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적 전화를 위한 관점과 자세 -
정 병 도
9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한총련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학생운동 전반의 전화와 혁신을 위하여
96년 범민족대회(주1)와 97년 한총련출범식(주2)을 계기로 한국 학생운동이 그동안 가져왔던 운동의 제모순은 남김없이 폭발되었다. 이를 두고 "김영삼정권의 '한총련 죽이기'일 뿐인데 과도하게 인식한다."는 일각의 비판(주3)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90년대 초반부터 회자되어 왔던 학생운동의 위기가 이제 임계에 다다랐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97년 한총련사태 이후 학생운동의 혁신을 위해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었고 다양한 입장이 제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학생운동의 위기는 더욱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한편, 학생운동 스스로의 운동적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고 새로운 쟁점들을 양산해 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일정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방향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향후 또다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위기를 온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총련이라는 조직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협소한 조직 형식적 고민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히려 그동안 역설적이게도 '위기'라는 말로 은폐되고 봉합되어왔던 모든 모순과 갈등에 대해 보다 발본적으로 사고하고 보다 급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한총련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 학생운동 전반의 전화와 혁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자의 환상 혹은 결의가 어떠하든, 주객관적으로 현재 한국학생운동은 위기의 정점에 서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글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90년대 들어서면서 회자되기 시작한 '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극적으로 폭발되고 발현되었던 97년 한총련 사태에 대한 원인 진단, 그리고 당시에 형성되었던 논쟁지형을 검토하면서 그로부터 제기된 과제를 정식화하였다. 다른 하나는 학생운동이 발딛고 서있는 현실에 대한 확인과 학생운동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제로 IMF관리체제와 김대중정권의 출범이라는 상황속에서, 향후 전선재편의 과정에서 학생운동이 나가야 할 방향과 중심적인 실천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제안의 형식으로 담아보았다. 학생운동 내부의 이야기들이기에 다소 생소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향후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맞서는 새로운 전선에 학생운동이 올바르게 복무하기 위해서도 가감 없는 비판과 제언이 필요하다. 오히려 이 글의 또다른 의미는 현재 학생운동의 상황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이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 학생운동의 변화된 조건과 실천
반독재투쟁의 내용과 학생회 조직을 무기로 한 80년대 학생운동
'학생운동의 위기'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학생운동과 대중과의 융합의 실패'라는 잣대를 적용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방법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그동안 학생운동이 가져왔던 문제들을 모두 포괄하는 언명이다. '대중과의 융합의 실패'라는 말은 운동의 주체들로 하여금 운동의 위기를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게 해 주었다. 이에 대한 고민을 보다 발본적인 수준에서 진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서 학생운동이 형성되어 왔던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운동은 80년대 중반 '학생회 건설'이라는 하나의 전환점을 경과하면서 국민들과 학우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와 결합을 형성할 수 있었다. 86년 건대항쟁이라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을 겪으면서, 당시 정파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운동구조를 대중들로부터 지지받고 엄호받는 학생회 질서로 변화시켜 낸 것이다. 이후 학생회는 대학사회의 제반 저항성과 집단의지의 표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학생회 운동이 위기에 처한 최근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지금과는 다른 학원사회의 내외적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흔히 90년대 대학사회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로 '통합적 가치관'의 해체를 꼽는데, 역으로 80년대의 대학사회는 '통합적 가치관'의 형성이 충분히 가능했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군부독재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한국사회 전체를 투쟁의 열기로 고양시켰다. 그러한 분위기는 사회 전체에 민주주의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사회는 프락찌가 학원내에 상주하고 학생회의 역할을 학도호국단이 형식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등 억압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 속에서 사회와 정권에 대한 저항, 학내 민주화, 학원 자치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학우들 개개인의 요구와 불만은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민주주의'라는 깃발아래 대학사회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학생회 선거, 집회, 학원민주화 투쟁 등의 다양한 계기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자신의 경험으로 재해석해내고, 정치적으로 보다 상승된 저항을 바탕으로 하는 대중투쟁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학생회, 그리고 학생회 선거의 유의미성을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라고 사고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즉, 80년대 후반 '민주주의' 투쟁과 '학생회'라는 대중조직은 역사상 유례없는 학생운동의 투쟁성과 대중성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90년대 학생운동을 둘러싼 내외적 조건의 변화
그렇다면 90년대 대학의 상황은 어떠한가? 앞에서 지금의 운동 위기를 '대중과의 융합의 실패'라고 이야기했다. 80년대 대학에는 지극히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나마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동의기반이 있었다. 학생회는 그 속에서 학우들의 이해와 요구를 모아내고 그들과 함께 공동실천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러한 동의기반과 공동실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90년대 초반, 92∼93년으로 판단한다. 91년 5월투쟁의 패배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운동대오에서 이탈하는 학우들과, 대학사회 전반의 정치적 무기력·무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나기 시작한 균열의 조짐은 91년 6월 외국어대 '정원식 계란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도덕성에 대한 지배계급의 집중포화 속에서 급속히 확산·가속화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학생운동진영의 분화가 주로 특정사건이나 계기들 속에서 '운동대오'의 해체를 중심으로 나타났다면, 93년 문민정권의 출범은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이반과 탈정치화를 부추겼다. 군부세력 집권의 종식과 문민정부 집권 초기의 개혁드라이브가 강력한 대중 이데올로기로 전화한 결과이다. 그리고 96∼97년을 경과하면서 한총련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운동의 위기는 그 정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통합적 가치와 함께 NL/PD구도에 의한 '조국통일'과 '노동해방'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대중에게 합의되지도 동의되지도 않게 되었다. 대학사회의 위상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의 폭압적이고 암울했던 전사회적 상황이 대학사회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듯이, 90년대 지배질서의 변화 역시 대학의 위상을 급속히 변모시켰다. 즉, 90년대 들어 전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 질서가 전면화되면서 '경쟁과 효율의 원리' 하에 대학사회에 존재했던 통합적 가치관을 서서히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학생회도 대학인들의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모아내는 것에서 이제는 좀더 나은 질(質)의 학문과 교육환경, 그리고 복지문제와 같은 조합적 수준의 내용들로 채워질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정권에 의해 주도되었던 '교육개혁정책'(주4)과 이에 수반된 대학마다의 자대학 이기주의에 의한 '대학발전전략', 대학인들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한 '적대'의 문제가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의 대중성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언제부턴가 대학사회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적대는 현재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중심으로 적대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학생운동 메카니즘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불신과 이탈로 현상했다. 90년대 초반의 얼마 동안은 '학우들이 학생회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운동진영의 가장 주된 고민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대학사회 내의 적대는 보다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막론하고 각 세력간·집단간·개인간의 적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각 대학 학생회 선거에 아주 일상적으로, 그리고 세력화된 비운동권의 등장과 압도적인 당선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교육의 보다 유연한 자본주의적 재편과정과 맞물린 대학의 위상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 전반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재편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대학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결과이다. 그 속에서 학우들의 탈정치화, 나아가 정치적 무기력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정치'와 '저항'이 놓여있던 자리에 이제는 '경쟁'과 '효율'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범민족대회와 출범식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진단 및 분석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학생운동 활동가의 대응은 광장과 거리 중심의 강도 높은 정치투쟁에서 일상적인 공간에 대한 착목, 혹은 대중사업과 정치사업의 분리 등 여전히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우들의 이탈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식의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이것 외에 좀더 발본적이고 다양한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학교를 중심으로 '반(反)대학'(주5)이나 '제2대학'(주6), 그리고 보다 확장된 의미로서의 정치에 대한 사고를 가능하게 했던 주제운동 및 사회적 적대에 대한 담론의 생산과 실천의 흐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대중 이데올로기로 전화되고 보다 실천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굉장히 무기력했다. 기존의 거대담론(조국통일, 노동해방, 민주주의, 자치 등등)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다양한 적대가 대학사회 내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식되었으나, 아직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적대들에 대한 1차적인 분석에 기반한 것이었을 뿐, 운동진영에게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대안을 위한 틀은 없었다. 또한 그러한 노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생운동 구조와 실천 양태들이 전면적으로 재고민되고 혁신되어야만 하는데, 학생회 구조를 중심으로 이미 관료화되고 관성화되어 버린 학생운동(및 활동가들)이 이러한 실천을 하기에는 많은 자기 모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학생운동진영이 이제는 그 자체로 개혁되어야 할, 그리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전화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는 그동안 학생운동 진영이 가져왔던 제반 모순들 - 대중노선, 대중관, 대중이데올로기, 사업의 작풍, 사상성 등 - 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다 발본적인 사고와 전화 없이는 모든 실천들이 더이상 대중들로부터 동의될 수 없었다. 96년 연세대 사태와 97년 한총련 사태는 이러한 학생운동의 위기와 모순적 상황에 기름을 끼얻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그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고야 만 학생운동의 현재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96∼97년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96년 8월의 연세대와 97년 한양대에서의 사건들이 단순히 '한번의 오류'나 '실패한 투쟁'으로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두 사건은 90년대 초반부터 학생운동이 짊어져 왔던 수다한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사건이었다. 결국 두 사건의 결과로 학생운동은 그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학생운동의 존재가치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에게 동의받을 수 있는 조건은 마침내 사라졌으며, 그 고유한 역할로서의 선도성을 발현할 수 있는 입지를 잃고 말았다. 학생운동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으며, 그간의 성과와 유의미함 모두를 잃게됨과 동시에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할 낡은 유물이 되고 말았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 젊은이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계기였다. 그러나 이외에 다양한 원인분석들이 진행되었다. 97년 초반부터 한총련 주류세력('자주대오')에 의해 제시된 '전민항쟁'이라는 투쟁노선의 과도함, 출범식 당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이 예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유연한 투쟁전술을 구사하지 못한 점, 현시기 정치적 실천의 방향을 적절히 잡아 내지 못했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들이 드러난 현상을 지적하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학생운동이 위기에 처한 원인을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있지는 않다. 두 사건은 지속되어온 학생운동 위기의 연속선상에서 파악되어야만 한다.
90년대 들어 변화한 정치·이데올로기 지형과,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된 버려진 전선 앞에서 학생운동은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것은 대학사회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통합적 가치관의 부재 속에서, 사회의 다른 공간과는 다른 '대학', 그 속에서의 '대학인'들을 호명해낼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학생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소멸을 의미한다. 결국 학생운동은 대중과 융합할 수 있는 전제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을 위한 시도와 논의에 대한 평가
한총련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동안 지체되었던 학생운동의 새로운 자태변환에 다름 아니었다. '한총련 혁신', '학생운동 혁신'이라는 주장이 여러 운동세력에서 '드디어' 쏟아져나왔고, 한총련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운동 전체의 자발적인 혁신의 노력으로 온전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학생운동 혁신에 대한 요구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보수적 언론에 의한 마녀사냥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강제되었다. 그 결과 학생운동 혁신의 문제는 그동안 한국학생운동의 대표체로 여겨졌던 한총련에 대한 탈퇴와 불탈퇴의 입장개진으로 시작되고 말았다. 이것은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이 실질적이고 근본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고, 오히려 왜곡된 논점(주7)을 형성했다. 왜곡된 논점의 형성과 함께 또하나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주체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학생운동이 존재했던 이래 대학사회 내에서 논점을 제기하고 선도하는 것은 언제나 아래로부터 대중의 의견을 수렴한 활동가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혁신, 전화되어야 할 운동주체들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대단히 한계적이었다. 대중은 더이상 운동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았으며,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지 않았고 동참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와 같은 대중적인 논쟁이 더이상 불가능해진 대학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을 위한 논의가 협소한 (운동권만의)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게 하였다.
'자주대오'는 한총련내 주류세력으로서 97년 한총련 투쟁노선으로 '전민항쟁'을 제시하고, 그에 기반한 단계식 총궐기 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연장선상에 한총련출범식도 놓여졌던 것인데, 출범식사태의 원인으로 많이 지적되는 '물리적 투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출범식장(한양대)을 사수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는 이들이 주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출범식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정권의 광폭한 탄압'으로 진단하며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을 말살시키기 위한 책동'이라는 자체 분석으로 모든 원인을 돌렸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한총련의 투쟁은 참으로 정당했고 승리적이었으며 더욱더 승리적인 투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할 것'을 호소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이들은 출범식사태가 가지는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모른척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과거부터 한총련이 수세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늘 제시했던 정권의 비이성적인 탄압,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이라는 것만을 입장으로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총련의 비민주성과 낙후한 대중노선을 비판하고 한총련의 혁신과 전화를 이야기하는 다른 운동세력들에 대해서 이들은 한총련의 분열을 꾀하는 종파주의자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최근에는 영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한총련 임시의장으로 결의하였고, 4월 10∼12일 한총련 대의원대회에서 공식적인 의장 선출을 통해 '그들만의' 6기 한총련 건설 흐름을 가져가고 있다.
'사람사랑'은 95년 통일투쟁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자주대오'와의 분화와 단절을 통해 스스로를 세력화한 그룹이다. 이들은 그동안 학생회선거 등의 계기를 통해 자주대오에 대한 비판을 강도 높게 수행했다. 출범식사태에 대한 입장도 이러한 연속선상에 존재했는데, 출범식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총련 주류의, 변화된 시대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대중적이지 못한 사업과 투쟁방식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제출한 대안 역시 그들이 이전부터 주류에 대해 수행했던 비판의 내용을 좀더 구체화한 것이다. 즉, 출범식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한총련 중앙집행국과 중앙위원회의 해소를 기본으로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한총련의 비민주적 운영을 종식시킬 것, 그리고 대중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것 - 과도한 투쟁중심주의를 버릴 것 - 등을 주된 입장으로 제출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문제제기가 한총련 내부에서 관철되지 않자 학내의 총투표나 의견개진운동 등의 수순을 밟아 한총련을 대대적으로 탈퇴했다. 과거 NL대오의 분화가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사람사랑, 새벽 등등의 갈래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는데, 사람사랑 역시 지역별로 분화되었다. 전북총련을 중심으로 한 사람사랑그룹과 새벽그룹, 그리고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은 며칠 전 기자회견을 통해 "한총련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입장은 그들이 96년 연세대사태 이후 학생회 선거에서 걸었던 모토인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동안 학생운동의 자랑이자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던 투쟁성과 선도성은 이제 더이상 설득력도 없고, 대중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논리였다. 따라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무장된 학생운동은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출범식사태에 대한 이들의 입장도 역시 '폭력성'에 맞추어져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을 가장 강도 높게 수행했다.
좌파의 경우 한총련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어쩌면 무기력하고 비실천적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입장의 부재 때문이었다기보다는 한총련사태가 안고 있는 다양한 효과들을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볼 수 없는 한계 때문이다. 이미 이전부터 한총련이라는 조직질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많은 이견이 좌파 내부에 존재했었다. 게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좌파 전체가 한총련을 포함한 학생운동 전반의 전화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지만 시급하게 요구되는 한총련 혁신에 대한 입장을 좌파 전체의 과제로 받아 안는 데에는 인식이 부족했다. 그 결과 좌파는 '한총련 혁신'으로 드러났던 '학생운동 혁신'의 흐름을 통합력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좌파의 행보를 되돌아보면 제한적이나마 나름의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대략적인 흐름으로, 당시 북부총련 의장이 제출했던 "출범식장의 사수가 아닌 그 의의에 대한 사수를 호소하는 성명서", 출범식사태 직후 고려대학교 총학생장 명의로 제안된 "사태 해결을 위한 한총련 임시대의원대회의 개최" 제안, "한총련운동의 역사적 해소와 6기 한총련 건설반대"로 압축되는 선거공간에서의 입장 개진, 최근 "한총련 문제의 아래로부터의 해결을 위한 서울지역 총학생회장 연석회의 진행" 등이 있다. 이속에서 견지되는 나름의 입장은 정권의 강요에 의한 한총련의 해체가 아닌 스스로의 자정능력의 발휘를 통한 한총련운동의 전화, 탈퇴·불탈퇴의 논점이 아닌 학생운동 전화를 위한 대중적 논의, 그리고 이전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대중적이지 못한 한총련 건설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각 운동세력의 입장개진,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논쟁지형을 간략하게 평가하면 몇가지 핵심적인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혁신을 고민하는 세력 누구나가 '대중과 함께', '대중과의 논쟁과 충돌'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입장속에서만 드러났을 뿐이지 실천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사실상의 논쟁은 성명서나 각 학생운동세력 상층부 중심의 논의로 갇혀버렸다. 다음으로는, 대부분의 세력들이 한총련-학생운동 전반의 혁신을 이전부터 고민해 왔다는 점이다. 이점은 한총련-학생운동의 혁신을 위해서는 보다 확장된 의미의 대중성과 다양한 논의경로를 발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쟁과 더불어 진행된 총투표, 토론회, 의견개진운동 등 다양한 시도들은 사전에 철저히 기획되고 준비된 것이 아니라, 대중적 무관심과 이반을 넘어 운동권 자체가 적대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것이었고, 이미 때늦은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출발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들은 대중과의 논쟁을 촉발하기보다는 운동세력들 간의 입장차이로만 나타났으며 그룹이 우후죽순 난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불과했다. 수다한 토론회나 다양한 노력들은 결국 유의미하고 실천적인 답안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총련-학생운동의 혁신을 둘러싼 논의에서 모아진 점은 '기존의 한총련에 내재해있던 비민주성과 대중노선에 대한 혁신'이다. 한총련이 '총학생회 연합체'에 걸맞는 민주적 운영원리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 다양한 운동경향성들이 그 안에서 온전히 발현되기 어려운 점들은 결국 한총련이 하나의 정파 소유물로 전락하도록 만들었고, 운동에 대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자체를 봉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낡은 이념과 주관적인 정세인식,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해 한총련의 대중노선 자체는 이미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학생운동 혁신이 단지 몇몇 학생회 간부의 헌신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진함은 한총련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운동은 그 자체 대중운동일 수밖에 없으며, 온전히 대중과 함께 했을 때만이 그 생명력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학생운동의 혁신은 대중과의 융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2. 학생운동의 전환과 전선재편의 필요성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과의 관계
96년 이후 '위기'를 둘러싼 논쟁은 '한총련'이라는 한국학생운동 대표체의 존망이 걸린 차원으로, 그리고 한총련의 문제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학생운동의 문제 역시 공도동망(共倒同亡)할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의 논의 자체가 이미 2∼3년을 경과하며 새로운 '관성'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에서 차지했던 지위와 역할을 다시 꿈꾼다는 것은 이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각각의 계급대중운동이 전체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공상일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을 조망하며 가졌던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시야는 여전히, 그리고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최근 학생운동이 처해있는 내외적인 현실과 조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96∼97년을 경과하면서 가시화된 NL대오의 분화, 98년 학생회선거 결과 NL대오의 몰락과 좌파의 상대적 약진. 하지만 그것은 운동에 대한 새로운 비젼과 대중의 공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反한총련 정서에 기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학생운동의 대중적 동원력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그것은 97년 총파업투쟁에서 드러난 학생운동의 미진했던 역할과 97년 대선투쟁에서의 무능력한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현재 '한총련'은 위기에 처해있고 그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최소한 이전과는 다른 연합체운동의 상이 요구되고 있다. 허나 동시에 이전과 다른 수준의 연합체운동을 지금 당장 수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이 한국학생운동을 대표할 연합체 운동의 면모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학생운동은 전체운동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민중운동의 흐름을 고찰해 보자. 이미 전선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전국연합, 일정정도의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총, 다양한 시민운동세력들의 행보와 대선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건설운동의 흐름들이 존재한다. 민중운동의 흐름들은 다양하고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학생운동진영은 상대적으로 왜소한 외양을 갖고 있다. 대선이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민중운동의 행보와 지형변화 속에서 과연 학생운동은 어떻게 스스로를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또는 민중운동과 어떠한 공동 보조를 맞추어 나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올바른 논점을 제시하고, 나아가 현재의 흐름속에서 스스로의 역할과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사회 변혁운동 속에서 학생운동은 이미 그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스스로의 능력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諸) 운동들과 관계맺는 방식과 그 속에서 독자성을 확보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고민의 과정에서 새로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연대, 민중운동과 학생운동의 연대가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연대의 원리와 기풍은 한총련-학생운동의 전화에 커다란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점들은 궁극적으로 운동주체와 학우대중과의 관계를 올바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이어졌을 때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사회적 적대에 대한 착목은 이런 점에서 유의미할 수 있다. 이 속에서 대중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적대들을 정치적 투쟁으로 상승시켜낼 수 있는 능력과, 선도성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들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온전하게 수행될 때에만 학생운동이 선도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학생운동의 내용이란 무엇인가? 학생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창출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이것은 대답 가능한 질문이기는 한 것인가?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과 김대중 정권하에서의 전선재편 과정, 전체 민중운동진영과 학생운동의 위치와 역할을 분석하는 속에서 해명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맞서는 전선재편의 필요성
한국사회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민주 對 반민주'의 대립구도가 (위로부터) 소멸한 그 시점부터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민중운동, 혹은 학생운동의 경우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와 공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혁신을 이야기하되 그 혁신의 내용을 밝히지 못하는 운동을 지속해왔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혁신을 위한 기간의 실험과 노력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항하는 학생운동, 혹은 그 주류인 NL대오의 대응의 한계는 이러한 측면에서 찾아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독점자본과 국가의 관계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반제직투'가 난망해 진다거나, 기존의 주류적 운동형태로 진행되온 '통일투쟁'(좌파의 경우에는 '민중연대')과 신자유주의가 배태하는 사회적 모순들에 저항하는 운동 사이의 연대 경로 및 방식의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주8)
하나의 사례로 97년의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꼽고 싶다. 이 운동을 예로 드는 이유는, 이 운동이 대단히 전국적인 흐름을 형성하면서 거의 전 계급계층이 나름의 이해를 갖고 참여했던 운동이었고, 대학 내에서도 자치단위(특히 기독교 단체나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있는 단체 등)의 자발적인 흐름들 속에서 학생회도 이에 대한 참여를 강제받아 대학과 대학을 넘어선 교문 밖의 실천적 연대가 드러났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 대한 NL적 입장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그 하나는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대한 반대'였으며, 다른 하나는 그러한 흐름을 대학사회 내로 침투시키고 '대단히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흐름이었다. 전자는 추측컨대 '어찌 감히 북한을 도울 수 있는가' 하는 기존의 찬북적(贊北的) 노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후자와 관련해서 그들의 실천적 기풍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성과가 대단히 개량적인 방식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비판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비판은 92년 이후 발생한 시민운동과 학생운동의 전략적 연대의 내용들이 현시기 어떠한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좌파의 대응은 좀더 오묘했는데, 북한동포돕기 운동이 전국적인 흐름을 형성해 나가는 상황에 얼마쯤 당황해하면서 좀더 좌파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좌익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사안'(!)을 찾는 데에 급급하였다. 즉, 북한동포돕기 운동은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인권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정도로 이해되면서 학생회 수준에서는 '자발적 흐름이 있다면 연대하라' 정도의 '말해도 그만, 말하지 않아도 그만'인 방침을 내놓거나, 이러한 '개량적'(?) 사안을 '변혁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노동투쟁 혹은 빈민투쟁은 없는가' 하는 고민만을 진행했다. 사후적이지만,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수행되었어야 했을 북한'민중'돕기 운동은 좌파에게 그런 식으로만 사고되었던 것이다. 학생운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것은 필자의 짧은 식견에서 보았을 때, 민중운동도 동일한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은 흡수통일의 가시화 및 반동적 민족주의의 발호 속에서 'NL대오의 입지 축소' '기존 운동과 소위 새로운 운동의 연대 및 견제의 딜레마' '기존의 전략노선을 재구성하는 데의 난망함'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국연합 및 민주노총의 위기와 김대중정권 하에서 시민운동의 분화 및 포섭(!) 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주9)
학생운동의 위상 재정립과 전선재편에서의 역할
97년의 출범식사태 이후 실천적 무기력함을 심각하게 노정하고 있는 학생운동진영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내리는 것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운동적 시야 속에서 학생운동의 위상을 새로이 설정하는 문제는 학생운동과 민중운동 공동의 전망이라는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을 제기할 수 있는 '화두'를 설정하는 것은 관건적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여전히 '선도성'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전히 우회할 수 없는 질문은 "어떠한 선도성을 재구축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투명한 '시장의 원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대해 어떠한 정책적 고려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도전, 새로운 인생!' '실업의 고통, 함께 나눕시다!' '소액주주 운동' 등이 일정하게 '진보적'인 것으로 이해되면서 광범위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민중 스스로를 '상품'으로 재편 - 이를 통한 노동계급의 지위하락(주10) -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신중산층이 수행했던 부르주아 및 지배분파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이들이 대체하여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학생운동의 새로운 위상에 대하여 시론적으로 제안한다. 역사적으로 학생운동의 역할에 대해 '노동계급의 지원부대'라는 절대절명한 정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학생운동이 가장 유의미하게 자리매겨졌던 이유는 학생운동이 지배이데올로기가 대중을 포섭하고 있는 그물망 속에서 그것을 거스르는 실천이 가능했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사회가 탈정치화되었다기보다는 정치적 무기력함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의 개입지점은 계급투쟁의 상황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명확해진다.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 무기력함 속에서, 바로 유일하게 범국민적 불만을 대변하고 해소할 수 있는 대안세력은 민주진보운동과 노동자·민중 스스로라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노동자·민중의 탈정치화 과정 속에서 이들의 정치화를 적극적 의미에서 옹호하는 것을 장기적 중심축으로 두되, 이것이 정치적 쟁점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적 대응방향과의 융합 속에서 제시하며, 다른 한 축으로는 스스로의 대중적 기반인 대학에 대한 사고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와 신자유주의 사회재편 속에서의 대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혁신된 대학자치투쟁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운동은 가장 선도적인 문제제기 집단으로 스스로를 쇄신할 수 있어야 한다.
3.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의 핵심적 내용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구체적인 학생운동의 양태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국적 연합체운동과 관련하여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올바를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 - 생존권 및 노동권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무제한적인 옹호 - 를 주창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를 제안하는 것은, 그리고 그 핵심으로서 생존권 및 노동권을 제안하는 것은 이전의 것과는 대단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핵심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경쟁적 관계로 재편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에 대한 역방향은 명확하게 '정치적·사회적'인 것의 복원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정치적·사회적인 것의 복원이라고 했을 때는, 자본주의적 시장 원리에 의해 점증하는 폭력과 불평등 - 대량의 실업자 문제나 노동계급의 지위 하락 문제, 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안전의 문제 등 - 에 대해 사회적 안전권이나 사회적 평등권의 차원에서 대중적 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노사정 합의, 국가보안법 등으로 상징되는 법적·제도적 폭력을 해체시키고 대중의 파편화에 대한 적극적 저항으로서의 대중의 자기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실천을 조직하는 것이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존권 및 노동권의 문제는 이전의 가치들을 쇄신하면서 확장되어야 한다. 여성노동자 및 이민노동자에 대한 문제나 노동하고 있는 사람의 권리를 넘어선 노동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 그리고 작업장 환경 등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환경의 문제, 노동자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구획하는 지적 차이의 문제 등은 학생운동 및 민중운동의 정치적 가치로서 적극적으로 인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운동 - 대중성에 대한 대중운동의 우위 - 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중운동 전반에서도 드러나는 바이지만, 학생운동의 '대중성의 탈각'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방식에서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민주적 조직운영이란 조직내의 문제를 다수결의 결정에 따라 집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총련 - 뿐만 아니라 학생운동의 다양한 질서와 구조 - 이 가지는 조직적 구조 안에서 다양한 세력들의 대중운동적 시도와 비판적 문제제기들이 적절한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의 공개적 경합(논쟁)과 수평적 토론의 활성화가 전제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학생운동의 올바른 발전과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력으로부터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고 이것이 공개적 경합에 기반하여 통일적 힘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대중운동 단위와 학생운동 그룹들 간의 수평적 토론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한총련의 문제가 마치 학생운동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 정파'의 문제로 다가가게 되는 것은 지난날의 이러한 폐해가 학생운동 안에 버젓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직내에서의 분파형성과 분파와의 건강한 논의를 통한 조직의 발전은 학생운동의 혁신을 전제로한 학생회 연합체의 방향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학생운동은 학원 내의 민주적 운영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편한 말로 '수평적 연대'라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자치단위의 자발적 문제의식을 대리민주주의 기제인 학생회 내로 단지 흡수만 함으로써 다시 한번 학생회의 고립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고(주11), 자치단위의 문제의식에 촉수를 드리우지 못해서 고립을 초래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운영 메커니즘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대중노선의 재정립 문제는 학생운동 전반이 공히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기존의 한총련운동 및 한총련 주류그룹에서 읽을 수 있는 지도자 중심의 당적 형태의 단결과 이들에 대해 헌신하는 중앙지도부라는 모습은 중앙이 판단한 대중운동 방식을 일방적으로 학교 및 지역의 대중운동에 강조하는 양상과, 중간간부들의 역량손실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만약 한총련의 간부 중심관과 간부중심의 순교자적 대중조직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하달식 사업의 연장이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으로 감지되는 간부와 대중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는 경로는 '간부혁신' 이상으로 제시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인식은 운동주체가 현시기(혹은 항상적으로)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운동주체는 대학사회를 관통하는 한국사회 일반의 모순을 안고 있는 당사자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대중노선의 혁신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대학 내에 존재하는 차이와 적대를 직시하게 하며, 이를 통해서 대중운동화될 수 있는 저항의 지점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에 기반하여 이제 공동으로 포착한 내용을 강력한 공통의 이해로 만들고, 나아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발현하여 대중운동 안에서 전반적인 저항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일구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운동이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맞서는 한국사회 전선재편의 과정에 복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치적 과제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저항성이 탈각되고 있는 학원사회를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양식을 개발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재편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재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학사회는 중심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자신의 재편을 수행하고 있으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과 대안의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지속적인 무기력감과 탈정치화 과정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대학은 교문을 넘어서는 대학의 실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착목해야 한다. 고려대의 '생활도서관 운동'이나 서울대에서 제기되고 있는 '과학상점운동'은 대학 내의 정보를 지역사회의 정보로 확대하기 위한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사회가 전반적인 경쟁 관계로 재편되는 속에서 대학도 위계 서열화되는 상징이었던 '서울대법'에 대한 반대운동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험은 적극적으로 축적, 수행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한 저항이라는 근거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의 정치활동에서 중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노학연대·민중연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술한 바,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강제하는 변화는 생활 전반에 걸친 재편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노동운동을 중심으로한 민중운동 연대의 관점 및 실천적 범위의 확대와 함께 학생운동의 연대 대상 및 관점도 혁신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회와 역사의 격변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연대로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일국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동안의 학생운동의 한계를 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시기 한국의 통일운동은 어느 정도 제국주의 문제를 주목한 바 있지만, 사실상 학생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세계적 차원에서의 저항운동이라기보다는 한반도 내에서의 문제에 근착한 측면이 다분했다. 더구나 이러한 운동의 전통은 대중의 국수주의적 감수성에 기대어 발전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는 바이다. 한국에서의 변혁운동은 세계적 차원에의 연대에 기반하여 강력한 저항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세계적 차원에서의 운동은 학생운동의 적극적인 자기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서의 기아와 환경 문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인권침해의 문제,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아메리카 헤게모니에 대한 반대와 전세계 인민들의 민중권의 옹호를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민중운동과 학생운동의 실천적 연대를 바라며
학생운동의 기반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작업은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자기가 발딛고 서있는 대중과 조건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못했기에 현재 학생운동의 위기가 계속적으로 운동주체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상적으로만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은 그 사물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이르러 오류나 무능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80년대 운동의 역사적 성과물들을 받아안으면서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학생운동이 시대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학원사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그에 입각한 활동은 어떤 실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국사회 모든 운동진영과 대중이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생운동이 학우대중으로부터는 물론, 다른 운동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지는 않나'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학생운동의 발언이 '이상한 사투리'처럼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생운동은 대중과 함께, 그리고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과 함께 싸우고 연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 역시 주도적으로 학생운동과 함께 싸워 나가야 한다. 예비 실업자, 또는 예비 노동자로서 학생이기 이전에 '대학' 역시 신자유주의적 재편 하에 똑같이 소외받고 억압받으며 경쟁과 효율을 강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
1) 96년 8월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서는 농성학생 수백명이 구속되었고, 진압경찰 한 명이 죽음에 이르렀으며, 김영삼정권은 한총련에게 '이적성'과 '폭력성'의 낙인을 찍었다.
2) 정권의 폭력적인 원천봉쇄 하에서 진행된 97년 한총련출범식 과정에서 시위진압 경찰이 사망하고 쁘락지를 타살한 일이 발생하였다.
3) "한총련 주류 비탈에 서다" {한겨레21} 4. 9. 202호 참조. 한총련과 학생운동의 위기속에서 어떠한 혁신과 전화의 고민도 전개하지 않고 현재 6기 한총련을 '자기들 만의 것으로' 건설하고 있는 동지들의 주장이다. 한총련 주류 및 다양한 세력들의 입장은 후술한다.
4) 95년부터 97년까지 계속 발표된 네차례에 걸친 교육개혁안의 핵심은 '자본의 유연화된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교육의 적절한 재편과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바는 지원금을 무기로 한 대학의 서열화·위계화, 그리고 대학 내에서 가능성 있는 단과 대학에 집중 투자와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각 학교의 발전전략의 구상, 실행 등은 정부의 입김과는 일정 무관하게 전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이 대학구성원들 사이의 경쟁을 급속히 확산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 96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시도하였다
6) 95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시도하였다.
7) "어떻게 한총련-학생운동을 거듭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한총련을 탈퇴할 것인가 탈퇴하지 않고 잡혀갈 것인가"라는 논의로 진행됨.
8) 기존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전략적 연대'라고 하는 관점에 의한 실천은 현시기 일정 과장하여 '성과 없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정권 출범이후 참여연대나 경실련 류의 시민운동이 또다시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민중운동의 전망을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개량적 운동의 헤게모니 속에서 전선을 교란시키는 효과만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한편, 학생운동 내부적으로는 성-환경-정보 등에 기반한 운동과의 전략적 연대를 견지하고 있었으나, 기존의 학생회를 정점으로 형성되어 있는 운동의 지형과 학생회 외곽의 대중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성-환경-정보 등의 운동은 (서로간의 전망 및 실천양태의 동요를 목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떠한 공동실천을 마련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9) 이러한 고민은 다시 한번 '전선재편'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전선이라고 하는 것이 아(我)와 적(敵)의 명확한 구분 속에서 계급동맹의 범위와 정치적 쟁점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했을 때,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전략적 혁신'을 포괄하여) 신자유주의 재편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연대전선 및 전국적 정치전선의 구축은 학생운동 및 민중운동의 사활적인 과제이다.
10) '도전, 새로운 인생!'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처절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저를 사 가 주십시오!'라는 말들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3월 31일 방송에서는 대기업의 기획부 차장을 하다가 지금은 문구점 주인이 된 한 아저씨가 나와서 '기존의 자존심과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말자', '굵고 짧게 살기보다는 애들 학교 다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계속 하고 있었다.
11) 예를 들어 지난 시기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제시했던 네트워크 학생회류의 실험들을 돌이켜볼 수 있다. 성(性)위원회, 환경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의 기구를 설치함으로써 자발적 대중운동의 흐름들을 수렴해내려고 했던 일련의 실험들은 대학사회의 재정치화에는 실패한 채, 다만 상층 학생회구조만 비대해져버린, 그리고 학우들로부터 여전히 소외된 학생회로 귀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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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