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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 자본, 그리고 계급

현장에서 미래를  제56호
김상태





부정부패, 자본, 그리고 계급

김 상 태
연구위원/문화비평가


이렇게 본다
부정부패, 자본, 그리고 계급

요즘 들어 로비라는 말을 자주 듣는 것 같다. 차라리 즐거웠던 드라마라 기억되는데 이른바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로비 사건이 그 하나요 최근엔 검은 안경의 아줌마 린다김 얘기가 그 둘이다. 더 큰 맥락에서 볼라치면 이는 가중된 소란-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차치하고-중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정치인들 병역비리며, 박태준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및 불법 부동산 거래 소식들이 다 그것이다. 나아가 한발 짝만 더 가면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도 돌아다닌다. 386세대 정치인들, 교육부장관 및 정신문화 원장들의 룸싸롱 추태, 어느 시민단체 유력인사의 성추행 사건들도 있다.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한국 현대사만 돌아보아도 부정부패와 추문, 모략과 음모는 일상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엔 더욱 심했다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옛날 중앙정보부 시절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요즈음의 얘기는 순전히 애교덩어리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소리소문의 흔적은 그때가 더 적었다. 왜 그럴까?
가장 중요한 요인을 하나 들라하면 나는 언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식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쉽게 말해 옛날 같으면 옷로비 사건을 보도하는 일 따윈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달라진 언론의 모양새와 위상은 무척이나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너무 표피적인 대답이다. 누구라도 그 언론이 왜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냐고 되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되는데 까지는 반추를 더 해 보게 된다.
나는 간혹 공상을 하곤 한다.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과 지배자들 내부게임에서 정적들을 제압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나 전술들엔 어떤 것이 있겠느냐고. 어렸을 땐 힘센 놈이 제일이며 결국 고지는 보병이 점령하는 것이라서 몽둥이가 제일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오산이다. 몽둥이의 논법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치명적인 것으로서 이야말로 칼로 흥한자가 칼로 망하는 이유이다. 첫째 문제는 최후의 보병, 즉 조직된 폭력은 쉽게 분열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몽둥이만 가진 무력은 스스로에게 맞아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가장 쉽게 말하면 부하 중에 반란자가 생기거나 정적 중에 조직된 또 다른 폭력이 무장되거나, 피지배자 힘으로 크게 저항하면 이 멍청한 몽둥이의 권력은 그날로 사망이다. 그래서 몽둥이의 권력은 그 생명이 길 수가 없다. 바보이기 때문에 그런 분열과 이합집산은 다반사인 것 같다. 바로 이 때문에 권력자는 글줄 꿰는 문사와 모사들과 수단꾼들을 필요로 한다. 한국사회에서 그 전형은 이른바 어용교수들이었다. 둘째 문제는 몽둥이의 권력이 그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하면 옳을 것이다.
특히 자본이 성장해 가는 데 있어 어떤 수준이상이 되면 몽둥이 권력과 경제는 거의 상극을 이루게 된다.
이 두가지를 한국사회에 비추어 보면 언론이 왜 그렇게 달라졌는지 얼추 설명이 된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의 한국, 특히 자본의 요구는 지배의 게임에 있어서 몽둥이의 논법을 완전히 넘어섰다. 핵심을 말하면 돈과 돈을 축적하는 구조의 장악과 그것을 통한 자기편의 확장에 있는데 이 확장은 모든 창구에서 전술구사를 가능케 하며 그 속엔 조직된 폭력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그 돈줄이 조직폭력에서 경찰서장까지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를 위해서라도 이젠 힘대로 까불면 안 된다.
사태가 이렇기 때문에 언론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은 실상 허상이다. 언론의 위상이 높아진 게 아니라 지배 게임이 언론의 장에서 벌어진 것뿐이다. 그리고 그 언론을 구성하는 인맥과 구조 자체가 스스로 지배게임의 주체들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요즈음의 소란은 차라리 당연한 것이다. 없던 것이 생긴 게 아니라 노상 있던 것이 각광을 받은 것뿐이다. 옷로비며 린다김 로비가 하나 둘일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엔 없겠는가? 정치인들의 군 도피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386세대나 시민단체가 물망에 오른 것은 그들이 원래 깨끗했던 때문이 아니라 이젠 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386 새내기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이 그 만큼 컸다는 이 기묘한 수료증에 감사해야 할런지도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데 있다. 과연 계급이 존재하는 곳에 부정부패가 사라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마빈 해리스라는 인류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일체의 차별 -계급, 성, 인종-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수동성, 인간의 이기적 탐욕들이 본래적 본성이며, 역사적 필연이라는 논리에 대해 철저히 반대했다. 그에 의하면 그 자체로 호혜적이고 평등했던 시대는 수렵 채취시대라고 한다. 더불어 이런 일체의 차별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인간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계급이 존재하고서 부정부패가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 시민연대는 보다 양심적이고 깨끗한 정치를 운운했는데 내가 보기에 이들은 바보들일 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아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에 있을 뿐이다.
물론 수천 수만 가지의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소비에트러시아를 비롯하여 궁극적 해방을 향한 시도에서 인류는 크게 실패했다. 그러므로 계급을 극복한 그리하여 정말로 깨끗하고 - 깨끗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 - 호혜적인 사람살이를 함부로 꿈꾸는 건 주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백번이고 천번이고 되물어 보라. 노동자가 아니고는 그 어디에도 답이 없다. 그밖에 누가 알고 있다고 한다면 제발 네게 좀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길거리의 한번의 구호를 외치지만 그것은 이다지도 깊고 먼 곳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한/노/정/연

2000-06-0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8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