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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와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김세균

회고와 전망


작년 12월 2일 한노정연이 마지막 총회를 열고 총회 결의를 통해 문을 닫았다. 1995년 7월 15일 창립했으니 창립한 지 근 11년 6개월 만에 해산한 것이다.
한노정연은 내가 초대 소장이 된 이래 근 7년간 소장 직을 맡았고, 소장 직을 그만 둔 이후에도 이사장직을 맡아온 연구소이다. 게다가 내가 89년 3월 대학 전임교수가 된 이후 대학 외부에서 행한 활동 중 가장 많은 애정을 쏟고 심열을 기울여 참여해 온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노정연이 정식 출범하기 전 준비모임 형태로 근 2년간 활동해 온 사실에 비춰본다면 나와 한노정연과의 인연은 그 초기 출범 준비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겠다. 그런 한노정연의 해산을 위한 마지막 총회의 사회를 내가 맡았다. 그러니 한노정연의 해산은 내게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한노정연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한노정연 출범을 위해 활동해 온 몇몇 창립멤버들(박성인, 김혜란, 이은숙 등)이 내 집을 찾아와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소를 창립하려고 하는데 소장 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82년에 독일로 유학 가 88년에 돌아왔고, 대학교수가 된 이후에는 민교협의 회원으로 활동한 것 외에는 주로 ‘글쓰기’ 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를 찾아온 그들이 이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전혀 몰랐었다. 그들이 나를 찾아와 소장 직을 맡아달라고 한 것은 아마도 나의 글을 통해 내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형태의 연구소 창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대화를 나누고 보니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바가 있어 그들의 제의를 선뜻 수락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노정연이 출범한 이후 한노정연과 연관된 활동이 나의 대외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노정연이 그 창립 목적에 상응하는 활동을 하는 조직이 되도록 나 역시 참으로 많은 열성과 정성을 쏟았다. 그러다가 소장 직을 3번째 맡고 난 이후부터는 내가 직접 챙겨야 하는 다른 중요한 일들도 생기고 해서 연구소 일은 주로 부소장 등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이후 연구소는 채만수 소장체제로 재편되었는데, 탄핵문제로 인한 논쟁이 발단이 되어 연구소가 박성인 소장체제로 바뀐 데 이어 채만수씨와 그를 따르는 일단의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나는 좌파들의 ‘차이를 넘는 연대’를 적극 제창하고 있을 때라 그 사건이 내게 준 충격은 매우 컸다. 그러나 그 사태가 연구소 해산의 이유인 것은 아니다. 해산 결정의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한노정연 활동과 같은 연구소 활동이 변화된 지형 속에서 그 존립의 충분한 근거를 찾기 어렵게 된 데에 있다.

한노정연은 애초에 실천 활동가와 학술연구자가 함께 참여했지만 한국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에 기여한다는 ‘강한’ 실천적 지향성을 지닌 연구소로 출범했다. 자평해 보건대, 비록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노정연이 계급적 대중운동 및 계급적 좌파 정치운동의 성장-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학술연구소와는 달리 실천 지향적 연구소의 경우 연구소가 추구하는 바의 정치운동이 성장-발전하게 되면 그 운동의 직접적인 싱크 탱크 역할을 맡게 될 때에만 존립근거를 유지하게 된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계급적 좌파운동이 정치적으로 성장-발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노정연이 그 운동의 직접적인 싱크 탱크가 되기에는 많은 한계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노정연이 학술 지향적 연구소로 그 성격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로 인해 한노정연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긴 위해 ‘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노정연은 마지막 총회의 결의를 통해 ‘발전적 해체’를 명분으로 해산했다. 그러나 추후의 조직적 발전 전망을 뚜렷하게 내세우고 해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전적 해체’라기보다는 ‘발전을 위한 해체’로 규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노정연의 해산이 ‘발전을 위한 해체’가 될 여부는 전적으로 한노정연 연구원들과 회원들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행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노정연 연구원과 회원 중 학술 지향적 부분은 앞으로 ‘연구회’ 활동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 연구회가 ‘연구회다운 연구회’로 발전해 나가길, 그리고 한노정연에 참여하지 않았던 연구자들도 폭넓게 참여시키는 연구회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문제는 한노정연 연구원과 회원 중 실천 지향적 부분이 앞으로 무엇을 행할 것인가이다. 내 개인적 소견을 밝힌다면, 이들이 변혁적 계급정당의 모태가 될 좌파 연대체의 형성-발전에 기여하고, 그 좌파 연대체의 브레인으로 적극 활동해 주길 기대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연구회와 좌파 연대체 양 조직 모두에 몸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회를 잘 발전시키고, 굳건한 좌파 연대체가 형성-발전하는 데에 기여할 경우, 한노정연의 해산은 ‘발전을 위한 해체’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노정연의 해산이 ‘발전을 위한 해체’가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운동 속에서 동지로서 다시 서로 만납시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2007-01-18 19:46:58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4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