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뿌리 깊은 분열정책, 여성우선해고!
이 주 환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교육부장
산업현장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노동자, 여성!
현재 여성노동자들은 실업, 해고, 노동조건 악화, 비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이는 비단 여성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닌 전체노동자의 위기이지만 여성의 경우 일차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실제로 97년 2/4분기 전체실업자 56만명 중 1996년 같은 기간에 비해 남성은 20.8% 증가한 반면 여성은 60.0%로 남성에 비해 훨씬 큰 증가폭을 보였다. 이것은 노동시장에서 여성노동자의 퇴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이다.
언론에서는 주로 사무전문직을 중심으로한 여성우선해고 문제가 이슈화되었지만 여성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먼저 밀려나는 것은 직종과 업종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휴폐업·부도·공장이전으로 인한 실직의 문제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98년 1월중 서울지역 부도업체수가 1,239개에 달해, 하루 부도업체가 100여개에 이른다고 하지만 통계에 안잡히는 영세하청 공장의 수까지 헤아린다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여성노동자의 문제만은 아니며 중소, 영세업체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절박한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는 62.7%가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어 고용형태가 더욱 불안정하며, 이들은 실직 당했을 때 실업급여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정부는 올 3월부터 실업급여 사업의 적용대상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내년 7월부터 임시직, 시간제 노동자에게도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시키고, 99년 1월1일부터 4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로기준법도 가장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해고, 근로시간과 휴가, 퇴직금, 여성보호 규정 등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논의가 되고 있어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4인 이하 영세사업장과 임시직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런 실직은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두번째는 최근 해고회피에 대한 최대한의 노력 없이 인건비 절감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불법적인 정리해고이다. 기업의 인수·합병과정에서 또는 경영상의 이유로 진행되는 부서통폐합, 생산라인 폐쇄, 집단 감원과 같은 형태를 띤 정리해고는 하루아침에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강요하거나 전체노동자의 30∼40%를 집단감원하는 불법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어 큰 무리를 빚고 있다. 법적으로도 합리적인 경영상의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노동자를 해고할 시에는 60일전에 사전예고해야 하며 해고회피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또한 최근 노동부장관도 전체 노동자의 30∼40%나 되는 노동자를 한꺼번에 해고하는 것은 해고회피노력을 최대한 기울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계속적으로 이야기했던 성차별적인 여성우선해고 유형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의 일차대상이 되는 현실은 명백한 현행법(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위반이다.
"00기업의 경우 60명이나 되는 일용직을 해고하였는데 전원 여성이었다."
"최근 정리해고를 하면서 10명의 여성들을 1차적으로 해고했는데 이중 기혼여성이 9명이었다."
"39세의 한 기혼여성이다. 17년 동안 근무한 직장에서 인원감축을 하는데 맞벌이 부부가 해고 1순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수백명이 해고될 계획이라는데 1차 대상이 기혼여성, 특히 아이가 2명 있는 기혼여성부터 해고시킬 것이라고 한다."
위의 사례들은 각 지역 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 상담에 접수된 사례들이다. 여성 그중에서도 기혼여성, 맞벌이부부, 자녀를 둔 여성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해고 방법도 매우 다양하여 1)아예 노골적으로 여성을 찍어서 사직을 강요하는 경우, 2)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부서를 없애면서 경영을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 3)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임시직인 점을 고려하여 임시직을 우선해고하는 경우, 4)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지방발령 내는 경우 등이다. 최근에는 여성해고1순위 문제가 사회문제화되자 2)3)4)의 경우처럼 변칙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임시직 우선 해고의 경우 노동조합에서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문제이다. 지난해 11월 이미 임시직은 600만명을 돌파하여 전체노동자 중 4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대부분은 여성이며 보건·사회복지분야인 경우에는 임시·일용노동자의 75.8%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임시직의 해고라지만 결국엔 여성우선해고인 경우가 많다. 여성노동계에서는 결과적으로 차별을 낳았다면 그것도 처벌해야 한다는 간접차별에 대한 조항을 법제화할 것을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우선해고의 역사, 뿌리 깊은 자본가의 분열정책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8일까지 3·8세계여성의 날 기념으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한국노총, 민주노총 공동주최로 '여성해고 1순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사이버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에서는 여성우선해고에 대해 "경제위기라는 다급한 현실에서 가계부양의 책임이 있는 남성보다는 그래도 여성들이 참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성차별 운운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한편에서는 21세기를 앞둔 현시기에 여성의 일을 여전히 가계 보조적인 수단으로 바라보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반발하는 글들도 있었다. 토론 결과 모든 이가 동의하는 점은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닥쳐오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정리해고는 모든 노동자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여성노동자의 성차별적인 해고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왜 굳이 여성들만 당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드느냐고 문제제기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여성들의 권리주장이 전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는 이미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왕 짤릴거면 가장보다는 여성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정리해고의 법제화가 노동자를 마음대로 짜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짤린다고 해서 남성의 일자리가 보장될까? 물론 아니다. 여성에게 먼저 적용된 부당한 정리해고 바람은 결국 전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시작일 뿐이다.
여성부터, 임시직부터, 외국인노동자부터, 파견노동자부터 ……. 똑같은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꼬리표를 붙인 채 서로 나뉘어지고 분리되어 관리된다. 이런 분리들은 결국 노동자들에게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기대심과 결합하면서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나가는 힘을 잃게 한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높은 노동강도를 감수하며 생존경쟁의 논리에 밀려 삶의 질을 포기한 채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다. 자신에게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해고의 위협에 항상 불안해 하면서......
역사적으로 산업구조조정 시기만 되면 1차적인 집단해고의 희생자는 바로 여성노동자였다. 대구의 섬유업체,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외자기업들, 부산의 신발업체를 비롯하여 전국각지에서 봉제 의류업, 전자업, 신발업에 종사했던 여성노동자들이 작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정리해고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해온 것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정리해고 요건이 엄격했던 예전 상황에서도 크고 작은 정리해고와 강제적인 명예퇴직이 진행되어 왔다. 단적인 예로 89년부터 92년까지 부산 고무산업체의 휴폐업, 감원만으로 2만여명의 노동자가 실직되었다. 이렇게 실직된 여성노동자들은 직업훈련을 통한 이직이나 실업시 생계보장에 대한 대책 없이 그대로 실직되었다. 그당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실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커다랗게 사회문제화 되지 못한 것은 그당시 여성노동자가 '가장이 아닌 미혼 여성'이 중심이었고, '여성의 본연의 임무는 가정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꺾을 만큼 노동계에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 현실을 전체노동자의 문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이후 여성노동자들은 계속 주변화된 노동력으로 비정규직화되었다. 여성노동계가 우려했던 대로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와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군을 양산하여 분리, 분할 지배하려는 자본가의 의도는 처음에는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부터 진행되었지만 이젠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가 도입됨에 따라 전체노동자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만약 여성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실업이 문제가 되었을 때 노동자들이 일치 단결해 대응해 나갔다면, 그래서 불법적인 정리해고에 쐐기를 박고 실업급여나 직업훈련과 같은 실업자 대책마련을 일찍부터 할 수 있었다면 현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분열정책 보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분열정책은 뿌리가 깊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강고하게 남아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분열을 더욱 부추기고 많은 남성노동자들 심지어는 여성 자신에게조차 현실의 부당함에 맞서 싸워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가의 분열정책을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기본권은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따라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우선해고 문제에 대해 전체노동자가 함께 단결하여 대응해 나감으로써 이후 확대될 부당해고에 맞서 나가야 할 것이다.
재벌개혁 없는 정리해고는 노동자에게만 고통전담일뿐
탈법적인 정리해고와 여성우선해고 방지, 4인 이하 영세사업장과 임시직 노동자의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여성노동자의 고용불안정 문제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법정 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안정 및 공공부문에서의 고용창출, 재벌개혁 투쟁,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 확대 및 개선 등 향후 노동운동이 수행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전체노동자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부당한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현 경제위기의 주요 책임자인 재벌의 개혁 없이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이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므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전체실업자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200만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노사정 공히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을 나눌 것을 주장했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정리해고 양상은 노동자에게만 고통이 전담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증권거래소 조사결과 IMF 관리체제 이후 30대 재벌의 고정재산매각 등을 통한 구조조정 노력은 중견 상장기업수준에 훨씬 미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벌이 진정한 구조조정을 피한 채 손쉬운 인력감축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위기의 주요원인이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이라면 이의 개선 없이 노동자들의 고통분담만으로는 절대로 이 위기사항을 타개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재벌들의 개혁 노력은 너무나 미진한 상태이다. 정부는 주력업종 선정을 통한 재무구조개선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대량해고를 단행하는 재벌에 대해서는 해고기피에 따른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경제파탄, 민생파탄의 책임을 규명, 처벌하고, 재벌개혁을 신속하게 이행하도록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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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