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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노동자 교양 경제학
 인플레이션과 이른바 '생산성 임금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57호
채만수

지 상 강 좌









인플레이션과 이른바 ‘생산성임금제’ 등(1)


강의 : 채만수 / 부소장







[편집자 주] 필자가 이제 반토막씩 정리하는 데에 이골이 난 모양입니다. 제4강의 후반부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다음 달 호에 기대해 봅시다.



1. 임금과 물가


1) 임금 상승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는 공세


여러분들이 여러 번 경험한 대로 자본주의 경제는 자주 어려움과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그들의 나팔수들인 언론이나 어용적 경제학자들은 어떻습니까? 위기의 이런저런 여러 원인을 떠벌리고 그것을 극복한다거나 예방한다고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집요하고 대중적으로 선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경제위기 노동자 책임론. 그것이지요? “임금이 상승했기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고, 물가가 상승했기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하락하여 경제위기가 왔다”는 식의 주장 아닙니까?

제 기억에 이러한 주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오랜 억압을 뚫고 노동자 대투쟁이 폭발적으로 벌어지던 87년 7월 이후 9월에 걸쳐서였습니다. 당시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기 상승기였지만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진출과 그에 따른 임금의 대폭적인 상승은 자본가 계급을 자극하고 또 실제로 그들의 이윤을 상당 정도 압박했을 것임에 틀림없겠지요. 이 때문에, 그리고 자본이 예컨대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워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압할 수는 분명 없기 때문에, 그들은 말하자면 ‘임금인상-경제위기 원인론’이라고나 해야 할 것을 전면적으로 선전해대면서 노동자 대투쟁에 자신들의 폭력적 탄압을 합리화하고, 또 대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획득하려고 했던 거지요.

당시 그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신문이나 TV 등에 떠들어대는 것은 물론, 직접적 자본가 단체인 경총이나 국영 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원) 등은 “임금인상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니, “임금인상이 국제수지에 미치는 영향” 등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이른바 ‘긴급 연구보고서’ 등을 만들어 각 사회단체 등에 배포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이론적․실증적으로 ‘증명’하는 식이었습니다.

조금도 자료 가치가 없는 쓰레기들이라서 지금 그 중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제 기억에 의존하면 예컨대 임금이, 물론 명목임금을 말하는 것인데, 15%나 20% 올라가면 물가의 대폭적인 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여 수출이 급격하게 줄고, 이에 따라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는 식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대투쟁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달성한 임금인상이라면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결딴나는 것이었지요.

당시 한국경제가 노동자들의 대투쟁과 그에 따른 대폭적인 임금인상으로 결딴났었나요? 아니지요? 그 해 4/4분기 이래 88년에 걸쳐서 이른바 ‘3저호황’ 운운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그 역사상 아마 최대의 번영기를 구가했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 주제로 돌아가면, 노동자 대투쟁 당시 자본은 그렇게 ‘임금인상-물가상승-국제경쟁력 하락-경제위기’라는 주장을 내세웠는데, 당시에는 이 주장이 그들의 목소리만큼 그렇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당시는 경제호황기여서, ‘경제위기’라는 주장이 대중에게 그다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둘째로는, 당시 노동자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열악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자본가들이나 정부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 여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 언제는 안 그랬느냐? 니들 맘껏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는 식으로 노동자들이 사생결단의 투쟁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타오르는 투쟁 자체, 노동자들과 전투경찰간의 공방 자체에 사회적 관심이 모이고 있었지, 어용 지식인들을 앞세운 자본의 선전에 관심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89년도 2/4분기 이후에 들어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한국경제는 자본측 스스로 ‘총체적 위기’라고 규정할 만큼 심각한 공황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이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권익투쟁에 대한 자본의 악선전이 일정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성숙되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당시 정부와 자본, 그리고 언론은 그 위기의 주요 원인의 하나를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에 돌렸습니다. 당시 ‘총체적 위기’의 원인에 대한, 그리고 당시 국면의 경제적 성격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이 문제, 즉 ‘임금인상이 물가인상을 불러와서 결국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만 보기로 합시다.


2) 노동운동진영의 ‘인기 있는’ 대응 (임금 비율 비례인상설)


조금 후에 보다 자세히 그 원인과 배경을 말씀드리겠지만, 현대자본주의에서는 대체로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물가가 오릅니다. 인플레이션이지요. 거기에다 호황 말기에는 이른바 ‘호황 등귀’라고나 해야 할 호황기 특유의 물가상승과 부동산 가격 등의 투기적 상승이 겹치게 되지요. 88년도 하반기 이후의 상황이 전형적으로 그러한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물가 일반과 특히 부동산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속에서 경제위기가 닥쳐왔던 것이지요.

그러니 어땠겠어요?

우선, 그 상황에서 이른바 ‘시민운동’의 선두주자로서 급부상하게 되는 경실련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가 하는 데에 대한 무지와 사회의식의 계급적 한계 혹은 성격 때문에 이른바 ‘토지공개념 강화’ 캠페인이라는 코미디 소동을 벌이게 되고, 적지 않은 수의 민중주의적 노동운동, 민중운동 단체들도 그 무지 때문에 덩달아 함께 춤을 추었지요? 그리고 ‘재벌개혁 투쟁’, ‘재벌해체 투쟁’도 벌이고요.

이런 것들은 자본의 총이성(總理性)으로서의 국가도 대개는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고자 하지요. 이른바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것까지 말입니다. 물론, 쉽사리 개혁되거나 해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왜 받아들이느냐고요? 먼저, 이른바 토지공개념과 관련해서는, 지난 번 토지가격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 이미 간단히 말씀드린 것처럼 그 강화는 결국 자본의 이익으로 귀착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른바 ‘재벌개혁’이나 ‘재벌해체’ 주장은 사실 그 내용을 보자면 독점자본의 합리화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개개 재벌의 입장에서 볼 때는 껄끄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독점자본 일반의 이성인 국가의 입장에서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요? 이들 문제는 나중에 독점자본의 문제를 다룰 때 보다 자세히 얘기하기로 합시다.

아무튼 시민운동이나 민중주의적 노동운동이 그런 민중주의적 운동을 벌이는 다른 한편에서 자본, 즉 국가나 직접적 자본 그리고 언론은 어땠습니까? 집요하게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펼쳤지요? 노동자들의 쟁의와 임금인상이 경제위기의 주범이라고 말입니다. 그 논리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임금이 오르니까 물가가 오르고, 그러니까 결국은 경제위기가 온다”는 악선전이지요.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혹간 그 중에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말하자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노동자들이나 노동운동 단체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양비론, 즉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론이지요. “물가가 오르니까 임금을 안 올릴 수 없는데, 임금을 올리니까 이번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다시 물가가 오르고, 그리하여 다시 임금이 오르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거지요.

그들이 설교하는 바는 결국 뭐겠습니까? “물가와 임금간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 바로 그것 아닙니까? 임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원인을 물가상승에서 찾는가 했더니 물가상승의 책임을 어느 새 슬그머니 임금인상에 지우는, 그리하여 결국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임금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주 부정직하고 음흉한 주장이지요.

자본측의 이러한 주장에 물론 노동자들 측에서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는 없지요. “헛소리 말아라, 아무튼 지금의 임금 가지고는 못 살겠으니 임금을 인상하라”는 막무가내(?) 식의 저돌적인, 그러나 실제로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투쟁에서부터 자본측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격하려고 하는 노력까지 다양한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벌어졌지요.

여기서 우리가 고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노동자들의 반박논리입니다.

89년 90년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아니 노동운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박논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아직 명확히 무슨무슨 설(說)이라는 식의 이름이 붙여져 있지는 않은데, 한번 시도해보면 ‘임금 비율 비례 인상설’(賃金比率比例引上說)이라고나 할까요?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한국은행 등의 물가통계를 분석하면, 상품가격 중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밖에 안된다. 그러니까 임금을 예컨대 10% 올리면 상품가격 전체에 대해서는 8%에 대한 10%이기 때문에 상품가격은 0.8%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임금을 그만큼 올리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설령 임금을 20% 올린다고 하더라도 역시 같은 이유로 물가는 1.6%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천장부지로 올라가는 물가인상의 책임이 왜 노동자들에게 있고, 그 원인이 임금인상이란 말이야? 제발 그런 소리하지 말아라!


어떻습니까? 정말 멋진 반론이고, 그래서 가장 인기를 누릴 만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지고 인기를 누리는 반론이기 때문에, 그 동안의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이론이 횡행하고 있지요. 최근의 한 예를 봅시다. 얼마 전 ꡔ한겨레ꡕ 신문의 한 논설은 이렇게 쓰고 있어요.


“… 생산비 중 인건비 비중은 9.6%(99년 상반기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임금 상승률이 10%이더라도 사실상 생산비를 0.96% 높이는 일차적 효과를 가진다. 완전한 독점체제가 아니라면 생산비 증가는 그 일부만이 가격에 전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들만으로도 지금까지의 임금 상승률이 지나치다거나 고임금 구조가 정착한다거나 임금 때문에 생산비가 큰 영향을 받아 물가가 오를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대단히 박약하다.”

유철규, “고임금 경계론을 경계한다”, ꡔ한겨레ꡕ, 2000.1.26.


“고임금 경계론을 경계한다”는 글인데 어떻습니까? 좀 더 세련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형적으로 그런 주장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들려도 전적으로 틀린 주장입니다. 아주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주체적이지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임금이 아무리 많이 올라가도 물가는 전혀 올라가지 않는 겁니다.

왜 그런가 봅시다.


3) 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물가는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이미 공부한 것입니다만, 상품의 가격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이론’이란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도 얘기했었지요? 그렇습니다. 상품의 가격이란 그 상품을 만드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화폐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을 올리면, 그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서 동일한 상품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0.8%든 0.96%든, 아니면 0.0000…1%든 더 길어집니까? 임금을 올리면 공장의 컨베이어나 기타 기계가 그만큼 천천히 돌아요?

안 그렇잖아요? 임금을 어느 만큼 올리건 간에 어떤 상품을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시간 그 자체는 그와 상관없이 당시의 기술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아요? 즉, 임금이 원인이 되어서 그 노동시간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아무리 많이 올리더라도 상품의 가격, 즉 물가는 오르지 않는 거지요. ‘0%’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도 명색이 경제학자라는 자들이 “임금이 올라가면, 그것이 얼마가 되었든지 간에 물가가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것을, 뭘 의미하는 거겠어요? 한 마디로, 자신의 무지와 계급적 한계를 폭로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얘기, 즉 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물가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얘기를 강조하느냐 하면요, 우선 많은 사람들 특히 부르주아 위선자들이나 소부르주아들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아무튼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굉장히 터프하고 억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순결한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자신들을 돌아보세요, 안 그런지.

실제로 운동을 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되요? 회사에서 잘리기도 하고 징계도 당하고 징역도 가고 하는 그런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지요? 그런데 그런 개인적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터프하고 억세게’ 운동을 하는 거예요. 왜요? “나 혼자만 잘 살아서는 안되겠다, 더불어 잘 살아야 되겠다”하는 생각․신념 때문 아닌가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순수하고 순결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물가가 뛰어서 너나 나나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까 임금을 올리라고 싸움을 하긴 하지만, 그것이 0.8%든 아니면 하다못해 0.0000…1%든, 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올라서 경제위기가 오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순결한 사람들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아, 나도 물가상승에, 그리고 경제위기에 책임이 없는 게 아니구나. 다만 책임이 적을 뿐이지.” ―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만일 정말로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원인이라면, 논리적으로 정말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순결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서도 사회적인 죄의식 때문에 뭔가가 자꾸만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투쟁이 단호하게 이루어질 리 만무하지요.

그런데 만일 정말 임금이 올라가면 물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죄의식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투쟁에 차질이 온다면,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요. 뿐만 아니라, 임금을 인상하면 정말 물가가 오르고 그리하여 경제위기가 온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투쟁을 좀 삼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사회적인 공익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그것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은 전혀 아니란 말씀입니다. 절대로요. 그러니 잘못된 사고로 고통을 당해서도 안되고, 그 잘못된 사고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익이 손상돼서도 안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강조하는 겁니다.


4) 뱀에 다리를 그리다


사실상 노동자계급의 경제학이고 과학적인 경제학의 출발점인 노동가치론의 기본원리에 대해서 조금만 이해를 하고 그것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임금의 인상이 물가상승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렇게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것도 노동운동을 지도적으로 한다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 그러니까 1990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1990년이면, 내내 말씀드린 대로 한국자본주의가 한창 위기에 처해 있을 때이고, 임금인상의 효과에 대한 자본과 노동간의 사회적 논쟁이 한창 벌어질 때입니다. 말하자면, 자본의 공세도 강했지만, 거기에 대한 노동 측의 예의 반론도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때지요. 그때 저는 뭘 했겠어요?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말도 안되는 엉터리 반론’이라고 열심히 비판을 해댔지요.

그랬더니 노동운동 내부에서 그 인기 있던 이론에 대한 회의(懷疑)가 차츰 커졌지요. 그리고 가을이 되면 그것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내부의 반론이 커졌지요. 그리하여, 9월 어느 날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당시 노운협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가졌지요. 당시 노운협은 창립 초기만은 좀 못했지만 아직 노동운동 단체들의 전국협의회로서 정치적 위상이 굉장히 높을 때였습니다. 그런 단체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토론에 붙인 것이지요.

저는 그때 무슨 일인가가 있어서 그 토론회에 참석을 못하고, 사후에 노운협의 정책 담당자에게서 들었는데,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에게 든 생각이 뭔가 아십니까?

“아하, 사족(蛇足)을 그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사족(蛇足)에 대해서는 아시지요? 옛날 지금 중국의 어느 국가에서 화가들을 불러모아서 뱀을 그리게 했는데, 한 재주 있는 화가가 아주 훌륭하게 뱀 한 마리를 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뱀을 보다 더 훌륭하게 그리기 위해서 거기에 다리를 그려 넣었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제는 뱀이 아니게 되고, 그 사람은 웃음거리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사족, 즉 ‘뱀의 다리’라는 중국의 고사(古事)인데, 90년 그 토론회가 꼭 그 짝이 났다는 얘기지요.

토론회에서는 먼저,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임금을 올려도 물가는 올라가지 않는다, ꡔ자본론ꡕ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는 것을 확인했답니다. 당연히 거기서 멈춰야 했고, 혹시 더 필요한 작업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 내용을 좀더 구체화하고 대중화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머리’, 재주가 거기에서 멈추게 하지 않았던 거지요. 옛 중국의 화가는 손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고 뱀에 다리를 그렸는데, 노운협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입이 근질근질해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 운운하고 나온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런 식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독점자본주의 시대다. 독점자본이란 어떤 자본이냐? 독점가격, 즉 관리가격을 설정할 능력이 있는 자본, 그만큼 시장 지배력이 높은 자본이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서 임금을 올리면 독점자본은 바로 이 능력, 즉 독점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그것을 상품가격에 전가하고, 심지어 그것을 기화로 임금인상률 이상의 비율로 상품가격을 올린다. 운운.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상품가격 중에 임금의 비율이 8%밖에 안되고, 따라서 비례대로라면 물가가 0.8%밖에 올라가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가는 이유를 해명하는 문제 말입니다! ― 지금 제 말이 맞아요?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닌가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가 아까 앞에서 보았던 글, 즉 유철규라는 사람이 ꡔ한겨레ꡕ 신문에 쓴 “고임금 경계론을 경계한다”는 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얘기해봅시다.

아까 본 것처럼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즉,


“완전한 독점체제가 아니라면 생산비 증가는 그 일부만이 가격에 전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들만으로도 … 임금 때문에 생산비가 큰 영향을 받아 물가가 오를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대단히 박약하다.”


대단히 근사하게 들리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의 타당성 여부는 잠시 제쳐두고 위 글의 ‘형식논리’만 보더라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십니까? 첫 번째 문장은, (임금인상의 영향으로) 생산비는 증가하지만, 그 생산비 증가분이 모두 가격에 전가되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즉, 이제는 생산비 자체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고, 그 때문에 “생산비가 큰 영향을 받아 물가가 오를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대단히 박약”한 것으로 되는 거지요. 참으로 x처럼 훌륭한 논리지요?

아무튼, 1990년의 토론회는 독점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독점 때문에 임금 인상률 이상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2000년의 유철규 씨, 혹은 ꡔ한겨레ꡕ 신문은 “완전 독점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임금 때문에 물가가 오를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대단히 박약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언뜻 들으면 두 얘기가 서로 다른 것 같지요? 그렇지만 사실은 둘 다 같은 얘기입니다. 유철규 씨의 말을 뒤집어 보면, ‘완전한 독점체제’라면, ― 물론 그런 체제가 과연 이론적으로라도 가능한 지는 별 문제로 하고요―, 임금이 오르는 만큼, 유철규 씨 식으로 말하자면, 상품가격에서 임금 비중이 9.6%이기 때문에 임금이 10% 오르면 가격은 0.96% 오른다는 얘기니까요.

그런데 여기에도 물론 자그마한 의문이 또 하나 있지요. 그러한 ‘완전한 독점체제’라면, 자본은 왜, 1990년의 토론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맘껏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임금인상에 비례해서 0.96%만 올리는가 하고 말입니다. 1990년의 토론회 결론에 대해서도 역시 자그마한 의문이 있지요. 독점자본은 왜 아무 때고 무시로 맘대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야만 가격을 올리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 그럼 이제 정말 1990년의 토론회의 결론이 왜 잘못된 사족인가를 말씀드려야겠군요.

1995년이라고 기억되는데, 11월 노동자대회가 열릴 즈음 마침 전두환․노태우 등의 수천억 비자금이 한창 사회적인 분노를 사고 있었어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여사께서 노동자 대회에서 연설을 하셨는데 그때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재벌들이 전․노한테 수천억을 갖다 줬는데 그 엄청난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땅에서 솟았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결국 노동자의 피땀이에요”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더러운 뇌물일지라도 그 돈들은 가치물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노동의 성과물인데, 재벌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이 아니고 타인의 노동, 즉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건넨 돈들은 모두 노동자들의 피땀인 것이지요.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독점자본이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서 독점가격을 설정한다는 것은 결국 평균이윤보다 높은 독점이윤을 취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이 독점이윤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시쳇말로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땅에서 솟습니까?’

한 사회에서 일정한 기간에 생산한 총잉여가치가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예컨대 a, b, c, d, e 라고 하는 5개의 자본이 경쟁을 통해서 나눌 때 평균이윤율이 성립하고, 그러면 각각의 자본은 이 평균이윤율에 의해서 각각의 크기에 비례해서 잉여가치를 나눠 갖게 되지요. 그런데 이 평균이윤율이란 것은 현실적으로는 이윤율이 그것을 향해서 수렴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진동하는 것이어서, 개개의 자본이 반드시 그 율에 따라서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면, 기술적 우월성, 즉 생산력상의 우월성에 의해서든 아니면 어떤 고도의 사술(邪術)에 의해서든 평균이윤율 이상의 초과이윤을 취한 어떤 자본은 거대하게 성장해서 독점자본이 되고, 그렇지 못한 자본은 왜소해지거나 심지어는 ‘파산’,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퇴출되게 되지요.

이제 5개의 자본 중에서 a와 b가 독점자본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들 독점자본은 그 시장지배력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상품가격을 어떤 수준까지 올릴 수가 있는데, 이렇게 해서 성립하는 가격이 독점가격이고, 사회적 평균이윤율을 넘는 그 이윤이 독점이윤인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독점이윤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990년의 토론회 결론이나 ꡔ한겨레ꡕ에서 본 유철규 씨의 글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대답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이에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다고는 당연히 전제하지 않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들이나 우리의 논의에서 ‘독점이윤 = 강화된 착취 = 증대된 잉여노동’이라는 식의 전제는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독점이윤은 결국 총잉여가치의 자본간 불평등한 분배에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즉, 독점자본으로서의 a와 b가 취하는 독점이윤은, 독점이 성립되어 있지 않다면 비독점자본으로서의 c, d, e가 평균이윤율에 의해서 취했어야 할 잉여가치의 일부가 이제 구조적으로 a와 b의 몫으로 되는 데에 그 원천이 있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독점이 성립하여 독점이윤이 발생하면, 비독점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저하하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자본에 의한 자본의 수탈이지요.

그런데 독점이윤은 독점자본이 그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평균이윤율에 의한 생산가격보다 높게 그 가격을 설정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인데, 그러면 비독점자본인 c, d, e의 이윤율은 어떻게 해서 낮아지는 거겠습니까? 너무 우스운 질문이지요? 곁에서 독점자본이 성립한다고 해서 c, d, e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들 c, d, e가 생산해서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낮아져서 이윤율이 낮아지는 길밖에는 없을 터인데, 그것을 구태여 묻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은 1990년 토론회의 결론이나 유철규 씨 등은 바로 그 점을 모르거나 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독점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고 말할 때 말입니다.

다시 새삼스러운 질문입니다만, 물가란 무엇입니까? 서양말, 예컨대 영어 같으면 ‘prices’라고 하는데, 그에 해당하는 ‘제 가격’(諸價格)이나 ‘가격들’이라는 말 대신에 이 말, 즉 물가란 말이 쓰이는 것은 일본어이나 한국어의 독특한 점인데, 결국 ‘제 상품의 평균적 가격 수준’이라는 의미의 단어 아닙니까? 그런데, 독점가격이 설정되어 독점자본의 상품가격이 올라가면, 그만큼 비독점자본의 상품가격이 내리기 때문에 ‘제 상품의 평균적 가격 수준’, 즉 물가는 움직이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1990년의 토론회에서 독점자본주의 운운하면서,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리면 독점자본이 독점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이제는 물가가 오른다’고 한 것은 결국 잘못된 것, 그 앞에서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표현이고 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그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고 했던 말을 부정하는 사족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도 임금의 인상은 물가상승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앞으로 그런 엉터리 이론에 현혹되지 마세요.


5) 임금 인상의 효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에 따른 가격의 변화


지금까지는 ‘임금이 올라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해서 얘기해왔는데, 그러면 임금이 오르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만일 ‘임금이 오르더라도 물가는 오르지 않으니까 물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또한 잘못입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해온 것은 추상적인 것, 평균적인 것, 따라서 총체적인 것이어서 개개 상품 가격의 구체적인 운동에 대해서 얘기해온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은연중에 우리가 반쯤은 전제해온 것처럼,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이 독점자본가들을 자극하여 그들의 상품가격을 인상시키고, 그렇게 되면 물가, 즉 상품가격의 평균적 수준이나 총가격은 오르지 않지만 비독점상품은 그 가격이 내리는 등, 제 상품의 가격구조와 개별자본의 이윤율에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부터는 그것에 대해서 보는데, 독점의 문제는 논의에서 제외하고, 자본이 경쟁적인 상태에 있고, 임금은 전 부문에 걸쳐서 같은 율로 올랐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야만, 임금의 상승이 제 상품의 가격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우선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다른 A, B, C 세 부문이 있는데, 각 부문에서 각 자본 똑같이 100의 자본을 투하하고 있고, 또한 경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윤율의 평균화가 작용하여 각 부문은 똑같이 그 투하자본에 대해서 20%의 이윤을 취하고 있다고 합시다. 아래의 식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임금 인상 전>

  A : 80c + 20v + 20p = 120

  B : 50c + 50v + 20p = 120

  C : 20c + 80v + 20p = 120

  (사회적 총자본 : 300, 총가변자본 : 150, 총이윤 : 60,

   생산물 총가격 : 360, 평균이윤율 : 20%)

여기서 c는 불변자본을, v는 가변자본을, 그리고 p는 이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든 부문에서 10%씩 오르면, 이에 따라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재조정되기 전의 각 부문의 구성과 이윤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임금이 전반적으로 10% 상승하고 이윤율이 평균화되지 않으면>

  A : 80c + 22v + 18p = 120 (이윤율 : 약 17.647%)

  B : 50c + 55v + 15p = 120 (이윤율 : 약 14.286%)

  C : 20c + 88v + 12p = 120 (이윤율 : 약 11.111%)

  (사회적 총자본 : 315, 총가변자본 : 165, 총이윤 : 45,

   생산물 총가격 : 360, 평균이윤율 : 약 14.2857%)

우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임금이 올라가더라도 생산물의 총가치․총가격은 여전히 360인데, 자본 총액은 가변자본의 10% 증가분만큼 증대해서 315가 되고, 총잉여가치 = 총이윤은 가변자본의 증대분만큼 감소돼서 45로 된다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 사회적 (평균)이윤율도 과거에는 20%였던 것이 이제는 약 14.2857%로 하락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일률적으로 10%를 오른다고 하면, 당연히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다름에 따라서 각 부문마다 임금이 상승하는 절대크기는 다릅니다. 즉, 위 식에서 자본의 구성도가 높은 A부문은 임금인상 전의 가변자본의 크기가 20v였기 때문에 10%가 상승하면 가변자본은 22v가 되고 그에 따라서 이윤의 크기는 18p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변자본이 50v였던 B부문은 가변자본은 55v가 되고 이윤의 크기는 15p가 되며, C부문의 경우에는 가변자본이 88v로 되고 이윤의 크기는 12p로 됩니다.

이렇게 되면 A, B, C부문의 이윤율은 각각 약 17.647%, 14.286%, 그리고 11.111%로 불균등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윤의 취득, 그것도 가능한 한 최대의 이윤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들, 여기서는 특히 C부문의 자본들이, “그래, 너희는 17.647%, 14.286%라는 높은 이윤율을 즐겨라, 나는 14.2857%라는 낮은 이윤율에 만족할 테니까, 성경에도 있지 않더냐?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말이다” 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있을까요?

아니지요? 분명 더 큰 이윤을 위해서 악귀처럼 악착을 떨면서 뛰어가겠지요? 이윤율이 높은 부문으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윤율이 높은 곳으로 자본이 달려가게 되면 이윤율이 높았던 부문은 상품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시장가격이 하락하고 그리하여 이윤율이 낮아지고, 이윤율이 낮았던 부문은 자본이 유출했기 때문에 상품의 공급이 감소하면서 상품가격이 상승하고 그리하여 이윤율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그게 바로 시장에서의 경쟁의 작용이지요. 그런 움직임은 결국 다시 자본의 이윤율의 평균화를 불러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임금 상승 후 이윤율이 평균화되므로>

  A : 80c + 22v + 14.5714p = 116.5714

  B : 50c + 55c + 15p = 120

  C : 20c + 88v + 15.4286p = 123.4286

  (사회적 총자본 : 315, 총이윤 : 45, 생산물 총가격 : 360,

   평균이윤율 : 약 14.2857%)


자, 이 식들, 즉 이윤율이 평균화된 것을 보여주는 식들이 새롭게 말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자본의 구성도가 높은 부분의 가격은 내려가고 자본의 구성도가 낮은 부분의 가격은 올라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A, B, C의 총생산물의 가격은 여전히 360이라는 것, 그리하여 임금이 전반적으로 오르면, 자본의 구성도가 다름에 따라서 개개 상품의 가격은 변화하지만 사회의 총가격, 따라서 평균가격, 또 따라서 물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추상적으로 말하면, 임금의 인상은 물가를 상승시키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소비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그 ‘소비자들’의 절대 다수를 점하는 노동자들, 그 가족들에게는 임금인상은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여러분들의 처지를 생각해보세요. 임금은 오르는데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면 생활자료의 양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생활이 나아지겠지요?

그런데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봐라, 그러니까 결국은 물가가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쾌재를 부르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있어요. 임금이 오르면 이렇게 노동자들의 소비자료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게 되고, 그 결과 물가가 오른다는 거죠.

그런데 이 주장은 자기 편리할 대로 세상의 한 쪽만 보는 삶들의 주장이지요. 왜냐구요? 앞에서 본 것처럼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의 이윤은 줄어들게 되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본가도 자신들의 씀씀이를 줄여야겠지요? 즉,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그렇게 되면 그 가격이 하락하게 되는 거지요. 아까 독점이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차이에 따른 가격의 구체적 움직임과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총가격, 따라서 평균가격이나 물가에는 변동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활필수품들이 수요의 증대로 가격이 상승한다면, 임금인상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다시 그 가격상승으로 상쇄돼버리는 게 아니겠느냐고요? 일단 정당한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점도 생각해야지요. 아까 사치품들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했지요? 그렇게 되면, 자본가들, 부자들만 좋아지는 게 아니냐고요?

아니에요. 사치품들의 가격이 하락하면, 그 부문의 이윤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제 그 부문의 자본이, 가격이 올라가서 이윤율이 높아진 생활필수품 생산부문으로 달려오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생활필수품의 공급이 증대되면서 다시 가격이 하락하게 되지요. 자본이 유출한 사치품 생산부문은 공급의 감소로 가격이 상승하고요.

뭐 그렇고 그런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거지요.

자, 여기까지가 임금이 올라갔을 경우에 물가가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겁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임금이 아무리 올라가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고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러면 임금이 올라가도 물가는 전혀 올라가지 않는데 자본은 왜 물가가 올라가고 그리하여 경제위기가 온다고 난리를 치느냐는 것입니다.

자본이 생산을 하고 영업활동을 하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것, 그것도 가능한 한 최대한의 이윤을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임금이 오르면 이윤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예요. 그러니 자본을 그것을 참을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면 우리의 이윤이 줄어드니까 임금을 올려서는 안된다” ꠏꠏ 이렇게 주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주장하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건 댁의 사정이지요” 하고 나올 테니까 말입니다.

거기서 기만적인 이데올로기가 동원되는 것이지요. 물가가 올라서 모두의 손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경찰도 동원하고 군대도 동원해서 억압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서, 그러나 ‘공익’이니 ‘국익’이니 하는 것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2. 이른바 ‘생산성임금제’론


1) 주장 자체

― “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의 상승률 내에 머물러야”(?)


여러분이 많이 들어온, 어쩌면 신물나게 들어온 얘기겠지만,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는 엉터리 이론을 가장 복잡하고 세련되게 제시하는 것으로 이른바 ‘생산성임금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내외의 수많은 경제학자들, 이른바 노동경제학자들, 과거에 경총의 것은 물론 한국노총의 임금 관련 연구프로젝트를 따먹던 경제학․사회학 교수들이 주로 내세우는 게 바로 이 생산성임금제론이고, 그리하여 마치 임금과 물가간의 상호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힌 이론인 양하는 지위를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컨대, 지금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조우현 교수께서 지난 1992년에 ꡔ노사관계개혁론ꡕ(창작과비평사)이란 두툼한 저서를 내신 적이 있는데, 그 안에서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면서 피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생산성임금제’론입니다. 이 책은 사실상 87년의 노동자 대투쟁과 그에 따른 임금의 대폭적인 상승에 놀라서 쓴 책인데, 당시 생산성임금제론의 목소리가 너무나 컸고, 따라서 그 폐해 또한 그냥 넘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조우현 교수의 글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 소위 ‘생산성임금제론의 기만성과 허위성’을 낱낱이 폭로하는 글을 쓴 바가 있습니다. 겨우 제4권까지 햇빛을 보고 단명한 ꡔ경제사회연구ꡕ라는 잡지 아닌 잡지의 창간호(1993년)에 실었던 것인데, 지금은 그 책을 구하기가 어렵고 저희 연구소에 1권이 소장되어 있으니까, 흥미가 있거나 필요하신 분은 복사를 요청해서 보도록 하세요.

생산성임금제의 폐해, 혹은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얼마나 심대한 것인가 하는 것은, 예컨대 민주노총 등에서도 임금 상승률을 발표할 때면 거의 대개의 경우에 그것을 ‘생산성 상승률’과 비교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독점자본과의 투쟁에서 최일선에 서 있는 노동조합으로서의 민주노총의 정책담당자들조차 독점자본의 기만적 허위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른바 ‘생산성임금제’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면 이른바 ‘생산성임금제’란 무엇인가?

예의 조우현 교수에 의하면, “임금의 변화율(…)은 물가상승률(…)과 물적 노동생산성 상승률(…)의 합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고, “달리 표현하면 실질임금의 변화율이 물적 노동생산성의 변화율과 같아야 된다는 뜻”(ꡔ노사관계개혁론ꡕ 290쪽)입니다.

우선, ‘물적 노동생산성’ 운운할 때 이미 부르주아 경제학이 말하는 이른바 ‘부가가치생산성’ 등을 전제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의 개념을 부르주아적으로 왜곡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들이 말하는 이 ‘물적 노동생산성’이란 노동자들의 과학적 경제학에서의 노동생산성과 사실상 같은 내용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러면 이른바 생산성임금제의 핵심적 주장은 “실질임금의 상승률은 노동생산성의 상승률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실제의 대(對) 노동자 공세에서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실질)임금의 인상률은 노동생산성의 상승률 이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으로 됩니다.

생산성임금제론자들은 이 명제에 과학성을 주기 위해서 수학식을 동원해서 ‘증명’하는데, 우리는 아래에서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를 폭로할 것입니다.


2) ‘생산성임금제’론의 주장이 진실하다면?


(1) 노동생산성과 임금


생산성임금제론의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다름 아니라, 노동생산성과 상품가격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고, 그 응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논의에서 인플레이션은 물론 배제됩니다. 이른바 생산성임금제론에서는 ‘명목임금의 상승률에서 물가 상승률을 공제’하고 있어서, 고정된 화폐가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전제하는 것처럼 외양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금 상승을 논하면서 화폐가치, 정확하게는 지폐가치의 하락에 따른 물가등귀분을 공제하지 않는다면, 그건 누구의 눈에나 쉽게 ‘사기’라는 것이 드러나겠지요. (물론, 생산성임금제론이 보다 복잡하게 꾸며진 사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면 이렇게 화폐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는 이미 노동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것은 동일한 노동시간에 더 많은 사용가치, 그러니까 생산물이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단위 노동생산물의 가치, 따라서 그 가격은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비례해서 감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어떤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 물건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지난 1년 동안 노동생산성이 10% 증대했다고 하면, 그 상품의 가격은 1년 전 가격의 1.1분의 1이 됩니다. 지난해 가격에 비해서 약 10%가 저렴해지는 거지요.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의 가격이 1년 전에 10,000원이었다면 이제는 ‘₩10,000 x 1/1.1 ≒ ₩9,090’이 되는 거지요. 노동생산성의 증대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그만큼 노동시간이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제2강에서 공부했던 기억나시지요?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즉, 만일 임금의 화폐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혹은 이른바 생산성임금제에서 표방하듯이 화폐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인플레이션을 공제하여 인플레이션만큼은 임금의 실질적인 인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동일한 화폐임금을 받더라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이 증대하는 만큼 증대한다는 결론 말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1년 전에 어떤 노동자의 1개월 월급이 100만원이었고, 그것이 쌀 10가마 값이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100만원은 100시간의 노동을 대표했다고 합시다. 화폐가치에 변화가 없다면, 100만원은 금년에도 100시간의 노동을 대표합니다. 혹은 화폐가치에 변화가 있었더라도 거기에서 인플레이션을 공제하면 역시 그 새로운 금액은 100시간의 노동을 대표합니다. 그렇게 노동자의 화폐임금에는 변화가 없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에 쌀을 생산하는 데에서 노동생산성이 10%가 증대했다면, 금년엔 100시간 노동하여 몇 가마의 쌀을 생산하겠어요? 당연히 11가마를 생산하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이 쌀 11가마의 가격은 얼마겠어요? 당연히 작년과 같은 100만원이겠지요? 역시 그렇습니다. 작년에 쌀 10가마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했던 노동시간이나 금년에 11가마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나 똑같고, 화폐가치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동생산성이 증대했더니 임금에 어떤 변화가 생겼어요? 동일한 화폐임금을 받더라도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이 증대한 만큼 10%가 올랐지요?

만일 위와 같은 조건이 충족된다면, 이것이 임금과 노동생산성과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증대하고 화폐가치에 변화가 없다면, 혹은 이른바 생산성임금제가 표방하는 것처럼 화폐가치의 저락분을 보상해준다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노동생산성만큼 올리기 위해서 다시 화폐임금을 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2) 다시 노동생산성의 증대율만큼 임금을 올리면?


그런데 생산성임금론자들은 고맙게도 거기에 다시 노동생산성이 증대한 만큼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임금의 변화율(상승률) = 물가상승률 + 노동생산성 증가율’


이니까요.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물가상승률’이란, 정확히 말하면, ‘인플레이션율’입니다. 혹은 그래야만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아까, 전적으로 편의적인 숫자였지만, 지난해의 임금이 100만원이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노동생산성의 증대율이 10%였으니까, 인플레이션율을 공제해서 고정가치로 표현한 금년의 화폐임금은 ‘₩1,000,000 x 1.1 = ₩1,100,000’입니다.

금년엔 지난해의 화폐가치로 110만원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돈으로는 이제 쌀 몇 가마를 살 수 있습니까? 11가마에 100만원이니까 110만원으로는 12가마하고도 1말을 더 살 수 있지요. 이것이 금년의 실질임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요. 본래 저임금이라서 한 달에 쌀 10가마로 생활했던 노동자 가족이 이제 좀 낫게 먹고 낫게 입고, 등등으로 쌀 12가마 1말 정도는 쓸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말입니다.

제가 월급이 100만원이라고 한 것은 계산의 편의를 위한 허구적인 숫자지만, 최근 정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대략 쌀 10가마 값 정도고, 또한 생산성도 매년 10% 이상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우리 논의에서는, 역시 계산의 편의를 위해서, 매년 10%씩만 증대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럴 경우, 생산성임금론자들의 주장에 기만이 없다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를 보는 것이 목적이니까 말입니다.

자, 그러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은 율로 증대하지만 우리는 지금 매년 생산성이 10%씩 증대한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실질임금이 증대하면, 예를 들면, 4년째가 되면 그 실질임금이 애초의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놀라지 마세요. 무려 약 2.1435배가 배가 돼요. 쌀로 치면, 21가마 하고도 거의 반 가마가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애초에 쌀 10가마로도 생활했던 노동자 가족이 쌀 21가마가 넘는 양을 다 소비할 수 있겠어요? 아니지요? 아무리 많이 먹고 소비해도 열 서너 가마겠지요. 그러면 나머지 7~8가마는 어떻게 되겠어요? 저축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저축량은 누진적으로 증대해가고요.

이와 같은 과정이 진행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상상하기 위해서 아래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매년 그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애초에 비해서 몇 배로 증가하고, 그 가족이 저축하게 되는 쌀의 양, 혹은 쌀로 표시된 돈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를 표로 작성해 봅시다.


   경과햇수

1년째

2년째

3년째

4년째

5년째

   임금배수 (배)

1.21

1.4641

1.7715

2.1435

2.5937

매년저축량 (가마)

  -

  7.5

  44.5

  89.0

143.0

누적저축량 (가마)

  -

  7.5

  52.0

141.0

284.0

   경과햇수

6년째

7년째

8년째

9년째

10년째

   임금배수 (배)

3.1384

3.7974

4.5949

5.5599

6.7274

매년저축량 (가마)

208.5

287.5

383.0

499.0

639.0

누적저축량 (가마)

492.5

780.0

1,163.0

1,662.0

2,301.0


애초에 10가마로 생활하던 가족이니까 생활의 풍족도를 최대한 늘려서 매월 14가마씩 소비한다고 가정하고, 매년의 저축량은 매월의 그것을 12곱한 것입니다.

생산성임금제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임금을 올리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위 표가 말하는 대로하면, 10년째에는 노동자 가계에 쌀이 2,300가마 이상 저축되게 되지요? 모든 노동자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는 노동자들을 그렇게 부자가 되도록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생산성임금론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본가들이지요. 왜냐고요? 간혹 가다가 몇 해 예외는 있지만, 실제의 임금인상률은 대개 노동생산성의 증대율보다 높다는 게 정부 통계거든요. 그래서, 자본가나 생산성임금론자들이 이는 너무 과도한 임금인상이고, 그 때문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물론 허위의) 선전과 함께, 그러니 임금인상을 노동생산성의 증대율만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 아녀요? 그렇게 좀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많이 노동생산성 증대율 이상으로 임금을 준 것은 자본가 나리들이니 그들에게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절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뭔가 그것도 심히 이상하지요? 그 동안 노동생산성 증대율 이상으로 그렇게 많이 임금을 주었다는데 노동자 가계에 실제로는 쌀 2,000가마에 해당하는 돈이 아니라 빚만 쌓여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생산성임금제가 사기라는 생생한 증거인데, 그 전에 우선 생산성임금제라는 게 사기가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나부터 간단히 봅시다.

그것이 사기가 아니라면, 앞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 가계에는 계속 돈이 쌓여가겠지요? 그것도 누적적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떻게 되겠어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 것은 직접생산자인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여 그들의 노동력을 팔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노동자 가계에 그렇게 누적적으로 돈이 쌓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는 아니겠지만, 이제는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을 구매해서 자신이 생산의 주체가 되겠지요? 그럴 만한 재력이 생겼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되겠어요? 노동력 부족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임금이 폭등하겠지요? 그러면 자본의 이윤이 압박받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그러면 더 많은 노동자가 더 이상 소외된 노동으로서의 임금노동을 그만두고 생산수단을 구매해서 자기사업을 하게 되겠지요? 하다 못해 선반이나 밀링 한 대라도 사서 마찌꼬바라도 한단 말입니다.

그런 과정이 몇 년, 아니 몇 달만 계속돼도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어요? 자본주의 자체가 폐지되겠지요?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과정은 어때요? 전혀 아니지요? 생산성임금제론이 사기가 아니라면 뭔가 일어났어야 할 사태와는 정반대의 사태들이 벌어지고 있지요? 노동자들은 여전히 빈곤하고, 사회는 실업자․불완전취업자로 넘쳐나고 말입니다.

실제로, 자본가들, 자본가단체들, 그들의 이데올로그로서의 생산성임금론자들이 노동자들이 누적적으로 부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자본주의가 노동력 부족으로 자동 붕괴되라고 생산성임금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니, 아까 성급하게 감사를 했던 것은 철회해야 하겠지요?


(3) 생산성임금제론이 노리는 것, 혹은 그 비밀


그러면, 왜 생산성임금론자들이 표면상 얘기하는 것으로부터 귀결될 것과는 정반대의 사태가 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정부와 자본가 단체들, 그리고 생산성임금론자들이 한패가 돼서 뭔가를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인플레이션율입니다.

저들 생산성임금론에서는 ‘물가상승률’을 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부르주아 경제학과 통계에서 인플레이션은 그 개념부터 왜곡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상이 은폐되어 있지요.

그리고, 그런데도 생산성임금제론은 그 은폐되고 왜곡된 인플레이션 통계를 마치 사실인 양하면서, 거기에 근거해서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부르주아 사회에서 상황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의 이니셔티브는 부르주아 국가가 쥐고 있는데 그것이 왜곡․조작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전모도 우리로서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몇몇 단편적인 면모만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다음 표는 ꡔ한겨레ꡕ신문이 96년 7월 4일에 보도하고 있는, ‘정부 발표 전국 물가지수’와 남대문시장(주)가 조사하여 발표한 남대문시장 물가의 비교표입니다.


지수물가와 남대문시장 물가 비교                   (상승률, %)

품   목

전국 지수물가

(95.6~96.6)

남대문시장 물가

(95.7초~96.초)

품   목

전국 지수물가

(95.6~96.6)

남대문시장 물가

(95.7초~96.초)

갈치

21.6

46.6

마른멸치

42.6

200.0

배추

36.6

133.3

상추

62.6

200.0

마늘

-25.9

100.0

돼지고기

-9.9

-25.0

쌀

21.0

22.2

김

0.9

40.0

양파

65.2

73.9

두부

4.0

   0

화장지

5.4

51.6

 

 

 



정부나 자본가 단체들이 제시하는 ‘통계’니 ‘지표’니 하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밝혀주는 자료가 아닙니까? “정부의 물가지수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32개 도시의 매달 평균물가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어느 특정 시장과 시점의 물가와 막바로 비교할 수 없다”는 등의 반론을 폈다지만, 구차하기만 할 뿐입니다. 결국 정부의 통계라는 게 현실, 즉 실제의 인플레이션을 엄청나게 은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생산성임금론자들과 자본가 단체들은 그 정부 통계가 진실인 양, 그것을 기준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성 상승률에 대해서 과도하게 인상됐느니 어쩌니 하는 것이지요? (일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 단체들 역시 또 그것들을 자료라고 들어서 임금이 ‘덜’ 인상됐음을 증명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고요.)


정부나 자본가 단체들, 그리고 생산성임금론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겠어요?

다름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임금으로 묶어두기 위해서지요.

그런데도 노동운동 진영에서까지 그들의 엉터리 통계에 기대어 임금인상률과 생산성 증가율 운운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고, 당연히 당장 집어 치워야 할 일 아니겠어요?

아무튼 우리는 지금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항상화되어 있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임금 문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노동자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보기로 합시다.

한/노/정/연


[이 ‘인플레이션’ 문제는 다음 달에 정리합시다. … 필자]

2000-07-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