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0년대 후반 미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부활을 대표하는 노동운동 활동가 포럼의 이름이자 그 기관지인 {Labor Notes}의 편집주간인 Kim Moody의 근저, Workers in a Lean World: Unions in the International Economy, Verso, London, 1997의 초록으로서, 계간학술지 New Left Review, 1997년 9·10월호(통권 225호)에 게재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의 분량이 많기 때문에 3번으로 나누어 연재한다.



국제적인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를 위하여(1)


Kim Moody

미국 {Labor Notes} 편집주간




1990년대 후반 세계자본주의의 구조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자본주의는 이제 전지구적이지만, 세계경제는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고 고도로 불균등하다. 남북(선진공업국과 후진국)간의 오랜 격차는 대중의 수입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남은 북에 기지를 둔 기업을 위한 저임금 제공자의 역할에 묶여 있다. 기업이 지배하는 생산체제는 이 남북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주로 북의 시장을 위해 생산하고 있다. 북 자체는 이제 3개의 주요 경제지역으로 분리되어 차례로 남북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이 분리된 세계에 양다리를 걸친 것은 3개 지대의 각각과 그 너머에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들(TNCs)이다. 이 과정을 규제한다는 다자간 협정 및 기구들은 정부들을 길들이고 원심적 시장세력을 고무하도록 정비되어 있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구조와 세력들은 세계의 노동자들을 경쟁적으로 경제적·사회적 밑바닥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러나 21세기가 다가옴에 따라, 자본주의적 지구화, 그 구조와 영향에 대한 반란이 시작되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996년 미국의 파업 통계는, 여전히 아주 낮지만, 수년만에 처음으로 증가해서, 1,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파업은 1995년 195건에서 1996년 237건으로 늘어났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과 영국에서도 현재 쟁의의 수위가 의미심장하게 상승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반란은 남북의 경제 양쪽에서,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주요한 3개의 경제지대 모두에서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견딜 수 없게 됨에 따라 이 반란은 현장 수준에서 지구화 과정의 가장 기본적인 영향에 맞서고 있다. 그것은 일국적 수준에서 보수적 신자유주의적 계획과 맞서고 있으며, 간접적이긴 하지만 국제적 수준에서 자본이 불안정한 다자간 체제를 획책하는 데에 맞서고 있다. 몇몇 곳에서 그 폭발적 힘은 친구와 적을 모두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반란의 중심에는 노동계급과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인 노동조합이 있다.

노동계급은 지금 변화하고 있다. 여성과 이민자들이 노동력의 더 큰 비율을 차지함에 따라 노동계급의 구성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다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들의 조직들도 유동하고 있다. 일부는 여전히 쇠퇴하고 있고, 일부는 성장하고 있으며, 모든 곳에서 변화하고 있다. 이 반란은 그 범위에 있어서 국제적이지만, 대개는 일국적 지형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그리고 국경과 바다를 건너 인종, 민족, 성별의 경계선을 넘어서 행동의 통일을 창출할 필요성은 전보다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의 어려움이 여전하긴 하지만. 올해 7월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직원들이 승무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음식 공급을 끊으려는 경영진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것은 비교적 새롭게 노동조합운동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투성을 입증하였다. 그들의 성공은 또한 노동조합이 남성 경영진과의 투쟁 속에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입증하였다.

이 반란은 그 공식적 지도자들 중의 많은 이들이 싸우기 싫어하는 전사들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 브라질,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지구적 자본 또는 그것의 지역적 신자유주의적 대표자들과의 투쟁을 시작하기를 원하지만, 유럽의 '사회적 동반자들', 일본의 기업별 조합주의자들, 북아메리카의 실리적 조합주의자들은 어떠한가? 마비상태로부터 저항으로의 변화는 각국의 특수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겠지만, 이 특수성 근저에는 아주 많은 곳에서 노동진영을 대결로 몰아가는 무언가가 있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나라에서 일어난 반전은 발전된 산업국에서 더욱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주목할 만한 예외를 제외하고 많은 노동조합 최고지도자들이 새로운 '현실주의'를 수용하기 때문인데, 이 새로운 '현실주의'란 경쟁력에 대한 기업의 고려를 지지해야 하고, 경영진과의 협력은 그러한 목적에 대한 수단이며, 일국적 또는 지역적 자본과의 동반관계는 고용안정의 길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새로운 세대의 유럽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급여와 수당의 삭감 필요성에 대해 설교'하려 한다고 확인했다. 이들 중에는 프랑스의 민주노동총동맹(CFDT)의 니콜 노타(Nicole Notat), 영국 노총(TUC)의 존 몽크스(John Monks), 독일 화학노련(IG Chemie)의 훔베르투스 쉬몰트(Humbertus Schmoldt), 이탈리아의 옛 공산계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의 세르지오 콘페라티(Sergio Cofferati), 그리고 스페인의 유사한 옛 공산계 노동자위원회의 안토니오 구트리에레즈(Antonio Gutrierrez) 등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노동현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에 대해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보다 많은 고위급의 이름이 이 불명예스런 명단에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연합자동차노련(UAW)의 새 의장 스티브 요기치(Steve Yokich)는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한 10여건의 지역파업에 동의했지만, 1996년의 전국협약 협상에서 여전히 보다 많은 유연성을 허용한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의 새 의장은 조직화에 있어 보다 많은 전투성을 호소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업 지도자들에게 동반자 관계에 들어올 것을 요청한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조합들의 캐나다 지부의 싸우기 싫어하는 지도자들은 행동의 날(Days of Action)에 무대 뒤에서 저항했지만, 결국은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제3세계의 보다 새로운 일부 노동운동 내에서도, 온건노선과 '동반자관계'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파업들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의 성격 그 자체에 있다. 노동조합은 모호한 조직이다. 한편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의 방어를 위해 자본과 투쟁할 자세를 취한다. 한편, 상층 지도부에서는 노동조합은 사회적 동반자관계의 초기적 형태인 장기적인 안정적 교섭관계를 통한 방어노선을 유지하려고 기도한다. 노동관료주의와 자본관료주의 간의 더욱더 이데올로기적이고 또는 심지어 제도적인 '동반자 관계'를 향한 걸음은 항상 커다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경제적 변화와 경쟁의 바람이 불고 탁상공론은 무너진다.

일상적인 교섭을 통한 방어노선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바로 이들 동일한 지도자들이 투쟁을 호소하고 때로는 수행하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투쟁은 낡은 안정적 관계의 이름으로 수행된다. 최고 지도자들에게는 그것이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의 새로운 요구와 조합들의 낡은 방어노선 사이에는 근저적 모순이 있다. 안정의 시대는 갔지만, 안정과 정상적 교섭의 실낙원은 심지어 그들이 대치상태에 있을 때에도 계속 지도자들의 행동을 지배한다. 비록 그들의 눈은 분명히 과거를 응시하고 있더라도, 행동은 때때로 취해진다. 이러한 모순이 조합의 효율성을 제한할 것임은 명백하지만, 그것이 그러한 행동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많은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이 새 세대가 이행기에 최고 노동지도자로 취임했다. 그들 대부분은 장기간의 마비와 구조조정 기간인 1980년대에 출세지향적 경력을 쌓았다. 그들은 그 시대의 협조적 의제들을 무언가 새로운 전지구적 시대에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지도자들이 자신을 '새로운 현실주의' 또는 '산업 민주주주의'의 대표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편의주의는 자주 보다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띤다. 엄청난 변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합원들부터의 강력한 반대 없이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불가피하게 한편에서는 보다 많은 노동과 보다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새로운 협조 분위기에 대해 더 의구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 대부분 동안 그들은 평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서게 할 수는 없었다. 활동가들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연생산, 신자유주의적 긴축 및 국제적 경쟁의 압력은 갈수록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의 갈수록 많은 부분을 압박하였다. 1994~97년의 대중파업은 난데없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 파업이 일어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 구체적 현장에서 이미 저항의 전사(前史)가 있었다. 프랑스항공(Air France), 프랑스통신(France Telecom), 국영철도와 빠리의 도시철도와 같은 프랑스의 공공부문에서의 파업들은 1992년 또는 1993년에 시작되었다. 사실, 그 파업들은 훨씬 더 전인 1987년 철도노동자들과 간호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평조합원 조직인 꼬르디나시옹(coordinations)에 의해 지도되었다. 스페인에서는 1993년 및 1994년의 대중파업뿐 아니라 주요 산업 부문에서의 오랜 파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공식적 코바스(Cobas)에 의해 조직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들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공공 및 민간부문 양쪽에서 파업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새로운 지도자들이 취임할 즈음에는 평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의 분위기가 이미 변화되고 있었다. 또는 적어도 두려움과 행동 사이에서 더욱 분열되어 있었다. 일자리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남아 있었지만, 인적자원 관리, 팀 개념, 총품질(total quality), 또는 새로운 노동방식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간에 그런 이름들이 제시하는 약속을 믿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민간부문이든 공공부문이든 새로운 노동현장은 대부분의 경우에 더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 감량경영과 구조조정으로 일자리 상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국가적 사회보장제도는, 한편에서는 공공부분의 고용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욱더 많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면서, 삭감되거나 심지어 해체되고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활동

1990년대의 행동으로의 복귀는 여러 면에서 1967~1975년의 노사관계 대격변과 다르다. 비록 1960년의 규모도 아니고 아직은 대격변도 아니지만, 그것은 보다 일반적이다 ―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다 많은 노동자 집단을 행동으로 몰아넣는 여러 과정들처럼, 반란 자체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 보다 진정하게 지구적이다. 그것은 현시기의 보다 시사적인 전략적 개념들 중의 하나, 즉 변화하기 시작하는 북의 오래된 조합과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모델을 제공하는 남의 대부분 산업국가의 새로운 사회운동적 조합간의 공동행동을 위한 잠재력을 암시해 주고 있다.

1967~1975년의 대격변이나 1930년대 또는 1940년대의 그것들보다 더 커다란 정도로, 이번 것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반란이다. 이런 사건을 주도하는 것은 자주 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이지만, 대중파업의 물결 속에서 보건의료 노동자, 교사, 그리고 기타 노동자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여성노동자가 훨씬 많은 공공부문이 많은 나라에서 처음부터 이 대중파업의 대열을 확장시켰는데, 이는 노동력과 조합 양쪽에서의 여성의 새로운 역할을 반영한다.

일국적으로 볼 때도 국제적으로 볼 때도,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파업과 투쟁들은 파편화로 상징되는 노동현장에서의 많은 변화를 반영한다. 대중행동의 열기 속에서는 그러나 국제적 차이, 인종적·성적 다양성, 그리고 예를 들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조합과 같은, 낡은 부문적 구분은 파업노동자들과 이 운동에 대한 거의 전반적인 지지를 표명한 노동계급 대중 모두에게 강점으로 나타난다. 오리건 주 공무원들의 1996년 파업은 1995년 프랑스의 공공부문 총파업에 비해 덜 화려했지만, 거기에는 똑같은 정도로 다양하게 많은 인종의 육체, 서비스 및 전문직 남녀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다. 유사하게, 온타리오의 1일 총파업은 한국(South Korea)이나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비해 거의 길들여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마찬가지로 명백히 다양한 노동자들이 동원되어서, 여성들이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고 인종적·직업적 다양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조합과 연맹을 이끌게 된 새로운 지도자들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그리고, 약간의 주목할만한 예외는 있지만, 인종적 또는 성적 구성에서 과거를 반영했다. 그들이 인기가 있었건 없었건 간에, 확실히 그들은 결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전투에 나선, 마지못한 장군들처럼 한동안 망설였다. 논쟁이 증가하고 몇몇 곳에서 반대운동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최고 지도자들의 버틸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의 노동조합 구조에서 커다란 문제들 중의 하나였다. 민주주의와 지도부 책임제의 결여는 기본적인 결점이었으며, 새로운 상황하에서 투쟁에 나선 조합들에게 심각한 약점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효과적인 역할을 하려면 조합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변화를 위한 작업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적 행동의 중요성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이 국제주의의 영역보다 더 명백한 곳은 없었다. 1990년대에 현재의 지위에 오른 최고 지도자들은 확실히 전임자들보다 국제적 차원의 단체교섭을 더 의식했다. 정말로, 전지구적 경쟁은 일상적으로 양보와 후퇴를 주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서의 전지구적 마인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갤린(Dan Gallin)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조합과 연맹들을 여전히 민족적 그리고 민족주의적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AFL-CIO의 의장 존 스위니(John Sweeney)의 저서 {미국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America Needs a Raise)를 읽고 나서 {레이버 노트}(Labor Notes)에 기고한 글에서 독일의 한 노조간부(shop steward)는, "나는 스위니 형제의 극도로 민족주의적 관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선진산업국의 대부분 노동연맹들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바로 기업 경쟁력 이데올로기의 수용이 의미하는 것, 즉 전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자기 나라의 고용주들을 지지함으로써 일국적 수준에서 그럴듯한 '직업안정'을 추구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국제적 생산 연계의 윤곽과 취약성은 노동계에 충분히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기초 위에서 실제로 행동한 노동조합은 거의 없었다. 물론 산업별 또는 기업별 토대 위에서 국경을 초월하는 네트워크(network)를 건설하려는 연합전기공노조(UE)의 새로운 계획, FLOC(농업노동자 조직위원회)의 SNTOAC(멕시코 전국농업노동조합)과의 동맹, 노동자위원회(CO)의 북아프리카 관련 조합들과 동맹을 건설하려는 시도, 또는 캐나다항공(Air Canada)에서의 CAW-Teamster-TGWU의 동맹, CAW의 멕시코 노조들과의 활동 등 중요한 예외도 있었다. 하지만, 선진산업국가의 대부분의 조합 지도자들은 한국이나 남아프리카에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연대대표단을 파견하는 데에는, 혹은 공식적 노동 국제주의로 간주되는 교감을 위한 또는 의례적인 회의에 참석하는 데에는 재빨랐지만, 국경을 초월하여 산업별 동맹과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보다 어려운 작업은 여전히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국제노동조합서기국(ITS)은 이런 면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활동은 서기국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는 가입 연맹들의 민족주의에 의해 제한되었다.

문제는 단지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국제적 수준에서 충분히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니다. 지구화의 구조와 영향에 대항한 대부분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일국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결국 노동자들이 살고 일하고 투쟁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또한 첫번째의 대중파업들이 주는 교훈이고, 심지어 자본의 전지구적 체제에 대항한 더욱 국지화된 투쟁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현 시기에 효과적인 국제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초국적 자본 및 자신의 '뒷마당'에 있는 그들의 정치가들의 의제 전체에 대해서 반대를 제기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능력이다. 왜냐하면 이 의제 또한 궁극적으로는 일국적 수준에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신중하고 노동관료주의 대 기업관료주의의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노골적으로 적을 포옹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이다. 수많은 조합지도자들이 지니고 있고 또 조합과 연맹들의 출판물, 교육 프로그램 및 공식적 입장으로 제도화된 동반자 관계의 이데올로기야말로 명확한 행동노선에 대한 장애물이다.

자주 투쟁을 기피하는 지도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적 수준에서 자본 및 국가와의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이 새로운 수준의 투쟁은 역으로 변혁적 힘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종류의 투쟁을 통해서 대중과 그들의 의식이 변화한다. 겁 많고 소극적인 평조합원들이 대중시위나 보다 더 노동현장의 문제에 제한된 투쟁 속에서 거리의 영웅이 된다. 새로운 세력들이 투쟁에 동참하고 또 오래 동안 부정되고 숨겨졌던 계급의 힘이 가시화됨에 따라서 무엇이 가능한가 하는 데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어제는 서로 경쟁하던 인종적 혹은 성적 그룹이 오늘의 동맹자로 된다. 이러한 투쟁을 선동해 왔던 활동가들은 이제 기반을 갖게 되고, 조합 내의 보수주의자들은, 한동안, 고립된다.

우리가 지금 격화된 계급투쟁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는지 어떤지, 혹은 그것들이 나타날 때만큼이나 빨리, 최근의 투쟁들이 사라질지 어떤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파업과 운동을 낳게 한 정치적 경제적 압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연생산도 시장의 지배도 결코 이윤율의 위기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사실, 국제경쟁이라는 폭풍우는, 어느 편이냐 하면, 오늘날 더욱더 파괴적이다. 과거의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의 새로운 계급갈등의 시기는 최소한 몇 년간, 아마 10년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러한 투쟁과 대중행동의 환경 속에서, '대안이 무엇이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관한 대처(Margaret Thatcher)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보다 명백해진다. 노동자계급 조직에서 특정한 요구와 변화가 전면에 나타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시기 속에서이다. 1880년대의 8시간 노동일에 대한 요구, 1914~1921년의 노동현장 조직과 현장 노조간부, 1930년대의 산업별 조합주의, 그리고 1930년대의 주40시간 노동제 등등. 이러한 착상은 과거에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그 당시 일어난 파업운동, 정치투쟁,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 초점을 제공했다.

지구화시대에 걸맞은 비전은 사회운동적 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이다. 그것은 남아프리카, 브라질, 한국, 그리고 제3세계의 보다 산업화된 기타 지역에서 이미 태어나 성장하고 있다. 산업화된 북에서는, 조합내부의 반대그룹, 조합활동가들의 전국적인 조합간 네트워크, 국제적인 연대 네트워크 및 위원회, 공식적·비공식적인 초국경 네트워크, 그리고 민초(民草)의 유일한 전지구적인 산업별 네트워크인 TIE(초국적 정보교환)그룹 등에 의해 제시된 많은 생각들 속에 그것이 함축되어 있다. 이들 세력은 조그맣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주변적이지만, 그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지구화 시대에 적절한 사고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한/노/정/연


번역 : 원영수 / 정세분석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