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의 노동운동: 99년 평가와 전망 |
현장에서 미래를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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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La B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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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번․역
이 글은 [멕시코 노동소식과 분석](Mexican Labor News and
Analysis) 2000년 1호(1월 1일)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단 라
보츠는 MLNA의 편집자이다.
기획번역
멕시코의 노동운동: 99년 평가와 전망
Dan La Botz
도입
멕시코의 노동-정치상황은 극히 불균등하고 분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 경제번영은 제도혁명당(PRI)에게 정치적
지배를 공고히 할 기회를 주었다. 다가오는 2000년 선거에서
PRI는 라이벌인 보수적 국민행동당(PAN)이나 중도좌파
민주혁명당(PRD)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데 성공했다. PRD의
콰우테목 카르데나스(Cuauhtemoc Cardenas)는 급속히 지지기반을
상실한 채 패배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멕시코의 좌파운동과
사회운동에게 역사적 패배로 기록될 것이다.
치아파스에서 기반을 강화하고 있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여전히 포위당한 상태에 있으며, 정치조직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FZLN)은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자치대학(UNAM)의 학생들은 점점더 분파적인 지도부하에서
소수파업으로 고착되고 있으며 재난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말탄
기수를 앞세운 수천명의 시위대로 엘 바르손(El Barzon) El
Barzon은 쟁기라는 뜻.
은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고 여러 주에서, 그리고 최근 수도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에서 가장 희망적인 징표는
멕시코 전력노동조합(SME)의 승리이다. 이들은
중앙멕시코전력공사와 전력산업 전체를 민영화하려는 대통령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의 계획을 저지시켰다.
SME와 민영화반대 연합전선은 정부와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여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특히
전국노동조합(UNT)은 공세로 나아가고 있다. UNT는 자주적
노동조합으로서 2년동안 살아남았지만,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 사회운동(MST)도 국내정치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제 이런 상황에 대해 상세히 검토해
보자.
경제상황
멕시코의 경제는 최근의 정치 및 노동상황의 기본적 맥락이다.
지난 몇년간 멕시코 경제의 회복은 집권 PRI에게 실추된 정치적
지위를 회복할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으로서는 PRI가 다시한번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의회와 주정부에서도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것같다.
1994년 12월에 시작되어 IMF와 미재무부의 500억달러 구제금융을
필요로 했던 경제위기는 마침내 1999년에 끝난 것으로
보인다아직 멕시코 노동자들에겐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멕시코 경제계에게는 그런 것같다. 연간경제성장율은 3.4%이고,
수출은 두배로 늘었고 1994년이래 국민총생산은 20%나 증가했다.
멕시코는 세계 13위의 수출국이 되었고, 지난해 1,350억달러의
생산물을 수출했는데 이는 1994년 총액의 두배이다. 멕시코는
GATT현재의 WTO와 NAFTA에 서명한 이래, 더욱더 미국과
세계경제에 통합되었다. 살리나스 정부(1988~94)하에서 연평균
50억 달러였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세디요
정부(1994~2000)하에서 100억달러로 두배로 늘었다. 이 투자의
약 60%는 미국에서 온 것이다. 멕시코 주식시장(Bolsa Mexicana
de Valores)의 외국인투자 또한 증가하여 1999년 2/4분기에
48억달러에 이르었고, 1998년 전체의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는
130억달러 이상이다.
그러나 멕시코 경제, 특히 수출제조업과 마킬라도라 부문은
개선되었지만, 다양한 학계, 경제계, 정부 및 노동계 통계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1994년에 비해 20~40% 하락한
상태이다. 경제가 현재와 같은 5% 성장을 계속한다면 2004년에야
1994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공식실업률은
2.5%로 떨어졌지만, 3,800만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약 50%가 어떤
사회보장(의료)이나 노동조합 보장없이 지하경제에서 일하고
있다. 인구증가에 상응하기 위해 멕시코는 매년 1백만개의
일자리를 필요로 하지만, 매년 80만개만 생길 뿐이다. 멕시코의
경제회복은 지역과 부문에 따라 불균등하다. 멕시코의
석유산업은 카르텔의 강화와 석유가의 상승에 따라 개선되었다.
세금피난처인 마킬라도라 부문은 가장 급속하게 성장했고 그
결과 4천여개의 마킬라도라가 1백만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 공장들의 80%가 북부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멕시코
산업과 서비스의 다른 부문들은 훨씬 뒤처져 있다.
북부와 일부 중부지역의 기업적 농업과 대농장을 예외로 하면,
멕시코 농촌은 여전히 투자부족, 자원부족, 저임금과 저소득, 그
결과 빈약한 농촌시장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수많은 농민들은
부채를 지고 있고, 일부는 도시나 국경 또는 미국으로 이사하기
위해 재산을 팔았다(또 일부의 경우 재산을 버리고 떠났다).
중부와 남부 농촌지역의 원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궁핍상태에
묶여있다. 멕시코 전역과 미국을 떠돌아다니는 농업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은 거의 생활임금을 벌지 못한다. 미국경제와의
통합에 따라, 멕시코경제의 건전도는 수백만 멕시코인의
합법-비합법 미국이주에 크게 의존하며, 이들은 건설, 농업,
식품가공, 제조업, 식당과 호텔, 가내서비스 등에 종사한다.
멕시코와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거의 수당없이 기준이하의 임금을
받기 때문에 미국경제가 지탱되는 것처럼, 멕시코경제도 전체
멕시코인의 10~20%가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성공적”인
상태로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국내에서 경제성장과 과잉노동력의
해외이주는 PRI에 최소한 다음 6년간 권력을 유지할 기회를
주었다.
정치상황
멕시코의 경제성장은 적어도 세디요 대통령 6년임기(sexeni)의
초반과 비교하면 정치안정의 일정한 진전을 의미한다. 1994년
1월, 세디요가 대통령직에 취임하기 1년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마야농민의 치아파스반란을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엘 바르손이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 사업자, 신용카드
소유자들의 대중운동을 이끌었고, 비정부조직들과 중간계급
시민운동의 연합체인 시민동맹(Alianza Civica)은 선거개혁과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PRD의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보였다. 채 1년도
안되어 1994년 12월의 페소화 평가절하는 60년만의 최대불황을
가져왔고, 필사적 노동투쟁, 임금을 위한 폭동발발, 식량을
확보하려는 열차강도, 범죄와 폭력의 심각한 증대를
가져왔다.
사파티스타
6년이 지난 오늘 상황은 다소 달라 보이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안정된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조용한 것도 아니다. 1997년
12월 악테알학살 이래로, 멕시코정부와 군은 저강도전쟁에
기초한 반봉기전술을 수행하였고, 이는 EZLN운동의 토대가 되는
마야 인디오와 농민들 사이에서 사기를 꺽거나 희망을 없애지는
못했을지라도, 이 민주적 사회운동을 탄압하고 고립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분쟁지역에서 인도주의적 목소리의
대변자로 존경받는 중재자인 사무엘 루이스 주교의 은퇴는
EZLN의 입장을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ZLN은 자신의
통제지역에서 인프라나 정치적 지원의 면에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EZLN운동은 지속적인
군사적․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성과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치아파스는 정부의 만성적인
골치거리이지만, 몇 년 전과 같이 격렬한 위협은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부의 골치거리가 어느 순간이라도 다시 폭발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EZLN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FZLN)을 추동했지만, 전선이
3년 전 출범했을 때 열망했던 정치세력으로 전화시키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FZLN은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FZLN은 EZLN 지원그룹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폭넓게 말해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멕시코
정치는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부패시킨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치적
대안을 제공할 의사나 의지, 역량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추방사태
멕시코정부는 피억압자의 사회운동에 대해 연대를 표하려는
외국인 인권활동가들의 추방을 계속하고 있다. 멕시코
연대네트워크의 톰 핸슨이 부재중에 재추방당했고 최근 여러명의
외국인이 또 추방당했다. 멕시코정부는 대개 외국인들이
멕시코정치에 간섭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추방한다. 그러나
이 외국인들은 정치활동에 참여했던 것이 아니라, 피억압자의
운동, 특히 원주민 공동체와 빈농들의 운동을 지원했던 것이다.
이런 추방은 정부가 치아파스와 남부의 여러 주에서 사회의
군사화와 농민 및 원주민에 대한 저강도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연대의 고리를 파괴하려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치아파스와
멕시코와 다른 지역에 대한 연대대표단은 인권옹호의 중요한
일부이다.
민주혁명당(PRD)
민주혁명당(PRD)과 그 지도자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대통령후보)는 2000년 선거에 PRI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것같다. 11월 29일자 「Reforma」
멕시코의 일간지, ‘개혁’이라는 뜻.
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약 이 날 선거가 진행된다면 PRI
후보인 내무장관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Francisco Labastida)가
43%, PAN 후보인 과나화토 주지사 빈센테 폭스(Vicente Fox)가
27%, 그리고 PRD의 카르데나스가 8%의 표를 얻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여론조사도 카르데나스에게 15% 내외의 득표를
예상했다.
대부분의 옵저버들은 비록 살리나스와 PRI가 승리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데나스가 약 40% 이상의 득표로
1988년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했다고 믿는다. 1994년 PRI의
세디요는 50.1%의 득표로 승리했다. 반면 PAN의 디에고
페르난데스 세발로스는 26.7%, 카르데나스는 17%의 득표를 했다.
따라서 2000년에 그가 겨우 8%만을 득표한다면, 이는
카르데나스가 지난번의 절반만을, 또는 1980년대 초반 소규모
3개 좌파정당과 같은 정도의 득표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같다), 이것은 우리가
카르데나스를 어떻게 생각하든, 좌파운동과 대중운동에 있어
역사적 패배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이 왔는가? 어떻게 카르데나스는 그가
1988년 아니 1994년에 가졌던 정치적 자산을 잃었는가? 첫째,
카르데나스는 주로 예산을 삭감하고 그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고
그의 재임기간 동안 실제로 범죄를 조장했던 PRI의 사보타지
때문에 멕시코시티의 개혁시장으로서 실패했다. 카르데나스
시정부는 몇가지 측면에서, 특히 노동, 여성과 지역문제에서
진정한 개혁을 대변했지만, 대부분의 멕시코 시민들에게 상황은
차이가 드러날 만큼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개혁시장이 되려고 시도한 카르데나스의 결정 자체가 실수였던
것같다.
그러나 PRD는 다른 문제로도 상처를 입었다. PRD내부의
분파들(일부는 PRI 출신이고 일부는 과거의 좌파정당
출신이다)은 당을 약화시키고 때로 거의 마비시켰다. 이런
차이는 불행한 후보선출에서 대의원조작과 부정행위로
이어졌으며, 이는 선거개혁을 주장했던 당으로서는
스캔들이었다. 2차투표는 1차투표의 악몽을 지우지 못했다.
카르데나스와의 차이 때문에, 당의 공동창건자이자 의회지도자인
포르티리오 무노스 레도(Porfirio Munoz Ledo)가 탈당하여 당의
위신을 추락시켰다. 보수적 PAN에 대한 후보단일화 제안도
실패했다. PRD는 PRI에 승리하기 위해 두 야당이 단결하되, 가장
유력한 후보를 공동후보로 선출하자고 제안하였다. 멕시코에서
PRI에 반대하는 많은 유권자들은 당의 정강에 관계없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
중도좌파 유권자들이 PAN에게 투표하기도 하고 보수적 유권자도
PRD 후보가 승산이 있으면 PRD에 투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 유권자들은 PRI에 타격을 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단일화는 경험에 근거하여 일정한 논리가 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철저히 반동적인 친기업적 후보인 폭스가 뚱하고
쌀쌀맞은 카르데나스보다 더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연합야당이 폭스로 단일후보로 선택할 것임을 알고
카르데나스는 거래에서 발을 뺐지만, 이는 오히려 카르데나스가
PRI를 패배시켜 일당국가를 종식키는 목적보다 개인적 야심과
허영심을 우위에 두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카르데나스가 다른 정치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인물, 민중적이지 않은 민중주의자, 좌파도 아닌 얼치기 좌파,
자신과 자신의 당이 민족의 이익을 대편한다고 민중을
확신시키지 못하는 민족주의자였다는 점이다. 1980년대
희망이었던 카르데나스와 PRD는 1990년대 희망이 없는 것같으며,
2000년에는 패배자가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국적
정치무대에서 카르데나스와 PRD의 패배는 좌파내 많은 사람들을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게 만들었다.
엘 바르손(El Barzon)
멕시코의 채무자운동인 El Barzon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운동이며, 최근 몇 달간 투쟁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들은
부채감면을 요구하고 정부의 은행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폭행을 비롯하여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지만, 이 운동은 전국대회를 통해 여러명의 기수가
이끄는 집회를 계속했다. PRD의 지부와 연계를 가진 엘 바르손은
사회의 특정한 부분, 즉 농민, 소사업자, 하층 중간계급 등에서
실질적 세력으로 남아있다. 전국적 신문을 발간하거나 새로운
정당을 출범시키려는 계획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지속적 투쟁은 인상적이며, 멕시코사회의 전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번영의 실패를 상징한다.
좌파운동과 대중운동의 다양한 분파들(EZLN, PRD, El Barzon)이
단결과 전진을 위한 강령이나 지도부를 마련하지 못한 반면,
노동운동에서는 민영화문제를 둘러싸고 통일전선이 형성되어
여러 해만에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학생운동과 UNAM 파업
수십년 동안 멕시코의 대학, 특히 멕시코 자치대학(UNAM)의
학생운동은 멕시코 좌파, 노동조합과 농민조합, 사회운동에
새로운 지도자와 간부들을 배출했다. UNAM의 교수들은 비판적
사회이론(주로 맑스주의)으로 학생들을 훈련시켰고 좌파정당에
가입하도록 했으며, 그런 다음 그들을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멕시코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합류하도록
그들을 보냈다. 1986년 가을과 1987년 겨울의 UNAM 대투쟁처럼
학생파업에서 학생들은 학교측과 교섭할 대학평희회(CEU)를
구성하여 대중집회에 25만명의 학생과 지지자들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UNAM파업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한 것같다. 학생들은
무료교육이었던 상황에서 등록금 부과에 항의하여 파업에
들어갔다. 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지도력이 출현했고
학내와 시내에서 대중시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3월이래 계속된,
즉 10개월이 경과한 파업은 정치적 재난이 될 것 같다.
학생지도부는 계속 요구수위를 올려 협상을 거부하는 바람에,
다수운동에서 소수운동으로 바뀌었다. 학생지도자들은 이 파업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동맹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세력, 즉 PRD에서 La Jornada 멕시코의 진보적
일간지, La hornada는 ‘오늘’이라는 뜻
신문까지 모두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지도부가 지지를 상실하고 운동이 위축됨에
따라 국가가 이 상황을 이용하여 파업을 진압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기회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학생지도자들은 학생과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지만, 그들의 정치적 전망 결여는
단지 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보다 광범한 사회운동과 좌파에
있어 명확한 정치적 방향성의 결여를 반영할 뿐이다.
노동운동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멕시코의 노동운동이 연속적인 반전과
패배를 종식시키고 재조직화와 재건의 시기에 돌입한 것 같다.
작년에 명백히 조직활동이 증가했다. FAT와 같은 민간부문
노동조합들은 자주적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힘든 과제를 기꺼이
맡으려는 노동자들이 극적으로 중가하는 경험을 했다. 한편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갑자기 중대한 대법원 판결로 법적
제약으로부터 풀려났으며, 처음으로 경쟁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국가당 통제하의 노동회의(CT)와 멕시코 노동자총동맹(CTM)은
계속 오랜 쇠퇴와 해체의 과정을 겪었던 반면, 멕시코
전력노동조합(SME)은 노동조합과 다른 사회운동의 새로운 동맹의
중심으로 섰다. 민영화에 대한 SME의 승리는 작년 멕시코의
지평에서 가장 희망적인 신호였다.
민영화를 저지시킨 전력노동자 투쟁
1999년 멕시코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PRI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멕시코 전력노조(SME)와
그들의 동맹자 전력산업 민영화반대 전국전선은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1982년 PRI가 신자유주의로 선회한 이래
노동진영의 가장 중요한 전국적 승리를 의미한다. PRI는 다음
회기에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승리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거의 20년만에 처음으로
멕시코 노동자들은 전국정치 수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멕시코 전력노조(SME)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민영화반대
연합전선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첫째, SME는 정부로부터
정치적 자주성(카를로스 살리나스 재임시 짧은 기간 부분적으로
타협했지만)과 조합내부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민주성과 자주성으로 인해 SME는 다른 노동조합이 갖지
못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다. 둘째, SME는 민영화문제를
노동․경제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민족주권에 대한
공격으로 설정하였으며, 노동자계급 연대만이 아니라 애국심에도
호소하였다. SME는 전력 노동자와 다른 산업노동자 뿐만 아니라,
모든 멕시코인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을 외국기업이 통제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SME의 호소는
신자유주의로의 선회가 처음 시작된 지 18년 만에,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이 규제완화, 국영산업의 민영화, 외국인투자의
증가가 부자를 더욱 부자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가난하게,
빈민들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느끼는 시점에
나왔다.
SME와 전선은 여러차례 10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시위를
조직했고, 수만명이 참가한 집회, 모임, 시위를 수없이
호소했으며, 지난 수십년간 가장 인상적인 노동운동을 건설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SME는
전국노동조합(UNT)외 여려 중요한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멕시코
노동조합전선(FSM)의 동맹을 창출했다.
SME는 세대요 대통령이 민영화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전력노동조합인 멕시코 공화국 유일
전력노동조합(SUTERM)을 자신의 투쟁에 끌어들였으며,
거기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획득했다. SME와 SUTERM 평조합원들
간의 동맹, 그리고 SUTERM 노동자들의 지도부 입장거부는
SUTERM의 사무총장이자, CTM과 CT의 위원장인 레오나드로
로드리게스 알카이네(Leonardo Rodriguez Alcaine)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멕시코시티 교사들의 승리
멕시코 교사노조(el SNTE) 재9지부의 멕시코시티 교사들 역시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의 지도자 블랑카 루나(Blanca Luna)가
납치, 폭동, 강도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다가 감옥에서 풀려났다.
1월에 루나는 여러 지부의 파업과 교사와 교원노조들의
국제연대(특히 캐나다)로 자유를 쟁취했다.
지난 20년간 교사노조 전국조정위원회(la CNTE)는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노동운동이었으며, PRI정부는 항상 CNTE의 힘을
파괴하기를 원했다. PRI는 멕시코시티의 교사들이 2000년에 PRD
콰우테목 카르데나스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특히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루나와
제9지부는 자신들 만이 아니라, CNTE, 그리고 el SNTE와 다른
노동조합내 민주적 경향과 활동가들의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멕시코에서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도 승리를
쟁취했다. 루나와 9지부의 다른 지도자들이 승리를 거둔 반면,
교사들의 민주화운동은 어려움을 겪었다. 치아파스주 툭스틀라
구티에레스에서 열린 20주년 기념대회에서, CNTE는 분열했다.
참석했던 대의원 가운데 약 1/3, 특히 미초아칸과 툭스틀라의
교사들이 CNTE를 떠나 노동조합 내에서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개혁경향을 결성하였다. 대회장을 떠났던 일부 교사들은 그들이
CNTE를 떠난 것이 아니며, 평교사들의 조직으로서 CNTE를
혁신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분열의 이유와 정치적
의미는 올해 주요한 토론주제가 될 것이다.
전국노동조합(UNT)
약 2년전인 1997년 11월 28일 약 150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650명의 대의원에 의해 출범한 전국노동조합은 여전히 자신의
약속을 완수해야 한다. 노동회의와 자주적 노동조합 양진의
노동조합들로 구성된 UNT는 PRI정부로부터의 자주성,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한 반대, 그리고 노동조합 민주주의라는
세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건설되었다. UNT는
전국사회보장노동조합(SNTSS), 전국자치대학 노동조합(STUNAM),
멕시코 전화노동조합(STRM) 등 3대 창립노조에 의해 주도되지만,
순수노동전선(FAT)도 정치적 자율성, 노동조합 민주주의,
국제주의와 전투성을 대변하는 목소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UNT는 멕시코에서 수십년만에 자주적인 노동연맹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였으며, 따라서 멕시코 노동운동의 진정한
진일보였다. 그러나 UNT는 현재 많은 이들이 희망하는 노동조합
조직화, 노동자 전투성과 국제주의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UNT의 정치조직인 노동자 사회운동(MST)도
제대로 출정하지도 못했다. UNT는 SME의 반민영화투쟁에
참여했지만, 이 투쟁을 이끈 것은 SME이지, UNT가 아니다. UNT는
멕시코의 국가통제 노동조합을 개혁할 세력으로서, 마킬라도라의
조직가로서, 농민의 옹호자로서, 여성노동자의 수호자로서, 또는
생황임금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사로서 자신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UNT는 아직 신생조직으로 노동운동의 진정한 지도부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회의의
조직적 대안이어서는 안되며, 멕시코에서 노동자권력을 위한
투사가되어야 한다. 일부 UNT 소속 노동조합, 특히 알레한드라
바랄레스(Alejandra Barrales)가 이끄는 멕시코
승무원노조(ASSA)는 TAESA항공에서 부패한 관료적 CTMDP 맞서
1년간 투쟁했다. 현재 그들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결코 노력의
부족은 아니다. 다른 어떤 노동조합도 이 승무원들만큼
역동적이고 공세적이지 못했다.
5월 1일 노동조합 조정그룹(CIPM)은 몇년전 작지만 활기찬
노동조직으로 등장한 노동조합, 지역조직 및 좌파정당들의
동맹체로서 여전히 존재하지만, 명확한 조직적 전망을
제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노동회의와 CTM
한편 노동회의(CT)와 멕시코 노동자총동맹(CTM)은 장기적 쇠퇴를
계속해 왔다. CT는 조합원을 UNT에게 잃음에 따라 사실상
붕괴상태이다. CTM은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조합협약과 대부분의
조합원을 통제하는 최대 노동연맹이지만, CT와 CTM을 이끄는
레오나르도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는 그의 전임자 피델
벨라스케스(Fidel Velazquez)의 서투른 모방에 머물고 있다.
노동조합내 현장의 반란은 공식노동조합이 자신의 조직 내에서
신뢰와 지지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노동조합의 자유
멕시코 대법원은 3월 11일 공공부분 노동자들이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멕시코의 정치체제와 법률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민주적 노동조합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은 이를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있어 하나의 승리로 바라보지만, 일부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판결이후, 몇몇 공무원 노동조합의 노동자들(거의 대부분이
공식연맹인 공공노조연맹(FSTSE) 소속이다)은 연맹을 탈퇴하고
독자적인 노조를 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 자율성의 이론상의 승리이고 정치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의 정치적 개방이지만,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운동에 있어 이 판결의 진정한 의미는 아직 분명하지는
않다.
또다른 긍정적 움직임은 멕시코시티 정부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에 관한 기본정보에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접근을
처음으로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연방정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우려되는 방향으로, 연방
노동위원회는 최근 조합원투표 신청시 조합원명단 제출을
요구하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였다. 이는 멕시코에서 비밀투표
선거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현실을 볼 때 특히
심각하다. 새로운 요구조건은 선거전에 노동조합 지지자의
명단이 알려지기 때문에 비밀투표로 선거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사하게, 미국행정청이 아직 에칠렌과 한영사건에서 각료급
협의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실은 NAFTA
노동부속협정(NAALC)에 내재한 취약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부 부당관행의 수정을 거부하는 멕시코정부의
비타협성을 증명한다. 멕시코의 조직들은 이미 올해 노동권
캠페인의 개시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캠페인이
노동위원회를 통해 멕시코정부와 공식노동조합, 사용주들이
구축한 봉쇄를 깨뜨리는 자주적 노동운동의 성공에 결정적이라고
본다.
전망
멕시코의 상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정치적 좌파와
사회운동의 전반적인 약세 속에서 산별노조인 멕시코
전력노조(SME)가 민영화반대 연합전선의 형태를 통해 정부와
자본에 대해 성공적 투쟁을 수행한 광범한 연합전선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SME와 전선은 멕시코 노동운동과 특히
전국노동조합(UNT)에게 하나의 모범과 기회를 제공한다. SME와
전선은 PRI의 민영화 프로그램을 저저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과연 노동조합이 자주적인 노동조합 조직화,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 노동자, 농민과 빈민을 위한 정치적 대안 구축에서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는가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를 위한 투쟁과 함께, 그리고 노동자들이 그러한 투쟁을
전진시킬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새천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노/정/연
번역: 국제기획실장 원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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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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