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는 사라지고 박수만 남았다
-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창립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 -
김 주 희
현대자동차노동조합 대의원
2월 15일 06:30분경 대절한 관광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2월 13일 밤에 결정된 파업철회에 대한 허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금속3자 통합 대의원대회가 무엇을 결의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갑갑한 마음이 먼저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의 기대를 하면서 6시간을 달려왔다.
도착해 보니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가 휩싸고 있는 가운데 최대림 열사의 영정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열사에 대한 추모의 열기는 간 데 없고 전해투 동지들의 규탄의 목소리만 메아리치고 있었다. 금속산별의 출발을 알리는 자리치고는 너무나 빈곤한 자리임을 알리는 상징처럼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전국에 금속 노동자 중간간부가 모인 이 창립대의원대회가 과연 금속산별을 힘차게 선포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인지 아니면 형식적인 상층부의 금속통합을 박수치고 추인하는 자리인지!!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에게 창립대의원대회의 첫느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본대회가 시작되면서 느낀 몇 가지
우선, 창립대의원대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결정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강령·규약제정, 지도부 선출, 사업계획 및 예산안 심의, 중앙위원 선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결정하려면 미리 검토와 토의가 가능하도록 사전에 그 내용이 현장에 배포되어야 했다. 대회 당일날 이 자료가 배포되면 그 내용이 어찌 되었든 대의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상층부에서 정리한대로 대의원들은 박수치고 끝내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동안 우려해 왔던 3조직 상층부의 사업방식이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낀다.
둘째, 임원의 선출문제가 대단히 심각함을 느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하지만 대중적인 선출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그런데 3조직이 고루 배분하는 내용으로 결정되었다. 고루 배분하는 것이 3자 통합에 있어서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비판했던 보수정치권과 과연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업작풍은 당장 효율적일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내부의 비민주성만 길러내는 기생충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임원으로 추천이 됐으면 적어도 출마의 변이나 주장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위원장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자. 다른 임원후보들은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 대의원들의 상황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주장이나 출마의 변도 듣지 못하고 투표권을 행사했다. 반장선거도 이렇게는 안한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답답해서 가슴이 막혀오고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었다.
10년간 선배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응축된 결과가 겨우 이런 것이란 말인가?
셋째, 중앙위원 선출문제를 얘기해 보겠다.
자료집을 보니 벌써 중앙위원들 명단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회 안건에는 중앙위원 선출건이 잡혀 있었다. 어느 개그우먼의 유행어처럼 "으이 뭐 이런기 다 있노?"란 말이 실감이 난다. 마침 어느 대의원의 지적처럼 경과규정을 두어 한시적으로 1개월 가량 운영하고 후에 연맹별로 중앙위원을 선출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결국 업종별로 선출하자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여기서 나는 의심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왜 지적이 나오기 전에 이런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만약 대의원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게 아닌가?
중앙위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앙위원회는 매 시기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단위이다. 중앙위원으로 누가 선출되는 가는 앞으로 통합 금속연맹의 노선과 집행방향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도부가 이것을 몰랐을 리가 만무하다. 알면서도 이런 문제를 덮고 지나가려고 했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넷째, 임원의 임기문제가 매우 뜨겁게 논의되었다.
원안은 3년의 임기를 명시하며 그 이유로 집행의 안정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또한 연임규정을 두고 있었다. 지금 조합원들의 정서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매우 불신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의 활동가들 또한 그러하다. 진정한 지도부라면 대중의 검증이 있어야 된다. 투쟁을 해야할 때 과감히 헌신적인 희생으로 투쟁을 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상층부 협상보다는 아래로부터 대중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사람, 대중의 단결된 힘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력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이번 총파업결정과 철회과정에서 보여준 지도부의 지도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년 임기를 주장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임을 지적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대 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하고, 다음 임기는 2년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임기문제는 조직내의 민주적인 집행구조를 정착시킨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크게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초대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하고 차기는 3년으로 한다는 것이 표결로 통과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섯째, 자료집을 보면 98년 임단투 방침안 중에 교섭·체결권 위임전술에 대해 나와있다.
나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섭권위임도 아니고 체결권까지 위임이라니!! 말 그대로 체결권이란 조합원총회의 다른 표현 아닌가? 체결권을 위임하라면 조합원총회를 안하겠다는 말 아닌가?
너무나 깜짝 놀라 질문을 하였는데 답변이 걸작이었다. "교섭·체결권 위임은 사용자단체를 교섭석상에 불러내기 위한 전술의 일환이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추가질문을 하였다. "이번에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파견위원의 역할은 교섭만 하는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한 결정은 대의원대회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체결권까지 행사했던 것이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가는 상황에서 차후에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하자 "전술은 전술일 뿐 실제로는 조합원총회를 거치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지금과 같이 지도부의 지도력과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말 그대로를 믿기에는 너무나 불안하기 그지없는 심정이다. 이것이 나만의 심정일까?
지도부의 지도력과 신뢰가 확보되어 있다면 문구 하나하나에 크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중앙위원회에서 사업계획과 98년 임단투안을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넘어갔다.
중앙위원에게 부탁드린다.
구체적인 문제까지 상세히 검토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잡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여섯번째, 통합금속연맹 위원장 및 임원을 간선제로 뽑는 문제이다.
이번에는 여건과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차기 임원선출때에는 직선제로 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지도부를 직선제로 뽑는 것이야말로 20만 금속연맹 조합원 전체의 축제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검증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만이 조합원의 지지로써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고, 그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 질 수 있다. 자신의 노선 및 공약(다른 말로 하면 집행과제)을 20만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주장하고 대중들에게 판단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의원의 간선선출방식은 몇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500명당 1인의 대의원이 과연 500명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의원의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임원의 선출이 좌우될 가능성이 많다. 예상컨대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선을 한다면 자파 대의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보수정치권의 전당대회과정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 아닌가?
20만 조합원의 뜻이 얼마나 반영되는가의 문제와 간선과정에서 벌어질 잡음 등으로 여러 가지 폐해가 심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20만 조합원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르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된다. 직선제로 인해 시간과 역량이 엄청나게 소모되므로 직선제 또한 문제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효율성만을 따지다가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원칙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최근에 그 폐해를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더디 가더라도 원칙과 과정을 거치면서 가자. 그럴 때만이 우리의 조직력은 보다 튼튼하게 확보될 것이다. 그리고 직선제의 기술적인 문제는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똑똑한 인재들이 20만 조합원들 가운데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타 안건에서 다루어진 총파업 결의에 대한 문제이다.
투쟁시기 때마다 당위성과 현실성 사이의 고민과 치열한 논쟁이 있어 왔다. '투쟁을 해야되는 당위성은 인정하겠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항상 있었다. 당위성과 현실성은 투쟁시기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 10년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지도부의 헌신적인 노력과 대중의 역동성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왔다. 때로는 부분적인 승리도 쟁취했고, 때로는 실패의 경험도 겪으면서 민주노조운동은 승리와 실패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왔다.
단위노조의 결사항전투쟁으로 총자본과 정권을 상대로 정말 힘겨운 싸움을 해 왔던 경험도 갖고 있다. 작년 노개투 때에도 총파업투쟁을 준비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 사이에서 '과연 총파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자발적으로 총파업투쟁으로 떨쳐 일어났다. 대중의 역동적인 힘이 지도부의 우려를 깨끗이 뎶어준 것이다.
나는 이번 총파업투쟁의 준비과정과 파업철회의 결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과연 지도부가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정말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도 현재의 투쟁준비정도가 뒷받침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투쟁보다는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에만 매달렸고 대중을 신뢰하기보다는 불신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파업철회 기자회견을 보면 '국민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한국경제의 위기로 인해', '현재의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내용으로 파업을 철회한다고 발표하였다.
한번 살펴보자. 우리가 언제 여론이 좋았던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파업을 하면 당연히 경제에 타격이 오는 것 아닌가? 이런 이유 때문에 파업을 안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파업투쟁은 불가능해진다. 역사를 보면 공황기에도 노동자들의 가열찬 파업투쟁이 있어왔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에게는 조직보존주의가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무모한 싸움을 하다가는 조직의 와해위기가 초래되기 때문에 조직을 보존해서 차후에 준비된 싸움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과거 5·6공 군사정권시절에 전노협은 가열찬 투쟁을 통해서 조직을 지켜왔다. 물론 조직이 침탈되어 조직력이 상당히 와해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전노협의 권위와 상징만큼은 대중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민주노총이 탄생된 것이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민주노총의 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
조직의 발전은 투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역사가 생생히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총파업 불발로 인한 패배는 대중의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라 민주노총 지도부의 결사항전의 투쟁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목에 칼을 대는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에 대항하여 투쟁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 시기에 '우리는 준비했는데 다른 데는 왜 못했는가?'하는 말은 하지 말자. 앞으로는 그러한 얘기를 따질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각 사업장별로 합법적으로 현장을 초토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준비가 되었는지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무조건 싸워야하는 상황이다. 조직이 보존되니 마니 그러한 얘기는 사치스럽다. 현장이 작살 나는 판에 민주노총조직이 보존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바란다.
지금부터 고용불안이 발생되거나 예상되는 사업장을 파악해서 투쟁대책위를 시급히 조직하기 바란다. 각단위사업장은 각개격파의 위기에 놓여있다. 당장 준비될 수 있는 곳부터 조직해야한다.
지도부의 투쟁결의를 요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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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