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야, 인동초(忍冬草)
백 원 담 / 문학평론가
25일 DJ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인동초'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백화점들이 취임축하행사를 기획하면서 DJ의 고난에 찬 정치역정을 상징하는 인동초를 무료증정하거나 전시하고자 하는데 물량이 달려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취임식날 시인 고은은 축시를 낭독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인 또한 인동초적 삶을 들먹이며 이제 우리 민족은 한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로 찬란한 내일을 구가할 것이라고 목젓이 떨리도록 부르짖을 것이다.
여기서 새삼 간데 없는 상혼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친 DJ인사임을 거침없이 밝혀온 시인인지라 제 격정에 못이겨 송덕가를 내지르겠다는데야 오늘의 역사적 현실을 갈파할 진정한 시심(詩心) 운운하는 것 조차 백해무익한 노릇이겠다.
하기사 운동단체들조차 이번 선거결과를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바라온 오랜 국민의 여망이 현실화한' 것으로 평가하며 향후 우리 사회의 민주발전에 커다란 계기가 될 것으로 적극 환영하는가 하면, 50년만의 정권교체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력함을 토로하면서 '민족민주운동의 본령에서 협력과 지지'를 밝히며, 운동권도 못해낸 일을 보수야당이 그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철저한 '준비'로 이루어내었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는 데야 뻔한 장사속에 침튀기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남사스러운 일이렷다.
어찌됐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있다. 김대중후보가 끊임없이 용공시비에 휘말리면서 호남출신으로서 정권유지의 근간이었던 분단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 우리가 그것을 역사적 사건이라 부르는 데는 그것이 권력의 화신으로 인동의 세월을 살아온 한 정치인의 인간승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엔 보수세력의 부패, 배신, 기회주의 지긋지긋한 꼬라지를 보고 그들이 물러가지 않을 것이면 최소한 거듭 나기를 바랐던 민중적 열망이 애절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적 열망의 본질을 틀어쥔다면 적어도 이번 선거의 야합적 정권교체과정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DJT연대, 그리고 이회창과 이인제 등 기득권세력내의 분열이라는 잔꾀로 지역주의의 장벽을 넘어선 것, 역대 안기부장과 군세력을 영입, 용공시비의 터널을 돌파한 것 등에 의한 DJ의 대선승리는 또한번의 정치적 야합과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에 정확하게 조응한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본의 전일적인 세계지배 하에서 미국과 일본이 김대중후보에 대해 일단의 면접을 끝내고 중립입장과 여론을 통한 암묵적 지지를 하여 왔다는 것은 그들의 이해관계 속에 DJ가 이미 깊게 얽혀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바이다. 세계도처에 있는 DJ의 많은 친구들이란 다름아닌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인 투기자본의 주역들이고 그들의 요구에 대해 김대중은 우리 노동자들의 멱을 따서라도, 한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존권을 박탈하여서라도 120% 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미 판은 짜여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 당선 직후 DJ가 가장 사활을 걸고 해결하고자 한 것이 다름아닌 정리해고였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혹독한 30년의 한파를 인동초처럼 버텨내 마침내 봄을 열고야 말았다는 DJ의 겨울, 그 인고의 세월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DJ의 그 파란만장한 고통의 세월은 바로 그 스스로가 좌초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의 정적(政敵)으로서 수없이 사선을 넘어야 했고, 지역차별주의의 전횡에 휘둘려 그 천부적(?) 정치성향을 발휘해볼 수 없었던 불운에 대해서는 연민의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승자박, 그 스스로 정치생명을 옭아맸던 일련의 사태는 개인의 권력야망을 위해 민중적 대의를 저버린 반역사적 작태에 다름이 아니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87년 대선당시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다수 민중은 전 국민의 민주화열망과 노동자대투쟁의 여세를 몰아 민중이 주도하는 민주정권창출의 대역사가 이루어지길 간절하게 소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수야당세력은 각기 권력욕에 눈이 멀어 적전분열 하더니 선거막바지에 민주세력대통합이라는 민중적 대의를 끝내 저버리고 자멸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시 백선본에서는 보안법폐기, 노동자 농민의 정치투쟁의 자유, 전두환을 비롯한 광주학살범의 구속처벌, 부패재벌의 철저한 조사, 부패부분에 대한 국고환수, 통일지향적인 민주정부의 수립을 골자로 한 연립정부안을 내놓고 민주대통합을 주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DJ는 이미 대세는 기울었으므로 다른 야당후보와 그 시점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선거에 전연 도움이 안된다고 연립정부안을 사실상 거부하더니, 분열의 책임에 직면하자 전두환씨 구속처벌부분만 빼주면 연립정부안에 동의하겠지만 그럼에도 야당후보가 공통으로 의논하여 선거에 대처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사코 마다했었다. 그리고는 대통합을 호소하며 후보사퇴를 천명하려는 민중후보의 간절한 호소에 오히려 맹공을 퍼부어댔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대다수 국민의 바램에 따라 승리의 고빗길에 막 이르려는 시점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민주세력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퇴를 하던 민중후보의 피눈물을 우리는 주체역량의 한계로 절감했었거니와 광주학살과 국가파탄의 원흉인 5공세력에 대한 처단이라는 실질적인 5공청산 없이는 그 어떤 민주화도 불가능하다는 정치적 판단에 고뇌를 다시금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친일민족반역자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단죄하지 못함으로 인한 민족사의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다는 역사인식의 치열함에 다름아니었고, 거긴엔 광주학살원흉에 대한 구속처단을 주체적 힘으로 실현해내지 못했을 때 밀려올 국민적 좌절감, 그 정치적 허무주의의 만연에 대한 경계의 의미가 깊게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권야욕에 눈이 먼 사람에게 민주화란 어떤 의미였던가. 집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그런 왜곡된 욕망이 실현될 리도 없거니와 야합과 화해 등 어찌어찌 권좌에 오른들 사천만 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그처럼 민중적 대의를 저버린 DJ야말로 민주세력 분열책동의 장본인이며 그런 점에서 그가 겪은 인동의 세월이란 뼈아픈 반성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은 민중을 위시한 광범한 민주화세력에 대한 원망으로 점철된 자기분열의 과정임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 건국초기를 보아도, 이씨조선의 건국당시를 보아도 권력에 대한 욕망은 부자와 형제의 의를 끊을만큼 엄혹한 것이었던 만큼 김대중 대권을 향한 불타오르는 욕망은 차라리 인간적인 것으로 접어둘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말 차원의 것이라면 애초에 입도 떼지 않았을 것이다. 역설컨대 제대로 겪었다면 DJ의 인고의 세월은 정치적 핍박의 시기이자 그 간단없는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민중적 쟁점을 부여잡고자 자신을 해체하고 민중적 대의에 일치해나가려는 자기정화과정이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DJ의 지난 정치역정 속에서 노동자, 농민빈민, 광주원혼들을 비롯한 이땅의 양심세력의 피눈물을 진정으로 얼싸안아본 적이 단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지나간 과거지사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제부터라도 4천만 민중의 열망을 헤아려 잘해나가면 되니까. 그러나 백번 눈씻고 확인해보아도 아닌 것같다.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재벌개혁, 금리제한폭 철폐,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진출입과 M&A 등을 보장하는 경제개혁 등 시장경제원리의 충실한 신봉자를 자처하며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운동의 그야말로 첨병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고 있으니 이 무도한 경우를 참으로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이쯤이면 답답함이 극에 달아 글줄도 막힐 터, 몸부림을 치고 있자니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애가 딴에도 눈치를 본다고 오락가락하다가 눈곁도 안주는 에미품새에 제풀에 지쳐 방문을 닫고 나간 뒤끝, 뜬금도 없이 나의 꼭 그맘때 시절이 아련해오는 것은 우연은 아니리라. 지하교실이었지, 간신히 코흘리개를 면한 꼬맹이들이 목청것 부르는 노래라니. 다름아니 월남에 간 맹호부대용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군가였었다. "자유평화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는,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나암∼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그대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환갑이 가까운 안경낀 여선생님은 너희들 노래가 하늘 끝까지 울려야 용감한 우리 맹호부대용사들이 그 소리에 힘을 얻어 나쁜 월맹군들을 무찌르고 세계평화를 이루고 당당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그 노래를 부르게 했고, 우리는 학교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었다. 남산자락을 끼며 돌면 학교에서 집까지 실히 2㎞, 때론 명동의 화려한 거리를 길건너로 기웃거리며 걸어왔지만 푸른 남산자락을 돌아 전산가옥이 즐비한 골목골목을 헤집고 걸을 때도 동요보다 먼저 입가에 맴돌던 군가.
미국 월가의 세계적인 투기자본들, 카지노자본으로 대표되는 국제투기꾼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와 우리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이룬 경제성장의 성과들을 낼름 집어삼키고자 입질만 해대도 우리의 이른바 인동초대통령은 이름도 무색하게 손님들이 잘 골라잡숫도록 한편으로는 가지치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노동자들이 끽소리도 못내도록 정리해고의 칼날을 제도적으로 장치해 놓느라 여념이 없다. 미국 독점자본의 곳간을 지키기 위해 한 나라의 대표라는 사람이 나라 전체에 거대한 쥐덫을 놓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간데없는 판국에 우리 노동자들은 참으로 어떤 지경에 처해있는지. 총파업을 철회하기 정말 잘했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분위기라는 전언에 가슴 속이 그야말로 숯검덩이로 탄다. 이러다 정말 우리, 미국 독점자본의 영원한 자유평화수호를 위해 월남파병을 역사적 전통으로 미련없이 한 목숨 바치고 한많은 이세상 눈부릅뜨고 가고 말겠다.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세대가 그랬듯 21세기식 파월군인격 엄마아빠, 이모고모삼촌언니누나오빠들을 위해 진군가를 소리높혀 부르도록 강요당하며 정서조차 점령당하고야 말겠다.
인동초야 인동초, 훼절당한 네 기개가 눈빛을 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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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