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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간접고용 철폐 투쟁에 불이 붙었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57호
홍기보





지금현장은
7월! 간접고용 철폐 투쟁에 불이 붙었다

홍 기 보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원







1. 위기의 미학, 희망의 생성에 대하여
―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의미에 관한 한 생각

전화위복. 나는 지금까지 이 말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과 서로를 위로․격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여겼다. 사실, 위기 속에 희망이 있다는 식의 주장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류의 격문처럼 흔하디 흔한 덕담으로 남발되어 왔다. 힘든 조건에서, 주체의 낙관적인 의지와 열정은 미래의 희망으로 통하는 소중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맹목적인 자기최면의 끝은 허무의 반동, 아니면 주체의 해체로 귀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유연화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앞에서, 나는 ‘전화위복’에 대한 편견을 교정하게 되었다.
이른바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으로 압축․대변되는 노동(조합)운동의 대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주성이 상호협조적인 동반자 관계로 수정되고, 관료화의 독버섯이 내부의 민주적 운영원리를 잠식하고 있다. 또한, 공세적인 투쟁을 대신하여 상층교섭 중심의 실리주의가 횡행하고 있으며, 조합 이기주의에 함몰된 노동조합 운동의 현실은 어느새 연대의 원칙마저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차갑게 말하자면, 우리의 노동(조합․계급)운동은 아직 이러한 원칙들을 바로 세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노협 시절”에 대한 향수는 사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태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운동의 위기가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거나, 소수의 “나쁜 지도부” 때문에 운동이 이 모양 이 꼴로 후퇴하였다고 여기는 것은, 위기의 원인을 너무 가볍게 대하는 태도인데, 이것은 일부 ‘미꾸라지’의 권능에 과도하게 집착․주목한 탓일 것이다. 물론, 미꾸라지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문제의 근원은 ‘개울’ 자체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자갈이 깔린 계곡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몇 마리 미꾸라지에 의해 제 빛을 잃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 즉, 미꾸라지가 개울을 흐리는 것 못지 않게, 이미 개울 스스로 혼탁한 상태였으며 지금으로서는 자체적인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노동(조합․계급)운동이 재벌그룹 계열사 대공장(대사업장)의 정규직 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평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초역사적․사후 평론적 태도이다. 다시 말해,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의 불가피성”이나,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준조차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공장의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봉으로, 우리 운동의 주력대오로 나서게 된 데에는, 산업의 발전을 위시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것을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다만, 중심성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배타성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연대의 정신이며, 계급적 단결에의 지향이다.
나는 단언하건대,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태도는, 우리 노동(조합․계급)운동의 계급성과 연대성을 측정하는 기준이자, 우리 운동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월 평균 165만원을 받으며 40시간노동제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총의 60만 조합원과, 고작 60만원을 월급이라고 받으면서도 ‘빨간 날’이라도 쉬기를 바라는 수백수천만의 비정규직․중소영세업체․여성노동자들 사이의 차이와 간극이 확대되는 모습은, 우리 투쟁의 궁극적 지향에 있어서 슬픔이자 절망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인도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차이를 좁히는 방식이 하향평준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다만, 기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대오가, 미조직․무권리 상태인 비정규직노동자 일반의 이해와 요구를 함께 보듬고 나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사실, 이것에 동의하는 ‘말 잔치’는 무성할 수 있지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조직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정규직 조합원대중의 일시적인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계급적 원칙을 확고하게 틀어쥔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교육선전 작업 이외에는 답이 없다.
를 가리키는 것이다. ― 여기서, 어차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는 착취에 신음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의 삶도 피폐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불필요한 말이다.
특히, 노동유연화 공세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폭발적인 증대는, 자본이 비정규직노동자의 희생에 기초하여 정규직 노동자의 상대적 권익을 보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인식․활용하는 사례에서부터, 최근 현대자동차노조의 소위 “완전고용협약”에 이르기까지 배신의 쓰라린 상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막아야 한다. 부풀려 말하자면, 복원해야 할 모범은 많지 않으며, 오직 새롭게 나아가는 창조와 혁신의 가시밭길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노동유연화 공세와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은, 우리 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조직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전체 노동계급의 잠든 피를 깨워 흔드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2. 노동유연화 분쇄 투쟁의 긴급하고 직접적인 매개, 파견근로제 철폐투쟁에 대하여
― ‘파견철폐 공대위’의 발족과 원인에 맞선 투쟁

1998년 7월 1일에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근로제)”이 시행되었다. 따라서, 올해 7월은 파견근로제가 시행된 지 2주년이 되는 때이다. 그런데, 현행 파견근로제는 파견노동자를 나름대로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파견노동자의 사용이 가능한 기간을 최장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즉, 2년이 지난 후에도 해당 파견노동자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파견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해고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6월 말 현재, 이미 방송사와 LG캐피탈, 인천의 길병원 등에서 파견근로자의 해고가 자행되었으며, 이에 맞선 투쟁이 힘있게 조직되고 있다.)
파견근로제의 시행 이후 지금까지 대략 5만6천명의 합법적인 파견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들 중의 상당수가 올해 7월로서 파견 가능 시한이 종료될 예정이며, 나머지 파견노동자들 역시 해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새로운 얼굴의 파견근로자가 계속 채우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부와 자본이 노리는 파견근로제의 목적이 담겨져 있다. ‘인력의 일시적인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파견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자본에 있어서 파견근로제의 의미는 ‘인건비의 절감’이자 ‘자유로운 해고’인 것이다. 따라서, (파견)노동자는 축소된 생계비와 불안정한 고용으로 굶어죽을 자유를 획득할 수밖에 없다. 생존권과 노동권을 위시한 노동자의 전반적인 삶이 “××년 널뛰기 하는 듯한” 자본주의 경기변동에 내맡겨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이른바 탄력적 인력수급정책이나, 파견근로제는 대개 불황(공황)기에나 자행되던 인력조정(고용불안)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리해고제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의 근간을 이루는 것인데, 이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해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견노동자의 형식적인 고용주는 해당 파견업체이며, 임금 역시 파견업체에서 지급받는다. 파견업체는 실질적인 사용업체와 근로자파견 계약(파견기간․담당업무 등)을 맺은 후 ‘소속’된 노동자를 파견한다. 파견업체는 사용업체로부터 ‘납품’ 에 따른 대가를 받는데, 이것이 전부 파견노동자의 임금으로 지급될 수는 없다. 바로, 합법적인 중간착취가 발생하는 것이며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이외에도 파견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다양한데, 온갖 차별대우에 따른 인간적인 수치심과 굴욕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파견노동자 자신이 그 모든 법적․사회적 권리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견노동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파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힘든 일인데, 그 이유는 불안정한 신분(간접고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고용주와 실질적인 사용주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그리고 고용계약의 기간이 참으로 명확함으로 인해, 그리고 업무공간의 분산성으로 인해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아가, 이것은 정규직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민주노조운동의 근본 토대를 뒤흔들고 있는데, 그 까닭은 신규인력의 채용과 충원이 대부분 비정규직(파견직․임시직․위장 하도급 등등)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정규직의 급감과 비정규직의 폭증은 곧바로 노조 조직력의 약화로 귀결되는 것이며, 이것은 노동자 분할 통치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작동할 것이다. 게다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총이나 상공회의소 부류들은 지금 파견근로제의 개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 가능 업종을 26개로 제한하고 있고, 파견 가능 기간 역시 최장 2년으로 못박고 있다. 그런데, 대상 업종과 파견기간을 무제한 허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를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신음하는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고용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외면한 채, 값싸게 사용하고 혹독하게 쥐어짠 후 언제든지 내팽개치겠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를! 따라서, 마땅히 우리는 노동(조합․계급)운동은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투쟁할 일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파견용역노동자의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파견철폐 공대위)”는 건설되었다. 지난 6월 3일에 공식적으로 제안된 ‘파견철폐 공대위’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20여개의 노동사회단체와 정치조직이 파견근로제의 완전한 철폐를 위해 뜻을 모은 것이다. 6월 22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출정 선포대회 이후 파견철폐 공대위는 파견근로제 완전 철폐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파견근로제는 개악되어서도 안 되지만, 유지되어서도 안 된다. “노동유연화 공세와 파견근로제를 역사적인 대세로 인정하”는 가운데,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후에 보호하고 조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문제는 원인에 맞선 투쟁이다. 이미 형성된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보호(차별철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통로 자체를 틀어막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나면 나중에 조직하고 단결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며, 사후에 단결과 투쟁이 조직된다 할 지라도 그 투쟁의 핵심적인 내용과 방향은 결국 ‘정규직화 쟁취’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유연화 공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원인에 맞선 투쟁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비정규직노동자 조직사업를 경시하는 것임은 결코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자체적인 단결투쟁(차별철폐․정규직화)은, 원인(노동유연화․비정규직화)에 맞선 투쟁과 결합되어 상호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지금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결과에 맞선 투쟁과 원인에 맞선 투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편, 원인에 맞선 투쟁을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파견근로제의 도입 과정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왜 지금, 산적한 투쟁의 과제는 매우 많은데, 파견근로제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노동자민중에게 해로운 법․제도는, 그것을 철폐하는 것이 최초의 제정을 막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2년 전에는 파견근로제를 내주었는데, 이제는 파견노동자를 조직․보호하고, 나아가 파견근로제를 철폐하겠다는 우리 투쟁의 역설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우리는 노동유연화 반대 투쟁에 나서는 데 있어서, 2년 전 그 당시에 전체 노동자의 미래를 전교조의 합법화와 맞바꾼 범죄적 사건과 바로 그 파렴치한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와 교훈을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파견근로제를 인정하고 노동유연화 공세에 순응하는 가운데, 법제도적 보호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일부의 흐름이다. 과연 법제도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이 어디 없어서 안 지켜지는 것인가. 애석한 일이지만, 노동자에게 투철한 준법정신을 발휘하는 자본가는 없다. 문제는, 자본가의 자발적인 시민의식과 선량한 마음씨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법의 집행을 현장에서 관철시키기 위한 노동자의 단결투쟁의 힘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있어서 단결투쟁(노조결성)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임금과 고용 등에 있어서 정규직노동자와 차별이 없는 비정규직노동자를 어느 자본가가 ‘사용’하려 하겠는가. 관리의 부담만 늘어날 것인데.―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후의 법적 보호 조치는, 그림의 떡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설사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인다 할 지라도 끝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영원한 차이를 고착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대안은, 노동유연화 분쇄와 파견근로제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투쟁에 있다. 현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보호(차별철폐)를 위한 일상적인 노력은 매우 소중하지만,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에 있어서 간접고용의 완전한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파견철폐 공대위’는 이러한 인식의 지반 위에서 다양한 사업과 투쟁을 펼쳐나갈 것이다.


3. 탈법적인 위장 하도급의 근절을 위한 투쟁과 비정규직노동자 일반에 대하여

사실, 파견근로제 철폐 투쟁과 파견노동자의 투쟁은 빙산의 일각이다. 파견근로제의 철폐와 파견노동자의 투쟁이 긴급하고 중대한 사안임이 틀림없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전체 비정규직노동자의 문제나 노동유연화 공세의 총체성에 비추어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간접고용의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보험설계사나 학습지교사의 경우처럼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위탁계약직노동자, 고용주와 사용주가 일치하지만 주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임시계약직 노동자, 촉탁직 노동자, 건설산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일용직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시설관리노동자로 대표되는 외주용역노동자, 합법적인 파견노동자, 탈법적인 사내 도급하청노동자 등등 체계적인 분류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다종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굴욕적인 나날을 감내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자본) 자체의 불안정성이 그대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영세업체나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열악한 처지이고, 모두가 중요한 투쟁이지만, 여기서 탈법적인 위장 하도급을 따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대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의 30~40%가 사내하청노동자이며, 많게는 90%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현행 파견근로제는 파견대상 업종을 26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의미의 제조업에서는 파견노동자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대공장의 사내하청은, 바로 이러한 법망을 피하기 위해 업무의 하도급이라는 형태로 위장한 경우이다. 즉, 사내 하청업주는 실질적으로 모기업(원청업체)에 근로자를 공급(파견)하는 파견업주, 또는 노무관리를 대행하는 ‘마름’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적․형식적으로는 모기업과 구분되는 별도의 법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 독립적인 법인(원청)과 법인(하청) 사이의 업무 위탁(하도급) 계약으로 맺어져 있으나, 사실은 사용업체와 파견(고용)업체 사이의 불법적이고 변태적인 파견 계약일 뿐이다. 대공장의 사내 위장 하청(하도급)의 경우에서도, 파견근로제와 마찬가지로 ‘인신매매’에 따른 중간착취가 발생하며, 임금을 위시한 근로조건의 열악성, 극도의 고용불안, 노조결성의 어려움 등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탈법적인 위장하도급은 그 수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대오인 대공장 금속노조의 조직적 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만약 현대자동차 정갑득 집행부의 ‘완전고용협약’과 같은 최악의 조건이 결합된다면, 그야말로 ‘죽음의 키스’가 되어 노동(조합․계급)운동의 미래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다. 소수의 정규직 상층노동자와, 다수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대립적 분화가 그것이다. 어쩌면, 비극의 서막은 벌써 오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노동유연화 분쇄, 간접고용 철폐, 정규직화 쟁취, 파견근로제 철폐를 위한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모든 산업과 업종, 지역을 아우르는 전체노동자의 과제, 이 중대하고 험난한 투쟁의 길에 ‘파견철폐 공대위’는 연대의 불바람을 일으키며 선봉에 설 것이다. 한/노/정/연

2000-07-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