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노동
채 만 수
부소장
노동운동의 불균등한 발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에 대한 자본측의 회유와 협박·공세가 강화되고, 확고한 지도력을 갖지 못한 노동이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잃고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지금 노동의 방황은 단지 최근의 상황 때문만은 아니고, 뿌리 깊은 것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50년대의 전쟁과 그 이후의 파시즘적 정치상황 하에서 본래의 노동운동은 그 대중적 동력이나 정치조직뿐만 아니라 이념적·이론적 지향까지도 초토화되었다. 60년대 이후의 급격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특히 80년대에 와서 노동운동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발전시켰으나 그 부활과 발전은 여러 한계를 지닌 채 심히 불균등하게 진행되었다.
대중적 동력과 폭발적 투쟁력이란 측면에서는 커다란 발전과 성취가 있었다. 이 점 때문에 세계의 노동자계급과 진보적 세력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때로 그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거대하게 형성되어 이제는 국민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성장 자체, 그리고 그 빈곤과 피억압 상태가 폭발적 대중적 투쟁력을 가진 이러한 노동운동의 부활과 발전의 기초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화려함의 뒤에 커다란 정치적, 이념적 그리고 이론적 빈곤을 안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심각한 방황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이러한 불균등한 발전, 특히 그 정치적, 이념적, 이론적 왜소성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되어 있다.
먼저, 새롭게 부활한 노동운동은 전쟁에 의해서 초토화된 과거의 운동과 거의 아무런 정치적 직접적 연계 없이, 그리고 그 정치적, 이념·이론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이나 노력 없이 발전하여 왔다. 오히려 과거를 초토화시킨 전쟁 이후의 정치·이념적 지형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주변'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이념, 파시즘이 강요한 세계관과 정치·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비판·부정하고 그에 대항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적당히 '고쳐 쓰려는' 경향이 운동 속에 강한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의 활발한 정치투쟁으로 파시즘의 한 흐름이 위기와 파탄을 맞던 80년대 중·후반에 기존의 지배적 정치·이념적 지형을 부정하고 자신의 시민권을 주장하려는 이념·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투쟁이 노동자계급 운동으로부터 활발히 분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특히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의 영향을 받아, 90년대에 그러한 투쟁은 급격히 쇠미해졌다. 그리고 노동운동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적 운동으로서의 50년대 이후적 경향, 일종의 사민주의적 경향이 다시금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조직적으로는 90년대에 들어와 전노협에서부터 민주노총까지 커다란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노동운동의 정치적, 이념·이론적 발전이 이에 수반되지 못함으로써 그 노동자계급의 조직은 동시에 내부의 사민주의적·소부르주아적 경향의 거점으로도 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은 동요하고 있다.
투항과 배신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난 1월 14일에 이른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2월 6일에는 자본에 의한 무단적 대량해고를 합법화하는 것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였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반노동자계급적 투항과 배신으로써 기록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이 투항과 배신을 옹호하고, 그것을 유도하고 실행한 지도부를 옹호하는 한 핵심 지도부의 발언을 통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지난 2월 9일에 있은 대의원대회에서의 '노사정 합의안' 부결과 민주노총 지도부 불신임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은 '논리적 모순'이다!"는 공개 성명(98. 2. 10)을 내고 있는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심일선은 그 성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본질상 노사정이 서로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며 '협상'하자는 자리이다. 저들이 받고자 하는 것, 그리고 민주노총이 줄 수 있는 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곧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제에 대해 최소한으로 양보하는 대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그 동안 노동계의 수많은 숙원사업들을 최대한 협상을 통해 얻어내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강조는 인용자)
자, 이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을 자본측에 진상하자는 것이었음이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 명확해졌다. 이를 "최소한으로 양보"한다는 것은 위선을 드러낸 것일 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곧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제를 자본측에 주겠다는 것 이외의 어떤 의미도, '아무 것도 없다.'
이 성명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은 이러한 대량해고제 등을 합법화시켜주는 대신에 '노사정위원회'에서 "그 동안 노동계의 수많은 숙원사업들을 최대한 협상을 통해 얻어내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임금 및 기타 노동조건의 악화를 초래하는 바의 고용 파괴를 헌납하는 대신에 '협상을 통해' 얻어내야 할 '수많은 숙원사업들'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민주노총의 내부 토론자료인 "민주노총 98년 정세와 투쟁방침(안)"(97. 12. 29)에 의하면 민주노총은 투쟁목표(협상목표?)를 ① 재벌체제 개혁(족벌경영 척결과 경영의 투명성 제고, 노동자 참여, 감사제), ② 고용안정, 생활안정(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유지, 창출, 직업훈련·고용보험 확충, 임금채권 보장기금 신설), ③ 참여의 제도화(정책참가, 경영참가 -、 노사정 3자기구 상설화로 중앙협정 체결, 산업별 협약, 지역그룹별 논의, 종업원지주제 확대, 우리사주조합 운영 등), ④ ILO기준에 따른 노동법(교사, 공무원 노조와 실업해고자 조합원 자격 인정, 전임자 임금 지급 등), ⑤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과 미국 IMF 부당개입 중단 등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미루어 보면, '고용안정, 생활안정'을 희생시키는 대신에 얻어내려는 '숙원사업들'이란, '재벌체제의 개혁,' '참여의 제도화,' 'ILO기준에 따른 노동법,'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과 미국 IMF 부당개입 중단' 등인 셈이다.(주 1)
'재벌체제의 개혁'이란 주장이 얼마나 비독점부르주아적 내지 소부르주아적 강령이며 현시기에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그것을 최우선의 투쟁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을 준비하는 것인가는 이미 대략 밝힌 대로이다.(주 2)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과 미국 IMF 부당개입 중단'이란 것도 유사한 성격의 주장으로, 특히 경제위기를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재벌 등을 해체하거나 개혁하면 회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소부르주아적 사고의 극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중주의적 선동에 불과하다.
이제 남는 것은 '참여의 제도화'와 'ILO기준에 따른 노동법'인데, 우선 'ILO기준에 따른 노동법'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고도 최소한의 노동자의 권리여서 노동자계급이 '협상을 통해'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법을 헌납하고 그 대가로 받아야 할 '숙원사업'이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서 이 당연하고도 최소한의 권리가 유린되고 있을 때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에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국가에 대한 투쟁이지 이미 확보한 권리의 헌납을 전제한 협상이 아니다.
"정책참가, 경영참가 -、 노사정 3자기구 상설화로 중앙협정 체결, 산업별 협약, 지역그룹별 논의, 종업원지주제 확대, 우리사주조합 운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참여의 제도화'는 그 내용에서 철저히 사민주의적인 것이다. 그런데, 독점자본 주변분파의 사상으로서의 사민주의 그것의 계급적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자본에 의한 무단적 대량해고제로서의 '정리해고제' 혹은 ('노사정 합의안' 등에서 더욱 위선적으로 표현된 대로의) '고용조정'을 헌납한 위에서의 '참여의 제도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노동자계급을 '취업노동자군'과 실업자군으로 분단한 위에서의 '취업노동자군,' 그것도 그 상층의 집단이익을 제도화하려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노동자 정책 참가, 혹은 경영참가'라는 화려한(?) 구호(주 3) 뒤에서 노동자 대중의 희생을 대가로 노동귀족의 이익보호를 제도화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지도부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도 포기
위에서 인용한 성명에서 민주금융노련의 심일선 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만약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제에 대해서 끝까지 반대원칙을 고수할 것을 주장하면서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했다면 이는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다. 아니면 도둑놈 심보이거나, 정치권과 자본가들을 바보로 생각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만약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제를 끝까지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어야 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를 부분 수용한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잘못'이 아니다. …… '근원'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위선'에 있다. ……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앙위원회와 그 뒤에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협상하라고 시켜서 정말 열심히 '협상한 죄'밖에 없다. 만약 민주노총의 회의단위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라고 요구했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미련 없이 탈퇴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리해고제를 수용한 죄'는, 정확히 말한다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아니라 중앙위원들과 투본대표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위선'에 있다!"
한국의 민주노동조합운동 최상층부의 한 사람으로부터 위와 같은 주장을 듣는 우리의 심정은 참으로 참담하다. 위의 주장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직접적, 집단적 입장이라는 증거는 물론 없는데, 다만 대략 위의 주장과 노선·정서를 같이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민주노총 전 지도부의 '복권'이 논의·주장되고 있고, 그 전 지도부가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데에서 우리는 위 주장이 그들의 내심 주장이기도 하다고 간주할 수 있을 뿐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지도부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적 도리·자세마저도 저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심 위원장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리해고제 등을 자본측에 진상하고자 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동의한다.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행보는 현시기 노동운동에 새로운 정세를 조성하면서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민중의 생존권을 사수하여야 하는 노동자 동지들에게 '지도력 혁신'이라는 과제를 확정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위와 같은 객관적 의의를 갖는다고 해서 민주노총의 중앙위원회나 투본대표자회의, 혹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의 지도부에게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수용하도록 위임한 것은 아니다. 특히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은 조합원들의 "도둑놈 심보"나 "위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백히 지도부에 의해서 유도된 것이고, 이때 지도부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가 결정이 정리해고제 등의 수용"을 의미한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참여가 곧바로 정리해고제 등의 진상(進上)을 의미한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지도부는 오히려 그 참여를 통해서 '정부가 강행하려는 정리해고제' 등을 저지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암묵적으로 조합원들 사이에 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제를 수용한 죄'는, 정확히 말한다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아니라 중앙위원들과 투본대표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위선'에 있다!"라며,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앙위원회와 그 뒤에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협상하라고 시켜서 정말 열심히 '협상한 죄'밖에 없다"고 외치다니! 그리고 "2월 9일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의 지도부 불신임은 '논리적 모순'으로 '무효화'되어야" 한다며, 그 지도부의 복귀와 '노사정위원회의 잠정합의안 부결'의 번복을 꾀하다니! --- "'도둑놈 심보'를 갖고 '위선적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마땅히 이들을 영원히 노동운동에서 낙인찍어 추방해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를 부정한 민주노총 비대위
민주노총의 2월 9일 임시대의원대회는 지도부가 '직권합의'해준 '노사정위원회 잠정합의안'을 추인할 것을 거부하고(사실상 지도부를 불신임하고), 이에 따라 지도부 사퇴 -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비상대책위원회가 '노사정위원회'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 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민주노총 비대위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서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파업을 하는 경우 파업지도부를 구속하겠다"는 협박으로 응답했고, 이에 비대위 지도부는 2월 14일 자정 무렵 '국가경제'와 '파업 동력'의 문제를 내세우면서 파업 철회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지금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심각한 좌절과 혼란, 갈등, 그리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
비대위 지도부의 '파업철회 결정'에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은, 앞에서 인용한 성명의 입장과 같은, 민주노총 전 지도부의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거기에서의 '잠정합의'를 지지하는 쪽으로부터였다. 예컨대, 예의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연맹의 부위원장 태기석은 2월 14일에 컴퓨터 통신을 통해 공개한 "남이 파업을 안하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관료주의이고, 내가 안하면 10년의 민주노조운동을 책임지는 고민인가?"하는 성명서에서, 위 파업철회 결정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전임 지도부 불신임과 비대위 구성을 '쿠데타'라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태기석 부위원장의 이 '비판'은 비대위의 파업철회를 비판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임 지도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거기에서의 '정리해고제' 등의 합의를 옹호하면서 2월 9일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의 결정들을 비난·비판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마땅히 비판받고 추방되어야 할 전임 지도부를 복권·복귀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그의 비판은 극히 반동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고, 극히 종파적이다.
비대위 지도부의 파업철회는 전임 지도부와 그 행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할 것이 아니고, 비대위 지도부의 또 다른 관료주의, 배신을 비판하는 근거로 되어야 한다. 그들은 대의원들의 결정을 월권적으로 부정하고, 그리하여 조합원들의 의지·의사를 배신하였다. 그들은 민주노총에서 '민주'를 파괴하고, 국가주의에 함몰된 관료적 지도부의 노동자 대중에 대한 배신을 다시 한번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지도부 혁신이라는 과제를 다시 한번 절박한 문제로 제시하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물론 2월 9일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약간의 타성적 결함을 안은 것이었다.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목적이 명백히 단기적으로는 '정리해고제' 등을 조기에 도입하거나 합법화하기 위한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을 거세하여 그것을 체제내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정이 보다 건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의 그런 성격과 목적을 명확히 인식한 위에서 거기서부터의 탈퇴와 '노사정위원회 잠정합의안'의 무효를 선언하고, 그 위에서 파업을 조직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임시대의원대회 결정의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파업투쟁의 결정은, 비대위 지도부가 파업철회의 한 이유로 삼았던 것과 같은, 대중적 파업동력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대중적 파업 의지를 말하는 것이고, 비대위 지도부를 구속하는 결정인 것이다. 나아가, 이날 임시대의원대회 결정이 갖는 결함은 많은 부분 전임 지도부 시절부터의 타성 및 기풍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그 부정의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극복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과제
지도부를 철저히 혁신하고, 현장활동가 조직·활동을 강화하자
경제위기를 맞아 자본은 그 정치적 대표자를 바꿨다. 새로운 대표자인 김대중 정권은, 그 경제각료의 면면에서 보듯이, 군사독재 시절로부터의 자본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한편에서는 자본의 합리화를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면 회유 일면 협박과 억압을 강화하면서 노동운동을 거세하여 체제내화하려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한 중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김대중 정권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특히 '재벌 개혁'은 우리사회의 대부분의 '진보적 인사,' '진보적 학자'가 그 구성원인 바의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들에 의해서 마치 진보적 혹은 민중적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고, 그리하여 현재의 위기가 "위기인가? 축복인가?"라는 식의 얼빠진 논의구조조차 형성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 노동조합운동 상층 핵심 지도부의 상당수가 그러한 소부르주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고, 그 표현이 현재의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이며, "'노사정위원회' 참가 결정 -、 잠정 합의 -、 재협상 요구 -、 파업철회"로 이어지는 일련의 혼란과 배신이다.
이러한 혼란과 배신을 극복하고 민주노동운동을 다시 노동자계급적 노선으로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급히 해결이 요구되고 있는 과제인데, 이를 위해서 급히 해내야 하는 것은 타락한 지도부를 철저히 추방하고, 새롭고 투쟁적인 지도부를 건설하는 것이다.(주 4)
2월 9일 대의원에 의한 '노사정위원회' 합의안의 거부, 지도부 불신임은, 비록 한계는 있었지만, 노동자 대중이 '지도부 혁신'이라는 현안의 과제를 해결할 건강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치열한 논쟁·비판과 내부 투쟁을 기피하는 소부르주아적 인품(위선)과 '명망가'를 찾는 타성이다.
치열한 논쟁과 비판, 그리고 내부 투쟁을 활성화시켜서 운동 내부의 소부르주아적 위선과 권위주의, 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를 통해서 운동 내부에 노동자계급의 이념과 과학을 확인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지도부는 명망가로서 구성할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을 명확한 계급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러한 계급적 대의와 원칙에 입각하여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에 찬 활동가들로 구성하여야 한다. 그들이 지금 아무리 무명의 활동가라고 할지라도 그들로 구성하는 지도부는, 명성은 기라성 같지만 계급적 대의원칙을 저버리고 있는 타락한 명망가들로 구성하는 지도부와 비할 바가 아니다.
논쟁과 비판, 그리고 내부 투쟁을 활성화시키면서 현장활동가 조직·활동을 강화하는 것.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이 그 건강성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지도력을 재생산해 가는 데에서, 그리고 그 운동이 노조운동의 틀을 넘어 정치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가는 데에서 필수 불가결한 기초이다. 대중적 결정을 자신들에게 위임하도록 유도하여 배신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명망가 지도자들의 관료주의, 상층 명망가들의 의회 진출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로 강변하는 그들의 소부르주아적 의회중심주의 등을 지도부의 혁신, 활동가 조직·활동의 강화로 극복하자.
<미주>
1)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유지, 창출, 직업훈련·고용보험 확충, 임금채권 보장기금 신설" 등은 '고용안정, 생활안정'을 희생하는 데에 따른 보완조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2) 채만수 "재벌해체 투쟁론의 성격과 이면", 전국노동단체연합 {노동전선} 1998. 1. 149∼151쪽.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재벌해체' 강론이 단지 '통일전선적 강령'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것도 밝힌 대로이다.
3) 이른바 '노동자 경영참가'는 수많은 사민주의적 이데올로그들에 의해서 화려하게 색칠되어 왔다.
4) 채만수 "새로운 지도력으로 위기를 돌파하자", {현장에서 미래를}, 98, 1.2월호.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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