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창노조 집행부의 폭력사태, “더이상 대중조직을 유린하지 말라” |
현장에서 미래를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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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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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장은
영창노조 집행부의 폭력사태,
“더이상 대중조직을 유린하지 말라”
-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을 생각한다 -
최 애 란/인천민중연합 조직부장
1. 사건의 경과
10월 12일과 13일 금속산업연맹 영창악기노동조합 이상우
집행부와 지역 단체활동가 사이에서 물리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이 글의 제목으로 달아놓은 “더이상 대중조직을
유린하지 말라”는 그 사건 이후 영창노조 이상우 집행부에서
사이버공간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이 사안은 지역에서 10여년
이상을 활동해 온 정치조직과 대중조직의 활동가들이 두 달이
되도록 첨예하게 대립하며 여전히 한 치의 진전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다.
우선 각각의 입장을 정리하여 보면, 단체는, 영창노조 전병렬
해고자는 영창자본에 의해 부당해고를 당한 자이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역단체들이 출근투쟁에 결합하는 것은 너무도
정상적인 활동임에도 민주집행부로 불리고 있는 현 집행부에
의해 폭력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10월 12일과
13일의 전후상황에 비춰 영창노조 집행부가 계획적이고
집단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 이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폭력사태에 대한 물질적인 피해보상과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우 집행부는 이러한 단체의 입장
중 어느 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는다.
영창노조 현 집행부의 입장은, 해고자 전병렬이 영창노조
현장조직 민주노동자회(이하 민노회)의 성원이고 ‘현 집행부의
출범 당시부터 집행부의 활동을 방해해 온, 반노동조합 행위를
일삼은 자’이어서 노동조합이 보호해야 하는 해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10월 13일은 영창노조 25년차 대의원선거가 있는
날인데 단체활동가들이 대의원선거 반대를 외치는 전병렬과
교감하고 그것을 위해 출근투쟁에 결합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그날의 폭력사태는, 노조집행부에 의해 영창악기 정문에서
노조사무실까지 끌려 들어가 감금과 집단폭행을 당한 영상활동가
전철원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에 폭력사태에 대한
노조집행부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상우 집행부는 여기에 덧붙여 “더 이상, 대중조직을 유린하지
말라”는 글로 단체의 노조개입을 문제삼고 있다. 단체들이
집행부와 현장조직의 갈등에 끼어들었고 그것도 집행부를
비판하고 방해만 해대는 현장조직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대중조직을 유린했다는 것이다.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은
집행부에게 맡겨두고 단체는 집행부의 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빠져있어야 한다”는 것이 영창노조 집행부가
생각하는 단체의 위상이다.
영창노조 집행부의 단체 대의원선거 개입 주장은 배경 설명이
좀더 필요할 것 같다. 25년차 대의원선거의 일정은 5일부터
9일까지가 후보 등록기간이며 13일이 선거일이었다. 그런데
후보등록 하루 전날 영창노조 대의원선거관리위원회는 민노회
성원 9명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였다. 사유는 3일 뿌려진
민노회의 홍보물이 사전선거운동으로 해석되었던 때문이고,
징계는 4일 오전 당사자의 변론기회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로
진행된 즉결처분 방식이었다. 선거관리운영규약을 살펴보면
‘선거운동기간은 후보등록부터 1, 2차 선거 전날까지’이다.
당장 민노회는 징계의 부당함을 알렸고 집행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동일한 입장과 힘으로 징계자들의 홍보물
배포를 저지시켰다. 그 상황에서 민노회 사무장은 발목부상으로
3주의 물리치료와 입원을 요하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9일
선거관리위원회는 민노회 회원 5명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추가로 박탈시켰다. 그 5명은 모두 대의원 후보들이었다.
10월 12일 전병렬 해고자는 대의원선거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현
집행부의 비민주적 노조운영을 과격하게 비판하는 홍보물을
배포할 예정이었다. 그날 아침 지역 단체들의 출근투쟁 지원이
있었다. 이 계획은 9월 영창자본에 의해 민노회 22명이
부당징계를 당하고 자본의 2차 징계를 추진할 것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대의원선거와 무관하게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것이었다.
11일 혹시나 “이상우 집행부에서 대의원선거에 신경이 곤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 단체 출근투쟁 지원을 조금 미루는
것은 어떻겠는가”라는 걱정도 있었으나 민노회 측과 대부분의
단체들은 자본의 2차 징계를 막는 것이 더 우선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고 출근투쟁 지원을 강행하였다. 다만 전병렬 해고자에게
대의원 선거에 관련된 홍보물을 아침 출근투쟁에서는 배포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고 해고자는 그 우려를
받아들여 단체들이 결합한 아침 출투에서는 배포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단체 쪽의 “폭력사태에 대한 공개사과 요구”에
영창노조 현 집행부는 “영창노조 현장조직 민노회와 집행부의
갈등에 단체가 개입하여 발생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창악기 노동조합의 역사를 4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영창악기 노동조합 이상우 위원장은 1996년 어용노조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민주노총에 가입한 명실상부한 민주집행부이다. 또한
이상우 위원장은 당시 전 집행부의 중심세력을 영입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조합원 90%이상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집행부였다. 1997년 노동법이 날치기로 개악되었을 때는 즉시
회사로부터 고용안정과 인력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1998년에는
금속산업연맹 인․부천본부의 사무장으로 코콤한세
민주노조 사수투쟁의 교섭대표로 활약하며 오랜 수배생활을
하여야 했다. 그러던 중 1998년말 영창악기가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고 1999년 1월 영창노조의 워크아웃 구조조정 특별단체협상
투쟁(이하 워크아웃 특단협 투쟁)이 시작될 즈음 이상우
위원장은 자본과 정권의 공작으로 구속되었다.
1999년 영창노조 워크아웃 특단협 투쟁에서 채권단은
노조동의서를 요구하였다. 이 시점에서 노조집행부 내
투쟁노선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동의서를 요구하는 시한, 즉
부도를 막기 위해 기한을 내에 투쟁을 조기종결해야 하기 때문에
양보안을 제출하자는 입장과 투쟁의 수위를 높여 노조요구안을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었다. 양보안을 제출하는 쪽이
협상대표를 주도한 의장단 중심이었고 후자는 상집간부들이
중심이었다. 노동조합의 요구안은 점점 수세로 몰리며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였고 악랄한 자본은 노조양보안의 99%를 거부하고
완전 백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상집간부들은 양보안 백지화를
관철시키고 이후 협상을 주도하였다. 29일 직장폐쇄투쟁은
조합원 90%에 가까운 동력을 조직하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공장점거 파업의 형태를 사수하였고 인천지역의 전선을 확보하는
주요한 투쟁이 되었다. 물론 종결된 합의안이 애초 백지화한
양보안보다 썩 나은 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돈 10원이라도
조합원들의 투쟁 속에 쟁취하였다는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영창악기 노동조합은 이상우 위원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중앙권력 집중형의 강력한 집행부였다.
감옥에 있던 이상우 위원장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조기종결을
하기 위해 양보안을 제출했던 임원진들의 입장은 이상우 위원장
중심의 입장이었다. 노조양보안 백지화에 대해 이상우 위원장은
매우 불쾌함을 표시했고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고 진행된
현장조직 민노회의 출범에 대해서 더욱 불쾌하게 여겼다. 당시
민노회의 출범 동기는 워크아웃 투쟁과정에서 자본과의 합리적인
대화노선을 선택했던 이상우 위원장에 대한 반대와
위기의식이었다. 사실 민노회의 멤버들은 위원장과 함께
현장조직을 구성할 기대는 애초 없었던 것이다.
현장조직 민노회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위원장은
감옥에서 나와 업무에 복귀했다. 그 때, 위원장의 임기는 2개월
정도 남아있었다. 위원장은 민노회 소속 상집간부들에게 민노회
활동과 상집간부활동 중 한 가지만 하라고 제기했다. 민노회
소속 상집간부들은 현장조직활동이 노동조합 간부활동과
대치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두 달 남은 임기를 열심히
마무리하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민노회 소속 상집간부들을 모두 해임시켰다.
8대 집행부 선거에 현장조직은 위원장후보 김성걸(민노회 1기
부의장), 수석부위원장 후보 박희진(민노회 1기 조직부장),
사무장 후보 전병렬(민노회 1기 사무장)로 구성된 독자후보를
출마시켜 이상우 위원장과 경선을 치렀다. 민노회는 명실상부한
영창악기 민주노조의 초대위원장이며 금속산업연맹
인․부천 본부 사무장까지 역임했고 지역
민주노조사수투쟁에 연루되어 수감생활까지 했던 이상우
위원장을(대단하다면 대단했던 영창악기 7대 집행부를) “어용과
다름없는 권위적인 비민주 집행부”로 규정하고 “참민주,
올바른 민주노조 건설”을 선거기조로 내세운다.
강한 카리스마로 7대 집행부를 이끌었던 위원장이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에게 어용 위원장으로 불려지자 이상우 후보측의 선거
대응은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였다. 민노회가 “권위적인
비민주”로 규정한 사실에 분노해 민노회에 대한 근거있는 대응
논리를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일례로, 7대 집행부 당시
상집간부였기도 하지만 투쟁의 시기여서 갈등하며 침묵했던
민노회 측은 그 동안 삭혀왔던 모든 비민주적인 사례들을
봇물터지듯 폭로하였고 그것에 반박 근거가 없었던 이상우
후보측은 민노회를 “너도 그때 같이 했으면서... 이 배신과
음모로 탄생한 분열조직아! 반드시 박살내주마!”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창노조 8대 위원장선거는 이상우 후보가 약 60%를 획득하며
당선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상우 위원장은
앞에서도 말했듯 “민노회 해산”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민노회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였다. 8대 집행부의
출범은 이미 민노회와 집행부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었다.
2000년 10월 12일, 13일 영창악기 해고자의 출근투쟁에서 발생한
이 폭력사태를 바라보며 나는 1) 민주노조 내부의 노선적 분화,
2) 민주노조의 위상, 3) 영창노조 이상우 집행부의 폭력성, 4)
대중조직과 단체의 관계 이 네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2. 민주노조 내부의 노선 분화과정에 대한 진단
인천민중연합은 영창악기 워크아웃 구조조정 특단협 투쟁의
과정과 민노회의 출범을 주시하며 “민주세력 내 필연적인
노선적 분화”의 시기로 인식하였다.
현장조직 민노회의 출범과정은 특단협 투쟁을 둘러싼
갈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자주 경험하듯이 이것은 자본의 각본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자본의 구조조정은 “경영위기, 부도 앞에
노동자의 생존권이 대항하는 투쟁의 시기”를 반드시
만들어낸다. 자본은 민주노조의 세력을 둘로 갈라놓는다. 협상과
대화의 파트너에게 합리적이라는 명분과 일정 정도의 혜택을
주는 대신 투쟁의 의지를 완강하게 지키려는 세력을 강경파라고
부르고 그들을 경영위기의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자본의
위기와 공격, 노동자 투쟁의 시기에 노선에 따른 세력분화는
어쩌면 필연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노선
분화가 서로 발전적인 관계에서 자본에 대한 공동의 대응 전선을
치는 경험이 드물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자본에 의해 합리적인 대화파트너로 승격된 세력에 의해
강경파로 몰리는 세력은 분열세력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렇듯 민주노조 세력의 노선 분화는 내부의
발전과정으로만 객관화되기보다 자본의 공격과 함께 분화되는
현장이 있다. 이런 경우 칼자루는 자본의 협상파트너로 선택되는
노조집행부가 쥐게되며 대중조직의 집행부는 그 권력을
행사하게된다. 나는 그 권력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이 자본의 구조를 무척 닮아있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우리끼리 싸워봤자 이득 보는 것은
자본이다. 그러니까 싸우지 말자. 그러니까 우리끼리 비판하지
말자!”로 결론 내리는 나태한 부류의 이야기에 동조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조 내부가, 대중조직이 자본의
권력구조를 닮아있는 이유를 말하려는 것이다.
완성된 형태의 입장과 논리가 아니라도 현장조직과 노조집행부의
각기 다른 입장이 타당한 이유도 없이 곧잘 적대적 관계로
발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본이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자본의 공격으로 인한 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노선 분화는 어느
한 쪽이 자본의 협상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자본의
협상파트너로 선택된 쪽은 다른 한 쪽에게 자본의 논리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과거 자본에게 끌려 다니던 어용집행부
시절이 아닌 바에야 명색이 자본의 합리적인 대화파트너인
그들은 어느 정도 명분과 설득력을 갖추고 나타난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이상 다른
한 쪽과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자본의 각본에
의해 대중조직의 지도부가 스스로 자본의 하위파트너로 규정되는
과정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투쟁시기 자본의 포섭력에 대한 위기의식, 또는 집행부의
개량성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발생한 다른 한 쪽도 한계가 있다.
이들은 자본이 주는 기회에만 작동한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에는 아직 준비되지 못한 상태이며 또한 자본의 공격과
다른 한쪽(대중조직 내의 권력과 주도권을 가진 쪽)의 공격도
함께 막아내야 한다.
실제로 영창악기 민노회는 출범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상적인
내부 조직역량 강화사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3/4분기 이상우 집행부는 중저가 시장공략이라는 자본의
경쟁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며 중국 피아노 반입을 받아들이고
조건부로 잔업보장을 받아내겠다는 안을 제출하였다. 중국
피아노 반입은 국내공장 축소의 교두보라고 주장해왔던 민노회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현장을 조직하였다. 그것을 이유로 2000년
9월 민노회 21명이 사측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으며 1명이
해고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상우 집행부는 민노회의
활동을 반노동조합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대의원선거권 박탈을
비롯해 현재는 조합원 징계를 추진하는 중이다. 민노회의
지도부는 회사와 집행부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매시기
상황을 이해하고 대응하기에도 이만저만 바쁜 것이 아니다.
대안은 현장조직운동 강화, 발전에서 찾아야한다. 아직은
현장조직이 충분한 준비없이 투쟁의 시기를 계기로 급박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현장과의 결합력과 일상투쟁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자신들의 내용을 일반화시키면서 거듭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장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주장을 현장의
요구와 긴밀하게 연결시켜야 한다. 그 힘으로 노동조합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집행부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내용적으로 상호발전적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 민주노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영창악기 노동조합은 96년 7대 집행부 출범부터 99년 워크아웃
특단협까지 인천지역의 선봉이었던 민주노조이며 이상우
위원장은 인천지역에서 누구보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뛰어난
활동가였다. 그리고 지금의 8대 집행부는 그 위원장이 다시
재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8대 집행부는 현장조직의 홍보물
배포를 집단적인 물리력으로 저지하고, 나아가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대의원선거에서는 15명의 조합원에 대해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박탈을 즉결처분하기도 하고 해고자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단체활동가들과의 폭력마찰까지도 불사하고
있다. 7대 집행부 시절에 비해 단사 내에서만큼은 그 지지도와
신뢰가 상대적으로 훼손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도 민주노총 내에서, 금속산업연맹 내에서는
무리없이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상급단체의 방침만큼은
훌륭하게 받아 안는 집행부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노동조합 정치방침”으로
배가시켜 완수하려 했던, 중앙의 입장에서 보면 모범적인
집행부이다. 그래서인지 민노회가 대의원선거권 박탈 당시
금속산업연맹 인․부천본부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
“집행부의 비민주적 노조운영에 대한 해석과 입장표명을
요구”했을 때 단사 내부의 문제라 하여 안건상정이 기각되었다.
즉, 민주노조의 위상은 그 집행부의 민주적인 조직운영보다
상급조직의 방침수행능력, 업무능력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조직운영보다는 집행부의 권력이
강화되어야 하며 그 핵심에는 당연히 위원장이 있어야
효율적이다. 더욱이 지도부 방침에 대한 비판의식과 토론활동은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거꾸로 투쟁시기에
위원장이 모든 책임과 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차례 투쟁이 끝나면 그 자리에는 만신창이가 된
위원장이 남는다는 것이다. 중앙방침에 대한 수행능력,
업무능력은 민주노조운동발전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위상이며
평가기준이다.
4. 이상우집행부의 폭력성은 대중조직 일반에 잠재되어있다
이번 영창악기 집행부와 단체활동가의 물리적 폭력사태는
민주노조운동 사상 초유의 폭력사태라는 것뿐만 아니라 폭력의
정도에 있어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앞서 나는 영창노조 8대 집행부 선거당시 이상우 후보측의
분노는 “어용과 다름없는 비민주와 권위주의적인 집행부”라는
표현보다 그 근거에 대한 대응논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상우 집행부가 민노회에
대해 “너도 그때 같이 했으면서... 이 배신과 음모로 탄생한
분열조직아! 반드시 박살내주마!”라는 표현을 아직까지도
사용한다는 사실을 주시하였다.
만약 민노회가 선거 당시 폭로한 사실들에 대해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상황을 진정시켰다면 이상우 후보는 훨씬 더 많은
표를 얻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반박 이전에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을 인정해야 그 뒤의 논리들이
설득력을 가진다. 이상우 후보는 당시 민노회가 폭로한 사실들에
대해 축소하거나 본질을 회피하거나 물고 늘어지며 화부터 냈다.
그 분노는 8대 집행부의 물리적인 집단 폭력의 성격을 띠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 질주하였다. 그리고 이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달려온 상태이다.
이상우 집행부는 그 폭력성을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다. 항상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보다 폭력을 행사하게 한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민노회의 경우도 그러했고 단체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번 단체활동가의 경우는 단체개입이 그 폭력의
이유가 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의 중재로 2달이 지나가고 있으나 상황은 진전된
것이 없고 현재 법적인 민․형사상의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이 멀리 가면 갈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다는 것을 얼마나 더 경험해야
하는가.
그런데 영창노조 집행부의 폭력성은 단사의 특수성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집행부 권력 중심의 권위주의가 문제라고 본다.
인천지역은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4기 지도부 출범 직후부터
조봉호 국장 해임건, 4기 지도부의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방식에 대한 문화담당자 연석회의 비판성명 등 대중조직의
민주적인 운영을 둘러싸고 전반적인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2000년 3월부터 시작된 조봉호 국장 해임은 현재 조봉호 국장의
지역본부 거점농성으로 확대되었고 문화담당자 연석회의의 4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인천지역의 13회 노동문화제를 따로따로
치르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중조직의
모습은 여전히 집행부 권력 중심의 폭력성과 권위적인 모습이
그대로 잠재되어있다. 따라서 지도부의 관료화와 권위에 맞선
활동가 스스로의 해결방식 또한 보다 풍부해져야 한다. 현재의
방식은 폭로와 당사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으로 국한되어
그들만의 별난 세력으로 고립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문제는 민주노조의 위상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관료화, 권위주의, 자본의 논리와
싸워야한다. 그것은 폭로와 처벌을 뛰어넘는 본질적인
문제제기이자, 올바른 접근이다.
5. 대중조직과 단체의 관계
이번 영창노조 집행부의 주장을 지켜보며 단체활동에 대한
대중조직의 인식에 더 큰 문제를 느꼈다. 인천지역은 과거 어느
지역보다도 대중조직에 대한 단체의 개입이 활발했고 그
영향력도 막강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96년 이후 활동을
통해 내가 경험한 인천의 단체위상은 정말 하찮은 것이다.
단체는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대중조직에게,
특히 집행부에게는 기피의 대상이며, 정치적 태도나 성향보다는
대중조직의 요구에 헌신적으로 부응하는 노력만 요구된다.
그리고 대중조직에 대한 정치적 사심(?)이 없어야 한다.
인천지역에서 단체가 주관하는 정치학교나 교육 프로그램을
조합원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배치했다간 실패할 확률이
크다.
인천지역의 민주노조운동을 생각해 보자.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운동의 한 부분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단체가
민주노조운동을 하지 않으면 왜 있어야 하는가? “과거
단체활동이 대중조직을 찢어놓고 무책임하게 떠났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 게다가
이러한 인천지역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정당한가?
민주노조운동 내에 비판의식과 내용적 토론이 사장되면 될수록
단체의 위상은 격하될 수밖에 없다. 과거 단체의 개입이
노조운동을 얼마나 풍부하게 발전시켜 왔는지 그 긍정성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실무력과
정책생산의 능력은 자유로운 교감 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노조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단체의 위상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또한 대중과의 직접적인 결합이 소멸되면서 단체의 정책
생산능력도 소멸되고 있다. 단체도 대중조직을 조직화
대상이기보다 사업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조직하기보다 사업의 효율성을 따져 집행부와
사업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격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체는
대중조직의 선거시기에나 필요할 뿐이다. 과거 단체는
대중조직의 정책과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그것은 단체가 대중조직과 적극적으로 결합할 때만이
가능하다.
나는 영창악기의 현장조직과 집행부의 분리가 노선 분화가
아니라 “단체가 개입해서 그렇게 찢어놓았다”는 황당하고
괴이한 소리를 듣는다. 인천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조직이 3~4년이고 5~6년 수준인데 이런 조직도 그 뿌리는
지역에서 10년이 넘었다. 지역운동을 10년 넘게 한 정치조직들이
개입해서 분화되었다면 최소한 서로 죽고 죽여야 살아남는
관계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핵심이라고
자임하는 대중조직의 활동가들이 정치조직을 얘기할 때마다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 절하시키는 것을 듣는 것도 무척 괴로운
일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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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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