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닭 세상만사/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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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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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옻닭
송은주 / 금속 노동자
어제는 애완용 개들도 몸을 사린다는 삼복 중 마지막인
말복이다. 말복을 기점으로 찜통더위가 한풀 꺾기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선조들과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과 숨 막히게 푹푹
찌는 한여름을 잘 버티기 위해 이런 복날에 고단백질인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먹으면서 여름을 잘 나기를 바란다. 지난
6월에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일을 경험했기에 술 먹고 안주삼아
떠들었더니 꽃님이 아우가 그것을 글로 쓰라고 난리다. (하여튼
이 인간 앞에서는 술 먹고 떠들면 안돼. 전에도 한 번
당했는데….)
6월. 여름도 아니고 봄도 아닌 그 어중간한 계절. 그래서 더욱더
나른하고 쉬 피곤한 계절. 남들보다 몸무게가 쬐끔(?) 더 나가는
나에게는 다가올 여름을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며
몸보신 음식을 생각나게 하고 찾게 하는 여름 준비기의
달이다.
옻닭. 나에겐 악몽이다. 지난 5년 전 6월 안산에 있는 모
자동차부품 하청업체에 취업을 했다. 의자도 없이 서서 일 하는
컨베이어 작업과 생각보다 훨씬 센 노동 강도로 힘들게 고생하고
있었다. 때마침 친구 사무실에 들렀는데 사람들이 옻닭을 먹고
국물만 남겨놓았다.
옻닭이 몸에 좋다는 말에 이것 먹고 힘 좀 내야겠다는 생각에
생각 없이 그 닭 없는 국물에 밥 말아먹고 그 다음날 그
후유증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려워서 1달 내내 정말 생고생을
하였다. 그 결과는 아니지만 병원 다니느라고 불성실한 근태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에서 옻이라는 단어는 금지어고 악몽이다.
그런데 다시 그 악몽을 되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급 3,200원. 한 달 내내 일해도 법으로 보장한다는 최저임금도
훨씬 못 미치는 56만 정도 임금을 받으면서 시흥에 있는 모
전자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전체사원 30여 명으로 사원이 적다보니 자체 식당은 없고
회사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계약한 곳이 3군데라서 입맛에
맞는 곳 아무데나 가서 식사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하루는
평상시에 잘 가지 않는 식당에서 삼계탕을 끓여준다고 사전에
예약을 받았다.
곧 여름도 다가오고 몸도 허하고, 내가 좋아하는 닭이라는
생각에 사전예약을 하고 그곳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그런데
밤부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얼굴과 몸이 가렵고 새벽에는
호흡곤란으로 한차례 쓰러졌다. 난 단순히 저녁 먹고 식중독
걸렸구나, 휴가를 내기에는 어제‘생산물량이 줄어들어 당분간
휴업할 계획이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잡지 않는다는 부장
미팅도 있고 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에 들러 식중독 약
사들고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을 하니까 과장이 와서 어제 삼계탕 드신 분 중에 몸에 이상
있는 분 나오라고 했다. 삼계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나 말고 3명이 더 있었다. 1명은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했다. 병원 가는 길에 식당 들러 확인해보니
식당주인은 삼계탕 맛 좋아지라고 엄나무 넣은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주인이 확인해 보니 주인이 엄나무를
달라고 했는데 발음이 안 좋았는지 파는 분이 옻나무를 주었다고
한다.
옻올랐구나. 순간 5년 전 1달 내내 약도 없이 고생한 악몽이
되살아나고 또 앞으로 1달 내내 고생할 생각하니 식당주인이
원망스럽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차도도 없이 매일
벅벅 긁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임금을 타보니 회사에서는
결근과 외출을 모두 월급에서 공제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났는데 위로금은 주지 못할망정 다
공제했다니 기가 막혔다. 강력히 항의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항의하면 공제한 일당은 우리들에게 돌려주겠지만, 회사는
옻닭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제공한 영세식당주인에게 청구해서
받아낼 것이다.
20명도 안되는 인원에 4,000원 짜리 점심을 제공하고 이번 일로
배보다 배꼽이 더 나간 식당 주인을 생각해보니 3,200원짜리
알바보다는 식당주인이 더 불쌍하게 보였다.
웬 쓸데없는 동정심이 생기는지, 내처지도 이해 못하는 배부른
동정심이다.
난 옻이 싫다. 악몽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 더욱이 싫다.
차라리 일주일이면 다 나을 식중독이 났지 한 달 내내 약도 없이
고생하는 옻은 한여름 나를 숨도 못 쉬게 하고 땀으로 범벅
시키는 찜통더위와 열대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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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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