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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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한파, 고용대란,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방패막이도 없이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권리선언에 나섰다. 이전에도 일용공 모임, 하청공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경험에 비해 그 활동은 매우 소박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실업자 운동도 전무한 상태이다. 고용을 둘러싼 노자대립에서 이들의 활동이 미조직노동자를 폭넓게 조직할 수 있는 불씨가 되길 바란다. 동시에 그 활동을 계기로 지금까지 조직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조합운동이 전개되면서 나타났던 폐쇄성, 노동자 내부 계층화 등의 문제가 새롭게 전환되길 기대해 본다. |
마침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섰다!
이 탁
서울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준비모임
정리해고의 제1순위는 비정규직 노동자
대규모 정리해고와 실업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대규모 사업장이건 중소규모 사업장이건 정리해고로부터 안전한 사업장은 단 한군데도 없는 듯하다. 벌써 50만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올해 20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리해고의 일순위가 되는 대상은 부도사업장의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주 1) 기아그룹이 도산했을 때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수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으며, 현대자동차에서 5,000명 감원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그뿐 아니라 대우자동차, 한라중공업, 만도기계, 경원세기 등 많은 사업장에서 언제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리해고의 제1순위였다. 지금 대한항공에서는 6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 기도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게다가 쫓겨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으며, 어떤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한다. 실업급여니 고용보험이니 퇴직금이니 하는 것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욱 매섭게 느껴지고 있다.
노동운동진영에서도 소외되어온,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비정규직 노동자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였고, 현장에서는 대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말도 잘 하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에서야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만명에 달한다. 1천3백만 노동자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되는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차별대우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노동조합 조합원에서 배제되어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의 절반만을 대상으로 한 운동을 펼쳐온 것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임금노동자에 대한 비율을 보면 91년 41.3%에서 97년 45.5%로 늘었다. 또한 최근 자본과 정권이 고용유연화 정책을 확대하고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급속하게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다수의 노동자들, 점차 확대되어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에서 소외되어 온 것이다.
자본은 비정규직을 적극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킴으로써 그들의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본이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배를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여러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적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항상 일정규모의 실업을 유지하여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키듯이,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키고 노동조합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한다. 정규직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누구도 일하기 싫어하는 소위 3D업체에서 일하며, 단결의 무기도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본가들에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싼값에 부려먹을 수 있는 유용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투쟁력을 떨어뜨리는 무기가 된다. 또한 노동자들 사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분열을 조장하여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유용한 무기로도 사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에서 비정규직은 아예 배제되거나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정규직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현실의 모습은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자본에 의해 점차 확대되어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에서 배제된다면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자대중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조직으로 서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산업혁명 초기의 노동조합 운동을 연상케 한다. 산업혁명으로 광범위한 반숙련, 미숙련 노동자들이 창출되었을 때, 숙련 직인들로 구성된 직업별 노동조합은 이들 대다수 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였다. 자본의 성격과 노동력 구성의 변화는 노동운동의 조직적 변화를 요구하였으나 직업별 노조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미숙련 노동자 조직화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조직화를 거부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직업별 노조가 대다수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조직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협소한 이해를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직업별 노조는 광범위한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장애요소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직업별 노조는 쇠망하고 새로운 노조운동, 광범위한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한 산별노조 건설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은 이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또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은 정규직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수백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으로, 악조건에서 일할 때 그것은 곧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런 비정규직의 존재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압박수단이 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위협수단이 된다.
산별노조 건설과 비정규직 노동자
지금 민주노조운동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산별노조의 건설이다. 그런데 산별노조 건설에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 '기업별노조의 벽을 넘어 산별노조를 건설하자'고 말한다. 이 말은 현재의 기업별 노조들이 모여 산별노조로 재편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으로 산별노조의 형식은 갖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일한 산업에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단일한 노조로 조직한다는 산별노조의 핵심 정신은 빠뜨린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은 기업별 노조의 통합과정이 아니다. 새로운 원리에 따른 전혀 새로운 조직, 투쟁과정이다. 현재의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기업별 노조간의 벽을 허물고 통합해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업의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노동조합에서 배제되어 있는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산별노조 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에서 내세우는 기본 요구중의 하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간의 임금차이는 두배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정규직간의(주로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사업장 간의) 임금 차이가 매우 큰 실정이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이는 더욱 큰 상태이다. 이런 점이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산별노조 건설에 있어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이후의 과제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당장 급한 산별연맹의 건설, 강화에 몰두하다보니 그런 경향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은 그 첫 작업부터 올바르게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이후의 과정이 아니라 지금부터 모색하고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또한 중소규모 사업장이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비정규직 등을 통틀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분명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낮은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제는 중요하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단지 조합원 수를 확대한다는 양적 확대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노동조합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노동조합운동의 질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들을 조직하기 위한 시도는 그동안 계속되어 왔다. 초반에는 대부분 개인적인 저항으로 나타났고 해고조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점차 조직적인 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96년 한국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현대중공업 외주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97년에는 아시아자동차 외주 노동자들이 임금과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일시에 정리해고 당한 후 투쟁과정에서 [아시아자동차 용역노동자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후 지역노조에 결합하기도 했다. 97년 노동자대회 때 아시아 용역노동자 대책위원회와 현대중공업 외주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민주노총에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 등을 제안하는 '천만 노동자에게 드리는 긴급 제안서'를 제작,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류관계는 마창지역과 현대자동차, 한라중공업 등으로 확산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해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월 8일 대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준비모임'(이하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이 결성되었다. 모임결성 이후 대한항공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자 안산지역, 대한항공, 경원세기 등의 노동자들이 새롭게 연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은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투쟁을 경험한 노동자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은 노동자들을 모이게 한 원동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은 무엇보다 정리해고가 임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 조직하는 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한 그러한 투쟁을 통해 전국 각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결집하고 조직하기 위해 발로 뛸 계획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투쟁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이 목표로 하는 바는 독자적인 노조 결성이 아니다. 산별노조 건설에 복무하는 것이 지향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당연히 산별노조의 조합원이 될 것이고, 스스로의 활동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 산별연맹과 지역, 가능한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나갈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넘어 함께 투쟁하고 산별노조 건설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일 서러운 것은 똑같이 일하면서도 임금과 심지어 작업복에서까지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서글퍼지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회사측과 협상하여 비정규직을 내쫓는데 합의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97년 미국의 UPS 노동자들은 정규직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임금인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마침내 승리했다. 이러한 승리는 비정규직의 저임금 상태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가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노동자들이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모범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어떠한가? 최소한 '우리는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도 만들어져 있지 못한 실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은 그 장벽을 깨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우 불안정한 조건에 처해 있다. 언제 정리해고 당할지 모르고, 활동이나 투쟁에 나서면 곧바로 해고당하게 된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조직화하기 대단히 힘들다. 노동조합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며, 그것을 전체 민주노조진영에 부탁드린다.
<미주>
1)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른바 '본공'이 아닌, 그래서 현재의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대부분 조합원 자격이 없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임시직, 외주, 하청,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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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