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폭설을 뚫었던 뿌리 얕은 희망'
류희택
노동정책연구소
"...
불일치가 봉기를 좌절케 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파업을 종식시키려고 하는 두목들의 지령은
며칠 동안 대중의 밑바닥까지는 닿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관차는 증기를 뿜어내지 않고
우체국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그때조차도
과시되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위대한 힘이."
- 브레히트 詩, 「노동자의 힘」中에서
1.
2월 9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의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또한 과제를 극명히 보여준 매우 귀중한 17시간이었다.
이날도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지난 1월초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개최된 중앙위원회와 단위노조대표자 수련대회에서의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뒤집어 엎을 수 있다는 예감 같은 것이었다. 마땅히 노사정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이 예감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물론 부결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서 이후의 투쟁이 곧바로 담보되리라 믿지는 않았다. 노동자계급의 '원칙'을 고수했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은폐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을 갖고 싶었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염상진이 현실 투쟁을 넘어 역사투쟁을 결의했던 비장한 장면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극단적 생디칼리스트가 아닌 이상 노동조합의 총파업 투쟁을 물신화(物神化)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총파업 '전술'이 아니라 계급현실에 기반한 '투쟁'이 절박했다는 것이다.
이날 대의원들은 부결을 결정, 민주노총 지도부의 '직권조인'을 심판했다. '노동자의 목'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는 현장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원칙이 살아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싸움은 수포로 돌아갔다. 노동자계급의 원칙이 이른바 '국민여론'의 산을 넘지 못했다. 날치기보다 개악된 노동법의 국회통과를 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다. 14일 민주노총이 건넨 항의서한은 사실상 '항복문서'나 다름없었고, 13일 고 최대림 노동열사가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저지', '총파업투쟁 동참'을 호소하며 남기고간 유서는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더욱 책임 있는 반성이 필요한 이때, 투쟁을 새롭게 조직해야 할 지금, 일각에선 이날 대의원대회 결과를 두고 '진상조사'니 '명예회복'이니 하는 말들을 흘리고 다닌다.
갑갑함이 눈앞을 가리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본다.
2.
오전 10시. 성균관대 유림회관 1층 회의실에선 중앙위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앙위원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건 전날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노사정합의 원천무효', '지도부 총사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한라중공업 비대위, 전해투 동지들 80여명이었다. 중앙위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가게끔 길을 터놓고는 입구에서부터 회의장 앞까지 모두 에워쌌다.
30분쯤 지났을까.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 등 지도부가 입구로 들어서려 했다. 순간 터져나온 구호와 고함소리들.
"어용지도부 갈아엎고 정리해고 박살내자!"
지도부에게 노사정 합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몇 차례 고성과 실랑이가 오갔고, 상황이 예사롭지 않자 단병호 민주금속연맹 위원장이 나섰다. 배석범 직대를 비롯한 지도부들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민주노조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뒤로 '어용'소리까지 들을 거라곤 상상조차도 못했을 테니까.
늦게 꾸역꾸역 중앙위원들이 모여들어 회의는 11시경 시작할 수 있었다. 104명의 중앙위원 중 54명만이 참석했다.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긴 것이다.
이영희 부위원장이 노사정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보고를 하고 허영구 부위원장이 합의안의 내용을 설명했다. 백여명에 이르는 참관인들이 회의장을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메우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참, 보고가 시작될 즈음 '괴(?)복사물'이 나돌았다. 어떤 분이 일간 FAX신문 [노동조합정보]호외를 중앙위원들과 참관인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A4용지 2장짜리 분량으로 '쟁점사항 타결내용'에 대한 글이었다. 내용의 핵심은 '정리해고 - 날치기 노동법보다 절차, 요건 개악', '파견근로제 - 뒤바뀐 보호순위'였고, 노사정 합의안과 날치기 노동법, 현행법이 조목조목 비교되어 실려 있었다. 민철노련 한 중앙위원은 이 복사물을 예로 들며 합의안의 문제점을 따져 물었다.
그외 국민대통합 선행조치가 왜 건의사항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경영악화 방지를 위한'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등 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여러 차례 질문이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목소리들이 터져나오자 배석범 직대가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물리적 투쟁이 아닌 대타협이 필요한 시기라 판단했다. …… 민주노총이 불참할 경우 더 형편없는 법이 통과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 듣기에 따라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IMF 등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보니까 노사정 대타협이 국제신인도 회복과 나라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 부당노동행위 근절문제는 국민회의측과 노동부가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있다" 등등.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정부가 하는 이야기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배석범 직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없었을 것 같았다. 자그맣게 소리가 새나왔다. "똑같으면 똑같았지 비슷하다니". 민주노조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계 대표의 입에서 '자본가의 주장', '애국주의의 호소'가 흘러나온 것이다. 참관인들 중 대다수는 허탈감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
노사정 합의와 관련한 보고가 일단 끝나고 지난 2월 4일 국민회의 당사 농성에 들어간 부당노동행위 사업장 노조대표자들을 대신, 공익노련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노조위원장이 투쟁보고를 했고, "오늘 노무현 부총재와 면담했는데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대책을 촉구하자 취임이후 검토 가능하다는 등 의장이 말한 것과는 달리 해결의지가 전혀 없었다. …… 무차별적 탈법, 불법노동행위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근절대책이 없는데 노사정 합의라니, 결코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순간 배석범 직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영대 사무총장이 대의원대회에 상정될 안건을 간략히 설명하고, 한라중공업의 한 대의원이 노사정 합의 원천무효, 지도부 총사퇴, 임원선거 연기, 총파업투쟁 전개 등의 내용을 담은 긴급제안 결의문을 읽는 것을 끝으로 12시 30분경 중앙위원회가 마무리되었다. 이날 중앙위원회는 오후에 있을 대의원대회의 분위기를 암시했다.
3.
대의원대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고, 노사정 합의 부결을 주장하는 각종 선전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유림회관 바깥에는 성대강사노조 명의로 '노사정 협약안은 기만이다'라는 내용의 플랭카드가 붉은 천에 은빛 글씨로 섬뜩하니(?) 걸려있었고, 서울지하철노조 현장간부들 50여명은 바깥 계단에서 피케팅을 힘차게 진행했다.
이날 선전물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서울지하철노조의 소자보.
중앙위원 연명으로 된 '우리의 총파업·총력투쟁 결의' 포스터 위에다 이걸 붙여 놓았다.
제목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作心 3일'. 내용은 이러했다.
"재작년말엔 신한국당이 날치기하더니 이번엔 민주노총이 날치기 합의를 …… 쇼킹! 쇼킹!"
1시 20분경. 일군의 사람들이 1층 로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치연대와 수도권학생공동투쟁위원회(준) 주최의 '노사정합의 원천무효! 총파업투쟁 조직을 위한 결의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이 자리에는 한라중공업 비대위와 전해투,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소속 동지들도 가세, 로비를 가득 메웠다.
오세철 정치연대 대표는 인사말에서 "오늘은 민주노조운동이 '조종'을 울리느냐,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는 날"이라며 "이른바 '국민과 함께'라는 노사협조주의 경향은 노동운동이 아닌 '친자본운동'에 불과하다"고 민주노총의 최근 우려스런 조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외 전해투 집행위원장, 한라중공업 수석부위원장,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준비모임 대표, 연세대, 고려대 총학생회장 등이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성토 및 투쟁연설을 했다.
4.
어느덧 대의원대회 시작 시간인 2시가 넘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았다. 웬걸!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회장인 3층 대강당이 끼여들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대의원들 300여명을 빼면 참관인들만 무려 600여명에 달했다. 회의장 바깥에는 로비에서 집회를 마친 학생들 100여명이 둘러앉았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관심 이상이었다. 60만 조합원만의 민주노총이 아니라 바로 천삼백만 노동자의 희망인 민주노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은 2시 40분. 사람들은 가득 찼지만 회의를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3시 반까지 장내를 정리하고서야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허영구 부위원장이 노사정 합의과정에 대한 총괄보고를 했다. 그는 "49 : 51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고, 이영희 부위원장은 합의내용을 보고하면서 "3자 협의가 아니라, 사실상 신정부와 구정부, 전경련과 경총,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6자 협의였다. 어려움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참관인 석에서는 곧바로 야유가 터져나왔다.
보고중간에 의사진행 발언들이 이어졌다. 보고는 그만 듣고 곧바로 의안을 심의하자는 쪽과 충분히 보고하고 과정을 듣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라졌으나 결국은 간략히 보고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4시 30분경 노사정협상 관련 경과보고가 끝나고 부당노동행위 근절 투쟁보고가 이어졌다. 배범식 부위원장은 삭발에다가 머리띠를 두른 채 보고를 시작했다. 그는 "부당노동행위 근절에 대한 선결조치, 최소한의 병행조치도 없이 노사정이 합의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참관인들로부터는 '냉소'를 받아야 했다. "역시 선거군!"하는 수군거림도 터져나왔다.
4시 40분경. 본격적인 의안논의에 들어갔다.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가결될 경우 △노사정위원회 참가 및 각종 2차 개혁과제 추진 △합의내용 국회통과 점검 △합의문 세부사항 협의 및 후속조치 △재벌개혁 등 2차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고,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지도부 총사퇴 및 비대위 구성 △타결내용 전면무효화 선언 및 총파업 일정 확정 △ 임원선거를 연기하기로 의안이 상정되었다.
치열한 찬반토론이 시작되었다. 대회장의 열띤 분위기와 함께 '부결'을 주장하는 대의원들이 논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현대정공의 한 대의원은 "교섭위원들은 교섭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우리 뒤에는 1천2백만 노동자가 있다. 뭐가 무서웠는가. 전교조 합법화, 정치활동 보장 등을 얻었다는데 이것은 떡주고 떡고물 얻은 것에 불과하다. 1천2백만 노동자의 희망을 버리고 얻은 게 무엇인가"라고 힘주어 이야기했고 그외에도 조목조목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며 노사정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들이 터져나왔다.
한라중공업의 어느 대의원은 "조합원 목 자르는 걸 어떻게 동의해 줄 수 있는가. 노동과 자본 사이에 타협은 있지만 이것만은 절대 안된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장내는 순간 숙연해졌다.
또 의보노조 한 대의원은 "투본회의 등에서 정리해고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지난 총파업 때 이미 대중적으로 확인한 것 아닌가"라며 "역량이 적다고 타협할 수는 없다. 싸울 때까지 싸워야지 조합원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지도부를 성토했다.
이에 반해 건설, 사무 등의 몇몇 대의원들은 현재 역량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현실론을 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5시 50분경 찬반토론이 종결되고 정회. 합의안 부결의 기운이 짙자 투본대표자들이 지도부의 사퇴범위를 갖고 논란, 정회가 길어져 6시 45분경 논의가 속개되었다. 이번에는 찬반투표 방식을 놓고 논쟁이 오갔다. 기립으로 표결하자는 의견과 비밀·무기명으로 하자는 의견이 대립했고 비밀·기명으로 하자는 절충안도 나왔다. 한편 찬반투표까지 가면서 조직의 분열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의견을 모아 만장일치로 부결을 결정하자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다시 정회를 거듭하다 8시 45분경 기립으로 투표하자는 의견이 대의원 272명 중 148명의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다.
노사정 잠정합의안 찬성에 54명, 반대에 184명의 대의원이 기립했다. 대회장엔 힘찬 박수소리와 투쟁가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순간임과 동시에 부결을 결정한 대의원들, 투쟁을 독려한 참관인들의 어깨에는 무거운 역사적 책무가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5.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김영대 사무총장, 이영희 부위원장, 혀영구 부위원장, 배범식 부위원장 등 5명의 상근임원이 총사퇴했고, 현재의 투본대표자회의가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되었다. 사퇴범위에서 투본대표자들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우세, 상근임원 선에서 사퇴범위를 결정했다. 그러나 명시되지 않은 단서는 있었다. 투본대표자회의가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향후 투쟁을 지도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비상대책위원장은 단병호 민주금속연맹 위원장이 여러 차례 고사에도 불구, 정회 끝에 결국 수락의사를 밝혔고, 임원선거는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현재 등록된 후보는 모두 무효화되었다.
이후 투쟁방향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①요건과 절차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정리해고제 재협상 ②정리해고 법제화 반대, 재교섭 요구. 재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노사정 위원회 탈퇴와 총파업 돌입, 투쟁지침은 비대위에 위임. 단,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등이 강행 통과될 시 즉각 총파업 돌입 ③ 총파업으로 정면돌파, 총파업 일정 확정 등의 세 가지 안이 나왔다.
표결에 들어가서는 ①안 10표, ②안 110표, ③안이 57표를 얻어 재적대의원 227명의 과반수를 넘는 안이 나오지 못했다. ②안과 ③안을 놓고 재표결한 결과, ②안이 170표를 얻어 이후 투쟁방침으로 확정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권영길 전민주노총 위원장이 재벌해체, 전교조 합법화를 대의원대회 특별결의안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했고, 이를 대의원들이 동의하면서 새벽 3시경 모든 일정이 끝났다. 사람들은 다소 지쳐있었지만 투쟁을 요구한 현실은 지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6.
비상대책위는 곧바로 10일 오전 1차 대표자회의를 개최, 대의원대회의 열기를 담아 조합원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총파업투쟁의 힘찬 결의와 투쟁을 전개해나가야 할 때입니다. …… 비록 많은 책임을 져야할 저희들이지만 동지들의 결정에 따라 총파업투쟁에 앞장서겠습니다"
그리고 2월 13일 오후 총파업 돌입을 천명했다. 67개 노조에서 13만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확인까지 했다. 참고로 지난 96년 12월 26일 노개투 총파업 첫날 동력은 85개노조 14만 3천여명이었다.
그러나 비상대책위는 12일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2차 대표자회의를 개최, 결국 총파업을 철회했다. 대의원대회의 총파업 결정을 불과 사흘만에 번복한 것이다. 그날 12시 국민회의 당사 앞 집회까지 만해도 "총파업투쟁으로 민주노총 강화하자!"라는 구호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다른 건 다 제껴두고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 결정에 대한 '해설'이다. 살을 추려내면 총파업 철회의 근거는 '국민적 지지획득', '조직의 보존'에 대한 집착만 남는다. 이러한 정세판단과 인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두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비상대책위의 투쟁방침 설명 중 "점검된 투쟁동력이 일정한 역량이 되나, 지난 날치기 총파업처럼 지속적·전면적 총파업을 진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난 노개투 총파업 때 사용되었던 이른바 '유연한 전술'이 왜 이때는 발휘되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정리해고 법제화를 하루 앞둔 13일 중앙위원회는 비상대책위의 총파업 철회 결정을 사실상 추인했고, "총파업은 비록 철회했더라도 할 수 있는 투쟁은 다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일부 중앙위원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14일로 예정된 집회마저 취소, 몇몇 사람들은 종묘공원을 쓸쓸히 배회해야 했다. 민주노총 깃발을 목놓아 기다리면서.
'폭설을 뚫고 갓 피어났던 희망은 금새 시들어 버렸다. 뿌리가 얕았던 탓이다. 그러나 희망은 노동의 대지에 뿌리내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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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