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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19대 임원선거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60호
이찬희



지금현장은


대우조선 19대 임원선거 평가
- 다시 시작될 골리앗 투쟁, 옥포의 함성 -


이 찬 희/부천노동문제연구소






1. 먼땅, 거제도의 반란
골리앗 투쟁, 옥포의 함성......
대우조선은 노동운동역사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90년대 대우조선은 ‘다물단’ 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노동통제 전략의 모범(?)이 되었었다. 대우조선은 노동자에게 한편으로 성지로 기억되고 있는 반면, 90년대 이후 대우조선의 노사관계는 노동자의 힘을 빼앗고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 대우조선은 상반된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거제도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란이랄 것도 없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탄압에 맞서 대우조선 현장조직 ‘현장중심의 민주노조추진위원회’(이하 현민추)는 하청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노동조합과 타 조직에 공동투쟁을 호소했다. 1년도 안되는 신생조직의 외침은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곧 끝날 줄 알았던 현민추의 투쟁은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노무관리집단인 인력부의 테러와 협박으로 하청노동자와 현민추 회원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의연하게 버텨나갔다. 현민추의 끈질긴 투쟁은 전 노동조합 집행부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노조집행부의 가식을 벗겨낼 수 있었지만, 현민추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마침 선거시기가 왔고 현민추는 선거투쟁으로 곧바로 돌진했다.
8일간의 선거는 이렇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한켠의 쟁점으로 하면서 막이 올랐다. 11년 집권신화를 자랑하는 집행부, 말로만 하는 투쟁에 익숙한 타 조직들, 현장을 쥐고 흔들며 투쟁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노무관리집단 인력부 등 대우조선의 거대한 시스템에 1년도 안된 신생 현장조직 현민추가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2. 대우조선 19대 임원 선거투쟁
“…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자본의 공세를 뚫고 비정규직 생존권 엄호를 넘어서 대우조선 구조조정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될 대우조선 조합원의 고용보장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비정규직, 정규직을 포괄하는 진정한 산별노조건설의 초석을 놓느냐에 따라 남한의 노동운동역사는 거제도로부터 다시 쓰여질 것이다…
- 현민추 선거투쟁의 방향과 목표 중에서

7,500명의 조합원이 작업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조직원이 30명도 안되는 현민추. 처음 현민추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사람들은 1,000표를 얻으면 승리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조직원들조차도 당선을 쉽게 말하지 않았다. 독자적 후보를 채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현민추 내부는 격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민추 조직원 모두가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은 공유하고 있었다. 결국 투쟁과 선거를 분리시켜 당선을 위한 선거를 준비하기보다는 선거공간을 통해 지금의 투쟁전선을 확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우조선 조합원의 완전고용 쟁취와 비정규직의 생존권투쟁, 또한 그것을 포괄하는 진정한 산별을 위해 전국적으로 투쟁을 확대하는 것과 회사측의 현민추 탄압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또 한축으로는 노동조합의 개혁을 넘어 혁신투쟁을 제기하고자 했다. 92년 신경영전략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인 노동조합은 서서히 변해갔다. 작년의 대우그룹 구조조정 반대투쟁이나, 올해의 임단협투쟁 등에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집행부의 노력은 찾기 힘들었다.
현민추에게 선거는 전선을 확대하고자 하는 ‘진군의 나팔소리’였다.

1) 이번 선거는 투쟁세력과 침묵세력의 대결이다
현민추는 김정곤 위원장 후보를 내고 선거에 돌입했다. 선거초반부터 현민추 후보의 유민물이 조합원들에게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김정곤이냐! 무늬만 민주노조냐!’
이 선전문구는 조합원들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대우조선은 한 현장조직이 11년째 집권을 하고 있는 탓인지 선거분위기가 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앙금같이 가라앉은 곳에서도 현민추는 뜨고 있었다. 과거의 선거는 껍데기뿐인 민주와 어용의 대립이었다. 선거시기에는 민주와 어용으로 분리해 이득을 보다가 집권만 하면 투쟁을 도외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기존 노조 집행부의 모습이었다. 현민추는 이런 의미없는 말장난을 거부했다.

“이번 선거는 투쟁세력과 침묵세력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정곤이냐! 무늬만 민주노조냐!’로 표현되었고, 조합원들은 그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것은 김정곤의 배신하지 않는 투쟁선포였고 타 현장조직이 어디에 속하는지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전선은 이제 껍데기뿐인 민주와 어용이 아닌 투쟁세력과 침묵세력으로 재편되었다.

… 그러나 91년 골리앗 투쟁 이후 ‘옥포만의 함성’은 ‘옥포만의 눈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조합원의 피와 눈물은 5년 무쟁의 탑이 되어 더 많은 고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방향을 갖고 변해갔습니다. 옥포의 함성을 같이 했던 많은 활동가 동지들도 변해갔습니다. 일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자주’ ‘민주’ ‘투쟁’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이 변해가고, 활동가들도 변해간 지금 민주노조는 더 이상 존재하고 있지 않고 ‘타협과 배신’ ‘양보와 굴종’만 남아 있습니다…
- 현민추 김정곤후보 유인물

2) 투쟁만이 살길이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세제감면법이 처리되고, 대우중공업에서 법인이 분리하는 순간부터 채권단과 정부의 구조조정은 본격화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우조선 노동자의 생존권과 고용안정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직영과 하청의 비율을 5:5로 맞추기 위해 2천명의 직영인력을 감축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다. 정규직의 고용불안은 결국 외주화․하청화를 초래하고 끝내는 직영․하청 가릴 것 없이 생존권의 악화와 고용불안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이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현민추는 비정규직의 생존권 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현민추가 비정규직 생존권 투쟁에 함께 한 것은 단순히 지원을 위해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는 내일의 직영문제였다.
투쟁만이 오직 대안이라는 것을, 이제 양보는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조합원들은 감각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나이든 조합원들은 해고 1순위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고, 젊은 조합원들도 구조조정 급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우조선은 노동조합의 양보와 굴욕으로 직영인력이 3만명에서 8천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현민추는 다같이 투쟁하여 살자고 말했다. 타 조직들이 투쟁을 말했지만, 그것을 믿는 조합원은 없었다. 투쟁시기에는 최소한의 투쟁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하청의 생존권 투쟁에 있어서도 발뺌과 말만을 앞세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선거시기에만 투쟁을 외치는 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염증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기간이었지만 현민추는 외주하청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선거운동원은 적었지만 조합원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조합원 동지들은 소리없는 응답을 보내기 시작했다. 현민추를 지지한다는 것은 회사의 노무관리집단인 인력부에 찍혀 현장생활이 힘들다는 것이고, 그것은 해고 1순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김정곤 후보가 현장순회를 돌 때 악수를 하며 남 몰래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고, 운동원들을 보며 “수고한다”는 눈짓을 보내왔다. 현민추는 껍데기뿐인 민주와 어용이 존재하던 선거에 대안세력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다.

3) 회사의 노무관리 시스템이 폭로되다
… 근무분위기와 관련하여 또하나 불미스런 일로서, 지난 7월말 사내협력회사에 근무하였던 근로자 2명의 피켓시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삼호조선, 현대, 인근 삼성의 협력회사 해고자와 외부단체마저 합세한 ‘서문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서문시위는 외부인이 적극 개입함으로써 애초의 주장보다는 외부단체의 세확장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만큼, 우리 회사가 이들 외부단체에 이용당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 대우중공업 사보 ꡔ한배ꡕ 중에서

당시 집행부를 장악한 조직은 ‘반성하는 마음, 빚갚는 심정으로 확실한 투쟁을 보여주겠다’며 한표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다른 조직은 서로 인신공격을 하며 예년과 마찬가지로 진흙탕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현민추는 회사의 개입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서문시위’ 운운하는 것은 현민추를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현민추는 인력부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노무관리시스템을 고발했다.

…지금까지 대우조선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는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였다. 인력부는 총지휘자가 되어 1중대(공공연한 어용)와 2중대(무늬만 민주)를 움직였고, 진정한 민주세력이 없었기에 조합원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거대한 노무관리시스템은 상호이해가 맞물리면서 선거시기에는 각본을 짜고 일상시기에는 조합원들을 현장통제 속으로 몰아넣었다…
- 현민추 김정곤 후보 유인물 중에서

현민추 유인물은 조합원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고 이와 반대로 타 현장조직들은 동요했다. 추측은 팽배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현민추는 말했다. 또한 막바로 터져나온 모 선대본의 인력부 대의원관리 조직도는 노무관리시스템의 전모를 드러내게 했으며, 노동조합이 회사로부터 받았다는 매월 1억원과 위원장 임기동안 받은 5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함께 폭로되었다(현재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통해 진위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투쟁하는 세력을 뽑을 것인가, 회사의 노무관리 시스템에 불과한 침묵하는 세력에 표를 찍을 것인가! 조합원들에게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김정곤과 현민추를 지지한다는 것은 앞으로 함께 투쟁하겠다는 약속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김정곤을 지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표소에서 김정곤의 이름 밑에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요, 진정으로 투쟁하는 민주노조를 세우겠다는 희망이요, 함께 투쟁하겠다는 굳센 결의인 것이다. 현민추와 김정곤 후보의 8일간의 선거투쟁이 막을 내리는 오늘, 이제 남은 것은 동지들의 선택이자 결단이다. 이것으로 우리의 말은 끝났고, 이제는 동지들이 대답할 차례이다.
- 현민추 김정곤 후보 유인물

현민추는 스스로 투쟁의 불씨가 되고자 하였고 이제 추억이 되어버린 옥포의 청춘과 함성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여기에 조합원 동지들은 현민추의 압승으로 대답했다.


3. 다시 시작될 골리앗 투쟁, 옥포의 함성
현민추는 조직력과 경험,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조합원들이 현민추를 선택한 이면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불안한 고용문제와 투쟁하지 않는 껍데기뿐인 민주노조에 대한 염증이 있었을 것이다. 정규직의 고용문제와 비정규직의 생존권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현민추의 주장을 조합원들도 공감했다. 따라서 투쟁하지 않는 민주노조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결론은 당연한 순서였다.
조합원들은 지난 1년 동안 정당하고 외로운 투쟁에 임한 현민추에게 70%의 압승을 안기며 지지와 기대를 표현했다. 따라서 현민추의 투쟁은 선거결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골리앗 투쟁의 영광을 되살리고 옥포의 함성을 되찾는 것! 조합원들에 대한 약속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될 것이다.

골리앗 투쟁과 5년 무쟁의 기념탑이 상존하는 대우조선의 작은 반란은 이제 신화를 낳았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현장조직 현민추는 배신하지 않는 투쟁을 말했고 조합원들의 무력감은 조용한 저항이 되어 표로 나타났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이제 거제도로부터 다시 쓰여질 것이라는 현민추의 결의는 결코 치기만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
노사협조주의와 실리적 조합주의를 혁신하는 투쟁!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을 너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굳세게 스스로를 단련하는 투쟁!
이것이 앞으로 신임 집행부가 나아갈 길이다.
산별을 앞둔 현시기, 현민추의 투쟁과 승리는 전국의 동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이상 비정규직을 내몰아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려는 근시안적인 태도와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등의 모든 노사협조주의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저항에 부딪힐 뿐이라는 것을 이번 선거가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우조선의 선거가 다만 대우조선만의 선거가 아닌 이유이고, 전국의 동지들이 거제도로부터 다시 쓰여질 노동운동의 역사에 희망을 품는 이유일 것이다. 한/노/정/연

2000-11-19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9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