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본다



민주노조운동의 전열을 정비하자


황성근

만도기계노동조합 위원장




2월 12일 밤 비대위는 총파업철회 결정을 내렸다. 비대위의 방침에 따라 13일과 14일 파업은 철회되었다. 2월 15일 국회에서는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법안이 여야 합의로 유유히 통과되었다. 그후 S&P는 한국의 신용평가를 3등급 상승시켰고 국가 신인도는 그만큼 회복되었다. 당선자 DJ는 최대 장애물로 여겨졌던 노사정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2월 25일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켠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몹시 두들겨 맞고 정신이 멍한 그 기분을 지워버릴 수 없다. 노사정위 합의로 민주노총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을는지 모르지만 조합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는 3등급 이상이나 추락하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만 추락한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으로 표현되어 왔던 정신들이 대단히 혼란스러워졌다. 게다가 동지적 신뢰도 금이 가고, 서로간의 아픔의 골이 깊게 패어버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단위노조 위원장을 하고 있지만 "민주노총과 함께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자"고 외쳤던 나의 메아리는 어떻게 되돌아올지 답답할 따름이다.

남겨진 문제들

2월 9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는 노사정합의를 하고 돌아온 지도부에게 총사퇴의 결정을 내렸다.

지도부를 대신해서 비대위가 꾸려졌다. 그러나 13일 총파업을 앞두고 12일 밤 비대위는 총파업철회 결정을 내렸다. 내일(13일)의 파업을 준비하던 현장의 간부들에게 파업철회라는 TV생중계의 보도는 간부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정리해고는 반드시 막아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총파업을 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설득했던 조합간부들은 조합원들의 모멸찬 항의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성명서 한 장으로 대신하는 씁쓸함과 무력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 이유야 어떻든 임시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 번복되고 결국 파업은 철회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이 역사를 만들면서 지켜왔던 '생존권 사수의 원칙'이 버려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무기력한 지도력'과 '민주성에 대한 논란', 민주노총내 갈등(그것이 연맹간의 갈등이든 노사정합의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갈등이든)이 남게 되었다.

쉼 없는 자본의 공격

지금 현장은 순환휴무(그것이 무급이든 통상급의 얼마이든)와, 연월차 반납 또는 강제사용, 복지부분 축소 내지는 중단, 임금과 호봉승급 동결, 상여금 삭감과 지급 유예,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희망퇴직 강요 등 정신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본에게 고스란히 난타당하고 있다. 부도난 사업장은 부도가 나서 경영을 정상화하자는 이유로, 부도나지 않은 사업장은 부도나면 큰일난다는 이유로 혹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노동조합이 회사의 자구노력에 솔선해 주길 요구하고 있다.

IMF구제금융이후 '나라 살리기'공세를 엎어 탄 자본의 공세는 실로 심각하며 현장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공세에 다분히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격으로 민주노총 등 양노총이 정리해고 등을 수용하자 현장의 활동가들은 자본의 공세에 논리적 근거로 대항하지 못하는 곱절의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다.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더 전진해 가자

만도기계 노조는 지난 12월 3일 한라그룹의 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30년만에 월급이 지급되지 않는 등 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급기야 각 공장별 인원정리 숫자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을 당하자 노동조합은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합원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배치하며 싸워왔다. 흑자부도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임금체불에 대한 진정서와 탄원서 제출, 정몽원회장 재산 가압류, 각종 세금과 교육비 유예 탄원서운동 등을 전개하고 지난 2월 7일에는 대전에서 전국 7개 공장 2,200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런 투쟁의 결과 2월 23일 '고용안정협정서'를 쟁취하였다. 물론 협정서를 쟁취하였다고 모든 것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생존을 사수하는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사실 하나가 우리의 향후 투쟁의 승리를 밝게 해 준다고 믿는다.

민주노총도 어떻게 노동대중의 이해를 확보해 나갈 것인가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관건이라고 본다. 이제 민주노총은 55만 조합원의 조직만은 아니다. 정리해고가 수용되어 노사정이 합의했다는 신문보도가 나가자 조합원이 아닌 일반 사무직까지 해고의 공포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넘쳐흘렀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사무직이 사내 통신망에 '민주노총까지 정리해고를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올릴 정도다.

그렇다! 민주노총은 1200만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권을 지켜나갈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것은 '노동자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조직으로 민주노총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공통된 맘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지난 대선에서도 권영길위원장을 대통령후보로 내세워 우리의 요구를 알리려고 애썼던 것 아닌가?

이제 다시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희망'을 실현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론 거듭나는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대중의 투쟁의 현장에서 고통을 같이 할 때 다시 신뢰받는 '우리의 조직', '희망의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스스로를 단련하는 민주노동운동으로!

다시는 자신의 미래를 어처구니없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버린 파우스트가 되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자의 미래는 어떠한 경우가 오더라도 노동자 대중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그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현장투쟁의 기백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지도부의 각성이 분명히 필요하다. 노동자대중이 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리해고 반대와 고용안정을 외쳤는지를 가슴으로 깨달아야 한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산별의 시대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지난 통합금속대의원대회에서는 교섭권을 위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지도부를 신뢰하지 못하였을 때 중앙교섭에서의 체결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현장과 지도부가 튼튼히 묶여지는 것이 절실할 때이다. 그럴수록 현장의 투쟁에 한발 더 다가 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하고 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운동이 지도될 때 민주노조운동은 강철과 같이 단련되어 갈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