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무엇이 문제였나?
- 위기의 원인을 다시 생각한다 -
손 호 철
부소장·서강대 교수
1. 여는 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선진국의 징표라는 OECD를 가입하고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범죄도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풍요 속의 '선진국형 범죄'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었건만, 이제 우리 사회의 사방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이의 우유 값을 위한 '후진국형 범죄', 즉 생물학적 생존형 범죄들이다. 우유값 마련을 위한 실직 대기업사원의 강도행각, 체불임금을 마련하기 위한 중소기업사장의 강도짓,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버려지는 아이들, 공중전화 동전 절도, 철제 대문 절도, 전기줄 절도 등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풍속도들이 연일 속출하고 있다. 즉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빵 한 조각이라는 생존을 위한 범죄의 문제인 '장발장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이 있는 바, 그것이 빚을 받기 위해 고용하는 해결사들과 장기를 팔아서라도 살아 남기 위한 장기암시장이라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이 모두는 지난 연말의 외환위기와 이에 따른 IMF의 '식민통치'에 의한 변화이다. 이러한 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회과학자들은 심각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주1) 특히 사상누각에 세워진 거품에 기초해 우리 사회를 미화하기에 급급한 채 한국판 '역사의 종말론'을 구가해온 주류사회과학자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비판적, 진보적 사회과학계들이라고 이같은 좌괴감으로부터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진보학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자본주의의 종속성, 재벌체제의 문제점, 지구화의 위험 등에 대해 경고를 해왔다. 그러나 추상적 테제를 넘어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초하여 외환위기를 경고하지는 못 한 것도 사실이다.
과학은 연구대상인 현상속에 내재한 규칙성을 발견해 법칙화하고 이에 의해 예측능력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물론 근대적 자연과학을 모델로 한 이와 같은 과학관, 즉 뉴턴적 과학관은 최근 카오스이론, 복잡성이론에 의해 비판을 받으면서 자연현상도, 사회현상도 모두 일반법칙화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우연적 사건들이 많이 개입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관의 변화가 과학의 예측 실패를, 즉 한국사회과학의 최근의 위기 예측 실패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다시 한번 사회과학은 "황혼이 져야 비상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되어 '게으른' 그리고 '부끄러운' 사후적 설명에 나서야 할 것같다.
IMF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으로부터 김영삼정권의 정책적 대응실패에 이르는, 차원과 분석수준을 달리하는 여러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주2) 그리고 외환위기의 구체적인 진행과정에 대한 진상은 아직도 다양한 정황적 추정에 그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경제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논의가 지나치게 문제의 한 측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위기의 원인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총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조야하기는 하지만 위기에 대한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IMF 위기의 원인 : 총체적 시각
IMF 위기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운동법칙에 기초한 구조적 동학으로부터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 특정 복합국면에서의 정책적 선택에 이르는, 추상화 수준을 달리하는 다층적인 요인, 나아가 세계체제적 동학과 일국적 동학들의 과잉결정의 결과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분석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세계체제적 수준
가. 자본의 과잉축적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내재적인 모순에 의해 주기적으로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재 세계자본주의는 70년대 이후 지속되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자본의 과잉축적이 누적되어 엄청난 규모의 화폐자본들이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투기성 금융자본화하여 세계시장을 교란하고 있다.(주3) 한 연구자의 집계에 따르면 94년말 현재 국제적인 투기자본인 헤지펀드의 규모는 20∼35조 달러에 달하며 순전히 투기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자본거래 역시 하루에 1조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이 약 6조달러, 세계 각국의 외환준비금 총액이 약 1조달러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주4) 이에 따라 이러한 투기자본으로부터 자국통화를 방어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며 유럽이 유럽단일통화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이같은 자본의 과잉축적, 이에 따른 투기자본화가 최근 한국의 경제위기에 내재해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가장 깊은 원인(deep cause), 즉 '심인(深因)'내지 '근인(根因)'이다.(주5)
나. 지구화와 WTO체제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7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구조적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90년대 초부터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무한경쟁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특징 지워지는 우르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이다. 이에 따라 소위 '지구화' 내지 '세계화'라고 불리우는 경제의 국경허물기가 가속화되기 시작했고(주6) 자본의 이동이 용이해지면서 이들 자본들이 취약한 개도국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95년 멕시코에 이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으로 이어지는 제3세계 외환위기의 연쇄화, 공시화(synchronization)이다. 특히 멕시코 외환위기이후 새로운 먹이를 찾아 유럽을 공략했던 국제투기자본들이 유럽의 경제적인 힘에 의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빠르게 성장하며 역동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반이 취약한 아시아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이에 따라 동남아지역에서 외환위기가 생겨나면서 이에 따른 연쇄반응으로 아시아지역에서의 '외환위기의 북상'추세가 생겨나고 있다. 즉 지구화는 '위기의 지구화'로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자본의 과잉축적과 이에 따른 투기자본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WTO체제의 출범에 따라 자본의 이동이 용이해지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과거처럼 투기자본의 제3세계 공략에 대한 규제장치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면, 최근과 같은 연쇄적인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일국적 수준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세계체제적 수준의 분석만으로 한국의 경제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선진국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소위 같은 '신흥공업국',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서 예를 들면 대만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부터 상대적으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 대만 등은 건재한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한국의 특수한 일국적 동학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일국적 요인은 구조적 요인으로부터 국면적이고 사건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 지연된 전환
왜 하필 한국인가를 설명하는 일국적 요인 중에서 근본적인 요인, 구조적인 요인은 '종속적(신식민지) 국가독점주의' 체제(주7)로 집약되는 낡은 한국사회의 발전모형, 나아가 이의 전환실패이다. 한마디로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인 족벌지배와 차입경영으로 특징 지워지는 재벌체제, 권위주의적인 국가주의적 산업화 모형, 정경유착의 정치, 종속적인 재생산구조로 요약되는 한국사회의 낡은 발전모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이같은 모형은 87년 민주화 이후, 나아가 90년대의 세계화라는 변화한 환경 속에서 특히 그 부작용이 너무도 크게 증폭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또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의 전환은 계속 지연되어 오다가 현재의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같은 발전모형이 사회 정의 차원만이 아니라 효율성이라는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진보학계와 민중진영이, 아니 진보와는 거리가 먼 시장주의자들까지도 입이 닳도록 주장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일 이같은 요구가 관철되었다면 최근의 파탄은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두번째로 주목할 것은 이같은 문제점을 진보학계와 민중진영뿐만이 아니라 김영삼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의 노태우정권까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이의 개혁을 시도했었다는 점이다. 즉 노태우정권은 신산업정책을 통해, 김영삼정권은 업종전문화정책을 통해 재벌그룹을 해체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춘 개별 대기업으로 전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 노력은 정권 자체의 개혁의지의 취약성도 문제였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비대해진 재벌의 반발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사실 정경유착과 재벌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최상의 기회는 김영삼정권이 주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에 의한 전두환, 노태우의 거액 비자금사건이었다.(주8) 그러나 이같은 절호의 기회 역시 재벌을 사법처리하고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경우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언론의 '경제논리'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좌초하고 말았다. 사실 이 점에서 최근의 경제위기의 또다른 주범, 특히 별로 거론이 되지 않고 있는 주범은 우리의 보수언론들이다. 결국 한심한 것은 이번 위기가 모르고 당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당한 것이며 그것은 정치권과 언론이 단기적인 부작용을 우려해 수술을 미룸으로써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을 당하게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 세계화전략과 OECD 가입
한국모형의 문제점이 구조적 요인이라면 김영삼정권의 세계화전략과 OECD 가입, 그리고 강경식 체제 등 앞으로 논의할 요인들은 보다 국면적인 것으로 정책적 실패가 위기를 가속화시킨 것들이다. 특히 이중 결정적인 것은 OECD 가입이었다. 김영삼정권은 우루과이 라운드 등 지구화가 가속화하자 이에 끌려가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대처해 살아 남는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국제경쟁력 제고를 지상목표로 한 세계화전략을 선언했다. 또 그 일환으로, 나아가 자신이 한국을 선진국의 일원으로 만들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한 정략적 목표에서 시기상조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OECD에 가입했다.(주9) 이같은 정책은 결국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한국경제의 위기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것이 화근이라는 뉴욕 타임즈의 분석이다.(주10) 이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이 OECD 가입을 추진한 1994년부터 가입이 실현된 1996년 사이에 한국의 총외채가 520억달러에서 1,080억달러로 두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즉 불과 두해 사이에 외채의 총규모가 무려 두배(1997년 말의 외채를 기준으로 하면 불과 3년 사이에 외채가 무려 3.5배)로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OECD 가입이 경제위기를 불러 왔느냐는 것이다. OECD에 가입하려면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하지만 건전한 금융감독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는 바 한국은 미국의 대공황 때처럼 시장개방과 규제철폐를 감독폐지로 혼동, 적절한 감독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OECD 가입을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외국자본들은 한국이 OECD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믿고 과거와 달리 쉽게 차관을 빌려 주었고 국내 금융기관 및 재벌들은 국제시장의 낮은 금리에 매료되어 무분별하게 외채를 빌림으로써 한국의 외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특히 종금사 등은 이같은 외채를 금리차를 노리고 동남아에 투자했다가 동남아 위기가 터지자 연쇄작용에 의해 외환위기를 수입하게 되었다. 나아가 재벌들은 소위 '세계경영'이라는 이름하에 공격적인 경영전략에 나서 한국식의 차입경영전략을 가지고 현지법인 등을 통해 빚을 얻어 동구와 제3세계는 물론 선진국에까지 이르는 세계각지에 부동산을 사 모으고 공장을 짓거나 기존 공장을 인수했다.(주11) 한마디로 빚잔치를 벌린 셈이다. 이같이 국내 외환관리체계에 잘 잡히지 않은 재벌기업들의 현지법인을 통한 빚이 3백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즉 체질개선이 선행되지 않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어설픈 '세계화전략'과 제국주의를 흉내낸 '아제국주의' 전략(주12)이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이와 관련, 이 신문은 미국의 한 저명한 외환감독관이 이미 94년 세계은행(IBRD) 총회에서 한국과 태국이 국제적 자본흐름에 대한 장벽을 너무 빨리 제거하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어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다. 강경식체제과 YS의 정치적 대응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이 보여주듯이 한국경제는 위의 여러 요인들에 의해 한보사태, 기아사태 등에 따라 연쇄부도가 터져 나오며, 위기가 가시화되기 이전에 이미 위기를 향해 치달아 가고 있었다. 한보사태 등 1997년의 상황은 다만 이를 가속화시켜 폭발시켰을 따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래도 김영삼정권이 이에 제대로 대응했으면 위기를 막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아니 최소한 위기의 폭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마지막 수준, 가장 미시적이고 사건사적인 측면(주13)에서 분석될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의 문제, 즉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고 경제청문회에서 논의될 위기의 책임문제이다.
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몇 가지는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위기 징후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당시 강경식체제는 시장주의적인 입장에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에 나서기보다는 시장에 의한 해결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조기대응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나아가 대통령은 레임덕이 되고 정치권 역시 대선에 눈이 멀어 누구도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 즉 위기의 시점이 선거국면과 맞물려 최악의 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낡은 외환관리체제에 의존, 국내기업들의 현지법인들의 현지부채 등을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지구화와 세계금융자본의 움직임이라는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낡은 사고에 의해 외환방어에 나섰다가 2백억 달러 상당의 외환보유고만 날려보내고 외환보유고의 바닥을 들어내고 만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영삼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외환위기가 가시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근시안적이고 정략적 태도로 사태에 대응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모두는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져야 확실해질 문제이지만 OECD 조기가입결정과 함께 김영삼정권의 책임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한 채 이들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태의 책임을 특정인에게 전부 전가하여 희생양을 삼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3. 맺는 글
하나의 질병에 대한 올바른 처방은 올바른 진단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살펴본 위기의 원인분석은 단순히 사후약방문적인 원인분석이 아니라 진단에 대한 처방의 방향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즉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번 위기와 같은 위기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극복될 때만이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준에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이라는 수준에서의 처방도 있을 수 있다.
IMF 위기 덕분에 우리는 재벌개혁 등 한국사회의 낡은 모델에 대한 대수술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는 일상적으로 알고 있듯이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에 의해 재벌 등에 대한 국가의 (대내)구조적 자율성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주14)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가뜩이나 제약된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이 극도로 축소되어 IMF 신탁통치를 받게 된 결과라는 사실, 나아가 10명중 8명이 살기 위해 2명의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느니, 지금은 식민지시대가 아니므로 외국자본은 많이 들여올수록 좋은 것이라느니 하는 김대중대통령의 주장이 보여주듯이 신정권의 생각이라는 것이 IMF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개혁의 방향은 불행히도 신자유주의이다. 그것도 소위 '노사정대협약'이 보여주듯이 사회적 합의라는 서구식의 '민주적 사회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 정확히 표현해 '종속적 신자유주의'(주15)이다.
이제 종속적 신자유주의라는 김대중정권의 '자본적' 위기해결방식에 대항해 '민중적' 위기해결방식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투쟁할 때이다. 결국 현재의 위기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의 방향 역시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미주>
1) 특히 이는 청산주의로 특징 지워지는 1990년대의 '포스트민중주의적' 사회과학이라는 한국사회과학의 지적 풍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같은 풍토의 특징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손호철, "위기의 한국, 위기의 사회과학 : IMF 위기를 보며" {경제와 사회}, 1998년 봄호
2) 이같은 기존 논의의 비판적 소개로는 김세균, "IMF 관리체제, 김대중 정권, 그리고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30호, 1998년 3월 참조
3) 이같은 과잉축적의 문제에 대해서는 Simon Clarke, "Overaccumulation, Class truggle, and the Regulation Approach" in Wener Bonefeld et al. eds., Post-Fordism and Social Form, London: Mcmillan Press, pp. 103∼134
4) 채만수, {한겨레 21}
5) 김세균 교수와 채만수 부소장이 위기의 원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수준이다(김세균, 위의 글; 채만수, 위의 글).
6) 이에 대해서는 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드 슈만 외, {세계화의 덫}, 강수돌역, 영림카디널, 1998; 손호철, "'세계화'와 민족국가의 향방", 구범모외, {세계화와 민족문화의 발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7) 이제는 잊혀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정식화된 이 개념에 대해서는 박현채, 조희연편,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 I}, 죽산, 1989.
8) 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비자금정국의 의미와 전망" 민교협 월례발표회(1995년 11월); 손호철, "재벌개혁 없이 정치개혁없다", {주간조선}, 1995월 11월 25일.
9) 이같은 조기가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손호철, "한 장애자의 죽음과 OECD", {노동자신문}, 1995년 4월 18일.
10) {New York Times} 1997. 12. 28
11) 이의 문제점은 손호철, "지구화의 또 다른 얼굴", {현장에서 미래를}, 13호, 1996년 8월호, 5∼7쪽.
12) 한국경제의 제3세계에 대한 아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해서는 손호철, "신흥공업국의 국제정치경제학: 한국과 제 3세계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의 새구상}, 풀빛, 1990, 참조.
13)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브로델식으로 표현하자면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성격이 '장기지속'적인 구조적 측면이라면, 세계화와 OECD 가입이 그보다 추상화 수준이 낮은 '복합국면'(conjuncture)의 수준이고 강경식체제의 대응이 이보다 더 추상성이 낮은 '사건'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F. Braudel, "History and Social Sciences", in P. Burke ed., Economy and Society in Early Modern Europe,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92, pp. 11∼42).
14) 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국가론적 시각에서 본 김대중정권의 'IMF 개혁'"(근간).
15) 이에 대해서는 이성형,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사회비평}, 9호,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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