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혁신', 그리고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하여

- 민주노총 2기 지도부, 과제와 임무 -





박성인(사무처장)



'비대위 2기', '위기관리 지도부'를 넘어 '투쟁 지도부', '혁신 지도부'로!

지난 3월 31일, 민주노총 제10차 대의원대회에서 '투쟁하는 민주노총', '아래로부터 혁신되는 민주노총'의 기치를 내건 이갑용 위원장후보-고영주 사무총장 후보진영이 2차에 걸친 투표 끝에 민주노총 2기 지도부로 선출된 지 한달이 지났다. 후보추대과정과 선거과정의 난맥상을 되돌아 볼 때, '아래로부터의 민주노총의 혁신'을 주장하는 이갑용-고영주 진영의 당선은 의외의 결과이지만, 민주노총의 혁신적인 변화를 바라는 현장 조합원의 바램과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갑용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선 연설을 통해, "이번 선거결과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에 대한 평가이다. 노동자의 생존권투쟁에 사활을 걸고 투쟁하겠으며, 1년만 하고 그만두겠다. 그리고 1년 임기 중에 직선제를 실시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겠으며, 정갑득-장운 후보진영과 단결하여 투쟁해 나가겠다"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민주노총 2기지도부가 '민주노총의 혁신지도부'이자 '투쟁지도부', 그리고 '위기관리 지도부'임을 분명히 하였다.

민주노총이 지난 2월 노사정 합의 이후 직면했던 '정체성의 위기'는 지난 10년간 민주노조운동의 견지해 왔던 '민주성'과 '자주성', 그리고 '계급적 단결'의 위기로서, 이는 동시에 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에 주류를 형성해 왔던 '사회개혁적 노동운동 발전전략'의 위기였다. 나아가 민주노총의 위기는 노동자와 민중 전체의 생존권의 위기였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지구화라는 정세 속에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와 진보의 위기이도 했다. 그런 점에서 "내부혁신 없이 투쟁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 2기 지도부는 내적으로는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를 내부 혁신을 통해 극복해 나갈 임무를, 그리고 외적으로는 경제위기와 IMF관리체계라는 정세 속에서 천삼백만 노동자와 사천만 민중의 생존권을 투쟁으로 수호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진보를 진척시켜 나갈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임기 1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그리고 IMF관리체계라는 정세 속에서 강화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김대중 정권의 '사회적 합의'의 압력 속에서 민주노총 2기 지도부가 얼마만큼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다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긴급하게는 당면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투쟁 및 98년 상반기 투쟁 준비, 그리고 민주노총의 중앙조직의 정비 등 민주노총 2기 지도부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나아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노총의 내부혁신을 위한 각종 제도적인 정비 - 직선제 실시, 대의원수와 중앙위원수의 확대, 지역본부 강화 등 -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2기 지도부'에 부여된 이와같은 과제와 임무가 단지 지도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에 민주노총이 직면했던 정체성의 위기가 단지 상층 지도부의 문제만이 아니듯, 정체성의 위기를 '투쟁'과 '혁신'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제 역시 상층 지도부만의 몫은 아니다. 만약 아래로부터의 민주노총 혁신을 통한 '민주노조운동의 민주적·계급적 강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노동자·민중 연대투쟁'의 복원, 그리고 자본의 위로부터의 지구화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국제적인 노동연대'의 구축만이 현 정세에서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사수하는 길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수호해 나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98년 1년간 '투쟁'과 '혁신'의 '새로운 계급적·정치적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98년 상반기투쟁, 우회로는 없다!

4월 28일 제9차 중앙위원회가 성원 미달로 유회되어, 2기 지도부에서 제출한 안건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5월 총력투쟁방침(안)]에서 제시한 98년 상반기 투쟁의 요구와 기조는 대략 다음과 같다.

◇ 98년 상반기투쟁의 요구

1) 고용안정·생활안정 쟁취 7대 요구

- 정리해고제 및 근로자파견제 철폐

- 임금삭감없는 노동시간단축 통한 고용유지 및 확대(전산업 주40시간 법정노동제로 향후 2년간 현 수준 고용유지 및 확대, 실업기금에서 노동시간 단축분만큼 임금보전)

- 부당노동행위 근절 및 사용자 처벌

-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모든 형태의 구조조정 중단

- 물가 5% 억제, 임금 5.1%-9.2% 인상

- 실업기금 20조 확보(고용세, 재벌재산 환수, 남북상호군축, 일반회계 등)

2) 미조직·비정규·실업자 보호 및 조직화 5대 요구

- 최저임금 인상(전산업 평균급여의 50%로 인상, 단 99년은 40%)

- 모든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 비정규 노동자 노조 가입 및 결성 확대

- 실업자 조합원 권리 획득 및 조직화

- 실업기금 20조의 관리운영 일원화와 노조관리 요구

3) 경제평등·사회개혁 4대요구

- 경제파탄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 재벌 해체 및 재벌총수 재산 환수

- 노조 경영참가 및 민주적 노사관계 보장

- 세제 개혁 및 4대 사회보험 통합 일원화

4) IMF재협상

◇ 투쟁기조

- 민주노총은 위 요구를 바탕으로 대정부, 대자본 직접 협상과 전국적 전선을 구축한다

- 단위 노조와 연맹은 고용안정투쟁과 부당노동행위 근절투쟁, 사업장별 현안투쟁, 임단투 등을 힘있게 전개하면서 위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5월말 6월초 민주노총 총력투쟁에 결합한다

- 실업자투쟁, 범국민연대기구 투쟁 등을 통해 전노동자와 범국민적 투쟁으로 확대한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요구와 투쟁 기조를 바탕으로, 5월 1일 노동절 중앙집중대회를 출발로, 5월 16일 '98년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전국동시다발집회', 5월 20일 대의원대회를 통한 총력투쟁 결의 및 사업계획 확정, 5월 23일 공공부문 및 자동차 등 부문별 총력투쟁 결의대회, 5월 20일∼27일 쟁의행위 찬반투쟁 투표 등을 거쳐 5월 말 ∼ 6월초에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이를 위해 민주노총을 중앙집행위원회가 투쟁지도부가 되는 '고용안정 및 생존권 사수 투쟁본부'로 재편한다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계획과 더불어 명동성당 농성을 중심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근절투쟁,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투쟁, 실업자투쟁, 택시·기아자동차·현대자동차 등의 당면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한편, 5월 초에는 '범국민적 연대투쟁기구'를 구성하여 범국민적 투쟁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물론 이러한 계획만으로는 98년 상반기투쟁이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지에 대해 아직 예단할 수는 없다. 5월 1일 노동절투쟁 이후 5월 10일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TV토론회, 5월 15일 외국인 투자유치단 방한 등을 전후하여 총자본진영(정부, 자본, 언론)의 대대적인 이데올로기공세,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을 분산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5월 1일 노동절투쟁 동력을 바탕으로 계획된 투쟁일정에 따라, 5월 말∼ 6월 초에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복구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총자본진영의 이데올로기공세와 내부 조직력의 취약으로 투쟁이 분산되면서 오히려 민주노총과 투쟁지도부가 고립될 것인지의 여부는 이제 전적으로 민주노총 자신의 역량에 달렸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98년 상반기투쟁에서 '우회로는 없다'는 점이다.

대중투쟁 자체가 정치적으로 고양되야

그러나 98년 상반기투쟁에서 '우회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떤 수위에서든 총자본진영과 총노동진영간의 대립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대중투쟁의 정치적 성격과 투쟁 수위·강도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이다. 아니 거꾸로 98년 상반기 대중투쟁은, 처음부터 정치적 기조와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그 기조 아래 투쟁을 이끌고 배치하지 않으면 투쟁 동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조와 방향이 분명하지 않게 되면 어느 정도 투쟁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노동자계급의 단결·투쟁과 정치적 성장에 심각한 폐해마저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8년 상반기 대중투쟁이 어떤 정치적 기조와 방향에 의해 이루어지고 투쟁 과정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민주노총이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를 대중적으로 극복하고,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고용안정과 생존권을 사수해 나갈 수 있는지가 가름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투쟁의 정치적 성격과 그 수위여부에 따라 현 시기 한국사회의 계급역학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의 사회적·정치적 역관계의 형성-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나아가 신자유주의 공세에 저항하는 세계 노동자투쟁에도 영향을 미쳐 자본의 세계적인 축적전략(지구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에 결코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선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아니고, 대중운동 전체가 어떠한 정치적 방향을 가지고 나갈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 연맹 및 지역본부, 단위노조는 당면한 전국적 고용안정 및 생존권 사수투쟁이 바로 정치세력화투쟁임을 인식한다"는 98년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98년 상반기 정세와 대중투쟁이 갖는 성격을 반영한 정치방침이라 할 수 있다. 즉 대중투쟁 자체가 정치적으로 고양되야 하고, 또 그렇게 될 때만 대중투쟁이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먼저 민주노총은 98년 상반기 투쟁에서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위기 해결책에 맞서 노동자·민중 자신의 독자적 요구와 정치(세계관)에 바탕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는 점을 분명히 자신의 정치적 기조로 해나가야 한다. 즉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사수'가 현 시기 정치적 기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기조가 분명히 서지 못할 때, "경제가 살아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 "노동자의 파업이 외환유치를 어렵게 하고,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경제위기시에 노동자의 파업은 집단이기주의이다. 파업을 하면 국민여론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다" 등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분명하게 대응해 나갈 수 없고, 오히려 노동자계급 내부에 혼란과 동요만 자초할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극복은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민주노총", "경제위기를 극복할 자신이 없으면, 우리 노동자들에게 맡겨라. 노동자·민중이 나라의 주인이다"는 정치적 기조를 분명히 할 때, 민주노총은 노동자·민중 전체에게 98년 상반기투쟁에서 고용안정과 생존권을 사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바탕하여 98년 상반기 대중투쟁을 이끌고 조직하기 위한 정치적 기조와 방향에 대해 살펴보자.

노동자대중의 요구(고용안정과 생존권 사수)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지금 노동현장의 상황과 노동자의 삶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민주노총에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의 신고가 들어 올만큼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고 있으며, 조업단축, 배치전환, 부도 및 휴폐업에 따른 정리해고 등으로 전체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인상률 억제와 환율 및 물가 폭등에 따른 실질임금의 저하, 세금인상에 따른 가계부담의 증대, 퇴직금 불안 등으로 인해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이 바닥에서부터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고용불안과 생활의 불안은 동시에 작업과정과 노동조합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노동강도과 노동통제력이 강화되고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에 대해 아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처해 나갈 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안짤리면 다행이지, 뭔가를 요구해서 쟁취해 낼 수 있느냐", "아예 노조에서 임금동결을 선언해서 일자리나 지키자"는 체념과 무기력에서부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원을 짤라야 되는거 아니냐, 그런데 왜 하필 나냐", "경제도 어려운데, 우리 노동자도 참아야 하는거 아니냐"는 혼란과 동요, 그리고 "왜 노동자만 고통전담하느냐",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번 붙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분노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노동자들은 체념과 무기력, 그리고 분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거나 동요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동요, 체념과 무기력의 틈을 비집고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 합의 유혹과 자본의 유연화 공세가 관철되고 있다. 총자본진영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 "파업을 자제하여 외화를 유치하면,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다", "IMF를 졸업하여 경제위기가 극복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바탕하여, 대량실업과 임금삭감을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권은 허구적인 노사정 합의와 실효성없는 실업대책을 통해 조직노동자 내부, 조직노동자의 상층과 하부, 그리고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실업자를 분열시키는 정책을 통해 대노동통제력을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총자본의 진영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조합원의 상태 때문에, 노동운동진영 내부에서조차 '현장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인식(?)에 바탕하여 노동자 대중투쟁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거나 우회로를 쁹으려는 경향이 있다. "국민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을까", "과연 올해 대중투쟁이 가능한가", "임단투는 포기하고 실업대책이나 얻어내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우려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 정세의 한 측면만을 보고 있다. IMF를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진영 내부의 논란에서 보듯, IMF의 긴축정책, 구조조정정책, 자유화 정책이 전세계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며, 또 국내외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집행자인 김대중 정권 역시 어떤 정책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권은 최근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와 급증하는 실업으로 조직노동자들의 투쟁과 실업자투쟁이 결합할 때 가져올 사회적·정치적 파급력에 대해 위기의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움은 우리 노동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민주노총이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이라는 자신의 생존권 요구에 바탕하여 배수진을 치고, 총자본진영의 각종 허구적인 이데올로기 공세와 노동분할통제정책을 뚫고 대중투쟁을 조직해 나간다면, 조직노동자만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와 실업자들까지 투쟁을 통해 자신의 주변으로 결집해 낼 수 있다면, 그래서 노동자대중 전체가 자신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투쟁의 주체로 스스로 서 나갈 수 있다면, 민주노총은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 극복은 물론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우리 사회의 마지막 대중적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자본의 지구화가 현실화됐으며 세계적 차원의 과잉생산과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간, 국가간 무한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자본(국가) 사이의 경쟁을 노동자대중에 대한 공격 - 노동의 유연화, 민영화, 탈규제화, 개방화, 사회복지축소 등 - 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전략이 바로 신자유주의 공세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응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케인즈주의에 대한 환상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한 때 케인즈주의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은 바로 케인즈주의의 역사적 실패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케인즈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의 구체적 내용은 그것이 노동자에게 가하는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복지(기업복지, 사회복지)의 후퇴 반대, 개방화·민영화 반대(자주적 민족경제나 역사적으로 드러난 국유화가 대안은 아님), 노동시장의 유연화 반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부르조아 정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국가)간 무한경쟁, 자본의 지구화, 세계적 차원의 과잉생산은 어쩔 수 없는 대세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단없는 기술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의 지속적인 확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강화 이데올로기(신화)를 극복하지 않고는 노동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쟁력이 약화되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현실을 맞이할 것이라는 자본(국가)의 압력은 결코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니다. 오늘날 노동자대중이 고통받고 있는 것은 고도의 생산력과 부조화를 이루는 생산관계 때문이다.

대중적 노동운동의 성격과 내용을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민주노총 1기 지도부 아래에서의 대중적 노동운동은, 그 내부에 1기 지도부의 정치적 경향과는 다른 정치적 흐름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1기 상층 지도부의 정치적 견해로 표현됐다. 그것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동자계급을 국민 일반과 동일시함으로써 사실 상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를 포기하고 노동운동을 부르조아 정치의 하위 범주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경제가 지난 수 십년 동안 고도성장을 해 온 역사적 경험의 단선적인 연속 위에서 한국경제가 머지 않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관적 전망과, 김영삼 정부 등장 이후 한국사회가 부르조아 민주주의사회로 자연스럽게 이행할 것이라는 초역사적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다. 동시에 소련·동유럽체제의 붕괴를 노동자 정치의 폐기로 받아들이고, 역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서구의 사민주의(개량주의)를 정치적 지향으로 삼은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1기 지도부의 대부분이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 자본(국가)으로부터 양보(개량)를 이끌어내는 것과 '정치적 개량주의'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나아가 사민주의가 비록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은 아니지만 서구에서 이나마 가능하기까지는 대중적 노동운동이 계급적 노동운동의 성격과 내용에 바탕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외면했다.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미국, 일본, 서구에서조차 오늘날 노동자대중은 높은 실업과 생활 수준의 후퇴로 고통받고 있으며 유럽 사민주의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집행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한국 노동자계급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중심(투쟁과 노동자의 정치 원칙)에 서서 민중연대투쟁전선의 강화를

1기 지도부 시기의 민주노총은 학생, 빈민, 농민 등 피억압민중이 국가(자본)에 의해 당하는 고통을 사실상 외면해 왔다. 그리고 탈계급적이고, 친정권(자본)에 가까운 시민운동단체와의 협력을 중심으로 연대문제를 풀어왔다. 그를 통해 대 부르조아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을 상층정치력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현실적 결과는 투쟁은 노동자가 하고 정치적 성과는 반대로 시민운동 단체가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운동 단체는 노동자투쟁의 결정적 시기에는 언제나 반대, 기권,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노동자계급은 일차적으로는 내부(미조직, 비정규직, 실업자, 외국인 노동자 포함)의 단결·투쟁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피억압민중(학생, 빈민, 농민, 성차별, 장애인, 홈리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그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그들을 노동자계급의 정치 원칙 아래로 묶어 세워야 한다.

따라서 범국민투쟁기구의 결성은 단지 민주노총이 투쟁을 하는데 도와달라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고통받는 전체 민중의 투쟁에 노동자가 개입하고, 그 투쟁을 노동자가 주도하여 이끌어 나간다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애국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 국제연대를

국가경제가, 기업이 파탄 나면 일시적(시간의 물리적 정도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으로 노동자대중은 더 큰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대중은 이런 상황만을 유일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보다 다수의 노동자가 투쟁에 나설 수 있다면 그것은 기우일 수도 있다. 이것도 예측할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초역사적, 원칙적 주장이 아니다. 일국적으로나 세계적 차원에서도 자본(국가)의 정책이 항상 예정된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태도와 정책은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정치적 역량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받고 변경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랬다.

만약 우리가 국가경쟁력(자본경쟁력)을 염려한다면 투쟁을 접어야 한다. 혹자는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생산동기와 의욕을 유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특정 역사적 상황 아래에서는, 비록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가 아닐지라도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한 주장 또는 선동이 노동자 투쟁을 일으켜 내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경우가 한 예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런 논리는 대중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이런 편의적이고 우회적인 논리는 대중에 의해 거부당할 수밖에 없다.

IMF 반대나 재협상 요구도 국가경쟁력, 기업경쟁력 회복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자본, 초국적 금융자본의 횡포에 노동자가 투쟁으로 맞선다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그 투쟁이 의도와 달리 국가경쟁력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중간계급의 압력에 밀려 투쟁 자체를 거두어야 하는 어려운 현실을 바로 맞게 된다. 이 때의 정치적 원칙은 세계노동자를 향해 우리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나아가 투쟁에 동참(그들 나라의 국가와 자본에 맞서 그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할 것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당연히 우리도 그런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대중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노동자 정치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조직적·이데올로기적 토대구축으로

지난 10여년에 걸친 노동자 대중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치운동의 성과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 원인은 국가탄압(국가보안법 등)이라는 객관적 조건이 있기도 했지만 주체적인 측면에서, 정치세력화를 주로 선거참여나 산별노조 건설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데에 크게 기인한다. 선거참여나 산별노조건설은 필요한 과제이지만, 정치세력화는 이런 범주를 넘어서는 문제이며 과제이다. 선거와 노조운동을 뛰어 넘는 차원(전사회적이고, 전계급적인 문제 나아가 전세계적인 문제)에서 역으로 선거나 산별노조를 바라보고 배치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 내의 선진층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운동 내에서 정치토론과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와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당장의 노조활동에는 일시적으로 부담이 되고 간혹 노동조합운동 내부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노조운동의 발전과 성장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정치적 견해나 태도를 중심으로 쟁점을 형성하고 이것들이 객관적으로 표현될 때 상호 평가와 검증의 기회와 계기를 맞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노조의 형식적 체계 안에서 해결하려 하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과 정치적 지도력의 확보를 기대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적 노동운동 전반을 계급적 노동운동의 성격과 내용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지만, 바로 이를 위해서도 노동운동 내의 선진층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