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극우세력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이었던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북풍사태'가 전(前)안기부장 권영해를 구속하는 수준에서 봉합되고 있다. 적어도 최근의 북측 침략이 남북 공동의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빌미로 정치적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안이 어느 정도 여야의 결정적 약점인지 가늠하게 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지배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북 기득권 세력 모두 얼마든지 남북한 민중의 열망을 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조작 이외의 다른 설명이 없어 아직 미궁에 빠져있는 공안사건의 진실을 밝혀 내는 일, 범죄집단 안기부를 해체하고 국가보안법 등 잔존하는 반민주 악법을 철폐하는 일은 노동자·민중의 손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임을 되새기게 되었다.
민주노총이 내부 분란과 선거로 정신이 없는 사이 경총은 이미 '98년 임금지침' '인건비 절감을 위한 방침' 등 발빠른 임금·단체교섭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동운동진영의 98년 임단투는 공통된 인식과 차별적인 판단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핵심 쟁점이 '고용안정'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하고 있지만 교섭구조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른 접근 을 보여주고 있다.
총력투쟁을 전제로한 총연맹 차원의 교섭만이 전선을 칠 수 있다는 상황인식을 배경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짜기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는가 하면, 노동시장을 중심으로한 교섭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는 쪽은 산별중심의 교섭과 투쟁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실질적인 노사정위원회의 개최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게다가 교섭구조의 난맥은 교섭권 위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위 사업장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위임할 정도로 지도부를 신뢰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올 임단협 투쟁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임금인상투쟁의 실종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본격적인 임단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결, 삭감, 반납 등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예년과 같지 않게 민주노총(물가연동제), 금속연맹(6∼9%), 현총련(10%) 등 각 주체마다 임금인상률과 기준이 다른 점도 투쟁의 장애로 등장하고 있다. 고용보장 없는 임금인상이 무의미 하듯이, 생활보장 없는 고용보장 역시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