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권의 민영화와 개방정책 비판
김 성 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우회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와의 투쟁
1970년대 중반 이래의 현대불황(사민주의와 케인즈주의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반동으로서 1980년대이래 세계적으로 관철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편에서 80년대 말 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다른 한편에서 자본의 세계적 운동의 급진전속에서 현대제국주의의 지배적 정책, 이데올로기로 격상되었고 인류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이래 자유화정책이 점진적으로 추진되었고 특히 김영삼정권의 등장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권내의 경쟁하는 하나의 경향으로 보다 확고한 자리를 잡아갔는데, 이제 김대중정권은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이름하에 이 정책을 지배적 경제정책으로 제시하고 이것에 기초해 경제위기로부터의 탈대안을 모색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서의 신자유주의는 그 지속되는 헤게모니에도 불구하고 이미 20년의 정책실험에서 현대불황을 극복하는 대안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자본의 세계적 운동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기는커녕 현재 진행되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투기자본의 운동에서 보는 바처럼 세계경제를 점차 통제불능의 위험상태로 몰아 가고 있다.
이처럼 그 모순과 한계가 분명하게 노정된 현 시기에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실험이 본격화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신자유주의가 대외적으로는 자본운동의 자유화를 보장하는 제국주의적 개방정책으로써 제3세계에 대해 제국주의적 이해를 강제하고자 한 정책인 반면, 한국에서 관철되는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그러한 압력에 대한 국민적 보호수단을 스스로 던져 버림으로써 세계시장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압력에 한국경제를 완전히 노출시키고, 국민경제의 위기와 대외종속의 심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미 김영삼정권의 자유화정책조차 한국경제의 위기를 얼마나 증폭시켰는가는 작년 말 외환금융위기의 표출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인데, 이제 이 위기를 보다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전면적인 개방정책으로 대응한다는 대안이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투쟁을 결코 우회할 수 없고 또 우회해서도 안된다.
'국영기업 또는 공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경쟁의 논리를 강화한다. 나아가 개방화 정책속에서 그 민영화되는 기업을 외국자본에게도 매각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해서 경쟁요인을 강화한다'는 민영화와 개방정책의 쟁점은 현정세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투쟁 중 가장 중요한 고리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투쟁은 한편에서 노동자운동의 조직적인 역량의 한계라는 제한성과 다른 한편에서는 이 쟁점을 둘러싼 노동운동내의 견해차이로 그 동력을 모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현재의 정세를 반영한 투쟁의 총체적 연관속에서 민영화반대투쟁의 위치를 올바로 설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 원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민영화 반대 :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투쟁
원래 국공영기업이라는 것은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사적자본들의 영업을 위해서는 불가결하지만 사적 개별자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부구조의 산업부문을 국가가 총자본의 이해대변자로서 불가피하게 떠맡는 국가자본의 한 형태이다. 이들 기업은 사적기업과 달리 이윤증식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자본의 이윤증식에 복무하는 그러한 자본이다. 따라서 국공영기업은 그것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면, 설령 이윤손실과 자본감가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손실은 민간자본의 경제적 이익으로 전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총자본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경영이야말로 국공영기업에 충실한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런데 국공영기업이 담당하는 하부구조라는 것은 한편에서 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력의 진보에 따라 변화하게 되며(즉 과거에는 주로 도로, 항만, 교통, 전력, 통신 등이었다면 현대에는 통신, 우주, 군수산업 등 첨단산업이 그 중심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적자본의 생산과 자본의 집적에 의해 거대 독점자본이 성립하면서 국가자본이 담당하던 일정한 부분이 독점자본들의 이윤증식의 대상으로 전화되고, 그것에 대한 민영화요구가 제기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공영기업은 사적기업을 부정하는 기업형태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틀내에서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총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고 특히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독점자본의 가치증식의 주요한 매개기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결코 그 자체로서 자본과 독점자본의 이해에 대항해 노동자계급과 일반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고 국가와 독점의 융합, 부패와 관료주의의 지배경향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사적자본의 직접적 지배로부터 벗어난 기업형태라는 점에서 국공영기업은 국가재정과 함께 노동자계급이 사적자본의 이해를 제한하고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조응하는 보다 온건한 경제정책의 실현을 위한 주요한 정책수단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자본주의사회를 지양하고 미래사회를 건설할 관제고지와도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이어서 국가재정과 국영기업, 국가자체가 계급투쟁의 장소로 전화되고 민영화와 국영화는 계급투쟁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신자유주의 정책하에서 주장되는 민영화논리는 그 현실적 배경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논리의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독점자본의 이윤논리에 복무하는 것이며 노동자계급으로서도 불가피한 대항의 논리(국영화논리)를 포괄하고 있다.
한국에서 민영화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군사통제의 경제하에서 국가와 독점의 유착, 국가부문의 관료주의화, 비효율과 비생산성이 누구 눈에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특수하게 과도할 정도로 왜곡되어 심화된 것이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적(이하 국독자) 실천의 일반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국가자본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도 경영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국독자적 실천이 가져온 관료주의와 부패, 비효율이기 때문에 국가부문과 국영기업의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런데 그것을 민영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국가부문과 국영기업의 폐단을 가져온 원인을 왜곡시키고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적 독점자본은 국가와의 유착을 통해 국가부문과 국영기업의 폐단을 가져온 근본원인이며 이것은 국가의 정책실패라든가 독점자본의 특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래의 성질,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한 국독자의 유형변화(신자유주의적 국독자)에도 불구하고 정정될 수 없는 기본성향이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민영화란 결국 재벌들(또는 외국자본)에 의한 국영기업의 인수를 의미하는 것인데 한국의 재벌들이란 다름 아닌 외환경제위기를 가져온 주요원인이라 할 부실경영과 정경유착의 당사자들이다. 결코 이들에 의해 국영기업의 효율성 증대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김대중정권은 재벌개혁정책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합리적이고 경쟁적인 시장구조와 경쟁력 있는 기업들로 전환시키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독점자본주의와 국독자가 지양되는 세계자본주의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100보를 양보해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국영기업의 부실화를 민영화를 통해 재벌기업에게 위임함으로써 해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벌기업들의 부실화도 그에 못지 않게 혁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국영기업의 혁신, 관료주의의 청산 요구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공영기업이 이렇게 국독자적 실천의 한 고리이고 국가와 독점의 융합하에서 그 관료주의적 부패가 발전한다면, 또 그 융합이 국독자하에서는 차단할 수 없는 경향이라면, 국영기업의 민영화에서는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독자의 혁신위에서만 합법칙적인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처럼, 국가부문과 국영기업은 독점자본의 이윤지배하에 종속되어 있지만, 사적기업과는 달리 이윤원리에서 벗어난 소유형태라는 점에서, 비록 완료되지는 않은 형태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지양을 내포하는, 그런 의미에서 잠재적으로 진보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이 부문에 대한 통제권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주요하게 관철할 수 있는 것이므로 민영화에 반대하여 국영기업형태를 유지함으로써 계급적 이해를 지킬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국독자적 메카니즘하의 국영기업 유지가 아니라 국독자의 혁신, 노동자계급의 경영참가를 포함하는 국영기업의 혁신과 관료주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만 비로소 국영기업의 현실의 폐단에서 일어나는 민영화논리에 대항하여 사회화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나아가 국영기업의 민영화반대라는 소극적인 저항을 넘어 경제위기의 정세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재벌책임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하여 부실한 재벌기업을 국공영기업화 하자는 요구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쟁점을 '민영화와 시장경제'인가 아니면 '통제경제와 관치경제의 지속'인가로 제기하는 부르주아 대변자들의 기만을 돌파하고 역사에 합법칙적인 제3의 길의 전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민영화 반대 : 대외종속심화를 차단할 투쟁
한편 한국에서 현재 민영화의 문제는 이상에서 설명한 일반론적인 관점을 넘어 특수한 차원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민영화가 단순히 일국 내에서의 독점자본과 노동자계급의 이해대립만이 아니라 경제위기의 정세하에서 전면적인 개방화정책과 연관해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영화되는 국영기업의 외국자본에 의한 인수가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국책은행으로 된 제일, 서울 두개 은행을 외국은행에 매각한다는 이야기는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포철, 한전, 한국통신 같이 흑자를 내고 있는 주요 기간산업의 기업들까지 민영화와 외국자본에의 매각을 구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민영화냐 국영화냐의 쟁점은 국민경제의 대외종속 심화냐 아니냐는 일층 심화된 쟁점을 포괄하고 있다.
김대중정권의 전면적인 개방정책은 한국자본의 축적조건 여하에 따라 지금까지의 종속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심화된 형태, 즉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 금융/산업의 직접적 지배,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노동자의 직접적 착취의 길을 열어 놓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반대투쟁은 대내적으로 독점자본에 저항해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지키는 주요고리일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이미 심각하게 세계경제에 편입된 국민경제의 대외종속성 심화를 막아낼 수단인 것이다.
경제위기속에서 외국자본의 유치에 목숨을 걸고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의 구별(자본의 국적성)을 묻지 말고 경제성장과 고용에 기여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김대중정권의 발상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하며 그 자체로 진실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컨대 정부조직개편에서 외교통상부내에 대외통상본부가 도대체 왜 필요하며 한미자동차협상은 왜 지리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는가? 모두 다 개방하면 되고 나아가 한국정부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지 않는가?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운동과 외국자본에 의한 한국의 산업/금융지배가 설령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서 생산과 고용을 안정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안정한 안정이며, 한국은 외국자본의 유지를 위해 그들의 이윤요구, 정치경제적 요구를 끊임없이 받아주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자본철수와 경제황폐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것이 노동자계급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자계급도 국가를 매개로 하여 내외독점자본에 정치경제적 압력을 행사하고 자신에게 보다 온건한 경제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 길을 봉쇄당하며 고용조건, 노동조건, 노동권리, 나아가 정치적 권리를 외국자본에게 위임해야 하는 것이다.
또다른 과제, 진보진영내의 민영화 수용론과 낙관론 극복
민영화와 개방정책의 이러한 중차대한 정치경제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정치적, 이론적 대응은 그것만큼 심각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진영내에 침투해 있는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민영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위험한 견해 - 국공영기업 형태의 유지와 노동자계급에 의한 기업경영의 내부혁신 대신 국민기업이라든가 종업원지주제라는 이름하에 국공영기업의 민영화를 수용하고 주식분산과 노동자 경영참가에만 주목하는 경향 - 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외개방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의 한국지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남미형 종속경제와 같은 이행은 비현실적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 -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에서의 한국자본의 종속적 지위에 대한 일정한 상대화나 또는 세계시장경쟁에서 한국자본의 추월경쟁전을 전망하는 것과 관련된다 - 이 지배하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따라서 민영화와 개방화에 대한 투쟁은 한편에서 이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점과의 투쟁일뿐 아니라 진보진영내의 견해차이를 논쟁적으로 극복, 정리하는 과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의 위기정세는 이런 문제를 결코 현실과 따로 노는 사변적인 논쟁이 아니라 바로 현실의 위기와 탈위기의 투쟁속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위기와 생존권 위기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그런 논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국공영기업의 민영화와 외국자본에의 매각은 불가피하게 독점자본가적 방식의 경영개선, 즉 대규모 정리해고와 가격인상, 정부의 부대적인 지지정책 등 - 이런 경영정책을 통해서 국공영기업의 재정과 경영을 개선할 수 있다면 국공영기업하에서도 못할 것이 뭐가 있을 것이며 도대체 그것을 정책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값싼 정책인가 - 을 동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생존권 확보는 민영화반대와 외국자본 반대투쟁을 우회하고는 어떤 의미 있는 결과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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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