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기 '대중투쟁동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 민 택

편집위원




1.

87년 노동자대투쟁은 한국에서 대중적 노동운동이 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 성립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조건과 요인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은 96∼97의 총파업투쟁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운동이 실제로 등장하고 성립하기 전까지는 쉽게 예측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록 모든 대중투쟁이 결과적으로는 역사적 산물이긴 하지만, 대중투쟁의 동력 자체에 대한 일정한 해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87년의 경우는 알다시피 노동조합운동 수준에서 조차 그 운동을 이끌 수 있는 전국적 차원의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래로부터의 분출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96∼97의 총파업투쟁은 8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중적 지도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 역시 위로부터의 지도력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충분히 존재했다. 그에 비하면 지난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의 총파업 결정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경우보다도 상대적인 의미에서 위로부터의 결정이 가장 돋보인 경우였다. 비록 상층지도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있긴 했지만 대의원들의 격렬한 토론을 통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의원 대회를 통한 위로부터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보면 총파업투쟁의 무산은 대의원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대의원 대회에서의 결정을 번복한 비대위 지도부가 보다 직접적으로 책임지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비대위 지도부가 대의원 대회의 결정을 뒤집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대중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바로 뒤따르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았을 때 대중투쟁의 동력 혹은 성립은 지도부의 태도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곧 지도부의 태도와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하나의 추상적 결론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중투쟁 혹은 대중파업의 성립은 노동조합 내부의 과정과 결정 못지 않게, 즉 지도부의 태도와 결정과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대중 자신의 행동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어떤 조건에서 대중이 바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2.

대중을 행동으로 이끄는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여기에 답하기에 앞서 여기서는 일단 대중투쟁의 질적 수준은 일단 사상하기로 한다. 한 예로 그것이 정치투쟁이든, 경제투쟁이든 문제 삼지 않는다. 대중투쟁의 성립이라는 형식적 측면만이 여기서는 문제로 된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투쟁이 일어나는 조건으로 객관적인 경제상황, 즉 호황시기인가, 불황기인가와 연결하고자 한다. 또한 노동자대중의 생활수준의 악화 여부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이나 경제선동 혹은 정치선동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입을 중시하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측면들이 대중투쟁의 성립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대중투쟁은 본질적으로 일정 시점에서의 전체계급 관계, 즉 계급이 처한 힘 관계의 변화에 가장 중요하게, 일차적으로 규정받는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지배계급의 일시적인 후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96∼97의 총파업 성립도 당시 김영삼 정권이 처한 위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반대로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총파업 결정이 비대위에 의해 뒤집어지는 민주노총, 즉 민주노조운동 초유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중행동이 곧바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비대위 지도부의 태도나 경제위기 상황 그 자체보다는 전체계급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이 처한 불리함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이다. 96∼97의 경우에도 노동자대중은 경제위기를 피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대중투쟁은 힘있게 일어났다. 물론 최근의 경제위기는 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대중이 위축되어 있다는 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대의원 대회의 결정이 보여주듯이 한편에서는 투쟁의 의지와 결의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체 노동자의 태도로 확산되지 않은 것은 경제위기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경제위기가 전체계급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경우 한국보다 훨씬 더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임은 물론, 우리와 같은 수준의 노동운동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폭등 형태의 대중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경우와는 다르게 인도네시아 지배계급이 처한 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87년 이전의 한국경제는 부분적인 경기후퇴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장기간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동자투쟁이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차적인 이유는 바로 전체계급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이 처한 힘의 열세 때문이었다.

3.

그러나 대중투쟁의 동력이 전체계급 관계에 의해 일차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구체적 현실 과정에서 어떻게 투영되는가는 간단하게 처리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세인식 혹은 정세판단 자체가 매우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세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바로 계급의 태도와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매우 유동적인 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누구나 정세의 불리함을 인정하는 속에서도 비록 부분적으로나, 부문적일지라도 그 수준에서의 투쟁은 언제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적인 혹은 부문적인 투쟁이 전체계급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체(계급)의 능동적 실천과 개입이 존재할 자리는 없다할 것이다. 정 반대의 경우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주체의 능동적 실천과 개입이 언제나 전체계급 관계, 즉 정세를 유리한 방향으로만 결론짓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록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났다 해도 계급투쟁의 진전은 투쟁에서의 승리만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96∼97의 총파업투쟁은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정세의 자동적 산물은 아니다. 93년 현총련 투쟁, 94년 전지협 투쟁, 95년 한국통신 투쟁, 96년 상반기 투쟁은 그 자체만으로는 승리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일련의 투쟁이 96∼97의 총파업투쟁을 성립시킨 내적 동력을 이루고 있다. 같은 의미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도 그 이전의 계급투쟁의 경험과 분리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투쟁이 성립하는 또 하나의 조건을 말해야 한다. 투쟁의 경험 축적이 그것이다. 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의 차이가 각국에서의 노동자투쟁의 차이를 낳는 이유의 주요한 하나가 된다.

4.

87년 노동자대투쟁이나 96∼97의 총파업투쟁은 그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산업과 업종을 뛰어넘는 전국적 수준에서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투쟁이 일어난 시점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상태나 투쟁의 요구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투쟁의 역사적 배경과 조건이 달라진데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87년의 경우는 개별 자본가에 대한 투쟁이 격렬했던 것만큼이나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형식을 기업별 수준으로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과는 두 가지 서로 상충되는 역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의 상층지도부가 관료화되는 경향을 지연시켜 전투성이 대중투쟁의 전통이 되게 하는 조건으로 하나는 국가와 자본의 투쟁을 분리시켰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투쟁의 정점에서 투쟁을 후퇴시켰다는 점이다.

5.

현재 민주노총 상층지도부(여기서 대상은 구체적 개인을 모두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공장, 연맹, 민주노총지도부를 의미한다)내에는 노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다는 판단이다. 하나는 이른바 '국민과 함께'로 표현되는 탈계급적 경향이다. 이 흐름의 주창자들은 선거를 통한 노동자의 의회 진출을 현시기 대중적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건설'과 '산별적 교섭'의 성립을 가장 우선시 하는 경향이다. 이들은 산별노조건설 과정 자체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과제와 일치시키고 있다. 전자의 경우 역시 산별노조라는 노동조합의 형식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후자와 다르지 않으며 후자 또한 선거를 통한 의회 진출을 다음의 과제로 상정하고 있는 점에서 전자로 수렴된다. 이 둘은 정세인식, 대중투쟁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신들이 대중지도부로 성장하기까지의 개별적 경험의 차이와 발딛고 있는 조직 기반이 다를 뿐이다. 전자의 '사회개혁투쟁'에 대한 강조와 후자의 '산별 임금 교섭'의 역설은 이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나 이 둘 모두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있는 까닭에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양자가 양립함으로써 각각의 지도력을 유지 혹은 강화하고 있다. 이 둘의 경향은 때때로 대립되는 과정을 낳기도 하지만, 각각의 모순이 대중에게 폭로되는 과정을 지연시켜 관료화를 지속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물론 대중의 의식은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이 대중투쟁의 동력을 일방적으로 후퇴시키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개혁투쟁'과 '산별 임금 교섭' 자체는 대중의 요구이기도 하며 그런 만큼 일상적 시기에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지도력을 위임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체계급 관계가 이들의 희망과 바램대로 움직일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동력에 아직은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완전히 제도화 혹은 고착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이 이들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경향이 성숙하기까지는 단순한 직선적 과정은 아닐 것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6.

96∼97 총파업투쟁이 대중투쟁의 동력에 미칠 수 있는 특정 측면에 주의를 상기하고자 한다. 앞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대중투쟁의 동력이 상층 지도부의 일방적 역할에 그대로 종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내의 헌신적이고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존재와 그들의 실천이 대중투쟁의 동력을 형성하는데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96∼97 총파업투쟁도 이들의 활동에 의존한 측면이 크다. 지난 2월 9일에 있었던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결정도 바로 이들의 힘이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대위 지도부가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은 상황에서 이들의 불만과 반발이 행동으로까지 나타나지 않은 데에는 앞의 결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는 전체계급 역학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약 심한 허탈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면 총파업투쟁 전술을 절대화 혹은 물신화 한 것은 아닌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총파업투쟁은 분명 노동자계급의 유력한 투쟁 형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짚어야할 내용이 있다. 첫째는 비록 총파업투쟁이 어떤 형태로든 일어났다고 해도 그 자체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말이 총파업투쟁이 필요치 않다거나 따라서 비대위 지도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대중투쟁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적 투사로서만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정열적으로 고민하고 실천을 모색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총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며 어떤 면에서는 이 점이 훨씬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총파업투쟁이 아니면 반대로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부분적인 투쟁과 실천으로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것은 언제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상층 지도부의 관료화 경향이 점점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으면 높은 만큼 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 힘을 쏟기보다는 그들을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들여오기 위한 구체적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결국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관료화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7.

우리는 대중투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경우에도 종종 그러한 예측이 틀렸음을 역사 속에서 이미 수 없이 경험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지배계급 내부가 언제든지 분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자본축적 과정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노동자계급은 이 과정에서 투쟁의 계기를 맞을 객관적 가능성도 상존한다. IMF구제금융과 김대중 정권의 출범에 따른 현재의 계급역학이 비록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정세는 매우 유동적이며 또한 불안정하다. 우리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의기소침 해야할 필요가 없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동시에 내일을 준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면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