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참관기



사안별, 소재별 국제연대를 넘어

- PGA보고 및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을 위한 토론회 -



김 현 우

연구원




지난 4월 2일, 종로성당에서는 조금은 생소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제연대'나 '네트워크'라는 말이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지만, 아직은 무척이나 작은 여섯 개의 단체가 모여 결성한 "국제연대행동네크워크"(주1)라는 토론회 주최 단체는 낯설었고, 이들이 의제로 삼은 '지구적 민중행동'이라는 것 역시 익숙하지는 않았다.

이 토론회를 처음 제기한 것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타(PICIS), 정보연대SING, 그리고 한국청년생태주의자(KEY)의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토론회가 있기 1∼2주전부터 통신망에 뉴스레터 등을 띄우면서 이 생소한 토론회를 홍보해왔었다. 토론회에 모인 백명에 가까운 참석자들 중에는 그렇게 알음알음으로 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토론회는 사전행사로 슬라이드를 곁들인 "PGA 국제회의 보고"로 시작되었다. 2월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이 회의에 직접 참가하고 돌아온 SING의 오병일 씨와 PICIS의 이창근 씨가 발표를 맡았다(주2)

1. PGA(지구적 민중행동)

PGA회의(People's Global Action Conference)는 두 해 전 사파티스타 반군의 부름에 응하여 자발적으로 수천명의 활동가들이 치아파스의 라칸돈 정글에 모였던 "인권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기 위한 대륙간 회합"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다음 해 스페인에서 제2차 "대륙간 회합"이 열렸고, 여기에 모인 활동가 중 일부가 신자유주의의 만행에 대한 토론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대항 행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고, 그래서 이들이 PGA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이나 사파티스타 같은 원주민운동 조직부터 각국의 많은 민중운동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주도적인 곳은 '어 씨드 유럽'(A SEED Europe : Action for Solidarity, Equality, Environment, and Development : 연대·평등·환경 그리고 발전을 위한 행동)으로 알려져 있다.(주3)

제1차 PGA 회의의 공식 명칭은 " '자유무역'과 'WTO'에 반대하는 지구적 민중행동"이었다. 2월 23일∼25일 사이에 열린 본회의 외에도, '민중 대(對) 세계시장', '기업권력', '성(性)', '문화, 미디어, 교육' '원주민' 등의 제목하에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고 한다. 슬라이드를 보면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행사 전체가 주택무단점거자(squatter)들이 오랫동안 점거해온 공장 등에서 열렸고, 사회나 발제문도 사전에 준비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니, 회의의 성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회의의 주최자들이 특정한 정치적 노선이나 조직의 위계구조에 반발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본회의의 공식 논의 주제는 1) PGA 선언문 초안에 대한 토론과 개정, 2) MAI(다자간 투자협정)를 조인하기 위한 4월 OECD 각료회의와 5월에 제네바에서 열릴 WTO 각료회의에 지구적으로 공동대응하기 위한 방안, 3) 2년 후 다시 열릴 PGA 회의를 위한 준비위원회 및 5월의 전지구적 투쟁을 세계에 알릴 언론팀 구성 등이었다.

이 회의의 공식 명칭에서도 짐작되는 것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논의 주제는 WTO와 MAI였다. WTO는 자본의 세계 확장을 주도하는 국가기구이며 MAI는, 이후 살펴보겠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국적자본에게 자유와 권력을 가져다 줄 국제협정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전세계의 민중운동은 이러한 자본의 지구적 확장에 대항하여 직접적이며 동시적인 반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슬라이드 시연은 지금까지 우리가 국내적인 투쟁에 집중해왔다면, 우리 민중운동진영도 이제는 초국적자본에 대한 직접 투쟁을, 그리고 세계 민중과의 동시적 투쟁을 벌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행사의 1부는 본격 토론을 위한 배경 논의로서, 한노정연 최형익 연구위원의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의 공격과 새로운 지구적 민중운동의 조건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최형익 씨는 "신자유주의는 세계 초국적기업들과 자본의 수동혁명 프로젝트이며, 70년대 세계 민중운동의 고양이 꺾인 후 이제 다시 분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논지는 세계적 '시민권'이 아닌 민중의 민주적 '권리'라는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실업자운동의 "살기 위하여!"라는 구호가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타의 간사 장소영 씨와 PICIS 이창근 대표의 발제로 시작된 2부는 원론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지형을 이해하고 투쟁의 방향들을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여기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 대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의 한인임 사무국장, 한국청년생태주의자(KEY)의 이지영 씨,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국의 김태훈 씨가 패널로 참여했다.

2. MAI의 밀실협상 폭로

2부의 발표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다각적 공세를, 특히 무역 자유화 방책들과 민중 생활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점검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가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IMF보다는, 앞서 말한 MAI(다자간 투자협정)를 알리고 민간단체와 민중운동의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데 더 비중이 두어졌다. 이것이 아직 다소 먼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이창근 대표의 발제에 따르면, MAI는 지금의 무역 자유화 관련 협정들보다 몇 배의 잠재적 파괴력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MAI는 90년부터, 특히 95년 이후 OECD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협상으로, 미국의 어느 사회운동가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주4) 이 투자협정은 NAFTA를 모델로 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구속력 있는 국제적 투자규범을 수립하는 것이 목적이며, 가장 큰 특징은 투자의 범위를 아주 넓게 규정하며 투자자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적 가치로 한다는 것이다. 이 협정의 배후에는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집요한 로비가 있는 듯 하다. 이 규범에 따르면 투기자본까지 모두 보호되어야할 투자로 인정되며, 이를 가로막는 인권, 환경, 노동 등에 관한 국내적 유보사항은 모두 철폐되어야 한다.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게될 개도국을 배제하고 OECD 내에서 협상을 종결하고자 - 이후 개도국들로 확대하고자 - 하고 있다.

MAI는 몇 가지 점에서 아주 위험스런 조항들을 담고 있다. 예컨대 외국 투자자에 대하여 '최혜국 대우' 및 '내국민 대우'를 보장하는데, 이는 국내 산업에 대한 보조금이나 보호장치를 불가능하게 하고, 오히려 '역차별'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또한 국내의 환경 및 문화 영역에 피해가 오더라도 이 때문에 외국 투자자의 권리를 제한하게 된다면, 투자자는 한 나라의 정부를 OECD내의 특별 법정에 직접 재소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가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더욱이 MAI는 탈퇴가 자유롭지 못하다. 대개의 국제 협약들이 6개월 정도가 탈퇴 통보기한인데 반해, MAI는 가입 후 5년이 지나야 탈퇴 의사를 밝힐 수 있고, 이 때에도 이미 투자된 자본은 15년 동안 이 규범의 보호를 받게 된다. 결국 20년 동안 MAI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IMF가 빗장을 활짝 열어 젖히고 MAI가 탄탄대로를 닦게 될 모양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MAI는 수익성의 위기에 몰린 초국적 자본의 발악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해 OECD회의에서 MAI의 초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협상그룹의 목적이었지만, 협상 당사국들이 여러 유보(reservation)들을 제출함에 따라 일단 올해로 넘어오게 되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올해 4월의 OECD 각료회의에서 적어도 정치적 합의안이라도 채택하려 했지만 이 마저도 힘들 전망이라고 한다.

프랑스 등에서 문화 영역의 예외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MAI에 조인할 경우 대(對) 이라크 및 쿠바 제재법인 다마토 법과 헬름즈-버튼 법을 폐지해야 하기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협상의 필요성에 아주 적극적인 유럽위원회 임원 레온 브리탄 경(Sir Leon Brittan)조차 협상에는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유럽의회에서도 좌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 행동네트워크와 '20/80, 투쟁의 봄 98' 캠페인

MAI가 봉착한 더 큰 난관은 협상이 알려지게 된 후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 여러 NGO들과 민중운동조직들의 저항행동들이다. 웰든 벨로우 같은 아시아의 활동가들이 OECD나 WTO에 맞서는 대항 회의를 조직했고, A SEED는 PGA회의에서 '뜨거운 봄 98'(Hot Spring 98)이라는 이름의 본격적인 캠페인을 제안해 놓고 있다. 이들은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이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의 경우와는 달리, 사회적 조항을 삽입하기 위한 로비활동이나 대항 정상회의(People's Summit 또는 Another Summit)를 여는 것은 효과가 적으며, MAI 협상 자체를 전면 반대하는 직접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PGA의 참석자들은 이를 '드라큘라 퇴치작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MAI를 양지로 끌어냄으로써 퇴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병행해서 대안적이고 민주적인 무역규범이 제안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MAI라는 드라큘라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최근의 ASEM같은 국제 정상회담이나 실무회의의 의제들을 살펴보면 MAI의 사전 정지작업으로서의 조치들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WTO 차원에서 MR(밀레니엄 라운드)가 의제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론화는 고사하고, 실상 자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MAI의 성격에 대한 이해부터가 시급하다.

국제연대행동네크워크가 이 토론회 말미에 제안한 '20/80, 투쟁의 봄 98' 캠페인은 A SEED의 'Hot Spring 98'과 보조를 맞추어 지구적 행동을 계획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미 행동네크워크는 3월에 다보스 경제포럼에 반대하는 전경련 앞 시위를 벌였고, 4월에는 한국의 노동관행에 관한 주한 미 상공회의소의 부당한 요구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바 있었다. 이들은 4월말에서 노동절까지를 지구적 민중행동 1차 행동주간으로, 그리고 5월 18∼20일을 2차 행동주간으로 설정하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9일의 'NO MAI 지구적 행동의 날'과 2차 주간 중 'WTO 각료회의 대응을 위한 행동의 날'이 정점이 될 듯 하다. 행동네크워크는 7월 초순경 여러 나라의 민간, 민중운동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서울 국제민중회의'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4. 사안별, 소재별 국제연대를 넘어서

국제연대행동네트워크의 첫 공식 사업이 아주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운영도 미숙했고 실질적인 행동방안에 대한 토론도 부진했다. 장기적 방향과 내용의 문제도 앞으로 더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인 것 같다. 그러나 IMF나 WTO 같은 국제기구들이 단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직접 행동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아주 중요했다. 자본은 날이 갈수록 지구화된 네트워크를 빛의 속도로 넘나드는 시대에, 단위 사업장과 지역만의 투쟁은 이에 제대로 맞서나가기 어렵다. IMF와 MAI는 적어도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와 지향을 제공하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노사정 합의에 대한 수동적이고 빈곤한 대응도 IMF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외국만 해도 'Stop IMF!'와 같은 여러 뉴스그룹과 대항행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 더 이상 국제연대 혹은 국제주의가 시기별로 혹은 소재별로 선택해서 하는 이벤트 사업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 총자본뿐만 아니라 초국적자본에 맞서는 모든 전선에서의 연대만이 민중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내는 데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국제주의는 사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마인드라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예컨대 96∼97년 총파업으로 민주노총과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대활동 수준은 여전히 미미하다. 총파업 통신지원단이 한국의 소식을 세계로 알렸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도움의 요청이었지 실질적 연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국제자유노련(ICFTU)의 인사가 방패막이 되어주는 정도를 기대했을 뿐이었다. 이제는 산별만큼이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니엘 벵사이드(Daniel Bensaid)는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글에 대한 최근의 코멘트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모두 소리 높여 부르던 19세기 말 보다 국제주의가 실질적으로 후퇴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스탈린의 '사회주의 조국방어'와 브레즈네프의 '제한주권론'이 망쳐놓은 국제주의의 주도권을 노동자들이 되찾아야 할 때이다.


<미주>

1) 이들의 활동을 알고 싶다면 통신공간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자우편: singnis(나우,천리안,하이텔) ; 메일링 리스트: solidari@mail.sing-kr.org ; 웹페이지: http://kpd.sing-kr.org/pga/ ; BBS게시판: 참세상 go hot. 웹페이지와 게시판에서는 자료집 등 관련문서를 모두 다운받아 볼 수 있으며,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면 뉴스레터를 구독할 수 있다.

2) 자세한 것은 토론회 자료집 {20/80, 제4차 세계대전} 중 "제네바 현장보고서" 및 "지구적 민중행동 제 1차 국제회의 일일 보고서"를 참조. 이 문서들은 국제연대행동네트워크의 통신 게시판과 웹페이지에서도 받아 볼 수 있다.

3) 제1차 PGA회의에는 사파티스타나 A SEED Europe 외에, 페어 플레이 유럽(Play Fair Europe!), 그린피스(핵무기 반대, 환경보호 국제단체), 인도의 농민운동 단체 KRRS, 필리핀의 KMP 등이 결합했으며, 개별적으로 참석한 활동가들까지 포함해서 연인원 3백명 정도가 다녀갔다고 한다.

4) 우리에게는 토니 클라크의 글로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토니 클라크, "비상사태(MAI-DAY)!, 초국적기업의 세계 지배를 위한 다자간 투자협정", 지식인연대(준) 편, {민주와 진보}, 6호, 1997년 10월.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