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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노총 모두에 던지는 ‘민주노조운동’의 메시지

현장에서 미래를  제54호
김혜란


양 노총 모두에 던지는 ‘민주노조운동’의 메시지
- 철도 노동자들의 직선제 쟁취․민영화저지 투쟁 -

정세초점


김 혜 란
사무처장







1
살아가면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도둑질하다 들킨 도둑놈은 대에 뭐라며 대들까
벼랑 끝에 몰린 쥐새끼는 어떻게 죽어갈까
노동귀족 철노의 마지막 발악이 궁금했었는데
아하, 그렇구나
벼랑 끝에 몰린 쥐새끼의 발악은
도둑놈이 되려 주인에게 대드는 거였구나
달랑 종이쪽지 한 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거였구나


2
게걸스럽게 조합원의 피땀을 빨아먹으면서도
살이 되지 못하고 고름이 되어버린 어용철노
썩고 진무른 53년의 고름을 도려내고
공투본의 새살로 돋아나는
민주노조의 깃발

…

자랑스런 동지가 앞장서는 길
민주노조건설 민영화저지
그 가슴벅차고 당당한 길
동지만 먼저 가라하지 않겠습니다
투쟁의 한길로
내가 먼저 달려가겠습니다

이한주 구로열차승무지부 조합원 「동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중에서
철도공투본신문 ꡔ바꿔야산다ꡕ 2000년 3월 21일


25,000명이나 되는 철도노동자들 중에는 재주꾼들이 많다. 이한주씨를 비롯한 시인도 많고, 공투본 신문에 철도의 상황을 무협소설화하여 게재중인 소설가도 있고, 발언 5분만에 몇백명을 휘어잡는 뛰어난 선동가도 있다. 그리나 무엇보다도 지금 철도는 민주투사들로 가득차 있다.
1월 14일 “간선제에 의한 대의원 선출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촉발된 직선제 쟁취 투쟁은 규약개정투쟁에서 민주노조건설투쟁으로 민영화저지투쟁으로 확대발전하고 있다.
애초에 발단이 되었던 3중 간선제란 무엇인가? 대체 어떤 체계이길래 오랫동안 철도노조 집행부의 귀족화, 관료화, 어용화의 주범으로 찍혀왔던가? 여기서 3중간선제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철도와 같이 전국적으로 사업장이 흩어져 있는 노동조합의 경우(한전, 체신, 한통 등) 대부분 각 지역별로 지방본부가 있고 지방본부 산하에 지부, 그리고 통칭 본부로 표현되는 중앙이 있다. 철도 역시 노동조합의 체계가 중앙본부-지방본부-지부로 되어 있고, 지부는 지부대의원, 지방본부는 지방본부대의원, 중앙본부는 조합대의원(중파대의원)이 있다. 이 중 전체 조합원이 직접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임원선거는 지부대의원뿐이다. 지부대의원들이 모여 지방본부대의원과 지부장을 뽑고(1차), 지방본부대의원들이 모여 조합대의원과 지방본부장을 뽑고(2차), 조합대의원들이 모여 철도노조 위원장과 한국노총파견 대의원을 뽑는 식이다(3차).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3차례의 간선제를 통해 선출되고 이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삼중간선제다.
1948년 노조가 설립된 이래 단 한번도 위원장을 전체 조합원의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는 철노는 최근 드러나는 비리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도청, 노동부, 용산경찰서 등과 두루 돈을 상납하는 우호적 지원관계를 형성해 왔을 정도로 부패, 비민주, 관료화, 노동귀족화의 문제가 심각하다. 철도노조 점거농성, 철도노조 집행부측의 사무실 탈환, 공투본의 재탈환, 집행부의 대의원대회 강행 공투본의 저지, 이 과정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사태 등 최근의 사건 악화에도 51%가 넘는 조합원의 총회요구를 묵살하고 간선으로 선출된 60여명만이 모여 자신들만의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은 직선제로 개정하되 현재 임원의 임기는 보장한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결정을 하고 기존 위원장을 재추대한 집행부의 잘못이 크다. 그동안의 반노동자적 행태를 반성하고 곱게 물러나도 용서가 안될 처지에 기득권을 보호받기에 연연한 어용집행부에 대해 공투본은 “조합원 찬반투표에 의한 직선제와 그에 따른 총선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러한 대회가 성사되지 못하도록 노조사무실을 농성장소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철도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외면한 채 민영화에 동조해 왔던 어용노조가 민주화되어야만 생존권 보장투쟁이 가능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김혜란 ‘철도노조의 시계는 거꾸로 도는가’ ꡔ인권하루소식ꡕ, 인권운동사랑방 2000. 3. 24.

지금 철도노동자들은 88년 전기협투쟁, 94년 전지협투쟁을 거쳐 2000년 직선제쟁취, 민영화저지 투쟁을 통해, 40여일 동안 지속되고 있는 농성을 통해 노조민주화 투쟁의 장도(長途)를 승리로 마무리 하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있다. 민주파에 의해 고립된 철도노조가 철도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철도청의 업무감시, 징계협박, 자술서 요구 등 탄압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상된 탄압에 공투본은 총투표를 내걸고 조합원 서명에 다시 돌입하는 한편 민주파가 다수인 지부부터 공식적인 접수에 들어갔고, 철도노조와 철도청의 비리 유착관계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민주파가 공식접수한 부산정비창의 경우 해방의 물결이 출렁거려 감격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굴욕과 굴종을 벗어던지고 투쟁에 나선 아름다운 노동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민주화된 한국노총을 보고 싶다

최근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둥, 민주노총의 투쟁력과 한국노총의 정책력이 결합하면 금상첨화라는 등의 말들이 양 노총 모두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것같다. 물론 한국노총 산하에도 민주노조가 존재하고 그 산하의 노동자들이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어떤 노(老) 선배가 최근의 철도투쟁을 보고 말씀하셨다는 “교육받지 않은 노동자는 허수아비”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아마도 최근에 폭발하는 철도노동자들의 자생적 투쟁력만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셨겠지만, 정부-자본의 하위 파트너로 점철되었던 한국노총의 역사,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이 전무했던 한국노총의 과거가 단지 ‘노동자 대동단결’과 같은 순진함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지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노총 내의 민주파 세력을 위해서도 한국노총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점이 요구되고 있다. 우선 기억나는대로 한국노총의 역사를 훓터보자.

․1987년 4월 「4․13 호헌 지지성명」발표
전두환 군사정권의 대통령직선제 거부에 대해 지지성명을 발표하여 정부의 꼭두각시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1990년 4월 경기지역 전노협 소속노조의 탈퇴공작
․1993년 4월 「4․1 노사합의」
노총내부의 일부 산별과 전노대측의 반대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총과 경총이 임금인상을 야합하자 노총 내부에서도 “밀실교섭과정의 철저한 공개와 협상관계자들의 퇴진” “노총의 방대한 전국조직을 단 20명의 산별대표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규약을 개정해 ‘중앙위원회’를 부활해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었었다.
․1993년 10월 「노사정 경제회복 결의문 채택」
“경제회복을 위해 노사정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합의에 의한 신협력체제를 구성한다.”
․1994년 5월 전해투 소속 해고노동자 22명, 한국노총을 점거한 뒤 “어용노총 해체, 노경총합의 분쇄” 투쟁전개
․1995년 3월 30일 「’95 산업평화정착을 위한 공동선언문」발표
노-경총 노사화합공동선언문이 발표되기 불과 몇주 전인 3월 4일 당시 민주노총준비위는 “한국노총이 2년만에 독자적인 임금인상안과 임금인상투쟁 일정을 밝힌 것을 고무적으로 평가한다.”면서 “95년 임투와 지자제선거 노동자공동대책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었다. 이러한 제안을 뒤로 한 채 한국노총은 경총과 또다시 합의문을 발표했다.
․1995년 6월 ILO총회 배포 문건 사태
ILO총회에 참석한 한국노총 대표단이 “한국에서 노사관계는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개선되어 왔는데 일부 기업에서 때때로 합법적인 수단과 절차를 따르지 않아 정상적인 노조활동에 크게 방해가 되어 왔다 난폭한 폭력을 휘두른 일부 근로자들은 공공 건물이나 회사 사무실을 힘으로 점거해 연좌농성을 벌이거나 기물을 파괴하고 공무원이나 기업 경영자들을 폭력으로 감금해 왔다.”고 왜곡하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통신투쟁과 현대자동차투쟁을 지목했었다. 당시 이 문건은 노동부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파동
탈퇴 유보를 표명한 한국노총에 대해 “민주노총과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투쟁결과에 무임승차를 한다”는 비판이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웬만한 민주노조활동가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이제 더욱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국노총은 전평이 와해된 자리를 이승만과 미군정의 비호 아래 철도와 광산, 부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산별연맹체를 탄생시키면서 급조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후신이라는 사실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급조된 산별연맹은 철도, 전력, 선원 등이었는데, 그 이유는 철도나 전력이 전평의 골간 부대였기 때문에 전평이 와해된 이후 의식적으로 그곳에 우익청년단을 집중투입한 결과이다. 어찌보면 철도노조는 한국노총을 탄생시킨 어머니와도 같은 조직이다. 이러니 어용의 역사는 한국노총보다 장구할 뿐만 아니라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우익적 견고함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철도노조 7대 위원장을 지낸 이규철 씨가 회장이었던 ‘한국노동협회’는 1989년 전노협 결성 움직임과 관련하여 “사회 혼란이 심화되고 있는 때를 틈타 공산 전평노조 재건음모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 …” 운운한 성명서를 낼 정도였다. ꡔ철노 50년사ꡕ, 전국철도노동조합, 439쪽.
한번 위원장을 하면 정년 퇴직할 때까지, 아니 퇴직한 이후의 노후까지 보장될 정도로 관제화된 노조가 철도노조이다. 이러한 노조를 민주화하고자 하는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역사는 비껴가는 법이 없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된다.
여기서 잠시 90년대 당시 노총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보자. “노총이라는 조직 구석구석에 노선이나 입장보다는 인맥과 이권을 따라 움직여온 풍토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이러한 토양 자체를 갈아엎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이는 노동귀족화가 가져온 필연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ꡔ주간노동자신문ꡕ 1990년 3월 2일.
10년의 세월이 지나 내부적으로도 많이 민주화되었겠지만 최근의 한국노총 산하 항운노조의 신선대․우암부두 폭력사태나 철도노조의 폭력사태, 이것을 비호하고 있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모습, 얼마전까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고 소리높여 외쳤던 노총개혁 핵심세력 박인상 전위원장의 민주당행 등은 과연 한국노총 내부로부터의 점진적인 민주화가 가능한가를 반문케 한다. ‘개혁노총’의 깃발을 한 두명의 지도부 교체로 이루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한국노총의 입장에서도 명분과 실리가 모두 있는 철도노조 직선제 문제가 왜 이렇게 꼬이고 있는가. 노총 구석구석에 인맥과 이권을 따라 움직인 투터운 부패층이 있다는 설명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민주노총에 호의적인 세력이 집행부를 장악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손 치더라도 운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막아야될 명분이 있는가. 이 정도도 받아안지 못하면서 어찌 ‘어용’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으리.


민주노조에 던지는 숨은 메시지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더불어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흐름으로 정착된 ‘민주노조’운동은 전노협, 민주노총을 건설하면서 ‘민주노조’라는 말속에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 연대성의 이념을 아로 새겨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민주노조’는 노동자 대중의 요구와 이해를 대변할 조직적 무기로 이해되고 있고, 노동자들이 가슴속에 새기며 생명처럼 지키고자 하는 깃발로 자리잡혀 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주노조’운동은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실 한국노총 지도부가 ‘한국노총=어용’이라는 꼬리표는 이제 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한국노총 스스로의 개혁 움직임도 있었지만 민주노총이 노동자 대중의 이해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면서 1기 지도부의 정리해고 합의, 비대위의 총파업철회, 2기 지도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탈퇴 반복, 최근 한국통신노조, 서울지하철노조의 공공연맹 회의 불참, 현대중공업노조의 맹비납부 유보로 이어진 민주노총 중앙의 공금유용 사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민주노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위를 끊임없이 보여왔던 것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표를 의식하여 민주노총의 공식적 후원을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한국노총에 수차례 찾아가서 지지를 요청하고, 특정 후보의 경우는 현장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불신임을 받고 있는 위원장에게 선거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국노총 혼자서든 민주노총 내 누군가의 응답속에서든 97년 대선 때 ‘권영길 독자후보, 박인상 통합노총위원장’이라는 전제로 양대노총 통합이 거론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협상택한 한국노총, 투쟁택한 민주노총’, ꡔ신동아ꡕ 99년 4월호.
물론 당시의 한국노총의 공식견해는 시기상조였다. 그러다 2000년 2월 또다시 대통합 제안 성명서가 나왔다. 한국노총의 통합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결성되었던 95년에 “노동계의 분열은 노동운동의 현안 해결과 노동자 권익수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통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했었고 그 뒤로도 수시로 그러한 언질을 던져왔다. 매번 통합제안의 시점이 자신의 조직에 위기가 있을 때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대통합 제안은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더불어 철도, 한전 등의 직선제 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원래 한국노총은 500인 이하의 중소 사업장노조가 대부분이고 철도, 체신, 한전 등 몇 만을 넘어가는 공공부문 거대노조들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숫적으로 민주노총보다 우위일 수 있었다. 그러니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은 조직 내적으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조심스럽지 못한 ‘환영’ 메시지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1989년 당시 전국회의 중앙집행위원장이었던 단병호 현 민주노총 위원장은 “자본과 정권의 시녀노릇을 하는 한국노총은 결코 노동자의 상부조직이 될 수 없다”며 전노협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었다. 한국노총과는 결을 달리하며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결과물로 조직된 것이 전노협이었고, 그 완성이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통합하는 시기가 온다면 그 내용은 90년대 전노협, 업종회의, 대기업노조협의회 등이 통합하며 내걸었던 ‘민주노조총단결’의 연장선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철도민주파 세력이 여타의 민주세력과 연대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면 이것은 단지 한국노총에게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서이거나, 조합원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또는 조합원에게 설득할 명분이 없어서라기보다 껍데기만 ‘민주노조’인 것같은 민주노총이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아니더라도 ‘민주’의 이름 속에 ‘비민주’를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민주노조진영은 지금의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을 ‘민주’의 뿌리를 굳건히 할 거울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투쟁으로 자리매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쇄하고 세파에 찌든 ‘민주노조’의 선배가 적당히 훈수두면 저절로 떨어지는 감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민주노조의 열정과 연대로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에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자.
철도, 한전, 체신 등 한국노총 산하 공공부문 거대노조의 민주화 물결은 ‘민주노조건설, 어용노조민주화’를 내걸고 타올랐던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 철도노동자들은 그 마지막 임무를 향해,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투쟁을 책임지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

2000-04-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