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승리21' '민주노총' '정치연대'가 각각 작성한 총 세편의 글들은 내부이견과 충돌이 많았던 만큼 평가의 기조와 내용이 상이하다. 게다가 각 글들을 살펴보면 국민승리21의 이후 진로에 관한 견해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노동진영이 참여했던 선거에서는 같은 지표를 갖고도 약진이었다는 평가와 실패였다는 평가 가 나올만큼 자의적인 면도 있었지만, 이번의 평가 (안)들은 표피적인 결과에 대한 분석은 비슷하지만, 그 원인과 이후 진로 및 방법에 대해서는 입론을 달리하고 있다.
이 평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첫째, 득표를 지표로 삼아 평가한다. 득표에 의해 선거를 평가하 는 것이 상례이며, 국민후보 운동 역시 득표 전략에 입각하여 입안 된 것이므로 득표 분석을 통해 평가함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세세한 전술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는, 결과가 보여주 는 정치적 함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개별 전술에 대한 사후 적 찬반을 검증할만한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다소 정치성(精緻性)이 떨어지더라도 경향적 평가의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셋째, 시사점과 교훈을 찾는 데 주력하겠다. 15대 대선 경험을 진보진영 정치세력화의 주요 계기, 분기점으로 삼고자 함이다.
2. 권영길 후보 - 미흡한 득표, 진보정치 기반 확인
1) 30만6천26 표 - 기본 목표를 충족시키기에 미흡한 득표
*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는 30만6천26표(1.2%)를 득표하였다. 이는 14대 대선 당시 백기완의 득표보다 7만표(0.2%) 많은 데 불 과하다.
* 국민승리21은 '보수기성 정치세력의 정치독점을 타파하고 진보 정치세력을 현실 정치구도 속에 정립'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목표를 설정하였다.
① 의미있는 득표를 통한 정치적 시민권 획득
② 진보정당 건설의 국민적 지지 기반 확보
③ 진보정당의 조직적, 인적, 물적 기반 확보
④ 지방선거 준비
① 선거마스터플랜은 '의미있는 득표'를 250만표(10%)로 설정하 였다. 우리의 득표는 대선 득표에 힘입어 정치적 지속성을 가졌던 박찬종의 150만표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 실패이다.
② '진보정당 건설의 국민적 지지 기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계량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승리21 다수 성원들의 심리적 마 지노선 또는 기대 수준은 60만표에서 80만표 수준에서 형성되었다 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역시 성취되지 못하였다.
③ 국민승리21은 80여개 지부, 220개 선거연락사무소, 700여명 의 상근자, 4만여명의 회원을 조직하였다. '진보정당의 조직적, 인 적, 물적 기반 확보'는 비교적 성공이었다.
④ 아직 평가를 내릴만한 시점은 아니지만, '지방선거 준비'는 주 도면밀하게 이행되지 않았다.
2) 1.2%는 어떻게 모였는가? -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득표 집중
* 그러나 권영길 후보의 득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큰 변화를 담고 있다. 백기완 후보가 전국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1.0%를 득 표하고, 우리 후보의 경우에도 전국 대부분(호남 제외)의 지역에서 1.2%의 고른 득표를 하였다.
하지만 아래 21개 선거구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즉, 노 동자 밀집지역 특히 대공장 소재지에서 진보적 지지표가 괄목할만
한 성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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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 달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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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단 |
| 인천시 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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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제철 |
| 인천시 부평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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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 |
| 인천시 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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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단 |
| 대전시 유성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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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노조 | |
| 대전시 유성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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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노조 | |
| 울산시 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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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
| 울산시 북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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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
| 평택시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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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룡자동차 |
| 청주시 흥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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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공단 |
| 아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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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만도기계 |
| 전북 완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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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공단 |
| 경주시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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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금속,자품공단 |
| 경주시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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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미시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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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 |
| 구미시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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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포항시 북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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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제철공단 |
| 포항시 남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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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창원시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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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단 |
| 창원시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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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단 |
| 거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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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
1) 최초의 정권 교체, 지역연합의 승리
* 김대중의 승리는 여권이 분열된 가운데 국민회의-자민련의 지 역 역포위 전략이 성공을 거둔 데서 비롯되었다. 요컨대 충청권에 서의 득표 증가가 김대중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역주의 적 정치 행태가 완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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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년 여당의 분열과 패배* 여당 패배의 원인은 앞서 지적한 충청권에서의 김대중 약진과 이인제 등장으로 인한 영남권 지지표 분열이다. 이에 더불어 병역 시비에 휘말리고, 미디어 선거에 적절히 대응치 못하는 등 상대적 무능을 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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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흡한 득표 원인과 선거운동상의 문제점
1) 자원 동원 실패
* 우리는 애초에 목표하였던 조직과 돈을 동원하지 못하였다. 민 주노총이 총파업에서 보여준 위력, 북한돕기에서 나타난 전국연합 의 열의는 국민후보 운동에서 재가동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선거 운동 계획 전체가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 를 보았다.
* 민주노총 주요간부의 결합이 적었고, 다수의 조합원이 권영길 후보의 출마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또 상당수 지역연합이 실질 적으로 국민후보 운동을 보이코트하였다.
* 총 예산 100억원 중 15억원만이 집행되었다. 30억원을 모금한 다는 계획만이 있었을 뿐 애초부터 주도면밀한 재원확보 계획이 서 있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재정위원회를 구성치 못한 것은 우리의 재정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이에 따라 홍보, 유세 등 선거운동 전반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 자원 동원의 실패 원인으로는 논의 및 추진 과정의 불충분함, 선거기조를 둘러싼 혼란과 분열을 들 수 있다.
* 선거기조를 둘러싼 혼란과 분열은 실재하였고, 자원 동원에 악 영향을 미쳤다. 급조한 공동대오 내의 다양성, 지도력의 부재 등 우 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 권리와 의무의 부조응이 있었다. 발언권과 의결권의 행사에는 적극적이었으나, 그에 수반되어야 하는 조직적, 재정적 의무이행은 회피하거나 방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2) 대중적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치 못함 - 범국민적 대안 세력으로 부각되지 못함
* 권영길 후보는 유권자에게 사표를 감수하면서 투자할만한 흡인 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국민에게 이렇다할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 하지 못한 것이다.
* 국민에게 권영길 후보의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인 매스미디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슬로건과 비전 즉, 선거기조 전반 이 잘못 설정된 것이 선거 실패로 이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① 매스미디어 대응 부재 - 객관적 제약과 주체적 무능력
*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매스미디어 특히 TV를 통해 후보들을 인식하고,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 후보는 전파를 탈 수 있는 기회 를 원천봉쇄당했다.
* 이번 선거에서는 총 35회의 TV 토론, 대담, 강연이 있었으나, 권영길 후보는 군소 후보 토론에 한 차례, 대담에 두 차례 나갔을 뿐이다. 이는 방송토론위원회의 자의적 기준 등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기득권층의 의도적 배제 탓이다.
* 그러나 이와 같은 장벽을 넘을 만한 시도를 하였는가, 언론이 바라는 상품성 있는 뉴스를 제공하였는가를 되짚어 보면 우리의 주 체적 노력 역시 부족하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 그나마 출연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준비 부족으로 역효과를 보 았다. TV 출연시 그 준비를 미디어대책위 주관 하에 정책위와 비 서실이 담당하였는데, 각 위원회 간의 협조가 원활치 않았으며, 후 보에게 숙지되지도 못했다. 우리 후보가 TV에서 보인 것은 '준비되 지 않은 부족함'이었다.
* TV 광고와 방송연설도 극히 부족하였다. 22회(440분)의 방송 연설 기회 중 단 1회(10분)만을 활용할 수 있었다.
* 선거마스터플랜은 '미디어가 선거의 70%를 좌우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하였다. 그러나 홍보 예산의 1/4 만이 집행되었고, 미디어대책위는 투표일 열흘 전까지 위원장 혼자 일하는 조건이었 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후보와 정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② 선거 기조에 관련하여
* 선거 전략, 정책, 홍보 등의 오류에 의해 애초부터 선거 실패 가 예정돼 있었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이에 선거기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위해 각각의 의견을 병렬한다.
◆ 전략 기조 - 후보의 상
- 국민후보는 타당한 설정, 정세에 따라 노동자후보로 유연하게 변화
국민후보는 노동자(또는 조직대중) + α전략이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고 적절한 설정이었다.
첫째,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노동계급 일반의 정치의식이 대단 히 저급하고, 조직화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득표 목표로 설정한 250 만표 내지 100만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 외부의 3,500만 유권 자 속에서 지지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또 선거가 일상적 시기에 준비된 조직에 비조직적 지지자를 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후 보라는 기조 설정은 적절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둘째, 우리 후보의 경우 지지율과 반대율이 거의 비슷(타 후보는 지지율:반대율이 3:1∼2:1)한 수준이었으며, 이는 주로 '운동권' 이 미지와 막연한 괴리감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미지 변신을 통한 대 중 접근은 선거과정상 필수적이었다. 또 국민후보론이 가지는 '유연 성'은 민중후보의 자족적 경직성을 지양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 동운동론'에 입각한 총파업 승리를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셋째, 국민후보론은 말 그대로 선거기조였으며, 정세에 따라 후 보의 상과 이미지는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 후 보는 대상과 시기에 따라 노동자후보로서의 이미지와 범국민적 후 보로서의 이미지를 적절히 병행하였으며, 정세와 득표 목표가 급변 한 선거 후반기에는 주로 노동자후보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우리 후보를 명실상부한 '국민후보'로 부각시키는 데는 실 패했다. 우리 후보는 노동자 계급의 대표, 국민적 지도자라기보다는 '노동조합의 대표'로서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 몰계급적 국민후보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후보전술은 국민후보로서의 선 거운동을 기조로 설정함으로서,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에 대응한 당면한 노동자의 투쟁과 결합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 속에 선거투쟁이 전개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었 다. 탈계급적 후보전술로서 국민후보기조는 출발부터 정립되어 있 었던 것이다.
노동자가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요구를 내세우면서 계급적 요구를 희석하고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주도적으로 관철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오히려 상실하였으며, 이러한 취약지점을 비 집고 들어와 한국노총, 전국연합을 중심으로 유포된 정책연합에 기 초한 정권교체론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짐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 숫자만큼도 득표로 연결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선거기 조는 동시에 활동가, 선진노동자, 학생 등이 투쟁, 재정 등에 적극 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 정책 기조
- 신보수주의에 대한 총체적 대안 제시 노력
국민승리 21의 정책은 신보수주의에 대한 총체적 대안(진보적 사 회대개혁) 제시를 목표로 하여 준비되었으며, 이러한 기조는 선거 운동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초기에 사회복지를 핵심공약으로 부각시키고자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개별 공약이 아니라, 신보수주의에 가장 대립되는 종합적 정 책이자 사회상이라는 점. 우경화된 타 후보들과 우리 후보를 차별 화시키기에 유리하다는 점.
그러나 우리는 (이슈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복지를 사회적 쟁점 으로 부각시킬 선전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 정세 변화에 의해 정리해고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치 못 했던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정세 변화에 발맞추어 고용보장으로 핵심 정책을 변화시켰으며, 이 변화는 후보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조 직대중과의 결합을 높이는 성과를 낳았다.
- 노동 대중으로부터 이반돼 있는 정책
국민후보가 내건 정책공약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내민 '사회복지 대혁명'이었으며, 따라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등 자본의 신자유주 의적 공세에 대응한 투쟁을 요구하는 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기란 애당초 어려운 것이었다.
◆ 홍보 기조
- 재정 곤란으로 홍보 차질
'일하는 사람이 신명나야, 주저앉은 나라가 일어선다'는 홍보 기 조와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로 오도되었다.
'안전모와 넥타이가 일어나는' TV 광고, 재벌해체 고용보장 공약 이 게재된 법정 홍보물(8쪽짜리, 16쪽짜리)이 계획돼 있었으나, 재 정 곤란으로 대폭 축소(TV광고는 2회, 법정 홍보물은 부재자용 2 쪽)되어 홍보 물량의 절대 부족을 빚은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점이다. 이처럼 법정 홍보물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평등세상 (서울시본부)>, <정치연대>, <국민승리21(경기동부연합)> 등 통제 되지 않는 홍보물에 재원이 분산, 낭비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 인지도와 선전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자기조건에 걸맞지 않게 파격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점은 조직 내부의 합의나 민 주주의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문 역량의 기술에 관련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 반동적 홍보 기조로 대중 이탈
15대 대선의 애국주의적 성격규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이 홍 보 슬로건이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수막과 벽보는 가히 압권이었다. IMF금융지원 을 계기로 한 공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구호는 국민적 상실감 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유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결국은 대중적 요구에 의해서 교체되는 해 프닝을 연출하였으며, 대중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 선거 기조 종합 평가
- 선거 기조를 실현할 자원 부족
선거기조를 둘러싼 내부의 긴장과 불협화는 실제보다 과장되고 조장된 측면이 크다. 국민승리21의 득표 실패는 선거기조의 오류가 아니라, 자원동원 실패와 미디어 대응 부재 때문이다.
- 몰계급적 선거 기조가 실패 자초
결과적으로 국민승리21의 실패는 전략, 정책, 홍보 등의 몰계급 성에 의한 것으로 향후의 정치 활동에서는 이런 경향이 철저히 지 양되어야 한다.
3) 선거 종반의 지지 이탈
*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권영길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약 2% 로 내외로 추정되었다(11월 30일 한겨레 여론조사 - 2.1%). 군소 후보의 특성상 사표방지심리에 의한 이탈이 당연하지만, 예상 득표 율의 절반에 가까운 0.8%가 이탈한 것은 대단히 예외적이다.
* 이러한 이탈은 선거 종반 각종 언론의 '박빙 보도'가 유권자들 의 사표방지심리를 자극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 특히 총유권자의 1/4을 차지하는 서울에서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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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준비기의 문제점
* 주요 조직 사이에서 국민승리21 노선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5월경부터이나, 본격적 선거운동에 나서기까지 미리 완비했어야 하 는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전체 조직구성, 대중설득, 정 당 등 세 가지를 검토하겠다.
① 광범위한 연대가 성사되지 못함
광범위한 연대틀을 구성한다는 구상하에 각급 부문운동 단체에 제휴와 협력을 제안하였으나, 초기에는 세 조직(민주노총, 전국연 합, 진보연합), 후기에는 네 조직(정치연대)으로 국한되고 말았다 (물론 비공식적 결의를 통해 많은 단체가 부분적으로 결합하였다). 이는 정세와 선거에 대한 판단이 상이했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이 해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 현실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대중 운동과 정치운동으로 분화했음에도 그를 아우르고, 장기적 전망을 제시할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부족하였던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핵심 대오를 엄호할 주변세력을 폭넓게 구축하지 못하 였으며, 정치연대와의 통합 후에는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자초하 였다.
② 대중적 논의와 추진의 불충분
국민승리21의 선거기조와 제반 활동은 조직 대중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리라는 전제하에 잡혀진 것이다. 그러나 조직원의 각오와 결 의는 예상 수준보다 낮았으며, 조직 활동에 능동적으로 임하지 않 았다.
이는 논의 및 추진 과정의 불충분함에서 비롯된 것인데, 시간상 의 촉박함 등에도 불구하고 더욱 대중적인 논의와 추진을 통해 대 중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③ 선거용 정당 문제의 혼란
국민승리21의 제반 활동과 재정 마련은 선거용 정당등록에 의해 가능했다. 즉, 선거용 정당을 등록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활동과 모금이 불법으로 규정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용 정당의 등록 과정에서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이 처럼 중차대한 문제였다면 조직 내부 논의를 좀더 일찍 시작하고 결의 과정에 만전을 기하였어야 한다.
④ 정권교체론에 대한 논리 개발과 대응의 부족
정권교체론에 다소 안일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 초기의 국민승 리21 노선은 '김대중 필패론'에 입각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반전된 이후에도 논리를 변경 보강하지 않았다. 정권교체론의 영향력 차단 을 주요 활동 중 하나로 삼았어야 한다.
5) 의사결정력과 집행력의 취약함
* 국민승리21은 시의적절한 판단을 하고, 일사불란한 행동을 하 는 선거운동 조직이라기보다는 일상적 시기의 단체협의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상임집행위원회는 정세 변화에 따른 정확하고 발빠른 의사결정 을 하지 못하고,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논쟁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 모하였다.
* 집행력 역시 취약하였다. 중앙 상근자들과 지부 운동원들은 지 도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기 판단이나 관성에 따 라 행동하였다. 지휘 통제력의 부족은 경기동부와 서울시본부가 중 앙 방침과 무관하게 선거운동을 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민주진보 진영의 절대다수를 국민승리21로 묶어 세운 것은 매 우 성공적인 성과이다. 하지만, 각 세력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킬 만 한 계기와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고, 할거구조와 선거운동본부의 무 기력함-무대응이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 최고 지도부에게 부여된 각 조직간 조절과 융합, 조직원에 대 한 비전 제시, 모범과 헌신 등의 역할은 적절히 수행되지 않았다.
5. 의미와 교훈
1) 재벌해체 - 고용보장 정책의 승리
* 국민 대중의 우리 정책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노동자', '재벌 해체', '고용보장' 정도일 것이며, 최근 상황은 우리 정책의 올바름 과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다.
* 이 정책을 노동자 밀집지역과 함께 우리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 겨야 한다. 이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켜, 국민들이 '재벌해체', '고용보장'과 우리 대오를 하나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대선 성과 의 올바른 계승이다.
2) IMF 정국의 영향
* IMF 사태와 고용 불안은 최종 득표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후 보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상승시켰으며,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을 촉진시켰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 첫째, 초보적 계급의식의 대두
과거 아무리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 관계로부터 '해방된' 투표 행태를 보여왔다. 이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고용 문제와 기표 행위의 연결은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최초로 계급적 투표 행태가 대두되었음을 보여준다.
* 둘째, 대자적 계급의식에 다다르지 못한 경제적 이해 수준
그러나 선거 초반부터 내세운 재벌해체, 국가보안법 철폐, 사회 복지 확대, 진보정당 건설 등의 공약에 노동자들이 별 무반응이었 던 것은 아직도 가시적인 생활상의 이해, 곧 단시기의 경제적 이해 에 주로 착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일상적 정치활동의 축적 없이는 작은 승리도 기대할 수 없다
* 울산, 창원 등의 득표는 노동조합에 기초한 것만은 아니다. 여 타 선거구에 비해 나은 성과를 낳은 지역 대부분은 오랜 선거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1.5%대를 넘은 선거구가 관악(갑 : 1.5%, 을 : 1.7%)이라는 사실도 축적된 선거활동의 역 할을 잘 보여준다.
* 국민후보 운동의 실패에는 백선본의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유실된 것도 적지 않은 장애로 작용하였다.
* 일상적 정치활동, 특히 정당을 통한 대중 접근 없이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5월 지자제와 2000년 총선까지 남은 시 간이 너무도 짧다. 지금부터 지역 주민에 밀착한 준비와 대응을 도 모해야 한다.
6. 총평
유일한 활로, 최선의 선택, 오류보다는 한계, 정치세력화의 단초
국민승리21 운동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또 현재 우리 운동이 다다른 지점과 전망, 정치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유 일한 길이었다. 만약 우리가 이 길 이외의 것을 택하였다면, 지금 한창 조직 대중의 정치적 분열과 무기력함에 홍역을 앓고 있거나, 김대중 정권과 정리해고에 대한 태도, 한국노총과의 관계 등을 둘 러싸고 곤혹스런 분란과 치욕에 잠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 회의 변화와 우리 운동의 발전이 부여한 역사적 책무에 충실히 임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정당성을 폄하할 수 없 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노동조합이 과 감하게 정치에 나선 것, 독자 정치세력화에 주저하던 전국연합 등 의 재야가 대의를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한 것은 우리 진보운동 사 최초의 일로, 이미 시작부터 '절반의 승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절반의 승리'를 더욱 다지기 위해 공격적 전진을 시 도하였다. 그리고 현실의 엄혹함과 우리의 부족함에 의해 좌절하였 다. 성은 쌓았으나, 성 밖으로의 공격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우리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재 다다라 있는 지점을 냉정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즉, 단위노조의 현장투 쟁과 가두에서의 재야운동에 의존해온 지난 10년 간의 우리 운동이 국민승리21의 30만표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동지들의 노고와 곤궁 속에서 쾌척된 15억원으로 작지만 소중한 성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정치세력화 단초를 발굴하 였다. 국민후보 운동은 무엇에 의해 평가되는가? 이 단초를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7. 전망과 과제 - 간략한 서술
1)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도전
- 현재 발표되고 있는 어떤 경제 지표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중단 기적 전망을 예측할 수 없다. 외국 투자기관의 평가대로 장기 회복 기반은 건실하지만, 회복 여부와 회복 시기 등은 극히 '유동적'이다.
-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이 가져올 영향이 무엇인지는 명약관 화하다. 근로 대중의 실질 소득 저하, 빈부격차 심화로 귀결될 것이 라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 최근 나타나고 있는 여성 우선 해고, 복지후퇴, 환경기준 완화 등의 현상은 IMF 정국이 지난 10년간 우리가 쌓아온 성과에 대한 도전이며,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김대중 당선자 역시 대선 공약과는 달리 IMF의 신보수주의적 정책 에 적극 협조할 것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같은 '신공약'의 실천을 위 해 노력할 것이다.
- 따라서 김대중 정권 전반기는 다국적 자본을 등에 업은 김대중 의 공격과 근로대중의 대응으로 점철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긴장과 충돌이 가시적인 전선으로까지 발전할 지는 불분명하다.
- 김대중 정권은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한 국민적 기반과 '최악의 경제 상황'이라는 최선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무기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국민의 분노는 아직도 개인적이며, 방치될 때는 체념과 동조로 급변할 것이다.
- 정치의 가변성 역시 경제 상황 이상이다. 한나라당보다 더 보 수적인 자민련, 구심없이 방황하는 한나라당 등을 볼 때, 기성 정치 권의 재편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
2) 대선 성과를 당면투쟁으로 ! 당면투쟁 승리로 진보정당 건설 !
- 우리는 다음을 우리의 핵심 과제로 삼고, 면밀한 계획을 세워 즉시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 98년 전반기에 우리는 지자제 선거에 대응하고, 재벌해체, 고 용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당면투쟁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 양자는 선택적 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호 발전하여 야 하는 우리 운동의 양 측면이다. 당면투쟁의 성공은 지자제 선거 의 성과로 연결될 것이며, 지자제 선거에서의 승리는 당면투쟁을 통한 정세 주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현 정세는 지난 10년 간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성취한 민주주 의와 근로대중의 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근로대중에게 전가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당면투쟁을 지난 10년의 성과를 사수하고, 대중과 긴밀히 결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분기점으로 자리매김되도록 해야 한다.
- 지자제 선거는 국민승리21의 대선 성과를 실질적으로 물질화시 킬 기회이며, 2000년 총선을 향한 통과의례이자 도약판이다. 전국 각급 선거에 모두 대응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정치적 상징성에 의 한 미래투자, 당선 가능성에 의한 집중투자를 적절히 병행하면 귀 중한 성과를 남길 수 있다.
- 내외 조건은 운동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유지돼온 '재야운동'의 조직 형식과 운동 방식은 사회 전반의 변 화를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다양한 수준의 단체가 모인 '재야협의 체'는 정치적 구심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조직(정당)과 대중조직으로의 분별 정립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 운동 질서의 재편은 조직 형식의 재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 질서의 재편은 지도사상, 지도주체, 운동관행 등에 대한 전면 적인 재검토와 쇄신, 재구축을 기반으로 하여야 한다.
- 진보정당 건설은 국민승리21의 대국민 공약이다. 국민승리21 은 조직 대중과 정치적 중핵 사이에 뚫린 '최초의 공식 통로'이다. 그 절차와 형식이 어떠한 것이든, 진보정당은 국민승리21의 확대, 발전, 심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진보정당의 창당은 미래 의 추상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로 우리에게 강제되고 있다.
- 창당을 위해서는 당의 대중적 기반, 사상, 재정, 창당 경로, 각 급 조직과의 관계, 중장기적 목표와 발전 전략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어야 하며, 지금 즉시 구체적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1. 97대선의 기본목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인적, 물적, 조직적 토대 구축에 있다. 후보 출마는 이에 복무하기 위한 '전술'이 며 97대선은 이러한 기조하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장기적 관 점하에서 전개되었다.(97대선 독자적 대응 → 98지차제 대거 진출 → 98∼99 정당 건설 → 2000년 국회 원내 진출 → 21세기 집권) 따라서 97대선 평가는 '97대선을 통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토대와 전망을 얼마나 확보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수행되어져야 한 다.
2. 최대한 대중적 공유를 통한 평가를 수행한다. 현재의 상황은 IMF에 따른 고용투쟁의 전면화, 산별노조 건설 등 현안 문제로 대 중적 평가를 수행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다. 97대선의 성과와 한 계를 대중적으로 확인하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과제와 전망을 힘있 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적 평가를 진행 해야 한다.
3. 실천적 관점의 평가여야한다. 논쟁보다는 성과와 한계, 문제 점의 정확한 진단속에 이후 대안과 전망을 분명히 하는 평가여야 한다.
평가
1. 97대선 총괄 평가
97대선에서 국민승리 21은 30만6천26표를 얻어 1.2%의 득표율 을 기록했다. 이는 국민승리21의 내부득표 목표인 100만표, 민주노 총 조합원 55만에도 훨씬 못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이러한 득표상의 실패는 '유의미한 득표로 진보정당 건설의 국민적 지지기 반을 획득하고 이를 통하여 진보정치세력의 현실 정치세력으로의 정립'이라는 과제 실현에 한동안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득표상의 실패로 인하여 '97대선을 통한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적 가능성 확보'라는 성과가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97대선의 기 본목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인적, 조직적, 물적 기반 확보 에 있다고 했을 때 민주진보진영은 97대선투쟁을 통하여 정치세력 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민주진보진영이 최초의 단일전술 구사를 통해 정치적 단결 을 이룸으로써 향후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진전된 성 과를 축척했다. 둘째, 민주진보진영의 현실 정치 경험과 이를 통한 전국에 약 70여개의 지부, 220개의 선거연락사무소, 700여명의 상 근자와 1,500명의 자원봉사단, 약 4만명의 회원, 후원자 조직 등의 성과를 남김으로써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조성했다. 셋째, 민주노총 의 경우 노동자 최초의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이를 통한 정치토론, 조합원교육, 정치위원회 활성화, 정치실천단 구성(약 2만 5천명), 현장 및 지역에서의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등 성과를 남겼 다. 넷째, 그 결과 부족하나마 최초로 노동자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 어냈다(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 확인. 30만표 중 약 15만표 민주노총 조합원 표로 분석).
이러한 성과는 향후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토대로 계승 발전시켜 야 하며 진보정당 건설을 목표로 중장기적 전망과 계획하에 구체적 사업이 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 로 '국민승리21의 성과를 모아 진보정당 건설을 지향하는 정치조직 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고민되어져야 한다.
2. 세부평가
1) 후보전술에 대한 평가
【의견1】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적극적인 전술이었다.
·기존 정치권이 보수화 경쟁과 지역갈등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 황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인적, 물적, 조직적 토대 마련 을 위한 97대선에 후보전술을 통한 참여 없이는 어려움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진보진영의 위기극복, 노동운동의 활로 모색을 위한 민주진보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필요한 전술이었다.
【의견2】현실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선에서 아무런 방침없이 대응하는 것은 결국 조합원을 지역 주의 투표행태에 내맞기는 무책임한 행위이기 때문에 민주노총내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정책연합의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 술이었다.
【의견3】주체역량에 비해 과도한 전술이었다.
·민주노총, 전국연합을 중심으로한 민주진보진영의 역량, 기본 토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주체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전술이었다.
·정치세력화는 당위만 가지고는 안된다. 정치세력화의 전망과 일상적 사업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무리한 전술이었다.
2) 득표실패의 원인
(1) 객관상황 분석
·정권교체의 요구 및 지역주의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인제가 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빙의 승부로 인한 사표방 지 심리가 존재했었다.
(2) 주체적인 요인 분석
·민주노총 조합원의 대중적 합의를 광범위하게 이끌어내지 못했다.
·총파업의 성과를 상반기 임단투, 하반기 고용투쟁과 결합하여 정치적 성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선거법상의 제약, 언론의 의도적 외면 및 편파적 보도, 미디어 선거(재정문제)라는 객관조건을 돌파해 내지 못한 주체역량의 한계 가 있었다.
3) 광범위한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원인(정치방침 결정 과정의 문제)
【의견1】
·일상적인 정치사업이 활발하지 못했던 조건
-정치사업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위해서는 조합원에 대한 일상 적 정치사업을 통해 조합원이 정치활동을 자신의 문제로 느끼 고 고민하면서 정치의식이 강화되어야 한다.
·합의 과정을 풍부히 하기에는 시간의 제약, 시간의 촉박성이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
-기업별노조의 체계하에 연맹 지도부 및 단위노조 위원장의 성 향에 따라 정치사업에 대한 열의와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상의 한계가 있다.
-실제로 각 조직의 지도부가 민주노총 방침에 따라 결의를 갖고 사업을 집행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결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정치방침 토론(대중적 공유 과정)이 임단투와 맞물 려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의견2】
·방침결정 과정의 문제점
-현장의 충분한 토론과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공유없이 전체적 인 분위기로 몰고가는 비민주적 결정 과정의 문제
·국민승리21 → 민주노총 → 연맹 → 단위노조로 이어지는 내리 꽂기식의 위로부터 사업방식의 문제
·정치사업을 추동하는 중앙지도부의 지도력의 문제
-총파업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시키지 못함
-특히 간부들에게 정치세력화 전망 및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함
4) 선거기조의 문제
·선거운동 기조의 혼선으로 일관성 있는 선거운동이 전개되지 못했다.
-국민후보운동으로 통칭되는 선거기조와 노동자 중심의 선거기 조 사이에 혼선 발생
·득표 중심의 활동보다 진보정당 건설의 기반으로서 사람과 조 직을 남기는 활동기조를 보다 분명히 했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선거 전반에 걸처서 주도 적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선거기조 설정에 있어서도 민주노총 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국민승리21 집행구조에 민주노 총이 소수 결합한 데에 따른 문제이다.
5) 선거운동 과정의 문제
·조직대중을 주체로 내세우는 선거운동 방식 부족
-선거벽보와 플랭카드는 대중의 정서에 기반하지 않고 선거기 법에만 치우침으로써 조직대중의 동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이는 선거기조의 혼선과 연관되어 발생된 것이다.
·보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선거운동 방식에 모색되어져야 한다.
-선거법상의 제약을 돌파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방송언론의 편파적 보도 등 이를 돌파해 낼 수 있는 미디어대 책의 부족
-진보진영의 후보로서 이를 알려낼 수 있는 사회적 쟁점, 차별 화 실패
3. 향후 과제와 진로
1) 국민승리21의 향후 진로
【의견1】
·국민승리21의 성과를 조직적으로 발전시키자. 이를 위한 정치 조직을 건설하고 중장기적 전망하에 정당건설을 추진하자.
【의견2】지금 즉시 정당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의견3】국민승리21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므 로 정치실천단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치세력화를 위한 준비를 시 작하자.
2) 민주노총(대중조직)과 국민승리21과의 관계
(1) 민주노총과 국민승리21은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으로서의 독 자적 자기발전 전망하에서 조직적으로 상호 구별 정립하며, 정치 적으로 상호지지, 지원, 협조한다.
(2) 문제는 국민승리21이 정치조직으로 바로서기 위한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역할과 과도적 관계 정립이다.
【의견1】정지조직으로서의 자기전망과 이를 위한 토대 마련은 국민승리21의 직접적 활동으로 확보해야한다.
【의견2】
·국민승리21이 향후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로 나가기 위 해서는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결의하고 뒷받침을 해야한다.
·대중적 기반이 취약한 현재의 국민승리21의 조건에 비추어 보 았을 때, 기존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민주노총 차 원의 지속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의견3】민주노총의 정치조직에 대한 지속적 지원은 동의하지만 문제는 '민주노총이 지원할 여력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가 문제이다.
3) 민주노총내 정치사업
(1) 민주노총내 일상적 정치사업을 통하며 정치세력화를 위한 대 중적 토대를 강화한다.
(2) 정치사업 담당주체로서 정치위원회 구조를 강화, 활성한다.
4) 기타
(1) 정치실천단의 향후 전망과 진로의 문제.
(2) 향후 조직적 진로과 결합된 지자제선거 대응의 문제.
- (이후 평가 및 정치사업 일정) 하략 -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지 금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적 주체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번의 대선투쟁은 이를 위한 하나의 전 술적 계기로서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노동자의 총파업에 이은 정치 투쟁으로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함께 전체 사회적 투쟁의 일부분으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정치연대는 '국민승리21'에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 등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후보와 사퇴하 지 않는 후보, 공동선거기구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입장을 전제로 한 협상을 통하여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10월 26일 '민주와 진보 를 위한 국민승리21'이라는 공동선거기구를 구성하여 대선투쟁에 함께하였다.
여기에서는 공동선거기구였던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의 활동을 중심으로 과연 이번의 대선 투쟁이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투쟁을 통해 얼마나 잘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또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대중적, 민주적 합의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었는지를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자의적인 평가들, 즉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노동자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에서 조직적 결정을 통 해 대통령 후보를 내고 이에 진보운동단체인 전국연합, 진정연, 정 치연대 등이 결합하여 공동선대본을 꾸렸다는 사실 자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족한다든지, 또는 향후 지자체 및 총선 등의 선거정치를 통해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선거전략적 관점 에서 득표율 및 선거행태, 지역적 지지도, 특히 노동자 밀집 지역에 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고 '이 정도면'하는 추상적 계량 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든지 하는 평가들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2. 총괄평가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후보전술은 국민후보로서의 선 거운동을 기조로 설정함으로서,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에 대응한 당면한 노동자의 투쟁과 결합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 속에 선거투쟁이 전개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었 다. 탈계급적 후보전술로서 국민후보기조는 출발부터 정립되어 있 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전국연합 제6기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공 동의 선거기구(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을 제안하고, 여기에 민주 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후보를 추대한다'고 결정하였으 며 진보정치연합의 2기 임시대의원대회의 대선방침에서는 '국민후보 운동을 전개한다'고 결정하였다. 민주노총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 하였다. '막강한 투쟁력을 발휘했으나 교섭력과 정치력의 한계를 드 러냈다'고 총파업이 평가되면서 제기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97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바 있는 '98년 지자제선거 대거 진출 -> 98-99년 정당건설 -> 2000년 국회원내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정 치세력화사업을 힘차게 전개해나간다'는 일정에 따라 제도정치권으 로의 민주개혁적 후보의 진출을 그 목표로 잡은 것이다. 노동해방 의 총체적 표현으로서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단순히 제도권 진출 을 위한 세력과시를 '표'로서 보여주기 위해 제도권의 정치일정에 의존하는 오도된 정치세력화 전망에 따라, 후보명칭에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지향을 의미하는 민중후보 또는 노동자후보가 타당하 다는 의견은 묵살되고, 전국연합과 진정연이 제안한 국민후보가 받 아들여졌다.
그리하여 국민승리21의 주체는 노동자가 아니라 국민, 즉 '보통 봉급생활자들과 평범한 납세자'로 설정되었으며, 민중의례는 국민의 례로, 작업복은 양복으로, 노동자대표는 국민후보로 바뀌었다. 국민 후보가 내건 정책공약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내민 '사회복지 대혁명' 이었으며, 따라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등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 세에 대응한 투쟁을 요구하는 노동대중과 함깨 호흡하기란 애당초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정치연대의 결합이후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로의 조직개편이 일어나면서 합의문에 따라 노동자, 민 중의 대의와 정치세력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대통령후보로서의 성격이 재규정되고, 선거강령으로서 재벌해체와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민중적 규제를 강화하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쟁취를 위 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부분이 채택되는 등의 변화가 있 었다. 그러나 이후 선거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합의문의 정신은 여러곳에서 훼손되었으며, 이전까지의 선거운동기조는 그대로 유지 되었다. 15대 대선의 성격으로서 '21세기에 경제번영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제시된다든지, IMF시대에 걸맞 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홍보슬 로건이 채택된다든지 하는 결정들은 그 나름의 내적 일관성을 지니 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권영길위원장을 97대선에서 국민후보로 추대하면서 고용 안정을 위한 총파업을 수행하기로' 결정한 9월 5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97년 대선후보전술은 96-97년 겨울의 총파업시 전개되었던 노동자 대중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것 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후보전술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운동기조와 같은 맥락에서 일관성을 유 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기조의 설정은 다른 선거와 달리 전국적 집중성이 강한 대통령선거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선거 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에 기초한 선거전략에 의존한 결과일 뿐이다. 득표전략으로 볼 때에도 지역주의와 보수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대 안을 찾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으며, 민주노총까지 결합한 선거에서 의 그 유일한 방안은 계급적인 기조와 요구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는 물론 막바지 IMF지원금융국면에 접어들어서까지 노 동자가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요구를 내세우면서 계급적 요구를 희 석하고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주도적으로 관철됨으로서 노 동자계급의 지지를 오히려 상실하였으며, 이러한 취약지점을 비집 고 들어와 한국노총, 전국연합을 중심으로 유포된 정책연합에 기초 한 정권교체론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짐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 숫 자만큼도 득표로 연결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선거기조 는 동시에 활동가, 선진노동자, 학생 등이 투쟁, 재정 등에 적극적 으로 결합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92년 선거투쟁시 전국적으로 표출되었던 열정은 사라진 것이다.
이와 같이 계급운동이 아니라 국민운동적 기조에 기초한 정치조 직과 전선조직 그리고 대중조직의 환상적인 결합은 그야말로 '환상' 으로 마무리되었다. 합법선거주의에 매몰되어 노동자의 계급적 요 구는 안중에도 없이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을 위해 표계산에만 열 심인 정치조직, 선거 막바지까지 분명한 정치방침을 확정하지 못하 고 오히려 국민의 오랜 여망이라는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일차적으 로 관철시키려는 전선조직과 기조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거치지못 하고 지도부의 정치방침에 따라 나서서 아래로부터 문제제기가 지 속되는 대중조직의 3주체는 계속 삐꺽대면서 선거에 임했다. 총파 업시 노동자 대중투쟁이 받았던 전국민적인 지지는 유실되었는데, 이는 애초에, 국민승리21을 주도했던 3주체가 총파업시 노동자 대 중투쟁에 결합하였던 전국적이고 각계각층을 포괄한 광범위한 지지 세력을 조직적으로 이어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발시부터 존재했던 이와 같은 조직적인 문제는 정치연대의 결합 이후 수차례 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용 종이정당 등록과,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둘 러싼 논란 속에 증폭되었다. 정치조직, 전선조직 그리고 대중조직의 '기계적 결합'을 통해서는 어떠한 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후 의 선거경과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후의 진로와 관 련하여 새겨두어야 할 지점이다.
지자제 선거를 염두에 두고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식의 자 의적인 선거평가를 기초로 이번 대선투쟁에서의 실패를 은폐하며, 87년 노동자대투쟁에 이은 민주노총 건설, 작년의 총파업투쟁을 거 치면서 노동자대중이 이미 체화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노동 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오도하는 일은 더 없어야 한다. 또 다시 노동자 민중이 일부 인사의 제도권 진출을 위해 득표전략적으로 고 려된 '동원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존의 문제 와 정치활동의 명암이 교차되는 당면한 투쟁, 즉 IMF금융지원을 계기로 강화되는 독점자본의 공세에 대응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야말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3. 선거전술에 대한 구체평가
가. 15대 대선의 성격 규정과 관련하여
97년 대선을 계기로 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시도는 대선 총괄계획에서 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15대 대선의 성격을 '21세 기에 경제번영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조국을 건설해 우리 민족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나서느냐 아니냐를 가늠할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걸려있는 역사적 사건이다'라고 여느 보수정치세력보다 한술 더떠 애국주의적으로 규명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미 국민승리21 의 국민후보가 바라보는 15대 대선의 탈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 경쟁구도는 노동자 민중의 진보적 요구와 투쟁을 전제로 한 보수정치세력과의 차별성에서가 아니라 개별적으 로 대상화된 상대후보의 슬로건에 따라 유불리가 결정되고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우리 후보의 주요타격방향은 이인제이며, 최근 시작된 이인제의 약세는 우리의 호재이다'라고까지 비약하였다.
나. 득표전략
이러한 성격규정은 '계급투표전략과 집단이익 고취전략을 조화, 병행해야 한다'는 선거득표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급투표전략은 여기에서 서술상 앞에 있지만, 보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말 로만 들어간 측면이 강하다. 결국은 지금의 우리나라 유권자의 의 식상 계급투표성향이 낮은 현실을 감안하여 집단이익 개념을 과감 히 도입하여 대중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노동 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선거를 통하여 계급의식을 제고하 고 이를 표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손 치더 라도, 봉급생활자, 납세자, 분단비용, 정리해고, 퇴직금, 5대질병 무한책임 등을 집단이익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애초부터 계급투표 전략, 즉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요구를 기초로 한 투표전략은 없었 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추상화된 국민의 하나로 계급성이 탈각된 개별적 존재로서 가두의 인자로만 존재하고, 후보의 이미지나 좌표 도 최대한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제로 한 합리적인 진보주의자로서 총파업을 지휘하는 노동자 계급 대표자의 성격은 상실하였다. 그리 고 중심 컨셉트는 '민중후보 백기완,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 대로'와 같이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정치지형의 조건상 이데올 로기적 추상개념을 명확히 사용하거나 준이데올로기적 추상개념을 함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정치적 쟁점 형성과 지지확보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식으로 우회하여,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도 모를 몇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진보진영에 바라는 핵심 선거정 책으로서 '21세기 사회보장 대혁명'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정치연대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10월말을 기점으로, 또 계급적 성격을 물타기한 국민후보로서의 득표력이 없 다는 것이 사실적으로 확인된 선거투쟁의 막바지에 '현수막 바꿔달 기' 등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를 통해 부분적으로 수정되나 전체적 인 기조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투표전략이야말로 현재의 지 역주의, 분단이데올로기를 통치기제로 하는 집권구도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꼴이며, 결국은 막판 지역바람과 사표기피정서에 휘둘리 게 되어 그리도 열망하던 득표에서마저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 홍보
15대 대선의 애국주의적 성격규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이 홍 보 슬로건이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수막과 벽보는 가히 압권이었다. IMF금융지원 을 계기로 한 공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구호는 국민적 상실감 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유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바있다. 결국은 대중적 요구에 의해서 교체되는 해프 닝을 연출하였으며, 대중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97 선거투쟁에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총파업에 이은 노동자 민중 투쟁의 연장으로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민중생 존권 등의 노동자 민중의 당면한 요구를 중심으로 홍보가 됨으로써 선거투쟁의 전술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어야 할 것이다. 이는 특히 대중투쟁을 조직한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이와 같은 기조가 초기부터 분명했다면 IMF지원금융을 계기로 한 정세는 오히려 대중적 분노와 불안을 조 직하여 이를 투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득표로 조직하는 호재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선후보로서 파격적인 삭발을 감행하고 일자리 지키기운동을 선언하는 등의 기조전환은 이미 때 늦은 것이었다.
라. 조직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각 조직의 낮은 결의수준과 기조와 정책 상의 한계는 대중을 정치활동으로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 이었다. 선진노동자를 정치실천단으로 집중시켜내고 이를 통한 정 치활동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하는 정치조직의 토대구축은 제대로 이 루지지않았다. 이는 노동자를 동원의 대상으로, 자금원으로서 배치 함으로서 노동자 정치활동의 전형을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대선투 쟁으로 나아가려는 기획이 뒤따르지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으며, 정 치실천단이 대중조직의 하부체계에 귀속되어 있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대중을 조직할 수 있는 토대로서 민주 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주도하고 있으며, 조합형식으로 조직된 대 중을 선거참여를 매개로 정치투쟁에 나서게 해야한다는 점을 전제 로 한 전술이 구사되어야 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선거투쟁이 었다.
한편 '대선을 통해 진보민주진영의 정치조직을 성과로 남기기 위 하여 시군구(가능하면 선거구)지부로 회원화하고……이후 지방선거 를 대비한다'는 조직기조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선대본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노동자 정치활동 의 구심으로서 정치조직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정치쟁점화하기 위해서 노동자 활동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전국적 차원에서 구축되 었어야 했다. 전국 시군구지부 또는 선거구는 오히려 지자체 또는 국회의원 선거 등 지역정치가 전면으로 등장하는 선거에서 주요하 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으로 전국적인 정치쟁점이 중요하게 제시되 어야 하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는 조직상의 혼선을 빚으며 시급하 게 구축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11월 초 돌발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많 은 논란을 야기한 선거용 종이정당과 관련되어 나타난 비민주적인 운영방식이다. 97대선후보전술은 정치조직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 화를 염두에 두고 출발하였다. 따라서 정당건설은 노동자정치세력 화를 구체화하는 도정에서 제기되는 고도한 정치행위로서 방향과 조직구성의 문제 등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 황이었다. 전후좌우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선거를 앞두고 보다 효과 적인 전술을 구사하기 위하여 전술용 정당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고려가 가능한 사안이다. 그러나 국승21의 정책과 기조에 대한 상 당 정도의 대중적 불신이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민주적 절차와 합의없이 제기된 종이정당은 합법주의적 투쟁에 매몰된 것이 아닌 가하는 비판과 함께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 이정당 건설이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에 얼마만큼의 방어벽 역할을 했는지 선거전술상 유리하게 작용한 정도가 얼만큼인지가 구체적으 로 평가되어야 하겠다. 하지만 그간 정당건설에 대한 수많은 실험 적 시도가 오히려 정당건설에 대한 신화를 허물고 대중적 신뢰를 떨어뜨리듯 시도조차 안하니만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지 짚어 져야 할 것이다.
마. 유세와 관련하여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활동의 전형을 창출하기 위한 시 도가 유세를 통해서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대중동원과 쟁점형 성에 한계가 있는 각 부문운동의 기획유세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공단방문 등 노동부문의 유세마저 이벤트적 성격이 짙어 노동대중 을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닌 관람자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주 체형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옐로, 레드카드 등은 유세를 희화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TV에서 나온다'하여 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미디어선거가 정착되어 간다는 평가를 제도권안팎에서 아주 쉽게 내리고 있다. 국민승리 21 역시 '70% 이상은 언론에 의해 결 정'되므로 '언론을 의식한 후보일정만들기, 끊임없은 기사거리의 제 공, 언론과 호의적인 관계만들기'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에서는 '진보진영은 매스컴 선거에 이상가는 조직활동으로 이번 선 거에 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거 기조에서부터 계급대중운동과 거리가 멀어있어서 조직활동을 통한 선거운동은 출 발부터 현실성을 상실하였다. 실제로는 접근의 현실성도 없는 미디 어를 강조하는 선거운동방식을 택함으로써, 이미 불을 보듯 빤한 실패의 원인을 전가할 대상을 이미 준비해논 셈이다.
서구에서 대중과 분리된 좌익정당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전략 아래 포섭하기 위해 활용되는 미디어정치가 우리에게는 지역주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과 자본의 지배전략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김영삼정권 이후 줄곧 이루어지고 있던 미디어를 통한 진보운동의 포섭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접근권이 차단되어있는 미 디어는 전술적 활용의 대상일 뿐이며, 권영길후보를 외면하는 미디 어를 원망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에 준한 선거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했다. 노동자 민중에게 카메라가 오게 하는 전략 그것은 노동자 민 중의 힘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점은 경험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대중의 요구를 배경으로 행동과 투쟁을 촉발하고, 투쟁의 결과를 자연스럽게 득표로 (굳이 필요하다면 카메라로) 연결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카메라에 많이 비치면 인지도는 높아질 수 있겠지 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득표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 다. 지난 국회의원선거에서 노태우, 전두환을 감옥으로 보낸 탈렌트 급 인사조차도 지역바람에는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선거풍토를 모 르고 있는 것이다.
바.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국민승리21의 선거기획안에 명시된 데로 '마음가는 데 돈가고, 돈가는 데 표간다'는 말만큼 명확한 선거평가 기준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대선투쟁은 명백하게 실패한 투쟁이 다. 92년 대선과 비교하든, 최근의 북한돕기를 비교하든 모금된 돈 과 관련해 비교한다면 노동자 대중은 마음으로부터 떠나 있었으며, 단순히 돈내고 표찍는 동원대상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대중조직과 함께하지 못한 92년조차도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모금을 통하여 등 록부터 TV후보연설, TV지원연설 등을 거의 빠짐없이 한 바 있다. 가장 어렵다는 재정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오 히려 선거투쟁참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본전 생각나게 하는 선거기조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기부 를 하는 모금방식은,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모금에 결정적 인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법적으로 허용된 유세조 차 돈이 없어 거의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러버린 것이다.
모금과정에서부터 100만원은 중앙위원, 10만원은 대의원하는 식 의 차등을 두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보수정당이 기부금 액수에 따라 전국구, 지역수를 배분하는 관행을 소규모로 흉내내는 것으로 말 그대로 소부르주아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면 해고자, 저임금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민중은 중요한 결정과 정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으며, 돈이나 내고 표나 찍는 존재로 전 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노총의 정치실천단 구성시에는 모금액 수에 따른 차별을 없앰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국민승리 21은 마지막까지 직책,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의 모금을 했 다.
4. 앞으로의 과제
가. 97대선의 성과와 과제
권영길후보는 30만 6026표, 1.2% 득표에 머물렀다. 민주노총이 나서고 진보진영이 결집한 선거로서는 92년 대선에서 얻은 1.0% 23만 8648표에 비견한다면 기대이하의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그 러나 표를 기준으로 선거투쟁 전체를 평가할 수만은 없으며 오히려 그 결과를 도출한 성과와 한계가 무엇이었는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평가해 볼 때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몇가지 점은 주목해야 할 의미있는 것이다.
그 하나가 울산, 창원, 유성 등 노동자 밀집지구에서의 권영길후 보의 높은 득표율이 그것이다. 국민승리21의 기조에 반발하면서도 노동자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밝은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득표결과는 국민승리21의 정 책과 기조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정되었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 여주고 있다.
종이정당 건설과 몰계급적 슬로건, 유세내용 등과 관련하여 노동 자 대중의 반발이 조직되었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개인차원에서 통신으로 항의를 하는 것은 물론 지역 및 정치위원회 차원에서 조 직적으로 문제제기를 함으로서 동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중의 요구가 보다 분명해짐으로서 정치세력화의 전망은 오히려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조직 차원에서 정당선택의 자유 등 대중의 정치적 활동은 보 장되어야 하는 것이 조직원리상의 기초일 것이다. 더구나 오도된 정치노선을 조직의 이름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선거를 계 기로 대중적인 정치활동의 전형을 구축해가고 있는 개인은 물론 정 치실천단이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여건을 학보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정치세력화의 주체형성에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조직 의 하부체계로 편재되어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강제되면서 스스 로를 소진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나. 당면한 정세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국민적 여망으로 판단하고 있는 세력에게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은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벌써 민 족민주운동의 주요한 부분들에서 협력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을 천명하는 등 이후 정치구도의 변화가 민중운동진영에 미치는 파장 역시 상당할 것이다. 또한 제도권 정치로의 진출을 가장 중요한 목 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향후 제도 정치권의 선거일정이 가장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노동자 민중이 사회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 속에서 지금의 과제를 위치지운다면, 98년 상반기 과제는 당면한 대중투쟁을 통한 정치세 력화이다.
IMF지원금융을 계기로 애국주의를 앞세운 시민운동의 엄호아래 위기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국내외독점자본의 공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대통령에 취임도 하기전에 김대중당선자의 선거공약은 파기되어 IMF와의 협상안에 대한 100% 관철을 전제로 한 반민주 적이고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책들이 입안되고 있으며, 금융실명 제 유보,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의 관철의지를 지속적으로 내 비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파업 투쟁의 유일한 구체적 성과로서 도입이 2년간 유보되었던 정리해고 제가 임시국회가 시급히 소집되어 사회적인 논의없이 졸속으로 도 입될 조짐이다. 지난 총파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험 악한 형국에서의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 권을 확보와,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사회적 통제를 통해 노동자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위기국면이라 할 현재의 시점에서 제도권의 정치일정에 따른 정치세력화의 경로 즉 지자제를 전제로 한 국민승 리21의 대선후보전술에 대한 평가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 조직의 건설은 지나간 투쟁의 성과를 청산하지 않고 계승하는 것이 자 그 성과와 한계가 극복되는 방향에서 재조직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선을 계기로 한 노동자 정치활동의 성과를 조직하는 것이 그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투쟁의 결과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 지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이어 받아 정파적 이익에 따라 이용하 려 한다면 이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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