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가 2월 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후, 지도부의 '직권조인'[주1]에 대한 책임을 물어 상근 임원진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단병호)가 새롭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총파업투쟁을 지도할 책임을 진 비상대책위원회마저 2월 12일 제2차회의에서 총파업투쟁 철회를 결정함으로써, 민주노총은 2기 출범을 앞두고 심각한 내부 혼란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97년 12월 '노사정 위원회'의 참여와 총파업투쟁을 둘러 싼 논란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사정 위원회'에서의 합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의 합의안 부결과 1기 지도부의 사퇴, 그리고 비대위의 구성과 총파업투쟁 철회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에서 드러난 민주노총 내부 견해의 대립과 갈등은 그것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민주노총의 정체성,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전망과 관련하여 다양하고 심도있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 '위기'의 수준과 성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극복의 방향과 방법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다.
먼저 그간 일련의 과정에서 1기 지도부든 비대위든 일면의 진실이 다 존재하고, "아무도 동지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팔아먹지 않았다. 판단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사퇴한 임원들은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들의 고뇌를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비대위의 총파업 방침 철회 과정도 엄청난 진통과 아픔이 배어있다. 지난 9일의 대의원대회장에서 분출됐던 대의원과 참관인들의 목소리에도 방식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있어야 하겠으나 현장의 진실을 표출한 측면은 존재한다."("아무도 노동자를 팔아먹지 않았다", {노동과 세계} 1997. 2. 23.) 그래서 이들 사이에 먼저 화해하고 하루빨리 '정상적인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는 본질상 의사소통의 부재, 따라서 '의식상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의사소통에 의해, 즉 의식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물적 토대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며, 따라서 그 해결방안 또한 기존의 처방과 달라야 한다"(태기석 민주금융노련 부위원장, [민주노총의 위기,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1997. 2. 25. 민주노총CUG '조합원 소리')주장이다. 여기서 '물적 토대의 구조적 변화'란 "고용구조의 변화 특히 정리해고가 강요되고 있는 남한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기존과 다른 처방'이란 "역사적으로 고용의 조건이라는 물적 토대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기에는, 특히 노자간의 불리한 역관계로 인해 정리해고제에 몰려있는 시기에는 불가피하게 노동운동에 있어, 마치 임당수를 건너기 위해서는 심청이라는 '제물'이 필요하듯이, 아무래도 노동조합 지도부의 제물이, 희생양이 필요"로 했고, 따라서 "부당하게 매도당했던 과거 민주노총 지도부의 명예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주장은 노사정 합의를 직권조인으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분명하게 해내지 못한 제8차 대의원대회의 결정,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 모두를 비판하는 주장이다. "비대위의 파업철회결정은 노사정협약 직권조인보다도 민주노총에 더욱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직권조인 후에는 대의원대회에서 이를 뒤집고 총파업을 결의할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은 민주노총을 만신창이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민주노총은 새로운 탈바꿈을 하지 않고서는) 다시 투쟁으로 일어서기 어렵게 되었다. 모든 간부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을 투쟁으로 올바르게 세워 낼 의욕조차 꺾였다. 이로써 민주노총은 죽은 것이다." (윤명선, "민주노총은 죽었는가?", 1998. 2., 민주노총CUG '조합원의 소리') 따라서 "직권조인사태로 인해서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퇴진 결정한 임원을 다시 복권시킨다는 것은 민주노총을 영원히 침몰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고, 다가오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1) 1998년 2월 12일의 비대위의 (2월 13일 오후∼14일)파업철회 결정은 집행기구로서 대의원대회 결정을 뒤집어 엎는 월권행위이고, 정리해고 및 근로자파견제가 국회에서 강행 통과되기 직전, 즉 자본의 결정적인 공세에 대해서 무기를 버리고 주저앉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 파업철회결정은 중대한 과오이다. 2) 파업철회를 결정한 비대위는 이러한 과오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특히 8인 대책위원은 사퇴하여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크게 1) '2월 6일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 '불가피했다'는 주장과 '직권조인'이라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고, 2) '현재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리해고가 요구되는 남한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의 변화'와 '불리한 노자 역관계'로 보는 견해와 '대의원대회에서의 결정을 뒤짚는 지도부의 직권조인과 월권행위로 인한 민주성의 상실'과 '총파업투쟁 동력에 대한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보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 그리고 3) 현재의 위기수준과 성격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지도부 내부의 불신과 분열', '현장과 지도부간의 의사소통의 미비' 등으로 보는 견해와 '민주노총 지도부의 과오로 인한 민주노총의 무력화' 등이 있고, 따라서 4)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신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지도부를 하루빨리 세우자'는 주장과 '부당하게 매도당했던 지도부를 먼저 복권시켜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비대위의 과오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8인 대책위원회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주장은 분명하게 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 1)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경제위기' 시 노동운동은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2) DJ정권의 성격, 그리고 DJ정권의 출범으로 인한 사회적 힘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특히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사회적 협약'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냐? 3) 앞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특히 '민주성'과 '자주성', '계급적 연대성'이 현 시기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4) 현시기 대중투쟁동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총파업투쟁' 전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5) 노동운동과 시민운동과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 특히 국민여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6) 대중조직인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치적 입장' 혹은 '경향', '노선'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가야 할 것인가? 즉 쟁점화시켜 논의하는 것이 대중조직을 강화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대중조직을 분열시키고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것인가? 등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차이가 대중조직인 민주노총 내부에 존재한다는
점[주2]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념적인 수준의 차이든, 정세를
바라보는 판단의 차이든, 각 연맹별 이해관계의 차이든, 민주노조운동의 상과
경험의 차이든, 혹은 지도부와 조합원대중간의 차이든 판단의 차이는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모든 '판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적
구심을 형성하게 한 '정체성'이 무엇이며, 그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느냐이다.
1995년 11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중앙조직'인 민주노총의 출범은 크게 3가지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주3] 첫째는, 민주노조의 총단결체로서 총자본 대 총노동 전선의 조직적 구심이 형성되었다는 점, 둘째,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 재편을 위한 조직적 구심체가 섰다는 점, 셋째,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대중적 교두보가 마련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민주노총의 역사적인 출범 이후, 민주노총의 합법화투쟁,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둘러 싼 노동법개정투쟁, 96년 상반기 공공부문의 파업투쟁을 중심으로 한 임단투, 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는 역사적인 총파업투쟁, 97년 하반기의 고용안정과 경제민주화투쟁, 그리고 15대 대선투쟁에 이르기까지, 민주노총은 그 내부에 정세인식과 전술에서 '경향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자주, 민주, 통일, 연대'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수호하고, 그를 통해 계급적 단결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민주노총은 출범 때의 40만 조합원이 55만 조합원으로 늘었고, 96년 12월 노동자총파업투쟁을 정점으로 노자관계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주도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서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주4]
그런데 이러한 모든 성과를 모아, IMF관리체제와 DJ정권이라는
변화된 정세 하에서 민주노조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 전망을 모색할 시점에,
민주노총은 직권조인과 총파업 철회로 혼란과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IMF관리체제'와
'노사정 사회적 합의'라는 총자본의 새로운 공세에 총노동 전선은 구축되지도
못한 채 와해되어 버렸고, 그 결과 오히려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분열과 정체성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다. "민주노조 운동의 10년중에 9년은 까먹었다"는 자탄이나
"계급성, 투쟁성(비타협성), 현장성을 상실한 민주노총이라면 한국노총과 조건없는
통합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주5]"는 어느 민주노총 조합원의 비판은 민주노총의
정체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위기의식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직권조인과 총파업 철회로 직면하게 된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는 지난 10여년간 대중투쟁동력을 중심으로 견지하고 수호해 왔던 '민주성'과 '자주성'의 위기이다.
먼저 '민주성'이란 "노동조합운동이 어디까지나 노동자대중의 총의와 힘에 의거하고 그들의 요구와 바램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대중주체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위해 "노조간부는 항상 '노동자 대중과 더불어', '노동자 대중 속에서' 활동하는 운동방식을 일상화시켜야 하며, 사소한 요구사항일지라도 간부에 의한 대리 해결이 아니라 대중자신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는 운동방식"[주6]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조운동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조합원 총회민주주의를 사수해 왔고, 총회민주주의야말로 노동자대중 자신이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해왔던 주요 기제이자, 조합민주주의를 위한 내부투쟁의 성과였다.
따라서 2월 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을 부결[주7]하고 지도부를 사퇴시킨 것은 민주노총 내부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민주노총 지도부의 직권조인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노총의 역사적·계급적 정체성을 되살려 낸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총파업투쟁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도록 위임받은 비대위(위원장 단병호)가 총파업투쟁 철회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는 그 이유야 어떠하든[주8] 최고 의결기관인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민주노총의 내부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결정이었다. 이 점에 대해 3월 3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 여부에 이후 민주노총을 정체성의 위기로부터 회복시켜 낼 수 있느냐가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왜 '직권조인'이든 '총파업 철회'든 현 시기 민주노총의 '민주성'이 문제로 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역설적이게도 민주노총의 발전 그 자체의 산물이다. 노조의 조직규모가 커지고 조직구조가 중층화될수록 의사결정구조는 복잡해지고, 조직의 중앙집중성은 강화된다. 상급단체 노동조합 지도부는 상당한 정도의 정보와 전문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되어, 조직의 안정성과 지속성의 유지라는 이유로 쉽게 해임한다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기가 어렵게 된다[주9]. 또 민주노조운동의 간부의 경우, 과거의 투쟁 경험이나 헌신성 등이 대중적으로 검증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 조합원들은 현재의 지도자들이 계속 간부직을 맡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현장의 활동가나 조합원들의 경우는 상급단체의 간부들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정보나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많은 경우 상급단체의 의사결정과정에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간혹 노동조합 밖의 노동단체나 정치단체에서 상급단체의 정책을 비판하게 되면, 곧바로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로 울타리가 처지면서 부당한 '3자 개입'(?), 혹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에 대한 침해' 등의 이유로 지도부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원인은 민주노총의 지도력을 '대중투쟁에 대한 지도력'보다는 '상층 교섭력', 혹은 '상층 정치력' 중심으로 구축해 나가려는 일부 지도부의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와 경향은 민주노총이 사실상 합법화된 이후 더욱 강화되어 왔다. 96년 상반기에 신노사관계 구상에 따라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설치되고 여기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 '상층교섭력'과 '상층정치력'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고, 기업별 노조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적인 투쟁전선으로 집중하기 위한 '교섭권 위임전술'은 이러한 태도와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현 시기 총자본의 공세가 기업별노조체계의 단위노조의 역량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고, 따라서 '공동요구 - 공동교섭 - 공동투쟁'을 위한 교섭권 위임전술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현장으로부터의 민주적 통제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경향과 태도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주10]
사실 현시기 민주노총의 '민주성'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책임
그 자체로 추궁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민주노총의 '민주성'의 위기는 구조적인
요인과도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갈수록 중앙집권화될 수밖에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현단계 발전 추이를 볼 때, 제도적 측면-교섭권한이 중앙으로 위임되는 만큼의
현장의 민주적 통제 강화 장치-이나 내용적 측면 - 정보의 공개와 수평적인
소통구조, 현장활동가들의 정치·정책역량 강화 등 - 에서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자주성'의 위기에 관한 점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정부와 자본에 예속된 한국노총과는 달리, 정부나 자본의 개입과 통제를 받지 않고, 노동자 자신의 주체적인 결정에 의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운영해 나간다는 '자주성'의 이념에 바탕하여 단결하고 투쟁해 왔다. 이러한 '자주성'의 원칙은 자본주의적 착취 그 자체가 아니라 착취의 조건(비민주적 작업장 통제, 노동조합의 불인정 혹은 개입,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라는 제도적 억압, 노동3권의 제약)에 대한 반대투쟁 수준(노사 대등협상의 요구)이었고, 국가로부터의 자주성의 쟁취는 국가의 폭력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개입에 대한 반대(노사협상의 자율성 보장) 등의 요구로 표현되어 왔다. 이러한 수준의 '자주성' 쟁취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의 여부 - 노자관계라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대등하지 않는 관계이다 - 를 차치하고라도, 노동3권 자체가 국가권력의 탄압이나 노동배제적 정책, 자본의 비민주적 개입 등으로 심각하게 통제와 억압을 받는 조건에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자주성'의 원칙은 이번 직권조인에서 보듯이, 자본의 '경제위기', '시장경쟁논리'에 바탕한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 공세 앞에서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물리적 투쟁이 아닌 대타협이 필요한 시기라 판단했다. …… 민주노총이 불참할 경우 더 형편없는 법이 통과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 듣기에 따라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IMF 등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보니까 노사정 대타협이 국제신인도 회복과 나라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 부당노동행위 근절문제는 국민회의측과 노동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1997. 2. 9.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한국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의 산물이자, 동시에 자본축적의 조건에 대한 대중적 비판이었다. 87년∼89년 3저 호황시기에 민주노조운동은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경제의 발전으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고, 이러한 노동력 수요의 증대는 노동시장에서의 노동자간 경쟁을 약화시키고,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조건[주11]을 형성했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이 단지 이러한 노동시장에서의 수요·공급법칙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 그리고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대중적 요구는 증대했고, 이러한 요구와 대중투쟁동력에 바탕하여 민주노조운동은 비약적인 성장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의 독점자본은 세계화전략의 일환으로 한편으로는 자본의 세계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시장에서의 국내독점자본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위 '신경영전략'이라는 '노동의 유연화 공세'를 적극 추진하였다. 민주노총을 이러한 자본축적운동의 하위 동반자로 삼으려고 했던 시도가 96년 4월 '신노사관계 구상'에 의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였고, 유연화 공세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했던 시도가 96년 12월, 노동악법의 날치기 통과였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자본축적조건의 변화에 대응하여,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발전전략을 수립하는데 철저하지도 또 과학적이지도 못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국가경쟁력 강화·생산성 향상 논리에 기초한 자본의 신보수주의적·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동참하면서 그 잉여의 일부를 분배받을 것인가, 아니면 자본국제화 시대에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이념과 노선을 모색할 것인가의 선택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러한 기로에서 1기 민주노총은 국가경쟁력 강화론 - 사실은 국내 독점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론 - 이라는 총자본진영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전제하에, 민주노총 합법화 - 정책참여·사회개혁투쟁을 통한 민주노총의 사회적·정치적 위상 강화 - 시민운동과의 연대 -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 국민후보론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운동 발전전략과 정책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전략은 자기 모순적인 것이다. 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연화 공세'는 필연적으로 노동자계급과 근로민중전체에 공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모순적인 전략과 정책이 97년 11월 'IMF 구제금융신청'이라는 '경제위기' 공세와 '노사정 합의'라는 DJ정권의 '쓰라린 유혹'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직권조인으로 인한 민주노총의 '자주성'의 위기는
단지 지도부 몇몇의 사퇴나 교체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전략의 수립과 주체형성에 의해서만 극복이 가능한 문제이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의 확보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명백히
대항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이념적 자주성', '정치적
자주성', 즉 노동자계급의 궁극적인 해방사상에 기초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귀결되어야 한다. 아니 거꾸로 현 정세는 '이념적·정치적 자주성'에 기초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 건설만이 민주노조운동을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지배와
착취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재 민주노총이 직면하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는 단지 2월 한달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0년간 성장해 온 민주노조운동의 정점에서의 위기이다. 지도부 몇몇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이자, 사회개혁적 발전전략의 위기이다. 따라서 지금 위기의 극복은 내부 갈등과 분열의 위험 때문에 미봉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준의 위기도, 또 몇몇 지도부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해결될 수 있는 위기도 아니다.
민주노총 10년의 역사적 성과와 한계를 발본적으로 재평가하고, 변화된 정세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전략 수립과 주체 형성을 위한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단, 2월의 직권조인과 총파업투쟁 철회와 관련하여, 지난 10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차원에서라도 그 이유와 책임의 소재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지도부의 희생은 단기간 내에 극복해 나갈 수 있지만, 계급대중 전체의 패배의식이나 무기력,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정체감의 상실은 단기간 내에 복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또는 민주노총이라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진영의 유일한 전국적 조직이다.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민주노총을 계급적으로 강화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주12]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주체인 우리는 일백여년에 걸친 선배 노동자들의 불굴의 투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계승하여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 중앙조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결성한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주, 민주, 통일, 연대의 원칙아래 뜨거운 동지애로 굳게 뭉쳐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고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통일조국, 민주사회 건설의 그 날까지 힘차게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주13]
|
|
1) "정리해고제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지도부의 독단적인 결정은 직권조인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주간 공익노련]제161호, 1997. 2. 19.), "이번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는 55만 민주노총 조합원 뿐만 아니라 천이백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기만적인 합의이며 조합원들의 총의를 무시한 직권조인으로 명백히 규정한다"(성명서, '우리는 기만적인 노사정합의의 전면무효화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1997. 2. 7.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제3차 노조대표자회의 참가자 일동)
(2) "지난 10년의 민주노조운동 속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상태이다. 노동운동의 조직, 사회개혁노선, 정치세력화 등에 대한 전략목표를 이제 명확하게 수립해야 한다."(민주노총의 한 관계자, [한겨레신문]1998. 2. 25.)
(3) "민주노총의 출범은 무엇보다도 87년 이후 한국노동조합운동사에서 한국노총에 반대하는 민주노조운동노선(이념적으로 자주, 민주, 연대, 변혁지향성, 조직적으로는 민주노조 총단결 노선)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이겨내고 일차적인 승리를 쟁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출범은 과거에 한국노총이 노 사 정 관계에서 수행해 왔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 이상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민주노총의 출범은 노동조합운동의 '질적인 전환을 준비하는 조직적 구심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인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운동의 질적인 전환이란 자본과 정권의 노동통제수단인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여 전계급적 단결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산업별 단일노조 건설을 의미하고, 나아가 그간 반어용노총전선이라는 성격을 뛰어 넘어 대안적인 사회세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산업별 노조건설이 갖는 의미는 87년 이전과 그 이후의 질적인 차이만큼이 나 새로운 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고, 대안적 사회세력으로의 발전은 민주노조운동이 이익단체 압력단체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혁을 실질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주체로의 성장을 요구받고 있다는 의미이다."(박 성인,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95년 민주노총 출범까지", {한국노동조합운동의 이념 정립을 위하여} 26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 구소 창립기념토론회 자료집, 1995. 10.)
(4)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이제 청년학생이나 소부르주아 세력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대로부터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자생적 투쟁동력을 회복한 노동자계급이 10년만에 '노동악법·안기부법 전면무효화'를 내건 정치총파업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노동자계급이 있다는 점을 현실의 힘으로 보여주었다."(김세균,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2월호, 46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5) 나우누리 민주노총CUG, '조합원의 소리' 가운데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사퇴하라!], 1998. 02. 08.
(6) 김세균, "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1995. 9월호, 24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7) "잠정합의(안)의 내용은 선행조치의 불이행, 재벌해체와 정치권 개혁 등 공정한 고통분담의 내용 부재, 불확실한 노동기본권 및 실업대책으로 가득 차있는 가운데 대량해고와 파견노동자로의 전락이 예상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시켰다."([주간 공익노련]제161호, 1997. 2. 19.)
(8) 비대위 위원장인 단병호 위원장은 2월 15일 '전국금속산업연맹 창립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철회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노사정 사회적 합의와 총파업을 둘러싸고 민주노총 내부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데, 총파업을 단행했을 때 민주노총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 둘째, 향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때 국민여론이 중요한데, 여론의 공격이 거세어지고 있다. 셋째, 현 경제위기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민 여론이 성숙되지 않은 조건에서 총파업에 돌입하면,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재벌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있다 ……"
(9) "노동조합의 성장곡선이 완만해지면, 이에 따라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청년의 패기와 열의, 새로운 운동을 전파하고자 하는 정열은 점차 사라진다. 행정기구가 확립되고, 의사소통 경로가 최고위자에 의해 엄격히 통제를 받게 되며, 전문직원에의 의존이 커짐에 따라 의사결정은 중앙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전국조직의 지도자 역시 상당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조직규모가 커지면서 조직관리 문제가 부각되고, 강조점이 조직에서 행정·교섭·협약 체결로 옮겨진다. --- 조직규모가 커지고 중앙집권화하며 상근 직원에게 권한이 넘어감에 따라, 민주적 통제는 약화된다. --- 조직 목표 중 몇 가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함에 따라, 노동조합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부분적으로 흡수된다."(R.A. Lester, As Unions Mature, 1958,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운동}(리차드 하이만,연구사 51∼52쪽에서 재인용)
(10) "노동조합은 운동의 힘과 규율이 중앙의 본부에 집중될 수 있도록, 자신의 활동범위를 집중시키고 일반화한다. 중앙의 본부는 조합원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아주 떠들썩한 대중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변덕스러움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기업주로 하여금 노사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합법성을 인정하게끔 하면서, 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이 협약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 이러한 합법성은, 노동조합이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계약의 의무를 존중하게끔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기업주가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조건적이다."(A. Gramsci, 'Soviets in Italy',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운동} 97쪽에서 재인용)
(11) 87년∼90년에 걸친 민주노조운동의 급속한 성장은 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이 변화시킨 사회적 힘관계, 즉 계급관계의 변화의 산물이다.
(12) 나우누리 민주노총CUG, '조합원의 소리' 가운데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사퇴하라!", 1998. 2. 08.
(13) 민주노총, [선언문], 199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