양의 곡물을 착취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는 그 곡물을 모두 창고에 쌓아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오늘날처럼 냉동이나 건조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은 조건에서 말입니다. 명백히 불가능합니다. 만일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어떤 영주가 그것을 시도한다면, 그 집은 곧 폐가가 되겠죠. 온통 곡물 썩는 냄새와 침출물이 집안을 휘감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봉건시대의 영주들은 배불리 먹고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고 할 정도만 착취를 하게 되죠. 착취 자체가 제한적으로 되고, 그래서 지대율이 낮아져 가는 경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리고 예외적이긴 하지만 고대 노예제 후기에도 시장이 발달합니다. 시장경제사회라고 하지요.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교환가치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교환가치에는 질적 차이는 없고 양적 차이만 존재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없이 커다란 양을 추구하게 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요. 그래서 시장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망․욕심이 한없이 커지고, 따라서 착취도 한없이 강화됩니다. 이제 곡물은 창고에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게 되는 것이지요.

봉건적 생산관계도 자본주의적 시장에 포위되면 착취자들의 주요 관심이 교환가치에 가게 되고, 따라서 착취가 강화됩니다. 즉, 소작료가 극히 고율로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지주-소작관계는 봉건제이기 때문에 그 소작료가 고율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에 포위된 봉건제, 즉 반봉건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주-소작관계를 직접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발달하는 데에 따른 착취 강화에 대한 보다 훌륭한 설명으로는 ꡔ자본론ꡕ 제1권 제8장 제2절 「잉여가치에의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 경제외적 강제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 가운데 지주-소작관계의 성격 혹은 본질과 관련해서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경제외적인 강제’의 유무 문제였습니다. 당시의 지주-소작관계에 과연 그 ‘경제외적인 강제’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주로 ‘자본파’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봉건적 생산관계에는 경제외적 강제가 필수적으로 수반하는데, 현재의 지주-소작관계에는 그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본제적인 생산관계 아니냐?’ 하는 것이 주요 주장이었지요.

그런데 이 문제는 물론 ‘자본파’ 쪽에서만 제기한 것은 아닙니다. 지주-소작관계를 본질적으로 봉건적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자 가운데 한 분이었던 고(故) 박현채 교수께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그분은 ‘지주-소작관계는 본질적으로 봉건제 생산관계지만, 다만 현대의 재생소작제에는 예외적으로 경제외적 강제가 없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사회과학의 개척자라고도 할 수 있는 박현채 교수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얘깁니다. 극심한 파쇼적 사상 탄압 때문에 ꡔ자본론ꡕ을 항상 소지하고 참조할 수 없었던 것이 주요 이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지주-소작관계에도 ‘경제외적 강제’는 존재합니다. 여기서 자본제 노예제 봉건제의 노동과정상의 특징에 대해서 봅시다.

사람들은 보통 자본주의의 노동자를 ‘임금노예’라고 하지 ‘임금농노’라고는 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자들은 주로 공장노동자들인데 농노라는 말에는 무언가 농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미가 있어서요? 경제학 혹은 경제사는 본래 영국에서 발달했고 따라서 농노라는 말도 그러한 영어의 번역어인데 농노를 가리키는 영어 serf는 전혀 농업과 관련한 이미지에 묶여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서양에서도 임금노동자를 가리켜 ‘wage slave’, 즉 임금노예라고 하지 ‘wage serf’ 즉 임금농노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노동자를 임금노예라고 부를 때, 그것은 자본제와 노예제 간의 어떤 공통점에 주목하는 것이고, 따라서 동시에 자본제와 봉건제 간의 어떤 차이점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노동자나 노예의 노동은 언제나 그 주인에게 자본가에게 통제되지요. 생산과정 자체가 그들 노예주나 자본가, 혹은 그들의 대리인에 의해서 지휘․통제되고, 그리하여 그 노동생산물은 그들 노예주나 자본가의 창고에 들어가지요. 이렇게 직접적 생산과정 곧 노동과정이 노예주나 자본가 혹은 그 대리인에 의해서 통제되는 점이 노예제적 생산과 자본제적 생산에 공통된 특징이지요.

그러나 봉건제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봉건적 예속농민이나 소작농의 생산에 지주가 간여해서 그 노동과정을 지휘․통제하지 않습니다. 즉, 그들 봉건적 생산자들은 자신의 토지의 경영과 그 위에서의 노동과정상에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생산물도 농민들의 창고로 들어가지요. 이렇게 경영의 자율성 때문에 농민의 창고에 들어가는 노동생산물을 수탈하는 것이 바로 ‘경제외적 강제’입니다. ‘경제외적 강제’란 바로 생산과정 외부에서의 강제를 말하는 것이지요.

지주-소작관계에서도 소작인은 경영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 그 생산과정이 지주에 의해서 지휘․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그 생산물은 소작인의 창고로 들어가고, 따라서 지주가 그것을 수탈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경제외적 강제’가 필요하지요. 그 ‘경제외적 강제’는 바로 소작계약이고, 그 이행을 강제하는 근대국가의 법률 및 사법․경찰기구지요.

ꡔ자본론ꡕ 3권 제47장에 보면 ‘경제외적 강제’에는 봉건제 초기의 원시적 채찍에서부터 화폐지대 시대의 계약관계까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소작계약, 그리고 국가의 민법 등이 바로 지주-소작관계에서의 ‘경제외적 강제’인 것이지요.



(6) 과도기적 지대 형태


봉건적 지대는 잉여노동의 일차적 형태고 자본제적 지대는 이윤의 파생인데, 어쨌든 그것들은 토지소유로부터 오는 것이죠. 말하자면, 지대란 순전히 토지소유의 실현입니다.

그런데 지대에는 ‘과도기적 형태’ 혹은 ‘중간 형태’라는 게 있습니다. 봉건제적 토지 이용으로부터 자본제적 이용으로 이행하는 데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지대들이지요.

그러한 중간 형태에는 우선 분익농(分益農)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지주-소작관계에서는 지주가 소작농민에게 대여하는 것은 토지뿐입니다. 호미나 낫, 쟁기 같은 농기구나 비료․종자 같은 여타의 생산수단은 소작농민이 조달하고 따라서 그의 소유지요. 이러한 관계에서의 지대, 즉 소작료는 순전히 ‘토지’를 임대한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주가 땅을 빌려줄 뿐만 아니라 쟁기, 소, 종자 등 기타의 생산수단도 빌려주는 형태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지주’는 소작인으로부터 물론 ‘소작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여전히 ‘소작료’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토지를 임대한 대가만이 아니라 쟁기나 소, 종자 등 기타의 생산수단을 임대한 대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소작료’는 순수한 지대, 즉 순수한 토지소유의 실현이 아니지요. 그러한 관계가 바로 봉건제와 자본제 간의 중간 형태로서 분익농입니다.

다른 중간 형태로는 ‘지주경영’이 있습니다. 지주가 자신의 토지를 소작농민들에게 빌려주는 대신에 농업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직접 농업을 경영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지주의 소득은 토지소유의 실현으로서의 지대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자로부터 이윤으로서 착취한 잉여노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는 뒤집어 말하면, 이때 농업경영자의 소득은 임금노동자로부터 이윤으로 착취한 잉여노동 가운데, 사회적 평균이윤율을 넘어 지주에게 지대로서 지불되어야 할 부분도, 자신이 곧 지주이기 때문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잉여노동이 ‘과도기적 형태’ 혹은 ‘중간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주경영’에서 그 지주와 그한테 고용되는 노동자들이 맺는 생산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본제적인 임노동관계지요. 그 때문에 조선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생에 대해서 관심이 깊었던 연세대의 김용섭 교수가 주목한 부분이지요.

김 교수는 60년대 말인가 70년대 초에 출판된 ꡔ조선후기농업사연구ꡕ에서 조선후기의 ‘양안’(量案), 그러니까 당시의 토지문서들을 분석하면서 ‘경영형 부농’이란 범주를 지적하지요. 정확히 ꡔ자본론ꡕ에서 말하는 ‘지주경영’과 동일한 것이지요. 순전히 제 짐작이지만, 아마도 역시 당시의 파쇼적 분위기 탓에 ‘지주경영’이라는 ꡔ자본론ꡕ 상의 용어를 피해서 ‘경영형 부농’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김 교수가 분석해 낸 ‘경영형 부농’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비중으로 존재했던 것인지, 논쟁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이라는 범주는 아무튼 귀중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4. 자본주의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1) 자본의 본원적 축적

  : 직접생산자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과 자본-임노동관계로의 편제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사회는 언제 어떻게 발생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보다도 노동생산력의 일정한 발전에 기초해서 발달합니다. 일반적으로 봉건제 사회는 생산력 발전이 없었던 정체된 시기였다는 등의 얘기가 많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처럼 생산력이 급속하게 발전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때문에 자주 그 발전이 방해받고 심지어 크게 후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봉건시대에도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노동생산력은 꾸준히 발달했지요. 그 결과로 그 생산력이 발전한 봉건적 생산관계가 이제 보다 고도의 생산력 발전을 제약하는 질곡으로 되고, 그에 따라서 기존의 생산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것이 극복되게 되지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제는 우선 생산수단이 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즉 생산수단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하는 것과 자유로운 노동자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의 앞 뒤 면입니다.

봉건시대의 농민은 비록 신분상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예속민이었지만, 그들은 호미나 쟁기, 기타 종자 등 자신들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토지에 대해서조차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사학에서는 그것을 토지에 대한 ‘점유권’이라고도 하고, 영주의 상급 소유권에 비해서 ‘하급 소유권’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뒤집어 얘기하면, 봉건시대 당시에는 노동생산력이 낮아서 농업노동력이 농업생산에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봉건 지배자들을 그들을 토지에 묶어 뒀던 것이지요. 그것을 경제학에서는 농민이 토지에 ‘긴박’(緊縛)되었다고 합니다. 단단히 묶여 있다는 뜻이지요. 동양에도 그러한 게 있었느냐는 논쟁이 있지만, 예컨대 조선조 때 농민들의 이산(離散)을 방지하기 위한 ‘5가작통법’(五家作統法)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아무튼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들 농민으로부터 본원적 생산수단인 토지를 수탈하여 그것을 자본으로 전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토지를 잃은 농민은 이제 봉건적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되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호구지책을 세우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노동자들은 이중으로 자유로운데, 우선 신분적으로 자유롭고, 즉 더 이상 노예도 아니고 농노도 아니고, 두 번째로는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지요.

경제학과 경제사에서는 이렇게 봉건농민으로부터 토지, 즉 생산수단을 수탈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직접생산자를 자본-임금노동 관계로 편재하는 것을 ‘자본의 본원적 축적’ 혹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합니다. ‘자본의 시초 축적’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의 이 본원적 축적은 직접생산자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당연히 농민들의 저항이 강화되고, 그에 따라서 그들 농민에 대한 국가의 억압도 극도로 강화됩니다. 수많은 농민반란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무혈진압이 행해지는 아주 처절하고 잔인한 과정이지요. 그 때문에 맑스는 ꡔ자본론ꡕ에서 이 과정을 ‘온 몸의 모공(毛孔), 즉 털구멍마다 선혈과 오물이 뚝뚝 듣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를 좀 해 볼까요?

모두 아는 것처럼, 89년에서 91년에 걸쳐 동유럽과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 언론은 온통 이들 나라들이 ‘시장경제화’된다고,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화된다고 떠들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그런 선전이 좀 뜸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소련이나 동유럽이 자본주의화하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소련이나 동유럽은 정말 자본주의화가 되고 있는 것입니까?

제 대답은 ‘동독과 같은 소수의 예외를 빼고는 쉽사리는 자본주의화되지 않을 것’, 혹은 ‘결코 자본주의화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자본주의화된다는 것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를 거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직접생산자들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하는 과정이어서 봉건농민으로부터도 숱한 반란이라는 저항을 받은 과정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그것을 저항없이 수용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직도 소련이나 동유럽은 자본주의화되고 있지 못하고, 계속 사회적․경제적 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이 자본의 본원적 축적, 즉 자신들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 공장이나 광산 등에 대한 통제권의 박탈을 좌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2) 한국에서의 자본주의의 성립

  -­성립시기를 둘러싼 논쟁과 논거


(1) ‘지배적 생산관계’이란?


지금 우리 사회는 아주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자본제적 생산관계, 즉 자본-임노동관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각종의 자영업, 자작농, 마찌꼬바, 구멍가게 등등의 소생산도 존재하고, 부분적으로는 지주-소작관계, 즉 봉건제적 관계도 존재하고, 사실은 불법적이고 은밀하게지만 범죄의 세계에는 극소수 노예제마저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경제제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그 사회의 성격을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즉, 우리 사회는 어떤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여러 경제제도 혹은 생산관계 가운데 ‘어떠한 관계가 가장 지배적이냐’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는 자본-임노동관계가 가장 지배적이고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배적 생산관계’라는 게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진경은 그 유명한 ꡔ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ꡕ에서 지배적 생산관계를 다른 생산관계를 구축해버리는 선진적 생산관계라고 말합니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야말로 봉건적 관계를 구축하고 우세를 점하는 생산관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지배적 생산관계’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말은 틀립니다. 한국에서는 늦어도 18세기가 되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배적 생산관계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그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할 수박에 없는데, 그렇게 규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규정한다면, 사실 말이 안되죠.

‘지배적 생산관계’란 것은 ‘양적으로 우세한 생산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 생산관계가 나란히 존재할 때, 그 가운데 양적으로 우세한 생산관계에 따라서 그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이 되었는가를, 즉 언제부터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였는지를, 여러 설과 논쟁을 통해서 보기로 합시다. 다만,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즉 개항이나 근대적 정치제도를 도입한 1894년의 갑오경장 혹은 갑오농민전쟁을 시점(始點)으로 보는 이른바 ‘일반사적 관점’은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2) 1910년대설


우선 대표적인 설은 1910년대, 즉 1910년에서 1918년까지 벌어졌던 토지조사사업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은 상당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예컨대 박현채 선생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 입장에서의 주장의 핵심은 토지조사사업의 결과로 한국에서 근대적 토지소유관계, 즉 근대법적인 사적 토지소유가 확립되었고 그 때문에 그를 계기로 자본주의적 관계가 지배적인 관계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적 소유라는 것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토지조사사업은 조선에서의 자본의 본원적 축적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소유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1859년에 출판된 ꡔ경제학 비판ꡕ의 서문에서 맑스는 소유를 가리켜서 ‘생산관계의 법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ꡔ뉴욕 트리뷴ꡕ지에 기고한 일련의 논설에서, 19세기 중엽 리카도의 이론에 따라 시행했다는 인도 벵골 지방의 ‘토지개혁’ 결과 확립된 토지소유를 가리켜서 ‘근대법적 외피를 쓴’, 혹은 ‘근대적 소유관계를 희화화한’ 봉건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맑스의 이러한 규정은 토지조사사업 후의 조선에서의 토지소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토지조사사업 이후 조선 농업에 확립된 생산관계는 봉건적인 지주-소작관계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봉건제라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다시 말하면, 토지조사사업으로 형식적으로는 근대 민법적 토지소유가 확립되었지만, 그것은 사실은 외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즉, 형식적인 근대적 소유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봉건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토지조사사업을 통해서 자본제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으로 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토지조사사업 이후에도 봉건적 지주-소작관계가 절대 다수를 점했기 때문에 여전히 봉건사회였다고 논증하는 것이 옳습니다.

박현채 선생은 토지조사사업을 자본의 본원적 축적으로 간주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에 약간의 무리를 느꼈던 듯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논거를 대는데, 바로 1910년대 이후는 조선총독부 즉 상부구조가 자본주의적 권력이었다는 것,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정치적 상부구조가 자본주의적 권력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해야 한다면, 자본주의적 동인도회사 및 영국의 인도총독부가 지배했던 18~19세기의 인도는 자본주의 사회입니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상부구조의 성격을 들어 그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반드시 타당한 것이 아니지요.



(3) 1930년대설 (권영욱, 「구식민지 경제 연구 노트」)


두 번째 설은 1930년대 설입니다.

권영욱이라는 재일교포 사가의 「구식민지 경제 연구 노트」라는 논문을 보면, 그는 일제시대 조선의 경제통계를 분석해서 1930년대 중반이 되면 공업생산이 농업생산을 능가하게 되고, 따라서 이때부터는 봉건적인 농업생산보다 자본제적 공업생산이 우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원용합니다. 박현채 선생도 어떤 글에서는 이 설을 원용하여 1930년대 중반에 조선사회는 자본주의로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논증의 문제는 우선, 농업을 모두 봉건적이라고 보는 것, 그리고 반대로 공업도 모두 자본제적인 것이고 보는 것이죠. 농업에도 자본주의적인 경영이 있을 수 있고, 공업에도 ‘마찌꼬바’처럼 비자본주의적인 경영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시의 농업은 대부분 지주-소작관계였기 때문에 이 문제점은 일단 무시하기로 합시다.

사실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데에 있지요.

권영욱 씨가 자신의 논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농업생산 및 공업생산의 통계는 당연히 가격통계입니다. 그리고 가격이란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가치는 생산을 위해 투하한 노동시간입니다. 그것이 노동가치설이 말하는 바입니다.

여기에서 권영욱 씨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봅시다.

그는 1930년대 중반을 경계로 공업생산물의 가격이 농업생산물의 가격을 초과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자본제적인 생산관계가 지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업생산물의 가격이 농업생산물의 그것보다 커졌다는 것은 1930년대 중반 이후 공업생산에 투하된 노동시간이 농업생산에 투하된 노동시간보다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직접생산자들의 절대다수는 소작농민으로서 농업부분에 존재했습니다. 공업부문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는 농민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소수의 노동자가 투하한 노동의 양이 절대다수의 농민이 투하한 노동의 양보다 크다?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권영욱 씨가 인용하고 있는 통계는 1930년대 중반을 계기로 당시의 조선사회가 자본주의화되었다는 논거로 이용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식민지 조선에서 농업생산물과 공업생산물 간에 극심한 식민지적 부등가교환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증거로 이용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교도 되지 않는 소수의 노동자가 절대다수의 농민보다 더 많은 노동을 투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영욱 씨 등의 주장은 바로 식민지적 부등가교환을 무시한 것이고, 1930년대 중반 이후에도 조선사회에서는 여전히 봉건적 지주-소작관계가 지배적이었습니다.



(4) 농지개혁 = 봉건적 생산관계의 해체


그러면 한국은 언제부터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겠습니까? 한국은 빨라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더 정확하게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없었다거나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 이전에는 그보다는 봉건적인 지주-소작관계가 양적으로 압도적이었고 따라서 지배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던 것이 농지개혁을 통해서 지배적이던 지주-소작관계가 해체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본제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으로 되고,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가 된 것입니다.

농지개혁으로 지주-소작관계가 해체되면서 자본제적 관계가 지배적, 즉 양적으로 다수가 되었다는 주장에는 약간의 의문이 들 겁니다. 지주-소작관계가 해체되면서 직접적으로 다수가 된 것은 자영농, 즉 소생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생산에는 착취-피착취 관계, 지배-피지배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그리하여 사회성격을 논할 때는 논외로 치는 부분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를 봅시다. 그 사회는 노예제 사회인데, 거기에서도 단순히 다수를 점했던 것은 자유민, 즉 소생산자들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몰락하여 노예가 절대다수를 점해가면서 그 사회들은 함께 붕괴되어 갔지요.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농지개혁을 통해 성립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본원적 축적이 대규모로 일어난 시기는 언제인가? 즉, 가장 대규모로 직접생산자로부터 생산수단이 수탈되던 시기는 바로 1960~70년대입니다. 그 시기에 엄청난 이농이 벌어졌던 것은 여러분 모두가 아는 대로인데, 바로 생산수단을 수탈당한 농민들입니다.

그게 바로 농민층 분해인데 한국에서의 농민층 분해의 원인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가장 많이 얘기되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잉여농산물’에 근거한 농산물의 저가격과 기만적인 농지개혁, 즉 유상분배로 농민을 빚쟁이로 만든 농지개혁입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할 때 빠뜨린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만일 농민층분해가 전적으로 기만적인 농지개혁과 저농산물가격 때문이라면 한국의 대부분의 경작지는 모두 황무지화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겁니다. 사실 위의 설명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사회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력의 문제입니다. 이농의 직접적인 원인은 위에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농업생산력의 증대입니다. 농업생산력이 증대했기 때문에 농업 내부에 잉여노동력이 발생했던 것이고, 그래서 잉여인간들이 도시로 도시로 가게 되었던 것이죠.

이 문제는 새로운 사회를 논하는 7강에서 계속하기로 합시다. 

한/노/정/연

2000-03-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