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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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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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영
연구위원/한신대교수․정치학
특
집
다시 노동자정치세력화로!
1. 들어가는 말
선거가 끝나고 평가가 분분하다. 자민련이나 민국당을
제외하고는 패배했다는 얘기는 별로 없다. 민주당도 수도권에서
세를 불렸고, 한나라당은 영남권 싹쓸이에 바탕해 제1당을
유지했으니 별로 불만이 없어 보인다. 서울의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면서, 기성 정치권에 정면도전을 시도했던 청년진보당
역시 일부 박빙지역에서 보수정당 후보 낙선에 적잖은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남벨트’에서 선전한 민주노동당도
비록 의석을 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내외에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는 자평이다. 마찬가지 낙천, 낙선운동으로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총선연대 역시 자신들이 ‘찍은’ 후보중
70%이상이 낙선되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이고, 외신보도 역시
이번 선거의 유일한 승자로 이들 총선연대를 지목 거들고
나선다. 선거 초반 총선 연대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다.
새로운 권부, 제5부의 탄생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비정치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총선연대는 - 적어도
이번 선거에 있어서는 - 하나의 정치단체였다. 전국민이
총선연대를 따라 ‘손가락질’을 조직화함으로써 전례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정치적 아마츄어리즘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현실정치에서 한쪽의 손해는 다른쪽의
이익일뿐이다. 총선연대의 활동은 한편으로 정치모리배에 대한
‘도편추방’을 이루어 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의
반정치경향을 초래 그 성과를 상쇄해버렸다. 나아가 한국정치의
모순을 몇몇 ‘인물’의 문제로 환원시켜, ‘구조’의 문제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16대총선은 유감스럽게도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선거였다.
우선 우리 모두는 뭐라고 해도 지역주의에 패배하였다.
한나라당은 재벌의 후예 1명을 제외하고 영남권을,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친여 무소속 4석을 빼고 호남권을
싹쓸이하였다. 부족국가의 재판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북한 역시
큰 재미를 못 본 것 같다. 무슨 청부업자처럼, 때로는 비행기를
때로는 잠수함을, 이도 저도 아니면 소총수를 내려보내
‘선거특수’를 누려 오던 북한도 천하무적 지역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비장의 ‘조커’를 꺼내
들고 회심의 일격을 노린 집권당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결과 4김시대 (DJ, JP, YS, ‘김정일’) - 3김시대는 잘못된
표현이다 -는 의연하다.
다른 쪽을 보자. 이번 선거에 원내 진출, 다음 선거에
원내교섭단체, 그 다음 선거에 집권 또는 그 근처라는 가슴 벅찬
시나리오를 제시했던 민주노동당 역시 승리를 운운하기에는 웬지
겸연쩍다. 선거이후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서 나온 다음 두 가지
대조적인 평가를 보자.
- “민주노동당 창당 후 처음 맞이하는 선거에서 여러 가지
준비부족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승리라고 평가한다. 민주노총
후보가 선전했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본다. 특히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의 자신감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본다.”
- “선거과정에서 총파업투쟁의 교두보로서의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총파업투쟁이 선거운동의 전체적인 기조로
관철되지 못하고 당과 민주노총의 정확한 지침도 없었다. 민중
생존권, IMF문제, 진보와 보수의 문제 등을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켰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이 글에서는 위의 대조적인 평가에 시비를 따지는 일은
유보하겠다. 그 답변은 아마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상당부분 달려있으리라 생각된다. 정치세력화를 단순히 노동자
정당의 원내진출로 이해할 경우 평가는 전자에 접근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노동자권력 창출을 통한 국가권력의 전면적
개조라는 최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후자로 기울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그 출발점에서 반추하는 것을 통해 그것의 상을 재점검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데 있다.
2. 자본주의적 지배의 특성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정치도 정치의 한 형태라고 한다면, 문제는 정치 나아가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청년 맑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치 종교가 인류의 이론적
투쟁에 대한 내용색인인 것처럼, 정치적 국가는 인류의 실천적
투쟁의 내용색인이다, 정치적 국가는 그러므로 그 형태속에 모든
사회적 투쟁, 욕구 그리고 진리를 공적인 것의 관점에서(sub
specie rei publicae) 표현한다.”(맑스, 엥겔스,
ꡔ전집ꡕ 1권, S. 345; 이하 MEW) 맑스에게
“국가는 오직 정치적 국가로서만 존재”(MEW 1, S.323)하는
것이다. 맑스에 의하자면 국가는 이처럼 그 ‘형태’속에
사회계급간의 특수이해의 대립과 갈등을 ‘공적인 것’ 혹은
공공영역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국가 또는 정치는 사적인
것과 대립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고 또 열려 있는 공적인
것에 관계한다. 그러나 정치가 보편적인 것, 공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은 사실상 당위적인 요청에 불과하다. 그의
정치학비판은 현실의 국가권력이 진정한 보편성과 공공성을 담지
못하고 오히려 부르주아지의 계급지배를 영속화시키는 한낮
‘위원회’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계급으로 분열된
자본주의하에서의 국가란 그런 의미에서 단지 기만적이며,
공허한 반쪽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대변할 뿐이라는 관점은 이후
정치경제학비판을 통한 ‘근대부르주아 사회의 운동법칙의
폭로’를 통해 비로소 그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 낸다.
대안으로서의 진정한 그리고 새로운 보편성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통해 가능하다. 정치는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을 의미한다 …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경제적 운동에서 정치적 운동, 다시 말해
자신의 이해를 일반적 형태로 보편적인 사회적 강제력을 지닌
형태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나타난다. ”(MEW 33, S.333)
한 구절을 더 인용해 보자.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과 대결하며 … 지배계급을 강제하고자 하는 모든
운동은 정치운동이다. 예컨대 개별공장이나 작업장에서 파업
등을 통해 개별자본가에게 노동시간의 제한을 강제하는 것은
순수한 경제적 운동이다. 반면 8시간 노동법 등 법 제정을
강제하는 것은 정치운동이다”(위의 책, S.332) 물론 노동자의
“경제적 운동과 정치운동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MEW
17, S.422)
위에서 본 것처럼 맑스에게 계급사회에서 ‘정치적인 것’이란
한 계급의 사회적 이해를 - 예컨대 법적인 형태 등 - 보편적
이해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강제력에 관계한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현존하는 정치적 국가의 활동은 현재의 지배계급의 특수한
이해를 보편적 이해로 번역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현존국가는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사회적 제계급의 일반적 이해를
대변할 수가 없다.
2. 노동자계급 역시 자신의 이해를 보편적 이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장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이해는 인간해방이라는 보편성을 담지하는 것이기에 단순한 사적
소유관계에 기반하는 특수이해는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맑스의 이해방식이
갖는 일정한 역사적 한계 역시 짚어져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
맑스는 기본적으로 “국가는 오직 정치적 국가로서만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지만, 반대로 ‘정치적인 것’이 항상
국가기능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20세기초 이후
현대자본주의 국가의 발전경향과 관련해 볼 때 특히 그러하다.
국가기능은 부르주아의 사적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데에 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는 상이한 이해관계의 생성과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를 조절하고 형성시키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국가는
나아가 경제정책적 수단을 통해 자본의 가치증식조건 자체에
개입하며, 사회정책을 통해 계급투쟁의 격화를 예방하고 이를
완화시킨다.
현대자본주의 주요국가에서 이는 단순히 국가의 자의적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구조이다. 이와 함께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영역은 산업혁명 단계의 자본주의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역화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 그람시의
표현을 빌자면 - 현대사회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이며, 모든
사람은 정치인이다.” 이러한 정치의 광역화는 단순히
국가기능의 폭발적 증가만으로 초래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19세기말 이후 보통선거권의 쟁취에서 보듯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비약적 성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이후 상향선을
그리면서 발전해 온 노동자 계급운동은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의
주요국가에서 보통선거권의 확장으로 이어지면서 그 자체로
특수한 20세기적 정치형태로서 이른바 ‘대중정치’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정치지형의 구조변화의 결과 국가는 더 이상
정치의 유일적 중심이 아니며 국가외적 정치영역 곧 그람시가
‘시민사회’라고 개념화하였던, 사회의 -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경제영역과 동일시하였던 - ‘사적 영역’ 역시
정치적인 것이 생성되고 전파되는 공간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둘째, 맑스의 정치 이해는 다분히 중유럽적-프러시아 독일적
‘레알폴리틱(Realpolitik)’적인 정치관에 조건지워져 있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한다. 정치과정은 단순히 강제력에만 관계하지
않는다. ‘정상적’ 부르주아 정치는 동시에 설득을 통한
‘동의’의 생산에도 관계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설득, 많은
경우 조작과 기만을 포함하는, 대중의 소극적, 적극적 동의의
확보를 요구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과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회의 헤게모니관계 역시 정치적 관계에 구성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맑스에 연해 생각해 볼 때,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하나의 사상 또는 담론이 생성되고
유통되며 소멸되는 그러한 ‘말’의 사회적 순환과정 역시
고도의 정치적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상의
정치이다. 이 과정에 대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개입과정은
사회와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개입 못지 않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1929-30년대에 활동했던 구소련의 법학자
파슈카니스가 던진 ‘고전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자. “왜
계급지배는 있는 그대로의, 즉 소수에 대한 다수의 사실적
복종이라는 모습을 띠지 않는다? 왜 계급지배는 국가에 의한
공식적 지배라는 형태를 취하며, 국가의 강제기구는 지배계급의
사적 기구로서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분리된 비인격적인 공권력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가?” E. Pashumanis, Allgemeine Rechslehre
und Marxismus, 2.Aufl. Frankfurt/M. 1969, S.121이하.
스웨덴의 맑시스트 G. 써본 역시 유사한 질문을 제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주요국가의 경우, 소수의 주요계급
즉 부르주아지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민주적 형태를 통해서
지배하게 되었는가?” G. Therborn, “The Rule of Capital and
the Rise of Democracy”, New Left Review, No. 103 (1977),
p.3.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마 자본주의적 지배관계가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발견된다.
자본주의적 지배관계는 그 ‘비인격적(impersonal)’ 형태에
있어 봉건적 지배와 질적으로 구분된다. 여기서는 지배계급의
대표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국가기구가 존재하고 이
국가기구는 모든 개별자본가들의 ‘위’에서 하나의 비인격적인
힘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인격적인 힘이 모든 지배와
착취관계를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그 자체 마찬가지로 비인격적인 ‘시장’에 의해 매개된다. 다시
말해 임노동자는 봉건사회에서와는 달리 어떤 특정 자본가
밑에서 노동할 것을 정치적, 법적으로 강제받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평등한’ 노동력의 구매자 곧 자본가에게, 전혀
‘자유의지’에 따라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판매했을 뿐이다.
마찬가지 이 때의 자본가는 사기꾼이나 인신매매자 혹은 신적
권위로 무장한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공평한’ 등가 교환관계
속에서 상품을 구매한 거래파트너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들 자본가가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결합, 상품을
생산하는 그 생산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임금으로 지불되는 가치를 제외한 모든 가치 곧 잉여가치는 전혀
하자가 없는 ‘계약’에 따라 자본가의 몫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 때 본질적 의미에서 ‘경제외적 강제력’으로서, 다시 말해
그 자체 비생산적 요소로서 국가는 이러한 계약의 ‘공정한’
중재자이자 수호자로서 이 과정의 지속을 공권력을 통해
보증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그 지배관계는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그러나 누구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주체 없는 과정’ 곧 보이지 않는 구조의
효과이다. 봉건사회에서 농민당 정부에 의해 통치받는
봉건귀족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당 정부하에서도 자본의 지배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지배의 비인격성에 있다. Therborn(1975), 위의 글,
p.30.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역사가 보여주듯 파시즘하에서도 자본의 지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본의 지배만 보장된다면 사실 정치체제가 어떻든
자본으로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내에는 일정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강제할 조건 또한
존재한다. 여러 자본분파간 (산업자본, 금융자본, 중소자본
등)의 경쟁이라는 영원한 자본의 생존조건은 자신들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절해 줄 공통의 정치기구를 필요로 하고, 또한
이를 전국적 범위에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내 다양한
제세력간의 결합과 동맹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산업혁명단계에서 봉건지주에 대해 산업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의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에 대한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국가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 노동운동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도전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자본의 지배의 안정화와 재생산에
좀 더 ‘유리’하게 또한 ‘경제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주요국가의 복지국가적 메카니즘은 그
자체로 노자간 계급타협의 제도화 결과이다.
자본주의적 인간형은 노동자와 시민사이 모순에 의한 자기분열로
특징지워진다. 적어도 법적, 정치적 수준에서 노동자와 시민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 양자는 모순적이다.
‘주체 없는 과정’으로서 자본주의적 구조는 정치와 경제의
이러한 ‘분리’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노동의 정치는
그러므로 바로 이 모순의 구조 그 자체에 개입하는 것에 자신의
존재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 세기 자본주의
중심국가에서의 노동자 정당의 역할은 이 모순이 체제비판적,
반체제적 에너지로 전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곧 모순의
관리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능적 보완물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3.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 수준과 노조-정당-사회운동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의 삶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3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즉 1) 노동시장 2) 노동과정 3)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 이 각각은 ‘노동자’에 대한 다음 3가지의
개념규정에 상응한다. 1)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판매자로서의
노동자 2) 직접 생산자로서의 노동자 3) 시민으로서의 노동자.
말하자면 임노동자로서 노동자는 우선 노동시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상품 곧 노동력을 임금과 교환한 다음,
기계, 토지 등 생산수단과 함께 하나의 생산요소로서
노동과정(생산과정)에 투입되며, 작업장 밖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휴식하거나 기타 활동을 한다. 여기서
임노동자는 혹은 소비자로 혹은 시민으로 존재한다.
이로부터 노동정치가 갖는 제 차원이 도출된다. 첫째, 노동의
정치는 노동시장에서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유리한’
판매조건에 관계한다. 좀 더 유리한 판매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논리에 입각한 노동간 경쟁을 제어하고 이를 연대의
원칙하에 형성해 가고자 시도한다. 둘째,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소비과정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곧 가치증식과정이다. 여기서
노동의 정치는 작업환경을 비롯한 노동조건 일반에 대한
개선요구를 넘어서 자본의 이윤으로 전화되는 잉여가치부분에
대한 개입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잉여가치를 둘러싸고
노동의 정치는 자본의 논리에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작업장 밖의 생활세계는 단순히 직접생산자로서의 기능수행을
위해 필요한 재충전의 공간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정식화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근대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를 담아온 기본적인
조직틀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양자간의 관계이다. 이와 관련해 서구의 노동운동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정당=정치, 노조=경제라는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역할분담이 노동의 정치가 형성되고 전개되는 데 방해가 되어
왔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양 조직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이해대변의 상이한 방식과
형태에서 비롯된다. 양자는 우선 다음과 같은 성격과 기능상의
차이가 있다.
먼저 노조의 경우 그 가입조건은 노동자계급에 속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반면, 정당의 경우 그 정치적 신념을 공유해야
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정당에 비해 노조의
구성범위는 훨씬 포괄적이다. 그렇지만 양자 모두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가입하고 탈퇴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 볼 때, 그
누구도 가입과 탈퇴를 강요할 수 없다. 그람시가 노조와 정당을
‘시민사회’로 분류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둘째로 노조가 노동력의 재생산조건 일반에 관계하는 반면에
정당은 직접적으로 권력장악을 목표로 구성된 조직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조의 기능은 다분히 양면적으로 정의된다.
한편으로 노조는 노동력의 판매조건과 노동조건을 개량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완전한 사회적 해방을 위해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면에서
노조의 활동속에서는 이미 고도의 정치성이 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노동자계급
이해에 기반해서 조직된 대다수 사회민주당, 노동당 등 일련의
진보정당들은 20세기 후반 들어 한결같이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신, 이른바 ‘세계관중립적’ 권력장악도구로
변질되었다. 마찬가지 노조 역시 기층대중의 이해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 하나의 (의사) 국가기구화되어 국가, 자본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하나의 ‘코포라티즘적’
제도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배블록의 통합주의 전략의
하위파트너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현존
사회주의에서의 정당, 노조 관계도 그러하다. 여기서 노조는
집권당의 이른바 ‘동력전달벨트’로 전락해 일방적이며
관료적인 지시, 복종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양조직간의 성격
차이를 인정한다고 할 때, 노조는 정당정치에 대해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때의 정치적 독자성을
정치적 중립성과 혼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선행사례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존
준거틀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담론은 압도적으로 19세기 이후 서구
노동운동사에서 추상화된 ‘정당/노조’ 패러다임에 기초해
형성,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노동과 정치라는
문제설정은 이것만으로 결코 만족스럽게 풀이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노동운동사를 볼 때 확장된 문제설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노조/사회운동의 3차원적 다이내미즘에
관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있어 사회운동은
일종의 ‘잔여범주’로 가끔 생각날 때 언급되거나, 의회 압력용
원외 동원수단 정도로 간주될 것이 아니라, 그 자체 하나의
독립변수로 설정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회운동과 정당은
상호대체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 다음 대담을 참조. “당은
운동이 아니므로 노동자는 물론 중간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일군의 인물을 확보하여...”(김동춘;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영국노동당은 노조원, 직업인으로서의 노동자를 대표하다
망가졌습니다. 당분간 어렵겠지만 당과 노동자의 분리정립이
필요합니다. 경제적 이해에 입각해 있는 한국노동운동으로부터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 독립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이재영;
강조는 인용자) 단편적 인용이긴 하지만, 당과 운동, 당과
노동자 나아가 정치와 경제의 분리속에, 한 때 노동자 정당으로
출발하였던 서구 사민주의 계열 정당의 비극성이 있다. 실질적
분리에 선행하기 마련인 이러한 개념적 분리야말로 노동자
정치운동을 부르주아 정치체제의 한 기능으로 통합시키는 실용적
기능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사회과학
포럼토론-진보정당과 지식인」ꡔ동향과
전망ꡕ 1999년 가을호)
그리고 이와 더불어 정치세력화와 정당건설이 직접적으로
동일시되거나, 사회운동과 정당건설을 단계론적으로 사고하는 것
역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글에서 의미하는 바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깊숙한 곳에
내장된 그 구조적 핵심의 해체를 목표로 하고, (신)자유주의적
정경분리론의 좌파적 변주에 불과한 노조-정당 역할분담이
아니라 노조정치, (노동자) 정당정치 그리고 특히 운동정치
각각이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대변의 기능적 분화형태속에서
이루어지는 해방의지의 능동적 표현이자 실천으로 이해된다.
4.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여전히 진행중인 미완의 프로젝트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할 때 적어도 현재의 수준과 진도에서
확인되는 여러가지 편향과 오류와의 긴장과 비판은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남는다.
첫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정당세력화로 그 활동공간을 의회로
한정짓는 경향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영역은 결코 국가 영역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적 영역조차 광범위하게 정치화되어 있는
조건을 간과하고, 노동정치의 폭과 수준을 스스로 제한하는
의회주의 또는 국가주의는 목전의 득표율에 집착하여,
원내진출만 하면 장미빛 미래가 열리리라 몽상한다.
둘째, 진화론적 역사관을 들 수 있다. 예컨대 민노당이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16대 원내진출--차기
교섭단체--차차기 집권’류 기본적으로 서구 사민당모델에서
차용한 전망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렇지만 자주 원용되는 독일의 경험만을 보더라도 사정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1869년 창당된 A.베벨 지도하
‘사회민주주의 노동당’과 라살레계열의 ‘전독노동자동맹’
모두 합쳐 1871년 선거에서 3%정도를 득표한다. 이 득표율은
다음번 제국의회선거에서 6%로 증가하고, 비스마르크정권의
혹독한 탄압하에서도 꾸준히 상승 1890년 선거에서는 19.7%를
획득한다. 그 경향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1912년 1차대전
직전에는 35%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였고, 1차대전 직후
빌헬름제국의 붕괴와 함께 마침내 집권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약 50년에 걸친 독일사민당의 집권사를 자세히
보면 여기에 대해서는 J.v. Freyberg u.a. Geschichte der
deutschen Sozialdemokratie, 3.Aufl., Köln 1989참조.
1) 1875년 고타당대회에서 양대정파가 통합 ‘독일사회주의
노동당(SDAP)’가 탄생한 데 위협을 느낀 비스마르크 정권은
1878년 ‘사회주의자법’을 제정 혹심한 탄압에 나서고, 이후
10년이 넘는 탄압기간동안 노동자 당은 노조와 결합 강고한 원외
비합법투쟁을 전개하였다. 마침내 1891년
에르푸르트당대회에서는 맑스주의가 지도이념으로 관철되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원외투쟁과 운동이 계급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이다. 2) 독일 사민당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보통선거권 쟁취투쟁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거자체가 고도의 정치투쟁이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의 집권에는 오히려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과
이로 인한 지배블록의 총체적 붕괴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 다시
말해 독일사민당의 초기 역사는 결코 진화론적 자연 성장의
역사가 아니라, 원외 운동, 선거권쟁취를 위한 정치파업,
제국주의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가능했던 것이며, 이런 점에서
한국과는 비교될 수 없는 차이를 갖는다. 이 말은 곧 원내진출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 물론 유의미한 - ‘하나의’ 방도이며,
‘언젠가는 우리도 누구처럼’ 식의 흔한 가정보다는, 현실
운동의 일보전진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오히려 더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셋째, 중간계급에 대한 정책이다. 여기에 대한 전통적 접근은
두루 아는 것처럼 레닌의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에 기초한
계급동맹개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는
운동현실이라기보다는 어떤 목표로서의 의미만을 갖는다. 그리고
중간계급운동이 90년대 들어 시민운동의 형태로 자립화되어 있는
조건에서, 고전적 동맹개념은 부문운동간의 선험적인 서열관계를
전제하지 않는 연대개념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므로
중간계급에 대해 아무런 준비된 정책 없이 단순히 소 닭보듯이
한다든지, 좌익 순수주의적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될 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체를 세워내는 일과 계급, 계층간의 연대는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넷째,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프로젝트에 새로운 형태와 질을 요구하고
있다. 초민족국가적으로 운동하는 자본과 IMF, 세계은행, WTO등
그 국제적 대리인에 대한 노동의 대응은 분산적인 국가별 대응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국가의
계급성을 현저히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현단계 노동정치는 한편으로 초국적 자본과 다른
한편으로 ‘저들의 국가’라는 선험적으로 그 비중을 예단할 수
없는 두 개의 전선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의 지구화라는 것이
동시에 그 모순의 지구화에 다름 아니라면,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저 고전적인 국제주의적 전망을 국가의
강화된 계급성을 주시하면서도 국가시대 이후를 아울러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에 접속시키기 위한 인식의 정비와
전략이 요구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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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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