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2】

민주노총은 죽었는가?

1998. 2. 25. / 윤명선

1. 들어가면서

현장노동자의 이야기

노동자 1 : 민주노총은 죽었어.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에 직권조인하고서는,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뒤집고 총파업을 결의했잖아! 비대위는 13∼14일 총파업하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여론에 집중적으로 얻어맞고 검찰이 불법파업하면 구속하겠다고 하니까 파업을 철회했어! 집행기구인 비대위가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뒤집어엎고, 싸우기가 무서워 등을 보이고 도망갔어. 민주주의도 투쟁성도 어디 간 거야? 조합원의 의사와 생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민주노총은 죽었어! 이제 싸울 기력도 없는 만신창이, 불구가 되어 버렸어. 차라리 단번에 노사정 협약에 도장찍고 끝낸 한국노총이 상처도 덜 입고 낫지 않아?

노동자 2 : 노동운동은 죽었어! 50년 썩은 어용 한국노총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실질적 대표조직으로서 함성을 지르면서 태어난 민주노총도 이제 설립 2년만에 무너졌어. 영삼이의 꾐에 빠져 노개위에 들어가서는, 역사적인 노동법 개정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여야 야합에 의한 노동법 전면개악으로 막을 내리더니,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98년 2월까지 전산업 정리해고 법제화를 공언하고 IMF에 보고까지 마친 대중이의 노사정위에 들어가 더욱 악화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에 스스로 도장찍고 말았어! 내부 분열에, 여론에 몰리고, 싸울 기력도 잃어버렸어!

노동자 3 :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10여년 쌓아온 노동운동의 성과가, 아니 수십년 피터지게 싸워 온 노동운동의 결과가 결국 이 모양인가? 만신창이가 된 노동운동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벗어날 기력도 방법도 없구나! 정치로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은 국민회의나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커 갈 일이지, 왜 노동운동 지도자로 행세하며 노동자들을 이용하는가? 왜 10여년 노동운동을 이끌며 온갖 고통을 함께 겪어온 지도자조차 타락하고 비실거리는가! 용기도 헌신성도 이제 사라지고 욕심이 앞선다면 지도자 행세를 그만두고 물러나 현장에서 땀흘리며 노동하는 게 낫지 않은가?

2. 대의원대회, 노사정협약 부결, 총파업 결정하다.

1998년 2월 6일 조간신문은 일제히 머리기사로 노사정협약합의(타결) 사실을 보도하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자 노동현장은 들끓기 시작하였다. 분노에 찬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사무실)으로 대의원 대회장으로 몰려들었다.

1998년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중요한 몇 가지 사항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협약의 직권조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명확히 밝혀졌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

⑴ 1998년 2월 6일 새벽 직권조인된 노사정협약을 부결하였다.

⑵ 노사정협약 직권조인에 이르게 된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의 상근임원은 퇴진하였다.

⑶ '직권조인'에 이르게 된 과정에는 교섭대표들(노사정위원회 위원, 기초위원)에게 권한과 책임한계를 명확히 규정해 주지 못한 투본대표자회의에도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였다.

⑷ 1998년 2월 4일의 투본대표자회의는 교섭대표에게 교섭권한을 부여하였으나 협약의 체결권한은 부여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⑸ 민주노총은 노사정협약의 재교섭을 요구하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총파업을 포함하여 총력투쟁하기로 결정하였다.

⑹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계획 집행하기 위해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단병호 민주금속노조연맹위원장을 비대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투본대표자회의 구성원(퇴진한 상근임원 제외)을 비대위 구성원으로 하였다.

⑺ 2월 26일의 정기대의원대회와 함께 임원선거를 무기 연기하고 이미 등록된 임원후보 등록은 (본인들의 사퇴를 전제로) 무효화하였다.

3. 김대중당선자는 노사정위원회를 들러리로 앞세워 이미 기정 사실화한 정리해고법제화를 합리화하려 하였다.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 중앙지도부가, 산별 대표자들마저도, 얼마나 중심이 없이 동요하고, 노동운동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지, 현장대중의 요구 및 정서와 유리되어 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노동현장에는 IMF공황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정리해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IMF공황은 이를 더욱 심화하고 가속화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취임후 6개월간 정리해고 금지를 비롯하여 10개 이상의 고용안정에 관한 공약과 IMF구제금융조건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된 후 곧 IMF구제금융조건 철저 이행으로 돌아섰고, 나흘만에 정리해고방침을 천명하였다. 2월 이내 전산업 정리해고방침을 결정하여 IMF에 보고하고, 대내외에 공포하였다. 그런후에 이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법제화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끌어들여 승인케 함으로써 노동운동을 무력화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대통령(당선자) 직속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한 것이다. 오랜 세월 자본의 노동자지배구조로 이용해 온 한국노총은 언급을 말자. 자주적 민주적 노동운동의 결집체요 대표체인 민주노총은 김대중당선자가 설치한 노사정위원회라는 함정에 스스로 기어 들어갔다. 이는 민주노총 원년에 노개위에 끌려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김영삼대통령이 대통령자문기구로 설치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에 끌려 들어가서, 정권의 하위 동반자로서 정권의 노동법개정방침에 따라서 (자본과 노동간의)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관계를 형성' 하기 위해서 노동법개정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전면적 개악법인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통과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폭풍과 같은 총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1997년 3월 10일 여야 야합에 의한 노동법 전면 개악으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간 이후에는,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등의 법제화에 도장을 찍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론을 빙자한 관제언론에 뭇매를 맞으면서 판을 깨고 나오는 길밖에 없었다.

1997년 3월 10일 여야합의로 개악된 노동법체계 전체와 함께 법제화된 정리해고 내용을 우리 노동자들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 '노사정위'를 거쳐서 법제화한 정리해고 내용은 1997년 3월 10일 통과된 정리해고조항의 2년 유예조항(1년 남음)을 없애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인수·합병시 정리해고를 허용함으로써 노동자의 모가지는 파리 목숨이 된 것이다. 노동자는 자본의 노예가 되고, 노동운동은 죽어갈 것이다. 근로자파견제 또한 광범위한 중간착취를 허용하고,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를 불안정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를 마치 재벌개혁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재벌계획이 선행되면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재벌개혁 해체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IMF신탁통치 아래 김대중 당선자도 이의 이행을 약속한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 적응, 재벌 스스로 생존을 위해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벌개혁은 전반적으로 미일 서구의 초국적자본의 한국지배를 심화 구조화하는 것이지만, 초국적자본의 지배하에 이와 동반자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총자본의 합리화의 과정이기도 하고, 노동에 대한 지배통제의 강화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에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는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 생존권 자체를 도탄으로 몰아넣으면서, 노동운동을 무력화함으로써 자본의 노동지배 통제를 견고화하는 것이다. 정리해고 및 근로자파견제 법제화는 재벌의 개혁과 바꾸어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선거관계법의 개정을 통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이나 교사·공무원 단결 단체교섭권 확보를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와 바꿀 수 있는가? 이것 역시 결코 아니다. 국제적 수준의 노동관계법 개정은 김대중 당선자의 대선공약사항이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이나 교사·공무원 단결 단체교섭권 허용은 노동관계법의 전면적 개정이 아닌 일부 조항에 관한 개선일 뿐더러, 그 수준 또한 국제적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우리는 국제적 수준이 아닌 전면적 노동3권 쟁취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를 허용하는 반대급부로 일부 노동자계층의 권리의 개선이나 노동관계법의 부분적 개선을 성취한다는 것은 바로 노동자계급 대중 내부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대중은 단결 투쟁함으로써 전면적인 권익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지, 이러한 분열적 타협적 방법으로 진정한 권익을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정리해고(노사정협약) 직권조인의 성격과 배경

정리해고는 IMF공황 이전에도 이미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어왔다. IMF신탁통치 아래서, 무수한 기업도산으로, 또 정리해고 법제화 추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서,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게 되었다. 기업의 인수·합병시 정리해고 허용과 정리해고 유예 단서조항의 폐지로서 이제 자본은 자유자재로 노동자의 목을 자를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한라중공업은 직원의 반을 감축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고, 기아자동차도 이미 1만여명이 해고되었다. 쌍용자동차는 대우가 인수·합병을 용이하게 하게 하기 위해서 한달간 휴업을 결정하였다. 신문사, 금융기관, 서비스업체에서 강제퇴직과 일괄사표제출이 횡행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힘을 쓰지 못하는 하청업체와 중소기업에서의 정리해고는 더욱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기업에도 통폐합 즉, 인수·합병 바람이 몰아닥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 위원인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법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사정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56만의 민주노총조합원이 스스로의 목을 자르는 일에 도장찍는 권한을 언제 대표에게 주었던가? 2600만 노동형제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1300만 노동자들의 목을 자르는 것을 승인하는 권한을 누구로부터 받았단 말인가? 56만 조합원의 권익을 배신, 노사정협약에 직권조인한 가장 중요한 책임은 '노사정위원회'위원으로서 직접 날인한 대표(직무대행)에게 있다. 나아가 노사정위원회 기초위원으로서 교섭을 이끌어 온 세사람의 임원도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하였다. 그들은 노동자대중의 권익을 저버리고, 협약을 추진 날인한 책임 뿐만 아니라, 이로써 발생한 이후의 일련의 사태, 즉 직권조인 대의원대회부결, 관제언론의 공격에 몰려서 민주노총이 대외적 명분에서 어려운 입장에 빠지게 된 상황전체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을 초래한 데 대한 책임 역시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의원대회에서는, 민주노총이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된 데에는 노사정위원회 교섭에 참여한 임원들뿐만이 아니라 이 과정의 흐름에 함께 참여하고 동의하여 방침을 세워간 '투본대표자회의' 역시 중요한 책임이 있음을 밝혀내어,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였다. 대의원대회에서 밝혀진 사실은(전교조 이수호부위원장 발언 등에 의하면) 직권조인하게 된 노사정위원회의 마지막 교섭이 있기 직전에 열린 투본대표자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하여 교섭대표를 내보내었던 것이다. 즉 1) 노사정위 교섭은 타결을 원칙으로 한다, 2) (그동안 교섭사항으로 인정치 않았던) 정리해고 문제를 교섭대상으로 한다, 3) (정리해고 외에) 많은 항목에서 최대한 많은 것(실리)을 획득토록 한다, 4) 교섭대표에게 폭넓은 (교섭의)재량권을 준다고 결의하였던 것이다. 이 정도면, 설혹 협약체결의 권한은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거의 모든 권한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일련의 사태에 대한 투본대표자회의의 역할과 책임 또한 분명해진 것이었다. 동시에 투본대표자회의 구성원들이 이미 얼마나 원칙에서 일탈해 있고, 현장노동자대중의 요구와 정서에서 멀어져 있는지, 그 절박성을 이해치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5. 제8차 대의원대회(1998. 2. 9) 결정의 문제점

대의원대회에서는 노사정협약 직권조인과 관련된 사태에 관해서 투본대표자회의 구성원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였지만,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한 상황에서 이를 집행할 지도부를 전부 퇴진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 상근 임원만 퇴진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은 노사정교섭 추진과정과 직권조인에서의 역할과 책임에 비추어서 적절치 못하다. 정확하게 노사정교섭의 직권조인과 추진과정에 책임이 있는 직무대행을 포함한 임원 4명(노사정위 위원 및 기초위원)에게 책임을 묻든지, 임원 전원에게 책임을 묻든지 해야 했었고, 상근 비상근이 구분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의원대회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임원 전체의 퇴진을 요구하는 분위기였으나, 중간 정회시간에 투본대표자 간담회를 거쳐 조정하여 나온 안이 상근임원의 퇴진이었던 것이다.

비대위의 구성 또한 잘못된 것이었다. 이미 (대의원대회에서) 밝혀진 대로 투본대표자회의는 노사정협약 직권조인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책임이 있었다. 퇴진한 상근 임원을 제외한 투본대표자회의 구성원들로 비대위를 구성하여서는 올바른 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임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비대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단병호 위원장이 투본대표자회의를 그대로 비대위로 전환토록 제안한 것이나, 대의원들이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 모두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결여된 데서 나온 것이었다. 비대위는 투본대표자회의 구성원에, 투쟁사업장 노조대표들을 합쳐서(투쟁사업장 노조 대표가 최소한 전체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구성되었어야 하였다. (의결기구가 아닌 집행기구이므로 이러한 구성은 대의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비대위 구성에서의 오류가 이후 파업철회라는 엄청난 사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의원대회의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결정에 따라서 1998년 2월 10일 오전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되었다. 비대위는 2월 13일 오후∼14일의 총파업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2월 12일 다시 열린 비대위는 8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2월 13일 오후∼14일의 총파업결정을 철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감행하였다.

6. 비대위의 파업철회결정으로, 민주노총 불구가 되다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으로 민주노총의 조직체계는 허물어졌고 민주주의도 죽었다. 민주노총은 이제 한국노총은 아니지만, 민주노총이기도 멈춘 '전국노총'이 되었다. 비대위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총파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행할 것인지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역할이 맡겨진 것이지, 대의원대회의 총파업결정을 뒤집어 엎을 권한은 없는 것이다. 또한 총파업철회는 민주노총이 투쟁을 접었음을 의미하고, 자본의 총체적인 공세에 대해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자본은 주저앉은 민주노총을 짓밟고 기세차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를 입법화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싸우기를 포기한 민주노총이 이후 강력한 투쟁을 해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총파업철회는 민주노총이 56만 조합원 대중의 권익을 수호하기를 멈추고, 1300만 노동자들을 버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깃발을 내리고 노동자계급 대중을 버린 민주노총을 앞으로는 거꾸로 대중이 버릴 것이다.

파업철회의 이유로 국민여론이 불리하고, 검찰의 구속방침으로 조직의 존망이 위태롭다거나, 내부 투쟁역량이 부족하고 분열되어 있다는 등을 늘어놓는 것은 비겁한 자의 구구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직권조인후 이를 철회하고 총파업에 나섰을 때 관제언론에 내몰리는 것은 이미 당연히 예상한 일이 아닌가? 1996년말∼1997년초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시 대중을 분노시킨 핵심적인 내용이 정리해고 조항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번 정리해고 조항은 그때보다 훨씬 악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무리 IMF공황으로 주눅이 들었을지라도 노동자계급 대중, 광범위한 국민은 정리해고 법제화에 엄청난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이다. IMF공황상황에서도 국민의 60%(1998. 2. 13 한겨레신문)가 정리해고에 반대하고 있다.

내부분열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함께 투쟁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투쟁역량의 부족이란 더구나 말이 안된다. 타결기조속에 투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다가 마침내 직권조인한 후 다시 이를 뒤집고, 총파업투쟁에 나서려는 상태에서 12∼14만명의 조합원이 파업투쟁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힘인 것이다. 그만큼 대중의 분노가 크고 요구가 절실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총 56만 조합원이 일시에 파업에 나서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건이 나은 사업장은 먼저 파업에 나서고 준비 안된 사업장은 뒤따라오면 된다. 총파업이 불가능한 곳은 부분파업을 하고 부분파업도 어려우면 집회와 농성 등 최선을 다해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입법화에 반대해서 총자본과의 전선을 쳐내는 것,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구속을 두려워 할 일이 있는가? 언제 노동운동이 간부의 구속없이 전진해 왔는가? 구속은 그 자체로서 김대중당선자 정권과의 대치전선 형성을 뜻하고, 김대중 당선자가 민주주의와 개혁의 전도사가 아니라, 노동자를 짓밟고 재벌과 IMF의 앞잡이 노릇을 함을 폭로해 주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은 김영삼정권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지고 있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안지나 실업자는 200만을 넘어 설 것이다. 국제투기자본의 이해관철에 앞장서는 재벌과, 협력 노동자들을 생존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김대중정권에 맞서 투쟁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정리해고를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내몰린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대중이 이 깃발을 보고 주위로 몰려들 것이다.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과정 역시 이전에 수없이 되풀이된 과오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2월 12일 오후 4시 시작된 비대위회의는 효율적인 총파업 실행계획과 그 집행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서 파업철회 여부에 대한 논란을 거듭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마침내 비대위 위원장에게 결정권한을 위임하였다. 주요한 사항을 비대위 위원들이 책임있게 결정하지 못하고 위임한 것은 이제까지 수없이 되풀이된 대단히 문제가 많은 결정이었다. '파업철회' 여부의 결정을 (비대위로부터) 위임받은 위원장은 비대위 부위원장 2명과 집행위원장 등 비대위 집행기구 4명과 4명의 지도위원 등 8명으로 대책위(논의구조)를 구성 논의한 결과, 파업철회를 결정하였다.

파업철회 결정후 기자회견장에는 비대위 위원들은 모두 슬슬 피해서 빠지고, 단병호 비대위 위원장 혼자 회견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였다. 왜 비대위 구성원들은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지지 못하고 회피할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스스로의 얼굴이 1300만 노동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는가?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은 노사정협약 직권조인보다 민주노총에 더욱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직권조인후에는 대의원대회에서 이를 뒤집고 총파업을 결의할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은 민주노총을 만신창이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민주노총은 (새로운 탈바꿈을 하지 않고서는) 다시 투쟁으로 일어서기 어렵게 되었다. 모든 간부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을 투쟁으로 올바르게 세워 낼 의욕조차 꺾였다. 이로써 민주노총은 죽은 것이다.

7. 과오를 바로잡지 않으면 민주노총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금속산업노조연맹 창립대의원대회에서 현대중공업 출신 대의원이 한 말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뒤집고 총파업을 철회한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 없이 비대위 위원장을 다시 금속연맹위원장에 추대하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국금속산업노조연맹' 20만의 조직건설은 노동운동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이 연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투쟁적 중심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또한 산별노조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주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민주적 투쟁적 중심을 올바르게 세워낸다는 원칙을 외면한 조직건설이 과연 이 중대한 사명을 해낼 수 있을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1998년 2월 16일 열린 비대위회의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일부 비대위 위원은 '대의원대회의 총파업결정을 집행기구인 비대위에서 뒤집어엎고 총파업을 철회한 것은 노사정협약의 직권조인보다 더욱 중대한 과오인데, 이러한 과오를 저지른 비대위의 핵심간부(정 부위원장과 집행위원장)를 비롯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노사정협약 직권조인을 이유로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퇴진토록 결정된 상근 간부들은 다시 복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면 이미 간부들은 대중을 떠나서 별세계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의 파업철회 결정이, 직권조인으로 다운 당했다가 2월 9일 대의원대회의 노사정협약부결, 상근임원 퇴진, 총파업결정으로 다시 기력을 회복한 민주노총을 결정적으로 K·0 시켰다는 지적은 올바른 것이다. 이로써 민주노총은 자본의 공세에 저항할 기력조차 잃고 무력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이후 개최될 대의원대회의 과제이다. 비대위 위원 특히 8인 대책위의 책임을 아직 묻지 않고 있다고 해서, 직권조인 사태로 2월 9일 대의원대회에서 퇴진당한 임원을 다시 복권시킨다는 것은 민주노총을 영원히 침몰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다. 따라서 1998년 2월 26일 대의원대회(3월 3일로 연기 : 편집자 주)는 다음의 결정을 분명해 해야 할 것이다.

⑴ 1998년 2월 12일의 비대위의 (2월 13일 오후∼14일)파업철회 결정은 집행기구로서 대의원대회 결정을 뒤집어엎는 월권행위이고, 정리해고 및 근로자파견제가 국회에서 강행 통과되기 직전, 즉 자본의 결정적인 공세 앞에서 무기를 버리고 주저앉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 파업철회결정은 중대한 과오이다.

⑵ 파업철회를 결정한 비대위는 이러한 과오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특히 8인 대책위원은 사퇴하여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사정협약 직권조인과 비대위의 파업철회로써 김대중당선자가 초국적자본과 국내독점자본을 위해서 정리해고의 칼춤을 출 무대를 마련해 주는데 화간(和姦)의 죄를 범하였다. 민주노총은 이제 만신창이 불구가 되어 싸울 의지도 기력도 상실하고 말았다. 비대위가 '더욱 강력한 투쟁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배신당한 조합원 대중 누가 이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적의 비수가 심장을 겨누고 들어올 때 무릎 꿇고 주저앉은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적에게 맞설 수 있으리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과오를 바로잡지 않으면 더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하다. 과오를 반복하고 더구나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면 전망은 없다. 민주노총은 이제 죽었는가? 살신성인의 노력으로 중심을 바로 세워내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의 장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