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 그날의 유감 |
현장에서 미래를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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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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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그 날’의 유감
이 성 백 연구위원장/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너무나도 큰 허탈감과 함께 우리는 5․18 광주민중항쟁
20돌을 맞는 올해의 오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날’이 다시
왔으나, ‘그날’은 386세대 정치인들의 술판과 시민운동 지도급
인사의 성추행 등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들로 얼룩져 버렸다.
그들에게 수많은 분노의 돌팔매가 퍼부어졌다.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분명 씻기 어려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또 돌을 던지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들이 이미 충분히 받을 만큼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자리가 그것 보란듯이 비아냥거리기만 하는 또 다른
‘술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들에게 퍼부어진
돌팔매 중에 적지 않은 것은 단지 또 다른 방식의 ‘부적절한
행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각 정파와 언론들은 이 사건들을
자기 이해를 챙기는 기회로 이용하려 했다. 보수 정파와 언론은
이게 웬 굴러들어 온 떡이냐며, 386세대의 실체 검증, ‘386
거품’을 운위하며 개혁세력을 흠집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민주당 또한 “장교수가 민주당 386 꿈나무 의원들을 살렸다”는
말처럼, 어떻게든 문제를 비껴갈 방도를 찾으려고만 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우리 사회의 ‘시민’들에게 오월의 각종
해프닝들은 오래간만에 술자리의 기분을 돋구어주는 안주감에
지나지 않았다. 386세대 정치신인들의 술판과 장원 교수의
성추문이 가관이었다면, 이 일들을 놓고 벌어졌던 세간의 그
떠들썩했던 행태 또한 가관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또 하나의
가관을 연출할 마음이 없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오월에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조용히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아이들 하는 짓을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5․18 전야의 술판과 한 시민운동가의 성추문을 단지 그
일을 저지른 이들의 개인적인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나는 이 ‘부적절한 행동’은 이 사회가 어떤
집안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그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본다.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추어진 거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거꾸로 한국 사회가
그래도 도덕적이고 개혁적이라고 꼽았던 바로 그 장본인들마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이 매우 중증이 아닌지 묻게 한다.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지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이 말보다
대한민국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상태를 더 적절히 묘사해 주는
표현은 없다. 연일 끊이지 않고 각종 비리 사건들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면서, 나는 일전에 과연 대한민국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그 예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 곳곳이 위나 아래 할 것 없이 속속들이 부패로 찌들어
있었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제도 정치권 또한 그로부터
예외가 아니었다. 제도 정치권이 당리당략만을 일삼으면서
사회의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할 주역이 도리어 걸림돌이 되고
있었고, 이에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지긋지긋한 염증이
이른바 ‘386세대’란 상징을 지닌 젊은 정치신인들에게 과분한
신임의 표를 던져 주게 되었다. 이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새로운 인물들이 단란주점에서 여종업원들을 불러놓고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몰지각한 술판을 벌였다.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은 술판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성과
개혁성의 조명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이들이 다른 날도 아니라 그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면서 독재의 총칼아래 산화해간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어야 할 그 엄숙한 5․18 전야에 몰상식하게도
술판을 벌였다는 데에 있다. 엄숙해야 할 날 술판을 벌인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문제가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사태는 훨씬 더 심각하다. 나에게는 그날 이들의 전후 행동에는
아무런 괴리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그들은
전혀 몰상식하거나 몰지각하지 않았다. 그날 일의 순서를 거꾸로
바라보자. 이들은 단란주점에서의 술판을 별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5․18을 산화해간 영령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오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엄숙한 날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미 ‘오월’의
역사적 의미를 잊은 지 오래였다.
5․18의 엄숙함을 알고 있으면서,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릴 리는 만무하다. 그날 그들은 5․18 행사를 단지
형식적인 기념행사쯤으로 의식했을 뿐이다. 그래서
단란주점에서의 술판은 당연한 뒤풀이로 여겨졌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망각한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자식과 형제를 잃은
유족들만이 망월동 묘지 앞에서 상실의 아픔을 다시 기억했을
뿐, 20년의 세월 속에 우리들 대부분은 ‘그날’의 기억을
퇴색시켜 오지는 않았는지? 한국인은 잊기도 빨리 하고,
용서하기도 빨리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망월동 묘지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해케 한 그 원흉들을 제대로
심판하지도 않았고, 민주를 압살하고 민중을 탄압했던 독재자
박정희를 이제는 ‘근대화의 영웅’으로 떠받들려고 한다. 이제
보니 ‘그날’의 광주마저 우리는 스스로 잊어가고 있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술판을 벌인 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광주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해가고 있던 우리 자신을 자성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상징’을 만들고, 이 상징을 통해 사회 속에서 정신을
계승시켜 나간다. 광주민중항쟁으로 시작된 80년대의 한국은
‘386세대’라는 작은 상징을 만들어 내었다. 이번 술판 사건은
이 386세대라는 상징에 작지 않은 흠집을 내었다. 이번 총선에서
소위 ‘386세대의 기수’로 꼽히는 이들이 상한가를 쳤다.
그러나 이들이 위로 상승하고자 기존 정치권의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이들은 스스로 386세대의
상징성을 던져 버린 것이다. ‘386세대의 기수’란 것은
그들에게는 상층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데에 필요한 이력서 외에
더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나마 제도 정치권을 개혁해
보겠다던 포부조차 술판 덕택에 시작해 보기도 전에 그 싹이
잘라져버린 꼴이 되었다. 그날 이들의 잘못된 행위가
직접적으로는 당선의 감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사소한
경솔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솔함은
결국은 이들이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망각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들이 이번에 상실한 명예는 회복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코자
한다면, 나는 80년대 민중과 민주주의를 위해 타협없이 투쟁했던
그 때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비록 몸은 정치권에 있을지언정, 적어도 마음만이라도 다시
민중에게 돌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386세대 기수들의 실망스런
행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386세대라는 역사적 상징을
허물어뜨리는 데에 반대한다.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낮은 곳에서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진정한 386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민중운동을 대신한다면서 부상한 것이
시민운동이다. 21세기는 시민운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일각에서의 주장에 부응하듯이 그 동안 시민운동은 급속히
확산되어왔다. 시민운동이 추구하는 목표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정의의 구현이라고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각종 부패, 비리, 부조리로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리들을 치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은
한국에서 매우 필요한 운동이다. 그리고 지난 4월 총선에서
후보들의 도덕적 품성과 자질을 기준으로 하여 총선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정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시민운동의 지도급 인사가,
그것도 바로 얼마전 낙천낙선운동을 앞에서 지휘했던 총선연대의
한 간판이 어린 여대생을 성추행하려 했던 것은 그 동안 지지를
보냈던 시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 사건은 스스로 도덕성을 표방하는 시민운동에 결정적인
흠집을 내었다. 아, 무슨 말을 할꼬? 정말 어이가 없다. 도둑을
잡아 단죄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도둑인 꼴이 아닌가? 하여튼
우선적으로 말해야 할 것은 갖은 비행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한국 사회 속에서 그 자도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비행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표급
인사가 그런 비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현재의 시민운동에 그만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의 성추문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시민운동에 문제점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명망가 중심의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시민운동은 일부
명망가들이 제도권으로 진출하려는 통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의 일상적인 참여가 부재하기 때문에,
대중운동의 과정속에 지도력이 검증될 수 있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 장원 교수 사건은 바로 이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5․18 광주민중항쟁 스무 돌을 너무나 허탈하게
보냈다. 그러나 올해의 이 허탈감이 그 동안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망각해가고 있었음을 다시 일깨워주었다고 억지로 위로해
보자. 그래서 내년에는 여전히 우리 속에 살아있는 정신으로
오월을 맞이하도록 하자.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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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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