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국내외 민중연대투쟁전선을 강화하자


오 세 철

이사·정치연대대표




1998년 5월 7일 11시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갖고 발족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루전에는 또하나의 실업대책운동본부가 결성되었다. 명칭만 가지고는 단체의 성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다만 참가단체의 면면을 보면 그 성격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한쪽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민중운동단체, 진보적 노동운동과 정치운동단체, 민교협, 민변을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단체가 참여한 반면 다른 쪽에는 한국노총과 상공회의소, 중소기업연합,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 및 종교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한쪽은 투쟁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당면한 고용안정과 실업대책, 민중생존권보장, 재벌해체, IMF재협상을 주요투쟁과제로 설정한 반면, 다른 쪽은 실업기금모금에 사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전선운동은 반자본운동의 성격을 기조로 하면서 상설적인 투쟁적 전선체를 건설하는 과정이며,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전선운동은 친자본운동의 일환으로 민중전선을 교란하는 한시적 국민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정권의 출범 이후 이른바 시민운동진영의 분화과정을 목격하고 있으며 자본과 정권의 외곽을 감싸는 들러리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들이 속속 결성되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정세변화에 따른 각 계급의 전선재편은 필연적 과정이며 중간지점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려 했던 시민운동세력은 계급적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 노동자계급과 민중진영의 올바른 전선재편의 방향은 무엇인가.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이라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내재적 모순으로부터 야기된 공황의 위기가 더욱 구조화되고 스스로의 통제가 불가능한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의 가치증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구조적 위기가 중첩되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냉혹한 자본의 법칙으로 전세계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옥죄고 있다. 이름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자본주의의 전략은 그동안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물로 획득한 사회성과 공공성을 해체하면서 복지의 형태로 존재했던 물적기반을 소멸시키고 세계민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야만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헤게모니의 지배체제가 신자유주의의 중심핵으로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구현으로 포장되고 있고 국민국가와 민족문화를 파괴하면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가치증식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가차없이 제거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규제 완화와 자유화, 그리고 민영화는 초국적 자본의 손아귀에 국내자본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맡겨야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지상명령이다. 신자유주의의 기본원칙과 다른 방식으로 자본축적을 해온 반주변부와 주변부의 국가들은 경쟁에서 패퇴할 수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식 자본합리화를 수용해야만 한다. 따라서 한국자본주의가 IMF관리체제에 편입된 것을 김영삼정권과 독점재벌의 책임론으로 보는 견해나 제국주의적 음모로 보는 견해는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문제인식이며 이러한 인식에 근거한 재벌개혁론이나 반미론 역시 투쟁의 대상과 과제를 잘못 설정하게 만든다. 세계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의 국제적 전선강화는 당연히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세계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단결시키고 연대하는 전선운동이어야 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은 낮은 생산력 수준에서 필연적으로 배태된 생산력주의와 일국사회주의론, 그리고 노동자민주주의의 부재 등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노동자국제연대는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일적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피폐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인종과 민족을 넘어서서 단결하고 투쟁하도록 노동운동의 세계화를 촉진시킨다. 물론 자본의 전략은 민족주의를 부추키면서 계급대립을 은폐시키고 파시즘을 통한 지배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전쟁과 같은 파괴를 통해 과잉생산의 모순을 해결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차원의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사회의 건설도 바로 이러한 세계적 반자본 전선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역사적 인식의 바탕위에서 가능하다.



두 번째 국내정세 속에서의 전선강화는 세계적 노동자·민중전선 강화라는 큰 틀속에서 국내의 반자본전선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자전선은 민중연대전선으로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 민중전선의 중심에는 당연히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관철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노동자계급이 설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그리고 실업노동자로 전화되면서 산업예비군을 형성한다. 물론 일차적 투쟁은 고용안정 쟁취투쟁일 수밖에 없으며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에 의해 정규직으로부터 쫓겨난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여 고용안정투쟁에 함께 나서야 한다. 실업노동자도 실업기금과 같은 사후적 처방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노동할 권리를 찾는 요구투쟁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이러한 생존권 투쟁전선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산별노조의 건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자전선은 민중전선으로 확대되면서 폭넓은 반자본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예비실업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피폐해진 농촌으로부터, 공공성을 지녀왔던 교육, 보건의료 등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민중은 빈곤화되고 있으며 이들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노동자이기주의를 극복하게 만들고 민중연대를 강고하게 만든다. 이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투쟁의 대상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생존의 위협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체제 자체가 그 대상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비단 독점자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자본과 그 대리인인 보수정치권력이라는 사실을.

전선이 분명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자본전선과 노동자·민중전선의 대립이 분명해지고 있다. 중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과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세력은 양자택일밖에 남지 않았다. 자본과 반자본의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결국 반자본전선을 교란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싸움판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더 이상의 기회주의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구체적 전선강화의 과제로 돌아오자. 장기적 투쟁과제를 안고 출범한 [운동본부]는 어떻게 반자본전선을 강화시켜나가야 하는가. 우선 전선운동의 기조와 연관된 틀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일이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노동자·민중전선을 강화시켜나간다는 기본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전선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합, 전국연합으로 이어졌던 전선재편의 과오로부터 얻는 교훈, 그리고 1996년 말 1997년 초 정치적 총파업의 과정 속에서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던 '범대위'와 그 후의 '민주연대'까지의 과정에 대한 반성 등이 체계적으로 평가되면서 진정한 민중연대전선을 통한 상설연합체 건설을 위한 과정으로 [운동본부]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총노동전선을 구축하면서(한국노총의 계급화를 전제로) 기층민중과 모든 진보세력을 망라하는 민중전선을 강화하고 자본과 권력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특별히 김대중정권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본질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면서 중간지대에 존재하고 있는 중간계층을 기반으로 한 부문운동세력을 민중전선으로 견인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합의라는 계급타협에 동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게 되는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게 만들고 결국 진정한 운동은(민중운동이건 시민운동이건) 누구의 편에 서는가 그리고 다수의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 편에 서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분명한 기조와 상이 확립되었다 하더라도 [운동본부]는 교섭이 아닌 투쟁을 통하여 상설적 투쟁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교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을 통한 성과물로 교섭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것이 장기적 투쟁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동본부]의 투쟁과제와 사업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의 반대투쟁이 되어야 한다. 그 실천투쟁은 당연히 고용안정 등을 포함한 생존권투쟁이 되어야 하며 반자본투쟁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초국적자본에 대한 반대투쟁이나 반독점자본투쟁도 자본합리화가 은폐된 재벌개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민중연대도 생존권투쟁이 중심에 섰을 때만이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억압과 지배에 대한 반대투쟁은 공세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대안사회건설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업도 만들어가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대안권력의 창출을 모색하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사업이다. 강력한 노동자·민중연대전선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이 실현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은 바 있다. [운동본부]를 통한 대중적 투쟁실천과정 속에서 정치운동의 계급성, 투쟁성, 민주성을 확보하고 계급대중의 주체적 참여와 지지·연대 속에서 대인권력의 맹아를 형성시켜 나가야 한다. 정치조직이 투쟁속에서 건설되어야 하고 또한 건설될 수 있음을 자신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상반기투쟁의 성과를 모아 정치조직건설의 초동 제안주체를 만들고 지속적인 노동자·민중전선강화를 통해 본격적인 정치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두 번째로 세계적 차원의 노동자·민중전선을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국제연대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세계의 노동자와 민중을 묶어낼 수 있는 사업, 보기를 들면 9월에 개최예정인 '국제민중회의'와 같은 사업들을 국내외적으로 조직하고 세계민중운동사에서 한국이 큰 획을 긋는 투쟁과 사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국적 관점을 넘어서는 진보세력의 세계적 연대는 21세기에 건설될 대안사회의 실질적 원칙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반자본의 국내외적 민중전선의 강화는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필연적인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역사적 과제임을 깨닫고 이제 투쟁속에서 출범한 [운동본부]를 민중적으로 강화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자본의 편에 서려는 각종 지배이데올로기의 현혹을 뿌리치고 중간자적 위선을 떨쳐버리면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편에 서는 대결단을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자.

노동자·민중전선 만세!

한/노/정/연