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



이번호 열린마당은 한국 노동네트워크를 준비중인 진보적인 정보통신운동가 중 한분의 글을 실었다. 이글은 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쟁점, 그리고 한국에서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검토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직 노동운동진영이 정보통신을 사용하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점점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과 관점이 이 글을 통해 전달되길 바란다.

이 글을 계기로 노동 네트워크에 대해 접근 방법을 달리하는 진보적 정보통신운동가의 글을 후속으로 실을 계획이다.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전제들


장 여 경

정보민주화와 진보적통신을 위한 연대모임 대표


김대중 신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완전시장경쟁 체제가 IMF로 대표되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을 갈수록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근 정세에 대하여 노동운동 진영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사정 합의' 등 합의주의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최근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정황을 폐쇄적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심도 깊은 정세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멕시코가 국가 경제위기를 노사정 합의로 극복하였다는 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전세계 노동자·민중 투쟁의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가운데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고착되어 있다면, 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보다 강한 내외의 소통과 연대적 질서의 구축이다. 노동네트워크는 이러한 요구 속에서 제기된다.

본래 정보화는, 주로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어 혁신되고 사용되는 정보통신기술이 신자유주의적 합리화와 유연화를 위한 물적 기반으로 기능하도록 배치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화, 특히 작업장에 도입되는 정보화는 노동자들에게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인류의 '눈부신'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본의 철저한 이해에 따라 구성되는 와중에서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 이 기술들이 사용되는 의미를 바꾸어 놓기도 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일 것이다. 전화에서 시작하여 단파라디오방송, 비디오, 영화, 그리고 최근의 위성방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활용 영역을 개척해 온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가장 최근의, 그리고 무척 빠른 파급력을 보이고 있는 기술이 바로 컴퓨터통신이다.

컴퓨터통신은 특히 자본이 네트워크의 형태로 지구화할 때 그에 맞서 노동운동 진영이 지구적 차원에서 연대하고 투쟁하는 데 유력한 기반으로 꼽히고 있다. 컴퓨터통신 기술을 우리의 무기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노동네트워크' 건설과 확산을 위한 움직임들이다. 이 모색은 기술의 보급이 빠른 나라의 노동운동 진영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지구적 규모의 노동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노동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다른 나라 노동운동 진영의 역사적인 노력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을 위하여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노동네트워크의 출발

'노동네트워크'라고 불리울 수 있는 초기 시도들은 놀랍게도 PC가 대중화되기 이전인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최초의 노력은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말조차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1981년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시작되었다. 포괄하는 지역이 너무 넓어 조합원 소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주정부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아 당시 큰 위기에 직면해 있던 브리티시 컬럼비아 교사연맹(British Columbia Teacher's Federation : BCTF)은,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전화회사가 지원하는 초기적 형태의 전자게시판(화면으로 출력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팩스처럼 감열지에 출력되는 형태)을 활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이 온라인 네트워크는 노동조합이 살아남도록 크게 도왔는데,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조악했던 컴퓨터통신 기술은 무엇보다 투쟁을 성공리에 이끌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연대형성의 큰 기반이 되었다. 당시 컴퓨터통신을 사용하지 않았던 사용자 측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조합 내에서 '수평적인' 민주주의를 촉발시켰다. 약 100명의 이용자를 가졌던 이 네트워크는 1990년 캐나다의 단일 노동네트워크인 솔리넷(Solinet)의 출발로 이어졌다.

이처럼 노동운동의 초기 컴퓨터통신 활용은 강력한 소통과 집결 의지로 인하여 오히려 자본보다 앞서 나가기도 하였는데, 특히 다국적 기업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국제적 규모의 노동네트워크에 대한 긴급한 요구가 도출되었다. 1980년대 초반,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노르웨이의 한 컴퓨터 전문가에 의해 '유나이티드 프로젝트(United Project)'라는 이름의 노동네트워크를 위한 계획이 국제자유노련(The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 : ICFTU)에 제안되었으며, 국제화학·에너지·전력노동자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emical, Energy and General Workers' Union : ICEF)에서는 1984년부터 본격적인 노동 데이터베이스 활용과 네트워크화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새로 선출된 ICEF 지도부들은 상업망의 유료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면서, 전세계에 걸친 기업 주소록, 기업이나 산업 분야에 대한 주식거래 중개인들의 보고서, 금융이나 무역에 관계된 언론기사 초록 뿐 아니라 전문화된 데이터베이스, 즉 특정 산업이나 주제에 관한 정보들을 '손가락 하나로' 입수할 수 있는 효율성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상업망의 비싼 이용료와 불편한 인터페이스(사용방법 - 편집자 주)로 이용에 제한을 받게 되면서 이는 곧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이어졌다. ICEF는 몇몇 산하조직들과 함께 단체협상에 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산업안전과 보건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였다. 여기서 당시의 작업을 주도하였던 ICEF 조사국장 짐 카터슨은 "네트워크 활용이 중앙과 산하조직 간의 수직적 소통을 긴밀히 하는 데 뿐 아니라 수평적인 연대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데 무엇보다 유용하였다."고 회상한다. 데이터베이스 작업들은 1990년까지 이어졌으며, 오랜 세월동안 여러 사람의 힘으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는 이제 모두의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상업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들로 이어진다. 전국적인 규모의 독립네트워크가 노동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성과는 캐나다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인 캐나다 공공노조(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 : CUPE)의 사례이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PC가 보급되기 이전이었던 1980년, CUPE에서 매달 발간되던 잡지의 편집인이었던 마크 베랑거는 잡지의 구독자 데이터베이스를 외부의 한 사기업 컴퓨터에 시간당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면서 저장해 놓고 그 회사로부터 다달이 구독자 명부의 출력본을 전달받곤 하였다. 어느날 베랑거가 CUPE 사무실에서 직접 이 구독자 명부를 출력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자, 그 회사 대표는 "없습니다. 이유요? 당신이 동기식(synchronous)과 비동기식(asynchronous) 통신의 차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설명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랑거는 그가 일부러 기술에 관한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그 지식이나 보다 광범위한 활용에 베랑거와 같은 노동자가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그저 그것이 분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이후 그는 아침 5시에 출근해서 컴퓨터통신과 컴퓨터 일반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2개 국어가 지원되는, 캐나다 최초의 전국적 독립 노동네트워크인 솔리넷이 만들어진 배경이었다. 이 일화는 특히 기술이 이윤 동기에 갇혀 있을 경우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노동네트워크 건설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 가운데 상업망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연결된다.

한편 살인적인 탄압과 감시 하에 놓여 있었던 남아프리카 노동운동진영에서 1986년 워크넷(WorkNet)을 구축하였다. 워크넷이 노동네트워크의 역사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살아남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각자 폐쇄적인 상황에서 운영되던 네트워크를 서로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당시 세계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는 유럽의 팝텔/지오넷(POPTEL/GEONET)과 미국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던 APC(NGO들의 국제네트워크.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로 양분된 상태였는데, 워크넷이 이 두 네트워크와 모두 연결하였던 것이다. 네트워크는 '소유'의 형태로 폐쇄된 상태보다 연결된 연동의 상태일수록 활용 가치가 증가한다는 것을 실현해 보인 것이다. 그러나 워크넷은 국제노동운동계와 전자우편을 통하여 소통하는 데 주로 쓰였을 뿐, 실제 활동가들의 자체적인 이용률은 저조하였는데, 이는 사회전반적으로 열악했던 접속환경 때문이었다. 워크넷은 남아공에 만델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고넷(SANGONet)으로 전환한다.

본격적인 지구적 독립 노동네트워크가 출발한 것은 APC의 미국지역 멤버네트워크인 IGC(Institute for Global Communications)가 자체적인 노동네트워크(LaborNet)를 출범시키면서이다. IGC는 1994년 북경여성대회를 통하여 유명해진 여성네트워크(WomensNet) 이외에도 현재 환경네트워크(EcoNet), 평화네트워크(PeaceNet), 투쟁네트워크(ConflictNet)를 멤버 네트워크로 가지고 있는데, 노동네트워크는 1994년에 구축되었다. 이 노동네트워크는 1990년 네덜란드의 에페에서 열린 한 노동운동관련 회의에서 제안된 이후 계속된 노동정보통신운동가들의 온라인 토론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세계를 염두에 두었음에도 그 형성 과정이 IGC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노동네트워크는 미국의 이용자들에게 집중되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6년 만들어진 영국측 노동네트워크(Labournet)가 리버풀 부두 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소수 노동운동가들로 출발하였던 초기의 어설픈 상태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유럽 노동네트워크를 향한 행보를 바삐 하면서 이제 이 주요 거점들을 중심으로 지구적 규모의 노동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노동네트워크의 쟁점들

초기 시도들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발빠른 적응과 활용에서 성공하였다면, 보다 본격적인 행군을 위해 우리는 까다로운 문제점들에 봉착한다. 특히 자본이 명백히 정보통신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어떻게 노동자의 관점으로 이 기술에 개입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시점이다. 노동네트워크 건설을 먼저 시도한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우리는 노동네트워크의 바람직한 형태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이제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에서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들이 되고 있다.

상업망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노동네트워크 건설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는 것이 바로 상업망과의 관계 설정이다. 대표적인 논쟁이 미국의 노총인 AFL-CIO가 상업망인 컴퓨서브에 포럼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 계속되는 찬반 토론이다. 상업망 이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없었던 1992년에는 이용자수가 최대인 상업망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후 여러 상업망들이 생겨나면서 특정 상업망에 포럼을 개설하는 것이 다른 상업망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접근을 제한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반대는 1995년 AFL-CIO가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다소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AFL-CIO가 특정 상용망을 사용하는 데 대한 비판은 만만치 않다. 캐나다의 솔리넷을 만든 베랑거는 이같은 노동조합의 결정이 평조합원들의 노동네트워크 활용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조합원을 통제하려는 경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져, 이러한 상업망 포럼이 '노조위원장이 다른 위원장들과 소통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물론 AFL-CIO를 따라 상업망에 계정(아이디)을 개설한 평조합원들이 상업망의 다른 서비스들을 부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찬성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실질적으로 AFL-CIO 포럼이 연맹급 노조의 작업장 대표자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근거가 희박하다.

우리의 경우, 민주노총이 이미 존재하는 독립BBS를 활용하거나 자체 BBS를 구축하지 않고 나우누리에 CUG를 개설하도록 했던 명분은 기존의 BBS 중에서 만족할 만한 기술력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는 것과 상업망에는 일반 이용자 등 대중과의 접촉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느 상업망도 이용자수가 많지 않았으며 기술은 보다 손쉬운 방향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이는 오히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민중교회의 평화만들기 BBS, 사당의원의 북소리 BBS,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대자보 BBS, 참세상 BBS, 녹두 BBS 등 폭넓게 형성되었던 독립BBS의 가능성이 인식의 부족, '음란성'을 빙자한 국가권력의 사설BBS 탄압과 상업망의 다양한 상품전략에 휘말려 사그라들었던 정황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제는 민주노총이 나우누리에 CUG를 개설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단체들이 유일한 아이디를 나우누리에 개설하는 상황에서, 그 출발이 지금과 달라도 그 활용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또한 민주노총 CUG 회원이 현재 1,300명에 육박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운동가나 단체이거나 조합원들이라는 점에서 애초 막연하게 설정하였던 '국민과의 접촉'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상업망을 이용하는 데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검열과 보안의 문제이다.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불온통신' 조항에 의하여 많은 사회단체들의 글이 수시로 삭제되고 있으며 지난 97년 6월 소위 '한총련 사태' 때에는 60개 이상의 단체나 관련 개인의 아이디가 압수당했다. 또한 전기통신사업법 54조에 의하면 막연한 수사상의 이유만으로도 사업자는 개인 정보를 안기부 등의 수사기관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로 97년 6월 [노동자의 눈]이라는 개인 온라인 신문을 발행하던 한 이용자는 개인 메일까지도 안기부에 제출토록 요구받았다.

상업망이 장기적으로 한국노동네트워크가 선택할 길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따라서 이후 이 글에서 계속 다룰 노동네트워크의 쟁점은 상업망과는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누가 운영하고 이용할 것인가?

노동네트워크의 운영 주체가 어디인가는 그 이용자와 이용형태, 그리고 재정 문제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쟁점이다. 외국의 노동네트워크는 보통 노동조합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져 왔지만, 노동조합에서 직접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사설BBS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지역·단일노조 네트워크는 노동조합에서 직접 운영하는 경향이 많고, 이 네트워크들이 상호 연결되는 개방성이 커질수록 노동조합은 '중요한 구성원'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은 분명 노동네트워크의 선구자였고 지금도 가장 큰 기반을 형성하고 있지만, 계속 확장되는 규모의 네트워크를 단독으로 책임지는 것은 큰 부담이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 직접적인 운영과 재정에 대한 책임은 여러 구성원들의 협의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방형의 네트워크를 지향할 때 지속적인 운영과 재정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문제는 사실 뚜렷한 해답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어려운 문제이다.

남아프리카의 워크넷의 경우에는, 처음에 만들 때에는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조직들의 대표가 운영하는 것으로 구상되었지만 단위 환경이 열악한 속에서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큰 규모와 전반적인 인식 부족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그래서 워크넷은 독립적인 운영틀을 꾸렸는데 이 운영틀에는 여러 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대부분의 노동네트워크는 이와 같이 그 이용자층에 있어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기보다는 노동조합의 구성원이나 노동운동관련단체들로 그 접근을 제한하고 있고, 운영이나 재정의 문제도 이들에 기반하여 풀고 있는 편이다.

이용환경과 교육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

폭넓은 네트워크 구성을 위하여 각 지역들 간에 균등한 이용환경과 활용능력을 형성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접속 환경이나 하드웨어의 전반적인 열악함 때문에 접근이 제한되는 문제도 심각하고, 특히 디지털 문자 언어를 기반으로 커뮤니케이션되는 컴퓨터통신의 특성에 대한 친화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을 경우 이용률 자체가 저조해지기도 한다. 캐나다 노동운동의 컴퓨터통신 활용이 BCTF와 같은 교사조직이거나 CUPE와 같은 사무직 노조 종사자들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던 반면, 전해오는 몇몇 실패한 사례들의 경우에는 이용자의 인식 확산과 교육이 기술적 환경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늘날에는 월드와이드웹과 같은 멀티미디어 및 다양한 기술환경의 도움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극복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지만, 노동네트워크 건설에서는 자본의 수요확산 전략과는 별도의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네트워크의 활용이 대도시, 그 중에서도 서울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환경에서는 접속환경이 여의치 않은 지역에 대한 고려와 함께 접근지점(access point)으로서 014XY망과 같은 저렴한 PC통신환경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컴퓨터통신에 대한 교육은 단순 활용의 측면 뿐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 의거한 활용과 정보화에 대한 관점 정립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기술활용교육 이외에도 노동조합의 목적에 맞는 뉴미디어 활용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http://WWW.mtucurc.com/jmu/index.htm)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독립적인 노동네트워크는 상업망과 경쟁하는 불리한 입장에 처한다. 이 점에 있어서 노동정보통신운동가들은 노동네트워크를 서비스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의 개념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특히 일정한 수 이상의 사람들이 써야 네트워크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안정되기 시작하는데, 이 점은 상업망과 별도의 독립네트워크를 운영함에 있어서 특히 첨예한 쟁점이 된다. 솔리넷의 경우 이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를 확보하기 위하여 솔리넷 안에서 두 달 간의 온라인 전국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PC를 가지고 있어서 접근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전술을 취한 것이다. 이 토론회는 두 달 동안 150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동일한 모임시간을 정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실질적으로 깨닫게 하였으며, 솔리넷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벤트는 당시 전화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BCTF가 솔리넷으로 들어오도록 기여했다.

즉, 네트워크가 성숙하는 임계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특히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데, 10년 여의 세월 동안 캐나다 노동운동의 광범위한 공동체로 성장한 솔리넷이 유머란을 폐지하였던 사건은 주목할 만 하다. 유머란에서 한 사람의 농담이 다른 이에게는 성차별적인 표현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하여 솔리넷은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유머란을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여기서 유머란을 폐지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침윤되어 있는 상업망에서는 볼 수 없는 일체감이 이러한 노력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적 노동네트워크에서는 함께 데이타베이스를 구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긴 시각에서 정보의 상품화는 '돈이 있는' 순대로 정보를 취득하게 함으로써 노동운동 안에서 연대가 아닌 차별을 형성한다. 즉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보다 많은 정보들이 유통될 때 그 활용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노동네트워크는 보다 더 연대의 초심에 입각한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지구적 규모의 네트워크와 연결할 것인가?

자본의 지구화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지구화는 노동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미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적 규모의 노동네트워크를 구상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언어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우리의 경우에 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떤 노동정보통신운동가들은 자동번역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성과를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지만 이는 가까운 미래에는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국제연대는 노동네트워크의 중요한 전제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노동자에게 친숙한 이용환경과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월드와이드웹 등의 인터넷과의 연결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제연대를 위한 기반은 갖추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이 기반 위에서 지속적인 국제연대에 대한 모색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한국노동네트워크를 향하여

외국의 사례가 많은 것을 시사해주지만, 그들은 분명 언어나 인터넷 접속 기반에서 우리보다 나은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중요한 대중 토론회를 온라인으로 기획하고 위원장 선거를 CUG로 매개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 노동운동 진영의 컴퓨터통신에 대한 인식이나 물적 기반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97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주최하였던 이들이 얼마 전 [노동미디어협의회(준)]을 띄우고 노동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는 소식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 그간 자본의 정보화 이데올로기 공세에 어느덧 포섭되어 버린 부분은 없는지 반성하고 수평적 연대의 강화를 위한 이 작업에 함께 나서자. 여러 노동형제자매들이 지혜를 모아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에 참여할 것을 기대해 본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