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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15대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김대중에 대한 지지도가 그간 유권자의 35%선에 머물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그가 그 선에서 득표했더라면 그의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그는 이번 대선에서 적어도 4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려야만 했고, 40%선의 득표율을 올린다고 할지라도 경쟁자의 득표율이 김대중의 그것 보다 높지 않아야만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와같은 조건이 충족되었고, 이로써 그는 15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민련과의 연합 내지 DJT 연대의 구축에 성공함으로써 김대중은 마(魔)의 35%선을 넘어 40%을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을 획득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연합의 구축에 힘입어 영남민과 보수적 유권자층의 반DJ 정서가 누그려졌으며, 이들이 김대중 당선을 막기 위해 유력한 다른 경쟁자에게 몰표를 몰아주는 사태가 방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민련과의 연합은 그의 당선을 가능케 한 필요조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자민련과의 연합을 전제로 한다면 이회창후보의 두 아들 병역기피 의혹사건이 터져나온 것이 그의 당선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인제의 탈당과 그의 선전(善戰), 미국의 간접적 지원과 김영삼의 암묵적인 지원, 외환-금융위기의 도래와 IMF관리체제의 성립 등이 크게 작용했다. 그외 박찬종이 이인제를 지지한 것과 국민승리21의 권영길후보가 겨우 30만표 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 등도 그의 당선에 기여한 요인들에 속한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한 그 자신의 집요한 노력과 여러 우연적 요인들의 개입 덕분에 대망의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며 이를 통해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게
되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서 한국사의 전개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변수 중에 속한다. 이 발제문의 주제는 김대중의 정치노선을 검토하는
선 상에서 아직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출범한 것과 마찬가지인
김대중정권 하에서 노동자운동이 어떠한 진로를 걸어야 할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김대중은 누구인가?
자연인으로서의 김대중은 70세 중반의 고령인사이다. 이 점에서 그가 과연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을 것인지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해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매우 건강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문제는 이 글의 주제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
김대중은 무엇보다 군부정권 하에서 전개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납치, 투옥, 사형선고 등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으며, 지배층으로부터 대표적인 반체제인사나 좌경 용공인사로 몰리는 가운데 항상 위험시되거나 불온시당해 왔다. 그러나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긴 했지만 군부정권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한 인사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군부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재야세력과 연대할 때에도 급진 재야세력 내지 재야세력의 전투적 부분과는 항상 거리를 취했으며, 군부정권을 민중투쟁을 통해 타도하려 하기 보다는 그들과 일정하게 타협하는 가운데 선거를 통해 퇴진시키려고 했다. 군부세력과의 타협을 추구하면서 이들을 선거를 통해 퇴진시키려고 한 그의 온건 저항노선은 결과적으로 군부정권의 연장에 기여했으며 군부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의 발전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가 5.18 민중항쟁의 배후조정자로서 군법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은 그에게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번도 그러한 민중항쟁의 지도자로서 활동한 적도, 또 그러한 지도자가 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김영삼과 더불어 13대 대선에 출마함으로써 그는 노태우정권의 출범을 결정적으로 도왔으며, 이로 말미암아 군부정권의 조기 퇴장을 방해했다. 나아가 그의 13대 대선 출마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야당세력을 분열시키고 군부정권이 만들어낸 지역대립구도를 결정적으로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긴 했지만, 그의 역할은 한국 민주화운동이 올곧게 성장하는 데에 기여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지극히 더디고 우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 것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는 가운데 그는 많은 중소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호남차별구도가 고착됨으로써 그에 대한 타 지역주민들의 지지는 계속 엷어진 반면 군부정권 하에서 지역적 차별의 주된 표적이 된 전라도민들로부터는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이 점에서 그에게는 중소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전라도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겹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개의 이미지는 전라도민의 압도적 다수가 중소시민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지만) 중소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그가 중소서민층과 그 압도적 다수가 서민층인 전라도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된 데는 그가 박해받은 지역인 전라도 출신의 정치인이라는 점, 나아가 군부정권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야당인사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입장에서 중소서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강-정책을 제시해 온 점등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그가 제창한 적이 있는 '대중경제론'은 '민중주의적인 진보성'을 상당히 담고 있었다.
그가 야당인사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야당정치인에 속했다는 사실은 지배층과 그들의 영향 하에 있는 보수적 유권자층이 그를 항상 위험분자 내지 용공분자로서 배척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보수적 유권자층 등이 그들 따돌리는 한, 김대중이 대통령에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후 대권 장악을 위해 지배층과 보수적 유권자층 및 미국의 지배층에게 자신이 결코 위험분자나 용공분자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애써 왔다. 14대 대선에서 그가 이른바 '뉴DJ플랜'을 내세우면서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선전하기 시작한 것은 - 이것이 14대 대선이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가 아니라 순수히 지역대립구도에 의해 규정되도록 만든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별도로 치더라도 - 그 당시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적어도 보수적 유권자층의 상당부분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음이 없이는 결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4대 대선에서의 패배는 이후 그의 '보수화'를 더욱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점에서 14대 대선 패배 이후의 그의 정치활동 궤적은 한마디로 갈수록 더욱 보수화되고 진보성을 탈각시켜 나간 것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화를 통해, 그리고 자민련에게 대폭적인 양보하는 것을 통해 자민련과의 연합 내지 DJT연대를 성사시키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그 덕분에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대망의 대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행적에 비추어 보아 우리는 김대중이 애초에는 제도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더물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민중주의적 진보성을 지닌 자유부르주아 정치인이었지만, 이후에는 점차 보수화되어 ('부르주아적 진보성'은 소지하고 있다할지라도) '민중주의적 진보성'은 잃어버린 자유부르주아 정치인으로 변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전형적인 옹호세력인 자유부르주아세력은 군부독재체제와 같은 '공개적으로 억압적인 부르주아국가체체' 하에서는 합법적 정치공간을 박탈당하고 지배블럭으로부터 배제당함으로써 피지배민중과 (일정한 거리를 지닌 가운데에서도) 많든 적든 연대하거나 제휴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되어 나가면 이들 세력은 체제의 재생산에 가장 기능적으로 역할하는 정치세력으로 되며, 또 그런만큼 그들에게도 집권의 기회가 부여될 뿐만 아니라 야당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지배블럭의 일원 내지 가장 중요한 분파로 편입하게 된다. 다른 한편, 자유부르주아세력은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기본적으로 옹호하긴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체제에 근본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 결함을 제거하기 위한,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규제를 옹호하는 '혁신자유주의분파'와,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표시하면서 그러한 사회적 규제의 제거 내지 최소화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분파'로 구분된다. 그런데 자유화, 탈규제화 등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운동에 대해 혁신자유주의적, 사민주의적 규제가 가해진 체제에서는 그러한 혁신자유주의적, 사민주의적 규제의 폐기를 옹호한다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보수반동적인 성격을 지닌다.(주1)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군부독재 하에서 자본운동에 대한 관료권위주의적 규제가 가해지고 정경유착체제 하에서 재벌지배체제와 같은 천민적인 자본주의적 경제질서가 정착해 있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경제구조의 선진화-합리화'에 기여하는 일정한 진보적 측면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정치구조의 민주개혁 등에 반대하는 파시즘적-수구적 노선과 결부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러한 민주개혁과 결합시키려는 개혁적 노선과도 결부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크게 보아 '파시즘적 내지 수구적 신자유주의'와 '개혁적 신자유주의'로 구분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궁극적으로는 자본운동의 자유 보장을 중점에 놓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에서 어디에서나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이며, 또한 그러한 한에서 어디까지나 보수반동적임을 우리는 옳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은 그간 자신이 '자유시장경제론자'임을 공언해 왔다.
그런데 그가 자신을 '자유시장경제론자'로 보는 한에서 그의 노선은 자본운동의
세계화-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국면에
빠져있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조건 속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그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위해
그간의 관료권위주의적 규제의 철폐, 정경유착구조의 청산, 재벌체제의 개혁
등에 나설 것이며 아울러 군부독재체제의 비민주적 유산들을 제거하기 위한
민주개혁 등을 일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파시즘적 또는 수구적 신자유주의분파가 아니라, 개혁적 신자유주의분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이 공황국면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수구보수세력과
연합하고 있는 데다가 한국사회의 중추를 수구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행하는 민주개혁 역시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은 한국에 불어닥친 외환-금융위기로 말미암아 한국이 IMF관리체제 하에 놓여 있는 조건 속에서 당선되었다. 이 점에서 김대중정권은 앞으로 미국자본이 중심을 이루는 초국적독점자본의 국제통화관리기구인 IMF의 직접적인 지시-통제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김대중정권의 행보는 기본적으로 IMF 처방의 한계 내에서 이루질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한 IMF 처방의 성격 등을 살펴 보는 기초 위에서 김대중정권의 진로 등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한다.
IMF의 처방은 (1) 한국경제의 위기가 세계경제의 위기로 비화되는 것을 막고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구제금융의 제공 등을 통해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지원한다는 측면과 더불어 (2)한국에 대한 지원을 동시에 미국자본이 중심인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계기로 적극 활용한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미국이 100억불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조기집행하기에 앞서 미국과 초국적자본이 자신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관철시키기 위한 압력을 집중적으로 가한 점 등은 그 지원이 단지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돕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IMF는 '금융 및 기업부분의 근본적인 결함' 등을 한국이 위기에 빠지게 된 주요원인으로 보면서 긴축재정의 실시, 부실금융기관의 도태-정리,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경영투명성의 확보, 금융-자본-상품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위기극복책으로서 제시했다. 이러한 처방은 말할 필요도 없이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위기타개책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재벌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에서 드러나다시피 한국경제의 천민적인 구조를 개선하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IMF 처방은근본적으로 어디까지나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위기부담을 노동자-민중에게 철저히 전가시키는 처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IMF의 처방은, 설령 그것을 통해 위기극복이 이루어지다고 할지라도, 한편으로는 한국경제의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대중을 개별화-원자화시키면서 이들을 자본논리에 철저히 종속시키는 동시에 소득불평등과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켜 소수 부유층을 제외한 다수대중의 빈궁화와 빈민화를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은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모범사례로서 칭송받고 있는 멕시코의 현실에 의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으며(주2), 후자의 측면은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철저히 이루어진 가운데 1990년대에 들어와 장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사회가 그러한 호황의 혜택이 다수 대중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이른바 '5분의 1, 5분의 4 사회'로 급속히 전락하고 있는 사실(주3)등에 의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다른 한편, IMF의 처방에 담겨 있는 초국적독점자본의 요구는 내국독점자본의 요구와 배치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서로 간에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 역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그간의 개방화 등을 통해 외국자본이 한국으로 많이 진출하기 했지만 그 진출은 아직 매우 미약한 수준에 머물어 있다는 점, 한국이 금융, 기술 등의 면에서 대외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자신의 축적기반을 상당한 수준에서 지니고 있는 내국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사회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김영삼정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탈규제화, 자유화, 유연화 정책 등은 내국독점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기도 했으며, 내국독점자본 역시 이른바 '세계화 전략'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본축적전략으로서 이미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나아가 비록 김영삼정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그러한 세계화 전략이 위기의 도래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지만,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도 한국의 내국독점자본은 그러한 '세계화전략'을 앞으로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내국시장의 개방화를 반대하는 등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내국독점자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내국독점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아울러 고려해야 하는데, 이 점은 초국적자본 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재벌개혁 등은 개별재벌 총수들의 직접적인 이익에는 배치되는 것이긴 하지만, 독점자본의 경쟁력 강화 등을 가져오는 등 내국 총독점자본의 '장기적' 이익과 결코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이 IMF 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됨으로써 내국독점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초국적자본의 요구가 보다 강력하게 관철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경제의 대외적 종속성은 앞으로 크게 진척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국독점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초국적자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그 요구가 내국독점자본의 전면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한국이 국가부도사태에 빠지고 부실기업은 물론 이른바 '우량기업'까지 모조리 파산하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는 것에 비한다면 내국독점자본의 이익에 휠씬 합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IMF의 처방을 종속성의 심화를 일차적으로 중시하는 입장에서 인식하거나 그 처방이 한국을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인 식민지 내지 신식민지적 상태'로 빠뜨리는 것이라고 보는 일부의 견해에 반대한다. 실제로 그러한 견해는 IMF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됨으로써 한국경제의 종속성이 더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는 측면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현 위기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차시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기본적으로 초국적독점자본은 물론 내국독점자본의 이익에 상응하는 처방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으며, 초국적자본이 내국독점자본의 한국지배를 해체시킬 것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주4) 다른 한편, 금융-자본-상품시장의 완전개방 등이 이루어진다면, 경제과정에 대한 국가적 조절능력의 현격한 저하로 말미암아 현 시기의 위기가 극복된다고 할지라도 한국경제가 더욱 위기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은 더 한층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 일국적-초국가적 조절매커니즘을 약화시켜 세계경제 전체를 위기에 더욱 노출시키고, 위기가 보다 파국적인 양상을 띄고 전개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점에서 위기를 신자유주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은 동시에 경제를 위기에 더욱 노출시키고 그 위기가 보다 파국적인 형태의 위기로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김대중의 당선에 의해 한국은 실로 50년 만에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당선은 지배층이나 보수적 유권자층의 지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외된 층의 지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당선은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커다란 획기를 긋은 일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당선은 - 비록 다른 부르주아 정치가들에 비해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진보성'을 상대적으로 더많이 지니고 있긴 있지만 그를 위험분자 내지 불순분자로 낙인찍히도록 만든 '민중주의적 진보성'을 그가 버린지는 이미 오래되지만 - 우리 사회의 지배층과 기득권층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배층과 기득권층은 그의 당선에 저항하기 보다는, 그에게 적응하고 재빨리 그를 지지하면서그를 길들이는 쪽으로 입장을 돌변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당선되었을 때 김영삼대통령은 이미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존재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선되자마자 그는 곧장 대통령직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이 점에서 김대중정권은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출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국정 책임자로서의 김대중'을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야당지도자로서의 김대중'은 물론 '야당에게 합법적 정치공간이 열린 조건 하에서 야당지도자로서의 김대중'과 명백히 구분해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군부독재 하에서 김대중은 지배불럭으로부터 배제되고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은, 독재에 반대하는 범민주연합운동의 대표로서 피지배대중의 운동과 일정하게 제휴하거나 연대했었다. 그러나 합법적 정치활동의 공간이 열린 이후의 김대중은 비록 야당지도자였지만, 큰 틀에서는 지배불럭을 구성하는 여러 분파들 중 한 분파의 대표자였으며, 통치불럭의 대표자는 아니었지만 지자제의 실시와 더불어 통치불럭의 하위부분에 참여한 야당분파의 대표자였다. 그러나 이제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중소서민층 등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긴 했지만 더 이상 범민주연합의 대표자나 중소서민층의 대표자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통치불럭의 최고지도자로서 위기에 처한 한국자본주의와 지배질서의 안정적 재생산을 총괄하게 된 (그 속에서 독점자본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내국총자본의 대변자이자 지배불럭의 대표자가 되었으며, 그러한 입장에서 계급갈등을 위시한 제사회세력 들 간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최고 조정자가 되었다. 아울러 그는 IMF 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된 정권의 집행책임자이다. 이로 인해 그는 내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도 초국적자본의 이익도 아울러 충실하게 대변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무엇보다 초국적자본과 내국독점자본 간의 이해의 공통분모를 함께 대변하는 초국적자본과 내국총자본의 대변자이자 그들 간의 갈등을 조절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김대중의 당선을 통해 무엇보다 국가체제로의 전라도민의 통합은 결정적으로 촉진되었다. 그리고 김대중정권은 앞으로 지역갈등의 해소에 많든 적든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정권의 지역차별 해소정책이 영남민들에게 영남출신 인사들의 기득권을 지나치게 해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지역갈등이 추후에 새로운 형태로 증폭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김대중정권은 초국적자본과 내국(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양보적 통합책과 우리 사회의 민주개혁 등과 일정하게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은 우리 사회의 많은 피지배대중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인물인 동시에 대중에 대해 '포퓨리즘적 설득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피지배대중을 체제에 통합시켜 나감에 있어 김대중은 누구보다도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 현 상황은 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도 '우선은' 피지배대중의 협력이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지배층은, 비록 자신들이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최적의 인사를 자신들의 대변자로서 맞이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김대중정권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민중진영은 대응하기가 가장 어려운 상대와 부딪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운동을 국가와 자본에 대해 자립성을 지닌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김대중의 포퓨리즘적 설득 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민중운동이 여론과 일반 국민대중으로부터 고립될 가능성 역시 높아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대중정권이 자민련과의 연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수구보수세력이 국가와 사회의 핵심영역에 광범하게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정권이 취할 수 있는 양보적 통합책과 민주개혁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국경제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고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을 매우 강도높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러한 개혁과 통합책이 지극히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위기타개책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위기타개책의 성격을 지닌 것인 한,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반노동자적-반민중적 성격을 지닌 것인 만큼) 그러한 위기타개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되는 민주개혁이란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후퇴 내지 실질적인 반동 속에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외형상의 진보' 내지 '민주주의의 실질적 후퇴로 인한 민주개혁의 허구화'의 성격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김대중정권의 위기타개책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동자-민중으로부터 커다란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증대해지면, 김대중의 정권의 무력화가 나타나고, 정국운영의 주도권이 위기의 파시즘적 해결을 요구하는 수구보수세력에게로 넘어 갈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그런데 한국이 현 시기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의 여부는, 물론 김대중정권의 위기타개책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겠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세계경제의 발전양상 및 초국적자본의 태도에 의해 기본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을 위시하여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경제공황이 세계공황으로 발전한다면 - 실제로 현시기 한국의 경제공황이 세계공황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데 - , 이 경우에는 김대중정권의 노력이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대중이 행한 첫 발언은 정권교체의 의의 및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조화를 추구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에 관한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당선되기 이전에 김현철의 출소를 지지한데 이어 동서화합과 국민적 대화합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전-노사면에 찬성했다. 이로써 그는,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제외한다면, 과거청산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표시했다. 5-6공세력과 김영삼에게는 희소식이지 않을 수 없다.
당선된 후 그에게 떨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국경제가 빠져든 경제위기의 탈출책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선기간 중 'IMF와의 재협상론'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 그것이 그를 궁지로 내몰자 IMF와의 협약을 충실히 준수하겠다는 입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돌변시켰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입장을 변화시킨 데에는 단지 당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IMF의 요구사항이 비록 과도한 개방요구와 긴축재정의 요구 등과 같은 매우 가혹한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자유시장경제론자'로서 IMF의 처방이 위기타개책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적절하다고 그 자신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IMF의 요구를 단지 외부의 주문으로서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재생을 위한 '한국민 자신의 플랜'으로 삼겠다는 점을 IMF측에 약속했다.
그러나 그에게 붙어있는 ''민주투사' 내지 '중소서민층의 대변자'라는 이미지와 선거 기간 중에 해고제의 조기도입에 반대하고 IMF와의 재협상론을 들고 나온 적이 있는 점 등은 서로 동일하거나 다른 이유에서 국내외의 자본가층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외국의 지배층과 보수언론 등은 김 당선자가 만약 우유부단하게 행동할 경우 외국의 지지를 받지못해 한국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재빨리 경고하는 동시에, 친노동자적 정책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고통감수를 요구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김대중이 당선되자마자 초국적독점자본의 첨병인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완벽한 정크본드로 떨구어 버림으로써 그가 초국적자본의 요구를 수용해 IMF의 요구사항을 아무런 유보없이 시행하도록 마지막 압박을 가했다. 신용등급이 이와같이 하향조정되자 곧바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국내외의 부르주아 언론들은 국가부도 위기의 임박 등을 거론하면서 입을 맞춘 듯이 그의 결단을 재촉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자 김대중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그는 22일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차관 등 미 정부 대표단과 가진 IMF 관련 회의에서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고 IMF의 요구사항을 유보없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솔로스와 같은 대표적인 국제 금융투기업자와 만나 한국에 투자할 것을 권유하고 조언을 청했다. 또한 노동단체대표자들과 만나 '사회적 합의'에 참여할 것과 외자유치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정리해고제 등을 수용할 것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며, "금융기관이나 한계기업의 인수-합병시 '고용승계 의무'의 폐지를 취임 전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그는 예상을 초월한 위기의 심각성, 외자유치의 필요성 및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통한 기업경쟁력의 강화와 이를 통한 더 많은 일자리의 창출 등을 내세우면서 정리해고제의 조기도입 반대라는 그의 선거공약을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철회해 버렸다. 이와 더불어 그는 노동자들에게 임금동결 내지 임금인하 및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감수할 것과 그런 조건 속에서도 경제위기의 극복 등을 위해 생산성의 향상 등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김대중은 경제위기에 처하게 만든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포푸리즘적 설득 및 일정한 양보적 통합책의 강구를 통해 무마하려는 시도 역시 재빨리 착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노동자들의 고통감수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재벌개혁과 민주개혁을 약속하면서 '노-사-정위원회'의 설치를 추진했으며, 이 기구 속에서 노-사-정 간의 합의와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민주노총까지 노-사-정 합의기구에 참여하게 되고, 3자가 대타협의 기본방향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그가 최근에 중요한 정치적 성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이루어진 계급타협체제는 고용과 상대적 고임금의 보장 및 사회복지체제의 수립 등을 대가로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시기에는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할지라도 고용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린다는 것이 노동자들로부터 합의를 받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제시되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경제위기의 도래로 인한 불가피성을 들어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생존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받는 것을 자발적으로 감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동결과 임금삭감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비의 일부를 자본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노사대화합을 위한 그의 플랜에는 임금동결분과 임금삭감분을 (노동자로의 소유권의 이전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최소한 보전하려는 아무런 방책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감원을 방지하기 위해 감봉을 감수한다면, 이는 '노동공유를 통한 노동자들 간의 고통분담'이지 결코 사용자가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실시가 법적으로는 아직 연기되고 있긴 하지만 정리해고제는 실제로는 오늘날 산업의 전부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취업층의 근 절반에 가끼울 정도로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미 크게 진척되어 있다. 게다가 기업도산과 경영합리화를 위한 인원감축은 물론 기업의 인수-합병 등이 앞으로 크게 진척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리해고제까지 합법화되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용을 지킬 마지막 수단을 잃게 된다면, 고용불안정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성 및 임금하락과 노동강화 등이 결정적으로 촉진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말미암아 실질임금의 급격한 하락을 가져오는) 임금동결과 임금인하가 이루어지는 조건 속에서 정리해고제까지 실시된다면, 이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불러일으킨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면적으로 전가시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김대중은 노동자들에게 고통감수를 요구하면서 노사대화합을 위한 방안으로서 무엇보다 재벌개혁을 크게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상호지급 보증 금지, 결합재무제표의 작성, 기업투명성의 제고, 그룹 간의 '빅 딜'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의 강구 등 그가 제시하고 있는 재벌개혁의 내용이란 IMF의 요구수준을 크게 넘어서는 것이 아니며, 한국 기업구조의 '선진화-합리화'에 기여하고 총독점자본의 장기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지, 총노동에 대한 총자본의 어떤 실질적 양보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 중 IMF의 요구를 넘어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재산을 기업에 출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사재 출자란 기업가들이 자기재산을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지 노동자들에게 임금동결분이나 임급삭감분을 보전해 주는 것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아가 노동기본권의 확대 보장과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 등 그가 공약하고 있는 일정한 민주개혁이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지, 위기가 안겨주는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도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대중정권 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신장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등이 폐기될 전망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 시기에 나타나고 있는 김대중의
위기타개책이 임금과 고용이라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에 관계되는 핵심적인
문제에서 노동자-민중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위기타개책은
이른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창달과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내국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위기타개책은 '빅 딜' 등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들을 육성시키는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병행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위기타개책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며,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것이다. 그러한 기조 위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보장하고 재벌개혁 등을 통해 총자본의
장기적 이익을 지키는 방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등을
통해 일종의 코포라티즘적 계급타협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위기타개책이 실패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보다
코포라티즘적 계급타협체제 구축의 기반을 훼손시키면서 그러한 계급타협체제를
구축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는 데에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의 도래와 IMF관리체제의 성립 및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등은 한국 노동자운동에게 엄청난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경제위기의 도래는 노동자운동에게 한편으로는 위기부담을 노동자대중에게 전가시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민중생존권을 보장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절박한 것으로 만드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적 관점이 아니라 국민적 관점에 서서 자본과 협력하여 우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유혹을 안겨준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IMF관리체제의 성립은 한국의 노동자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초국적독점자본의 지배 하에 놓여 있는 세계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세계 각국의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나아가 포퓨리즘적 설득과 일정한 민중통합책의 강구를 통해 위기의 신자유주의적 해결을 적극 추진하려 하는 김대중정권이 사실상 이미 출범한 것은 한국노동자운동의 지형을 변모시키는 중요한 새로운 조건임에 틀림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역대정권 중 가장 친노동자적인 김대중정권이 출범했기 때문에 정권과 협조하여 위기탈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을 지니고 유포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김대중정권의 출범은 노동자운동을 체제내적 운동으로의 전화를 촉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김대중정권의 위기타개책은 본질적으로 민중생존권을 파탄으로 내모는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것이다. 이 점에서 김대중정권 하에서도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체제내화된 자본종속적인 운동으로 전락함이 없이 국가와 자본에 대해 명백히 자립성을 지닌 대안적 운동으로 성장-발전해 갈 수 있는 지의 여부는 노동자계급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제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저항하는 전세계 노동자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공황기에 노동자운동이 직면하게 되는 과제라는 점, 한국이 빠져든 공황은 아시아전체가 빠져든 공황의 일환이라는 점, 현 시기의 공황는 세계공황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공황이라는 점, 공황의 초기국면에는 자본과의 협력을 통해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정한 설득력을 지닐지 모르지만 공황이 지속되는 조건 속에서는 생존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대중의 운동이 밑으로부터 폭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공황은 대중을 한편으로는 더욱 자본논리에 종속시키고 절망에 빠뜨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각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나설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제공해 준다는 점, 신자유주의적 위기타개책은 경제과정을 위기에 더 한층 노출시키는 동시에 한번 닥친 위기가 파국적인 양상을 띄고 전개토록 만든다는 점, 신자유주의적 위기타개책은 공황을 벗어날지라도 노동자대중의 생존권을 끊임없이 압박하는 기제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점 등을 유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자운동은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가운데 그 투쟁을 경제과정에 대한 사회적 규제 내지 민주적-민중적 규제를 확대하고 사회구조의 민주변혁을 위한 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 확고히 결합시켜 나가야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 시기 한국 노동자운동의 당면투쟁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노동자대중의 생존권의 확보는 어떤 시기, 어떤 조건 속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노동자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투쟁과제이며, 공황기를 맞이하면 이 과제는 더욱 절실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는 달리 생존권문제를 다른 개혁과 맞바꾸어 노사대화합 등에 나서면, 이는 운동의 체제내화와 정치적 타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노동자대중과 노조운동과의 괴리 등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생존권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 임금과 고용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생활임금의 확보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확보'를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생활임금이 지급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는 최소한 미지급된 부분만큼이라도 소유권을 이전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반대하고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2) 시장경제논리의 제한과 경제과정 전반에 대한 사회적 규제 내지 민주적-민중적 규제의 확대를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저항하는 정치'(politics against politics)의 성격을 지닌다. 경제과정 전반에 대한 사회적 규제 내지 민주적-민중적 규제의 확대는 경제과정이 초국적자본과 내국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고 노동자대중을 사회과정을 규제하는 진정한 주체로 상승시켜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
(3) 은행대출금의 출자분으로의 전환과 노동조합소유분의 확대 등을 통해 대기업을 공기업 내지 노동조합소유기업으로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한국의 재벌체제를 해체시킬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와는 달리, 종업원지주제의 도입과 국민주의 보급을 통해 재벌기업을 국민기업화해야 한다는 주장(주5)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합치하는 올바른 재벌해체 방향이 아니다.
(4) 국-공유기업의 민영화-사유화에 반대하고, 이들 기업이 노동자총회 내지 노동자평의회의 민주적 규제를 받아 운영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5) 노동3권의 유보없는 보장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모든 악법의 철폐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6) 남북한 평화군축체제의 구축과 국방비의 대폭적인 삭감을 요구해야 한다.
(7) 민주노총과 조합원대중의 괴리를 극복하고 민주노총이 조합원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을 한시바삐 혁신해야 한다.
(8) 공동투쟁의 조직화에 기초하여 기업별노조체제를 신속히 산별노조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9) 노동자들의 현장투쟁력 및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및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층 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노동자대중 전체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노동자대중의 전국적 결집과 투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10) 의회로의 진출이 아니라, 노동자대중투쟁의 성장-발전에 복무하는 노동자정치조직의 건설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11)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자본의 반동적 공세에 맞서는 민중연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상설적 공투체를 건설해야 한다.
(12) 노동자국제주의의 입장에서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저항하는 투쟁의 전형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공황기는 비상한 시기이다. 비상한 시기에는 노동자운동에게도 비상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기에는 무엇보다 계급성과 전투성을 견지하는 운동만이 절망을 희망으로 전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한 운동은 위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의 '재구조화' 방향이 단지 신자유주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을 앞당겨 나가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고통에 좌절하고 유혹에 굴복당함이 없이 새로운 각오로 노동해방, 사회해방의 미래를 열기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할 시기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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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성구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자유경쟁의 조건으로서 자본집중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권리 보장 및 사회복지체제의 수립 등에 찬성하는 '독일형 신자유주의'와 그렇지 않는 '영미형 신자유주의'로 구분될 수 있으며, 그가 최근에 쓴 [대중참여경제론]에 비추어 판단할 때 김대중이 말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독일형 신자유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이번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토론문 참조) 그런데 '사회적 시장경제론'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독일형 신자유주의'는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혁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이 되고, 그 반대로 '시장경제' 측면을 강조하면 '영미형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980년대의 '독일형 신자유주의'란 (레이건이즘이나 대처리즘 보다는 그 반동성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부드러운 형태의 영미형 신자유주의'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참여경제론]에 나타나는 김대중의 노선은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독일형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국이 처한 조건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그가 수구보수세력과 연합해 있는 사실 등을 고려한다면, 약간의 변용은 나타날 지 모르지만, '영미형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개념 사용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는 어디까지나 '영미형 신자유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2) 이에 대해서는 데이비트 윌슨, "마퀼라도라 문제?", [현장에서 미래를] 97년 12월호; "Mexico: Regime in Crisis(1), (2)," The Internationalist No. 1(January-February 1997), No.2(April-May 1997) 등 참조
(3) 이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올프, "파이는 어떻게 잘리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97년 5월호참조
(4) 김성구교수에 의하면, 현재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국제수지 위기와 외환위기는 '신식민지 종속적-독점적 축적의 위기'로서 '표면적인 위기'가 아니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인 한국이 겪을 수밖에 없는, 대외종속적인 경제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근본적인 위기'이며, 그 결과는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직접적 지배'이다.(김성구, "IMF 통제 하의 한국자본주의: 위기와 전망",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IMF시대와 노동자의 삶], 도서출판 노기연, 1998, 11-43 참조). 그러나 본인의 생각으로는, 현 시기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은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이지만,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성으로 말미암아 그 위기가 일차적으로 외환위기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김성구교수의 시각은 신식민지 내지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파악함에 있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측면보다 '종속성'의 측면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 서 있었다면,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내지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라기 부르기 보다는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신식민지 (내지 종속)사회'라고 이미 규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로 말미암아 한국경제가 외국자본에 의해 직접적인 지배받게 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그러나 김성구교수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론'은 종속심화 테제를 필연적인 법칙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종속성의 문제가 약화되거나 심화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종속심화의 경향으로 인해 초국적자본에 의한 직접적인 지배가 이미 예정된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위기가 가져올 종속성의 심화로 인해 얼마만큼 초국적자본의 직접적인 지배 하에 놓이게 될 것인지는 미리 예단할 것이 아니라, 추후의 발전과정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입각하여 답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이 초국적자본의 직접적인 지배 하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정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현 위기가 현재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내국독점자본의 전면적인 파산 등을 가져온다면 그 결과는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직접적인 지배가 될 것이며,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사회는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로부터 '초국적자본 지배 하의 식식민지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외국자본의 지배가 름융-산업의 전 분야에 확대되고, 합작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초국적자본과 내국자본과의 융합 등이 크게 진척될지라도 내국독점자본 지배체제가 곧바로 초국적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체제로 바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속단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한편, 진보진영에 속하는 많은 인사들은 현 시기의 위기가 재벌지배체제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결함에 기인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기진단은 위기극복의 처방에 있어 차이를 지닌다고 할지라도) IMF의 위기진단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구조적 결함은 위기를 촉진시키고 격화시킨 요인은 된다고 할지라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채만수, "현 시기 외한-금융위기의 배경과 의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 주최 정세토론회 '한국경제의 현황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97년 12월 14일) [자료집] 참조
(5) 이러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글로서는 김상조, "IMF구제금융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
주최, 앞에서 언급한 [정세토론회 자료집], 42쪽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