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10월호


국제노동
 
차이나홍콩의 노동운동과 최근 중국의 노동사정
 
 
이 은 숙 / 연구기획실장
 
 

이 글은 지난 9월22일부터 26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APWSL(Asia Pacific Workers Solidarity Links) 동아 시아 교류 프로그램 참가 보고서이다. 이번 교류 프로그램의 대주제는 "고용정책과 노동보호 정 책"(Employment Policy and Labour Protection Policy)이며, 동아시아 5개국(홍콩, 일본4, 대만4, 마카오1, 한 국3)의 20여명이 참가하여, 4박5일 동안의 일정으로 직업 재훈련, 주택, 여성노동, 미조직노동자조직화 등의 소주제에 따라 관련 기관 및 단체를 방문하고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의 각국 노 동사정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었으며, 홍콩팀은 중국의 노동사정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준비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는 홍콩 노동운동과 중국의 최근 노동 사정에 대한 부분만을 다루었다. 짧은 기간이 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이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해준 APWSL, 그리고 홍콩의 노동운 동 동지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아울러 우리들과 동고동락하며 늦은 밤까지 통역에 수고해 준 AMRC 의 이재윤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Ⅰ. 홍콩 노동운동의 미래는?

비교적 짧은 일정이라서 홍콩의 전반적인 노동상황을 일괄하여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홍콩의 공장을 방문하지 못해 조직노동자들의 작업현장을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단 며칠 동안이나마 1980년대이래 제조업 분야의 급속한 중국이전을 동반하였던 자본의 '홍콩판 신자유주의전략'의 흔적들은 충분히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과거 공장지역이 지금은 상업구역으로 바뀌거나 소규모 가내공업으로 변해 있었고 과거 공장노동자들은 건물 청소부나 경비직, 그리고 음식점 종업원이나 가 정부 등으로 전직하였다는 사실을 옛 공단지역과 임시주거지역(홍콩판 판자촌?)을 돌아보면서 확인할 수 있 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한 홍콩팀은 약 4∼5개의 노동관련 단체로서 주로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들 이었고, 비정규직·미조직노동자 조직화에 적극적이었다.

홍콩은 1백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자치국이었다가 바로 올해 7월1일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우리가 만난 홍콩 사람들은 중국과 영국에 대한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으려 하였으며, '독립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강하고 독립적이고 열정적으로 보였지만, 우리의 경험으로 보아서는 70년대 말에서 80 년대 중반의 우리나라 노동운동처럼 이제 막 뭔가를 시작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가장 열악한 상황에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자 하고 있었다.

1. 홍콩 노동운동의 조건과 개괄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은 홍콩의 정치적 상황, 특히 2차대전후 전혀 판이한 발전 의 길을 걸어온 중국과 홍콩이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되는 '홍콩반환'이라는 상황이다. 홍콩의 노동운동은 그들의 1백년 동안의 식민지 상황과, 모국이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회주의 중국이 현재 자본 주의적 생산력 증강운동을 벌이면서 '자본주의적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들에 의해 매우 중층적으로 규정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홍콩의 노동운동은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과 함께 홍콩에서 조직된 1967년 총파업투쟁 경험을 가지 고 있는데, 주로 중국계 노조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홍콩에서 노조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는 1970년대이다. 67년 대파업 이후 많은 노동단체들이 생겨나서 노조조직결성을 지원하고 70년대 들어 노 조결성이 왕성했다고 한다. 80년대에도 아직 공장이 꽤 많아서 거의 1백만명 정도의 생산직 노동자가 존재 하였지만, 80년대 말부터 중국으로의 공장이전이 현저해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들면서 제조업 전체 노동자 가 30만명에 그칠 만큼 급속하게 공장이전이 추진되었다. 홍콩 노동자들에게 고용문제는 최대의 사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운동의 중심 축도 우리에게는 아직 좀 낯선 '직업재훈련 문제'였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직업훈련 관련 단체를 두 곳이나 방문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2. 홍콩의 노동조합 조직

홍콩에는 현재 3개의 노동조합 총연맹이 존재한다. 하나는 대만의 국민당 정권을 지지하면서 형성된 조직 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공산당 정권을 지지하면서 형성된 조직인데 이 둘은 이미 1940년대에 결성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독립노조'로서 우리가 방문한 홍콩직공 회총연맹인데, 이 조직은 지난 1990년 8월에 출범하여 자신들 스스로 "갓난이(baby)"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중국계 노조(FTU)는 제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홍콩 최대의 노조조직으로서 약 20여만명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FTU는 홍콩에서 가장 큰 직업훈련소를 자체 운영하고 있고, 치과, 한방의원, 슈퍼 등을 운영하고 있고 자체의 조직력으로 산재노동자에 대한 처리문제 등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50여 년 동안 홍콩이라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노조활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을 FTU의 노조활동을 이해하지 못하 고서는 홍콩의 노동운동을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홍콩, 영국, 그리고 대만까지 모두 에게 개방되어 있는 '국제도시' 홍콩의 매우 특수한 역사성을 이해하기 전에는 홍콩의 노동운동을 파악하기 어려울 터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모두 풀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대만계 노조세력의 활동과 조직은 "안개 속"이라고 표현되고 있었고 공식 발표로는 2만여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명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홍콩의 '유일한 독립노조'인 홍콩직공회총연맹(HKCTU)은 현재 12만명 정도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데, 주로 전문직, 서비스직, 공무원, 교통운수 노동자가 중심이고 생산직 노동자는 매우 적다고 한다. HKCTU는 자신들의 가장 중심적인 활동을 조직화와 교육이라고 설명하였다. HKCTU에는 현재 42개 산하 노조가 가입돼 있고 직종·기업별·지역 노조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부나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그 때문에 홍콩에서 매우 급진적인 노조로 간주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 은 자신들이 '반공노조'라고 밝혀 중국공산당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현재의 중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홍콩에 대한 입장도 복선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는 자본주의 홍콩을 접수 한 사회주의 중국의 커다란 통치딜레마에 속하는 영역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이들은, 반환된 홍콩 자치정권의 지배층이 홍콩의 최대부호라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 의 중국이전에 수반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협에 대해 국가적 대책이 소홀하다는 불만이 커 보였다.

하여튼 홍콩의 노동운동은 현재 너무나도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독립노조들의 '독립적 입장'이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렇게 복잡한 홍콩의 특수성으로부터 현존의 중국정부나 대만정부 어느 쪽 휘하에도 들어가지 않고 정권과 자본에 대해 자주적으로 운동하겠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중국정부 에 의해 반체제노조로 간주되고 있다고 자신들의 위상을 빗대어 설명했다. HKCTU는 이러한 자신들의 정 치적 입장 때문에 노조활동에 어려움이 존재하며, 더군다나 홍콩반환에 따라 중국정부를 두려워하는 노조들 과 노동자들은 가입을 꺼려하거나 탈퇴하는 노조도 더러 있다고 했다.

3. 독립적 노조의 조직화 사업 사례

노조조직화 사업에 관한 세 가지 사례가 발표되었다. 하나는 '의류산업·사무직·도소매업 노동자연맹'의 사례이다. 이 조직은 85년 12월 결성되어, 초기에는 의류산업 노조였다고 한다. 당시 의류산업은 홍콩의 최 대산업으로서 번성기에는 30여만명의 노동자가 종사하였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면 서 95년 통계로 10만여명으로 대폭 감소하였고 현재는 7∼8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조는 95년 에 조직규약을 바꾸어 사무직 노동자 조직화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홍콩의 현행 노동법제 하에서는 동일 산업 이외의 다른 산업 노동자는 조직화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과거에는 의류노동자 이외의 노동 자 조직화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이들이 모두 의류산업 관련 노동자들이다"라고 주장하여 지금은 한 조직으로 조직화가 가능해졌다. 현재 3,682명의 조합원을 아우르고 있는 HKCTU의 세 번째 큰 조직(가장 큰 조직은 61,200명의 홍콩교직원협회, 두 번째는 8,000명의 홍콩교통운수업노동자연합회)이다. 이 노조 조합원의 1인당 연간 조합비는 120 홍콩달러(약 120,000원).

또 다른 사례는 경비직 노동자 조직 사례이다. 현재 홍콩에는 10만여명 이상이 건물 수위직에 종사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를 위한 조직이 없었지만, 96년 5월 경비원노조를 결성하였다. 수위는 보통 용역 고용형 태이고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조직 대상 노동자들은 15시간, 20시간 일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은 12시간 근 무하고 평균 6,000 홍콩달러(600,000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교섭상대를 고용하는 모 회사(대부분 여러 개의 금융회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로 하고, 교섭시에는 8시간 노동제와 임금인상을 요구 한다고 했다. 이 노조는 직종별 노조이지만 대규모 경비 고용 업체의 경우에는 기업별로 조직하는 작업도 병 행하고 있고, 또한 지역별 조직확대 사업도 중시하고 있다.

다른 또 하나의 사례는 공공부문 노조. 여기에서는 노동기본권이 지켜지고 있고 따라서 노조에 참여할 시 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홍콩에서는 공무원도 노조결성권이 있었다.

홍콩에서는 각기 다른 총연합 단체간의 연대활동이 거의 없다. 독립노조(HKCTU)의 경우 홍콩내 단체 (NGO=비정부민간단체)들과 지속적인 교류관계를 가지고 있다. 주요 연대 단체들은 모두 여성문제를 다루 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노조에서 여성문제를 도외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교류가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또한 NGO와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는 노조조직체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사안별로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국계 노총이나 대만계 노조를 방문하거나 그들과 토의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홍콩의 노동운동 전반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다. 1980년대 후반이래 급격하게 진행중인 중국으로의 공장이전에 따라 홍콩내 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파트타이머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이 변화된 상황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4. 홍콩 노동운동의 복잡성

홍콩 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거의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홍콩반환 1년 전에 총독부 입법회의에서 그전까지로 보아 '전례없이 민주적인' 노동법을 통과시켰지만, 물러가는 영국정부의 저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중국정부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반환 이후 첫 번째로 소집된 입법회의에서 그 법을 동결시켰다고 한다.

홍콩의 노동시장은 한껏 유연화되어 있었고, 이렇다 할 노동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홍콩의 노동시간은 주 18시간 이상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하지만 사용자들이 그러한 정부방침을 피해갈 수단이 무궁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5. '중국'이라는 나라 … 그리고 홍콩 노동운동

모국은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지만 지배친권은 자본주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영국에게 주어져 자본주의 적 발전의 길을 1백년 동안 걸어온 홍콩의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질적으로 이렇다 할 노조활동을 전개해오지 못한 대만계 노조를 논외로 할 때 50년 동안 홍콩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는 중국계 노동조합운동은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홍콩의 특수성 속에서 사회주 의 모국을 갖고 있지만 오랜 식민통치기간에다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온 홍콩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과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면서 운동해왔다고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관계/노자관계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1차적인 역할은 노동자들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인 생존권 확보(특히 직업안정성 문제와 임금 및 노동조건 향상)를 위한 투 쟁이 될 것이다. 중국을 사회주의라고 간주할지라도 중국에 노자관계가 있는 이상은 노조의 활동이 지향해 할 것은 근본적으로 노자관계의 지양에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중국의 경제개방정책이 노자관계의 확대재생산 방향을 취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그 시정을 촉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총공회(중국노조총연합)는 그러한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힘에 근거하여 운동한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홍콩의 독립노조(홍콩직공회총연맹 HKCTU)와 중국계 총연맹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어쩌면 '사회주의 하에서의 노동조합'과 '자본주의하에서 의 노동조합'의 차이일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회주의사회는 자본관계가 지양된 사회인 가 아닌가?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로 보아야 한다면 중국에는 자본관계가 없는가? 분명히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인가? 중국을 '국가자본주의'로 보아야 할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6. 홍콩 노동운동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홍콩에서는, 중국정부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와 하등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독립적 노동운동가들은 홍콩내의 중국계 노조와 중국의 총공회 뿐만 아니라 대만계 노조를 정부의 그늘에 있는 '황색노조'로 보고 있었다. '독립노조'의 활동이 갖는 의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이들의 미래가 현재의 홍콩 사회의 진보를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홍콩의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아직 이제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이들이 짊어질 과제는 엄청난 것처럼 보 이는데 이들의 어깨는 아직 조막만 하다는 느낌을 또한 받았다.

홍콩의 노동운동은,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현실(엄청나게 유연화된 노동시장, 그 때문에 엄청나게 구직난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생활) 측면에서 볼 때는 우리보다 15년 이상 먼저 자본의 유연화 공세를 받았으면서도 30여년간 전면적 저항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투쟁과 조직이 발전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다른 한편으로 '노자관계'에 관한 계급적 인식과 자각의 수준은 아주 초보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중국 정부에 대 한 인식에서도 매우 파편적인 측면을 볼 수 있었는데, 중국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배경에는 천안문사태 에 대한 충격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홍콩에서 중국정부를 엄청나게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것으로 각인시킨 것 같았다.

여하튼 만일 홍콩사회의 진보를 노동자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면, 이제 막 생겨난 "갓난 노조"로서의 자 생적인 '독립노조' 운동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생성을 극복할 과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계급적 자각 을 조직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경제특구인 쉔젠 지역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4대 원칙은 나라의 근본, 개혁·개방 정책은 강국의 길"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중국은 홍콩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중국 노동자 들의 계급적 각성과 투쟁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과연 '나라의 근본인 4대원칙'과 '개 혁·개방'간의 모순에 대해 중국정부는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경제특구의 한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출근카드 에는 일요일에도 근무하고, 매일 10시간 정도씩 작업한 흔적이 찍혀 있었다. 홍콩은 중국에게 그 자체가 경 제특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부호(富豪)가 유일한 권력자"라고 하는 홍콩에서 노동자들은 혼란스러움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단 며칠 동안이지만 매우 진지하고 훌륭한 삶의 모습과 생각을 보여 주었던 홍콩의 한 여성 노동운동가의 고민은 한없이 깊을 것만 같았다(1997.10.9).

 
Ⅱ. 최근 중국의 노동사정

1. 중국의 노동법

1) 중국 노동법의 전개과정

지난 45년 동안 정식화된 노동법은 없었고, 정부의 방침만 있었다. 1994년에 처음으로 법률안이 만들어 져 인민대회를 통과하였다. 중국 노동법의 체계는 하나의 큰 법률로서 단일 노동법 아래에 작은 법들(공장 법, 여성관련법, 단체교섭법 등)이 포함되어 있는 체계이다.

2) 중국 노동법의 주요 문제

(1) 노동보장법(labour insurance laws)이 빠져 있다는 점 : 그전에는 대부분 국유기업이었기 때문에 주택 등 복지문제가 모두 기업 차원에서 제공되어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에서도 공 장 휴폐업이 발생하고 있고 소규모 공장이 많으며, 또한 사유기업도 많아서 고용불안이 심각하기 때문에 노 동보장법이 있어야 된다. 지금도 광동성 등, 성이나 도시에서는 딴웨이(單位)별로 사회보장을 해주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제공). 그러나 농촌이나 국영기업이 아닌 곳은 그러한 딴웨이 사회보장이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중국에서 딴웨이 사회보장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보장에서 제 외되고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외국 다국적기업이라든지 합작기업, 사기업, 농촌지역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2) 자유로운 노조결성권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 : 중국에서는 1공장 1노조가 원칙이다. 또 노조결 성시 상급노조로부터의 승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식적인 노조(총공회) 이외의 노조결성은 거의 불가능하 다. 유일한 단일 노총으로서 중국총공회가 있고 그 아래 성, 도시별로 본부가 있으며, 그 조직 아래에 공장 별 노조들이 있다.

<참고> 중국의 노조체계
중국총공회(ACFTU :
All China Federation Trade Union) 
도시
공장
              
(3) 파업권의 문제 : 1960년대 문화혁명기부터 1982년까지는 파업권이 있었으나, 1982년 "베이징의 봄" 사건 이후 파업권이 사실상 없어졌다. 이후에는 파업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와 같이 파업권 등 노동 3권이 제 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파업을 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형사처벌은 매우 중해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소한 5년형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처벌조항 때문에 노동자들의 두려움 이 커 조직화와 동원이 어렵다.

(4) 단체교섭권의 문제 : 단체교섭법(Collective bargainning law)이 있지만, 이것은 강제조항이 아니 기 때문에 기업이 안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도 가끔씩 단체교섭이 있지만, 이것은 노사간의 교섭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공장의 최고경영자대표와 부대표가 협상해서 싸인하는 식이다.

2. 중국의 노사관계

개괄

문화혁명 당시만 해도 파업하여 임금을 인상하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 나 최근 5년 동안 쟁의를 통하여 임금을 인상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중이다.

파업 이외에 샹팡(上訪)이라고 하여(일종의 항의방문), 분쟁이 일어나면 노동성 같은데 항의방문할 수 있 게 돼 있다. 예전에는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는데 요즈음에는 정부에서 5명 이상은 올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샹팡의 내용은 주로 임금체불, 관리자의 비인간적 대우, 노동법 위반 등에 대한 항 의 등이다.

국영기업에서는 샹팡을 많이 하고, 다국적기업이나 사기업의 경우 파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델타 영 역에서는 파업이 유행.

정부는, 노동조건이 너무나 열악할 경우 노사갈등이 극대화된다고 보아 열악한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유인방책을 사용하고 있다.

델타지역

델타지역의 경우, 진출기업 및 합작기업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 상황에 처해 있고, 그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파업이 많다.

파업할 경우, 기존노조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가 벽보, 유인물 작업을 하고 다른 노동자가 동참하는 경우가 대부분.

파업이 일어나면 보통 감옥행인데, 델타지역에서는 파업을 해도 노동법 위반이나 부당행위, 불공정대우가 인정되기 때문에 투옥까지는 되지 않는다. 한 경우가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는데, 지하라고 하는 지 역에서 운전기사 파업으로 교통이 마비되자 파업주동자들을 해고시켜버렸다.

국영기업

국영기업의 경우, 노동조건이 좋고 고용안정성이 보장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영기업 노동자들은 기득권을 잃을까 걱정하면서 파업을 하지 않는다.

파업에 대한 처벌 양상

개별적이고 자생적인 파업은 괜찮지만, 노조를 결성하려 하거나 소모임 활동을 할 경우는 중대사안으로 간주하여 체포당하거나 구속된다.

처벌받은 사례 : ① 쉔젠(홍콩에 인접한 중국의 경제특구)에서 야학을 운영하면서 노동법 교육을 하던 젊 은 노동자들을 경찰이 급습해서 체포 → 3년 반 동안 수감. ② 베이징에서 유명한 노동변호사가 상담하고 팜플렛, 유인물을 만들어 돌렸음 → 3년 동안 수감. ③ 어떤 단체는 기존 공회(노동조합)를 비판한 죄로 15 년형을 선고받음.

1990년 이전에는 장기수가 많았는데, 그 이후에는 국제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어 중국의 대외이미지 관리 를 위해 형량을 낮추고 있다.

중국내 독립적 노조활동

ACFTU(중국총공회)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그룹의 활동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① ACFTU 안에서 투표 등의 활동을 통하여 세력을 넓혀 나가고자 하는 방식.

② 소그룹활동을 통한 노동자 조직화.

3. 중국내 이주노동자 문제와 진출기업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중국에는 현재 약 65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주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주거권이 없고, 그 지역노동자와 동 일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생활 및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며, 관리자의 폭행도 빈발하고 있다.

기숙사는 좁은 공간에 8개의 침대가 있고, 1방에는 최고 32명이 같이 기거하기도 한다. 또한 주거공간 자 체가 허술하고 위험하다. 이들은 1주일에 7일을 꼬박 일하고 매일 10시간씩 일한다.

진출기업 문제

쉔젠(심천)은 중국 개방 이후 가장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개방 이후 첫 번째 파업도 쉔젠에서 일어났다(일본자본 산요). 쉔젠에서는 그 외에도 1994년에 파업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일본 투자기업(캐논 등)에서 이었다.

산동성 대련에는 한국기업에서 노동문제 때문에 파업이 발생하였다. 나이키신발을 생산하는 한국진출기업 이었는데, 어린이를 신발공장에 고용하고 노동자가 과로사하고 야간에 잔업수당도 없는 데 반대하여 투쟁이 있었다.

복건성의 홍콩진출기업에서는 (허술한 작업환경을 방치하여) 화재가 발생, 3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의 진출기업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쉔젠 노동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만기업의 절반 이상이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한다. 다국적기업 (TNT)에서 법위반 사례 많다.

진출기업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국제적인 연대가 필수불가결하다.

4. 참석자 토론 내용

중국의 노동문제는, 환태평양 지역의 자본의 이전에서 야기되는 문제점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에서 발생하는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고용불안 문제가 있는데, 그 직접적 피해자는 중국노동 자들이지만, 중국노동자뿐 아니라 각나라 노동상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나라 노동자들도 결국은 피해자이다. 진출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며, 경험도 공유해야 한다.

나이키 하청 다국적 진출기업(이들의 공장은 대만, 인도네시아 등등 여러 나라에 있는데)의 노동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은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공통적 문제이다. 특히 대만노동자들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중국내 진출 한국기업의 업종과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다. 한국 진출기업은 주로 동북부 산동지 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지역에서는 한국투자규모가 최대이다. 그러나 한국 자료는 별로 없다.

쉔젠지역에 여성노동자를 위한 센터를 6개월 전에 만들었다. 그런 종류의 활동은 몇 년 전에 중국에서의 독립적인 노조결성 움직임과 함께 시도되었지만 결실이 거의 없고, 독립노조로서는 난샨노조 등이 있다. 보 통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여 건강문제, 안전수칙, 노동법 안내 등의 활동을 한다.

투자지역 인터뷰에 따르면, 파업 발생시 경찰이 노동청 직원들과 같이 와서 일자리로 돌아가라고 하고, 노 동법을 위반했을 경우는 기업주에 요구해서 고치도록 한다. 하지만 만일 노조결성 문제 때문에 파업이 나면 위법이라고 체포하며, 지도자나 중간 관리자를 기업에서 키워서 감시·감찰활동을 하게 한다.

중국의 노조조직률은 국가기업·정부기업은 거의 100%이고, 민간기업·합작기업에서의 조직률은 대단히 낮고, 조직돼 있어도 관리자만 있는 황색노조이다.

중국총공회(ACFTU)는 진출기업 등에서 노조조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쉔젠의 경우 투자기업 의 90%가 조직화되어 있고, ACFTU 산하에 있지만 ACFTU가 실제로 노동자의 이익을 보장할 것인지 그 자체가 의문시된다.

중국에서 파업이 증가추세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시장개방·경제개방과 일정하게 관계가 있다. 국영기 업은 그전에 사회보장과 직업보장이 돼 있어서 저항이 적었지만, 개혁개방 이후에는 아무래도 노동조건이 저 하됨에 따라 국영기업에서도 쟁의가 증가하게 되었다. 주택문제 등이 심각해졌고, 국영기업 사유화로 실업문 제, 고용불안정성 문제가 증대하였다. 이러한 경제개방의 폐해에 대해 반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움직임들은 옛날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노동자들은 경제개방·시장개방을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직업안정성 보장과 노동조건 개선을 희망하는 것이다.

1997년의 제15차 당대회에서 국영기업 주식을 일부 배분하는 방식(Share holding responsibility System)으로 사유화하는 정책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급격한 민영 화/사유화는 나타나고 있지 않고, 50% 정도를 정부지분으로 하고 나머지를 민영화하는 방식이 나타나고 있 는데, 노동조건 악화와 직업안정성 저하가 뒤따르고 있다. 또한 국영기업의 경우 공장별로 노동자 평의회가 있어서 관리자에 대한 발언권과 승진 등에 대해서도 모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민영화 시스템이 도입 되면서 노동자들의 참여폭이 축소되고 영역이 협소화될 것으로 예상된다(1997.9.25).

한/노/정/연



전체 일정

9/22 월

10:30∼12:30 개회 및 "홍콩산업재해자권익협회"(Hong Kong Association for the Rights of Industrial Accident victims) 방문

15:00∼17:00 "홍콩여성노동자협회"(HongKong Women Workers Association) 방문

19:00∼21:30 토의 "각국 산업재해문제"

9/23 화

10:30∼12:30 임시주택지역(Kai Lok Temporary House Area YWCA CD Team) 및 동 지역 YWCA 방문

15:00∼18:00 직업재훈련기관 "S.K.H. Lady Maclehose Centre - Retraining Programme" 방문

20:00∼21:30 노동자교육단체 "勞資關係協進會"(Industrial Relations Institute) 방문 / 토의 "직업재훈련문제"

9/24 수

10:30∼12:30 노동자의 공동체 교육센터("Workers' Community Education Centre") 방문

15:00∼17:00 홍콩職工會聯盟("The Hong Kong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방문

19:30∼21:30 토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방안"

9/25 목

10:00∼11:15 "Workers in China"(주제발제 : Shek Ping Kwan, Wong Ying Yu)

11:30∼12:30 토론

14:00∼18:00 "How the Labour Law Reform affects workers?"

각국별 발제와 토론 : 한국, 대만, 마카오, 일본의 노동법 문제와 노동상황 + 필리핀

18:00∼ 저녁식사 및 campfire

9/26 금

경제특구 쉔젠 지역 공장 방문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모임(APWSL) 소개

아래는 APWSL 일본위원회 대표인

기타하타 씨가 발제한 내용임

조직

- APWSL(Asian Pacific Workers Solidarity Links)은 독립적이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노동조합과 노동활동가들의 일반대중 네트워크이다. 독 립적, 투쟁적인 노조 촉진과 상호교환을 위해 80년대에 형성되었다.

- 형성 당시에는 많은 나라들에서 노동법이나 노동자에 대해 억압적이었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 민중 차원의 조직들이 밑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APWSL은 그러한 바탕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 처음에는 Asia Culture Forum on Development가 후원하여 만들어 졌다.

-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 14개국에 회원지부가 있다.

활동

- 이번과 같은 교환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 1차 총회는 1991년 방콕에서 열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채택되었다. 노 동자교육문제, 공무원 노동자 권익문제, 베트남문제 등 10개 프로젝트가 제안 되어 채택하였다. 전임 코디네이터에 의해 모든 프로젝트가 관할된다. 3년에 1 회씩 총회를 갖는다.

- 계속적인 일련의 캠페인을 하고 있다. 1992년에서 1995년까지 성공적 캠페인의 예는, toy-campaign이라고 하여 홍콩 완구공장 노동조건에 관해 벌인 캠페인과 남아시아 아동노동 반대 캠페인 등이 있다.

- 독립노조에 관한 국제회의를 1994년에 열었다(네팔 카투만두). 이것은 네팔노총(GEFONT)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 APWSL 대표들은 UN이라든가 비정부민간단체(NGO)의 지원을 받아 인권 관련 활동을 전개한다.

- 현재 진행중인 경제개발 프로그램에 대해 반대하고 있으며, 이번에(97년 9월) 홍콩에서 열린 IMF/IBRD 연차총회 반대시위에도 참가하였다.

- 동아시아, 남아시아 등 지역별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