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2]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 선생께 (공개서한)
 

존경하는 김대중 선생님,

김 선생님이 지난 15대 대선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 립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뜻으로 축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러니까 가장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데 대한 축하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의 김대중 선생님이 온갖 장애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념과 집념과 용기로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이던 자신의 생의 목표 에 도전하여 그것을 달성했다는 데 대한 축하입니다. 인동초(忍冬草)라고 했던가요? 정말 이것은 온갖 중첩되었던 시련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하여 거둔 승리로서 범인(凡人)에게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인간정신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 깊고 가치있다고 하겠 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김 선생님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 대하여 김 선생님을 지 지하여 투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들까지도 기뻐하 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선거에서 김 선생님의 승리가 곧 우리 국민의 민주화 투쟁과 노력의 승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 김영삼 대통 령의 3당 야합을 통한 집권과 무엇이 다르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과연 정 권교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숙원 이었던 수평적 정권교체의 실현이라는 사실에 파묻힌 것 같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는 민주공화국 선포 이래로 꼭 반세기만의 첫 쾌거이고 승리를 의 미하기에 우리의 기쁨의 폭과 깊이와 높이를 붓으로 다 표현하기에는 너무 나도 벅찬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김 선생님이 한없이 자랑스럽 습니다.

이제 파란만장했고 다사다난했던 1997년, 특히 금융위기로 경제 주권 을 빼앗겼던 수모와 치욕- 어떤 사람은 경제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고 했 고 어떤 사람은 국치일 이라고도 표현했다 - 의 묵은 해가 물러가고 '김대 중 시대'란 새 시대가 무인년의 동터 옴과 함께 열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당 선자께서 취임식을 거쳐 5년간 재임 기간 대통령 직무를 잘 수행하여 역 대 어느 대통령이 얻지 못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받게 되고 임기 가 끝난 이후에도 길이 칭송 받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충심으로 바라고 이 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선이 확정된 당일인 19일에 있었던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김 선생님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여는 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 다."고 선언한데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든든함을 느꼈음을 기쁜 마음으 로 말씀드립니다. 특히 김 선생님이 기자회견의 마지막에서 우리 국민을 향해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을 때 우리는 정말 믿음직한 분을 우리의 지도 자로 뽑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저를 도 와주십시오. 국민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 분이 도와주시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저는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준비 가 되어 있고 그럴 자신도 있습니다." 우리는 김 선생님이 국민을 나라와 정치의 주인으로 여기고 있는 태도와 겸손한 자세에 박수를 보내며 그 호 소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언해 둡니다.

그러나 매우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의 금융 위기의 심각한 현실은 김대 중 대통령 당선자와 우리 국민에게 새해를 맞이하고 뜻깊은 정권교체의 대 경사를 축하하고 기쁨과 행복감에 잠겨 있을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오 늘 우리가 직면한 금융 위기라는 이 현실은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리만큼 중대하고 급박한 민족적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김 선생님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고용보장, 정치보복이나 지역차별이 나 계층차별 금지, 등등 의욕에 찬 당선자의 포부를 천명한 데 대하여 우 리 국민은 쌍수를 들어 지지하고 정말 그것이 천명으로 그치지 않고 기어 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그 다음날로 김영삼 대통령과 전·노 전직 대통령 사면 합의와 사흘 뒤에 미국의 재무차관 등과 정리해고 불가피 합의 등을 했다는 믿기 어려운 보도를 접하고 우리는 어리둥절해 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나흘 뒤인 23일에는 마침내 원-달러 환율이 2,000 원 선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난리를 만난 듯한 두려 움과 혼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중 마지막 것은 김 선생님의 어떤 행동이 나 정책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를 좀 압니다. 해결할 자신이 있습니다.' 고 자신에 찬 말을 했던 김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 국민은 김 대통령 당선자의 입김이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이후의 시간인데도 그런 외환율의 폭등 현상이 일어난 데 대하여 적이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우려는 위의 첫 기자회견이 있은 지 불과 사나흘 후에 있었던 김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말에 한층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 파산할지 모레 파산할지 모른다. 너무 기가 막혀 잠이 안 온다."는 탄식 조의 김 선생님의 말로서 그것이 우리를 더욱 걱정스럽게 하고 불안 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경제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고 위태 로운 것을 알게 된 김 선생님의 솔직한 반응이겠지만, 김 대통령 당선자를 태산같이 믿고 있는 우리 국민들로서는 정말 예사로운 말로 들리지 않았습 니다.

김 선생님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 한결같지만, 김 선생님이 벌써 관여하기 시작한 몇 가지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놀라움 을 넘어 큰 근심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 일 이라고 당선 된 다음날 전·노 전직 대통령의 완전 사면에 손을 들어주었 단 말입니까? 그것도 양심수의 석방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말입니다. 전두 환, 노태우, 그들이 누구입니까? 내란과 반란을 일으킨 주범들, 민주시민 대량 학살 주범들, 이번 금융 위기의 초래와도 무관하지 않는 장본인들로 써 나라의 경제를 결단낸 '도둑놈들'이 아니었습니까? 또 그들뿐만 아니라 그 잔당들마저 석방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양심수를 만든 원흉들은 석방, 완전사면, 복권하고 그들의 피해자들인 양심수들은 이 추운 겨울 감옥에 계속 가두어 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연 양심수의 석방 없이 "지역간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 화 해와 통합"의 새 시대를 열 수 있단 말입니까? 전·노 석방과 사면은 김영 삼 대통령이 한 일이고 양심수 석방은 김대중 대통령의 몫이라는 말로 우 리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을까요?

김대중 선생께서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행한 두 번째 조치는 미국의 재무 차관 등에게 현정권과 IMF 사이의 협약을 100% 준수할 것과 '정리해고 불가피'에 동의해 준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김 선생님이 대통령 선거 유세 와 후보 토론회에서 당선되면 IMF와 재 협상하겠다던 것과 배치되지만 이는 대통령 당선후 그간의 나라의 경제현황을 자세히 알고 난 후 불가피 한 입장의 변경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후자, 즉 고용보장 공약에 대한 김 선생님의 입장의 표변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 을까요?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노인과 장애인들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보장하겠습니다. 새 정부는 실업 문제 해결에 최대 역점을 두고 적극 나설 것입니다"던 당선후 첫 기자 회견에서의 약속은 어디 가고 불과 사흘만에 미 대표단에게 대량 실업을 의미하는 '정리해고 불가피' 합의를 해 주었단 말입니까? 대선 공약이 입에 침도 마르기 전인 지금 벌써부터 실종되기 시작한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다.'라고 한 남미의 돔 헬다 카마라 주교의 말을 잊지 말고 언제나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금융 위기는 사실 금융이나 경제 정책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가치관의 문제요 도덕의 문제입니다. 성서적 표현으로 하면 지금 이 나라 에 돈이나 딸러가 없어서라기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 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 (신명기 8: 3)라는 진리의 불인정, 또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정 의를 추구하는 생의 우선순위의 문제이고 신앙(마태 6: 33)의 부재의 문 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제적 위기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고 이 위기 를 조속히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평이 한 세속적인 말로 번역하면 돈이나 딸러를 가진 사람들이 물질과 재물에만 혼을 팔고 있고 그 이전에 인간과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필요한 진정한 정신적-영적 가치들과 도덕적 양심을 버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보다 큰 가치와 민족적 공생 공영을 먼저 생각하고 이에 가슴을 열었다면 애당초 이런 금융위기나 경제파탄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

"민주주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시대"에 걸맞는 정책을 시행하고 "이 제는 민주주의가 경제를 살리는 시대"를 실현하겠다는 김 대통령 당선자의 입장을 우리가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주체인 국민의 가치관과 도덕적 양 심에 의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만난 이 금융 위기는 전무후무한 총체적 위기 상황이지 만, 이것은 경제발전 논리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김 대통령 당선자 자신의 말대로 경제발전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결코 희생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우리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시기 바랍니 다.

경제발전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결코 희생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증거는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민족의 통일은 물론 민주화를 정면으로 가로 막고 부정하고 있는 장애물이고 걸림돌인 국가보안법의 철폐에 대한 의사 표명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악법으로 규정, 철폐를 주장했던 야당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 후 오히려 그것이 필요하다고 둘러대 며 철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악법에 의거 더 많은 양심수를 만들어 냈던 대통령을 우리 국민은 이미 보았고 우리는 그를 군사 독재자 못지 않 게 멸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 그 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가보안법의 철폐 문제는 법률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우리 나라의 인권상황을 말하는 부끄러운 일 이고 반역사적이며 반인도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도덕과 양심 에 고랑을 채우는 짓이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국가이전의 자유권에 족 쇄를 채우는 월권행위이고 그러므로 이는 도덕적 문제이고 종교 자유의 문 제입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

경제발전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결코 희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선언으 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의지라는 두 번째 증거는 양 심수의 전원 석방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김 당선자께서는 양심수 사면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전·노 전직 대통령을 석방, 완전사면과 복권 에 합의해준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은 권선징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국민 정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원망이 일고 있는 이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 다. 적어도 김 선생님의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양심수들을 모두 석방 조치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제발 이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지 않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심수 사면에 선별적 사면이나 조건부 사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대상에는 장기수들과 한총련 관계 '죄수'들도 포함되어야 함 은 물론입니다. 전·노의 석방이 양심수 석방보다 결코 앞서서는 안될 일 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보시기 바라며 양심수들의 일제 석방과 사면을 조속히 실현하여 그야말로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를 간절히 당부드리고 기대합니다.

우리는 김 선생님께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연대하여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 연대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민주수호법으로의 대체라는 평소 의 공언이 국가보안법 존치로 선회한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점 매우 불 행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양심수 석방 문제가 혹시나 김종필 총재 와의 약속을 내세워 무산되거나 흉내만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 다. 한 정당의 지도자와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 다는 사실을 인정하실 줄 믿습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

경제발전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결코 희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선언으 로 그치지 않고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의지라는 세 번째 증거는 안기부의 개혁조치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김 대통령 당선자의 안기부 개혁 의지 표명을 전적으로 환영합니다. 안기부는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 발족이래 한번도 그 이름에 걸맞는 직책을 수행한 일이 없습니다. 어디까 지나 집권자의 도구로써 정권안정에만 역할을 해 오면서 무소불위의 권력 을 휘둘렀습니다. 이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도 김 당선자께서 체험으로 뼈 저리게 알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일생동안 색깔론의 피해자로 온갖 곤 욕과 시련과 불이익을 당하신 김 선생님께서 이번에 지금까지 위력을 떨쳐 온 반공과 냉전의 유물인 안기부의 국내사찰과 정치적 이용관행을 근본적 으로 청산해 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역사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민 주주의적 공화제를 선언한지 반세기가 되는 오늘, 특히 사상 최초의 참다 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지금 이제 안기부는 일대 개혁이 있어야 합 니다. 단순히 거듭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 하여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뒤로 물러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

경제발전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결코 희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통일정 책의 추구에 있어서는 안보의 논리로 남·북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희생하 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께서 남북합의서에 바탕한 통일추진과 김정일 총비서에게 한 정상회 담 제안을 쌍수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 정책이나 제안 자체를 범죄로 규 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두고서는 그 어느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북 관계를 염두에 둔 '강력한 안보체제 구축'은 김 선생님이 말하고 있는 '남북 합의서 준수'와 민족 화해와 통일은 물론 세계적 대세인 평화체제 구축 정책과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이 문제를 포함하여 대북 정책 전반에 걸쳐서 전적으로 새로운 발 상과 접근을 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즉 민족 자주와 평화의 정신에 토대 한 새 통일 정책과 평화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 주시기를 주문하고 기대합니다. 평화 군축을 위한 노력은 하필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촉진하 는 구체적인 노력일 뿐 아니라 금융 문제 해결에도 직접 관계가 있다는 사 실에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과의 협상 자세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태도는 지금까지와 같이 이해 득실의 관점에서가 아니고 대국적이고 민족적인 관점과 시각에 서 크게 생각하는 자세를 취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남·북 관계를 적대 적인 관계나 경쟁 관계로 보아 온 지금까지의 자세를 불식하고 제 분야에 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남한이 도덕성과 관대함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 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익보다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양보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이 촉진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 이인모 노인을 북한에 돌려보내고 북한으로부터 이 에 상응하는 아무런 반대급부를 받지 못했던 데 대하여 김대중 대통령 당 선자께서는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는 표명을 하였다는 것을 듣고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될 것임은 물론 무조건 도 와주는 것이 오히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신뢰 하게 하며 동족으로 믿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라 고 믿습니다. 더러는 무조건 북을 도와준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분들 이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보내는 식량이 폭탄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와주는 식량을 군량미로 전환할 만큼 군 보급 이 어려운 군대가 식량을 도와주는 그 상대방을 쳐 내려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 선생님이 대통령 취임하면 주위로부터의 온갖 핑계나 이유의 형태를 띈 압력이 가중되겠지만,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잊지 말고 정부 차원에 서 최대의 지원을 과감히 개시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북한은 우리 민족의 반쪽으로써 그것이 망하고서 우리 남한이 결코 안전할 수 없음은 물론 남 과 북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이고 함께 통일을 이루어 내어야 하는 공동 사명을 가졌음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구실로 군비를 강화하는 것은 국제통화기금의 지배를 받고 있 는 이 상황에서는 물론 남·북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이 나라의 지도 자가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

이러한 우리의 바람들은 매우 소박한 것이고 쉬운 것들이며 우선적인 민주화 조치이고 남·북화해의 기본 자세라고 믿습니다. 21세기의 지구화 시대에 걸맞는 큰 시각과 민주화와 민족화해와 인도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 념과 의지만 있으면 실천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쉬 운 것들을 바로 해결해야 비로소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 수 있고 국 민과 민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김대중 당선자께서 그러한 우리의 기대를 능히 충족시킬 수 있는 위 대한 지도자라고 믿습니다.

긴 편지가 된 이 졸필에 관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가호와 은총 과 평화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앞으로 출범할 새 정권에 함께 하시기 를 충심으로 빌면서 이 졸필을 이만 마칩니다.

무인년 원단에 명동 향린교회에서
홍근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