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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노동자 교양 경제학
 인플레이션과 이른바 '생산성 임금제'(2)

현장에서 미래를  제58호
채만수



지ˇ상ˇ강ˇ좌



인플레이션과 이른바 ‘생산성임금제’ 등(2)



채 만 수

부소장






3. 인플레이션


자, 이제 인플레이션이란 것에 대해서 얘기할 차례군요.

먼저 물어봅시다.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입니까?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 그러니까 물가상승”이라고요?

일단 그렇다고 쳐봅시다. 그러면 다시 이런 질문을 해봅시다.

이들만 살인마로 규정하고 이승만과 그 일당들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전쟁을 전후해서 더 잔혹하고 더 대량의 학살을 지령한 자들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절대 안되겠지만, 아무튼 대량 학살자인 전두환과 그 일당은 70년대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한 자리 수로 잡았다’는 것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곧잘 자랑합니다. 사실상 20-30%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이 전두환 정권 중․후기, 그러니까 제 기억에 의존해서 보면 대략 1983년 이후 수년간, 적어도 통계상으로만 보면, 10% 미만, 그러니까 ‘한 자리 수’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전두환이나 저들이 아무리 “인플레를 잡았다”고 떠들어도 ‘한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도 역시 인플레이션’인 것은 누구나 아시겠지요?

그런데 그 즈음 이웃 일본이나 기타 자본주의 선진국가들, 하다 못해 이웃 대만에서까지도 상당 기간에 걸쳐서 물가상승률은 ‘플러스․마이너스 0%’에 가까웠어요. 이 경우, 그러니까 물가상승률이 0%인 경우는 인플레이션입니까, 아닙니까?

대답은, “별걸 다 묻네, 인플레이션은 무슨 인플레이션”?

예,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도, 그러니까 ‘경제학자들’까지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러한 경우를 인플레이션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가 만일 그러한 경우도 ‘인플레이션이다’고 말한다면, 그는 필경 미친 놈 취급을 당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오늘 제가 그 미친놈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물가상승률이 0%인 경우 모두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은 아니지만, 십중팔구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리고 기왕 내친 김에 아예 이중으로 미친놈이 될렵니다. “물가가 오른다고 모두 다 인플레이션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말입니다.

물가가 안 올라도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물가가 오른다고 그게 모두 다 인플레이션인 것은 아니다? ― 정말 미친놈이지요?

하지만 그 미친놈의 말만이 옳은 말이니 이를 어쩝니까?

사실은 상품․화폐․가격,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대부분 함께 공부했던 것인데 이 기회에 다시 복습 겸 정리해봅시다. 물가는, 그러니까 상품의 가격은 어떤 경우에, 왜 오르는가를 말입니다.


1) 물가 상승의 제유형

(1) 노동생산력의 변화

상품의 가격이란 그 상품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고, 상품의 가치란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어서, 결국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동일한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의 화폐, 즉 그 만큼의 금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노동시간과 금 1000g을 만드는 노동시간이 같다면 그 자동차의 가격은 우선 ‘자동차 1대=금 1000g’이지요. 그런데 국가가 ‘금 1g’에 대해서 ‘1원’이라는 화폐명(貨幣名)을 주면, 그러니까 ‘금 1g’을 국가가 화폐법에 의해서 ‘1원’이라고 부르면, 이 자동차 1대의 가격은 1000원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게 가격이지요?

그런데 만일 금을 생산하는 부문에서는 노동생산성에 변화가 없고 자동차 생산부문의 노동생산성만 변화한다면, 그리하여 이제 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에 금 1000g을 생산하는 데에 드는 노동시간 대신에 금 800g 생산하는 데에 드는 노동시간밖에 들지 않는다면, 이 자동차의 가격은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그만큼 하락해서 이제 ‘자동차 1대 = 금 800g = 800원’이 되겠지요?

그리고 거꾸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생산성은 변하지 않았는데 금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생산성이 변해서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노동시간에 이제는 금 1200g을 생산한다면 그때 자동차 가격은 어떻게 되겠어요? 이 역시 당연히 ‘자동차 1대 = 금 1200g = 1200원’이 되겠지요?

여기서는 지금 얘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화폐인 금이나 그 화폐로 자신의 가치․가격을 표시하는 상품의 어느 한 쪽을 생산하는 데에는 그 노동생산성에 변화가 없고 다른 한 쪽을 생산하는 데에만 노동생산성에 변화가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쪽이 모두 변하더라도 그 변화의 정도와 방향을 감안하면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그 가격의 변화를 알 수 있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우선 상품의 가격은 이렇게 화폐 상품인 금과 다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서의 노동생산성의 변화에 따라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즉 노동생산성의 변화로 예컨대 자동차의 가격이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가격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에요. 이러한 경우는 ‘가격의 실질적인 등귀’, 혹은 ‘실질적 상승’이라고 말하는데, 이제 자동차의 가치․가격은 실질적으로 그만큼 더 많은 양의 금에 의해서 표시된다는 뜻이지요. 노동생산성의 변화로 거꾸로 가격이 내려가면 ‘실질적 하락’이 되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노동생산성의 변화를 반영하여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경우, 이러한 경우는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아니예요. 그리고 이러한 가격의 등귀가 상품가격의 가장 근본적이고 전형적인 등귀지요.

여기서 눈치 빠른 분은 뭔가 짐작하겠지요? ‘아하,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올라가지만 그 상품의 가격이 표시하는 금량에는 변화가 없는 어떤 물가상승이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보기로 합시다.


(2) 호황 등귀 - 공황 및 불황기의 하락에 의해서 상쇄

가격이 올라가는 두 번째 유형은 ‘호황 등귀’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는 경기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지요?

그런데 어때요? 호황기, 특히 그 막바지에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해서 상품의 가격이 오르고, 그렇게 되면 값이 더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두었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아서 더 큰 이득을 보려는 장사꾼들의 가수요(假需要)까지 가세해서 가격이 더욱 오르게 되지요? 이렇게 호황기, 특히 그 막바지에 상품에 대한 수요의 증대로 상품의 가격, 물가가 오르는 것을 바로 ‘호황 등귀’라고 하고, 이 역시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상품가격의 실질적인 상승의 하나입니다. 이때 높아진 상품의 가격은 더 많은 양의 금량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 같이 가격의 실질적인 상승, 즉 금량의 증대를 표시하지만, 앞의 경우, 즉 노동생산성의 변화에 의한 경우와 이 경우, 즉 호황으로 수요가 증대한 것에 의한 경우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즉, 앞의 경우 가격의 상승은 가격이 표시되는 상품과 화폐로서의 금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동일하게 하는 운동임에 비해서, 뒤의 경우 가격의 상승은 가격이 표시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에 생산되는 금량으로의 운동입니다. 말하자면, ‘상품의 가격이란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과 동일한 시간에 생산되는 금의 양’이라는 근본적인 원리로부터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운동, 즉 상품 가격의 그 가치로부터의 괴리는 불안정한 것이고, 수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수정하는 운동이 곧 공황 및 불황기의 가격의 폭락 혹은 하락입니다.

호황의 막바지에서는 상품에 대한 수요의 증대로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어떤 상품의 가격은 폭등하기도 하면서 특히 자본가 등의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언제나 ‘장밋빛’일 것처럼만 보이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위기, 즉 공황이 엄습하지요. 중소․영세자본은 물론이고 대자본조차 줄줄이 도산해나가고, 어제까지도 가격이 폭등하면서 없어서 못 팔던 상품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안 팔려나가고 재고만 쌓여가지요.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잠시 심화되었다가 차츰 진정되긴 하지만, 아무튼 새로운 호황기에 접어들기까지는 가격의 하락이 계속되거나 자기 가치 이하로 하락된 가격을 유지하면서 경기가 지지부진한 상태를 유지하지요. 말하자면, 호황기에 가치 이상으로 올라간 가격 부분을 이번에는 그 가치 이하로 하락함으로써 상쇄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호황기의 가격등귀는 이윽고 공황 및 불황기의 하락에 의해서 상쇄돼버리게 되는 일시적인 것이고, 거품과 같은 것인데, 아무튼 가격상승의 두 번째 유형을 이루지요.

이러한 가격운동이 ‘호황 등귀’와 그 반동으로서의 ‘공황 및 불황기 혹은 침체기의 하락’인데, 이러한 가격의 등귀는 그만큼 실질적인 금량의 증감을 표현하는 것이어서, 호황기의 가격상승은 인플레이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3) 인플레이션

이제 정말,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말해야 할 차례인데, 그 전에 제가 앞에서 했던 말, 그러니까 “기왕 내친 김에 아예 이중으로 미친놈이 될” 거라면서, “물가가 오른다고 모두 다 인플레이션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말 기억하지요? 이제 왜 그런가 알 수 있겠지요?

아니지요. 이러한 실질적인 물가등귀와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다른가, 따라서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왜 그것들이 인플레이션이 아닌지를 확실히는 알 수 없지요.

아무튼 인플레이션이란 위의 두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제3의 물가등귀의 유형이고,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아주 중요한, 어쩌면 물가 등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가등귀입니다.

그런데 그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가 단순히 설명될 수 있고 쉽게 이해될 수 있다면 그를 둘러싼 여러 미신, 음모가 활개를 칠 수 없겠지요. 그만큼 그것은 복잡하고,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공부해온 화폐나 상품가격의 본질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기타의 화폐 유통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화폐 유통의 제 법칙에 대해서, 그리고 우선 ‘유통 필요 화폐량’이란 것에 대해서부터 알아보기로 합시다.


2) 유통 필요 화폐량

(1) 유통 필요 화폐량 자체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상품은 어떻게 유통됩니까? 매매를 통해서, 즉 서로 팔고 삼으로써 유통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고 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돈, 즉 화폐가 필요하지요? 예를 들어, 1만 원짜리 어떤 물건을 사고 팔려면, 즉 ‘유통’시키려면, 돈 1만 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 사회에는 여러 상품, 수많은 상품이 있고, 그 사회의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품들이 유통되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돈, 즉 화폐가 필요하겠어요? 아까 1만 원짜리 상품을 유통시키기 위해서 1만 원이 필요했으니까 이제 유통되어야 상품의 총가격만큼 화폐가 있으면 그 상품들이 유통이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만일에 유통되어야 할 상품의 총가격이 1억 원이라면, 그 만큼의 화폐, 즉 1억원의 화폐가 있으면 그 상품들이 유통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이 1억 원은 그 상품들이 유통되기 위해서 필요한 화폐의 양, 즉 ‘유통 필요 화폐량’, 혹은 같은 말이지만, ‘유통필요금량’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회에서든 상품은 모두가 일시에 유통되지도 않고 여러 상품이 어떤 것은 일시에 어떤 것은 뒤에 뒤를 이어서 유통되고, 그리하여 일정한 시간을 놓고 보면 화폐도 어떤 화폐편(貨幣片), 즉 화폐 조각이 한번만 상품을 유통시키는 게 아니라 이 상품 저 상품 여러 번 유통시키게 되지요? 이렇게 일정한 기간에 그 화폐편이 몇 번이나 상품을 유통시키는가를 가리키는 개념이 ‘화폐의 유통속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정 기간, 예컨대 하루에 그 사회에서 유통되어야 할 상품의 총가격을 알 수 있고, 또 화폐의 유통속도를 알 수 있으면, 그 상품의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유통돼야 할 상품의 총가격’ ÷ ‘화폐의 유통속도’ = 유통 필요 화폐량


하루에 유통되어야 할 상품의 총가격이 1억 원인데, 그 기간에 화폐는 4번 딩군다고 하면,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1억 원 ÷ 4 = 2천5백만 원’이 된다는 것이지요. 2천5백만 원이라는 돈이 4번 물건을 사고 파니까 총 1억 원어치의 상품을 사고 팔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상에서 우리는 화폐가 좁은 의미의 유통수단, 즉 구매수단으로서만 기능한다고 가정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불수단으로서도 유통합니다.

그리하여, ꡔ자본론ꡕ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서 말하면, “주어진 어떤 기간에 유통하는 화폐의 총량을 보면, 유통수단 및 지불수단의 유통속도가 주어져 있다면, 그것은, 실현(판매)되어야 할 상품가격의 총액에 만기가 된 지불들의 총액을 더하고, 거기에서 상쇄되는 지불들을 빼고, 마지막으로 같은 화폐편이 유통수단의 기능과 지불수단의 기능을 교대로 수행하는 회수만큼의 유통액을 뺀 것과 같습니다.”1) 앞에 말했던 것에 비해서 저는 이것을 ‘확대된 유통 필요 화폐량’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아무튼 이것이 바로 ‘유통필요금량’, 혹은 ‘유통 필요 화폐량’의 문제입니다. 개념상으로 보면 아주 명확하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결코 그렇게 개념만큼 명확하지 않아요. 물론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더욱 성숙해감에 따라서 갈수록 많은 사회적인 생산과 유통이 통계화․부기화(簿記化)돼가고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유통 필요 화폐량’을 문제삼고 있는 생산체제는 여전히 그 생산이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경제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조건에서는 도대체 어떤 기간 동안에 유통되어야 할 상품의 총가격이 얼마인지, 그 기간 동안에 화폐의 평균적인 유통속도는 얼마인지가 사전에는 결코 계산되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사후에 경험적으로만 그러한 것들을 알 수 있을 뿐인데, 그것도 사실은 대략의 양만을 알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경제계획과 운영을 위해서 그러한 양을 필요로 하고 그리하여 동원할 때, 그것은 단지 그렇게 사후에 얻은 값으로부터 추정한 것들이지요.


(2) 이른바 ‘화폐 수량설’에 대해서

여기서 참고로 말씀드리는 건데, 상품 가격의 변화를 설명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설 가운데에는 이른바 ‘화폐 수량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상품의 가격 변화를 잘못 설명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라고만 하는 것은 그 잘못을 올바로 지적한 게 아니겠지요?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얘기를 하는 건데,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던, 말하자면 간단한 ‘유통 필요 화폐량’을 나타내는 식을 가지고 설명을 해봅시다.

유통되어야 할, 즉 판매되어야 할 상품의 총가격을 ‘P’, 화폐의 유통속도를 ‘v’, 유통 필요 화폐량을 ‘M’이라고 표시하면, 유통 필요 화폐량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시될 수 있습니다.


      P

    ꠏꠏꠏꠏꠏ = M

      v


그런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식을 이렇게 변형시킵니다. 즉,


    Mv = P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변형시키는 데에 ‘수학적으로’ 어떤 오류가 있습니까? 분명 ‘수학적으로야’ 아무런 오류도 없지요? 적어도 제 소견으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변형된 식에 의존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지요. “화폐의 유통속도(v)가 주어져 있다면, 화폐량(M)이 증가하면 가격(P)이 오르고, 그 반대면 반대다”라고 말입니다. 위 식대로라면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M’이 증가하면 ‘P’도 증가하고, ‘M’이 감소하면 ‘P’도 감소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폐 수량설이야말로 수학적으로도 증명되는 진리다!”― 이것이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믿음이요 주장이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경제 현상에서는 모든 요소가 다 상대변수에 따라서 움직이는 변수는 아니지요. 물론 경제학에서도 수학은 굉장히 중요한 방법의 하나지만, 그 점이 경제학과 순수한 수학을 가르는 점 아니겠어요?

여기서 무슨 말이냐 하면요, 경제 현상에서는 ‘가격이 등락함에 따라서 화폐량은 증감하지만’, 따라서 ‘P/v=M’은 성립하지만, 거꾸로 ‘화폐량이 증감한다고 해서 가격이 등락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Mv=P’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우리가 누누이 확인․강조해온 것처럼, “상품의 가격은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어서 상품은 유통에 들어오기 전에 그 가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같은 말이지만, 상품은 그 가격을 가지고 유통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상품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화폐의 유통량이 많아진 것을 화폐 수량설은 거꾸로 화폐의 유통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이 올랐다고, 잘못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천박성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동의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그러니까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오면 문제가 또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고, 마치 ‘화폐 수량설’이 진실이기라도 한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가 아니라 ‘현상적으로만’, 그러니까 겉으로만 그런 것인데, 바로 지폐가치의 감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문제입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이제 ‘지폐유통의 특수법칙’ 혹은 ‘지폐유통의 독자적인 법칙’에 대해서 보기로 합시다.


3)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

(1) 지폐, 태환은행권, 불환은행권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개념들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대개 많건 적건 간에 지금 호주머니에 얼마간의 ‘한국은행권’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우리가 ‘동전’이라고 부르는 주화(鑄貨) 말고, 종이로 만든 1000원짜리, 5000원짜리, 10000원짜리 같은 종이로 만든 것 말입니다. ‘은행권’ 할 때 ‘권’(券) 자가 ‘엄쪽 권’이라고 해서 어음을 두 쪽으로 나눈 한 쪽이라는 뜻이고, 그 뜻이 발전해서 ‘종이에 쓴 증서’를 의미하거든요.

아무튼 한국은행에서는 ‘한국은행권’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로 만든 돈과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자리, 그리고 500원짜리 등의 동전을 발행하는데, 어디까지나 종이로 만든 ‘은행권’이 주된 것, 즉 본위화폐(本位貨幣)고, 동전은 소액의 거래를 위한 보조화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문제로 삼는 것도 바로 그 본위화폐인 ‘한국은행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그러한 ‘한국은행권’을 가리켜서 ‘한국은행권’ 혹은 ‘은행권’이라고 지칭하는 사람 있나요? 물론 어쩌다 가끔은 필요에 따라서 그렇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지폐’라고 해버리고 말지요? ‘종이로 만들어진 돈’이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은행권 = 지폐’가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현실의 생활에서 그렇게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써서 크게 불편한 점도 잘못된 점도 없고 말입니다.

그런데 본래 엄밀한 의미에서는 지폐와 은행권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미 차이를 명확히 할 수 있어야만 화폐와 경제 현상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 의미 차이를 명확히 하도록 합시다.


<은행권과 태환은행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중앙은행만이 ‘은행권’을 발행합니다. 그런데 본래 은행권을 발행하는 은행은 그렇게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은행이 아니었고, 우리가 오늘날 시중은행 혹은 상업은행이라고 말하는 것들과 같은 기업으로서의 은행이었고, 또 그 은행권이 어떤 특정 은행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발행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법률에 의해서 ‘은행’으로서 인정된 금융기관은 모두 자신의 ‘자기앞수표’를 발행하듯이 본래 은행권도 그렇게 발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발행되었다’니, 그 ‘그렇게’가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는, ‘여러 은행’에서 발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인데, 그러면 그 은행들은 어떤 경우에, 혹은 어떤 조건하에 그것을 발행하고 발행할 수 있을까요?

다시 은행의 ‘자기앞수표’로 와 봅시다. 그러면 그들 은행은 어떤 경우에, 어떤 조건하에 ‘자기앞수표’를 발행하나요? 시쳇말로는 “자기앞수표를 끊나요”라고 하지요?

어떤 사람이 100만 원, 혹은 1000만 원, 혹은 1억 원 같은 거액의 돈을 누구와 주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럴려면 우선 그 돈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을 어디선가 만나야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돈의 최고 고액권은 10000원짜리란 말입니다. 그러나 100만 원만 돼도 한 묶음인데, 이게 천만 원, 억, 이렇게 되면 얼마나 부피도 크고 그리하여 들고 다니고 보관하기도 불편하겠어요? 또 ‘날치기․퍽치기․절도․강도 해가라’ 하고 광고하는 것과 같고요. 그러니 사람들은 그렇게 큰 돈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금’으로 주고 받지 않지요? 간단하게 은행의 ‘자기앞수표’ 한, 두 장으로 처리하지요.

바로 그때, 그 자기앞수표인데, 이 자기앞수표는 은행으로부터 처음에 그것을 발행받은 사람이 대개 그에 해당하는 금액의 돈을 은행에 맡기고, 그 대신에 받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자기앞수표는 그 액면에 쓰여 있는 만큼의 돈을 보관하고 있다는 ‘보관증’이고, 그것을 가져와서 요구하면 그 만큼의 돈을 다시 내주겠다는 ‘일람불 약속증서’, 혹은 은행의 ‘일람불 채무증서’지요?

본래의 은행권도 바로 그런 것이었어요. 화폐로서의 금, 그것 귀하디 귀한 것이지만 금액이 커질수록 소지하기도, 주고 받기도, 보관하기도 불편하고 불안하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신용이 높은 은행에 맡기고 은행으로부터 보관증이자 일람불 채무증서로서의 어떤 증서를 받아서 그것을 소지하고, 주고 받고, 보관했던 거지요. 은행이 발행한 그 증서가 바로 은행권인 것이지요.

은행권을 발행한 은행은 당연히 그 은행권과 교환으로 본래의 화폐인 일정 분량의 금을 내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렇게 은행이 자신의 은행권과 금을 교환해주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아주 고풍스런 한자를 써서 ‘태환’(兌換)이라고 하고, 따라서 그러한 본래의 은행권을 ‘태환은행권’이라고 합니다. 혹은 그러한 태환은행권이야말로 본래의 은행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행권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요?

물론 본적이 없겠지요. 오히려 본 적이 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하지요. 왜냐구요? 1930년대 이후에는 어떤 나라에서도 그러한 은행권이 발행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혹시 아주 오래 된 집에서 살고 계신 분이 있으면, 다락 같은 데 어디 돈을 숨겨둘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 보세요. ‘이 땅’에서도 그러한 태환은행권이 유통된 적이 있어서 한, 두 장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왜 구태여 ‘이 땅’이라고 하느냐고요? 그게 일제 식민지 초기에 유통된 일본은행권이어서 ‘국내’라고 하기도 그렇고 ‘우리 나라’라고 하기에는 더더구나 이상해서지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발견될지 모를 ‘태환은행권’은 지금의 은행권 하고는 생김새부터 달라요.

요즘 은행권은, 예컨대 한국은행권을 예로 들자면, 사람이나 기타 몇 가지 문양과 그림이 있고, 일정한 금액이 쓰여 있고, ‘한국은행권’이라고 쓰여 있고, 또 ‘한국은행장’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은행장의 인’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데, 저는 한국은행장이 그 날인으로 무엇을 보증하는 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태환은행권은 달라요. 아까 여러분한테 찾아 보라고 농담했던, 과거 일본은행의 태환은행권을 예로 들면, 거기에는 여러 문양과 사람의 그림이 있는 것은 다 비슷한데, 우선 ‘일본은행권’이라는 말 대신에 ‘일본태환은행권’이라는 말이 쓰여 있고, 특히 일본은행장의 도장이 찍여 있는 곳 앞에는, 대략 얘기하면, “이 은행권을 가지고 와서 요구할 경우에는 금 얼마와 바꿔줍니다”라는 뜻의 글이 쓰여 있지요. 그러니까 일본은행장의 날인은 그러한 태환을 보증하는 날인인 셈이지요.

자, 그러면 그렇게 화폐로서의 금의 보관증이자 일람불 채무증서로서의 태환은행권의 가치는 어떻겠어요? 아니, 그 이전에 한국은행권의 보관증이자 일람불 채무증서로서의 은행의 자기앞수표의 가치와 한국은행권의 가치의 관계는 어떻씁니까? 격렬한 공황으로 그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은행이 갑자기 도산해서 그것에 대해 지불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이 ‘휴지’가 돼버리는 아주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은행의 자기앞수표의 가치와 그것을 발행하는 담보가 되었던 한국은행권의 가치는 언제나 동일하지요? 그리고 그 동일성을 유지하는 장치가 바로 그 양자 간의 교환성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태환은행권의 가치도 바로 그것의 금과의 교환성, 경제학 용어로 ‘태환성’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에 의해서 금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은행의 자기앞수표의 가치가 같은 액면의 한국은행권의 가치와 동일한 것처럼, 태환은행권의 가치는 그것이 법률과 그 액면으로 표시하고 있는 분량의 금의 가치와 동일한 것이지요. 격렬한 공황으로 발행은행이 그것에 대해서 지불하지 못하면 그 가치가 ‘휴지’로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격렬한 공황기에 어떤 발권은행, 즉 은행권을 발행한 어떤 은행이 도산의 위기에 처하면 예금자들과 그 은행권의 소지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화폐, 즉 금을 찾아가는 바람에 그 은행의 도산을 재촉하거나 국가의 개입을 불러오곤 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태환은행권의 가치는 그렇게 그 태환성으로 인해서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금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골드스미스 노트’, 그리고 신용창조>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여러분들이 여간해서 다른 데에서는 듣기 어려운 얘기를 하나 해 볼까요? 서비스지요.

다름 아니라, 그러한 태환은행권의 효시(嚆矢)랄까, 혹은 연원(淵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은행권을 영어로는 ‘bank notes’라고 하는데, 그 연원은 ‘goldsmith notes’라는 것이었어요. ‘goldsmith’라면, 말 그대로 하면 금세공사(金細工士)인데, 우리 나라의 금은방 같은 데지요. 그러니까 화폐로서의 금을 소지하고, 주고 받고, 보관하기가 불편하고 불안하니까 그것을 금을 다루는 전문가이자 신용이 높은 금은방에 보관시키고, 그 보관증서(notes)를 화폐로서의 금을 대신해서, 그 금과 똑같은 가치로 소지․유통․보관했던 것이 ‘goldsmith notes’고, 은행권의 연원이 되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은행권의 연원은 신용이 있는 금은방의 주인이 발행한 금보관증서였던 셈이지요.

그리고 이 증서는 동시에 그 금은방의, 말하자면, ‘일람불 채무증서’이기도 하지요. 왜냐구요? 누구든 그것을 가져와서 요구하면 금은방이 거기에 기재된 일정한 양의 금을 그 증서의 소지인에게 내줘야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금은방 주인은 금을 보관하면서 그 보관한 금의 양을 어떻게 표시했겠어요? 당연히 무게로, 그러니까 ‘순금 1파운드’(약 373g)․‘순금 2파운드’, 우리 식으로 하면 ‘순금 1냥’(약 37.5g)․‘순금 2냥’ 하는 식으로 표시했겠지요. 그래서 실제로 많은 나라의 화폐명이 ‘무게 단위’로 돼 있는 것이지요. 나중에 화폐가 그 자체로서 자립하고, 또 여러 이유로 그 자신의 명목상 무게와 실제의 무게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발생하면서 무게 단위와 다른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원래는 이렇게 무게 단위가 그대로 화폐 단위로 사용되었지요.

아무튼 이렇게 신용 있는 금은방의 금 보관증으로서의 ‘골드스미스 노트’가 금을 대신해서 유통하게 되고, 그것이 신용을 잃지 않고 있다면, 이제 유통계에서는 사실상 대부분의 거래가 실물로서의 금 대신에 ‘골드스미스 노트’를 매개로 이루어지고, 상호간의 금전의 대차라든가 기타의 거래도 이제 그것, 즉 ‘골드스미스 노트’에 의해서 이루어지겠지요?

예,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 즉 이제 금 대신에 그 금의 보관증으로서의 ‘골드스미스 노트’가 유통된다는 사실은 그것을 발행하는 ‘골드스미스’, 그러니까 금은방에 이전에는 없던 엄청난 권능을 부여하게 돼요.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애초에는 아마 대개는 곧이 곧대로 고지식하게 자신이 보관하는 만큼의 금에 대해서만 보관증, 그러니까 ‘골드스미스 노트’를 발행하겠지요. 그러면 그 보관증들이 금에 대신해서 유통하고요.

물론 개중에는 어떤 사람들, 어떤 상인들은 여러 이유에서, 예컨대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금이 아니면 믿을 수 없어!’라는 금 자체에 대한 열렬한 신앙에 의해서든, 그 금은방의 신용이 통하지 않는 먼거리의 상인과의 거래를 위해서든, 혹은 그 보관증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금은방과 거래하기 때문이든, 아무튼 여러 이유에서 그 금은방에 와서 보관증을 제시하고 현물로서의 금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금을 금방 찾아가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금은방의 입장에서 경험상 보니까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금량의 대략 10 내지 15% 정도밖에는 교환해가지 않고, 나머지는 언제나 자기 수중에 남아 있다. ― 일이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영특한 상인으로서의 금은방 주인은 어떤 일을 벌이겠어요? 일의 진행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금은방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되겠지요.


나는 1,000파운드의 금을 보관하고, 1,000파운드의 보관증을 발행했는데, 그 보관증을 가지고 와서 금으로 교환해 가는 금의 양은 100 내지 150파운드밖에 안되더라. 더구나 이 분량도 언제나 나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역시 또 누군가는 금을 보관시키러 오는구나. 그래서 교환해 가는 것과 다시 보관하는 것을 함께 감안하면 나는 대략 1,000파운드의 금은 언제나 수중에 가지고 있다.

가만히 보자. 나는 실제로는 1,000파운드의 금밖에는 보관하고 있지 않지만, 만일 내가 10,000파운드의 금 보관증(goldsmith notes)를 발행해서 9,000파운드로 이자놀이를 한다면?

대략 10%만 교환을 요구해온다면, 내가 보관한 금으로 ‘신용을 잃지 않고’ 교환에 응할 수 있지. 그런데 만일 15%가 교환을 요구한다면? 안되지. 500파운드가 부족하고, 그러면 ‘신용’뿐만 아니라 모든 걸 다 잃고 파산하게 되니까! 그래, 욕심을 좀 줄여서 대략 6,600파운드의 보관증을 발행해서 5,600파운드만큼만 이자놀이를 하자. 대략 15% 정도가 교환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신용’을 잃지 않고 모두 다 교환에 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가만 있자. 혹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교환을 요구해온다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알아?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했지? 그래, 안전이 최고야! 보관증을 5,000파운드어치만 발행하고, 4,000파운드만큼 돈놀이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그러면, 내가 보관하고 있는 금이 1,000파운드니까 충분해!

자, 이렇게 해서 우리의 금은방 주인은 사실은 1,000파운드의 금만 보관하고 있는데, 상인으로서의 영특한 교지(巧智)를 발휘해서 5,000파운드의 ‘골드스미스 노트’, 즉 금 보관증을 발행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그 자신은 4,000파운드의 금에 해당하는 ‘자금’을 대부하여 이자 소득을 올리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4,000파운드의 유통수단이 증대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 금은방 주인에게는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4배나 많은 4,000파운드라는 가상의 금을 창조하는 권능이 생겼지요? 그에게는 정말 신천지가 열렸지요?

그런데 금은방의 주인이 그렇게 가상의 가치 4,000파운드를 창조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 바로 ‘신용창조’지요? 은행의 주요 권능으로서의 그 ‘신용창조’ 말입니다.

이제 금은방의 주인 혹은 은행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금을 보관하는 것이 보다 많은 이득을 올리는 조건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제 금은방 주인이나 은행은 금을 보관시키는 사람에게서 보관료를 받는 대신에 거꾸로 금을 보관시켜 주는 데에 대해서 보상을 하면서, 즉 이자를 지불하면서 금의 보관을 유치하게 되겠지요? 1,000파운드의 금이 아니라 2,000파운드의 금을 보관하게 되면 4,000파운드 대신에 8,000파운드의 ‘신용’을 창조할 수 있고, 그만큼 더 많은 이자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금과 대출이라는 기본적 은행업무가 확립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까 5,000파운드나 10,000파운드의 ‘골드스미스 노트’를 발행하면서, 그 전액에 대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20%에 해당하는 1,000파운드, 혹은 2,000파운드에 대해서만 ‘현금’을 준비했지요. ― 그것이 바로 ‘지불준비금’이고, 그 20%가 ‘지불준비율’이지요.

이 지불준비율을 높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2,000파운드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지불준비율이 20% 대신에 50%라고 하면, 이제 ‘골드스미스 노트’를, 따라서 은행의 경우 ‘은행권’을 10,000파운드 대신에 4,000파운드 어치밖에 발행할 수 없겠지요?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서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은행이 그 보유 현금에 대해서 대출을 할 수 있는 양을 제한하고 조절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이지요. 가끔 ‘지불준비율’을 올리느니, 내리느니 하는 얘기. 신문에서 한, 두 번은 들어 본 얘기지요?

<지폐>

자, 아무튼 이렇게 보면, 본래의 은행권, 그러니까 태환은행권은, 그것이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중앙은행에 의해서 발행되든, 사적인 자본으로서의 상업은행에 의해서 발행되든, 그리고 실제로 금을 보관받고 발행되는 것이든, 아니면 ‘신용창조’에 의해서 그 금액에 해당하는 금이 보관되지 않고 발행되는 것이든, 그것들은 모두 그 발행은행이 금과의 교환, 즉 태환을 보증하면서 발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그것의 화폐로서의 유통근거가 있고, 그것의 가치는 그것이 액면으로 표시하고 있는 금량의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은행제도에서 보면, 각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그 발행은행이 한국은행권과의 교환을 보증하기 때문에 유통되고, 또 그러한 한에서 그 가치가 같은 액면의 한국은행권의 가치와 동일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런데 일단 이렇게 본래의 화페인 실제의 금 대신에 다른 대체물, 여기서 보면 일정한 양식을 갖춘 종이 쪽지로서의 ‘골드스미스 노트’나 은행권이 유통하게 되면, 그것은 다시 새로운 변신의 계기로 되지요. 금은방이나 은행이 그 경제적 실력을 근거로 신용을 획득하고 ‘골드스미스 노트’나 은행권을 발행했다면, 이제 국가가 그 주권을 근거로 신용을 주장하고 ‘국가지폐’를 발행하게 되지요. 국가가 그 주권에 기초하여 이제 자신이 만들어 내는 ‘종이돈’, 즉 지폐를 강제로 유통시키는 겁니다.

물론 이 지폐에도 이 지폐가 발행되기 이전에 법률에 의해서 정해져 있던 순도와 금량의 이름으로서의 일정한 액면의 화폐명이 인쇄되고, 그 화폐명이 가리키는 금량의 가치로서 유통될 것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화폐법이 ‘금 1g을 1원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 금 10g은 10원이 되고, 그리하여 금 10g을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에서 10원의 은행권을 받아서 금 10g 대신에 유통시킬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가가 만들어내서 강제로 통용시키는 종이돈인 지폐에도 마찬가지로 ‘1원’이니 ‘10원’이니 하는 금액이 인쇄되어서, 그것이 금 1g이나 10g, 혹은 금화나 은행권 ‘1원’이나 ‘10원’ 대신에 유통된단 말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직 유통되고 있는 은행권이나 (국가)지폐나 그 발행 주체가 다르다는 것밖에 그다지 차이가 안 보이지요?

그런데 이 양자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본래의 은행권, 그러니까 태환은행권의 경우에는 그 발행은행이 그 태환은행권이 표시하고 있는 만큼의 금과의 교환을 보증하고 있고, 그 발행은행은 경제적으로도 법률에 의해서도 그렇게 태환해 줄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바로 그 태환성 때문에 그것은 유통되는 것이고, 그 가치가 보장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가가 만들어 내는 ‘국가지폐’, 간단히 줄여서 ‘지폐’는 전혀 달라요. 국가는 전혀 그 지폐와 그 지폐가 액면으로 표시하고 있는 양의 금과의 교환을 보증하지 않고, 따라서 그 교환요구가 있어도 그에 응하지 않거든요. 국가는 단지 그 주권에 기초하여 그 지폐에 ‘강제통용력’을 부여할 뿐입니다. 이 ‘강제통용력’ 때문에 그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한 아무도 그것이 지불수단 및 유통수단으로서, 즉 화폐로서 기능하는 것을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표시하고 있는 양만큼의 ‘태환’이 그 발행 주체인 국가에 의해서 보증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는 그 액면이 표시하고 있는 양만큼의 금의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고, 다른 사정에 의해서 결정되게 됩니다.

바로 지폐 가치를 결정하는 ‘지페 유통의 특수법칙’의 문제인데, 바로 여기에 지금 우리의 주제인 ‘인플레이션’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어요.


<불환은행권>

그런데 여기서 눈치 빠른 분은 이런 의문을 가질 거예요.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은 금과의 태환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 가치의 금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된다. 국가가 발행하는 지폐는 그 태환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는, 그것이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에 따라서 결정되고, 거기에 인플레이션의 비밀이 있다. …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문제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통화는 ‘한국은행권’처럼 은행권이 아닌가? … 아니, 그런데 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은행권들은 역시 ‘한국은행권’처럼 ‘태환은행권’이 아니지 않아? … 아니,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야?” ― 이런 의문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의문을 갖게 됐지요?

예, 정당한 의문입니다.

그런데, 시간과 지면상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그 역사적 경과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현대 국가에서는 우선 ‘은행권’의 발행을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중앙은행에 집중․독점시키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 가지 사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지금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애초엔, 물론 좀 특수한 지위와 권한을 누리고는 있었지만 아무튼 사적 자본에 의한 일종의 상업은행이었고, 당시 영국에서는 잉글랜드은행 말고도 여러 은행이 (태환)은행권을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 간의 ‘나폴레옹 전쟁’에 임해서 영국 정부는 막대한 전쟁비용이 필요했고, 그 대부분을 일단은 국채(國債)를 발행해서 조달했는데, 잉글랜드은행이 그것을 인수하는 대가로 정부는 그 은행에 은행권의 발행을 독점하도록 하는 특권을 부여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잉글랜드은행은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여정을 밟아나가게 됩니다.

아무튼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여러 이유와 사정으로 은행권의 발행을 중앙은행에 집중․독점시키고 있는데, 그들 중앙은행은 동시에 ‘국가의 은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자신이 직접 국가지폐를 발행하는 대신에 자신의 은행인 이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불환은행권’, 그러니까 국가의 은행으로서의 중앙은행이 금과의 태환을 보증하지 않는, 그리하여 사실상 과거의 국가지폐나 다름없는 ‘은행권’을 발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자신의 은행을 통해서 ‘은행권’이라는 이름과 외양(外樣)을 갖는 국가지폐를 발행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의 은행권은 비록 은행이라는 신용제도를 통해서, 주로 중앙은행의 대부에 의해서 발행되지만, 어디까지나 ‘국가지폐화된 은행권’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의 가치는 결코 금 가치와의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고, 본래의 지폐의 가치처럼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에 의존하게 됩니다.


(2)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

지금까지 공부해온 데서 알 수 있듯이, 화폐로서의 금은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로서 일정한 양의 금에는 일정한 양의 노동시간이 체화(體化)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를 갖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은행권은 그것과 금과의 태환성이 보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액면이 표시하는 양의 금의 가치를 가지고 유통합니다. 만일 그 태환성이 부정된다면, 그 은행권은 사실상 무가치한 종이 쪽지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결코 금과의 태환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사실상 무가치한 종이 쪽지인 (국가)지폐 및 지폐화한 은행권으로서의 불환은행권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 문제인데, 좀 거칠게 말하자면, 그 가치는 그 유통량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그 주권에 기초하여 지폐를 발행하여 유통시키기 이전에 이미 화폐(금)와 은행권이 존재했다는 것은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간, 예컨대 하루에 “유통하는 화폐의 총량은, 유통수단 및 지불수단의 유통속도가 주어져 있다면, 실현(판매)되어야 할 상품가격의 총액에 만기가 된 지불들의 총액을 더하고, 거기에서 상쇄되는 지불들을 빼고, 마지막으로 같은 화폐 조각이 유통수단의 기능과 지불수단의 기능을 교대로 수행하는 회수만큼의 유통액을 뺀 것과 같다”는 것도 앞에서 얘기했지요?

국가는 이러한 조건에서 통용되고 있는 화폐명을 인쇄하여 지폐를 발행했던 것입니다. 머리를 덜 아프게 하기 위해서, 화폐법상 ‘금1g = 1원’이라고 규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저 종이에 ‘1원’ 혹은 ‘10원’ 등이라고 인쇄하고 그 위에 국가가 자신의 도장을 찍어서 그것을 금 1g이나 10g의 가치로 강제 유통시킨 것이지요. 입법을 통해서 그 지폐를 이른바 ‘법정지불수단’으로 지정해서 강제통용력을 부여함으로써 말입니다.

그 지폐의 양이 일정 시기․시점에서 ‘유통 필요 화폐량’의 범위 내에 있을 때에는 그 가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폐는 법으로 정한 가치를 가지고 유통하고, 그리고 유통 필요 화폐량에 못 미치는 부분은 금(금화)이나 은행권이 보충을 하면서 상품이 유통되고, 지불이 이루어지니까 말입니다. 이때 지폐는 현실적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금을 대신해서 유통하는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그 운동은 단지 화폐 유통의 법칙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지요.2)

그런데 지폐가 유통 필요 화폐량을 초과하여 발행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지폐는 그 자체가 금과 같은 노동생산물이기 때문에 일정한 가치를 가지고 유통되는 것도 아니고, 또 금과 태환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단지 그것이 발행되지 않았더라면 유통되었어야 할 금을 대리하고 있을 뿐이고, 그리하여 그렇게 유통되었어야 할 금의 양과 그 이름으로 발행된 지폐 사이에는 대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통 필요 금량보다 많은 지폐가 발행되게 되면 이제 그 발행된 지폐의 전체 양으로써 현실적인 유통 필요 화폐량을 대리하게 되고, 그 만큼 지폐 가치는 감가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폐 유통의 특수법칙’은 “간단히 말하면, 지폐의 발행은 지폐에 의해서 상징적으로 대표되는 금(또는 은)이 현실적으로 유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양으로 제한되어야 한다”3)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폐에 의해서 상징적으로 대표되는 금(또는 은)이 현실적으로 유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양”, 즉 유통 필요 화폐량은 어떤 평균 수준의 위․아래로 끊임없이 증대․수축하는 운동을 하면서도, “어떤 주어진 한 나라에서의 유통수단의 양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최소한보다 아래로는 결코 내려가지 않기”4)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폐(불환은행권)는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최소의 유통 필요 금량 이내로 그 발행이 제한되어야 감가되지 않는다”라는 명제 말입니다.


4) 인플레이션

(1) 지폐(불환은행권) 증발에 따른 물가의 명목적 상승

“지폐의 발행은 지폐에 의해서 상징적으로 대표되는 금(또는 은)이 현실적으로 유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양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혹은, “지폐(불환은행권)는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최소의 유통 필요 금량 이내로 그 발행이 제한되어야 감가되지 않는다.” ― 이는 지폐의 가치가 감가되지 않기 위한, 따라서 지폐의 감가에 의한 명목적인 물가상승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절대적인 제한이자 조건입니다.

그런데 국가란 폭력이지 않습니까? 그 주권이 절대왕정처럼 소수의 봉건귀족에게 있든, 근대 부르주아 국가처럼 그 보다는 좀 다수인 자본가 계급에게 있든, 국가는 못할 짓이 별로 없는 폭력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소수의 왕족과 귀족의 호사․사치를 위해서든, 부르주아의 자본축적을 위한 정치경제적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든, 아무튼 자신이 필요한 자금을, 자신이 거둬들이는 세금액의 범위를 넘어서, 구속을 받지 않고 조달하려는 충동을 갖게 되고 또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국가가 일단 지폐 내지 불환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최소의 유통 필요 화폐량이라는 경제적 제한을 넘어서 그것들을 발행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역사일 뿐 아니라 지금 사실상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 경제적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통화 가치의 저락에 따른 물가의 명목적 상승, 즉 인플레이션입니다.


(2) 가격의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경

일정 분량의 금에 대해서 부여된 일정한 화폐명을 ‘가격의 도량표준’ 혹은 ‘가격의 척도’라고 합니다.

역시 머리를 덜 아프게 하기 위해서 화폐법상 그 가격의 도량표준이 ‘금 1g = 1원’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한 국가의 유통 필요 화폐량이 1억 원, 즉 금 1억 그램인데, 국가가 이 시점에서 1억 원의 지폐 혹은 불환은행권을 발행하여 유통에 투입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1억 원의 지폐가 1억 그램의 금을 대리하니까 ‘금 1g = 1원’이라는 관계가 그대로 성립하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유통 필요 화폐량이 1억2천만 원, 혹은 금 1억2천만 그램으로 증대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제 지폐 1억 원은 ‘1원 = 금 1g’의 대리하면서 유통하고, 나머지 부족분 2천만 원, 혹은 금 2천만 그램에 대해서는 금이나 태환은행권이 유통에 들어와 채우겠지요?

다시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유통 필요 화폐량이 8천만 원, 혹은 금 8천만 그램으로 수축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국가에 의해서 유통에 투입되어 있는 지폐 혹은 불환은행권은 1억 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지폐 1억 원은 유통 필요 화폐량인 금 8천만 그램의 가치를 대리하게 되고, 따라서 ‘금 8천만 그램 = 지폐 1억 원’, 따라서 ‘지폐 1원 = 1억 분(分)의 8천만 그램의 금 = 금 0.8g’이라는 관계로 되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는 이제 1원이 금 0.8g만을 대리․대표하게 되고, 따라서 ‘금 1g = 1원’이라는 화폐법상의 가격의 도량표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경제적인 도량표준은 ‘금 0.8g = 1원’으로 사실상으로 변경된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되겠어요?

역시 가장 단순한 예를 들면, 과거에 그 가격이 80원, 즉 금 80g이었던 상품의 가격은 아직도 ‘금가격’ 즉 금으로 표시한 가격은 여전히 80g이지만, 지폐(불환은행권)로 표시한 가격은 100원이 되겠지요? 이제 ‘1원 = 금 0.8g’이어서 ‘100원 = 금 80g’이니까요. 바로, 유통 필요 화폐량을 초과하여 증발된 지폐 혹은 불환은행권의 양에 비례하여 가격이 명목상 올랐지요? 금으로 표시된 가격은 여전한 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지폐 혹은 불환은행권의 남발로 그 가치가 저하하여, 즉 가격의 도량표준이 사실상 변경되고, 그리하여 물가가 명목상으로 상승하는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지요.


<가격의 도량표준의 법률적 변경과 박정희 도당의 ‘화폐 개혁’>

물가의 명목상 상승은 물론 다른 경우에도 있을 수 있어요. 여기서는 우리가 멀지 않은 현대사에서 경험했던 그 ‘반대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1961년에 박정희와 김종필 등의 도당은 쿠데타 직후에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분 하에 이른바 ‘화폐개혁’이란 것을 단행합니다. 경제학적으로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라고 하는 조치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격의 도량표준을 법률적으로 바꾸는 조치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지금까지 금 1g을 1원이라고 했던 것을 법률을 고쳐서 금 1g을 2원이라고 하면, 명목상의 가격에 어떤 변화가 오겠습니까? 지금까지 1원이었던 상품의 가격이 이제는 2원으로 ‘명목상으로’ 올라가겠지요? 그것도 전국적으로 일시에 말입니다.

5․16 이후 박정희․김종필 도당이 취한 조치는 그 전까지 100환(圜)이었던 것을 10원으로 하는 식이었습니다. 오로지 불환은행권만이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100환이라는 한국은행권이 과연 얼마만큼의 금에 붙여진 이름인지는 불분명했지만, 여하튼 그 만큼의 금에 이제는 10원이라는 화폐명을 붙이기로 법률적 조치를 취한 것이지요. 당연히 그 직전까지 예컨대 10,000환이었던 물건의 값은 이 조치 후에 1,000원으로 되었지요. 그러한 식의 명목상의 가격하락이 전국에 걸쳐서 일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만일 그 반대의 조치가 취해지면, 반대로 ‘명목상의 상승’이 전국에 걸쳐서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지금 우리는 가격의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경과 법률적 변경에 따른 물가의 명목적인 변동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의 도량표준이 사실상 변경되는 경우의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과 그것이 법률적으로 변경되어 물가가 오르는 경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먼저, 가격의 도량표준이 법률적으로 변경되는 경우에는 사실상 누구나 그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리고 그 변경된 율에 비례해서 모든 물가가 일시에 변동하지요. 예컨대, ‘금 1g = 1원’이었다가 법률적 조치에 의해서 ‘금 1g = 2원’이 되면 사실상 누구나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물가는 일시에 2배로 ‘명목적으로’ 상승하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의 임금도 당연히 2배로 ‘명목적으로’ 상승하고요.

거기에 비해서, 가격의 도량표준이 사실상 변경되는 경우, 즉 인플레이션의 경우에는 사실상 누구도 그것을 사전에는, 그리고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사후에 경험으로 느끼거나 의식적인 조사를 통해서 겨우 그 윤곽을 알 수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물가는 추가적인 지폐 혹은 불환은행권이 투입된 지점에서부터 파상적(波狀的)으로, 그러니까 잔잔한 연못이나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물결이 차례로 퍼져나가듯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차례로 오릅니다. 그리하여 필시 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나중에 오르고 말입니다. 더구나 다른 물가는 다 올랐는데도 노동자의 임금은 한사코 안 오르다가 많은 희생을 수반한 투쟁을 통해서 겨우 오르는 경우도 다반사고 말입니다.

이제 가격의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경’과 ‘법률적 변경’의 효과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가 분명해졌지요?

참고로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갑시다.

5․16쿠데타 직후에 박정희․김종필 도당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화폐 개혁’을 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과연 그것을 통해서, 그러니까 가격의 도량표준을 법률적으로 변경하여 일시에 물건의 가격들을 10분의 1로 변경시키는 조치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이 수속(收束)되겠어요? 불환은행권을 추가로 투입하게 하는 어떤 경제적 조건들을 제거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 단순히 가격을 일시에 명목적으로 낮추는 조치를 통해서는 인플레이션은 다스려지지 않지요. 그리하여, 실제로 가장 천박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까지도 “화폐 개혁은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보다 정확하게’는, “이른바 ‘화폐 개혁’이라는 조치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은 ‘실패했다’”고 평가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왜 이렇게 ‘보다 정확하게는’, ‘실패했다’는 식으로 말을 비비꼬아서 하느냐고요?

사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그 조치, 즉 이른바 ‘화폐 개혁’의 숨겨진 목적, 그러니까 그 진짜 목적이 아니었고, 그 진짜 목적은 훌륭히 달성되었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느냐고요?

그것은 바로 이승만 정권 등 구(舊) 정권과 유착되어 있던 이권 및 자금의 윤곽과 소재를 파악하여 그 낡은 유착관계를 절단하고, 새로운 권력으로서의 자신들과 새로운 유착관계를 급속히 만들어 내는 것, 그리하여 구 정치세력의 경제적․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그것을 형성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목적은 훌륭히 달성되었던 거지요.

물론 그러한 과격하고도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이권은 자신들에게 오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정경유착’이 형성되도록 되어 있었지요. 다만, 그들의 권력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 선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반드시 확실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 이를 위해서도 그들은 그러한 강압적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박정희․김종필 도당은 쿠데타와 동시에 이른바 ‘혁명공약’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그것을 국민학생들, 그러니까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외우도록 강요했는데, 그 가운데 주요한 일절의 하나가 “구악을 일소하고 …” 운운하는 것이었어요. 저도 무슨 좋은 것일 줄 알고 열심히 외우고 뽐냈어요. 정말 창피하게도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튼 그것은 바로 구 권력과의 이권 유착관계를 일소하고 그 유착관계를 자신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요. 그래서 곧바로 시정(市井)에는 “구악을 일소하고 신악(新惡)을, 그것도 더 크고 엄청나게 저지른다”는 빈정거림이 생겼지요.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다시, ‘화폐 수량설’과 관련하여>

얘기가 꽤나 옆길로 샜군요.

다시 우리 주제로 돌아오면, 아무튼 인플레이션이란 이렇게 지폐, 그러니까 현대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는 불환은행권이 유통 필요 화폐량 이상으로 투입됨으로써 그에 비례하여 물가가 명목상으로 오르는 형상입니다. 보통 ‘통화 증발’이라고도 말하고, 본질이 그러니 그 통화가 증발이 되면 될 수록 그만큼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다시 그 천박한 ‘화폐 수량설’이 고개를 쳐들어요. “봐라, 화폐가 많으면 많을수록 물가가 올라가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지폐나 불환은행권은 진짜 화폐인 금을 단지 대리하고 있을 뿐이지 진짜 화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대리관계에서 물가가 ‘명목상’ 오를 뿐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아는 대로고요.

그러니, 여기서 다시 ‘화폐 수량설’을 들이대는 것은 역시 본질은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는 천박한 짓이지요.


(3) 흥미 있는 ‘인플레이션’의 어원

참고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 한번 알아 봅시다.

요즘은 좀 덜한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엽전은 어쩔 수 없어”, “조선놈은 어쩔 수 없어” 하는 식의 자기비하가 많았어요. ‘민족성’이 어떻느니, ‘국민성’이 어떻느니 하는 등의 얘기도 모두 같은 것이고요. 친일․친미․친서구적 체질의 사대주의적 지식인들이 이 땅의 지식인 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던 탓이 크지요. 그런 소리를 입에 담는 자들은 대개 ‘강아지들’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어요.

사실 사람이나 그 행동은 조선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다 같아요. 사람의 의식이나 행동양식은 단지 사회조건에 따라서 형성되는 것이지, ‘민족성’이니 ‘국민성’이니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나 행동양식과 일본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의 그것간의 차이를 A 혹은 A'라고 하고, 100년이나 200년 전 조선 사람들의 그것과의 차이를 B라고 하면, A 혹은 A'와 B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겠어요? ‘사람들이 갈수록 서양화돼 간다’고 하지요? 그러니 B 쪽이 훨씬 더 크지 않겠어요?

‘서양화돼 가서’ 그렇다고요? 그건 사실은 잘못된 표현이예요. ‘자본주의화돼 가서’ 그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위의 ‘예’ 중에서 B를 ‘지금의 한국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양식과 100년이나 200년 전의 그들의 그것과의 차이’라고 하는 대신에, ‘지금의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양식과 500년이나 1천 년 전의 그들의 그것과의 차이’라고 해봐요. 그러면, 위 A 혹은 A'와 지금의 B 중에 어느 쪽의 차이가 더 크겠어요? 역시 B 쪽이겠지요?

그러니까 ‘민족’이나 ‘국민’의 차이가 아니라 ‘시대’의 차이, 따라서 사회적 삶의 조건의 차이가 그 차이를 규정하는 것이지요.

왜 이런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느냐고요?

가끔 가다 ‘소를 물 먹여서’ 잡는 것이 문제로 되는데, 그때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똑똑한 체하면서, “쯧쯧, 민족성은 어쩔 수 없어! 어쩌면 그렇게 …” 운운하지요? 그런 소리 들으면, 여러분도 아마 한편에서는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 거구요?

그런데 문명국가들인 서양에서 그 사회의 어떤 행동에 빗대어 생긴 말이 ‘인플레이션’이예요.

인플레이션(inflation), 그것은 여러분이 다 아는 것처럼 인플레이트(inflate)라는 동사, 그러니까 ‘무언가를 억지로 불어넣어서 무언가를 부풀린다’는 말의 명사형인데, 그 말이 본래 어디서 온 줄 알아요?

다름 아니라, 엽전이 소를 잡을 때 억지로 물을 먹여서 근대(무게)를 부풀리는 것처럼, 서양의 문명인들은 억지로 물을 먹여서 양(羊)을 잡았던 거예요. 역시 근대를 늘리기 위해서 말예요.

다시 말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본래 이렇게 서양의 문명한 악덕 상인들이 ‘억지로 물을 먹여서 양을 잡는 데’에서 온 거예요. 참으로 재미 있고 적절한 어원을 가졌지요?


(4) 물가상승률이 0%일 경우, 대개는 인플레이션이다

앞에서 제가 ‘이중으로 미친 놈 소리를 감수하겠다’고 했어요. 기억하시지요?

하나는 “물가가 오른다고 모두가 인플레이션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 문제는 충분히 해명이 돼서 결코 ‘미친 놈’이 아닌 것이 명확해졌지요?

그런데 다른 하나는 “물가상승률이 0%인 경우 모두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은 아니지만, 십중팔구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미친 놈 소리를 감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이 문제는 해명 되었나요?

‘글쎄’라고요?

사실은 이 문제도 다 해명이 되었어요. 그러나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한번 더 정리해 봅시다.

상품의 가격이란 기본적으로 무엇입니까?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금의 양으로 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거기에 입혀진 옷을 벗겨놓고 보면, 상품 A의 가격은 ‘1개의 상품 A = y량의 금’ ― 이런 식으로 표현되지요? 몇 ‘원’이니, 몇 ‘엔’이니, 몇 ‘딸라’니 하는 것들은 결국 그 ‘y량의 금’을 화폐명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고요.

그래서 우리는 간단하게 ‘1개의 상품 A = y량의 금’으로써 얘기를 계속할 수 있는데, 상품 A의 가격이 되는 금의 양은 어떻게 해서 변화합니까? 혹은 상품의 가격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서 변화합니까?

결국은 상품 A를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생산력의 변화와 금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생산력의 변화 사이의 차이에서 가격의 변화가 생긴다고 했지요. 상품 A 생산부문과 금 생산부문에서 똑같은 비율로 노동생산성이 변화하면 상품 A는 언제나 같은 양의 금으로 표현되고, 따라서 가격의 변화가 없을 것이나, 상품 A 생산부문의 노동생산성이 금 생산에서의 노동생산성의 발전 속도보다 느리다면 상품 A를 생산하는 시간에 더 많은 금을 생산할 것이니까 상품 A의 가격은 더 많은 금의 양으로 표시된다. 즉 가격이 오른다. ― 이런 식인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물론 반드시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는 보통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생산성의 발전 속도가 빨라요? 아니면, 금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그것이 빨라요?

물론 19세기 중반에 남미나 호주 같은 데에서 곡괭이질만 해도 다량의 금이 쏟아져 나오던 양질의 노천금광을 발견해서 금을 생산하는 쪽의 노동생산성이 훨씬 빨랐던 때도 역사에는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때에는 그 만큼 물가가 오르지만, 그 물가 상승은 실질적인 상승이어서 결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아시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금 쪽의 노동생산성이 보통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서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보통의 상품 쪽이 노동생산성이 보다 빨리 발전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 만큼 물가는 경향적으로 내려야 하고요. 분명 그렇지요?

그런데 물가가 내리지 않고 오른다? 이것은 분명 ‘악성’ 인플레이션이지요. 왜냐구요? 물가가 내리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자체, 즉 물가상승률이 0%인 상태가, 노동생산성의 발전 속도 차이로 가격이 내려야 할만큼 내리지 않은 ‘인플레이션 자체’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흥미 있는 통계가 있어요.

1920년대 미국은 보통 ‘금본위제’라고 부르던 시대, 정확히 말하면 딸라에 대해서 금 태환이 보장되던 시대였는데, 이때 1926년 및 27년의 도매물가지수의 평균을 100이라고 하면, 1933년 3월 말의 그것은 60에 불과했어요. 물론 1929년 10말 하순에 대공황이 폭발하여 물가가 폭락한 탓도 있지요. 하지만, 공황이 폭발하기 이전에도 도매물가지수는 꾸준히 내리고 있었어요. 호황의 막바지에서조차 말입니다.

그런데 1933년 4월 1일에 금 태환을 정지하자마자 도매물가지수는 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1933년, 34년이면 대공황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인데도 말입니다. 결국 ‘공황 구제’를 위해서 태환을 정지하고 불환은행권으로서의 딸라를 증발했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당시 미국의 도매물가지수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1933년 3월 및 4월을 저점(底點)으로 V자 곡선을 그리지요.

이제 아시겠지요?

그래서 80년대 중반 물가상승률이 대체로 0%에 머물던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것이었고, ‘한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을 보이던 한국은 사실은 요즈음보다도 심한 악성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을 전두환 정권과 그 나팔수들은 “인플레를 잡았다”고 허풍을 떨었던 것이예요. 물론, 그 이전은 그야말로 ‘초악성’ 인플레이션이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한 허풍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5) 자본주의의 위기와 ‘태환 정지’

   - 국독자의 통화제도와 인플레이션의 항상화․체제내화

그런데 제가 방금 미국에서는 1933년 4월에 ‘금 태환을 정지했다’고 했지요? 이 ‘태환 정지’는 그 유명한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제가 알기에 아마 닷새만에, 취한 주요한 조치였는데, 그는 왜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런 조치를 취했겠어요? 혹은 1930년대 이후 사실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태환 정지’ 상태에 있는데, 그러니까 이른바 ‘관리통화제’라는 불환은행권제 하에 있는데, 그건 왜 그렇겠어요?

나중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으니까 간단히만 말하자면, 193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항상적인 위기에 있기 때문에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러자니 국가가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깊숙히 개입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을 얻기 위해서지요. 1930년대 이후 현대 자본주의는 국가의 개입 없이는 존속 불가능하고, 그래서 국가가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깊숙히 개입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인 것이지요.

국가가 항상적인 위기에 개입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태환제를 유지하면서는 국가도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어요. 태환제 하에서는 태환의 요구에 응해야 하고, 그럴려면 일정 비율의 금을 그야말로 ‘준비금’으로서 보유해야 하는데, 그 금이란 게 한없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태환제를 폐기하고 돈을 찍어내는 거예요.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통화제도예요. 그것을 ‘관리통화제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난친 인플레이션의 폐해로 노동자․인민의 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인플레이션율을 조정하면서 통화를 증발시키는 제도라는 뜻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전면적인 불환제, 즉 태환정지 상태가 되면 인플레이션은 항상화되고, 체제내화되지요. 본래 태환을 정지하는 목적, 혹은 태환을 정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자체가 불환의 통화, 즉 불환은행권을 증발시켜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개입하는 것인데다가, 과연 어느 만큼의 화폐가 유통에 필요한 양인가가 본래 경험적으로 사후에 얻어지는 값이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1930년대 이후에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항상화․체제내화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시대, 그러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참,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1930년대 이후 ‘태환을 정지했다’는 것은 화폐․신용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십니까?

앞에서, 본래 은행권이란 그것을 제시하고 금과의 태환을 요구하면 그것을 발행한 은행은 그 태환에 응해야 하는 은행의 ‘일람불 채무증서’라고 했지요? 그런데 태환 정지란 그 채무의 지불 요구에, 그것을 발행한 국가가 응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지요. “내 배 째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현대 중앙은행의 태환 정지는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6) 현대의 시지포스 -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자

자, 이제 임금 문제를 정리할 시간이 됐군요.

지나칠 정도로 장황하게 ‘인플레이션’ 문제를 애기했는데, 왜 그랬겠어요?

앞에서 이른바 ‘생산성 임금제’론을 비판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각종의 부르주아적 요설(妖說)이 인플레이션과 그 원인을 은폐․왜곡하면서 노동자․서민의 목줄을 졸라오기 때문이지요.

이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지는 한 그리스 신화에 비유해서 얘기할 수 있어요.

시지포스의 신화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물론 아시겠지만, 시지포스라는 사람이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눈총을 사서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았는데, 그 형벌이란 게 커다란 바위를 산마루까지 밀어 올려놓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산마루에 다 밀어 올렸는가 싶으면 도로 굴러 내려가고, 밀어 올렸는가 싶으면 도로 굴러 내려가서, 그렇게 힘들게 밀어 올리지 않으면 안되는 형벌이 끝없이 계속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힘들고 험한 일을 끝없이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시지포스’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름 아니라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자야말로 가장 전형적이고 가장 처절한 시지포스인 거지요.

현대 자본주의에는 인플레이션이 항상화되어 있고 기구화․체제내화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임금을 갉아먹고 있지요. 그래서 ‘임투’라는, 많은 경우 적지 않은 희생을 수반하는 투쟁을 통해서 ‘인상’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회복을 시켜 놓으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그것을 끌어내리고, 그리하여 그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게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자, 노동자 계급이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임투’를 통해서 임금을 ‘인상한다’고 할 때, 대부분은 정말로 실질적으로 인상하는 게 아니라 명목적으로만 인상하는 것, 그리하여 사실은 인플레이션으로 하락한 임금을 원상회복시키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시지포스 여러분!

마지막으로, 한 분이 서면으로 이런 질문을 했더군요. “지금 구조조정 공세가 가혹한데 임금 인상 요구만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임금 인상 요구만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는 절대 없지요. 임금 인상 요구란 모순에 가득 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 위에서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조금이라도 덜 부족하게 받겠다는 요구여서, 자본주의적 모순을 지양하고 노동자 계급을 해방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이를 위해서는, 즉 자본주의적 모순을 지양하고 노동자 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고 저항하며, 그와 대결을 벌이는 길밖에는 없지요.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 그것은, 임금 인상 요구만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할 수는 절대 없지만, 또한 임금 인상 요구 투쟁 조차 제대로 벌이지 못하는 노동자․노동자 계급이면 그러한 역사적 과업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노/정/연


1) ꡔ자본론ꡕ 제1권, MEW, Bd. 23, S. 153.


2) ꡔ자본론ꡕ 제1권, MEW, Bd. 23, S. 141.


3) 같은 곳.


4) 같은 곳.


2000-09-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