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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적 처방이 빚어낸 대형 의료사고오월,

현장에서 미래를  제57호
채만수

기만적 처방이 빚어낸 대형 의료사고
‘의약분업’이 아니라
‘상업주의적 의료체계의 극복’이 핵심과제




채 만 수 / 부소장






주요 책임은 정부에

지난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무려 엿새 동안이나 우리 사회는 ‘의료대란’이라고 불리는 사태를 겪었다. 전국 병․의원의 90% 이상이 문을 닫고, 의과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고, 의대 교수들은 교수직 사직서를 내고 가운을 벗어던졌다. 실로 보건의료체계의 사실상의 붕괴․공백상태가 연출된 것이다. 수년 전 약사와 한의사들 간의 이해 대립으로 한바탕 심각한 의료파동을 겪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이번의 사태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짙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고, 수많은 환자들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을 당했으며, 제때에 치료를 못 받아 죽은 사람, 혹은 그렇게 죽었다고 주장할 만한 정황의 사망사건들이 나타났다. 사회 전체가 느낀 불안과 공포가 오죽했으면, ‘사고가 나도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잠재적․현재적 불안감으로 조심조심 운전한 때문’에 의사들의 이번 폐업투쟁 기간 동안에 교통사고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얘기가 다 나올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중의 불만이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향해서 폭발할 기미를 보이자 대통령과 야당 당수가 황급히 만나 의사들 측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7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을 개정하겠다고 합의․공표하고, 그 약속을 받아 다행히 대부분의 병․의원이 26일부터 정상 진료에 들어감으로써 사태는 일단 진정되었으나, 그렇다고 어떤 결착을 본 것은 아니다. 약사법 개정에는 의사와 약사간에 첨예하게 대립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그 개정 내용의 여하에 따라서는 또다시 어느 쪽으로부터 어떤 실력행사가 벌어질지 모를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의료대란’, 보건의료체계의 사실상의 붕괴․공백상태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따라서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자는 누구보다도 정부이고 보건복지부다. 그런데도 그들은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망석중이 언론매체들을 동원하여 책임을 일방적으로 의사들에게 전가하면서 폐업투쟁을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여 대중을 선동하고, ‘의법조처’니 ‘사법처리’니 파쇼의 녹슨 칼을 휘둘러 위협하기에 바빴다.
천둥벌거숭이로 나설 데 안 나설 데 없이 다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이른바 시민운동 단체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서서 어릿광대 노릇을 했다. 매사에 문제의 본질을 은폐․왜곡함으로써 대중의 의식과 투쟁의 침로를 오도하는 그들의 장기(長技)를 살리고 또 그 소명을 다해서, 그들 시민운동 단체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붙이고, 심지어 의사들을 고소고발까지 하고 나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의사들은 절대 파업하지 않는다”(예컨대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 「경실련」 이석연 변호사의 발언)는 등의, 예의 그 역겨운 사대주의 선동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집단이기주의’라는 매도는 기만과 위선

언론이나 시민운동 단체들의 그러한 비난과 선동에는 결코 당연하지만은 않은 두어 가지의 명제 혹은 주장이 부당하게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전제되어 있다.
우선 하나는, ‘의사는 일체의 경제적 이해를 초탈하여 환자에 대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의사가 일종의 성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주장이다. 주지하듯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니,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니, ‘치료를 받을 국민의 권리’니 하는 상투어가 그러한 주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명제나 주장은 일견 지당한 것처럼 들리고, 그리하여 시민운동 단체 등은 이를 근거로 선동과 매도를 일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명제나 주장은 실제로는 극히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직업상의 윤리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덕적이고 윤리인 것이어서 강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환자는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권리’ 또한 이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그러한 권리는 단지 선언적이고 추상적일 뿐 결코 실제적이지 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기만적 ‘권리 선언’이 오히려 무권리 상태를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좀 비겁하게 비유를 들자면, 과거 장개석 치하의 항시적 계엄령 체제하의 대만을 ‘자유중국’이라고 규정한다든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등 등등’의 파쇼적 지배체제하에서 이들 파쇼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운운함으로써 부자유와 억압․파쇼를 은폐하듯이 말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라는 현실적 조건에서는 누구도 의사에게 성자가 되기를 강요할 권한이 없고, 또한, 이번 사태의 전말이 웅변하는 것처럼, 강요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서는 경제적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환자가 ‘치료를 받을 권리’ 또한 확보되지 않고, 확보될 수도 없다. 다름이 아닌 바로 경제적인 이유, 즉 빈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가!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현실과 대결하는 대신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니,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니, ‘치료를 받을 국민의 권리’니 하는 알량한 상투어에 기대서 문제의 소재가 마치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있는 듯이 주장하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기만과 위선일 뿐, 그리고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핵심 과제는 ‘의약분업’이 아닌 상업주의 극복

나아가, 이번 사태의 바탕에는 또한 ‘의약분업의 확립이야말로 한국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적 과제’라는 식의, 기만적 처방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경실련」, 「참여연대」,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연대」 등 ‘시민운동’ 단체들이야말로, 그들을 뒷받침하고 기본적으로는 사실상 뒷조종하는 대자본의 언론매체들과 더불어, 바로 이 기만적 돌팔이 처방에 시민적 권위를 부여하는 데에 적극적 역할을 했고, 그리하여 사태를 돌이킬 수 없이 이 지경으로까지 악화시키는 데에 가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왜? 무엇 때문에?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점증하는 조건에서 문제를 그렇게, 즉 문제의 핵심이 ‘의약분업’에 있다는 식으로 제기함으로써만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의 극복이라는 문제 핵심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고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그들은 일단은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가 폭발할 때까지의 오랜 과정과 그 속에서의 논쟁에서는 물론이요 보건의료체계의 사실상의 전반적인 붕괴․부재상태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조차 “의약분업이 아니라 상업주의의 극복이야말로 핵심 과제”라는 목소리는 사실상 들리지 않지 않는가? 마치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는 신성불가침의 당연한 것인 양, 그것을 그대로 전제한 위에서, 속된 말 그대로, ‘밥그릇 싸움’만 벌어지고 있고, 사회적 관심도 온통 거기에 묶여 있는 게 아닌가? 그만큼 그들은 문제의 본질, 핵심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데에 ‘일단은’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폭발을 준비하는 휴화산으로서이지만 말이다.
의약분업의 ‘긴급한(?) 필요성’의 근거를 정부와 언론․시민단체 등은 ‘약물의 오남용’에서 찾지만, 이때 그들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은폐되어 있다.
첫째로, 경제적 이유, 즉 빈곤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 때문에 ‘약물의 오남용’이 아니라 약물 및 기타 일체의 과학적 치료행위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거나 사실상 배제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극히 빈약한 치료밖에 못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는 사실. ꠏꠏꠏ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여파로 대도시를 배회하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노숙자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의료보험은 명색이 ‘국민개보험(國民皆保險)’이라지만, (특히 지역조합의 경우) 보험료가 결코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약국에 가면 ‘본인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보험료를 ‘3개월 미납’시키면, 아예 보험혜택에서 제외된다. 빈곤의 사회적․경제적 원인을 여기서 논할 여유는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의료문제 자체에만 한정시켜 보자면, 분명히 상업주의적 의료체계에 기인하는 이러한 사정들이 모두 적지 않은 수의 환자들을 약물을 포함한 일체의 치료행위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는데, ‘약물의 오남용’만을 들어 마치 ‘의약분업’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의약분업’을 핵심적으로 거론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약물의 오남용’ 자체조차 많은 부분 사실은 상업주의적 의료체계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 ꠏꠏ 사실 의약분업의 미실시, 따라서 약사에 의한 임의조제나 전문의약품의 임의판매는 ‘약물 오남용’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오남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구의 ‘하나’일 뿐이다.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그리고, 의약분업의 미실시가 약물 오남용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기구도 아니다.
물론,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무언가, 따라서 여기서는 약물의 오남용은 불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어떤 행위의 원인과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는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기구를 폐쇄했을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도 보다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약물 오남용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우선, ‘이러이러한 약을 먹으면 병이 낫겠지’ 하는 환자의 주관적 판단이나 잘못된 복약습관이 그 원인의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약을 많이 팔고, 그 매약의 ‘신속한 치료’를 통해서 ‘용하다’는 성가를 얻고 그리하여 더욱더 많은 약을 팔고자 하는 일부 약사의 장삿속도 그러한 오남용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후자의 예는 상업주의적 의료체계 자체가 오남용의 원인이지만, 아무튼 이러한 원인들에 의한 오남용은 의약분업을 통해서 예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약물 등 치료로부터의 배제가 그러한 것처럼, 사실은 약물 오남용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도 경제적 이유, 즉 빈곤과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 있다는 점을 은폐해서는 안된다. 마땅히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하나 그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에 약국의 매약이나 임의 조제에 의존하는 경우가 그것인데, 사안의 성격상 통계는 없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의약분업은 약물의 오남용을 봉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그 중의 일부는 물론 의약분업 지상주의자들이 기대하고 예언하는 것처럼 이제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부는 아니다. 왜? 현재와 같은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서는 적지않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 즉 빈곤 때문에 병의원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적 기초 위에서의 의약분업은 이들에게 ‘약물 오남용의 가능성’ 대신에 ‘약물 및 일체의 치료로부터의 배제’를 안겨 줄 것이다.
더구나 최근의 사태 진행은 의약분업의 실시를 계기로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주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따라서 보험료를 포함한 노동자․민중의 의료비 부담과 약물 및 치료로부터의 배제가 크게 증대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1~2년 새에 특히 지역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자유 직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의료보험료가 많게는 2~3배까지 올라서 서민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데, 의약분업의 실시를 앞두고 이미 의사의 처방료와 약사의 조제료를 대폭 올리기로 정부가 방침을 발표한 바 있고, 그렇게 의료수가와 보험료 등의 대폭적인 인상을 통해서 의사 및 약사 양쪽의 불만을 다독거리려는 게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의약분업 지상론자들은 이 문제 역시 침묵으로 은폐하거나, 그 결과 확대될 수밖에 없는 약물 및 치료로부터의 배제 확대는 아예 논의에서 배제한 채 문제를 기만적으로 단지 ‘의료비 부담 증대’의 문제로만 거론하고 있다.
한편, 의료수가와 그에 따른 보험료 등의 대폭적인 인상은, 상업주의적 의료체계를 전제하는 현재의 조건에서는 반쯤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오랜 상업주의의 결과 의료업계의 독과점화도 고도로 진행되어 소수의 대형 병원은 날로 번창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수많은 병․의원들이 도산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의료수가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의료보험조합은 재정이 고갈되어 있고, 정부는 재벌이나 금융독점자본에 예산과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데에만 열심일 뿐, 보건의료부문의 문제는 이른바 ‘수익자 부담원칙’을 강화하여 해결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약분업이 ‘모범적으로’ ‘완벽하게’ 실행된다 해도,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의 기초 위에서는 의약분업 지상론자들이 떠벌리는 것과는 달리 약물 오남용의 상당 부분을 방지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그 처방이 ‘용하다’는 성가에 기대서 보다 많은 환자를 유치하려는 병원․의사의 상업주의적 처방이 그것이다. ‘용하다’는 성가를 얻어야 되니까 항생제 등의 내성의 축적이야 어떻게 되든 당장의 신속한 치료효과를 위해서 마구 처방하고 보는 식이다.
‘약물의 오남용’을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항생제이다. 그런데 의사에 의한 처방을 분석한 한 연구에 의하면, 상기도 감염 환자 중 항생제 투약환자의 비율은 성인 85.6%, 소아 90.6%. 기관지염 환자의 성인 91.1%, 소아 96.1%로서, 박실리아, 「개원의의 의약품 처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8, pp. 50~51.
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 오남용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고, 투약의 적절성 여부, 투약의 양 및 기간 문제 등을 전문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어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극히 높은 투약율은 병원․의사의 처방에서도 항생제 오남용의 혐의가 충분히 있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동일하거나 유사한 증상의 환자들에게 약국들에서의 임의 매약․조제에서도 그만큼이나 그보다 더 높은 빈도로 항생제가 투여되고 있을지 의심스러운 정도로 참으로 극히 높은 투여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단체(The Center for Proper Medication Use)는 의사들이 처방에서 항생제를 오남용하고 있어 이 때문에 자주 사망사고까지 나고 있고, 다른 약물의 경우에도 그렇게 오남용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없다며, “의사들은 그들의 처방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http://cpmu.org/mederrors.html.
― 물론 문제는 ‘처방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구에 의해서만은 해결될 수 없고, 그러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 갖춰져야만, 즉 상업주의가 극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일부 노동계의 편협하고 유감스런 대응

간단히 위와 같은 사실들에서만 보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적 문제는 의약분업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본주의적․상업주의적 성격의 극복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대자본의 언론, 그리고 시민운동 단체들은 핵심을 은폐한 채 의약분업의 문제로 그것을 왜곡하고, 더구나 그것을 강권적․법가적(法家的)으로 관철하려고 함으로써 이번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의료대란’을 불러 왔다. 저들 의약분업 지상주의자들의 계급적․정치적 성격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천둥벌거숭이로 어릿광대 춤을 춘 것은 시민운동 단체들만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노동조합, 특히 민주노총의 일부 조합 및 상급간부들도 두꺼비 눈을 껌벅거리며 시민운동 단체들과 더불어 어릿광대 춤을 춤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시민운동 단체들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영향력 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계급적 주체성의 취약함의 발로이다.
수만 명의 의사가 폐업계와 전공의 사퇴서를 내고, 수천 명의 의과 대학생들이 강의실과 실험실을 박차고 나와 시위를 벌이고, 수천 명의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고 가운을 벗으면서 투쟁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노동조합 간부, 그것도 민주노조 간부라는 자들이 ‘그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고민하고 보건의료체계의 국유화․사회화를 요구하고 나서는 대신에,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저들 시민운동 단체들의 농간에 놀아나 그들의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나서다니!
자신들 역시 그들, 즉 정부와 언론, 그리고 시민운동 단체들로부터 그 동안 그토록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당해 왔으면서도 그들의 음모를 꿰뚫어 보기는커녕 분노조차 간직하지 못했다니!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마땅히 비판과 바로잡음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의사들을 향해서는 뒤늦게나마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사를 포함한 보건의료 종사자들을 가능한 최대한으로 우군으로 견인하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무엇보다도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의 극복, 보건의료체계의 국유화․사회화를 요구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저들 시민운동 단체들의 음험한 농간에 휘말려 ‘재벌해체’니 ‘재벌개혁’이니 하는 독점자본 합리화 프로젝트에 어릿광대 춤을 추고 나서는 대신에 말이다.(2000.6.27.) 한/노/정/연

2000-07-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