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DJ는 어떤 역사를 가진 인물인가? 그는 대권 4수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남한의 유구한 보수정치권 내에서 소수 정파세력 의 '보스' 노릇을 해왔다. DJ 추종세력들이 그를 과대 포장하는 이 른바 민주투쟁경력이란 것도 기실은 노동자·민중을 착취하고 탄압 하는 성격의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집권다수세력과 경쟁하는 그의 역할을 지칭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 지 소수파의 보스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고질적 지역분할 정치 구도에서 호남지역이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15대 대선에서 도 그렇듯 아직도 남한 보수세력은 지금까지 동서로 분열된 국민정 서를 볼모로 정권이란 '생선'을 놓고 DJ로 대표되는 서묘(西猫)와 집권세력의 동묘(東猫)가 경쟁하는 구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DJ는 97년 제15대 대선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 까? 그가 가까스로 30%의 '징크스'를 깨고 40%대의 지지를 얻어 승리하게 된 것은 집권다수정파인 신한국당이 한나라당과 국민신당 으로 분열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래서 DJ집권의 일등공신 은 JP나 TJ가 아니라 다수파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YS 및 이인제 와 국민신당이다. 또한 YS정권의 경제파탄 책임과 함께 국민의 경 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등장한 IMF한파도 DJ당선에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승리하게된 궁극적 요인은 지난 92년 대선 때부터 표출되었지만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재벌이 안 심하고 극우세력이 믿을 수 있는 지배계급의 정치노선을 확실하게 걸었던 데 기인한다. DJ가 검은 비자금을 받아먹었다는 한나라당의 폭로를 놓고 검찰이 수사를 보류하고 보수언론들이 더이상 문제삼 지 않았던 것은 DJ야말로 이제 그들과 한패거리라는 낙인(烙印)을 찍었다는 데 기인한다.
DJ는 지배세력들의 낙인에 충실히 보답해 왔다. DJ는 대선 전 김현철을 풀어줄 때 아무소리 하지 않았으며, 대선 후 YS를 앞세 워 전두환·노태우 일당을 풀어주었다. 또 DJ는 한보비리의 핵심인 홍인길과 그의 가신인 권노갑을 풀어주는데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 다. 이처럼 그간의 국민정서에 반하고 법치주의적 사회정의에 어긋 날 뿐만 아니라, 정권을 교체하여 YS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DJ 가 국민정서와 사회정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그야말로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을 왜 벌리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지배세력을 대표하는 DJ는 그의 사상적, 정치적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이제는 종래의 집권세력들을 끌어안 아 자신의 차기 집권기반을 다지려는 계획에 있는 것이다.
DJ가 국민의 반대여론에 혹시 부닥칠지도 모르는 그런 모험을 감행하는 데에는 그의 노련한 정치적 계산이 뒷받침되고 있다. 즉, 국민은 선거로 심판을 내리거나(대선 전) 이미 심판을 내린 이상 (대선 후) 차기정권이 들어설 때 까진 "DJ가 어떤 짓을 해도 아무 소리 못할 것"이라는 이른바 여론의 진공상태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 는 것이다. DJ는 여론의 진공상태를 재빨리 권력의 이동기라는 비 상한 상황에 맞추어 이제는 남한정세에 관한 국민의식까지도 직접 조작하고 IMF위기에 대한 국민정서까지 왜곡하는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그런 전형이 지난 1월 18일 TV 3사를 동원한 '국민과 의 TV대화' 프로그램이다.
DJ는 국민과 진실되고 올바른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 지난 TV프로그램에서 드러난 DJ는 국민이 이미 피부로 겪고 있는 경제 난을 초래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한 솔직한 진단과 국민 대다수 를 위한 소수지배계층의 희생을 포함한 올바른 처방을 제시하지 않 았다. 자본의 냉엄한 이익논리만이 지배적인 세계경제 현실에서 남 한의 IMF 조기졸업 '가설'을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내세운 DJ는 결국 국민 각자가 국가 위기해소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희생 할 수밖에 없다는 60년대 이래의 구태의연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를 유감없이 선동하는 '데마고그'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YS에 실망 한 국민들이 DJ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YS집권 초기의 '신한국 창조' 등과 같은 허황된 대(對)국민 '이데올로기' 조작이 아니라, 국 민 각자의 민주적 기본권을 회복시키고 경제의 전환기에 불어닥친 생존권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비상한 개혁 청사진인 것 이다.
DJ는 그런 개혁과는 거리가 먼 정체를 마침내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지금 차기집권자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를 등에 업고 권언유착 (權言癒着)에 익숙한 보수언론을 총동원하여 유리하게 조성될 수 있는 국민여론을 방패(盾)로 삼아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의 창(矛)을 들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지난 1월 15일 발족된 이른바 노사정위원회다. DJ는 IMF를 빌미로 하는 애 국주의 선동으로 국민 모두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면서 노사정위원 회를 설치하여 정부, 자본, 노동 3주체에 대한 압박과 조정의 역할 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 위원회를 전원합의로 운영되는 상설적 기구로 규정지으면서, 21세기 신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만 드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발족식에서 선언했다. 그가 구상하는 '패 러다임'이란 "자본의 희생 없이는 노동의 희생이 있을 수 없는", 그 래서 노사 모두가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정합(正合)게임을 기조로 한다는 것은 노사정위원회 발족사, 국민과의 TV대화 등에서 한 그 의 발언과 그간 국내외 인사,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접촉과 면담 등 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DJ는 크게 실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여론을 타는 데 일견 합리적인 것 같은 그런 위기타개책이 유리하다고 DJ가 판단 했다면 오산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적어도 지금의 경제파탄이 자본 측의 기업경영부실과 그로 인한 기업부도·파산, 부실금융채권 양 산, 외채상환 불능, 외환위기 초래 등이 그 주범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 누구나 당연히 동의할 수 있는 게임, 즉 이제는 "자본의 희생으로 노동을 살리는" 영합(零合)게임이야말로 오히려 경제파탄의 책임을 묻고 경제의 잘못을 고치는 공평하고도 정당한 처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자본의 희생을 기조로 하 는 경제주체간 합의야말로 작금의 경제파탄에 대한 국민인식에 부 합할 뿐만 아니라,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세계여론에도 부응하는 길이다. 그럼으로써 남한경제는 그 파탄의 구조적 요인을 완화하거 나 해소하는데 착수함으로써 IMF난국을 극복할 수 있으며 향후 경 제의 정상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DJ는 그래서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그의 노사관계 구상은 자본과 노동을 함께 희생시킨다는 '상대성' 원리로 포장하지 만, 자본의 희생결과가 어찌 되었건 결국은 노동의 희생을 담보로 자본을 구제하는 '절대적' 정경유착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다. 재벌로 대표되는 남한자본은 IMF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도 스 스로 사업구조조정 등 자본합리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데도, 이를 두고 자본이 마치 희생하는 것처럼 호도시키는 DJ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무인격의 시장이 해결사인 것처럼 들먹거리 며 노동자를 농락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노사공동의 희생이 마치 진정한 민주주의인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 에서 규정한대로 전형적인 친자본·반노동의 보수정치꾼인 DJ가 걸을 수밖에 없는 한계인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염려한 DJ 는 그래서 노동측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호언하는 한편 고용보험 확대 등 노동복지 향상이라는 타협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IMF 재정긴축정책에서 노동만 살리는 예산 편성이 될 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복지기금에 출연하는 돈도 결국 은 취업노동자의 임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역사를 돌이켜 보자. 선진국 노동자들이 1세 기가 넘는 투쟁에서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권력과 자본이 약속한 장미빛 사회복지정책을 액면 그대로 믿은 데 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된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투 쟁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해이'로 작용해 왔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노동자의 변혁정신을 사민주의로 타락시키는 '마약'으로 작용해 왔 을 뿐이다. 이처럼 자본과의 복지타협으로 영락의 길로 들어서 버 린 이래 서구 노동자가 쟁취했던 정치참여, 경영참여는 오히려 경 제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도 지울 수 있게 됨으로써, 자본이 노 동의 별다른 방해없이 경쟁적으로 축적을 도모하는 자유는 80년 공 황이후 신자유주의 등으로 더욱 확대 일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처럼 노동자의 투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권리는 오히려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키는 보수반동적 기능으로 전락함으 로써, 노동대중의 사회변혁의지는 개량과 합법을 향한 의지로 굴절 되면서 권력과 자본에 포섭된 법치주의, 의회주의, 선거주의를 '모 토'로 하는 정당건설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제 남한의 노동자가 해야할 일은 명확해졌다. 노동자는 권력과 자본이 노동희생의 반대급부로 내세우는 '복지정책'은 그 비용을 부 담하는 국민의 민주적 결정에 맡기되, 자본의 희생으로 임금과 고 용을 보장하는 '노동정책'을 거머쥐는 노사정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노사정위원회를 단호히 거부하고 노동 자의 정치적, 경제적 권익 사수를 위한 총파업 등 투쟁에 즉각 돌 입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투쟁하는 노동자를 대표해온 민 주노총은 지금 총파업투쟁을 준비할 '민중연대위원회'를 차선으로 여기고 권력과 자본이 민중연대투쟁을 약화 혹은 저지시키려는 '자 본연대위원회'격인 노사정위원회를 최선으로 선택했다. 민주노총은 DJ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반노동적, 반민중적 보수정권과의 타협, 노동착취와 민중수탈의 주범인 재벌과의 타협을 우선적으로 택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래서 DJ처럼 첫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민주노 총은 지금까지 경제파탄의 주범이 정부와 재벌이라고 스스로 규정 지었던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2년전 YS정권의 노사개혁위 에 민주노총이 참여했을 때에도 우리는 그 허구와 한계를 지적하였 으며, 결국 민주노총은 지난해 총파업투쟁으로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1천만 노동자의 투쟁과 권익을 담보하 고 있는 민주노총이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민주노 총은 권력과 자본이 노사정위원회에서 관철하려는 대량해고와 임금 삭감에 결코 합의해서는 안되며 이제 단위사업장, 지역, 연맹의 결 의와 투쟁의 성과를 모아 노동자·민중의 투쟁전선에 '행동'으로 복 귀해야 한다. 세계의 어느 역사에서도 진실이었듯, 남한에서도 노동 자가 적기에 투쟁으로 돌파하지 않을 때 잃는 쪽은 항상 천만 노동 자요, 4천만 민중이라는 사실을 민주노총 지도부는 명심해야 할 것 이다.
노동자·민중은 DJ차기정권에 대한 투쟁을 머뭇거리지 말고 지 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DJ차기정권이 노동자·민중의 희생을 강요 하는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노사정합의를 앞세워 정부, 국회, 재벌들 과 한통속이 되어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을 도입한다면 우리 는 더이상 정부와 국회를 국민의 진정한 대의기관으로 인정하지 않 을 것이며 국민회의, 자민련 등 정당도 국민의 올바른 정치적 결사 체로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1천만 노동자, 4천 만 민중과 함께 총파업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범국민적 항쟁에 돌입할 것이며, 국회·정당해산, 김대중정권 퇴진, 재벌해체 등을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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