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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진노동자의 사회.경제적 계급정체성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최형익

   16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진보진영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기치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번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의 진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평가가 서서히 제출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원내진출실패”, “가능성을 보았다” 등 언뜻 서로 다른 평가가 제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의회진출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바에 있어서는 출발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청년좌파”를 내걸고 수도권 집중 전략을 세웠던 청년진보당은 의회진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자신들의 ‘다름’을 강조하지만 대중투쟁보다 후보전술을 중심으로 선거투쟁을 했던 것에서만큼은 차이가 없다.

   우리가 우려하는 점은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자칫 선거로만 가두어지는 현실이다. 사실 3~4월 동안 30여일을 넘게 장기파업을 하고 있었던 사업장이 상당수 있었다. 어떤 사업장의 경우 파업단 중 일부를 투쟁하고 있던 다른 사업장에 지원한 경우도 있었다. 파업노동자들이 선봉이 되어 노동자?민중후보를 지원한 곳도 있었다. 거꾸로 진보진영의 후보들이 이들의 투쟁을 어떻게 지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점이 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호 특집을 ?다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향해?로 잡으면서 직접적인 총선결과에서 한발 떨어져 노동자계급성, 정치의식성, 조합?정당?전선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것이 지금 선거로만 매몰되어 가는 노동자들의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편집진의 판단이었다. 다시 말해, 선거는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앞의 두 글은 이후 (가제)?민주노총 노동자계급의식 설문조사 결과?의 단행본으로 제작될 계획이다.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향해





한국 선진노동자의 사회․경제적 계급 정체성

-‘99,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의식조사를 중심으로-


최 형 익 / 연구위원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 해 영 / 연구위원



노동자계급정치와 전선운동

김 영 수 / 연구위원



한국 선진노동자의 사회-경제적 계급 정체성

-‘99,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의식조사를 중심으로-

최 형 익

연구위원







1. 들어가며


한국사회에서 계급이란 용어 그 자체가 80년대 이후 진보적 사회운동과 연합한 진보적 학술운동 진영의 지난한 개념전투의 전리품임은 이제 공지의 사실이다(김진균, 1999). 한마디로 계급개념 그 자체가 한국사회의 계급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80년대 후반 이후의 소위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가져다 준 학문자유화의 효과와 함께 인터넷 등 의사소통을 위한 전자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이제 어떤 불온한 학술영역도 더 이상 국가권력의 자의적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 주었다. 따라서 이제는 계급, 또는 사회계급이란 용어는 더 이상 불온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검열의 대상조차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문제에 관해 해금조치가 이루어진 뒤에도 그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연구의 토대 역시 여전히 허약한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연구의 내, 외부적 제약조건이 다 사라진 현재의 시점에서 훌륭한 계급연구 성과물들을 생산하거나 축적하고 있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한국의 계급 연구자들이 계급, 특히 그 가운데 노동자 계급을 개념화하는 방식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한국에서 80년대 후반에 새롭게 전개된 노동자 계급운동의 발전과 이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분리되어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계급연구는 노동자 계급 운동의 전개와 그 추이를 통해 계급개념을 재구성하기 보다 80년대 한국의 진보적 학술운동을 장악한 소련발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스탈린주의의 교리에 입각하여 노동자 계급을 위치짓는 등 이데올로기 중심적인 편향을 드러냈다.

계급연구에 이데올로기적 편향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로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보증은 어떤 실증적 분석이나 경험적 연구도 우회할 수 있게 해주었다. 80년대에 설득력 있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부재하다는 점이 이러한 사정을 잘 대변한다. 두번째는 정교한 계급논리나 경험 연구를 선험적 혹은 추체험적 계급도식화로 대체하는 형태의 속류적 맑스주의 교리로 우회하는 방식은 한국사회의 노동자 계급 이나, 민중에 대해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의 주력’이라는 도상혁명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공제욱 외, 1989).1) 이는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원대한 역사 저편의 프로젝트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는, 아니 정확히 말해 매진해야만 하는 영웅주의적 이상실현의 독생자로서 거대주체로서의 형상을 노동자 계급에 부여하는 것이며, 이론적으로는 루카치적 프롤레타리아트 계급개념의 한국적 번역판이라 할 수 있다.2)

한편, 현존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이데올로기 중심적 계급연구에 결정타를 날렸다. ‘계급(투쟁)으로 세운 나라’가 계급(투쟁)으로 망했으니 무슨 별도의 말이 필요하겠는가. 소련 등 현존 사회주의권의 몰락시점과 한국에서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중심으로 한 맑스-레닌주의의 급격한 퇴조시점, 이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 도상혁명론의 소멸시점이 거의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80년대의 저작들 가운데 적어도 계급연구에 관한 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그다지 유의미한 혹은 좋은 참고자료가 될 만한 연구성과가 거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나아가 8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그에 따른 노동운동의 퇴조 경향은 사실상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개의 거대 사회계급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일이 여전히 유의미한지 여부에 대해서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역시 솔직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자주 실천이 개념에 앞서는 법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는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고 그 이념이 퇴조하는 바로 그 시기에 계급투쟁 또는 계급적 실천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는 패러독스가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87년 이후의 한국사회만큼 계급투쟁은 계급간의 투쟁임과 동시에 계급내부의 혹은 계급에 관한 투쟁임을 잘 보여준 사례도 없다 할 것이다. 각종 지표가 잘 말해 주고 있듯이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운동의 역사는 87년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전의 모든 계급투쟁의 기록들을 모두 갈아 치웠다. 단적인 예로 87년 한해 노동쟁의 건수는 그 이전 1961년부터 1986년에 이르기까지 28년간의 쟁의건수를 합친 2,365건보다 무려 1,384건 많은 3,749건에 달한다(신광영, 1994:312). 결국 한국에서의 노동자 운동의 계급적 실천의 내용이나 형성과정은 그 이전의 노동운동의 경험에 강력히 영향받았음에 틀림없겠으나, 적어도 계급연구에 관한 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1987년이야말로 한국에서 새로운 노동자 계급주체형성과 이러한 주체에 의한 계급적 실천이나 계급의식을 연구할 수 있는 원년이라 할 것이다. 이는 과거 계급연구의 불임증세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노동자 계급투쟁이나 계급의식의 일반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들 주체의 정체성에 관한 경험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는 강력한 현실적 근거이기도 하다.3)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한국에서 전개된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으로 명명되기 시작한 87년 이후의 노동자 운동을 이전의 한국노총의 그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계급주체형성의 과정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선진노동자로 개념화한다. 이들 선진노동자의 상태와 계급적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ꡔ민주노총노동자 정치의식조사ꡕ에 기반하여 고찰하고 새로운 계급정치학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2. 민주노조운동: 선진(Seon-jin) 노동자 계급의 형성과정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흔히 ‘선진노동자’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고, 또는 그러한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곤 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선진노동자’라는 개념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선진노동자라는 용어는 사실상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전제된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노동운동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이며, 여기서 그 개념을 풍부하게 하는 과제가 도출된다 하겠다. 외부에서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계급이론 일반의 정정이 오히려 생생한 계급연구의 방법의 아닐까.

이 글에서 사용하는 선진노동자는 일반적으로 1987년 이후부터 발생한 민주노조운동의 성원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는 이 연구의 대상인 민주노총의 조합원을 의미한다. 민주노조운동은 홉스봄(1984)이 지칭한 대로 과거 영국에서 1889년 부두파업을 기점으로 발생한 ‘신노조주의’(New Unionism)운동에 비견할 만하다.4) 홉스봄은 20세기말의 신노조운동의 사례로 브라질과 폴란드를 들고 있다(Hobsbawm, 1984:158). 여기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1987년 이후 가공할 폭발력을 지니고 태동한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은 그 이전의 모든 노동운동을 합친 것보다 훨씬 강력했으며, 사실상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새로 쓰게 했기 때문이다. 87년 이후부터 선진노동자들에게 있어 계급조직으로서의 민주노조와 공장점거를 통한 파업투쟁의 일상화야말로 이전의 한국노총주도의 노조운동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이는 87-88년, 96-97년 총파업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선진노동자라는 용어는 민주노조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노동운동조직의 성원들을 지칭하기 위해 쓰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협소한 개념화이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합쳐 20%내외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총의 반민주적, 관제적 성격을 감안할 때, 전체 노동자들 가운데 민주노총이 포괄하는 노동자들이 10% 미만이라는 사실은 사실상 약 90% 가량의 노동자들이 사실상 미조직 노동자들이며, 이와는 반대로 거꾸로 민주노조내 활동가 조직의 성원은 전체 노동자 대중의 미미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사실상 현장활동가들을 선진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은 이른바 ‘전위’(vanguard)와 같은 성격을 이들 노동자들로 호명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민주노총 사업장내의 활동가 조직은 노동운동내부의 강력한 리더쉽을 형성할 수 있는 응집력이 있으며 각종 파업 등 노동쟁의에 있어서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는 노동자 성원들이긴 하지만 이들이 과거의 볼셰비키 공장 세포들처럼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위해 활동하는 소수 음모조직은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이들이 민주노동운동내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계급연구의 관점에서는 민주노조운동 전체와 별도의 구분되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선진노동자는 요컨대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선진노동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계급형성 과정과 동일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진노동자는 지난 10여 년 간 계급적 실천의 성과로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이고, 자주적인 노조운동조직을 형성한 일련의 노동자층으로 전제한다. 물론 당신이 말하는 계급의식이 무엇이냐 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급의식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려는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들이 몇 가지 의식분류 이외에 정교한 이론적 작업이나 조작적 개념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그리고 이 달 연구 작업 역시 맑스가 제기한 ‘즉자/대자 계급의식’ 도식을 크게 뛰어 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계급의식’이라는 개념은 즉자적이건 대자적이건, 조합주의적이건 혁명적 의식이건 있냐 없냐의 여부가 결정적이며, 그 여부는 계급적 실천의 성격과 그 유무를 통해 비교적 관점에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속한 노동자들의 경우 87년 이후에 쟁의발생 건수, 구속자수, 총파업의 경험과 강도라는 관점에서 계급적 실천을 조작해 볼 때, 계급형성을 경험한 집단이며, 그러한 견지에서 계급의식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향후 어떤 계급형성과 계급실천을 전개할지, 그 결과 어떤 성격의 계급의식을 체현해 나갈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전략 또는 계급정치학의 구성과 실천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지 어떤 선험적 경로를 미리 예단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1980년대 후반, 정확히 1987년 이후 계급형성과정이라 한다면 이처럼 하나의 계급으로 등장한 선진 노동자의 성격규명에 관한 연구나 계급형성의 관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을 분석한 연구가 대체로 부재한 것이 지금의 계급연구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러한 선진노동자 집단이 처해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탐색을 통해 노동자 계급형성의 실마리를 새롭게 찾아보려는데 목적이 있다 할 것이다.



3. 계급형성의 외연적 조건: 작업장 규모, 학력, 작업장 진입의 연령을 중심으로


1)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대공장, 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일반적 사실이 이번 설문조사결과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1994년 전노대 의식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8.9%가 500인 이상의 대사업장에, 그리고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는 응답자의 37.5%가 종사하고 있다(한노정연, 2000:4). 그런데 이 비율은 이듬해인 1995년 민주노총이 창립된 이후 약 4-5년이 경과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500인 이상 사업장이 59.7%인데, 이 가운데 1000인에서 5000인 이하 사업장은 27.2, 그리고 5000인 이상 사업장이 무려 18.9%인 것으로 나타났다(한노정연, 2000:6). 여기에 성비로 보면 남성이 83.2%, 그리고 여성이 16.8%로 남성 비율이 4배 이상이다(한노정연, 2000:6). 이는 87년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이 남성중심의 기간 사업 대공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 주는 결과이다.


2) 이들 조사에서 특이할 만한 내용은 이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대부분 고학력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학력은 중졸이하 2.9%, 고졸 56.9%, 초대졸 이상 37.3%로 나타났다(한노정연, 2000:194). 이 결과는 최근 민주노총 설문조사의 결과에서 학력을 묻는 질문에 초대졸이상이 41.9%로 나타난 것과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1999:6). 물론 민주노총만 노동자들의 학력이 특별히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인구사회발전연구소의 1990년 노동자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학력은 중졸이하는 전체의 17%, 고등학교가 전체의 60.2%, 초급대학을 포함한 대졸이상이 22.8%에 해당한다(1990:) 1994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대회의 자료는 응답자 가운데 중졸이하 8.5%, 고졸 64.9%, 초대졸 이상 26.6% 임을 보여준다(1994:3) 최근의 한국노총 설문조사의 경우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 가운데 중졸이하, 10.3%, 고졸 53.7%, 그리고 전문대 이상이 34.7% 인 것으로 나타났다(2000:30). 종합해 볼 때,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의 학력이 약간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의 노동자들의 학력이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한국보다 근 100년 이상 앞선,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장 잘 조직화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독일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데페교수는 2000년에 이르면 서독 전체 피고용자 안에서 대졸 이상 노동자는 13-15%(1980년 8.5%)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전문학교 졸업자는 6.6%, 기업 내 교육과정 졸업자 및 실업학교(실업계고등학교) 졸업자는 58-60%(1980년 53%), 비숙련 노동자(중졸자)는 20%(1982년 30%)에 달할 것이다(Deppe et.als, 1988:143). 이는 현재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 아래이다. 데페가 예로 들은 독일노동자의 학력수준이 1988년을 기준으로 하여 13년 후의 상황을 예측한 것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노동자들의 학력이 매우 높은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 특히 가장 잘 조직화되어 있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고학력’은 이들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시점 역시 고령화한다. 물론 고학력이 상대적 개념이듯이 고령화 역시 상대적인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교적 관점에서 입증될 때만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3) 민주노총내 노동자들이 작업장내로 최초 진입하는 혹은 노동자로 처음 편입되는 나이는 대체로 20살 전후이다. 민주노총 가입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대부분 20대 이상이다. 물론 이들 노동자들이 이른 나이에 노동자가 되었다면, 그러한 평균연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해 본 설문조사에서는 최초 직장에 입사한 나이와 이직 시의 연령을 모두 조사한 결과, 거의 100%가 첫 직장 입사 나이가 20살이 넘었다.


4) 취업의 형식이 대부분 공채로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한노정연, 2000). 한마디로 노동자의 고학력화와 공채취업 그리고 청, 장년 취업의 일반화 과정은 동일한 원환의 서로 다른 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석결과들이 노동자 계급의 주체 구성과 관련하여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는 경로 자체가 변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과거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상으로는 현재의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엥겔스의 ꡔ영국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ꡕ에 서술되어 있는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조건과 상황을 비교해 본다 하더라도 현재의 노동자 계급의 모습은 당시의 그들의 모습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엽의 영국 노동자들은 거의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쓸 줄은 더욱 모른다(Engels, 1988:151). 게다가 유소년 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다. 9살이 되면 공장에서 매일 6시간 30분 동안 일을 하며 이것은 13살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이전에는 8시간 일을 했고 공장제의 초기에는 12시간에서 14시간, 심지어는 16시간 일할 때도 있었다. 공장주들은 보통 8-9세의 어린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5살짜라 어린이도 고용하고 있으며, 종종 6-7세의 어린이도 고용하고 있다. 노동시간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14-16시간에 이른다. 공장주들은 감독자가 어린이를 매질하고 학대하는 것을 허용하며 실제로 자신이 그렇기도 한다. 스코틀랜드의 한 공장주는 16세의 소년노동자가 도망치자 말을 타고 쫓아가서 잡아온 후에 채찍으로 심하게 매질을 하였다(1988:190-191).

따라서 사정이 이러할 때, 노동자들이 극한적인 단조로움 속에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타락시키도록 운명지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8살 때부터 매일 공장에 가야하며 잠시도 쉴 수 없다, 기계는 조금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원동기와 벨트장치, 방추의 움직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간신히 잠깐 쉬려고 하면 벌금장부를 든 감독이 그의 등위에서 버티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와 함께 평생을 공장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 정말 지독한 고문이다. 결국 이러한 노동은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극도로 피곤하게 한다. 노동자들의 지적인 능력을 감퇴시키는 데 공장노동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1988:217).

19세기 중반의 영국의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처참한 상태에 대해 그 누구도 엥겔스만큼 생생하고 정확히 묘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엥겔스의 분석을 현대 자본주의체제에 속한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 대한 분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상태가 일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의 착취가 완화되었다거나 아니면 노사 협조체제의 결과임을,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그런대로 살 만한 조건에 도달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조건의 변화는 자본의 착취형태의 변화에 따른 것이며, 그것의 한층 고도화로 노동자 계급의 운명은 여전히 자본의 족쇄에 매어 있다고 보는게 올바르다. 다만 그러한 착취의 조건과 형태의 변화가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는 조건과 사회적 존재조건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우리가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변화의 양상과 그러한 변화에 내포된 정치적, 이론적 함의이다.



4. 계급형성의 내포적 조건: 작업장 및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앞의 논의에서는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는 경로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절에서는 한국 노동자 계급의 주체적 구성에 있어서 현실적, 계급적 상태를 규정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양상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제 결과가 어떤 형태로 관철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1) 지금까지 한국노동자 계급은 노동시장에서의 유동성 또는 불안정성보다는 직업안정성을 구가해 왔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이러한 안정성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는 요인으로 노동자 계급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노동자계급의 취업안정성을 잘 보여주는 문항이 이직에 대한 설문결과라 할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현업종 근속연수는 6년-10년(33.5%), 11년-20년(35.4%)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는 총직장 생활기간이 6년-10년(31.1%)에서 11-20년(44.2%)이 75.5%, 그리고 현재의 직장이 첫 번째(44.2%) 또는 두 번째(30.6%)라는 항목이 74.8%로 적어도 당시의 조사시점인 1999년 초반까지는 취업구조가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민주노총 노동자의 연령분포와 관련지어 살펴보자.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민주노총노동자의 연령분포를 보면 대부분이 1957년생(조사당시 42세)부터 1972년(조사당시 27세)의 노동자가 약 90% 가량 비율적으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가장 큰 집단은 현재 33-36세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직장에서 7-12년 정도 근속한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진실의 한 측면만을 전달해 준다.


2) 현재 민주노총사업장에서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진실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각종 보도나 보고서를 통해서 접한바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국면에서 사용자측이 ‘고용조정’이나 ‘비용절감’이라는 명목하에 광범위한 해고나 퇴직(67.2%) 및 임금삭감, 동결 등(64.6%)의 방법을 통해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는 것으로 민주노총노동자들은 응답했다. 이는 현재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여타의 노동현장에서의 고통, 가령 노동강도강화나 관리감독 강화, 불규칙한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상 고용불안(제1순위:77%)과 임금삭감(제2순위:15.6%, 160)의 고통에서 초래되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감수해야만 하는 사회-경제적 고통이라는 점을 아울러 보여준다. 그외의 다른 설문항목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한국사회는 이제 실업의 무풍지대, 고용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한국사회의 노동력 구성에 있어서 실업이 구조화되고 이직률이 격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


3) 설문조사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듯이 현재 진행되는 자본의 구조조정의 목표는 ‘노동의 유연화’로 집약된다. 그리고 유연화의 실내용은 대량해고와 대량실업,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의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을 설문조사결과와 연결시켜 분석해 보자.

먼저 노동자들은 작업장의 인력수급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작업장내 인원수준(한노정연, 2000:17)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응당한 비율이 30%, 약간 부족이 36.8%로 모두 66.8%가 인원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비슷한 시점의 민주노총조사 역시 46.5%가 인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1999:15).

다음으로 노동유연화의 토대를 이루는 작업장내 기술적 조건의 변화에 대한 질문항목에 대한 살펴보자. 이직시 피직업교육 여부에 대해 없다가 전체의 66.6%(한노정연, 2000:145)를 차지하고 있고, 이직시 직업교육의 평균기간 6개월 미만이 83.3%로 나타났다. 그리고 컴퓨터 및 자동화기기 사용여부에 대해서는 매우 많다, 21.4%, 많다, 17.1%, 가끔 있다가 15.7%로 모두 57.2%가 사용경험이 있으며, 사용 경험자중 60.9%가 반드시 필요, 그리고 16.1%가 다소 필요, 모두 77%가 컴퓨터 및 자동화 기기가 노동시간의 필수적 부분임에 동의하고 있다. 각 교육공간이 실제 작업에 끼치는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서는 정규교육이 36.9%, 그리고 직업교육이 24.8%로 나타나고 있다(한노정연, 2000:147).

지금까지의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하자면, 직업교육이 구직에 그다지 도움이 안되며, 구직과 작업시 최종적 공식교육의 영향이 가장 지대해져 가는 경향적 추세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자동화 기기나 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과 생산의 기술적 조건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기술적 조건의 변화가 노동자들의 작업적정인력을 대폭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자본의 구조조정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형성한다.


4) 지금까지의 조사결과가 주로 노동자들의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작업 조건과 지위의 변화에 관한 분석이었다면, 여기서는 주로 사회경제적 생활양식의 변화를 다루고자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계급연구들은 노동자의 생산상의 지위만 문제삼았고, 그러한 생산 또는 생산관계에서의 위치를 중심으로 사회계급을 분류하는데 치중해 왔다(Mandel 1971:Wright, 1976: Burawoy, 1985:신광영, 1994)5). 이를 우리는 노동자 계급연구에 대한 생산주의적 또는 노동자주의적 관점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계급에 대한 이러한 생산관계 중심의 정의 방식은 현실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의 많은 고통은 생산조건의 급격한 변화에서 초래되는 것이긴 하지만, 바로 그러한 고통이 생활상의 고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계급을 생산관계에서의 지위를 통해 이른바 ‘빈 장기판’에 말 채우듯이 분류하는 방식은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계급적 실천과 의식의 실제적 형태를 드러낼 수 있는 역동적 계급모형을 만드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의 특질은 생산공간을 통해서만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양식과 연관지어 설정되어야 한다. 상식적으로도 그렇지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사는가. 더구나 대체로 20살 이후에야 작업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자들에게 생산영역 또는 작업장 정치를 무매개적으로 그들의 계급의식이나 계급적 실천과 연관짓는 것은 무리이다. 많은 계급연구들이 간과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변화를 생산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즉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함께 읽어 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산과 생활을 아우르는 분석을 통해 현대 노동자 계급의 상의 내용을 풍부히 할 때, 보다 적실한 계급이론이 산출될 수 있다.


5) 민주노총 소속의 선진노동자들 역시 IMF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경제적 상태의 급격한 악화와 함께 생활고가 더욱 가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 우리의 조사자료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민주노총의 최근 조합원 생활실태조사자료를 이용하기로 하겠다.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로, 80-90년대 파업투쟁의 시기를 경과하면서 민주노총노동자들의 생활양식이 급격히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노동자에 대한 상을 가지고 현재 민주노조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조건이나 생활양식상의 변화가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는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악화될 뿐 만 아니라, 좋은 조건하에서조차 향상되기보다는 과거의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노총 등이 제시한 조합원생활실태조사는 이러한 두 가지 경향성을 모두 읽어 내는데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자료는 본 연구팀의 조사결과와 ꡔ노동자 의식조사 결과ꡕ(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1994), ꡔ1998년 조합원 생활실태 조사결과ꡕ(민주노총, 1999), ꡔ2000년 민주노총 표준생계비ꡕ(민주노총, 2000) 등 네 가지이다. 한국의 선진노동자들의 생활양식의 변화를 읽어 내는데는 많은 항목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주거형태와 교육비용, 자동차 보유율이 그것을 집약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우선 노동자의 자동차 보유율의 변화추이를 보자면, 98년에 61.5%로 IMF 사태 이전인 97년 67.5%에 비해 크게 줄었다(민주노총, 1999:26). 하지만 61.5% 역시 절대적 크기면에서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자동차가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치품이나 상층계급의 신분과시용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는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필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욕구가 발생했고, 자동차가 그것의 충족수단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노동자의 주택유형을 살펴보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주택유형은 아파트가 97년 54.6%에 비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높은 비율인 98년 당시 52.2%를 점하고 있다(민주노총, 1999:20). 여기서 자가와 전세비중은 97년의 경우 자가(自家) 39.9%, 전세 31.3%에서 98년에는 자가 35.8%로 그 비율이 낮아진 반면 전세는 36%로 늘어났다(민주노총, 1999:21). 자가주택의 비용을 보면 IMF 이전에는 9천5백만원 가량이었는데, 98년에는 7천8백만원으로 약 1700만원의 시가하락이 있었다. 전세가격은 98년 기준으로 평균 3100만원으로 나타났다(민주노총, 1999:23). 또한 난방의 형태를 보면 70년대와 80년 초반에 주종을 이뤘던 연탄의 비율은 0.4-0.5%로 사실상 사용가치가 거의 소멸됐고, 기름과 도시가스, 중앙/지역난방 보일러의 비율이 90%이상 차지하고 있다(민주노총, 1999:22).

세 번째로 노동자들은 임금의 상당부분을 교육비에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을 기준으로 자녀가 있는 경우 56%가 과외를 받고 있고, 평균 1.69개의 과외활동과 월 평균 13만 9,766원의 과외활동비를 지출하고 있다. 과외활동 가짓수는 늘었으나 과외활동비는 97년 17만 4,400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민주노총, 1999:24). 한편, 2000년의 경우에는 표준생계비 기준으로 민주노총은 4인가구 교육비를 1999년의 그것에 준하여 평균 33만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민주노총, 2000:9)

이 세가지 지표를 통해 우리가 읽어 내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이 수치를 60년대 노동자의 생활실태와 비교해 보면 그 수치에 내포된 사회-경제적 함의가 다소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단순화라는 위험을 무릎쓰고 60년대의 노동자의 90년대의 노동자의 생활조건을 측정하는 일반적 수단으로 임금내에서 음식물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는 엥겔지수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먼저 60년대의 노동자들의 엥겔지수의 변화추이를 보도록 하자. 60년대 제조업 및 광업노동자들의 임금과 상황변화를 보여주는 표에 따르면 제조업과 광업노동자들이 임금으로 생계비를 충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박준식, 1999:171). 노동자들의 임금 가운데 음식물 비용의 충당에 절반이상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임금소득에서 음식물비가 차지하는 비중, 즉 엥겔지수는 60년대 내내, 그리고 70년대 초반까지 50%에서 심지어 60%에 달하고 있다. 제조업과 광업의 임금과 생계비를 비교해 보면, 두 업종 모두 임금수준이 생계비 총액에 미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조업 임금은 68년까지 생계비 중 음식물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 초기의 경제개발이 살인적인 저임금 정책에 기반한 ‘유혈적 포드주의’(Bloody Fordism)(김세균, 1998:101)에 입각한 것이었음을, 나아가 노동자들의 생활상태가 생활은 커녕 단지 생존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임금의 최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주는 셈이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이 제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임금대비 식료품비용의 비율인 엥셀지수는 약 20%에 머물고 있다. 이에 반해 생활비용을 형성하는 가구가사집기비, 교육비, 교통통신비, 보건위생비, 교양오락잡비의 비율은 약 40%를 점하고 있으며, 임금소득내에서 이러한 생활비의 비중은 더욱 커져가는 추세이다(민주노총, 2000:9). 예컨대 ‘1999-2000년 민주노총 표준생계비의 가구별, 비목별 증가율’에 따르면 가구가사집기비의 경우 컴퓨터와 이동전화 구입 등 새로운 품목의 산입으로 인해 가구별로 11.5-28.2% 늘어났으며, 교통통신비의 경우 이동전화 사용료 산입으로 가구별로 4.0-31.4% 늘어났다. 주거비의 경우는 아파트(주택) 매매가 및 전세가의 인상으로 가구별로 6.8-12.5% 늘어났다(민주노총, 2000:3).

과거 60년대의 노동자의 그것과 비교해 볼때 사회-경제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가 노동자 계급의 생산영역과 생활양식 모든 부분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그 외양에 있어서 만큼 엥겔스가 폭로한대로 그지없이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러운 생활조건에서 삶을 영위했던 19세기 영국 산업노동자의 모습, “만일 불결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 않고 2마일 밖에서 땀 냄새가 나지 않으면 동료들보다 적게 일한 노동자”(Bull, 1955:67: Przeworski, 1995:81)라고 노르웨이의 한 자본가가 머릿속에 그렸던 산업노동자의 표상을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비근한 예로 한국의 선진노동자들에게서 60-70년대 산업화 초기의 전태일 열사 시절의 이른바 마찌코바형 노동자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작 어렵고, 중요한 일은 노동자 계급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공지의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부터 발생한다. 왜냐하면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그대로 또는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현실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와 의식을 오도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만일 위 분석을 단순히 노동자 계급의 생활상의 지위양상으로 받아들이고, 개량화 및 신중간계급과의 수렴명제와 연결시키면 이는 ‘부르주아화 테제’(embourgeoisiement)(Goldthrope and Lockwood, 1963)를 입증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태의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조건이 생존의 문제에서 생활의 문제로 변동했다는 사실, 그리고 과거와 같은 살인적인 임금과 저열한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벗어나 자동차를 보유하고,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이른바 일반 시민들, 즉 중간계급과 유사한 생활조건에 있다는 사실이 결코 그들이 경제적 풍요와 만족할 만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다시 말해서 이른바 ‘부르주아화’ 테제나 “중간계급화”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란 그 어디에도 없다.

먼저 노동자들의 현실 임금수준과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데 드는 비용’(민주노총, 2000:4) 즉 민주노총이 제시한 표준생계비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3.6인 가족 기준으로 표준생계비는 2,565,205원인데 반해 조합원 평균임금은 1,782,120원으로서 생계비 대비 임금비중은 69.5%에 지나지 않는다(민주노총, 2000:3). 또한 IMF 시기를 경과하면서 노동자의 생활조건은 급격히 악화되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경우 미세한 감소추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시간이라 할 수 있는 49.7시간이며, 노동시간의 감소비율 만큼 임금삭감을 당한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 결과 조사대상자의 65.9%가 임금삭감이 이루어졌다고 응답하였고, 98년의 경우 체감물가상승률이 17.6%였던 것에 반해 평균임금인상률은 오히려 -11.63%에 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민주노총, 1999:2).

민주노총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은 IMF의 시기를 악몽의 순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료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후생복지, 임금수준, 고용안정 등으로 측정된 직장만족도가 대부분 30점 이하로 나타났다. 또한 IMF 이전과 비교했을 때 임금과 노동조건, 노동강도, 스트레스, 육체적 피로 등 노동조건 전체가 악화되었다. 이 가운데 스트레스가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92.1%에 이르고, 고용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87.6%에 이른다. 임금, 노동조건의 경우 84.6%가 낮아 졌고, 노동강도는 71.1%가 높아졌다고 응답하였다. 육체적 피로가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78.6%이며, 직장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79.6%에 달한다(민주노총, 1999:3). 한마디로 노동자들은 생산현장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6) 노동조건이 급격히 열악해지는 상황은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인식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선진 노동자들 대다수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모든 측면에서 낮게 평가하고, 주관적으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월 평균소득, 보유재산, 문화수준(교육 및 교양), 사회적 지위(본인 또는 가장의 직업)를 복합변수화해 측정한 후 5점 척도로 재구성한 주관적 계층귀속의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8.5%는 중간계급의 지위에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대다수인 64.8%가 중하층계급, 또는 하층계급으로 응답했다(한노정연, 2000:188-190). 그리고 본인의 생활수준에 대한 평가에서는 만족한다, 11.6%, 그저 그렇다, 43.2%, 불만족, 33.1%, 매우 불만족, 12.1%로 불만족비율이 45.2%에 달하고 있다(한노정연, 2000:191).

노동자들에게는 지난 10년간의 생활조건의 변화와 다소간에 향상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이 만연해 있다. 생활수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대다수인 약 70%가 자신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표준지표보다 못한 것으로 응답했으며, 한국사회의 상층계급구성 정도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2.7%가 1-5% 구성에, 그리고 33.8%는 6-10%를 구성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하층계급구성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의 하층계급이 51-60% 라고 응답한 비율이 19.8%, 60%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1.9%로 절반이상이 한국사회의 하층계급이 50%이상으로 여기고 있다(한노정연, 2000:191-192).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지적한 사회적 지위를 묻는 항목들 가운데 응답의 내적 비율이 격차가 난다는 점이다. 가령 월평균소득과 보유재산을 묻는 질문에는 각각 68%, 83.4%가 중간이하로 응답하고 있고 문화수준(교육 및 교양), 사회적 지위(본인 또는 가장의 직업)를 묻는 항목에는 각각 48.9%, 65.2%가 중간이하로 대답하고 있다. 또한 중간수준이라고 응답한 비율 역시 위 질문의 항목의 순서대로 보자면 각각 24.8%, 12.8%, 30.3%, 24.7% 이다. 이는 어찌 보면 앞에서 분석한 선진노동자에로의 진입경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가설의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 교양수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교육지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만은 비슷한 교육수준과 지적 능력에 의해 노동자 이전의 삶이 형성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응당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니 그래야만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수준과 현실의 지위사이에 격차가 그 주된 원인이라 하겠다. 따라서 기대와 현실지위상의 격차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계급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선진노동자들은 정치-사회의식의 양 수준으로 나뉘어 측정된 계급의식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은 ‘보통이상의 높다’의 비율이 약 80%에 달하며, 사회의식의 경우에도 60% 이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은 빈자로 전락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도그마에 대해서도 65.5%가 명백히 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한노정연, 2000:168-169).


(7) 요컨대, 지난 10년간 민주노총을 위시한 한국 노동자 운동의 비약적 발전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우리는 그들의 사회-경제적 상태의 절대 수준이 과거의 그것에 비교해 볼 때 향상되었음을,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욕구와 활동의 내용들이 점차 변모해 왔다는 것을 부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야말로 과거와 같이 생산관계나 생산영역의 위치를 통해서 노동자 계급을 식별하는 일이 매우 어렵게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컨대 고등학교,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20살이 넘어서야 노동세계에 진입하는 현대의 노동자 계급에게 어떻게 유소년 시절부터 공장노동을 경험하고 몇 세대에 걸쳐 노동직업을 계승하며 독특한 노동자 문화를 형성했던 톰슨식의 영국노동자와 같은 계급 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 계급이 생산관계 내에서 피착취자의 지위를 점하고 있음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착취의 경험을 통해 여타의 삶의 경험구조가 역사적 시공간을 달리함에도 변함없이 나타난다고 보고, 그렇게 간주하는 견해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이 사회계급을 통해 형성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경제적 모순구조가 완화되고 노동자 계급의 신중간계급화로 수렴되고 있는 증거로 여겨져야 하는가.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물론 사회계급적 균열구조는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서 잘 드러났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기축(基軸)이긴 하다. 그러나 생산의 사회적 편제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계급관계의 중요성을 단지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경제구조의 변동에 따라 계급적 갈등의 대치선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며, 정말 어려운 작업은 그러한 변화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화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데에 있다. 실제에 있어서 사회계급적 모순구조는 다채로운 형태로 현상한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 계급을 생산관계, 즉 노동세계의 위치에서 뿐 아니라, 점차 그 중요성이 커져가는 정치-사회적 생활세계의 관점에서 재정의할 필요성,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정의에 입각하여 계급정치를 재구성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4. 결론: 모순적 지위로서의 현대 노동자 계급


기존 맑시즘 계급이론에 대한 입장은 레닌(SW3:172)의 계급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생산관계의 위치로부터 계급을 정의하는 관점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이론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하게 되었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며 볼 때, 생산관계내에서의 위치를 통해 노동자 계급을 확인하는 것은 그 다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이론적 난점도 없었다. 왜냐하면 산업화 초기의 경우에만 해도 노동자들의 입색과 그들의 일차적인 사회-경제적 지위로부터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일정한 상을 확보하는 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가령 1848년경에 사람들은 누가 노동자 계급인가를 단순하게 인지했다. 사람들은 모든 기준 - 생산수단과의 관계, 노동의 육체적 성격, 생산적 고용, 빈곤, 타락 등 - 이 일관된 상으로 모든 것에 일치되어 제시되었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다(Przeworski, 1995:81).

이들은 주거공간이나 생활방식에서도 대개 일치했다. 그 사회경제적 특성에 있어서도 고등교육을 접할 기회를 지니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그 결과 자신들만의 고유한 사회적 하위문화, 이른바 계급적 문화를 세대를 거듭하며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이 E.P. 톰슨(1968)의 연구 관심사인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실업자, 이른바 산업예비군도 그 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진 자본주의국가가 제국주의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경기가 다시 활성화되었으며, 그에 따라 소폭의 공황 이후 이들을 산업에 재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교육의 영향이었다. 물론 노동자 계급을 국가의 체계적인 보통교육(universal education)을 받도록 강제한 것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발생한 생산방식과 그에 따른 축적체계의 변화이지만, 노동자의 지속적인 투쟁에 의한 노동시간의 사회적, 법률적 확정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은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보통선거권의 완전한 도입을 비롯한 각종 정치-사회적 권리쟁취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계급정당이 거의 유사한 시기에 구체적으로, 19세기말 무렵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사회는 일대 구조적 변화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내부에서 노동자라는 계급적 주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맥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계급주체의 구성은 두 가지 구조적 요인에 의해서, 즉 부르주아들 사이의 시장에서의 격렬한 생사를 건 경쟁과 함께 그 외부에 있어서 노동자 계급을 포함한 민중세력간의 권리투쟁을 통해 그 경계가 확정된다. 전자의 징후는 대체로 자본주의의 역사이래 전쟁과 주기적 공황으로 표출되었으며, 후자의 경우 그 극단에 있어서 러시아 혁명 등 내전을 초래했다. 제국주의와 국가파시즘이 산업적 노동가치 실현을 위한 시장확장의 공간한계를 전쟁을 통해 돌파하려 한 시도였다면, 문자 그대로 ‘새로운 거래'(new deal)’형의 사회민주주의적 전략배치는 양대 전쟁을 통해 인민개병제에 의한 징집국민군/노동자 계급의 주체생산의 형태로 민중의 정치적 힘이 증가한 것에 화들짝 놀라 계급타협을 모색하여 ‘복지시민(welfare client)/노동자 계급’의 주체화 양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완전고용이라는 떡밥과 함께.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던 전후 사민주의 계급타협의 비밀은 이처럼 양대 전쟁을 통해 모든 인민-노동자계급이 총을 들었다는 사실에서 찾아져야 한다. 인민의 군대, 즉 국군으로 전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던 다수 노동자들을 새로운 계급주체의 형태로 무장해제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필요한 것이며, 포디즘적 대량 생산체제의 확산에 따른 완전고용의 실현과 복지국가체제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개량요구를 어느 정도 달성하게 해 주었다. 몇 몇 시기를 제외하고 사민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 계급이 주체구성이 고용-정규 노동자이자 게다가 공식적 노조라인 에 포괄된 조직 노동자인 것은 명약관화한 일로 여겨졌다. 노동자 정당이나 노조 역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에서 계급을 대변한다는 대의와 명분으로부터 하등 부끄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사민주의 이론가들, 혹은 생산관계로부터 계급을 위치 지으려는 이론가들의 두통거리는 정작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종식되는 70년 중반, 정치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시대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신규고용을 위해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대졸자 절반이상(스페인) 혹은 20-30%이상(영국, 독일, 프랑스)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른바 구조적, 만성적 장기실업이 일반화되는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라면 더 이상 생산관계를 통해 노동자 계급을 논하는 식의 계급이론은 그 설 땅이 없어진다. 이들을, 점차 노동자계급구성원의 아니 사회의 다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 실업자 군대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생산의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을 해야 생산이 있는 것이며, 그런 한에서 즉 노동이라는 생산관계에 포섭되는 한에서만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일원일 수 있다. 결국 사회계급을 생산관계영역에서의 지위로 규정하는 것은 정규-고용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며, 이는 정치적으로 잘해야 사민주의, 그리고 노동자주의를 표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계급에 대한 편협한 관점이며, 이러한 관점에 서 있는 한 맑스가 말한 즉자적 계급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른바 ‘대자적 계급’ 개념은 단지 계급의식의 유무만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러한 계급의식의 성격과 함께 그에 따른 그리고 계속 움직이며 구성-재구성되는 계급주체구성 새로운 양식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계급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를 함께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 글의 잠정적 결론은 지금까지의 계급이론이 생산의 관점에서 정의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사회적 생활의 문제설정으로부터 생산을 규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결정’될 수 없는 다양한 사회계급간의 그리고 노동계급내부의 다양한 성원들간의 연대의 전망과 함께 사회적 배제와 분열을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관점이라 하겠다.

정말 고통받는 계급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실업이 만성적으로 구조화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하에서라면 생산관계의 관점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규노동자, 조직노동자는 어찌보면 운이 좋을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생산관계내부에서 이익을 위한 정치적 입장을 그대로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입장으로 관철하게 되면 노동귀족화의 양상과 함께 계급-조직이기주의를 드러낼 수도 있다. 현재 광범위하게 운위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는 화두는 단지 이데올로기적 선명성의 문제나 조직지도자개인의 영달과 입신의 진위로 접근할 성질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주체 구성의 변화에 연한 노동자운동의 구조적 전환기에서 발생하는 진통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현대 노동자 계급이 직면하는 삶의 보편성은 그들의 노동활동에 있어서도 점차 보편적인 관점을 획득한다. 점차 커져가며 그리고 다양해져 가는 생활영역에서의 욕구가 그 주된 원인일 것이며, 이러한 욕구의 다양화는 노동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야기할 일이다. 우리는 현대 노동자 계급의 생활구조가 별종의 무엇이기를,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수대중들의 그것과 무언가 다르기를 기대해서는 않된다. 더구나 노동자계급은 헌법상에 보장된 민주공화국의 정치적 주권을 평등하게 행사할 수 있는 인민의 주요 구성원이지 않는가. 그러나 자본주의적 계급구조가 유지되는 한 민주공화국 헌법에 보장된 평등한 주권실현을 위한 그의 정치적-형식적 인민의 지위와 생활세계내에서 보편적 욕구실현의 전망은 노동세계에서의 그의 계급적 지위로 인해 끊임없이 저지 당한다. 신자유주의 기획에 의한 자본의 노동에 대한 포획구조는 구조적, 만성적 실업을 만성화하여 노동자의 최소한의 사회적 욕구 실현마저 영구히 차단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한다(최형익, 1999). 이렇게 해서 경제적 원인과 정치-사회적 결과는 하나로 맞닿아 있게 된다.

경제적 구조의 실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생활영역에서의 삶의 구조를 왜곡하게, 급기야 그나마 형식적으로 보장되어 온 정치적 권리의 등가성 마저 심하게 훼손시켜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빈곤을 가중시키는 것과 함께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어서의 박탈감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라이트가 말한 것과는 달리 ‘신(新)중간계급’(Wright, 1985)이 모순적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노동자 계급 그 자체가 ‘모순적 지위’에 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더 타당한 개념화라고 판단된다. 핵심적 관건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만과 박탈을 순응의 정치로 용인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저항과 대안의 정치로 상대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바로 여기에서 과거의 생산관계중심의 구(舊)노동자계급정치학과는 구분되는 생존과 생활의 문제로부터 재규정된 노동자 계급의 견지에서의 신(新)노동자계급정치학을 새롭게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난다.6)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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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변혁논의 관점에서 노동자 계급과 민중개념을 설정했던 당시 논쟁에 대한 정리로는 박현채, 조희연(1989) 참조.


2) 루카치(Lukacs, 1971:80)에 따르면, 역사의 궁극목표가 있고 이것을 각 시기마다 인식하고 체현해가는, 즉 ‘인류의 발전을 한 단계 높이는 사명을 띤’ 역사주체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다.


3) 계급위치 및 계급의식 사이의 관계라는 미시개념과 계급구조와 계급형성 사이의 관계에 관한 거시수준의 이해를 계급실천이라는 매개변수를 통해 설명하려는 일반적 모델 구축의 시도로는 Wright(1995:373-407) 참조.


4) 신광영은 1987년 이후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을 ‘신노조주의’로 규정하고 그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이 정치적 민주화 과정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주적 원리에 기초한 노조조직과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둘째, 노조활동의 자주성이다. 셋째, 노동조합활동의 계급적 속성이다. 넷째,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은 단일기업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산업의 경계를 초월한 계급으로서의 노동들을 조직하려는 노동조합의 통합을 전국적인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신광영, 1994:160).


5) 가령 신광영(1994:112)은 계급관계가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인지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관계없이 또는 특정계급이론에 관계없이 특정한 사회적, 경제적 현상을 생성시키는 ‘근저에 놓여있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해 온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계급관계의 메카니즘은 그것의 인지나 정치적 갈등으로의 전화여부에 관계없이 또한 특정한 계급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행위자들의 인지여부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


6) 새로운 계급정치의 의제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최근의 시론적 글로는 피스크(Fisk 1996) 참조.


2000-05-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