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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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한노정연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김직수

나와 한노정연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한노정연이 이제 해산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무언가 쓴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믿음과 그것을 져버리는 것의 간극은 얼마 만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껏 나를 믿고 격려해주고 기대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소중한 지면을 쓸데없는 자학으로 채우려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그만큼 남에게도 상처를 입힌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어 온 것 같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걸어온 길이 큰 원을 그려 왔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언젠가 온전히 한 바퀴를 그리고 나면, 내가 떠나온 그 자리보다 한층 높은 곳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나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는 새로운 삶을 채워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길을 걸어 나가느냐보다 그저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것들이야말로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 마주침이 또 다른 마주침들을 낳고 그것으로 세상이 가득 채워지는 것, 변화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6년 전, 그러니까 2000년 5월 한노정연과 나의 마주침은 어느 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언가 가로막기 위해 쌓은 벽이 마주침의 계기가 된 것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나는 학생회관 벽에 붙은 ‘제5기 정치경제학 비판 세미나’ 포스터를 보고 봉천동에 있던 연구소에 찾아갔다. 그렇게 1년여 간의 자본론 세미나를 끝까지 마치고 난 소감은 무엇보다 ‘이렇게 다른 삶과 다른 세상을 찾아 나가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느린 걸음이지만 내 힘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조잡한 오만과 과욕을 버리지 못해 지금에 이르기도 했지만, 내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 혹은 태도에 관한 한 한노정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과 사물들은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설산처럼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것들이었다. 물론 그 설산도 눈사태를 겪고 크레바스를 만들며 우여곡절을 겪었던 듯하다. 그 우여곡절을 잘 몰랐던 나는 그저 두려워하면서 스스로를 원망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한노정연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기뻤고, 힘이 되었다. 그래서 한노정연을 위해서라기보다 한노정연이 바라보는 것을 위해 나도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언가 할 수 있기엔 지금까지도 나는 많이 부족하고 마음도 약하다. 그렇지만 한노정연은 지난 시간 동안 나와는 달리 자신의 믿음과 사람들의 믿음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제 몫을 다 하고 이제 문을 닫지만, 한노정연이 바라보는 무엇은 아직도 빛을 발하면서 희미한 채로 남아 있다. 그런 만큼 이제 나도 조금씩이나마 무언가 해 나가고자 한다.

군대에 갔다 와서 ‘사회주의 고전읽기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는 그 희미한 무엇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병기 선생님과 송기철 선생님의 두 팀장을 거치면서 든든한 팀원들과 함께 1년을 훌쩍 넘긴 세미나에서는 사회주의 고전들을 읽으며 어렴풋하게나마 다른 삶과 다른 세상에 대한 사상들을 살펴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들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엉뚱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머나먼 우주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의 한 단편에서 두 주인공은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둘러싸고 대립한다. 서로를 억압하고 죽이는 전쟁을 거듭하며 자연을 파괴해 온 지구인을 절멸시키는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자, 새로운 세상과 인류에의 욕망이 안겨 준 상처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아 사회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 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결국 ‘지구를 지켜라’라는 퇴행적 메시지로 마무리되지만, 우리의 현실에는 여전히 이 문제를 둘러싼 욕망들의 긴장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금의 나로서는 이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중요한 문제라는 뻔한 대답과 함께, 과거의 삶이 보여준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지 않고서 현재의 욕망만을 바탕으로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앞으로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과 부딪혀 나가면서 나는 또 많은 사람과 사물들을 마주칠 것이다. 이제는 좀 더 피하지 않고 벽을 쌓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노정연과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부단히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가며 걸어가고 싶다. 나는 한노정연을 계기로 갖게 된 두 마주침을 기억한다.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은 ‘드넓은 동정호’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있는 시간’을 사는 사람이다. 특히 이 두 번째 사람은 “언젠가 우연히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면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은” 사람인데, 이를 위해 나는 나의 물음들을 차곡차곡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학생)

2007-01-18 19: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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