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자파견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
현장에서 미래를 제5호
|
|
권재철
|
현 ◦ 장 ◦ 통 ◦ 신
근로자파견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권 재 철 (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 정책담당 부위원장)
8월 29일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는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도, 정리해고제 등을 포함한 ‘중소사업자
구조개선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제출해 금번 회기내에
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후 9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하는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변형근로시간제 및 정리해고제는
유보키로 하되 근로자파견제도만큼은 반드시 금번 국회 회기내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확정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변형근로시간제는 1980년에 도입하였던
제도로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저하 및 근로조건의 악화를
유발하여 1987년 11월 말 법개정을 통해 폐기하였고,
근로자파견법 역시 1993년 입안되었으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유보되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다시 제기되었고 정리해고제와
이미 폐기되었던 변형근로시간제도 역시 차기 총선등 정치
일정을 고려해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집권 여당이 관계부처와
협의과정에서 소극적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근로자파견제도의 입법을 위해서 정부는 계속
밀어부치기식 자세를 취해 왔으며 심지어 통산부와 노동부간
양동작전을 구사하기까지 하였다. 통산부 안이 맘에 들지 않으면
노동부 안이라도 수용하라는 요구, 즉 최악이 싫으면 차악이라도
선택하라는 협박을 노동자에게 해 왔다.
신보수주의 정책의 전형, 근로자파견법
기업별 노조체제와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노동악법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근로자파견제도의 도입이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은, 이미
근로자파견제도가 제정되어 있는 여타 국가와 비교해 볼 때,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파견노동의 도입이나
확산의 영향은 각 사회의 경제, 사회적 배경 그리고 노동시장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아니라 동일한 사회내에서도
시기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다양성을 감안할 때
일부 국가의 법 제정 사례를 들어 파견근로제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특히 서구 일부 나라에 입법화 되어 있는 파견제도에서 그나마
담고 있는 각종 보호 장치조차 삭제하고 있는 현 정부의
근로자파견법은 그야말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서슴치 않는 신보수주의 정책의 전형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민주노총에서는 금년 5월 경부터 불법용역 근절을 위한 대책반
모임을 수 차례 가지면서 올해는 정부와 민자당에서 파견법
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 것으로 예측하고 사전
준비를 차분히 진행해 왔다. 특히 민주노총이 건설되는 중요한
시기에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일으키고 노동조합의 무력화와
중간착취를 합법화 하는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9월 27일 통상산업부는 ‘중소기업구조개선을 위한 특별조치법’
속에 근로자파견제도를 명시한 법안을 입법 예고하였고, 노동부
역시 소관 부처임을 들어 93년 이후 계류된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위해 부서의 사활을 걸고 달려 들었다. 법안의 문제점을 떠나
통산부라는 경제부처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제출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한심한 일인 것이다.
이는 마치 노동자들이 내는 세금을 덜어 주기 위해 노동법 속에
세금감면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삽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정부조직법에도 저촉된다. 더불어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명분으로 치장은 했지만 오늘날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의 핵심인 만성적 자금난과 고통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정책임이 분명하다.
노태우 집권 동안 부도를 내고 쓰러진 중소기업은 모두 1만 8천
14개이고 이들의 평균 부도금액은 4억 6천만 원이다. 노태우가
밝힌 5천억이면 만성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1천 86개를
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부도덕한 권력과 재벌위주 정책, 정경
유착 등에 의해 벌어지는 각종 병폐를 파견제도를 통해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넘기려는 낮뜨거운 작태를
연출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근로자파견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어찌됐든 정부내에서 경쟁하듯 법안을 들고 나왔고 강행할
의지가 확인된 이상 투쟁을 통해 막아낸다는 원칙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9월 29일 최초로 민주노총에서 주관한 파견법
저지 집회를 시발로 10월 5일 사무노련 회의실에서는
근로자파견법 입법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는 그 동안 민주노총과 별개로 파견법 제정 반대를 해 온
전국연합, 여성단체연합, 경실련, 참여연대, 민변, 공노대 등이
함께 파견법 저지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 동안 민주노총의 독자적 행동에 여타의 단체들도 결합한 것이
파견법을 효과적으로 저지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틀림없으나 민주노총외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조직을
동원하고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주체역량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물론 운동의 경험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접근방식에서
오는 약간의 차이일 수도 있다.
또한 민주노총에서는 파견법저지를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해
왔지만 코앞에 다가온 민주노총 건설일정, 각급조직별 민주노총
가입 문제, 민주노총에 대한 대대적 탄압 등 여러가지 일상적,
시기적난제들로 인해 민주노총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배치하고
진두 지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무리가 뒤따랐다. 따라서
특정조직에서 먼저 치고 나가면서 이후 여타 조직이 함께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여기에 사무노련이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투쟁의 전개, 자신감의 획득과 야당 당사 농성
10월 11일 사무노련에서는 근로자파견법저지와 5. 18학살자
처벌을 촉구하는 사무직 노동자대회를 명동성당에서 개최하였다.
구체적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추진되었지만 당일 집회에는
명동,을지로 일대의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날 집회를 통해 많은 간부들이
파견법 저지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파견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이후
향린교회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 긴급 중앙위원회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날 중앙위원회에서는 6만 조합원 서명운동 전개,
광고기금 3천만원 모금, 각급 조직별 비상운영위원회 개최 및
전국동시 분회총회, 국회 통산위․노동위원회 위원 앞으로
항의전화․서신․팩스 보내기, 국회 상임위원회
의정활동 감시 등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또한 정당대표
면담을 추진하되 성과가 없을 경우 당사 농성에 들어갈 것도
함께 결의하였다.
10월 13일 오전 9시 30분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들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당사에서 면담을 갖고 파견법을 당론으로
확정하라는 요구와 함께 불법용역에 대한 정당 차원의 실태조사,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총재는 “파견법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당론으로 확정된 바가 없기에 조만간
논의를 거쳐 입장을 발표하겠다.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주문과 함께 “민자당이 여론 수렴 없이 날치기 통과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면담 이후 사무노련
중앙위원과 일부 조합원은 국민회의 당사에서 ‘파견법 저지
당론 확정’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후 민주당 홍영기 대표와 면담에서도 국회 시정연설시 반대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하고 파견법에 대해서 총력 저지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더불어 이러한 요구가 반영될 때까지
마포당사에서 시한부 농성에 돌입하였다. 농성 중인 10월 16일
공대위 대표들은 맨하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대위
명의로 된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여의도
장기신용은행 앞에서 민자당사까지 이어진 가두집회를 개최하고
“파견법이 강행 처리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각오하라”
“고용불안, 중간착취, 파견제도 반대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두 시간 가량 집회를 진행하였다. 이후 민주당의 농성조는 박일
공동대표의 시정연설(10월 18일) 문안에 추가로 파견법 반대
입장이 발표되면서 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에서는 파견법안 관련 소위원회가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견차로 결정을 짓지 못하자 2차
소위원회가 열리던 날(10월19일) 아침 공대위 간부들이
일방적으로 회의장에 들어가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며 공개토론을
요구하였다.
이후 대회의실로 옮겨 소위원회와 공대위 간부들간 난상토론을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중앙회 출신의 박상규 부총재는
“근로자파견법은 중소기업을 돕자는 법이 아니라 재벌을 더
지원하는 악법”이라고 발언하여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이날
“당론으로 천명은 안했지만 이미 반대하는 활동은 해왔다”는
우회적 표현을 통해 공대위측 입장을 충분히 참작해서 입장을
정리해 내겠다는 국민회의측의 약속을 받고 해산했다.
이후 국민회의 측으로부터 파견법 반대 당론(10월 20일)이
확정됐다는 것을 전달받았고 국민회의에서 농성도 풀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통산위, 노동위 상임위원장에 모두 야당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는 현실에서 상당한 투쟁의 성과물이었으며 이제
모든 힘을 민자당으로 집중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투쟁의 확산, 민자당의 근로자파견법 유보 결정
이러한 투쟁외에도 노․사․정․학계 등이
참석한 각종 토론회, 공청회를 통해서 파견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입법 저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0월 25일 개최된 민주노총 주관 공청회에서 그 동안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동부의 파견제도 도입의 논리가 거짓 신화에
지나지 않음을 가장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공청회를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업종별 사례발표에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참석자들이 불법용역의 실태를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채택,
발송하였다. 이 공개질의서에서 파견법 제정에 대한 찬․반
입장과 관련하여 답변을 10월 30일까지 공대위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답신에 따라 이후 선별적 대응을 전개할 것임을
공표하였다.
답신 기한인 10월 31일이 지나고 11월 1일 민주노총 주관하에
파견법 저지 및 노태우 구속을 위해 민자당에서 전경련 회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가두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집회에서는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거 동원이 이루어졌던 사무노련
외에도 울산 등 지역, 그룹에서 많은 동지들이 올라 와 파견법
저지를 위한 싸움을 함께 전개함으로써 이제는 전조직으로
파견법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어 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울산지역 동지들은 지역구 의원들을 항의방문하여 파견법
반대서명을 받아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집회가 끝나고 열린 민주노총대표자회의에서는 파견법
저지와 노태우 구속이 아루어질 때까지 명동성당에서 무기한
텐트농성에 돌입할 것과 농성 참여 규모도 점진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기로 결의하였다. 다음날(11월 2일) 민자당 김종호
정책위원회 의장은 고위 당직자회의에서 근로자파견법 도입을
유보키로 당론을 공식결정했다고 밝혔다.
근로자파견법 유보를 넘어, 철회로!
철회되어야 할 법안이 유보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으나 초창기 강행 의사에 비하면 그나마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철회를 포함한 이후 대책들도 심도 깊게 논의하고 각급 조직별로
대처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법안을 들고 나왔을 때만 달려 들어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현행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불법용역의 근절을 위해
대대적 단속을 촉구해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계속 불법용역을 방치할 때는 노동부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을 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특히 노동부는 불법용역업체에 대한 처벌규정이 미약하다는 것과
불법용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핑계삼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직업안정법의 개정 청원 요구등을 통해 사용자 처벌
규정을 강화할 경우 전반적인 해결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요․공급의 고질적 암거래를 차단할 때만이
불법용역은 근절될 수 있으며, 어차피 현재의 파견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정규직 노동으로 불가피하게 전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가 진정 파견노동자들의 보호에
관심이 있다면 이들이 정규직으로 직접 전환, 채용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펴는 것이 도리이다.
정부에서도 매년 근로자파견제도와 같은 악법을 들고 나와
노․정간 소모적인 싸움을 전개하기 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방안들을 만들어 나가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인력수급의 원활화를
위해 구인, 구직을 연결시키고 국민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올해 시행된 고용보험법의 기본
취지도 실업, 취업, 직업능력 개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기본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고용보험제가 도입된 이상 그 기능을
최대한 활성화하여 노동시장에서 건실한 인력수급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부 지원의 공공직업훈련 및 직업소개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는 등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근로자파견법을 제정하려 하는 것은
결국 노동운동의 탄압과 노동자 전체의 생활 수준을
저하시키려는 시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술투자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인력에 대한
투자이다. 단기적인 이윤 추구보다 장기적인 전략, 특히 인력에
대한 투자를 통한 생산성 증대를 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함으로써 오는 단기간의 인건비 절감보다
인력투자를 통한 생산성 증대를 추구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정부나 기업은 이제부터라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용역
노동자의 노동 및 근무태도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 나쁘거나
근본적으로 일을 잘 못해서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조건에 의해 야기되는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근속으로 숙련된 노동자, 기업에 대한 귀속감과 일체감이
강한 노동자들은 기업이나 국가가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노/정/연
|
|
1995-11-20 00:0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